그 뒤 며칠 동안의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지막 날 촬영이 끝나고, 지환이 쿡 팀을 초대에 쫑파티를 했다. 그 뒤 쿡을 포함한 촬영팀은 M 국으로 돌아갔다. “최종본은 우편으로 H 국으로 보내 예정입니다. 혹시 요구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메일로 알려주세요.”비행기에 오르기 전, 쿡이 미소를 지으며 이서에게 말했다.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쿡 씨.”배웅을 마치고 지환과 이서는 공항에서 호텔로 돌아왔다.그들은 이상언 등 두 사람과 내일 스키 타러 가기로 약속했다.호텔 뒤에 바로 스키장이 있었다.요 며칠 동안, 나연이 여러 차례 이상언을 찾아왔었지만, 그는 여러 가지 구실로 거절했다.하지만 그녀는 참으로 끈질겼다.이상언이 톡을 차단하자, 레스토랑에서 기다리면서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시도했다.이상언이 나연에게 전혀 마음이 없다는 걸 임하나도 잘 알고 있지만, 본인보다 한참 어린 여자가 남자친구 앞에서 어슬렁거리니 신경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다.그것도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나연이 걔 완전 고수야. 첫사랑이고, 내숭녀고, 다 저리 가라야.” 다음날 같이 스키 타러 가서 임하나가 이서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차라리 공명정대하게 공세를 펼치면 따지기라도 할 텐데, 그냥 가끔 상언 씨에게 연락해서 이것저것 하자고 하니,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상언 씨에게 차단하라고 하고 싶어도 그랬다가 괜히 빌미를 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오빠, 언니가 질투해요?’나연을 차단했을 때, 그녀가 이런 얘기하면서 이상언에게 접근할 게 뻔했다.하나도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남자친구를 만났었지만, 매번 상대방이 그녀에게 넘어오면 그녀는 가차없이 헤어졌다. 따라서 남자친구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건 없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상대방을 공략하는 데만 공을 들였다. “제기랄, 연애는 정말 귀찮아, 솔로가 편해.” 임하나가 눈살을 찌푸리고 삐딱선을 탔다.“그냥 헤어질까?” “고작 이 정도로
나연만 나타나면 이상언은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고등학생인 데다 첫 해외 여행이 아니었다면, 그는 아마 그녀를 모르는 척했을 것이다.그러나 임하나의 표정이 평소와 다름없는 것을 보고, 그는 약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곧 임하나 뒤로 가서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나연한테 가볍게 인사했다. “일찍 나왔네.”임하나는 온 몸이 굳어졌다. 곁눈질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는 큰 손을 보며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그들의 친밀한 동작이 시사하는 바를 잘 알면서도 나연은 아무것도 못 본 사람처럼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하나에게 물었다. “하나 언니, 스키 탈 줄 아세요?” ““아는데, 왜?”매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이상언을 찾던 나연이 갑자기 임하나에게 부탁하자, 임하나는 나연이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나…….”“언니 시간 안 된다면, 상언 오빠한테 부탁할게요.”그녀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임하나를 바라보았다.임하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거였어. 진격을 위한 퇴각이야? 결국은 상언 씨를 노린 거잖아…….’‘어린애가 참 꿍꿍이도 많다.’하나가 답하려는데 이서가 먼저 나섰다. “내가 전문 코치 한 명 붙여 줄게.” 하나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이서를 쳐다보았다. 이서는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나연을 바라보았다.이서를 보자마자 갑자기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임하나를 바라보며 말했다.“하지만…… 난 현지어를 못 알아듣는데…….”임하나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다른 사람이 약한 모습을 보일 때이다. 그것도 예쁜 소녀가…….“됐어, 내가 가르쳐 줄게.”아무리 계략이 있다고 한들 어린 소녀가 뭘 할 수 있을까? 이서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연이 바로 옆에 있으니 그녀에게 뭐라고 까놓고 얘기할 수도 없었다.“그럼 조심해.”“응.” 임하나가 말하면서, 사람이 적은 곳을 가리켰다.“우리 저쪽으로 가자.” ““응. 언니, 정말 좋은 사람이야.”나연이 달콤하게 웃었다.두 사람의 멀
“무슨 일이야?”이서는 첫번째로 임하나 곁으로 달려갔다.임하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도 몰라, 방금 잡아주면서 스키 가르쳤는데, 갑자기 뒤로 넘어갔어.”임하나가 앞으로 다가가 나연의 상황을 살폈다.“괜찮아?”나연은 손으로 머리를 만졌다. 손에 새빨간 피가 묻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하나 언니, 난 괜찮아요, 언니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란 걸 난 알아요.”임하나의 안색이 일그러졌다.의사인 이상언은 쪼그리고 앉아 나연의 머리를 살펴보고, 머리카락에 묻은 피를 보며 안색이 바뀌었다.“당장 병원 가야 해.”임하나는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며 이상언에게 해명하고 싶었다.이상언은 이미 스키장 직원을 불러 나연을 차로 옮기도록 지시했다.전문직 의사로서의 상언의 모습은 처음이었다.평소의 온화함은 사라지고, 잘생긴 이목구비에 엄숙함과 늠름함이 더했다.환자에 대한 인격적 존중과 책임이 가득찼다.그러나 차에 누워 눈을 깜빡이며 작전 성공의 제스처를 취하자, 임하나는 심장에 돌이 눌린 거처럼 갑갑하고 답답했다.시동을 걸어 출발하려는 차를 보며 이서가 물었다. “하나야, 너도 갈 거야?”임하나는 그제야 반응했다. “나…… 나도 가는 게 낫겠어.”“나도 같이 가 줄게.”임하나는 이서를 바라보며 코를 훌쩍였다.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지환이 차를 몰고 이서와 임하나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병원에 도착한 이서와 하나는 간호사를 통해 나연이 2 층에서 검사 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병원의 특별한 분위기 속에서 둘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2 층에 도착하자, 마침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상언을 만났다.임하나를 본 이상언이 말했다.“어떻게 왔어요?”“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 나도 나연이가 어떻게 넘어졌는지 모르겠어요.” 엉겁결에 말이 튀어나와 버린 임하나는 멍하니 이상언을 바라보며 다가가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이상언은 환하게 웃으며, 임하나의 창백한 얼굴을 어루만졌다. “난 하나 씨
“엄마, 그만해요, 우리 가요.”나연은 계속 임하나만 쳐다보았다.여사장은 곧 눈치챘다. 임하나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별 다른 문제점을 찾아볼 수 없자, 남편에게 눈짓했다. “여보, 병원비 계산 좀 하고 와요.” “응.”남편은 곧 병원비를 계산하러 갔다.여사장은 이상언을 보며 말했다. “제 딸을 병원으로 데려다 주신 분이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저희가 해야 할 일이에요.” 이상언은 공손하게 말했다.말을 몇 마디 더 나누고 여사장은 나연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끌고 갔다.일이 이렇게 끝나버리자, 임하나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우리도 돌아가자.” 이상언이 임하나의 손을 잡고 눈을 깜빡였다.임하나가 한 번 웃었다.바로 이때, 여사장이 씩씩거리며 돌아오더니, 임하나 앞으로 걸어와 얼굴을 붉혔다. “나연이 말 들으니, 자네가 고의로 우리 딸을 넘어뜨린 거라며? 사실이야?” 임하나는 깜짝 놀랐다.“아니에요, 나 안 밀었어요!”“우리 딸은 거짓말 같은 거 안 해.”여사장의 눈시울이 또 빨개졌다.“대체 나연이한테 왜 이러는 거야? 네 남자 친구를 좋아하기 때문이야?”“…….”“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고 했네. 사람 좋아하고 안 하고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게다가 나연이가 두 사람을 떼어 놓은 것도 아니잖아, 근데 왜 우리 딸을 다치게 하냐고?”임하나는 해명하고자 노력했다.“사장님, 전 정말…….” 그러나, 여사장은 딸인 나연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하나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다행인 줄 알아, 의사가 상처 심하지 않다고 하니 나도 더 추궁하지 않을 거야. 앞으로 나도 자식 잘 하겠네.”말을 마치고, 여사장은 떠났다.제자리에 멍하니 서있는 임하나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너무 괴로웠다.그녀는 분명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임하나가 뒤쫓아가서 해명하고자 하자, 이서는 재빨리 그녀를 끌어당겨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하나야, 소용없어, 자기 딸 말을 믿으려고 할 거야. 네 말은 안 들을 거야.”
그냥 지나쳐가려던 이서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들이 ML 국에 도착한 첫날 호텔 통로에서 싸우고 있던 여자 둘 중 한 명이었다.이서가 지나갈 때,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이서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했다.술냄새가 진동했다. 이서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이서는 영어로 그녀와 대화하려고 시도했다. “많이 취했네요.”그 여자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서를 바라보며 영어로 말했다. “나 안 취했는데요.”말투가 또박또박 한 게 정말 취하지 않은 것처럼 들렸다.“호텔 직원 불러드릴까요?”“아니야, 자기야…… 가지마!”여자는 울면서 이서를 끌어안았다.“?”덩치도, 몸무게도 이서보다 훨씬 큰 그녀는, 이서가 밀어내고 싶어도 힘을 쓸 수 없었다. 이서는 곧 호텔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다.앞 전의 일로 직원들은 바로 여자 손님을 알아보았다.호텔 직원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남편이 이미 다른 여자랑 떠났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매일 술에 취해 산다고.”이서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듣고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직원들과 함께 여자를 부추겨 그녀의 방으로 데려갔다.방에 도착하자마자 여자는 화장실로 뛰어들어 토하기 시작했다.이서는 직원에게 팁을 주었다. 그러고는 여자를 돌봐 줄 여직원이 있는지 물었다.직원이 난처를 표했다.“죄송합니다. 야근 담당직원은 모두 남자뿐입니다.”이서는 지환에게 좀 늦게 들아간다고 문자를 보냈다.여자가 화장실에서 토하고 나올 때까지 약 15 분이 지났다.화장실에서 나올 때는 정신이 훨씬 맑아 보였다. 이서를 본 그녀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당신은…….”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생각했다. “아, 저를 데려다 주신 분이죠? 고마워요.”이서는 여자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좀 괜찮으세요? 저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잠깐만요.” 여자는 이서를 불러 세웠다. 그녀는 담배 한 대를 꺼내고는 잠시 침묵
이서는 겉보기엔 무표정했지만 속으로는 당혹스러웠다.여자가 얘기하는 모든 얘기가 왠지 지환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 같았다.“내가 정말 어리석었어요. 난 정말 참사랑을 만났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사람을 100% 신뢰하고 믿었어요. 그에게 수많은 의문점이 있어도 내 스스로 합리화했어요. 난 그가 날 절대 속이지 않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거든요.”이서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날 지환에게 자기를 속였냐고 물었을 때 그가 했던 얘기를 회상해 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이번에 그를 따라 ML 국으로 와서야 그가 ML 국에서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내가 혼인관계증명서를 가지고 있으면 뭔 소용 있나요? M 국에서는 합법적인 부부란 걸 인정하지만, ML 국에서 난 세컨드에 불과한 걸요.”줄리는 말하면서 또 담배 한 대를 꼬나 물고 불을 지폈다.그러면서 곁눈질로 이서를 힐끗 보았다.이서가 여전히 무표정하자, 그녀는 담배를 한 모금 빨고는 말했다. “제 넋두리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저 같은 문제를 겪지 않도록, 주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실 겁니다.”이서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남편과 함께 한지는 얼마나 되셨나요?”“반년 정도 되었습니다.” 줄리가 담뱃재를 털었다.“사실, 그 전에 그의 아내로부터 문자를 받은 적이 있었어요.”이서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안토니가 ML 국에서 이미 결혼했다고 나에게 얘기하더군요. 하지만 난 안 믿었어요.”줄리가 쓴웃음을 지었다.“나중에야 이렇게 국제 결혼으로 여러 사람과 결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즉, 안토니처럼 국제 결혼의 허점을 이용하여 이중 결혼하는 남자들이 많다는 겁니다.”여기까지 말하고는 줄리는 또 분노를 폭발했다. “남자들, 정말 간교하기 짝이 없어요.”이서가 미간을 힘껏 찌푸렸다.그녀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상대방이 중혼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줄리가 웃었다
이서는 천근 만근인 몸을 끌고 힘겹게 로열 스위트 룸까지 갔다.호텔 방문까지 간 그녀는 도저히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줄리의 이야기, 익명의 여자가 보낸 사진, 그리고 과거 지환의 신분에 관한 여러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이서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갑갑했다.지환의 모든 것이 호둣속 같았다.‘그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자칭 아내라는 사람은 진짜일까? 설마 정말로 두 명의 아내를……?’그녀는 방문을 잡고 천천히 앉았다. 여러 가기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왔다.그녀는 힘없이 주먹을 꽉 쥐었다.방에 뛰어들어가 지환을 깨워서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럴 힘조차 없었다. 문 앞에 한참동안 앉아 있으며 기운이 좀 생기자 그녀는 룸 카드키를 꺼냈다.문이 열리고, 방에 들어간 이서는 이미 깊은 잠에 든 지환을 보았다.편안한 얼굴로 곤히 자고 있었다.완전히 무방비 상태로.그를 바라보는 이서의 눈빛이 복잡했다.‘정말로 날 속였을까?’이서는 눈을 꼭 감았다.자문해 보았지만 답은 없었다.몸이 쓰러지려는 찰나, 그녀는 벽을 짚고 침대 옆으로 걸어갔다. 잠깐 망설이다 손을 들어 남자의 미간을 어루만졌다.다음 순간, 그녀의 손이 잡혔다.깜짝 놀란 이서는 몸이 움찔했다.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는 지환의 품에 안겼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서의 머리에 비비적거렸다. “우리 여보, 왔어.”이서는 머리를 지환의 가슴에 기댔다. 그의 강력한 심장 박동을 듣고 있으니 눈물이 솟구쳤다.그녀는 눈물을 애써 참느라 이불을 꽉 쥐었다.“왜 술냄새가 나는 거 같지?”지환의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부드러웠다. 아직 잠이 덜 깬 듯했다“술 마셨어?”이서는 잡았던 이불을 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응’하고 답했다.“다음에 술 마시고 싶으면 날 불러.” 이서를 힘껏 껴안은 지환은 거의 잠결에 그녀와 소통하고 있었다. “여자 혼자 술 마시면 위험해.”이서의 코가 또 시큰거렸다.‘이런 지환이 정말 나를 속였을까?’이서는 밤새 잠을 설
이상언의 방 안.외출 준비하고 있던 하나와 상언은 약을 들고 찾아온 지환을 보고 긴장해서 물었다. “이서 아파요?” 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병을 상언에게 건네주었다. “봐봐, 혹시 부작용 같은 건 없는지.”이상언은 쭉 한 번 살펴보고 말했다.“부작용이 없으니 안심하고 복용해도 되.”말을 마치고, 그는 또 물었다.“왜 갑자기? 어디가 아픈 거야?”“나도 잘 모르겠어.”지환이 눈살을 찌푸렸다.“여기 의사 말로는 물갈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던데…….”“내가 한 번 가 볼게.”세 사람은 지환의 방으로 갔다.그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이서는 미처 눈을 감을 겨를도 없었다.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보던 이서의 시선은 곧 임하나에게 떨어졌다. 그녀는 지환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려고 했다. “이서야…….”임하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어디가 아픈 거야?”이서는 고개를 저었다.심적 고통에 비하면, 육체적 고통은 새 다리 피였다.이상언은 진맥도 하고 이서의 설태와 눈도 살폈다.“별 문제없어. 열 나면 복용 지시대로 약을 복용하면 돼.”지환은 곧 물을 뜨러 갔다.임하나는 이서의 손을 잡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이서는 가볍게 웃었다: “열이 좀 나는 것뿐이야.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그녀는 완전 무장한 임하나와 이상언을 힐끗 보았다. “나가려고?” ““안 갈 거야.”임하나는 황급히 말했다.이서는 웃었다.“증거 찾으러 가는 거야?”이서가 그녀의 심중을 알아맞히자, 임하나도 굳이 숨기지 않고, ‘응’하고 답했다.“그럼 빨리 가. 스키장 쪽 CCTV는 없지만, 목격자는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서는 기침을 했다.“시간이 지체될수록 너에게 더 불리해.”“하지만…….”임하나가 눈살을 찌푸렸다.“내 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 빨리 가, 네가 여기 있으면 나 오히려 못 쉬어.”“하나 씨, 이서 씨 말이 맞아요, 여기 지환이 있으니까 우리 그만 가요.”임하나는 지환을 바라보았다.그는 따뜻한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