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왜…….”“이서야!” 이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하나의 업 된 목소리를 들었다.목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 바라보니 마침 이상언 차에서 내리는 임하나를 보았다.“둘이…… 같이?”“네.” 이상언이 말했다. “축하해요, 윤이서 씨.”이서는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임하나를 바라보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이상언에게 인사했다.“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냥 편하게 이서라고 불러 주세요.”“이서?” 옆에 있던 하지환의 목소리가 콧방귀와 함께 터져나왔다.이상언은 지환을 한 번 힐끗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에이, 그럼 성은 빼고, 이서 씨라고 부를게요. 이서 씨도 저를 의사 선생님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주세요.”“네. 상언 씨.”말하는 사이, 네 사람은 포장마차 안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지환은 계속 고개를 숙여 플라스틱 의자를 살펴보았다.이서가 물었다.“왜요?”포장마차에 도착했을 때부터 지환은 이상했다.이상언이 농담을 던졌다.“쟤 신경 쓰지 마요. 큰집 도련님께서 처음으로 신분을 낮추고 이처럼 누추한 포장마차를 방문하시니 적응 못 하는 게 당연하지요.”임하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지환 씨, 포장마차에 처음 오는 거예요?”이상언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지환이 보내온 ‘그윽한’ 눈빛을 받았다.그는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지환이…… 이런 거 안 좋아해요.”“아…….” 임하나는 시선을 이서에게 돌리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자기, 먼저 서우의 평생 디렉터가 된 걸 축하해. 이제 철밥통 직장인이 되었네.”이서는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고마워, 나도 대상 부상이 일자리일 줄은 몰랐어. 완전히 날 위한 맞춤 공모전 같아.”이상언은 별 내색하지 않고 지환을 흘겨보았다.지환은 눈꺼풀도 움직이지 않았다.“이제 하은철 삼촌 회사에 들어가니, 앞으로 그를 만날 기회가 있겠다.”이서는 한숨을 내쉬었다.“꼭 그렇지는 않을걸? 얼마나 바쁜 분인데…….”지난번에도 바람 맞았다.지환이
이상언은 눈 딱 감고 뻔뻔스럽게 말했다.“외국에서는 다들 영어 이름 부르니까…… 갑자기 한국 이름이 뭔지 물으니까 생각이 안 나네.”“그럼 영어 이름은 뭐예요?” 이서가 물었다.“매튜.”말을 마친 이상언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지환을 쳐다보았다.그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지환의 영어 이름은 매튜였다.“매튜…….”가볍게 중얼거리는 이서의 목소리는 맑았다.쿵쿵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는 지환은 이서의 탐스러운 빨간 입술을 바라보며 갑자기 키스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닭꼬치 나왔어요.”가게 이모가 닭꼬치 담긴 그릇을 내려놓으며 지환의 시선을 가렸다.이모가 자리를 떴을 때, 이서는 임하나와 윤수정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지금 틀림없이 열 받아서 팔짝 뛸걸? 생각만 해도 핵사이다다!”임하나는 꼬치를 하나 들고 먹으며 말했다.“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거 같아. 만약 이 일자리가 윤수정한테 넘어갔다면, 걔 아마 지금쯤, 네 앞에 달려와 얼마나 거들먹거리며 자랑질할지 안 봐도 비디오야.”이상언도 꼬치 하나를 들었다.그는 의아한 듯 물었다.“윤수정, 하은철 애인 아닌가요?”“응, 상언 씨도 윤수정 알아요?” 임하나가 물었다.“최근에 그녀의 병력을 살펴보고 있어요.”천천히 씹어 삼키는 이상언과, 입을 크게 벌려 쩝쩝거리며 먹는 임하나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병력도 살펴봐야 하나요?” 문외한인 이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음…… 환자의 병력은 개인정보와 관련되는 사항이라 이야기하면 안 되지만, 이서씨는 윤수정의 가족이니 말씀드릴게요. 음…… 윤수정의 데이터 수치를 보면 며칠간 정상이다가 악화되는 패턴이 있어요. 통상적인 경우라면 이런 상황이 나타날 수 없는데…….”“난 그년이 꾀병이라는 데 한 표 건다. 구린내가 진동해.”임하나가 말했다.“잘 살펴봐요. 틀림없이 뭔가 있을 거예요.”임하나를 보는 이상언의 눈빛에 자상함이 묻어났다.“의사도 아닌데 어찌 이렇게 잘 알까?
편의점 안.이서는 간식 몇 개와 물 몇 병을 샀다.임하나는 호기심이 생겨 그녀에게 물었다.“물은 왜?”포장마차에도 물이 있다.이서의 귀가 부자연스럽게 빨개졌다.“생수 마시고 싶어서.”임하나가 가까이 다가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마시고 싶은 거야? 아니면 지환 씨에게 사주고 싶은 거야?”“내가 마신다. 됐지?”이서는 물을 한 병 더 들고 와서 몸을 돌려 임하나에게 물었다.“하나야, 너 이상언 씨랑 어떻게 된 거야?”“아, 우리 왜? 아무것도 없는데.”임하나는 왠지 속이 찔렸다. 사실은 정말 이상언과 아무 사이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뭔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발이 저렸다.“그래?” 이서의 맑은 눈동자는 임하나의 고양이 눈을 쳐다보았다. 임하나는 쑥스러웠다.“내가 약속했잖아. 나 이상언한테 관심 없어.”“만약 네가 정말 좋다면, 나는 개의치 않아. 상관없어.”임하나는 손을 흔들었다.“아냐, 됐어. 이상언 씨 집안과 기반이 모두 외국에 있어. 지금 잠깐은 한국에 머물지만 언젠가는 돌아갈 사람이야. 롱디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 힘들어.”윤수정은 멍해졌다.지환의 가족도 외국에 있다.그렇다면 그들은 앞으로 떨어져서 자주 못 본다는 얘기인가?“내 얘기 그만하고…… 지환 씨랑 어떻게 된 거야? 그나저나 저번에 그 여자는 대체 누구야?”포장마차 오는 길에 이상언은 또 임하나에게 지환이 밖에 둔 여자에 대해 물었다.모른다고 말하자, 똑똑히 알아봐 달라고 이상언이 부탁하며 자기 친구를 위해 아닌 사실을 바로 잡아야겠다고 말했다.이서의 눈동자는 단번에 어두워졌다.“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임하나는 급하게 말했다.비닐백을 들고 편의점을 나온 이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명치에 돌이 눌린 것처럼 답답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입을 열었다.“민예지야.”임하나의 얼굴색은 단번에 변했다.“제기랄! 찾아도 하필 민예지를 찾냐? 여기서 딱 기다려라. 내가 가만두나 봐!”말을 마친 임하나는 기세등등하
이상언은 임하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집 앞에 도착한 임하나는 여전히 소란을 피웠다.“이거 놔요, 나 절대 내 친구 눈에 눈물 나게 하는 놈 가만 안 둬요.”이상언은 한 손으로는 임하나의 허리를 껴안고 한 손으로는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불을 켜면서 임하나에게 말했다.“하나 씨가 이서 친구라는 사실에 감사해요. 아니었으면, 아마 뼈도 못 추렸을걸요?”임하나는 승복하지 않았다.“왜요, 설마 날 죽이기라도 한대요?”이상언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방으로 가서 임하나에게 물 한 잔을 따라서 건네주었다.임하나는 여전히 분개했다.“내로남불, 방귀 낀 놈이 성낸다고, 바람 피운 주제에 뭐가 그리 당당해?”“나, 지환이 잘 알아요. 절대 민예지라는 여자와 아무 사이 아니에요.”임하나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둘은 친구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편 들겠지.”“그건 아니에요.”이상언은 그날 룸에서 민예지가 지환을 유혹하려다가 쫓겨난 일을 간단히 말해줬다.“지환이가 정말 그 여자랑 뭔 썸싱이 있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겠죠? 당시 룸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어요. 나에게 연기를 보여줄 만큼 그렇게 한가한 놈 아니네요.”임하나는 말문이 막혀 한참 뒤에야 나지막하게 말했다.“그럼 도시락 배달 간 날은……?”“아마도 틀림없이 무슨 오해가 있었을 거예요.”이상언은 그녀가 마침내 진정된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됐어요. 지환이가 아마 이서 씨에게 잘 해명할 거예요. 그들을 신경 그만 쓰고……. 물 더 줄까요?”“네.”임하나는 목을 가다듬었다.“방금 너무 흥분했더니 목이 다 바싹바싹 마르네.”말하면서 그녀는 붉은 입술을 핥았다.붉은 입술이 촉촉한 것이 마치 장미가 아침 안개에 물든 것 같았다.이상언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그는 급히 시선을 돌렸다“물 갖다줄게요.”주방에 들어서니 머릿속이 흐리멍덩해졌다.그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동안 맛있는 음식에 심취해 새 여자친구를 안 만난 지 꽤 됐지.’‘그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이서는 급히 이불을 들춰 확인했지만, 몸에 옷이 그대로 잘 입혀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그녀와…… 지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깼어?”이서는 고개를 들어 마침 욕실에서 걸어 나온 지환을 보았다. 그의 몸에는 목욕 타올만 느슨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머리끝에서 떨어진 물기는 선명한 복근을 따라 목욕 타올 가장자리로 스며들었다.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응.”지환은 다가가서 침대에 앉았다.침대 반쪽이 순식간에 내려앉았다.이서의 마음은 흔들리는 침대처럼 심장이 마구 나대기 시작했다.귓불이 사과처럼 빨개졌다.지환은 손을 들어 이서의 작고 부드러운 귓불을 만졌다.“어젯밤에 네가 먼저 잠들었어.”“네?” 이서도 생각났다. 지환이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가 잠이 들었다.그녀의 얼굴은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미안해요!”지환은 그녀를 품에 안았다.“그럼 어떻게 보상할 거야?”이서는 긴 속눈썹을 떨며 수줍어했다.“저기…… 눈 감아봐요.”지환은 순순히 눈을 감았다.이서는 용기를 내어 상체를 살짝 펴고 그의 볼에 키스했다.가벼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듯 그녀는 입술은 곧 물러났다.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려고 이불을 들었는데, 남성의 강한 손이 가느다란 그녀의 허리를 확 움켜쥐었다.그는 이서의 콧날에 대고 말했다.“고작 이 정도로?”반쪽 얼굴을 이불에 묻은 이서의 두 눈동자에 안개가 자욱한 것이 쑥스러움으로 가득했다. 낮고 섹시한 목소리까지 겹치니 손으로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다.“지환 씨…….”지환은 얼굴을 묻고 있는 이불을 살짝 제치며 입술을 짓눌렀다.“응, 이 정도는 돼야지.”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귓가에 울려 퍼졌다.이서의 예상과는 달리 지환은 진도를 더 나가지 않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일어나서 밥 먹어, 오늘 회사에 얼굴도장 찍으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아. 맞다, 나 이제부터 말 편하게 할 거야! 너도 편하게 하고 싶으면 해.”이서는 그제야 오늘 서우에 가서 입사 서류를
이서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임하나에게 함께 선물 사러 가자고 전화했다.전화기 너머에서 임하나는 우물쭈물했다.[자기, 오늘 내가 갑자기 야근하게 되어서 함께 못 갈 거 같은데…… 어떡하지?]“그래, 그럼 먼저 일 봐.”전화를 끊고 이서는 네비게이션을 켜고 근처에 선물을 살 수 있는 마땅한 곳이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선물을 사서 예쁘게 포장을 마치고, 배달할 집 주소까지 적고 나니, 이미 저녁 시간이었다.시간을 확인하고 지환에게 전화를 걸려고 휴대전화를 꺼냈는데 마침 전화가 울렸다.발신자 이름을 보고 이서의 눈동자가 약간 차가워졌다.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그녀가 받았다.“이서야…….”성지연이 비위를 맞추며 물었다.“시간 있니?”이서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없어요.”성지연은 딸에게 구차하게 굴었다.“공모전 일은 수정이가 잘못했어. 걔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어. 사죄의 의미로 너에게 밥을 사주고 싶다는데……. 이서야, 한 번만 너그럽게 봐줘라. 엄마의 체면을 봐서라도…….”이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아니요, 정말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잠자코 있으라고 해요. 괜히 내 앞에서 나서서 내 속 끓이지 말고…….”“윤이서!” 성지연은 목소리를 높였다.“원철도 같이 나온대. 이게 너의 마지막 기회야. 너 정신 똑바로 차려!”이서가 손가락을 꽉 쥐었다. 성지연이 전화한 건 역시 하씨 집안 며느리 자리를 위해서였다.이서는 전화를 탁 끊고, 부모의 전화번호를 차단했다.이 모든 걸 끝낸 이서는 여전히 화가 삭지 않아 덜덜 떨렸다.이제부터 정말 윤씨 집안과 인연을 끊을 것이다.이때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이서 곁에 멈춰 섰다.차 문이 열리면서 덩치 좋은 근육맨 두 명이 내려왔다.“윤이서 씨?”이서는 경계하듯 후퇴했다.“당신들 누구야?”두 사람은 서로 마주치고는 두말없이 이서의 팔을 잡고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두 사람의 동작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출퇴근 시간이랑 맞물리다 보니 두 사람의 행색이 사람들의 눈에 띄게 크게
“그만해!” 남자들의 손이 몸에 닿자, 이서는 굴욕적인 눈물을 흘렸다.“전화할게, 내가 전화할게!”두 경호원은 아쉬운 듯 마주 쳐다보고는,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갔다.이서가 마침내 전화하겠다는 소식을 들은 민예지는 득의양양하게 들어와서 옷이 이미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이서를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진작 고분고분 말 들었으면 얼마나 좋아? 괜히 몸 고생만 했잖아. 휴대전화 줘.”이서는 두 팔로 몸을 꽉 감싸고 휴대전화를 받지 않았다.“왜, 또 마음 바뀐 거야? 번복하려고?”이서는 코를 훌쩍거리며 목을 곧추세웠다.“먼저 옷이나 갖다줘.”“설마 시간을 끌려고 하는 수작은 아니겠지?” 민예지는 가볍게 피식했다.“여기 민씨 집안 바닥이야. 하은철도 들어오려는 한바탕 고생해야 할걸? 네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때까지 시간을 끌어봐라, 소용이 있나?”차갑게 웃는 이서는 눈동자에는 아직도 눈물자국이 남아있었다.“그냥 옷만 하나 걸치겠다는 건데, 넌 뭐가 그리 두렵니?”“그래.” 민예지는 더 이상 헛소리하기 싫어 옷을 가져오라고 했다.루즈한 롱스커트였다.이서는 옷 위에 껴입었다.이목구비가 예쁘고 몸매까지 베이글녀인 이서는, 헐렁한 옷을 입고 있어도 예쁨을 감출 수 없었다. 심지어 여리여리한 느낌은 남자의 보호본능을 더욱 자극했다.민예지는 재촉했다.“얼른 전화해!”“잠깐만.”“너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민예지는 슬슬 짜증이 났다.“윤이서, 내 인내심은 한계를 테스트하지 마. 전화 안 할 거면 내가…….”“너는 왜 사람들이 너와 날 놓고 비교하는지 아니?” 맑은 눈빛을 한 이서는 갑자기 그녀의 말을 끊었다. 민예지는 정곡을 찔린 듯 움찔하며 물었다.“왜?”“알고 싶어? 그럼, 가까이 와봐!”민예지는 1초 동안 망설였지만, 여전히 참지 못하고 이서의 방향으로 걸어갔다.“빨리 말해.”이서는 갑자기 손을 내밀어 민예지의 목을 누르고 온몸의 힘을 다해 그녀를 창가로 끌고 갔다.“윤…… 이서…… 너
이서는 곧바로 수술실로 실려 갔다.지환은 따라 들어가려다가 이상언에게 제지당했다.“친구…….” 이상언이 침착하게 말했다.“이서 씨 괜찮을 거야.”고개를 돌린 지환의 눈동자에 붉은빛이 아직 가시지 않아 무서워 보였다.오랜 친구로서 이상언도 지금의 지환이 좀 무서웠다.그는 지환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지환은 침착하고 자제력이 강하며 절대로 실수하거나 허점을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마지노선을 건드리지 않는 한.지환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이서는 지환의 마지노선이 되었다.다만 본인조차도 모르고 있다.“이서 어떻게 됐어요?”소식을 받고 달려온 임하나는 이상언을 보자마자 얼른 다가가 물었다.이상언은 지환을 한번 보고는 고개를 돌려 임하나에게 대답했다.“방금 수술실에 들어갔어.”“어느 개자식이 그랬어요?” 임하나는 분노했다.“민예지.”“젠장!” 임하나는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이상언은 그녀를 가로막았다.“어디 가요?”“민예지 그년한테 복수하러 가야죠. 미친년 완전히 돌았어. 틈만 나면 이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가지 마요.” 이상언은 이 만만찮은 두 사람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이 일은 지환이 처리할 거예요.”“어떻게 처리한대요?”그녀가 지환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민예지는 4대 가문 중 하나인 민씨 집안 사람이다. 게다가 민씨 집안의 권력자인 민호일이 가장 아끼는 사람이 바로 그의 딸 민예지였다. 따라서 하경철 노인이 나서도 좀 난처한 상황이다.‘평범한 직장인인 지환이 민예지를 어떻게 할 수 있겠어.’“걱정 마요.”이상언도 임하나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눈짓했다.“일단 기다려 봅시다.”애가 탄 임하나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지환이 마치 얼음조각마냥 수술실 입구에 꼼짝달싹하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잠자코 있었다. 그녀는 곧 입술을 앙다물고 이상언 옆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한 세기 같은 시간이 지나고 의사가 마침내 수술실에서 나왔다.“환자에게 큰 이상은 없습니다. 다만 머리를 여러 군데 부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