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는 천근 만근인 몸을 끌고 힘겹게 로열 스위트 룸까지 갔다.호텔 방문까지 간 그녀는 도저히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줄리의 이야기, 익명의 여자가 보낸 사진, 그리고 과거 지환의 신분에 관한 여러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이서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갑갑했다.지환의 모든 것이 호둣속 같았다.‘그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자칭 아내라는 사람은 진짜일까? 설마 정말로 두 명의 아내를……?’그녀는 방문을 잡고 천천히 앉았다. 여러 가기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왔다.그녀는 힘없이 주먹을 꽉 쥐었다.방에 뛰어들어가 지환을 깨워서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럴 힘조차 없었다. 문 앞에 한참동안 앉아 있으며 기운이 좀 생기자 그녀는 룸 카드키를 꺼냈다.문이 열리고, 방에 들어간 이서는 이미 깊은 잠에 든 지환을 보았다.편안한 얼굴로 곤히 자고 있었다.완전히 무방비 상태로.그를 바라보는 이서의 눈빛이 복잡했다.‘정말로 날 속였을까?’이서는 눈을 꼭 감았다.자문해 보았지만 답은 없었다.몸이 쓰러지려는 찰나, 그녀는 벽을 짚고 침대 옆으로 걸어갔다. 잠깐 망설이다 손을 들어 남자의 미간을 어루만졌다.다음 순간, 그녀의 손이 잡혔다.깜짝 놀란 이서는 몸이 움찔했다.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는 지환의 품에 안겼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서의 머리에 비비적거렸다. “우리 여보, 왔어.”이서는 머리를 지환의 가슴에 기댔다. 그의 강력한 심장 박동을 듣고 있으니 눈물이 솟구쳤다.그녀는 눈물을 애써 참느라 이불을 꽉 쥐었다.“왜 술냄새가 나는 거 같지?”지환의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부드러웠다. 아직 잠이 덜 깬 듯했다“술 마셨어?”이서는 잡았던 이불을 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응’하고 답했다.“다음에 술 마시고 싶으면 날 불러.” 이서를 힘껏 껴안은 지환은 거의 잠결에 그녀와 소통하고 있었다. “여자 혼자 술 마시면 위험해.”이서의 코가 또 시큰거렸다.‘이런 지환이 정말 나를 속였을까?’이서는 밤새 잠을 설
이상언의 방 안.외출 준비하고 있던 하나와 상언은 약을 들고 찾아온 지환을 보고 긴장해서 물었다. “이서 아파요?” 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병을 상언에게 건네주었다. “봐봐, 혹시 부작용 같은 건 없는지.”이상언은 쭉 한 번 살펴보고 말했다.“부작용이 없으니 안심하고 복용해도 되.”말을 마치고, 그는 또 물었다.“왜 갑자기? 어디가 아픈 거야?”“나도 잘 모르겠어.”지환이 눈살을 찌푸렸다.“여기 의사 말로는 물갈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던데…….”“내가 한 번 가 볼게.”세 사람은 지환의 방으로 갔다.그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이서는 미처 눈을 감을 겨를도 없었다.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보던 이서의 시선은 곧 임하나에게 떨어졌다. 그녀는 지환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려고 했다. “이서야…….”임하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어디가 아픈 거야?”이서는 고개를 저었다.심적 고통에 비하면, 육체적 고통은 새 다리 피였다.이상언은 진맥도 하고 이서의 설태와 눈도 살폈다.“별 문제없어. 열 나면 복용 지시대로 약을 복용하면 돼.”지환은 곧 물을 뜨러 갔다.임하나는 이서의 손을 잡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이서는 가볍게 웃었다: “열이 좀 나는 것뿐이야.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그녀는 완전 무장한 임하나와 이상언을 힐끗 보았다. “나가려고?” ““안 갈 거야.”임하나는 황급히 말했다.이서는 웃었다.“증거 찾으러 가는 거야?”이서가 그녀의 심중을 알아맞히자, 임하나도 굳이 숨기지 않고, ‘응’하고 답했다.“그럼 빨리 가. 스키장 쪽 CCTV는 없지만, 목격자는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서는 기침을 했다.“시간이 지체될수록 너에게 더 불리해.”“하지만…….”임하나가 눈살을 찌푸렸다.“내 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 빨리 가, 네가 여기 있으면 나 오히려 못 쉬어.”“하나 씨, 이서 씨 말이 맞아요, 여기 지환이 있으니까 우리 그만 가요.”임하나는 지환을 바라보았다.그는 따뜻한 물
지환은 심장이 쿵 내려 앉는 것 같았다.첫 번째로 드는 생각이, 신분이 들통났다는 거였다.하지만 곧 냉정을 찾은 지환은 최근 이서와 접촉한 사람들을 자세히 회상해 보았다. 하지만, 그들 중 마각을 드러낸 사람은 없었다.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이서는 줄곧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한참동안 아무 반응이 없자, 이서는 심장이 덜컥 가라앉는 것 같았다.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나 너무 피곤해요. 좀 자고 싶어요.”이서는 진실의 답을 들을 엄두가 안 났다.지금까지 지환이 그녀를 속이지 않았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이는 그녀의 확고부동한 신념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신념이 깨졌다.지환에 대한 그녀의 믿음을 우습게 만들었다.“자기야…….”“내일 돌아가요, 우리.”이서는 몸을 돌려 지환을 등지고 누웠다.지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머리가 몇 초 동안 다운된 거 같았다.그는 이서가 자신의 신분, 즉 하씨 집안 사람인 걸 알게 되었을 때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그러나 이서의 이런 반응은 그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그러나 곧 긴장했던 등 근육이 다소 릴렉스해졌다.‘적어도 당장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으니 다행이야…….’‘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말도 없네.’“그래, 그럼 푹 쉬어.” 지환은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동작 또한 조심스러웠다.이서는 눈을 꼭 감았다.정신이 몽롱해서인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곧 잠이 들었다.다시 깨어났을 때, 이서의 눈에 여러 개의 그림자가 보았다.“이서야, 깼어?”임하나도 다소 긴장해 보였다. “좀 어때? 괜찮아?”이서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머리도 아까처럼 그렇게 흐리멍덩하지 않았다. “응.”“물 좀 따라 줄게.” 임하나는 말을 하고 물을 따르러 갔다.이서는 그제야 방안을 제대로 살폈다. 방 안에는 하나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방금 잠이 덜 깬 상태여서 헛것이 보였나 보다. “상언 씨랑 지…… 지환 씨는?”“몰라.”임하나는
“뭔데? 말해 봐, 나 화 안 낼 거야.”“사실 말이야, 만약 네가 윤씨 그룹 CEO에 경선에 출마할 거라는 걸 내가 일찍 알았더라면, 난 포기하라고 말했을지도 몰라. 왜냐면 너도 알다시피 윤수정 뒤에는 하은철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잖아. 하은철이라는 뒷배만으로도 주주들은 그녀에게 넘어가기 충분했지. 그러나 지환 씨는 달랐어. 처음부터 끝까지 너를 믿었어. 지환 씨의 통찰력이 뛰어난 건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돈독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그건 바로 진정한 부부라면, 너희들처럼 서로 응원하고 힘을 줘야 하는 거로 생각해. 우리 부모처럼 매일 싸우고 헐뜯는 게 아니라…….”“미안해.” 이서가 웅얼거렸다.“괜찮아.”임하나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그나저나 왜 갑자기 이런 걸 물어보는 거야?”이서는 임하나를 바라보며 눈을 깜박였다. “목격자는 찾았어?”이 일을 언급하자 임하나는 고민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 “쉽지는 않네. 호텔 매니저한테 호텔 투숙 명단을 받았어. 저쪽 스키장은 호텔 투숙 고객만 이용 가능하니 일일이 조사하면 목격자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참, 너 아직 내 질문에 답 안 했다.”이서는 웃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만의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다. 친구에게 그녀의 걱정거리까지 얹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몸이 아프니까 엉뚱한 생각하나 봐.”같은 시각, 옆 방.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이상언이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네가 SY 그룹 회장이라는 걸 이서 씨가 안 거 맞아? 확실해?”눈살을 찌푸리자 지환의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대답했다. “내가 말했잖아, 확실하지 않지만, 이서가 자길 속였는지 물었다고. 그럼 이 일 말고 또 뭐가 있겠어?”이상언은 그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계획이야?” 지환은 손을 뻗어 술잔을 받지 않고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몸을 소파에 우겨 넣었다.“내가 아니라 이서가 어떻게 할 건지 지켜 봐야지.
긴장한 탓에 온 몸이 경직되어 있던 이서는 이불 속에서 자기 허벅지를 세게 꼬집었다. 지환의 부드러운 말투에 넘어가지 않고, 통증으로 이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아무것도 아니에요, 피곤해서 말할 힘도 없어요, 그나저나 내일 귀국 항공편은 예약했어요?”지환은 이서의 얼굴에 붙어 있는 머리털을 뒤로 넘기려고 손을 뻗었는데, 이서가 다시 피했다. 그는 허공에 뻗은 자신의 손을 보며 심장이 철렁했다. 하지만, 여전히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얘기했다. “항공권 예약할 필요 없어. 우리 전용기 타고 돌아갈 거야.”지환에게 궁금한 게 한 트럭은 되지만, 그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듯 죄책감이 들면서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었다. 지환의 목소리만 들으면, 그를 믿고 싶다는 생각이 뚫고 나올까 봐, 그녀는 혼신의 힘으로 자기 생각을 머릿속으로 다시 꽁꽁 가둬 두고 있었다.“응, 나 먼저 자요.”“그래.” 지환은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이번에 이서는 피하지 않았다.같은 시각, H 국, 공항.구태우가 캐리어를 건네면서 머뭇거리며 물었다. “너 정말 ML 국에 갈 거야? 윤이서 거기 없으면?”소지엽은 씩씩하게 캐리어를 받아 들었다. “그녀가 있든 없든 난 갈 거야. 이번에는 놓치고 싶지 않아.”그날, 집에 돌아온 구태우는, 소지엽에게 임현태의 ‘러브스토리’를 얘기해주었다.말을 마치고, 그는 소지엽을 바라보았다. “난 왜 너나 임현태나 같은 처지인 거 같지? 이룰 수 없는 짝사랑, 결국은 포기로 끝날 거 같은데…….”포기라는 말이 소지엽의 신경을 자극했다.그는 이전에도 포기했다.어린 시절, 이서가 하은철의 약혼녀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주위 사람들은 그더러 포기하라고 했다. 하은철의 상대가 안 된다고. 하은철은 하씨 집안의 도련님이고 직계 후계자였다.그는 소씨 집안의 사생아에 불과했다.그때는 자신이 이서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물러났다.자기도 하은철 못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집에는 별일 없었고?” 지환은 어색하게 화제를 전환했다.이서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였다. 설령 본인이 아닌 임현태와 얘기하더라도. 그는 꽤 오랫동안 이서의 말을 듣지 못했다.기본적으로 그가 옆에 있으면, 그녀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별, 별일 없었습니다.” 임현태는 이서를 보았다. 이서가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에 올랐다.이전의 지환이 하던 모습 그대로 재연하고 있었다.임현태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웬 일이야? 둘이 몸이 바뀐 거야, 뭐야?!’“회사는?” 지환은 차에 타면서 물었다.“윤씨 그룹 말이야, 어때?”임현태는 이제 100% 확신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몸이 바뀐 게 분명해.’‘그렇지 않으면 지환이 윤씨 그룹 상황에 대해 물어볼 이유가 없을 테니.’이렇게 생각하니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이 아구가 딱딱 들어맞았다.“윤씨 그룹은 별일 없었습니다. 비록 아가씨가 회사에 안 계셨지만, 아가씨에게 불복하던 사람들이 모두 회사를 나간지라 나머지 사람들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모두 회사 업무에 열중이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아가씨의 디자인 시안과 광고 모델을 찾는 일만 남았습니다.”이서의 눈썹이 움찔했다.디자인 시안을 완전 까맣게 잊고 있었다!이서는 눈썹을 찌푸리며 숨을 들이쉬었다.“아, 맞다, 아가씨.”임현태가 지환을 보고 말했다.“며칠 전에 부모님이 회사에 와서 소란을 피웠습니다. 제가 쫓아냈는데, 괜…… 괜찮은 거죠?”“잘하셨어요.”입을 열어 말하는 사람은 이서였다.임현태는 깜짝 놀랐다. 지환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등골이 오싹했다. 이서가 한 얘기란 걸 깨닫고, 그는 백미러로 어색하게 이서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대화를 나누는 사이, 차는 별장에 도착했다.지환은 바로 내려서 이서 쪽으로 돌아가 차 문을 열어주었다.이서는 눈살을 찌푸리고, 그의 눈 밑에 어린 미소를 보며 잠깐 생각을 마치고 차에서 내렸다.임현태는 이서 뒤에서 눈치를 살피며 따라오는
잠시 뒤, 그는 1 층 베란다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내 동생 지환아, 드디어 전화를 받는구나.] 전화기 너머에서 귀신이 곡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여자 치맛폭에 푹 빠져 있나?]눈살을 찌푸린 지환의 입꼬리에 조롱 섞인 비웃음이 더해졌다. “기억력이 안 좋은 건가?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우린 아무 혈연관계도 없다고…….”[하하, 그렇지, 혈연관계가 없는 건 맞지만, 나도 아버지 아들인 것 또한 사실이거든. M 국 정부가 인정한 거라고.]지환이 눈을 가늘게 떴다.“뭔 일이야?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나 시간 없거든. 너도 시간이 없는 건 마찬가지일 텐데!”[아우, 내 동생, 역시 날 잘 안다니까. 그래, 동생이 H 국에서 대대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갈 때, 내가 네 북미 시장 점유율을 야금야금 잡아먹고 있었거든. 네가 모르는 거 같아서 알려주려고 전화했지. 곧 북미 쪽에서 연락이 오겠네. 행운을 빌게, 사랑하는 좋은 동생.]말을 마치고, 양쪽은 모두 전화를 끊었다.지환의 안색이 삽시간에 가라앉았다.아니라 다를까, 바로 전화가 울렸다.이천이었다.[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우리가 M 국 정부와 체결한 대량의 주문이 다른 쪽으로 넘어갔습니다. 기술부에서도 아직 누구 소행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이천은 급한 마음에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본사 쪽에서 지금 바로 귀국하실 건지 물어봐 달라고 합니다.]지환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2 층을 바라보았다.“내가 없으면 처리 안 돼는 거야?”이천은 땀을 훔쳤다. [힘들 것 같습니다. 이렇게 큰 계약이 다른 쪽으로 넘어가다 보니 지금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회장님, 제가 보기에 들어가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멍청한 것들!” 지환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잠시 뒤 말했다.“상언에게 전화해서, 내가 M 국에 돌아가야 하니, 빨리 H 국에 들어오라고 해.” [네.]전화를 끊고 2층으로 올라간 지환은 노크하려다가, 이서가 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잠
구태우는 웃으며 말했다. [별 말씀을요……, 그나저나 지금 어디세요?]“집이에요.”저쪽에서 ‘푸우’소리와 함께 물을 뿜는 소리가 들려왔다.이서가 바로 물었다.“괜찮으세요? 무슨 일이에요?”구태우는 입가의 물을 닦았다. [아니, 아니에요…….]‘내 불쌍한 친구는 또 헛걸음을 하셨구나.’어찌 보면 이게 신이 그에게 주는 힌트일지도 모른다. 둘은 운명이 아니니 빨리 포기하라고…….구태우는 핸드폰을 들고 잠시 동안 소지엽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말지 고민했다.……다음날.지환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을 때, 이서는 ‘OK’라고 답장을 보냈다.이 답장으로 이서와 지환 둘 다 마음이 편해졌다.지환 입장에서는, 이서가 삐쳐있지만, 둘 사이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한 게 아니란 걸 알아서 마음이 편하고,이서 입장에서는, 지환이 급하게 출장간 뒤 계속 걱정했는데 그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아서 마음이 편해졌다.지환에게 답장을 보낸 것도, 그가 더 이상 문자를 보내지 않을까 봐 두려워서였다.이런 모순된 마음은 그녀가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회사에 도착해 질서 정연한 사무실 환경을 보니 이서도 자연스럽게 바로 회사 일에 투입할 수 있었다. “언니…….” 심소희는 이서에게 신입 사원을 소개했다. “여기 이분들은 각자의 직무에서 다년간 경험을 쌓은 경력직 사원들입니다. 이력서를 확인해보세요.”이서는 대충 한 번 훑어보았다. 이들은 서로 다른 회사에서 근무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35 세 이상에, 전직 대기업 직원이었으며,모두 지연, 학연 등이 없는 일반 사람들이었다.따라서 10 여 년 직장생활을 했지만 부서의 1인자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이서가 그들을 훑어보았다. “여러분 환영합니다. 우리 함께 잘 해봅시다. 자, 다들 가서 일 보세요.”그럴싸한 말로 지키지도 못할 약속 같은 걸 잔뜩 늘어놓을 줄 알았는데, 이서의 화끈함에 깜짝 놀랐다.사무실을 나올 때까지 여전히 어리둥절했다.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