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은 임하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집 앞에 도착한 임하나는 여전히 소란을 피웠다.“이거 놔요, 나 절대 내 친구 눈에 눈물 나게 하는 놈 가만 안 둬요.”이상언은 한 손으로는 임하나의 허리를 껴안고 한 손으로는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불을 켜면서 임하나에게 말했다.“하나 씨가 이서 친구라는 사실에 감사해요. 아니었으면, 아마 뼈도 못 추렸을걸요?”임하나는 승복하지 않았다.“왜요, 설마 날 죽이기라도 한대요?”이상언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방으로 가서 임하나에게 물 한 잔을 따라서 건네주었다.임하나는 여전히 분개했다.“내로남불, 방귀 낀 놈이 성낸다고, 바람 피운 주제에 뭐가 그리 당당해?”“나, 지환이 잘 알아요. 절대 민예지라는 여자와 아무 사이 아니에요.”임하나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둘은 친구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편 들겠지.”“그건 아니에요.”이상언은 그날 룸에서 민예지가 지환을 유혹하려다가 쫓겨난 일을 간단히 말해줬다.“지환이가 정말 그 여자랑 뭔 썸싱이 있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겠죠? 당시 룸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어요. 나에게 연기를 보여줄 만큼 그렇게 한가한 놈 아니네요.”임하나는 말문이 막혀 한참 뒤에야 나지막하게 말했다.“그럼 도시락 배달 간 날은……?”“아마도 틀림없이 무슨 오해가 있었을 거예요.”이상언은 그녀가 마침내 진정된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됐어요. 지환이가 아마 이서 씨에게 잘 해명할 거예요. 그들을 신경 그만 쓰고……. 물 더 줄까요?”“네.”임하나는 목을 가다듬었다.“방금 너무 흥분했더니 목이 다 바싹바싹 마르네.”말하면서 그녀는 붉은 입술을 핥았다.붉은 입술이 촉촉한 것이 마치 장미가 아침 안개에 물든 것 같았다.이상언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그는 급히 시선을 돌렸다“물 갖다줄게요.”주방에 들어서니 머릿속이 흐리멍덩해졌다.그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동안 맛있는 음식에 심취해 새 여자친구를 안 만난 지 꽤 됐지.’‘그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이서는 급히 이불을 들춰 확인했지만, 몸에 옷이 그대로 잘 입혀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그녀와…… 지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깼어?”이서는 고개를 들어 마침 욕실에서 걸어 나온 지환을 보았다. 그의 몸에는 목욕 타올만 느슨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머리끝에서 떨어진 물기는 선명한 복근을 따라 목욕 타올 가장자리로 스며들었다.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응.”지환은 다가가서 침대에 앉았다.침대 반쪽이 순식간에 내려앉았다.이서의 마음은 흔들리는 침대처럼 심장이 마구 나대기 시작했다.귓불이 사과처럼 빨개졌다.지환은 손을 들어 이서의 작고 부드러운 귓불을 만졌다.“어젯밤에 네가 먼저 잠들었어.”“네?” 이서도 생각났다. 지환이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가 잠이 들었다.그녀의 얼굴은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미안해요!”지환은 그녀를 품에 안았다.“그럼 어떻게 보상할 거야?”이서는 긴 속눈썹을 떨며 수줍어했다.“저기…… 눈 감아봐요.”지환은 순순히 눈을 감았다.이서는 용기를 내어 상체를 살짝 펴고 그의 볼에 키스했다.가벼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듯 그녀는 입술은 곧 물러났다.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려고 이불을 들었는데, 남성의 강한 손이 가느다란 그녀의 허리를 확 움켜쥐었다.그는 이서의 콧날에 대고 말했다.“고작 이 정도로?”반쪽 얼굴을 이불에 묻은 이서의 두 눈동자에 안개가 자욱한 것이 쑥스러움으로 가득했다. 낮고 섹시한 목소리까지 겹치니 손으로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다.“지환 씨…….”지환은 얼굴을 묻고 있는 이불을 살짝 제치며 입술을 짓눌렀다.“응, 이 정도는 돼야지.”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귓가에 울려 퍼졌다.이서의 예상과는 달리 지환은 진도를 더 나가지 않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일어나서 밥 먹어, 오늘 회사에 얼굴도장 찍으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아. 맞다, 나 이제부터 말 편하게 할 거야! 너도 편하게 하고 싶으면 해.”이서는 그제야 오늘 서우에 가서 입사 서류를
이서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임하나에게 함께 선물 사러 가자고 전화했다.전화기 너머에서 임하나는 우물쭈물했다.[자기, 오늘 내가 갑자기 야근하게 되어서 함께 못 갈 거 같은데…… 어떡하지?]“그래, 그럼 먼저 일 봐.”전화를 끊고 이서는 네비게이션을 켜고 근처에 선물을 살 수 있는 마땅한 곳이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선물을 사서 예쁘게 포장을 마치고, 배달할 집 주소까지 적고 나니, 이미 저녁 시간이었다.시간을 확인하고 지환에게 전화를 걸려고 휴대전화를 꺼냈는데 마침 전화가 울렸다.발신자 이름을 보고 이서의 눈동자가 약간 차가워졌다.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그녀가 받았다.“이서야…….”성지연이 비위를 맞추며 물었다.“시간 있니?”이서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없어요.”성지연은 딸에게 구차하게 굴었다.“공모전 일은 수정이가 잘못했어. 걔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어. 사죄의 의미로 너에게 밥을 사주고 싶다는데……. 이서야, 한 번만 너그럽게 봐줘라. 엄마의 체면을 봐서라도…….”이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아니요, 정말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잠자코 있으라고 해요. 괜히 내 앞에서 나서서 내 속 끓이지 말고…….”“윤이서!” 성지연은 목소리를 높였다.“원철도 같이 나온대. 이게 너의 마지막 기회야. 너 정신 똑바로 차려!”이서가 손가락을 꽉 쥐었다. 성지연이 전화한 건 역시 하씨 집안 며느리 자리를 위해서였다.이서는 전화를 탁 끊고, 부모의 전화번호를 차단했다.이 모든 걸 끝낸 이서는 여전히 화가 삭지 않아 덜덜 떨렸다.이제부터 정말 윤씨 집안과 인연을 끊을 것이다.이때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이서 곁에 멈춰 섰다.차 문이 열리면서 덩치 좋은 근육맨 두 명이 내려왔다.“윤이서 씨?”이서는 경계하듯 후퇴했다.“당신들 누구야?”두 사람은 서로 마주치고는 두말없이 이서의 팔을 잡고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두 사람의 동작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출퇴근 시간이랑 맞물리다 보니 두 사람의 행색이 사람들의 눈에 띄게 크게
“그만해!” 남자들의 손이 몸에 닿자, 이서는 굴욕적인 눈물을 흘렸다.“전화할게, 내가 전화할게!”두 경호원은 아쉬운 듯 마주 쳐다보고는,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갔다.이서가 마침내 전화하겠다는 소식을 들은 민예지는 득의양양하게 들어와서 옷이 이미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이서를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진작 고분고분 말 들었으면 얼마나 좋아? 괜히 몸 고생만 했잖아. 휴대전화 줘.”이서는 두 팔로 몸을 꽉 감싸고 휴대전화를 받지 않았다.“왜, 또 마음 바뀐 거야? 번복하려고?”이서는 코를 훌쩍거리며 목을 곧추세웠다.“먼저 옷이나 갖다줘.”“설마 시간을 끌려고 하는 수작은 아니겠지?” 민예지는 가볍게 피식했다.“여기 민씨 집안 바닥이야. 하은철도 들어오려는 한바탕 고생해야 할걸? 네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때까지 시간을 끌어봐라, 소용이 있나?”차갑게 웃는 이서는 눈동자에는 아직도 눈물자국이 남아있었다.“그냥 옷만 하나 걸치겠다는 건데, 넌 뭐가 그리 두렵니?”“그래.” 민예지는 더 이상 헛소리하기 싫어 옷을 가져오라고 했다.루즈한 롱스커트였다.이서는 옷 위에 껴입었다.이목구비가 예쁘고 몸매까지 베이글녀인 이서는, 헐렁한 옷을 입고 있어도 예쁨을 감출 수 없었다. 심지어 여리여리한 느낌은 남자의 보호본능을 더욱 자극했다.민예지는 재촉했다.“얼른 전화해!”“잠깐만.”“너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민예지는 슬슬 짜증이 났다.“윤이서, 내 인내심은 한계를 테스트하지 마. 전화 안 할 거면 내가…….”“너는 왜 사람들이 너와 날 놓고 비교하는지 아니?” 맑은 눈빛을 한 이서는 갑자기 그녀의 말을 끊었다. 민예지는 정곡을 찔린 듯 움찔하며 물었다.“왜?”“알고 싶어? 그럼, 가까이 와봐!”민예지는 1초 동안 망설였지만, 여전히 참지 못하고 이서의 방향으로 걸어갔다.“빨리 말해.”이서는 갑자기 손을 내밀어 민예지의 목을 누르고 온몸의 힘을 다해 그녀를 창가로 끌고 갔다.“윤…… 이서…… 너
이서는 곧바로 수술실로 실려 갔다.지환은 따라 들어가려다가 이상언에게 제지당했다.“친구…….” 이상언이 침착하게 말했다.“이서 씨 괜찮을 거야.”고개를 돌린 지환의 눈동자에 붉은빛이 아직 가시지 않아 무서워 보였다.오랜 친구로서 이상언도 지금의 지환이 좀 무서웠다.그는 지환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지환은 침착하고 자제력이 강하며 절대로 실수하거나 허점을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마지노선을 건드리지 않는 한.지환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이서는 지환의 마지노선이 되었다.다만 본인조차도 모르고 있다.“이서 어떻게 됐어요?”소식을 받고 달려온 임하나는 이상언을 보자마자 얼른 다가가 물었다.이상언은 지환을 한번 보고는 고개를 돌려 임하나에게 대답했다.“방금 수술실에 들어갔어.”“어느 개자식이 그랬어요?” 임하나는 분노했다.“민예지.”“젠장!” 임하나는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이상언은 그녀를 가로막았다.“어디 가요?”“민예지 그년한테 복수하러 가야죠. 미친년 완전히 돌았어. 틈만 나면 이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가지 마요.” 이상언은 이 만만찮은 두 사람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이 일은 지환이 처리할 거예요.”“어떻게 처리한대요?”그녀가 지환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민예지는 4대 가문 중 하나인 민씨 집안 사람이다. 게다가 민씨 집안의 권력자인 민호일이 가장 아끼는 사람이 바로 그의 딸 민예지였다. 따라서 하경철 노인이 나서도 좀 난처한 상황이다.‘평범한 직장인인 지환이 민예지를 어떻게 할 수 있겠어.’“걱정 마요.”이상언도 임하나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눈짓했다.“일단 기다려 봅시다.”애가 탄 임하나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지환이 마치 얼음조각마냥 수술실 입구에 꼼짝달싹하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잠자코 있었다. 그녀는 곧 입술을 앙다물고 이상언 옆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한 세기 같은 시간이 지나고 의사가 마침내 수술실에서 나왔다.“환자에게 큰 이상은 없습니다. 다만 머리를 여러 군데 부딪
지환은 이서를 꽉 껴안았다.밀착되어 있는 두 사람의 심장이 요란스럽게 나댔다.이서는 남자 특유의 좋은 냄새를 맡으며 자신도 모르게 볼이 뜨거워졌다.그러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지환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며 확인했다.“당신 괜찮아요? 다치지는 않았어요? 민예지의 경호원들이 당신을 어떻게 하지 않았죠?”이서의 손놀림에 몸에 불이 켜진 지환은 이서의 손을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거기서는 괜찮았는데…… 계속 함부로 이렇게 만져대면 안 괜찮을 거 같은데? 뭔 사고가 나도 몰라…….”그 말을 들은 이서는 놀라서 갑자기 얼음이 되었다.정수리 쪽에서 들려오는 지환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들고서야 자신을 놀린 거라는 걸 깨닫고 수줍어하며 주먹으로 지환의 가슴을 쳤다.작고 야리야리한 주먹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지환은 그녀의 주먹을 잡고 입술에 키스했다.“이서야, 후회하기 없기다.”“네?”“나랑 함께하겠다는 거…….”이서의 얼굴이 또 타올랐다.“누가 당신이랑 함께하겠데요?”기분이 좋은 지환은 이서의 붉은 입술에 뽀뽀했다.“칫…… 좋으면서!”이서는 수줍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지환 씨, 나빴어!”“그래, 그래…….” 지환은 그녀를 껴안고 달랬다.“전부 내 불찰입니다. 됐지?”이서는 부끄러워 지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참이 지나서야 고개를 들어 지환에게 물었다.“우리…… 그럼 계약 위반 아닌가요? 동거 계약서에 따르면, 조항 위반 시 이혼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입술은 다른 입술에게 짓눌렸다.……민예지가 실종된 이틀째 되는 날까지, 민호일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도 민예지가 연락이 되지 않자,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그래서 모든 인력을 총출동시켜 민예지를 찾기 시작했다. 민예지의 실종 소식도 온 북성시에 퍼졌다.윤수정조차도 알 정도로.“납치됐나?” 윤수정은 입술을 깨물며 하은철에게 물었다.그녀는 아침부터 머리 아프다는 핑곗거리를 만들어 하은철을 불러냈
4대 가문은 겉으로나 속으로나 서로 맞지 않지만, 그래도 뭔 일이 있으면 서로 왕래하고 때론 힘을 합치기도 했다.윤수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이게 뭔 일이야? 어떻게 된 거래?”‘이서가 들려와야 하는데?’“아직 잘 모르겠어. 나 먼저 가 볼게.”하은철은 말을 던지고 급히 떠났다. 병실에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윤수정만 남겨졌다.민예지 집에 도착해서야 하은철은 민예지의 상황이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누군가에게 처참하게 당한 것 같았다. 온몸이 성한 곳 하나 없이 멍으로 가득했다. 특히 나름 예쁘장했던 얼굴은 맞아서인지 돼지머리처럼 부었다.정신을 잃고 누워있는 그녀는 입에서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렸다.그러나 목소리가 너무 작아 무슨 말인지 똑똑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설치고 다니던 딸이 이 지경이 된 걸 보니, 민호일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어떤 놈 소행인지 알아보셨어요?” 하은철이 물었다.민호일은 고통스럽게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 아무것도 못 찾았어.”“예지는요? 예지도 본인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요?”고개를 떨구고 있던 민호일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었다.“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의사 말로는 예지가 실종된 날부터 꼬박 이틀 밤낮을 유린당한 거 같다고…… 지금 애 정신 상태가…… 누구인지 알아도 제대로 말할 수 없네……. 흑흑!”하은철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잠자코 서 있었다.“민 회장님, 안심하세요. 저희도 범인을 찾아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바로 이때 침대에 누워있던 민예지는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비명을 질렀다.“이서! 이서 남편은…….”말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또 기절했다.상황을 지켜보던 의사가 허둥지둥 침대로 다가가 예지의 인중혈을 꾹 눌렀다. 잠시 뒤 민예지가 눈을 떴다.“민 회장님, 지금 아가씨 경과가 좋지 않습니다…….”주치의
이서는 어리둥절해졌다.임하나의 얘기에 깃든 정보량이 너무 많다. 이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몰라 반나절이 지나서야 어눌하게 말했다.“프러포즈…… 이벤트 준비했다고?”“응.”임하나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지금쯤 아마 모두 사라졌을걸? 자기 레스토랑도 아닌데 어떻게 계속 두겠어?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다. 너무 아쉽다.”제일 아쉬운 건 프러포즈 주인공인 이서이다. 그녀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계속 물었다.“그날 지환 씨가 도착한 뒤 난 기절했어.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니?”“나는 따라가지 않았으니, 무슨 일이 일었는지는 모르겠어.”이서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그럼, 밖에 무슨 소문이라도 들은 거 없어?”지환이 그녀를 데리고 빠져나왔으니, 민예지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아니야…….” 이서의 손을 잡은 임하나가 말을 이었다.“이서야, 걱정하지 마. 민예지가 다시 문제 일으킨다면 그땐 그냥 어르신께 찔러버리자.”“제발 그러지 마. 할아버지 연세가 많으시고, 건강도 안 좋으시잖아.” 이서는 계속 말했다.“괜히 나 때문에 할아버지 신경 쓰시게 하기 싫어.”임하나는 가슴이 아팠다.“넌 어찌 맨날 다른 사람 생각만 하니?”말하면서 또 유유히 한숨을 쉬었다.“친구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능한 내 자신이 참 싫다.”임씨 집안은 일반 가정이었다.임하나 엄마가 하씨 그룹 산하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이서의 안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이서는 웃으며 말했다.“나 괜찮아. 똥이 무서워서 피하니 더러워서 피하지. 내가 자리 잡기 전까지 민예지를 피해 다니면 돼. 언젠가는 나도 윤씨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울 테니까 그때 꼭 되갚아 주면 돼.”임하나도 따라 웃었다.“그래, 너만 믿는다.”두 사람은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다. 지환이 안 보이는 걸 보고 임하나가 물었다.“지환 씨는?”“티켓팅 하러 갔어……. 며칠 뒤 퇴원하면 미국에 다녀오려고.”“이렇게 빨리? 머리 다친 거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