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우는 웃으며 말했다. [별 말씀을요……, 그나저나 지금 어디세요?]“집이에요.”저쪽에서 ‘푸우’소리와 함께 물을 뿜는 소리가 들려왔다.이서가 바로 물었다.“괜찮으세요? 무슨 일이에요?”구태우는 입가의 물을 닦았다. [아니, 아니에요…….]‘내 불쌍한 친구는 또 헛걸음을 하셨구나.’어찌 보면 이게 신이 그에게 주는 힌트일지도 모른다. 둘은 운명이 아니니 빨리 포기하라고…….구태우는 핸드폰을 들고 잠시 동안 소지엽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말지 고민했다.……다음날.지환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을 때, 이서는 ‘OK’라고 답장을 보냈다.이 답장으로 이서와 지환 둘 다 마음이 편해졌다.지환 입장에서는, 이서가 삐쳐있지만, 둘 사이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한 게 아니란 걸 알아서 마음이 편하고,이서 입장에서는, 지환이 급하게 출장간 뒤 계속 걱정했는데 그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아서 마음이 편해졌다.지환에게 답장을 보낸 것도, 그가 더 이상 문자를 보내지 않을까 봐 두려워서였다.이런 모순된 마음은 그녀가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회사에 도착해 질서 정연한 사무실 환경을 보니 이서도 자연스럽게 바로 회사 일에 투입할 수 있었다. “언니…….” 심소희는 이서에게 신입 사원을 소개했다. “여기 이분들은 각자의 직무에서 다년간 경험을 쌓은 경력직 사원들입니다. 이력서를 확인해보세요.”이서는 대충 한 번 훑어보았다. 이들은 서로 다른 회사에서 근무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35 세 이상에, 전직 대기업 직원이었으며,모두 지연, 학연 등이 없는 일반 사람들이었다.따라서 10 여 년 직장생활을 했지만 부서의 1인자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이서가 그들을 훑어보았다. “여러분 환영합니다. 우리 함께 잘 해봅시다. 자, 다들 가서 일 보세요.”그럴싸한 말로 지키지도 못할 약속 같은 걸 잔뜩 늘어놓을 줄 알았는데, 이서의 화끈함에 깜짝 놀랐다.사무실을 나올 때까지 여전히 어리둥절했다.심소
디자인팀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자, 이서는 또 다른 부서의 고위층 관리자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열었다. 샘플 원고에 대해 아무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다.“제가 보기에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새로 부임한 마케팅팀 팀장이 말했다.“저희 회사 제품의 포지셔닝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기존의 분기별 출시 상품을 보면 고급, 중급, 저급 상품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소비자군을 겨냥한 걸 잘 알고 있지만 이럴 경우…… 최종 결과는 어떤 지 이미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이 문제에 대해 저도 고민해해 보았습니다.” 이서가 수중에 있는 자료를 펼쳤다. “현재 저희 회사 사정으로 보면, 고급화 전략은 회사의 자금과 실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먼저 중저가 시장을 공략할 예정입니다. 이번에 내놓을 ‘십이지’ 테마는 중저가시장을 타겟으로 하여 우리 회사의 인지도를 향상시킬 겁니다.” 홍보님 팀장도 말을 이었다.“중저가 시장을 공략하는 거라면, 홍보가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지명도가 있는 유명스타는 중저가 제품의 홍보모델을 하지 않을 거고, 삼류스타는 지명도가 낮아 회사의 인지도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이서는 홍보팀 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홍보모델 선정에 있어서 잘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톱스타는 힘들 겁니다. 현재 우리는 고액의 홍보비를 지급할 능력이 안 됩니다.” “…….”“또 다른 안건 있습니까?” 이서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모두 침묵을 지켰다.“네, 그럼 별문제 없는 걸로 간주하겠습니다.”이서의 말투가 가라앉았다.“그럼 새로운 전략으로 시작해 봅시다. 윤씨 그룹이 새롭게 시작하는 첫걸음입니다. 그런 만큼 대대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회사 발전의 발목을 잡는 행위는 우리 팀에서는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말을 끝내고 이서는 자료를 들고 성큼성큼 회의실을 나섰다.이서가 떠나자 회의실 안의 몇몇 고위층 관리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이 전략이 먹힐까요?”“거물급 스타를 홍보모델로 쓰지 않으면 어떻
이서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떨리는 손으로 지환의 이름을 입력했다.[사진이 필요하다면 며칠 뒤에 보내줄 수 있어.]이서는 그제야 지환과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만약 루나가 지환의 사진을 요구한다면, 쿡이 사진 완성본을 보내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이름 보니 H 국 사람이네.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이름도 겹치는 게 많지 않을 테니까. 지환 관련된 모든 자료를 너한테 보내주면 되는 거지?]이서는 너무 고마웠다. [고마워. 시간 날 때 꼭 한 번 들어와.]루나는 귀여운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그러고는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 얘기 들으니, 네가 H 국 하씨 그룹의 후계자 약혼녀라고 들었는데, 어때? 결혼했어?]이서는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제야 여러 해 동안 연락이 없었던 루나가 그녀에게 열정적인 이유를 좀 알 것 같았다. 사회 생활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이서도 세상에 이유 없는 친절함은 없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다.[우리는 결혼 안 했어.]루나는 이서의 뜻을 오해했다. [그럼 언제 결혼할 거야?][…….][내 말은, 우리 결혼 안 해, 우리는 파혼했어.]이 문자가 발송되자 루나가 답장하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걸 이서는 느꼈다.[정말 유감이네.][응.] 이서는 이 화제를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자료 찾으면 알려줄 수 있어?]15 분 후.[응, 알았어.]이서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일어나 물을 따르려던 참에 핸드폰이 울렸다.지환이었다.이서는 거의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통화가 연결되자 곧 후회했다.[자기야.]지환의 낮고 침울한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그녀의 고막을 자극했다.귀가 간질간질하며 심장도 쿵쾅거렸다.그녀는 괴로워하며 손으로 심장 부위를 눌렀다.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계속되었다. 어색한 기운에 질식해 죽을 거 같을 때 이서의 귓가에 다시 한 번 지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고 싶
지환이 지금 그녀 앞에 있다면, 그녀는 모든 걸 다 집어치우고 그의 말을 100% 믿었을 것이다.그에게는 신비한 마법 같은 게 있다.그의 편에 서게 하는 마력.심지어 하은철 같은 대 가문, 대기업 후계자도 이서에게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임하나 마저도 지금은 지환의 편에 서 있지 않는가?‘이성적이어야 해!’이서는 관자놀이를 세게 눌렀다. 몸에 고통이 가해지자 호흡도 드디어 편해졌다. 그녀는 그제야 손을 놓았다.루나에게 빨리 좀 알아봐 달라고 얘기하려다 이서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몇 년 동안 연락 없이 지내다 갑자기 나타나 일 처리 도와달라고 재촉하는 것도 경우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은행의 알림 문자가 떴다.지환이 그녀에게 2억 원을 송금했다.이서는 여러 개의 0을 보고, 심장이 다시 한 번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환은 정말 그녀에게 잘해주었다.즉 재물과 여색 위해서 그녀를 속이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이서보다 돈 많은 사람들도 천지이고, 외모도 그녀보다 예쁜 여자들도 도처에 널렸다. 그러니 굳이 그녀를 찾을 필요가 없다.‘설마…… 자극이 필요해서?’이서는 생각할수록 머리가 어지러웠다. 차라리 아예 이 문제를 까맣게 잊고 있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루나 쪽 소식이나 기다려보자.’만약 지환이 정말 그녀를 속이고, M 국에서 결혼해서 아내도 있다면, 그녀는 즉시 지환과 이혼하고, 평생 그를 다시 만나지 않을 생각이다.여기까지 생각하자 이서의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그녀는 계좌에 찍힌 2억 원을 보며, 임하나에 전화를 걸었다.“하나야, 오후에 시간 있어?”임하나 쪽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 일 있어? 이서야, 나 반차 낼까?]“아니.” 이서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별일 없으니 일 해.”임하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핸드폰을 들고 휴게실로 갔다. [정말 괜찮아?]“응, 정말 별일 없
대리점에 들어서니, 자동차 딜러가 바로 반갑게 맞이했다. 이서가 1~2억 대의 차를 사고 싶다고 하자 더욱 열정적으로 소개했다. “최근 새로 출시된 신에너지 차종이 고객님이 원하는 가격대랑 딱 맞겠습니다. 원하시면 시운전해 보셔도 됩니다.”이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딜러가 얘기하는 신형 차량 쪽으로 걸어갔다.몇 걸음 걷자마자 이서정이 눈에 보였다.처음에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경호원을 여러 명 대동하고 있는 모습이 안 보고 싶어도 안 볼 수가 없었다.10 여 명의 경호원이 그녀와 다른 한 사람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주변에는 개미 한 마리도 없는 데…….공기를 경계하는 건지 아니면 은신술을 부리는 팬들을 경계하는 건지지 모르겠다.딜러가 이서의 시선을 따라 보며 어색하게 말했다. “어, 저분이 바로 우리 하 대표 둘째 숙모입니다.”이 대리점은 하씨 그룹 산하 대리점이었다.하씨 그룹 대리점의 딜러로서, 이런 사모님이 있다는 게 좀 창피했다.이서정을 본 적이 없던 이서는 하은철 삼촌과 결혼한 사람이라면 대가 규수처럼 단정하고 우아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매너와 인품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사람을 보니, 이서정의 자질이 심히 걱정되었다.아니나 다를까 저쪽에서 이서정의 기세등등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 하은철 대표 숙모야. 친척이라고, 당신이 먼저 주문했어도 내가 마음에 들면 내가 먼저 사는 거야.” 이서는 이서정 옆에 있는 차를 바라보았다. 포르쉐911 이었다. 베스트 셀링카다. 전 세계에 몇백 대밖에 없는 차량이라 구하기도 어려운 차종이었다. 따라서 절대적인 신분의 상징이기도 했다.이서정이 차를 갖고 싶은 마음은 십분 이해되었다.하지만 그녀의 맞은편에 서 있는 여자도 양보할 기색은 없어 보였다. 그녀도 이 차가 매우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선착순이 있지, 설령 당신이 하 대표 숙모라고 해도 내 차를 빼앗을 수는 없어. 내가 몇 년을 기다렸는데…… 나더러 포기하라고?”이서정은 팔
잠시 후, 이서는 마침내 생각났다. 소지엽의 누나, 소지나였다.이서가 단번에 소지나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전에 소지나가 그녀를 여러 번 도와줬기 때문이다.이서가 하은철의 약혼녀 시절이었다. 하은철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행사 도중 하은철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이서를 괴롭히는 부류들이 있었다.소지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매번 그녀가 나서서 도와주었다.사냥하고 친절했다.전에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니, 이서도 당연히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이서는 일부러 무고한 눈을 깜박거리며 이서정을 바라보았다. “서정 씨, 어떻게 된 거예요?”이서정은 분노를 억누르고 소지나를 쳐다보았다. “이서 씨, 저 여자 말 듣지 마요. 이 차는 내 거예요.”“당신 거라니?” 소지나는 이렇게 뻔뻔한 사람은 처음 본다. “난 계약금도 냈다고!”대리점 2층.아래층에서 싸우고 있는 두 여자를 보고 있던 점장은 또 한 명의 여자가 가세하자 온 몸에 경련이 일어났다.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고 했다.‘망했다. 오늘 대리점에서 뭔 대참사가 일어날지 걱정이다.’그는 난처한듯 옆에 있는 하은철을 바라보았다.하은철도 아래층을 바라보았다.오늘 대리점에 911 두 대가 들어왔다. 하은철도 그 중 한 대를 인도하러 온 것이었다.점원이 출고하러 간 사이, 그는 2 층에 올라가서 차를 마셨다. 차를 반쯤 마셨을 때 아래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하은철을 옆에서 모시느라 점장이 나서지 않자, 다른 직원들도 제지할 용기가 나지 않아 다투도록 두었다.하은철의 시선이 이서정과 소지나를 지나쳐 다른 사람에게 갔을 때 그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눈동자는 차에서 내려온 이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한동안 보지 못했더니, 이서가 또 달라졌다.눈매에 더해진 분위기는 그녀를 더욱 우아하게 보였다. 특히 눈동자 속에 깃든 상흔은 하은철의 심장에 직격탄을 날리는 것 같았다. 그의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쿵쾅거리며 나댔다. 살짝 우울한 모습의 이서가 이렇게……
이서정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곧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소지나를 바라보았다. “소씨 그룹의 딸이었군요. 무례했습니다.”이서정의 전후 변화에 소지나는 비웃었다.“이 차를 원하지 않았어? 가져.”“아니, 아니, 아니에요.”이서정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당신이 먼저 주문한 거니 당연히 선착순 구매해야죠. 저는 다른 대리점으로 가보겠습니다.”말하자면, 이서정은 경호원을 거느리고 서둘러 대리점을 떠났다.떠나기 전에, 이서정은 특별히 이서에게 감사를 전했다.“이서 씨,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이서 씨 아니었다면, 큰 실수할 뻔했네요.” 이서정이 이서에게 초대장 한 장을 건넸다. “며칠 뒤 우리 집에서 파티를 열 예정입니다. 꼭 와주세요. 그때 감사 인사 제대로 하겠습니다. 아, 맞다, 그때 저희 남편도 참석할 수도 있으니 꼭 오세요.”말을 마치고 도망가 듯 이슈정은 황급히 나갔다.이서정이 꼬리 빳빳이 도망가는 뒷모습을 보고, 이서와 소지나는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정말 고마워요. 당신이 아니라면, 정말 저 뻔뻔한 사람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을 거예요.” 소지나가 온화하고 고상하게 입을 열었다.“천만에요. 제가 더 고맙죠. 꼭 한 번 인사드리고 싶었어요.”이서는 별다른 부연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소지나는 단숨에 그녀의 말 뜻을 이해했다.“시간 있어요, 내가 커피 한 잔 살게요.”“아니에요.” 이서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차를 봐야 해서요. 다음에 시간 내서 제가 꼭 커피 사겠습니다.”“네. 그래요.” 소지나는 볼수록 이서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 하은철을 떠난 뒤 이서의 모습이 참 좋았다. 그녀는 갑자기 ML 국에 있는 동생이 떠올라 미소를 지으며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약속한 거예요.”“네. 그럼요.” 이서는 웃으며 명함을 받았다.소지나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딜러의 안내라 따라 차량 결제 관련 서류 작성하러 갔다.이서에게 안내를 하던 딜러도 이서에게 감사를 전했다. “아가씨, 정말 감사합니
이서는 대리점에서 911 한 대를 자기에게 준다는 것을 알고, 몇 초 동안 멍해 있었다.“저희 대리점에서 감사의 의미로 드리는 선물입니다.”점장은 말하면서 자기조차 믿을 수 없는 거짓말에 어이가 없었다.이서도 당연히 믿지 않았다. “이렇게 귀한 사례는 받을 수 없습니다.”“이건 네가 받아 마땅해.”2층에서 갑자기 말소리가 들려왔다.이서는 고개를 들어 위층에서 내려다보는 하은철을 보았다.이서는 즉시 눈살을 찌푸렸다.하은철의 베푸는 듯한 말투가 너무 불편했다.“아니, 필요없어.”비록 그녀도 911이 마음에 들지만, 하은철이 선물한 것이라면 안 받는 게 낫다.이서가 딜러에게 말했다. “다음에 다시 올 게요.”말을 마치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딜러와 점장은 서로 쳐다보았다.이서가 결혼한 걸 그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기억 속에 이서는 하은철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하은철을 알뜰살뜰 보살피지만, 오히려 하은철에게 괄시만 받던 이서의 모습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이서가 하은철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찬바람이 쌩 도는 이서의 모습을 보고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했다.잇달아 하은철을 바라보다.하은철이 벌컥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는 급히 2층에서 내려왔다.그리고 얼굴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당혹감이 묻어났다.“이서야!”이서가 문 밖으로 나가는 순간, 하은철이 마침내 그녀를 막아섰다.그는 이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우울한 눈빛을 보니 저도 모르게 심장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이전의 일은 내가 잘못했어. 내가 사과할게. 이 911 은 받아. 그렇지 않으면 나 평생 양심의 가책을 받을 거 같아.”이서는 가소롭다는 듯 하은철을 바라보았다. “양심? 네가 없는 걸 가지고 허세 떨지 말아 줄래?”하은철은 이서를 바라보며 변명을 해댔다. “나는 수정이 거짓말하는 줄 몰랐어. 알면 절대 그녀가 너를 다치게 하지 않았을 거야!”이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하은철과 거리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