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차분해 보이는 성연이지만 자신은 잘 알고 있다.지금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사납게 요동치고 있는지.북성에서부터 태평양을 건너 이곳으로 날아왔다.바로 약재들 때문에 말이다.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약재를 무진이 가져갔다.피를 토할 정도로 성연은 화가 치밀었다.친부를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어.서한기는 이렇게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일어나 성연의 곁으로 다가갔다.“보스, 내가 사람을 데리고 쫓아가서 물건을 가져올까?”그렇게 중요한 물건이 아니었다면, 자신들이 이런 고생을 하며 외국까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차마 성연의 처진 모습을 볼 수 없었다.설령 상대가 강무진이라 해도 두렵지 않았다.누가 알았겠는가, 성연이 도리어 고개를 저으며 무진 쪽을 쫓으려는 생각을 가로막을 줄.“이번 일은 아마 무슨 착오가 있는 듯해. 먼저 가서 똑똑히 알고 보자.”성연은 무진이 이곳에서 재료로 사용할 화물들을 압수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러니 강무진의 목적은 그 화물들이야, 우리 약재가 아니라.’원래대로라면 강무진은 자신들의 약재에 대해 모르는 게 맞았다.무진의 현재 몸, 그리고 그가 관련하고 있는 영역에서는 이 약재들을 사용할 수 없다.성연은 무진이 이 창고에 나타난 순간부터 일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일단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이 좋다.좀 달갑지 않은 마음의 서한기였지만, 그가 성연의 말을 거역한 적이 여지껏 한 번도 없었다.다른 쪽으로 걸어가던 서한기가 소리쳤다.“보스, 강무진을 대할 때는 좀 너무 특별한 거 아닙니까?”“특별해?” 성연이 기막히다는 듯 물었다.“뭐 때문에 그런 착각을 한 거야?”“됐습니다.” 성연이 앞에서 감히 입을 열 용기가 없던 서한기가 빙 돌아서 곽연철의 뒤에 숨었다.“강무진이 여기 있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 분명 뭔가 착오가 생긴 거야. 약재가 강무진의 손에 들어간 게 오히려 더 안전할 수도 있어. 기회를 봐서 찾아오면 그만이니까.” 이렇게 말하면
한 차례 블랙문 조직원들을 훈시한 후 잠시 앉아 있던 성연이 수하 몇 명만 남겨둔 채 창고를 떠났다.저 조무래기들을 미끼로 이용해서 블랙문의 보스를 끌어낸 후 저들 조직의 소굴을 찾아낼 계획이다.자신의 약재를 강탈해 간 만큼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게다가 블랙문에서는 이 약재가 아수라문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강탈해 갔다는 것은 아수라문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는 뜻이다.그녀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블랙문에게 그 끝이 어떻게 되리라는 걸 알려줄 것이다.돌아가는 길, 성연은 고개를 창밖으로 향한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잠시 뒤 돌아가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무진을 마주 대할 지 고민했다.무진의 조금 전 행동이 너무 미웠다. 이가 갈릴 정도로. 참지 못하고 무진을 작살내 버릴지도 모른다.그렇게 심혈을 기울였는데도 강탈당했다는 사실에 울화가 터질 지경이다.곽연철이 앞자리에서 운전대를 잡고 서한기는 조수석에 앉았다. 뒷좌석에 혼자 탄 성연이 뒤로 몸을 기댔다.좀 멍한 표정이다.지금 성연의 상태가 썩 좋지 않은 게 보였다.서한기는 몰래 자기 뺨을 한 대 쳤다. 약재는 성연의 사부님이 보내준 거였다.성연에게 사부님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서한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지금 약재를 빼앗겨 가장 괴로운 사람은 송성연 본인일 것이다.그런 보스한테 그런 말을 했으니.자신을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뭔가라도 해 보려는 생각에 서한기는 곽연철에게 차를 세우라고 요구했다.곽연철이 서한기를 힐끗 돌아보며 물었다.“너 또 뭘 어쩌려고?”“내려서 뭐 좀 사려고.” 서한기가 곽연철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곽연철이 고개를 돌려 성연을 한 번 쳐다보았다.성연이 아직 앞쪽의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것을 본 곽연철이 천천히 차를 세웠다.서한기가 문을 열고 내렸다.갑자기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차문이 닫히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성연은 그저 차창을 통해 서한기의 뒷모습만 쳐다볼 뿐이다.성연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서한기가 지금 어디로
무진은 호텔로 돌아가지 않고 물건을 가지고 먼저 지사 창고로 갔다.그곳에 새로 임명된 지사장 이성태가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한 채 무진을 맞았다.뒤에 있는 수하들이 박스를 들고 무진의 뒤를 따랐다.무진은 강문호 쪽에서 계략을 쓴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우선 강문호가 원재료를 줄였는지 먼저 확인해 보기로 했다.지하 창고에 도착하자 손건호가 다가와 상자를 열었다.그런데 현장에서 상자 안의 물건을 보던 사람들이 모두 일시에 멍해졌다.상자 안의 물건은 자신들이 원하던 재료가 아니었다.말린 초목 한 무더기가 들어있는 것을 보며 약재인 것으로 추정했다.“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렵게 어렵게 가서 찾아왔는데 돌아와서 보니 가져온 게 엉뚱한 물걸이다?손건호는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강문호가 일부러 자신들을 물 먹였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잘못했거나.그러나 그때까지도 강문의 약점인 장부가 자신들의 손에 있었다.자신의 미래를 걸고 장난치지는 않을 텐데.무진의 얼굴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가, 가서 강문호가 말한 창고 위치를 전해준 놈을 잡아와서 다시 확인해.”손건호는 즉시 사람을 찾으러 나갔다.강문호가 주소를 말할 때 한 사람만 들은 것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손건호는 아예 두 사람을 찾아 비교했다.앉아 있는 무진 앞에 두 사람이 섰다. 무진 앞에서 허리를 뻣뻣하게 세운 채 잔뜩 긴장한 모양새다.‘약재를 손에 넣었는데 어떻게 보스는 아직 기분이 별로인 모양이지?’“너희들이 전달했지? 어제 강문호가 말한 약재를 보관했다는 창고 위치. 도대체 바닷가 어느 창고야?”무진이 차가운 음서으로 물었다.“88호 창고입니다.”“89호 창고입니다.”아까 88호라고 했던 그 수하였다.그런데 돌연 또 하나의 숫자가 튀어나왔다.“도대체 어느 거란 말이야?” 무진의 이마에 핏줄이 불끈 치솟았다.다시 한번 물었지만 두 사람의 대답은 여전히 같았다.88호 창고에 그들이 갔었지만 그 물건이 아니었다.그럼 우리 쪽 수하가 창고 번호를 잘
손건호는 수하들을 이끌고 89호 창고로 갔다.이번에 몇 명만 데리고 가서 그곳의 동태만 살펴볼 생각이었다.그런데 손건호가 89창고에 갔을 때 강문호가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손건호가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자 강문호가 불평을 늘어놓았다.“왜 이제야 옵니까?”“여기서 얼마나 기다렸어?” 손건호가 강문호 앞에 서서 조용히 물었다.“6시부터 지금까지 기다렸구만.” 강문호의 어조에는 짙은 원망이 담겨 있었다.이 황량하고 인적이 없는 곳에서 모기에게 얼마나 물어 뜯겼는지. 그런데도 강무진 쪽에서는 사람이 올 생각을 안 하니.그 말을 듣던 손건호가 되려 웃었다.“누가 너한테 우리가 오늘 올 거라고 했어?”강문호가 여기에 함정을 파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어 은밀하게 움직였다.하지만 행적이 드러났다.강문호가 알아서 실토를 하니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이리 멍청하니 겨우 강상철, 강상규 패거리에 낀 거겠지만.강문호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저들이 올 거라고 당연히 강일헌이 말했었다.또 여기서 지키고 있다가 강무진이 오면 물건을 온전히 넘겨주라고 강문호에게 지시했다.하지만 강문호는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바닷가의 창고는 불법이기 때문에 모든 곳이 매우 외진 곳에 있었다. 여기에서 손을 쓰는 것이 가장 좋았다.그래서 그냥 물건을 돌려주라는 건지 아니면 직접 그들에게 보낼 건지 물었었다.그떼 강일헌은 다른 계획이 있다고만 말했었다.그래서 강문호는 부득이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무진 곁에 있는 이 손건호라는 비서, 정말 예리했다. 문제의 핵심을 바로 파악해 내다니 말이다.강문호은 눈알을 굴리며 목을 꼿꼿이 세운 채 대답했다.“내, 내가 짐작하는 게 무슨 문제야?”손건호가 콧방귀를 뀌었다. 강문호한테 그런 걸 알아맞힐 머리가 있다는 걸 믿으라고?누가 정보를 흘렸는지는 간단하지 않는가?오늘 자신이 온 목적은 그 물건들 때문이라는 걸 더 이상 말하는 것도 귀찮았다.강문호도 여기에 있으니 물건이 도망갈
물건을 확보한 것은 물론 좋은 소식이다.하지만 무진은 이 일을 처리하며 자신이 너무 터무니없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남의 물건을 대놓고 빼앗다니.어릴 때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은 무진은 사람을 대할 때면 그에 맞는 방식을 취해 왔다.생판 남의 물건을 대가 없이 가져가는 일은 해본 적이 없다.뿐만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무진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부끄러운 감정을 오랜만에 느꼈다.물건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그러나 애초에 두 무리가 이 약재 상자를 가져가려 했음이 기억났다.이 약재의 주인이 창고에서 먼저 본 자들인지, 아니면 그 후에 나타난 자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무진은 고민을 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대개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바닷가의 불법 창고는 원래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물건을 숨기는 용도였다.어쩌면, 이 약재 상자는 원래 그 패거리들이 햇빛을 보지 못하게 할 수단으로 가져온 것일지도 모른다.그래서 주인이 누구인지 아직 단정할 수가 없었다.정말 돌려주고 싶지만 정말 까다로웠다.옆에 서있는 손건호를 본 무진이 이 일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간단하게 설명했다.“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제자리에 서서 잠시 생각한 손건호가 대답했다.“이 내용을 조직의 채널을 통해 내보낼 수도 있습니다. 대충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 거지요. 주인이라면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말할 수 있을 테니 확인하고 건네줄 수 있을 겁니다. 어떻습니까?”세계적으로 거대한 조직들은 모두 각자의 조직 내 채널을 가지고 있다.대부분의 용병들은 채널을 통해 임무를 맡는다. 각종 임무나 가격, 난이도 지수 등 모두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매우 잡다한 종류가 있지만 사람이나 물건을 찾는 면에서 꽤나 유용했다.“음, 괜찮은 아이디어야.” 무진이 찬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손건호의 의견이 상당히 유효해 보였다. 그 패거리들, 딱 봐도 보통이 아니었다. 몸놀림이 모두 아주 좋았다.무진이 직접 훈련시
무진이 돌아오기 전에 성연은 호텔로 돌아왔다.소리 없이 나갔다가 돌아와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아마도 무진이 붙여 놓은 경호원 두 명은 적을 너무 가볍게 여겼다. 성연 같은 어린 여자애는 노릴만한 게 없다고 생각하고 경계를 늦추었다.호텔로 돌아오니 성연은 소파에 틀어박혀 몸을 웅크리고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그녀를 보는 순간 무진은 문득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자신이 어디를 가든 항상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가슴이 가득 부풀어올랐다.온몸의 피로까지 싹 사라지는 듯하다.외투를 한쪽 소파에 걸쳐 놓은 무진이 성연 옆에 앉았다.“오늘 호텔에서 뭐 했어?”성연은 머리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아무것도.”이 호텔에 놀만한 게 뭐 있다고?아직도 무진에게 약재를 빼앗겨 기분이 처져 있는 성연이다.무진이 다시 물건을 토해내도록 달려들고 싶은 것을 참은 것만해도 대단할 지경이다.푹 가라앉아 있는 성연의 표정을 본 무진은 병이 난 게 아닌가 걱정스러웠다.손을 내밀어 성연의 이마를 짚었다.이마의 온도는 정상이었다. 별 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호텔 안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지 좀 기운이 없어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무진이 물었다.“오후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손 비서에게 사오라고 할까?”“다 괜찮아요. 마음대로 해요.” 성연은 이제 뭘 먹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약재를 무진에게 빼앗긴 후로 성연의 세계는 이미 암흑으로 변했다.하필이면 강무진 이 인간에게 모진 마음을 못 먹어서는.성연은 누구도 싫어하지 않는다.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본인일 것이다.‘정말 못났다!’“그럼 손 비서한테 알아서 준비하라고 할게.” 무진이 성연의 머리카락을 쓸었다.멀쩡하던 머리카락이 금세 위로 치켜 뻗어도 성연은 상관하지 않았다.그냥 다른 모든 일에 조금도 흥미도 생기지 않았다.무진은 손건호를 시켜 호텔 밖의 맛있다고 정평 난 음식점에서 음식을 포장해 오게 했다.늘 호텔 음식을 먹었더니, 이거나 저거나 결국 그
무진은 성연이 평소와 달리 보이는 게 호텔에서 너무 오래 있어서라고 생각했다.성연이는 원래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말이다.성연이 답답해할까 다음 날 무진은 성연을 데리고 인근 놀이공원에 놀러 가자고 했다.성연의 눈에 놀라움의 빛이 가득 들어찼다. X국 놀이공원의 기구들이 아주 자극적이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예전부터 한번 체험해 보고 싶었다.그러나 무진의 곁에 있느라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그래서 결국 속으로 나중에 기회를 봐서 다시 와서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그런데 무진이 자신을 데리고 놀러 가자고 하다니, 정말 뜻밖이다.“무진 씨는 처리해야 할 일이 많잖아요?” 성연은 무척 가고 싶었지만 무진을 위해 슬쩍 사양하는 척했다.“일이 바쁘긴 해도 하루 종일 시간을 못 낼 정도는 아니야. 어때? 가고 싶어?” 무진은 주로 성연이 자신을 따라와서 아무것도 못 놀고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당연하죠. 당장 옷 갈아입고 올게요.” 성연이 뛸 듯이 기뻐했다.쏜살같이 뛰어가는 성연의 뒷모습을 보며 무진이 혼자 실소를 흘렸다.남들이 또 자신들을 남매로 오해할까 신경 쓰인 무진은 슈트를 입지 않았다. 머리에도 왁스를 바르지 않았다. 캐주얼 웨어와 약간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차갑던 무진의 전체 분위기를 젊고 부드럽게 만들었다.나가면 대학생이라고 해도 아마 다들 믿을 정도다.그런데 성연 또한 무진의 성숙한 분위기를 생각해서 좀 분위기 있는 원피스를 입었다.침실에서 나온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선택한 옷차림을 보며 시선을 교환하며 웃었다.두 사람은 호흡이 꽤 잘 맞았다.객실 입구까지 갔을 때 성연이 자발적으로 다가가 무진의 팔짱을 꼈다.무진의 입술 끝이 올라갔다.국내 놀이공원과 비교해서 X국의 놀이공원이 좀 더 성인 취향에 자극적이었다.스릴 넘치는 바이킹, 귀신의 집, 그리고 드롭 타워…….아마도 비교적 무난한 기구가 관람차 정도일 것이다.드롭 타워 매표구에 선 성연은 빨리 타고 싶어 안달 난 눈치다.“아가씨, 표
귀신의 집에서 나오니 날이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야간의 X국은 가는 곳마다 불빛으로 반짝였다. 도로 위로 올라서니 끝없이 넓은 들판이 한 눈에 들어왔다.무진의 손을 잡은 채 그에게 기댄 성연은 아주 가볍고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바람에 날린 성연의 머리카락이 팔 위로 떨어졌다. 마치 두 사람을 하나로 묶으려는 듯이.거리의 중심부까지 걸어가니 북적대는 것이 상당히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였다.거리 곳곳에서 공연 중인 사람들 틈에 한 남자 아이가 기타를 치고 있었다.성연의 고개가 자꾸 그리로 향하자 무진이 앞으로 나서며 성연의 시선을 가렸다.성연이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아니, 난 예술 감상도 못해? 진짜 치사해.’“어디 가서 뭐 좀 먹자.” 무진이 성연의 손을 꼭 잡은 채 앞으로 끌며 나아갔다.인파가 너무 많이 몰려 있었던 터라 군중 속에서 성연을 놓칠까 걱정이 된 무진이다.“뭐 먹을래?” 하루 종일 놀았던 성연도 배가 고팠다.“따라와.” 그녀의 손을 꼭 잡은 무진이 발걸음을 재촉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목조로 장식된 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벽에 그려진 정교한 삽화로 예술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무진이 종업원에게 몇 마디를 건넸다.그러자 종업원은 두 사람을 이층의 룸으로 안내했다.곧이어 다시 돌아온 종업원의 트레이 위에는 와인과 촛불이 있었다.성연이 속으로 생각했다.‘설마 말로만 듣던 촛불 디너?’종업원이 스테이크와 다른 요리를 올린 후, 조명을 껐다.환한 촛불은 음식을 먹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으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냈다.와인을 딴 무진이 성연의 잔에 따른 다음 자신의 잔에도 따랐다.그리고 성연의 접시를 자기 앞으로 당겨와 스테이크를 썰어 주었다.촛불에 무진의 이목구비가 더 도드라지며 무척이나 아름다웠다.턱을 괸 채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무진을 바라보며 성연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쿵, 쿵, 쿵’하는 소리가 귓가에서 아주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다.그러나 지금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꼭두새벽에 손건호가 별장에 도착했다.성연이 코디한 무진의 정장이 후리후리한 체형에 잘 매치되자, 성연의 두 눈에는 그야말로 하트가 가득했다.‘정말 멋있어, 너무 멋있어!’손건호가 다급한 표정으로 초대장을 건네주었다.“보스, 운성시의 상공회의소에서 보낸 초대장인데, 오늘 저녁 8시에 유니버설 호텔에서의 파티입니다.”무진은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이런 초대는 매일 몇 개나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오늘 스케줄에 이건 없지?” 말을 하면서 회사로 출발할 발걸음을 재촉했다.“없습니다.” 손건호는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더듬었다.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고 손건호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 있으면 빨리 말해. 빙빙 돌리지 말고!”“예!” 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이겁니다. 오늘 밤 이 파티의 주최자가 연계진의 연운그룹입니다. 그리고 진씨 가문도 참석한다고 합니다!”무진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진씨 가문은 정말 연계진과 같은 길을 가려고 하는 모양이네. 진 백부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진교철 한 명 때문에?’“손 비서, 곧바로 진교철의 국외에서의 모든 이력을 샅샅이 조사해줘! 그리고 파티에 참석하는 걸로 저녁 일정을 바꿔!”무진의 눈빛이 변했고, 그윽하게 빛나는 눈빛에는 형언할 수 없는 예리함이 가득했다.“보스, 왜 참석하시려는 겁니까? 그러면 연계진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닙니까? 보스, 가지 마세요. 연계진에게 보스는 쉽게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손건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무진이 가볍게 웃으면서 손건호의 어깨를 토닥였다.“너는 아직 좀 어려. 연계진 그 인간이 이렇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왜 굳이 보냈겠어?”“그럼 이건 연계진이 고의로 도발한 겁니까?”고개를 끄덕이며 거실에서 나온 무진은 벤틀리를 향해 걸어갔다.손건호가 얼른 차문을 열어준 뒤 바로 운전석에 올랐다.2층 안방에서 남편이 떠나는 모습
연운그룹 빌딩 회장실.연계진은 명문가의 두 자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가문은 모두 WS그룹 자회사에 납품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전 선생님과 임 선생님께서 가문의 사람들을 설득해서 상품을 우리 연운그룹에 조달할 수 있다면, WS그룹의 가격보다 30%를 더 쳐서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전혀 이익을 보지 않고 모두 당신들에게 양보하는 거나 한가지입니다.”연계진의 가늘고 긴 두 눈이 웃는 듯 마는 듯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두 부잣집 도련님들은 크게 동요한 게 분명했다. 30%의 이윤이라면 대충 계산해도 1년에 20억 원이 넘는 이익이 더 생길 것이다.이런 이익이라면 그들은 당연히 집안 어른들 앞에서 내세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기만 한다고 자신들을 욕하지 못할 것이다.“연 회장님,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분명히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며칠의 시간을 더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일단 좋은 소식이 있으면 즉시 회장님께 연락 드리겠습니다.”두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연계진이 이렇게 좋은 조건을 제시한 것은 WS그룹과 한 판 겨뤄보겠다는 게 분명했다. 만약 WS그룹과 등을 돌리게 된다면 결과는 아주 심각할 것이다.“그렇게 하세요. 가문의 발전에 관한 큰일이니까 두 분은 돌아가서 잘 협상해 보세요. 절대 가족들의 화목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연계진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여유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그의 온몸에는 제왕의 기세가 가득해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연계진을 믿게 되었다.두 부잣집 도련님이 나가자, 조수경의 마음은 크게 동요하면서 연계진을 대하는 눈빛은 반작거렸다.‘과거에 강무진에게 꽂혔을 때는 강무진이야말로 비즈니스의 제왕이라고 생각했어.’그러나 이제는 연계진도 이렇게 사람을 매혹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강무진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라서 원한을 풀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 돕고 싶었다.‘물론 송성
이른 아침, 샤넬의 전화를 받은 성연은 임신기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연이 전통 지식들을 가르쳐 주자, 샤넬은 어리둥절하게 들으면서 목현수에게 받아 적도록 했다.“샤넬, 이건 현수 사형도 다 알아요. 사실 당신이 직접 물어보면 되는데 굳이 내게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성연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샤넬이 크게 웃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샤넬이 뽐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무진은 최근 양대 조직의 부하들을 모두 모은 뒤에 훈련을 실시했다.손건호와 서한기는 서로 팀장 자리를 놓고 한바탕 겨뤘다.서로 치열하게 경합하자 결국 무진이 나서서 두 사람이 교대로 팀장을 맡고 한 달에 한 번 교대하도록 조치했다. 이번 달에는 서한기가 팀장을 맡도록 하자, 부팀장이 된 손건호는 불만이 가득했다.최종적으로 합친 조직의 이름은 무진과 성연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진성’으로 정했다.성연은 이 명칭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진성의 이름은 곧 전국, 나아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해외의 수많은 조직에서는 보스들이 분분히 부하들에게 앞으로 ‘진성’을 만나면 처벌하지 않을 테니까 임무를 바로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이렇게 많은 준비를 한 진성의 첫 임무는 당연히 연계진을 전방위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다.“무진 씨, 이건 너무 사소한 일에 조직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거 아니에요? 한 가문에 불과한 연씨 가문이 대단한 무력을 보유할 정도는 아니잖아요?”성연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무진에게 물었다.“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적은 드러나지 않았고 우리는 드러난 상태야.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어떤 위험도 없기를 원해. 그래서 안전을 확보하려고 조사하는 거야.”최근 한동안 무진은 운성시 전체에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전개되었고, 중견 기업의 기업가들과 일부 가문들도 연계진의 포섭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약속한 이익이 매혹적이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매수되었다.물론 거절하는 쪽이 더 많았다. 그들은 모두WS그룹의 든든한 지원군으
이른 아침, 연계진은 최근에 구입한 운성의 저택 침실에 있었다.잠에서 깬 조수경은 손에 시가를 든 연계진이 창문 앞에 선 채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헐렁하고 섹시한 잠옷 차림의 조수경이 고양이처럼 가볍게 남자의 뒤로 다가가서 껴안았다.조수경은 이 남자의 능력은 무진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이 남자는 성연에게 복수하겠다는 내 소원을 반드시 실현시킬 수 있을 거야.’고개를 숙여 자신을 껴안은 두 손을 보는 연계진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일어났네!”“계진 씨, 정말로 진혜선과 결혼할 거예요?”이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소원을 이루기만 하면 된다고 일찌감치 자신에게 다짐했지만, 스킨십이 있게 되자 조수경도 다소 감성적이게 되었다.몸을 돌린 연계진의 두 눈에는 순식간에 따뜻함이 가득했다. 손에 든 시가를 끄고는 돌아서서 활짝 웃으면서 조수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이건 반드시 해야 해. 진씨 가문의 실력은 WS그룹의 모든 지지 세력 중에서 가장 강력해. 진씨 가문과 혼인할 수만 있다면, 연씨 가문이 강씨 가문을 이겨서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야!”남자는 마치 7, 8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위로하는 것처럼 천천히 완곡하게 말했다.조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당신 말을 따를 테니까 나를 잊지만 않으면 돼요!”연계진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그럴 리가. 내 가장 큰 조력자인 당신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내가 왜 가장 먼저 당신을 찾았겠어?”약속을 받자 조수경은 흡족했다.오늘이 계획 실행을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송성연, 결혼했다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너에게 가장 심각한 일격을 날려 줄게!”옷을 갈아입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조수경이 총총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연계진의 비서 서진아가 조수경을 그 감옥으로 안내하는 일을 책임질 것이다.한 시간 남짓 달려서 운성시 북쪽의 한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조수경은 절차에 따라서 접견실에서 송아연
“혜선 언니는 승낙했어요?”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진혜선의 눈빛에 걱정이 드러났지만 곧바로 웃으면서 숨겼다.“아직 승낙하지 않았어. 하지만 무진이도 알겠지만 나는 집안의 결정을 거역할 수 없어. 당연히 두 사람의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야.”“무진 씨보고 이 모든 걸 막아달라는 말이에요?”성연은 갑자기 뭔가 불편한 느낌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이건 결국 진혜선 자신의 혼사야. 내 남편이 다른 여자의 혼사에 간섭하는 건 어쨌든 좀 이상한 걸.’무진은 줄곧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진씨 가문에서 뜻밖에도 연씨 가문과 가깝게 지내기로 결정할 줄은 몰랐어. 연계진은 도대체 어떤 좋은 점을 약속한 걸까?’‘두 집안이 이미 이렇게 오랫동안 연합하면서, 진씨 가문은 줄곧 기꺼이 강씨 가문의 거대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어. 원래 진상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자립해서 가문을 이끌 수 있었지. 아니면 WS그룹에서 나오는 진씨 가문의 이익을 차단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 진씨 가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걸 선택하지 않았어.’‘지금 갑자기 태도를 바꾸다니, 이건 정말 너무 이상한데.’무진의 마음을 한순간에 간파한 듯 진혜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무진아, 진씨 가문에는 두 일가가 있다는 걸 잊지 마. 우리 장남 일가는 과거에 줄곧 차남 일가를 눌렀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강씨 가문과 함께 할 수 있었어. 그러나 최근 차남 일가에서 진교철이라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 나왔어. 진교철이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해외에서 돌아왔는데, 이번에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 일가와 관계를 끊겠다는 거야.”“형제 간의 반목으로 가문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우리 아버지는, 진교철의 요구에 동의하고는 나보고 연계진과 혼인하라고 하셨어. 아무튼 이번에는 정말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어.”이렇게 직접적인 진혜선의 SOS 요청에 무진은 다소 놀란 듯했다. ‘진혜선은 평소에 성숙하고 침착한 여장부의 모습을 보였어. 정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렇게 먼저 내게 도
진혜선이 고른 식당은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탄 뒤에야 도착했다.남쪽에서는 흔치 않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한옥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공기 중에는 은은한 풀내음이 났고, 개울가의 작은 다리와 고풍스러운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상쾌한 환경에 아주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진혜선이 성연을 보자 웃으면서 인사했다.“성연 씨 오늘 이 옷은 정말 운치가 있네. 과연 결혼한 여자야말로 진정한 매력이 넘치는 모양이야.”“혜선 언니 놀리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 언니하고 여자의 운치를 비교할 수 있겠어요?” 성연은 진혜선의 옷차림을 관찰했다. 오늘은 오히려 캐주얼한 옷차림인데, 이전에 몇 번 봤던 화려한 옷차림과는 전혀 달랐다.‘정말 아름다워. 이렇게 간단하게 꾸몄는데도 막 대학을 졸업한듯한 모습이야.’하지만 성연은 진혜선이 무진보다 두 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성연은 마음 속으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혜선 언니와 무진 씨는 자연스럽게 친근한 관계야. 그리고 탁월한 능력에 저런 미모라면 내가 남자라도 마음이 움직일 거야.’“가자, 이 식당은 예약제야. 매일 여덟 테이블의 손님만 받아.” 진혜선은 두 사람을 데리고 청룡각이라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 여덟 테이블 중에서 청룡각이 제일 먼저 공략 대상이 될 게 분명해. 예약한 사람도 아마 더 많을 것 같은데.”무진은 진혜선을 바라보았다.진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어렵긴 했어. 하지만 오늘 WS그룹 대표께서 오셨으니 이 사람들 복이기도 해!”고전적인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메뉴를 건네주자 지배인이 공손하게 말했다.“강 대표님과 사모님, 두 분께서 메뉴를 좀 봐주세요. 고르기 어려우시면 제가 메뉴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무진은 성연에게 메뉴를 건네주었다.“좋아하는 게 있는지 한번 봐.” 성연이 메뉴를 보니 요리 이름도 ‘안개비 내리는 숲’ ‘눈 덮인 호숫가’ ‘호수의 기억’처럼 남쪽 지방의 정취가 가득한 독특한
무진이 일어나려고 할 때 갑자기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자리에 앉은 무진이 손건호에게 눈빛을 보냈다.“들어오세요!”손건호가 대답했다.문이 열리자 잘생긴 젊은 남자가 들어와서 무진을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들어온 사람은 바로 소지연의 먼 친척이자 유럽지역 본부장인 소태경이다.“괜찮아요. 무슨 보고할 게 있습니까?” 무진은 평온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다소 어색해하면서 몇 초 동안 망설이던 소태경이 결국 입을 열었다.“대표님, 바로 이 얘기인데요. 제가 사전에 상황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연계진 씨의 초청에 잘못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연씨 가문과 우리 WS그룹이 아주 직접적인 경쟁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잘못된 처신을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무진은 소태경이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사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원래 그 일이었군요! 괜찮아요,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당신을 유럽 지역의 본부장으로 임명한 건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작은 일을 가지고 어떻게 소 본부장을 의심할 수 있겠어요?”무진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지만, 소태경은 무진의 동작 하나 하나가 책략을 세우는 듯한 느낌이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소태경은 조금도 기쁜 기색이 없이 계속 말했다.“다음번에는 반드시 명심하고 절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 귀국한 것도 사촌누님의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예전에 농촌에 있던 저를 데리고 나와 주셨기 때문입니다.”“효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나도 이 점을 굳게 믿습니다!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일이 마무리되면 빨리 유럽으로 가서 진두지휘하세요. 지금 MS 가문은 이미 몰락했으니 소 본부장이 실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무진의 간단한 몇 마디에 사기가 고무된 소태경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빛을 빛냈다.“제가 반드시 우리 WS그룹을 유럽에서 3위 안에 들게 만들겠습니다!”소태경이 나가
WS그룹 대표 사무실.“보스, 보스가 안 계시던 요 며칠 동안 연계진은 파티를 크게 열었습니다. 북성의 명사들을 참석하도록 초청했는데 아주 떠들썩했습니다.”“뿐만 아니라 연계진은 비밀리에 우리 회사의 두 지역 본부장을 만났습니다. 유럽 본부장으로 새로 부임한 소태경과 북미 본부장 진상철입니다.”손건호도 유럽으로 따라갔지만, 북성에 배치된 모든 정보망은 끊임없이 계속 운영되고 있었다. 돌아오자마자 바로 모든 정보를 정리해서 가장 빠르게 무진에게 보고했다.소태경, 무진은 그 이름이 익숙했다. 소지연의 먼 사촌동생으로서 전에는 소지연을 도와서 유럽 업무를 처리했다. 소지연이 잘린 뒤에도 소태경은 계속 위로 올라갔다.진상철, 이 사람도 오랜 지인이었다. 진씨 가문과 강씨 가문은 수십 년 동안 친밀한 관계를 이어 왔다. 무진이 둘째, 셋째 일가를 정리할 때 진씨 가문은 더욱 확고부동하게 무진의 모든 결정을 지지하였다. 물론 진상철은 바로 진혜선의 오빠라는 또 하나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 성격이 침착하고 업무 처리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북미 지역의 최근 2년 동안의 실적은 대단히 빠르게 늘어났다.연계진이 왜 하필 이 두 사람을 찾은 것인지 무진은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소태경만 찾았다면 오히려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결국 앞서 소지연의 일로 격노한 무진은 소씨 가문에 아주 쓰라린 교훈을 안겨주었다. 소씨 가문의 일맥인 소태경이 소지연의 복수를 생각하거나, 쉽게 모반을 획책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그러나 진상철 그는 무진보다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진상철은 이미 북미 지역에 7년을 머물렀지만 돌아온 적이 없었다. 평소에 화상회의 외에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고, 무진도 기본적으로 진상철의 어떤 일에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업적을 올릴 생각만 하는 순수한 사람이었다.“그래서 네 말은 진상철이 최근에 귀국했다는 거야?” 이 핵심을 떠올린 무진의 입꼬리가 절로 떠올랐다.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습니다. 돌아온 지 며칠
북성, 이씨 가문의 저택.눈앞의 연계진을 살펴보는 이상효의 마음이 한바탕 복잡해졌다.유난히 얌전하게 홍차를 우려낸 소지연이 이상효 앞에 공손하게 차를 들고 왔고, 곧바로 손님에게도 차를 내주었다.마치 노예처럼 마음속으로 무수한 괴로움을 겪었지만, 소지연은 발버둥칠 수도 없었다.입덧을 꾹 참은 채, 언제든지 차를 추가할 수 있도록 찻주전자를 들고 옆에서 조심스럽게 기다려야 했다.‘나를 이렇게 쓰라린 처지로 만든 건 바로 송성연이야.’ 소지연은 수없이 분노하고 저주하면서 성연이 일찍 죽기만을 기원했다.“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기회만 있다면 독사처럼 목덜미를 물어뜯겠어.”소지연의 마음은 이미 완전히 비뚤어졌다. 만약 뱃속의 아이가 아니었다면, 성연과 함께 죽을 생각도 수없이 많이 했다.지금 이상효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느꼈다. 당대에는 견줄 만한 바가 없던 결혼식에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강씨 가문의 넓은 인맥과 막강한 권세였다.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이상효가 강씨 가문을 번거롭게 만드는 걸 반대하고 나섰다.그러나 이상효는 강력한 적일수록 베어 먹는 이익은 더욱 감동적이라면서 반박하는 의견을 제기하였다.이씨 가문의 세력은 너무 작아서 이렇게 큰 운성시에서는 전혀 주류를 이루지 못했다. 그의 야심은 반드시 강력한 세력에 의지해야만 실현될 수 있었다.의심의 여지없이 지금의 연계진은 아주 좋은 기댈 만한 세력이다.연씨 가문이 이번에 남방에서 손을 썼는데,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연씨 가문이 이미 재정비하고 일어섰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아주 명확한 태도를 취했다. 물론 연씨 가문이 생각처럼 그렇게 약하지 않아서, 함께 협력하면 강씨 가문을 상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이상효에게도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연계진이 그렇게 준수하고 깨끗하게 생기지 않았다면, 이상효는 좀 더 신임했을 것이다.“연계진 씨, 예전에 강씨 가문에 내분이 일어나서 죽기 살기로 싸웠을 때, 당신은 왜 그 기회를 틈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