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는 눈썹을 찌푸렸다.이 여자가 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그녀가 막 연유를 물어보려고 할 때, 지환의 핸드폰이 울렸다.이서는 지환에게 시선을 빼앗겼다.지환의 주의력도 그 여자한테서 휴대전화로 집중되었다.하경수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는데, 사태가 사뭇 심각한 듯했다.[당장 예솔이네 별장으로 와.]“지금 바빠요. 시간 없어요.”[너 지금 반드시 와야 해, 큰일 났다!]지환은 눈썹을 찡그리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그럼 기다리라고 해요!”전화를 끊자, 공기조차도 싸늘해지는 것 같았다.이서는 이빨이 딱딱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그녀는 이상한 눈빛으로 여자를 다시 한번 보았다.얼굴이 하얗게 질린 여자는 마치 큰 병을 앓는 사람 같았다.옆에 있는 남자친구의 안색도 안 좋긴 마찬가지였다. 새파랗게 질렸다.해적 여행은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이서는 방금 그 커플 신경 끈다고 흥이 깨져 다시 한번 타고 싶었다.이번에 그 커플이 없어지자, 이서는 마침내 마음껏 즐기기 시작했다.기타 놀이기구를 탈 때도 이서는 더 이상 그 커플을 만나지 못했다.게다가 줄을 설 필요 없이 타고 싶은 거 다 타고, 하고 싶은 거 마음껏 다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전세 낸 셈이다. 신나게 마음껏 놀고 있던 이서는 마음 속으로는 다음번에 임하나와 함께 와야겠다고 생각했다.디즈니랜드를 나가기 전, 지환은 또 하경수의 전화를 받았다.“아버님께서 급한 용무가 있으신가 봐요?” 이서가 물었다.방금 놀이기구 탈 때도, 지환의 핸드폰이 계속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지환은 별일 아닌 듯 운을 뗐다. “아냐, 별일 없어.” “그래도 전화는 먼저 받아요, 혹시라도 무슨 급한 일이 있으면 어떡해요?”지환은 이서를 보며 ‘응’ 하고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에서 하경수는 다소 흥분한 것 같았다. 한참 멀리 떨어져 거리에서도 하경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렸다.그녀는 조용히 몇 걸음 뒤로 움직여 지환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심심하고 무료했던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여직원은 멀지 않은 곳에서 전화 받는 지환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그러다가 다시 눈시울이 또 붉어지더니 고개를 숙이고 달아났다.“저기…….”“왜? 무슨 일이야?” 통화를 마친 지환은 종종걸음으로 멀어져가는 직원을 보며 눈 밑에 빛이 번쩍였다.이서는 볼을 만지며 물었다.“저 오늘 메이크업이 이상한가요? 무서워요?”‘왜 그 아가씨는 말 몇 마디에 울음을 터뜨린 걸까?’지환은 고개를 숙이고 이서의 얼굴을 진지하게 살펴보다가, 곧 활짝 웃으며 입술에 키스했다.“무섭긴, 예쁘기만 하네.”이서는 얼굴을 붉히며 그를 밀쳤다.“장난 그만 해요, 아버님이 뭔 일로 전화하신 거예요?”지환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셨다.“잘 모르겠어, 우리가 돌아가면 다시 이야기하자시네.”“그럼 가요.”“음.”두 사람은 하경수의 거처로 갔다.문에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박예솔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 옅은 홍조가 남아 있었다. 며칠 전에 이서에게 뺨을 맞은 자국이었다.두 사람이 들어온 걸 본 예솔은 눈물을 쏟아냈다.이런 모습을 본 이미연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이서를 다시 보니 버럭 화가 났다.“아버님.”이서가 하경수를 불렀다.하경수는 고개를 들어 이서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 웃음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이서, 이리 와, 아빠가 너한테 물어볼 말이 있어.”이서가 다가갔다.“그게…… 예솔의 게임 컨셉 시안, 네가 유출한 거니?”이서가 눈을 깜박였다. 하경수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님, 무슨 말씀하시는 건지……”“쇼 그만 해.”이미연은 듣다못해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솔이가 너 때문에 직장에서도 짤린 것도 모자라, 동종 업계에서 아웃되었다고! 너 어쩜 이렇게 악랄하니? 솔이가 뭐 어쨌다고? 네가 온다고 여기저기 설치며 챙긴 게 누군데? 너 어쩜 그럴 수 있니?”“저는 대체 다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지환은 이서를 끌어서 소파에 앉히고는, 턱을 살짝 들고 담담한 말투로 말
“잠깐!”하경수가 소리쳤다. 얼굴의 근육이 경직되었다. 정말 화가 났다.“사건은 아주 간단해. 예솔의 게임 컨셉 시안이 누설되었고 게다가, 경쟁 회사에 보내졌네. 경쟁 회사가 먼저 이 게임을 등록하여 출시했고……. 예솔이 반년 넘게 쌓은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 게지.회사는 내부 조사를 통해, 컨셉 시안을 경쟁 회사의 메일로 보낸 메일주소가 이서 거로 밝혀졌고…….”하경수는 마지막 몇 글자를 매우 느리게 말했다.“제가요? 제가 어떻게요?” 이서는 1초만 멍하니 있다가 미소를 지었다.“오늘 여기 오기 전까지 전 예솔 씨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어요. 경쟁사는 말할 것도 없고요.”박예솔이 입술을 깨물자 고요한 미간에 애처로움이 더했다.“그…… 그건 나도 몰라요. 어차피 회사에서 조사한 메일주소가 이서 씨 거였어요. 솔직히 나도 믿기지가 않아요. 하지만 일이 내 앞에 떡하니 벌어져 있으니 안 믿을 수도 없어…….”이서는 박예솔의 뛰어난 연기에 감복했다.그녀가 연예계에 진출하지 않는 것은 정말 연예계의 큰 손실이다.“그래요, 그럼 내가 예솔 씨가 다니는 회사를 알고 경쟁사가 어디인지도 알고 있다고 쳐요. 그럼 물어볼 게요. 예솔 씨, 내가 어떻게 당신의 시안을 손에 넣었을까요?”“그건 나도 모르겠어요…….” 박예솔은 흐느끼며 얘기를 이어 나갔다.“아무튼, 회사 내사 결과가 이런 거지, 난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그녀는 약간 멘붕이 온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엄마, 우리 돌아가자. 이 일에 대해 더 추궁하고 싶지도 않아. 내 인생이 망가져도 상관없어, 괜찮아. 이서 씨와 지환이만 잘 살면 난…… 그걸로 만족해.”이서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아마 이 일은 십중팔구 예솔이 자작극일 거라고 짐작했다.‘이 여자 정말 악랄하다.’그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직장도 눈 깜짝 안 하고 그만두다니…….“그럼 안 되죠…….” 이서가 말을 했다.“이 일은 반드시 밝혀내야 해요. 좋은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서도 안 되고, 나쁜 사람을 가만두어
이 말인즉 이서 면상에 대고 가정교육이 없는 여자니, 지환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였다.이서는 성격 좋게 웃었다. 말투는 조곤조곤 부드럽지만, 등골이 서늘할 저압감을 내포하고 있었다.“저기, 아주머니, 아직 조사가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너무 말을 함부로 하지 마세요. 나중에 자기 발등 찍을 수도 있어요.”이미연은 지환과 하경수에게는 거리낌 느껴 너무 방자하게 굴지는 못했다.그러나 이서는 안중에도 없었다.지금 이서가 또박또박 말대꾸하자, 갑자기 얼굴빛이 바뀌더니, 윗사람이고 뭐고 대놓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뭐가 아직 제대로 조사 안 됐다는 거야? 솔이의 컨셉 시안이 네 USB 안에 있었잖아! 입만 살아가지고, 너처럼 뻔뻔하고 염치없는 애는 내가 살아생전 처음 본다.”바로 이때, 줄곧 흐느끼던 박예솔이 갑자기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엄마, 그 USB는 확실히 이서 씨 거 아니야.”“솔아, 지금 이 지경에도 쟤 도와 얘기하고 싶니……?”“엄마, 그거 내 USB야.”예솔은 입을 오므리고 또 울려고 했다.“나도 회사에서 컨셉 시안이 누설된 걸 알고, USB 찾아봤더니, 사라졌더라고…….”“너 이렇게 중요한 걸 왜 이제야 얘기하는 거야? 다시 말해서, 이서가 너의 USB를 훔쳐서 컨셉 시안을 경쟁 회사에 보낸 거네. 그럼 이제 모든 게 납득이 되네.”이미연을 바라보는 이서의 말투가 물처럼 덤덤했다.“나는 예솔 씨와 거의 만나지도 않았어요. 처음은 여기서, 두 번째는 식당에서, 그게 다예요. 지금 계속 내가 USB를 훔쳤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나도 물어보고 싶어요. 내가 언제 훔쳤을까요?”이미연은 말문이 막혔다.하경수도 이 일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거실은 괴상한 조용함에 빠졌다.유독 지환만 두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자기 집 아내를 바라보았다.지금 그녀는 마치 비바람에 맞고 자란 절벽 위의 난초처럼 강인하고 꿋꿋했다.별다른 매력이 느껴졌다.“엄마, 아저씨,” 박예솔은 울음을 참으며 일어나서 말했다.
CCTV에서, 지환이 이서를 불러내면서 마침 박예솔과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은 매우 좁았다. 정상 속도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느린 속도에서는 모든 동작이 확대되어 보였다.그리고 이서가 박예솔을 스쳐 지나갈 때, 신속하게 박예솔의 가방에 손을 넣어 물건을 슬쩍 한 게 보였다.이서가 정신 집중하여 보지 않았더라면 정말 눈치채지도 못했을 것이다.이제야 이서는 박예솔이 왜 이렇게 침착한지 알게 되었다.그녀는 일찌감치 CCTV에 손을 댔다.이 여자는 계략적인 데다, 똑똑하기까지 하다. 정말 상대하기 힘든 까다로운 연적이다.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일부러 큰 소리로 물었다.“예솔 씨, 아직 더 볼게 남았나요?”박예솔은 입술을 깨물고 이미연을 한 번 보았다. 이미연도 실눈을 뜨고 CCTV를 보고 있었지만, 아직 이 CCTV 속에 숨겨진 뜻을 간파하지 못했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더 느린 속도로 CCTV를 재생했다.“아직요, 다시 한번 볼게요.”이서가 빙그레 웃었다.이때 이미연이 마침내 CCTV의 ‘비밀’을 발견하고 CCTV를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잠깐만……. 솔아, 잠깐 멈춰봐, 맞아, 다시 뒤로 돌려 감아…….”박예솔은 무덤덤한 표정 아래, 심장은 두근두근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녀는 프로그래스서 바를 당겨 이서가 손을 가방에 넣는 순간에 정확하게 정지했다.이번에는 지환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면서도 웃음을 머금으며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는 살짝 웃으며, 두 손으로 팔짱을 끼고, 한가로이 박예솔의 연기를 보고 있었다.이미연은 화면을 가리키며 난리를 쳤다.“여기 봐봐! 정말 훔쳤어! 이번에는 증거가 확실하네, 경수 씨, 지환아, 뭔 얘기라도 해봐, 솔이 인생, 모두 쟤 때문에 망했어.”하경수도 보고 믿기지 않았다. 그는 지환을 바라보았다.“지환아.”지환은 손가락으로 이서의 부드러운 허릿살을 매만지며 말했다.“자기야, 하고 싶은 말 있어?”이서는 가볍게 웃었다.“마침 저도 CCTV 영상
이서의 말에, 하경수는 아니나 다를까 마음에 드는 표정을 지었다.박예솔은 상황을 보고 허벅지의 살을 꽉 꼬집으며, 대범한 척 연기하는 이서의 얼굴을 갈기갈기 찢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이 일은 일단락된 셈이다.CCTV 영상이 계속 재생되자, 곧 이서와 박예솔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이 나왔다.이천은 동영상을 늦추고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숨죽이며 봤다.화면에는 이서가 박예솔의 가방에 손을 넣는 장면이 나타나지 않았다.이미연은 어리둥절해졌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네가 CCTV에 손댔지?”이서는 입꼬리를 보기 좋게 올렸다.“아주머니,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네요. 이 영상은 제가 식사하던 그날 저녁에 받은 거예요. 조작 같은 거 아니에요. 믿지 못하겠으면 전문기관에 의뢰해 보세요.”지환은 나른하게 이서의 등을 쓰다듬으며 어조에 약간의 장난기가 띠었다.“일이 이미 충분히 명확해졌다고 보는데…… 암튼 이서가 한 건 아니에요.”박예솔은 곧 무너질 것 같았다.그녀의 원래 계획대로 라면, CCTV를 재생하는 동시에 이서에게 도둑, 악랄한 의부증 환자 등의 꼬리표를 붙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녕 지환이 이서를 용서한다고 해도 하경수가 나서서 절대 이 혼사를 결사반대하는 것, 이게 그녀의 전반적인 계획이었다.그러나 이서가 CCTV 영상을 갖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신속하게 평정심을 찾았다.“그래요, 보아하니 이 일은 정말 이서 씨가 한 짓이 아닌 것 같아요. 아마도 아저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누군가가 고의로 사건을 일으켜 우리 두 집안의 갈라놓으려고 한 것 같아요.”말하면서 그녀는 이서를 바라보며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이서 씨, 미안해요.”이서는 가볍게 웃으며, 눈 깜짝 안 하고 박예솔을 바라보고 있었다.박예솔은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일이 갑작스레 180도 반전이 일어나자, 이미연은 멋쩍게 혼자서 중얼거렸다.“네가 아니면 누구야?”“엄마.” 박예솔은 다급하게 이미연
이서가 다가와 한 손으로 박예솔의 팔을 잡고 그녀를 끌어당기려는 자세를 취하면서 그녀의 귓가에 낮은 소리로 말했다.“당연히…… 만족하지…….”고개를 든 박예솔은 마침 보기 좋게 올라간 이서의 입꼬리가 눈에 들어왔다.눈빛에 레이저가 나올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서의 목이라도 꺾어서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일부러 그랬던 거였다!지환 앞에서 사리에 밝은 여자로 보이려면, 엄마 대신 사과해야 했다!이서는 박예솔의 눈동자 속에 비친 살의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어 나긋나긋하게 말했다.“예솔 씨, 뭐 이렇게까지 그래요? 그냥 해본 말인데…….”정신이 번쩍 든 이미연은 이서를 밀치고는 딸을 부축하여 일으켰다.“아이구, 고지식한 녀석아, 쟤한테 무슨 무릎을 꿇어……. 경수 씨…….”박예솔은 이서가 또 다른 꿍꿍이가 있을까 봐 이미연을 끌고 황급히 떠났다.하경수는 두 사람이 허둥지둥 떠나는 뒷모습만 보고, 왜 예솔이가 무릎까지 꿇었는지에 대해 묻기도 귀찮았다.“이서야, 방금 억울했지?”이서는 고개를 돌려 시원시원하게 말했다.“아버님, 그런 말씀 마세요. 오해 풀렸으면 됐죠.”하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이서를 높이 평가했다.“지환이가 이서 같은 아내를 만난 것도 저 녀석 복이다. 난 올라가서 좀 쉬겠다. 너희들도 숨 좀 돌리거라.”예솔 모녀가 아침부터 쳐들어와서 난리 친 통에, 지금까지도 머리가 윙윙거리는 것이 좀 쉬어야 했다.하경수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이서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말하려다 그냥 지환의 품에 안겼다.“왜 이럴까! 뭐하는 거야?”지환은 이서의 귓불을 깨물며 따뜻한 호흡을 뽀얀 볼에 내뿜었다. 그러고는 얇은 입술로 이서의 귀에 대고 얘기했다. 이서의 볼은 빠르게 물들며,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튼튼한 가슴을 받쳤다.“아버님 위에서 쉬고 계세요!”“이 큰 집에서 뭔 걱정이야? 아무 소리도 안 들려!” 지환은 이서를 껴안았다.지환은 손가락으로 이서의 아름다운 붉은 입술을 어루만졌다.“나 피곤해요.
컨셉 시안 유출 사건 이후, 박예솔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다. 이서는 지환과 여기저기 구경 다니며 즐거운 휴가를 보냈다.귀국 날짜가 가까워지자, 이서는 선물 준비에 나섰다.그녀는 임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하나야, 나 곧 귀국할 거야. 너 무슨 선물 갖고 싶어?”오랜 절친인 이들은 선물을 주고받을 때도 간단하고 직설적이었다. 상대방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해주었다.[최근 해외에서 ‘드래곤’이라는 핸드폰이 새로 개발했다고 들었는데, 게이머를 위해 특별히 개발된 폰이래. M국 시장에서 먼저 출시하고 시장 동향 살핀 후 국내에서 출시 예정이라는데, 혹시 나 그거 구해줄 수 있어?]평소에 게임을 좋아하는 임하나는 게이머들을 위해 개발한 휴대폰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알았어. 잠깐만, 확인해 볼게.”검색해 보니, 해당 핸드폰이 곧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YS그룹에서 출시하는 핸드폰임을 확인한 이서의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았다.YS는 세계 최대 그룹으로, 하은철 삼촌이 설립한 상업제국이다.‘이 핸드폰, YS 작품이네!’이서는 스크롤을 아래로 당겼다. 피부 속에 숨겨져 있던 맥박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19일 저녁 8시 YS 산하 핸드폰 개발 부서에서 신제품 발표회를 소규모로 진행한다는 기사를 보는 순간, 이서는 온몸에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이렇게 중요한 발표회에, 삼촌이 꼭 참석하시겠지?’한참 동안 기다려도 기척이 없자, 전화기 너머에서 임하나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이서야,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아냐, 별일 없어.” 이서는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내가…… 반드시 구해 볼게!”이서는 전화를 끊고, 바로 YS 공식 홈페이지에서 핸드폰 개발부의 전화번호를 찾았다.전화는 곧 연결되었다. 이서는 한숨을 쉬고 나서야 말했다.“안녕하세요, 뭐 좀 여쭤 볼 게요. 혹시 19일에 핸드폰 발표회 진행하나요?”[네, 맞습니다, 고객님.]“그때 회장님도 참석하실까요?”[네. 그렇습니다, 고객님.]“실례지만, 협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