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에는 고작 18~19세 정도로 보이는 젊고 아름다운 소녀가 있었다. 곱슬머리에 우아한 티아라를 쓰고, 유럽풍 궁중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청순하고 아름다웠다.사진 속 또 다른 한 사람은 바로 지환이었다.언제 찍었는지 알 수 없지만, 현재의 지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입술을 오므리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서있는 그와 대조적으로 옆에 있는 여자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꼭 집어 어디가 이상하다고 얘기할 수는 없었다.다시 대화방으로 돌아왔을 때 사진은 이미 삭제되었다.상대방이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제가 얘기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믿고 안 믿고는 당신 몫입니다만, 부탁하 건데 제발 이 일을 당신 남편에게 얘기하지 말아 주세요. 내가 당신에게 그의 비밀을 알려준 걸 알면,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이서가 다시 메시지를 보내려고 하는데, 상대방은 이미 그녀를 차단했다.문자를 보낼 수도 없었고 친구추가도 되지 않았다.이서는 눈썹을 힘껏 찡그렸다.문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자기야.”지환의 얼굴이 문 뒤에서 나타났다.그녀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주었던 그 얼굴이 낯설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서는 심란했다. 그 여자의 말을 100% 믿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간과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었다.“자기 왜 그래?”지환이 긴장해서 들어왔다.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이서는 입술을 깨물고 지환의 터치를 피했다. “괜찮아요.”“오늘 촬영할 때 너무 추웠지? 어디 아파, 내가 약 사올까?”“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이서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지환이 의심할까 봐, 또 다른 핑계를 댔다.“회사 쪽에 문제가 조금 생겼어요.”지환은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는 손을 들어 이서의 목을 쓰다듬었다. “너무 힘들면 회사 그만 둬. 내가 자기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어.”그가 진심에서 우러러 나온 걱정이라는 걸 이서는 알 수 있었다.그가 이럴수록 그녀는 호흡이 더욱 어려워졌다.“응.”
눈치 빠른 이서는 바로 이해했다.“정말?”“응, 아까 민박집 주인에게 물어봤는데, 매년 이맘때면 밤 10시에서 3시 사이에 오로라를 볼 수 있대.”“오우, 이런 이벤트가 있을 줄은 몰랐네.” 의서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임하나는 이서의 말 속에 담긴 다른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밥 먹고 밖에 나가서 기다리자!”“그래요.” 기대에 찬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이서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옅은 웃음이 일었다. 고개를 돌리자, 사랑스럽게 그녀를 쳐다보다는 지환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이서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일말의 의심은 깨끗이 씻겨졌다.‘왜 낯선 사람을 믿고 내 남편을 의심하는 거야?’“무슨 생각해?” 웃으며, 이서의 볼에 붙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물었다.이서는 고개를 저었다.저녁을 먹고 나니 9 시가 넘었다. 그들은 배불리 먹고 홀에서 서성거렸다.홀에 아직 적잖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오로라를 기다리는 사람들 같았다.10시가 지나자, 어두웠던 하늘에 마법이 일어났다. 초록색 띠가 나타나더니 그 띠가 곧이어 오색찬란한 불꽃처럼 피어오르며 다채로운 색으로 변했다.도시 전체를 뒤덮은 아우라는 후광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웠다.이서와 임하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주위 사람들도 모두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사진을 찍던 임하나가 고개를 돌려 이상언을 불렀다. “상언 씨.”그제야 그녀는 이상언이 곁에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그가 보이지 않자, 당황해서 몸을 돌려 살피려고 하는데, 마침 이상언이 아름다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호텔에서 나오는 걸 보았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면서 사랑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한 걸음 다가온 이상언을 본 임하나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이상언이 그녀 앞까지 왔을 때, 임하나는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아니…….”이상언은 미소를 지으며 임하나를 바라보았다. 지적이면서 차분한 이미지의 얼굴이 오로라 불빛 아래서 더욱 부드러워 보였다.임하나는 핸드폰을 꽉
3개월 간의 수습기간을 마치고 정식으로 연인 관계로 확정하는 날, 하필 나연을 만나다니, 하나는 마음이 찝찝했다.하나의 표정을 살핀 이서가 나연에게 다가갔다. “나연아, 여기서 만나다니……, 밥은 먹었어? 내가 맛난 거 사줄까?”이서를 본 나연은 안색이 변했다. 입을 열려는 그녀를 이서가 강제로 한쪽으로 끌고 갔다.이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지환이 다시 이상언을 한 번 쳐다보았다.이상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환에게 음성 없이 입모양으로 고맙다고 말하고는, 바삐 임하나를 달래러 갔다.지환도 몸을 돌려 이서가 간 곳으로 따라갔다.이서는 나연을 식당으로 데려왔다. 이서의 손에서 벗어난 나연은 손목을 비비며 퉁명스럽게 얘기했다. “언니, 뭐하는 거예요? 아프잖아요…….”이서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네가 왜 여기 있어?” 나연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방학이어서, 휴가 왔는데, 왜요? 뭔 문제라도 있나요?”이서는 나연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렇게 타이밍이 딱 맞게 나타날 리 없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그녀도 막무가내인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이상언도 나연한테는 마음이 없는 걸 잘 알기에, 굳이 도둑처럼 그녀를 경계할 필요는 없었다.“그럴 리가. 밥은 먹었어? 내가 맛난 거 사 줄게.”“아니, 필요 없어요.” 나연은 쏘아붙였다.“나도 돈 있거든요.”“너 혼자 온 거니?”“그럴 리가요?”나연이 입을 삐죽거렸다.“언니, 우리 고작 한 두 번 만난 사이인데, 내가 왜 굳이 언니한테 시시콜콜 설명해야죠?”이서는 빙그레 웃었다.“그렇긴 하지, 하지만 난 말이야, 친구를 아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거든. 친구의 행복이 바로 내 행복이니까. 내 친구가 행복하지 않다면, 난 친구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를 뿌리 뽑을 생각이거든.”“무슨 뜻이에요?”이서는 웃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환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가요.”문에 기대어 있던 지환은, 이서가 소녀를 훈계하는 것을 보고 시종 아무 말도 하지
“네, 나연이 날 좋아하는 거 눈 달린 사람은 다 안다고……, 근데 나랑 나연이……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거든요. 내가 아무리 얘기해도 믿지 않아요.”그는 정말 억울했다.타임머신이 있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딸기 농장에서 ‘질투 유발 작전’을 펼쳤던 자신을 한바탕 두들겨 패고 싶었다. ‘어떻게 그렇게 수준 낮은 방법을 생각해 냈을까?’이서가 물었다.“하나는, 상언 씨가 나연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안 믿는 거예요, 아니면 나연이가 상언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안 믿는 거예요?”이상언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네? 뭔…… 차이가 있나요?”“물론 차이가 있죠.”이서가 진지하게 얘기했다.“상언 씨는 여자 마음을 너무 몰라요. 나연이 상언 씨를 좋아한다면, 상언 씨가 나연에게 마음이 있든 없든, 하나는 계속 이 상황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둘이 함께 있는 모습도 직접 두 눈으로 봤으니…….”“하지만 그건…….”이서는 손을 흔들었다.“설령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라고 할지라도 마음이 께름한 건 어쩔 수 없어요. 게다가 더 큰 함정은…….”“함정이요?”“나연이 상언 씨를 좋아한다는 거예요.”“…….”“게다가…….”이상언은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또 있어요?”“네.”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나연, 하나 이름도 비슷한데다, 나연이 한참 어리고…….”“네? 이름이 완전 다른 데…….”이상언의 입술 근육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여자는 그래요. 별 거 아닌 포인트에도 예민하게 받아들일 때 있거든요.”이상언의 당황한 표정을 본 이서가 말을 이었다.“상언 씨, 설마 여자친구 처음 사귀는 건 아니죠?”“그건 아닌데…….”전에도 여러 차례 연애를 했지만, 모두 가볍게 만난 사이였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필요는 없었다.오히려 여자 쪽이 이상언의 비위를 맞추려고 갖은 노력을 해 왔었다.임하나는 그가 처음으로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여자였다.“나 어떻게 해야 하죠?” 이상언은 속수무책이었다.그의
그 뒤 며칠 동안의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지막 날 촬영이 끝나고, 지환이 쿡 팀을 초대에 쫑파티를 했다. 그 뒤 쿡을 포함한 촬영팀은 M 국으로 돌아갔다. “최종본은 우편으로 H 국으로 보내 예정입니다. 혹시 요구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메일로 알려주세요.”비행기에 오르기 전, 쿡이 미소를 지으며 이서에게 말했다.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쿡 씨.”배웅을 마치고 지환과 이서는 공항에서 호텔로 돌아왔다.그들은 이상언 등 두 사람과 내일 스키 타러 가기로 약속했다.호텔 뒤에 바로 스키장이 있었다.요 며칠 동안, 나연이 여러 차례 이상언을 찾아왔었지만, 그는 여러 가지 구실로 거절했다.하지만 그녀는 참으로 끈질겼다.이상언이 톡을 차단하자, 레스토랑에서 기다리면서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시도했다.이상언이 나연에게 전혀 마음이 없다는 걸 임하나도 잘 알고 있지만, 본인보다 한참 어린 여자가 남자친구 앞에서 어슬렁거리니 신경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다.그것도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나연이 걔 완전 고수야. 첫사랑이고, 내숭녀고, 다 저리 가라야.” 다음날 같이 스키 타러 가서 임하나가 이서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차라리 공명정대하게 공세를 펼치면 따지기라도 할 텐데, 그냥 가끔 상언 씨에게 연락해서 이것저것 하자고 하니,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상언 씨에게 차단하라고 하고 싶어도 그랬다가 괜히 빌미를 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오빠, 언니가 질투해요?’나연을 차단했을 때, 그녀가 이런 얘기하면서 이상언에게 접근할 게 뻔했다.하나도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남자친구를 만났었지만, 매번 상대방이 그녀에게 넘어오면 그녀는 가차없이 헤어졌다. 따라서 남자친구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건 없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상대방을 공략하는 데만 공을 들였다. “제기랄, 연애는 정말 귀찮아, 솔로가 편해.” 임하나가 눈살을 찌푸리고 삐딱선을 탔다.“그냥 헤어질까?” “고작 이 정도로
나연만 나타나면 이상언은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고등학생인 데다 첫 해외 여행이 아니었다면, 그는 아마 그녀를 모르는 척했을 것이다.그러나 임하나의 표정이 평소와 다름없는 것을 보고, 그는 약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곧 임하나 뒤로 가서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나연한테 가볍게 인사했다. “일찍 나왔네.”임하나는 온 몸이 굳어졌다. 곁눈질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는 큰 손을 보며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그들의 친밀한 동작이 시사하는 바를 잘 알면서도 나연은 아무것도 못 본 사람처럼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하나에게 물었다. “하나 언니, 스키 탈 줄 아세요?” ““아는데, 왜?”매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이상언을 찾던 나연이 갑자기 임하나에게 부탁하자, 임하나는 나연이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나…….”“언니 시간 안 된다면, 상언 오빠한테 부탁할게요.”그녀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임하나를 바라보았다.임하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거였어. 진격을 위한 퇴각이야? 결국은 상언 씨를 노린 거잖아…….’‘어린애가 참 꿍꿍이도 많다.’하나가 답하려는데 이서가 먼저 나섰다. “내가 전문 코치 한 명 붙여 줄게.” 하나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이서를 쳐다보았다. 이서는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나연을 바라보았다.이서를 보자마자 갑자기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임하나를 바라보며 말했다.“하지만…… 난 현지어를 못 알아듣는데…….”임하나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다른 사람이 약한 모습을 보일 때이다. 그것도 예쁜 소녀가…….“됐어, 내가 가르쳐 줄게.”아무리 계략이 있다고 한들 어린 소녀가 뭘 할 수 있을까? 이서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연이 바로 옆에 있으니 그녀에게 뭐라고 까놓고 얘기할 수도 없었다.“그럼 조심해.”“응.” 임하나가 말하면서, 사람이 적은 곳을 가리켰다.“우리 저쪽으로 가자.” ““응. 언니, 정말 좋은 사람이야.”나연이 달콤하게 웃었다.두 사람의 멀
“무슨 일이야?”이서는 첫번째로 임하나 곁으로 달려갔다.임하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도 몰라, 방금 잡아주면서 스키 가르쳤는데, 갑자기 뒤로 넘어갔어.”임하나가 앞으로 다가가 나연의 상황을 살폈다.“괜찮아?”나연은 손으로 머리를 만졌다. 손에 새빨간 피가 묻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하나 언니, 난 괜찮아요, 언니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란 걸 난 알아요.”임하나의 안색이 일그러졌다.의사인 이상언은 쪼그리고 앉아 나연의 머리를 살펴보고, 머리카락에 묻은 피를 보며 안색이 바뀌었다.“당장 병원 가야 해.”임하나는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며 이상언에게 해명하고 싶었다.이상언은 이미 스키장 직원을 불러 나연을 차로 옮기도록 지시했다.전문직 의사로서의 상언의 모습은 처음이었다.평소의 온화함은 사라지고, 잘생긴 이목구비에 엄숙함과 늠름함이 더했다.환자에 대한 인격적 존중과 책임이 가득찼다.그러나 차에 누워 눈을 깜빡이며 작전 성공의 제스처를 취하자, 임하나는 심장에 돌이 눌린 거처럼 갑갑하고 답답했다.시동을 걸어 출발하려는 차를 보며 이서가 물었다. “하나야, 너도 갈 거야?”임하나는 그제야 반응했다. “나…… 나도 가는 게 낫겠어.”“나도 같이 가 줄게.”임하나는 이서를 바라보며 코를 훌쩍였다.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지환이 차를 몰고 이서와 임하나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병원에 도착한 이서와 하나는 간호사를 통해 나연이 2 층에서 검사 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병원의 특별한 분위기 속에서 둘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2 층에 도착하자, 마침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상언을 만났다.임하나를 본 이상언이 말했다.“어떻게 왔어요?”“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 나도 나연이가 어떻게 넘어졌는지 모르겠어요.” 엉겁결에 말이 튀어나와 버린 임하나는 멍하니 이상언을 바라보며 다가가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이상언은 환하게 웃으며, 임하나의 창백한 얼굴을 어루만졌다. “난 하나 씨
“엄마, 그만해요, 우리 가요.”나연은 계속 임하나만 쳐다보았다.여사장은 곧 눈치챘다. 임하나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별 다른 문제점을 찾아볼 수 없자, 남편에게 눈짓했다. “여보, 병원비 계산 좀 하고 와요.” “응.”남편은 곧 병원비를 계산하러 갔다.여사장은 이상언을 보며 말했다. “제 딸을 병원으로 데려다 주신 분이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저희가 해야 할 일이에요.” 이상언은 공손하게 말했다.말을 몇 마디 더 나누고 여사장은 나연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끌고 갔다.일이 이렇게 끝나버리자, 임하나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우리도 돌아가자.” 이상언이 임하나의 손을 잡고 눈을 깜빡였다.임하나가 한 번 웃었다.바로 이때, 여사장이 씩씩거리며 돌아오더니, 임하나 앞으로 걸어와 얼굴을 붉혔다. “나연이 말 들으니, 자네가 고의로 우리 딸을 넘어뜨린 거라며? 사실이야?” 임하나는 깜짝 놀랐다.“아니에요, 나 안 밀었어요!”“우리 딸은 거짓말 같은 거 안 해.”여사장의 눈시울이 또 빨개졌다.“대체 나연이한테 왜 이러는 거야? 네 남자 친구를 좋아하기 때문이야?”“…….”“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고 했네. 사람 좋아하고 안 하고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게다가 나연이가 두 사람을 떼어 놓은 것도 아니잖아, 근데 왜 우리 딸을 다치게 하냐고?”임하나는 해명하고자 노력했다.“사장님, 전 정말…….” 그러나, 여사장은 딸인 나연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하나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다행인 줄 알아, 의사가 상처 심하지 않다고 하니 나도 더 추궁하지 않을 거야. 앞으로 나도 자식 잘 하겠네.”말을 마치고, 여사장은 떠났다.제자리에 멍하니 서있는 임하나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너무 괴로웠다.그녀는 분명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임하나가 뒤쫓아가서 해명하고자 하자, 이서는 재빨리 그녀를 끌어당겨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하나야, 소용없어, 자기 딸 말을 믿으려고 할 거야. 네 말은 안 들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