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의 집에서 나오니 날이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야간의 X국은 가는 곳마다 불빛으로 반짝였다. 도로 위로 올라서니 끝없이 넓은 들판이 한 눈에 들어왔다.무진의 손을 잡은 채 그에게 기댄 성연은 아주 가볍고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바람에 날린 성연의 머리카락이 팔 위로 떨어졌다. 마치 두 사람을 하나로 묶으려는 듯이.거리의 중심부까지 걸어가니 북적대는 것이 상당히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였다.거리 곳곳에서 공연 중인 사람들 틈에 한 남자 아이가 기타를 치고 있었다.성연의 고개가 자꾸 그리로 향하자 무진이 앞으로 나서며 성연의 시선을 가렸다.성연이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아니, 난 예술 감상도 못해? 진짜 치사해.’“어디 가서 뭐 좀 먹자.” 무진이 성연의 손을 꼭 잡은 채 앞으로 끌며 나아갔다.인파가 너무 많이 몰려 있었던 터라 군중 속에서 성연을 놓칠까 걱정이 된 무진이다.“뭐 먹을래?” 하루 종일 놀았던 성연도 배가 고팠다.“따라와.” 그녀의 손을 꼭 잡은 무진이 발걸음을 재촉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목조로 장식된 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벽에 그려진 정교한 삽화로 예술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무진이 종업원에게 몇 마디를 건넸다.그러자 종업원은 두 사람을 이층의 룸으로 안내했다.곧이어 다시 돌아온 종업원의 트레이 위에는 와인과 촛불이 있었다.성연이 속으로 생각했다.‘설마 말로만 듣던 촛불 디너?’종업원이 스테이크와 다른 요리를 올린 후, 조명을 껐다.환한 촛불은 음식을 먹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으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냈다.와인을 딴 무진이 성연의 잔에 따른 다음 자신의 잔에도 따랐다.그리고 성연의 접시를 자기 앞으로 당겨와 스테이크를 썰어 주었다.촛불에 무진의 이목구비가 더 도드라지며 무척이나 아름다웠다.턱을 괸 채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무진을 바라보며 성연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쿵, 쿵, 쿵’하는 소리가 귓가에서 아주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다.그러나 지금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음식점을 나온 무진과 성연은 산책을 하며 호텔로 돌아갔다.모처럼 출국해서인지 차분하니 다른 나라의 풍속과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조금 전 부끄러움에 달아올랐던 얼굴의 붉은 기운이 바람을 쐬는 동안 많이 사라졌다.세상에, 강무진이 이렇게 자신을 건드리며 자극하다니, 예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나날이 변해가는 세상풍조에 미색마저 사람을 홀리고 있다.무진은 계속 딴 데 정신을 팔고 있는 성연의 손을 단단히 잡아당겨 발 밑의 돌을 피하게 했다.자신을 세심히 살피는 무진의 동작에 성연의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졌다.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는 이런 느낌이 정말 좋았다.수하들은 모두 성연이 뭐든 못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며, 보스로서 자신을 하늘처럼 떠받들었다.그러나 그녀도 한낱 소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워낙 자신이 강하다 보니 그녀 자신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하지만 무진의 다정한 보살핌은 매번 성연 내면의 연약함을 건드렸다.무진이라면 안심하고 자신을 내맡길 수 있었다. 아무런 염려 없이.갑자기 생각이 난 듯 성연이 물었다.“무진 씨, 왜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거예요? 나를 좋아해요?”성연의 말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던 무진이 곧 다시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너는 내 약혼녀야. 널 좋아하지 않으면 누구를 좋아하겠니?”아직 어린 성연은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는 무진에게 좀 놀랐다.하지만 무진의 고민을 이해하기엔 아직 서투른 성연은 그의 애매한 대답에 기분이 나빠졌다.‘그 말은 뭐야? 누구든 자기 약혼녀라면 다 좋아한다는 뜻 아냐?’성연은 왠지 좀 짜증스러운 기분을 느꼈다.서로 자기 생각에 빠진 두 사람이 침묵에 빠졌다.앞의 골목만 지나면 곧 묵고 있는 호텔이다.그때 골목에서 발자국 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오자 표정이 어두워진 무진이 걸음을 멈추었다.무진의 뒤에서 이런저런 일을 생각하며 걷고 있던 성연이 갑자기 멈춘 무진의 등에 곧바로 콕, 부딪혔다. 고개를 들어 한 마디 따지려던 성연이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잠시
처음에는 능히 상대할 수 있던 무진이었지만, 이 검은 옷의 남자들은 실로 실력이 상당했다.성연을 엄호하며 저들을 상대하느라 무진의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점차 힘에 부치는 것 같았다.무진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비상벨을 눌렀다.지금이면 손건호가 이미 신호를 받았을 것이다.그러나 오늘 손건호는 자신의 지시에 따라 지사로 간 터였다.서둘러 온다 해도 일정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잠시 시간을 끈다 해도 잠시일 뿐이다.이 패거리는 확실히 좋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오로지 싸움에만 집중하는 모양새가 꼭 목숨을 내놓고 싸우도록 전문적 훈련을 받은 치들 같았다.저들이 칼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 순간, 무진은 어쩌면 오늘 밤 상황이 아주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자신이 아니라 성연이 가장 염려스러웠다.무진은 성연 쪽을 흘깃 쳐다보았다.멍하니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선 성연이 눈에 들어왔다.겁에 질린 듯한 모습이다.무진의 눈에 걱정스러운 빛이 비쳤다.“송성연, 괜찮아?”분명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던 무진이 이때 또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다.“무진 씨, 제발 저들에게 집중해요! 한눈팔지 말고!”이를 부득부득 가는 듯 다소 격분한 어투로 성연이 소리쳤다.상대방은 칼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알고는 있는 건지?’“나는 네가 걱정이야.” 무진의 어투는 차분했지만 깊은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도대체 이 남자, 멍청한 건지 어떤 건지 감을 못 잡겠어.’그녀는 무진에게 소리를 낮춰 외쳤다.“나는 무진 씨 뒤에서 안전하게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그러니 당신은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라고요.’하지만 마지막 한마디는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무진은 성연이 자신과 여상이 대화할 수 있음을 확인하고 다소 안심이 되었다.이내 눈앞의 패거리를 물리치기 위해 다시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조들은 마치 꽉 들어찬 말벌집처럼 하나와 싸우면 또 하나가 튀어나왔다. 체력도 어찌나 좋은 지.무진은 자신의 동작이
순간 무진의 동공이 수축하며 삽시간에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절체절명의 위기.무진이 성연을 잡아당기는 순간 성연을 향했던 칼이 무진의 팔에 박혔다.붉은 피가 팔을 타고 흘러내렸다.검은 옷의 남자가 칼을 뽑을 때, 무진이 심음을 흘리며 반쯤 무릎을 꿇었다.성연의 얼굴에 경악스러운 표정이 들어찼다.사실 유연하고 민첩한 몸을 가진 그녀는 스스로 이 칼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칼날이 다가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그런데 무진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선혈이 흐르는 팔을 본 성연은 순간 멍했다.곧이어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코가 시큰거리며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사람은 모두 이기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강무진은 무엇때문에 스스로를 희생해서 그녀 자신을 구하려 든거지?성연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강무진, 당신 바보야? 왜 당신이 뛰어들어 칼을 맞아! 당신, 정말 바보야.”몸을 웅크리고 앉아 무진의 상처를 보는 성연의 손이 조금씩 떨려왔다.무진이 그녀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위로하듯이 미소를 지었다.“겁먹지 마, 난 괜찮아.”“나는 분명히 피할 수 있었다고요. 지금 뭐하는 거예요?” 성연은 무진을 바라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알아, 너 대단해. 알아서 피할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내가 겁이 났어.” 무진의 새카만 눈동자가 성연을 똑바로 쳐다보았다.성연이 다치고 상처를 입을까 봐 겁이 났다. 자신 때문에 성연이 뜻밖의 사고를 당할까 봐 무서웠다.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차라리 자신이 다치는 게 나았다.무진의 눈빛에 꼭 데일 것만 같은 기분이 든 성연은 어색한 듯이 무진의 다친 팔로 시선을 옮겼다.치마의 한쪽을 찢어 무진에게 지혈을 해주려 했다.그런데 도저히 지혈이 되지 않았다.칼날이 박혔던 상처가 너무 컸다.피로 흠뻑 젖은 하얀 치마 조각을 본 성연의 눈이 금세 붉어졌다.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검은 옷의 패거리들은 성연과 무진을 가만둘 생각이 없었다.두 사람을 완전히 없애 버릴 생각인지 공격이
무진과 성연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서고 검은 옷의 패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드는 상황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성연과 무진은 코너로 몰렸다.무진의 얼굴은 이제 투명할 정도로 창백해서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두 사람은 이제 막다른 길에 몰린 상태였다.주먹을 움켜쥔 성연이 무진의 상태를 보며 막 손을 쓰려던 때, 우르르 몰려오는 듯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설마 이 놈들의 패거리일까?’이 몇 명만 해도 상대하기 힘든데 인원이 더 늘어난다면…….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성연의 마음도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성연은 이제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가만히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다가는 결국 죽음밖에 없을 것이다.어차피 무진이 이미 스스로를 희생해 그녀를 구했으니, 그녀도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성연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움을 시작하려 할 때, 귓가에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보스, 사모님.”손건호의 음성이다.희망을 발견한 성연이 즉시 소리쳤다.“손 비서님, 빨리, 무진 씨가 다쳤어요.”무진이 다쳤다는 말을 들은 손건호가 즉시 달려왔다. 무진의 다친 팔을 본 손건호의 안색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바로 걱정으로 가득찼다.“저 xx들이 감히 보스를 다치게 하다니!”“그렇게 심하지 않아.” 담 모퉁이에 기댄 무진은 호흡이 아주 약해져 있었다.“보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일어선 손건호가 검은 옷의 무리들과 맞붙었다.검은 옷의 패거리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철수하려고 했다.손건호가 데려온 이들이 그 틈에 추격해서 곧바로 패거리를 제압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저들은 경험이 많은 지 즉시 골목의 각 방향으로 달아났다.손건호는 차가운 음성으로 끝까지 추격할 것을 지시했다.“당장 저 놈들 잡아와. 한 놈도 놓치지 말고.”‘하, 간이 배 밖으로 나와 하늘을 가릴 정도군. 감히 우리 보스를 상처 입히다니.’구석에서 성연은
무진은 곧바로 응급실로 실려갔다.응급실 입구에서 기다리는 손건호와 성연, 두 사람은 응급실 쪽을 뚫어지게 응시했다.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얼마가 지났는지도 알 수 없을 때, 의사가 안에서 나왔다.성연과 손건호는 즉시 일어서서 다가섰다.“우리 보스는 어떻습니까?”손건호가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의사가 마스크를 벗고 손건호와 성연에게 말했다.“남자 분의 몸 바탕이 원래 그리 좋은 편이 아닙니다. 출혈이 너무 많아서 아직 혼수상태에 있습니다. 언제 깨어날 수 있을지는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부상이 상당히 심각한 상태입니다. 계속해서 잘 치료하고 관리해야 회복할 수 있습니다.”손건호의 안색이 굳어졌다.“네, 의사 선생님. 감사합니다.”무진의 상황이 썩 좋지 않을 거로 짐작했던 성연이지만 이렇게까지 나쁠 줄은 몰랐다.무진의 상처에 대한 처치가 끝난 후라 가족들이 들어가서 돌볼 수 있었다.이제 무진이 깨어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성연은 병실로 들어가 무진을 지켰다.손건호는 상처를 거즈를 싸맨 채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무진을 보면서 차마 눈을 떼지 못했다. 안금여와 강운경이 이런 무진의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성연을 본 손건호가 살짝 한숨을 쉬었다.“작은 사모님은 괜찮으십니까? 다친 곳은 없습니까?”무진의 오늘 행동에 손건호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송성연은 강무진이 목숨을 다해 지키고 싶은 존재라는 것을.성연의 존재는 자신에게 있어 제2의 주인이나 마찬가지였다.비록 무진 스스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성연을 구했다는 건 성연의 지위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손건호는 자기 보스 또한 자신의 목숨을 매우 아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안다.그래서 그동안 치료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왔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성연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나는 다치지 않았어요. 무진 씨가 완전히 보호해 주었어요.” 성연이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그래, 강무진은 날 조
같은 시각.강상철과 강상규도 이 소식을 들었다.그들은 벌써 축하 파티를 열었다. 아픈 몸으로 간 무진이 이제 중상을 입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무진이 죽기만 한다면 큰댁은 더 이상 후계자의 자리를 차지할 구실이 없을 터이다.오늘의 축하파티에는 강상철과 강상규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라인에 속하는 몇몇 인사들도 있었다. 그들은 무진에게 정리되지 않은 채 요행히 아직 회사에 남아 있었다.강일헌과 강진성, 심지어 강문호도 있었다.그들이 큰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강문호는 X국에서 더 이상 자신의 자리가 없을까 걱정했다. 강무진이 가장 먼저 칼을 들 사람이 바로 자신일 테니까.그래서 강문호는 밤새 비행기표를 사서 북성으로 날아왔다.북성에는 이렇게 강상철과 강상규가 있었다. 두 명의 어르신이 여기에 떡하니 자리잡고 앉아 있으니, 강무진이라도 감히 자신을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이다.“이제 WS그룹은 바로 강 부회장님과 강 사장님의 천하입니다. 제가 먼저 지금 두 분이 일이 성공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이때 한 고위 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강상철과 강상규에게 술을 권했다.강상철과 강상규도 아주 체면을 차리면서 마셨다.만면에 홍조를 띤 채 무척이나 득의양양한 모습을 통해 오늘 밤 그들의 기분이 매우 좋다는 사실을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강상철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강무진 그 병신 xx가 감히 우리와 싸우려 들다니? 이제 우리 손에 꼬꾸라진 것 아니겠나?”강무진이 나중에 회사의 실권을 잡았음에도 강상철은 여전히 무진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지금 무진이 중상을 입었다고 하니 강상철의 기세가 더 등등해졌다.“맞습니다, 역시 오래된 생강이 매운 법이지요. 강 부회장님의 지모가 대단하시니, 강무진은 당연히 버틸 수 없을 테지요. 이후 회장직에 오르시면 저희들을 데리고 가시는 걸 잊지 말아주십시오.” 또다른 임원이 옆에서 아부성의 말을 했다.“당연하지요. 여러분은 안심하세요. 앞으로 강씨 집안의 그 자리에 앉게 되
무진이 없는 지금 안금여는 회사에서의 실권을 점차 내려놓고 집에서 휴양하고 있었다.현재 WS그룹에는 강운경 혼자 남아 있었다.비록 강운경은 결혼을 했지만 WS그룹에 입사했다.그러나 결혼을 해서 다른 집안의 사람이 되었기에 강상철과 강상규에 비하면 강운경의 발권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이번에 무진이 중상을 입고 입원 중이라는 사실은 WS그룹의 판세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안금여 쪽은 아직 이 일을 모르고 있었다.아직 회복 단계에 있는 안금여가 지금 손자 무진이 다쳤다는 말을 듣는다면 분명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감히 안금여에게 소식을 알릴 수 없었던 손건호는 서둘러 정보를 차단했다.그리고 일부러 속였다.강상철, 강상규 쪽은 성급하게 축하하느라 다른 것들을 아예 생각지 않았다.외국에서 무진은 돌발적인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고열이 너무 심한 나머지 무진의 원래 창백하던 안색이 더 창백해졌다.그는 괴로운지 양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 피부 전체를 뒤덮었다.볼이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손에 닿는 온도가 엄청 뜨겁다.성연은 눈썹을 찌푸린 채 줄곧 옆에 붙어 땀을 닦아주며 무진을 간병했다.손건호도 옆에서 지키고 있었다. 그는 성연처럼 침착하지 못하고 초조한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손 비서님, 욕실에 가서 수건 좀 가져다주세요.” 옆에서 연신 한숨을 쉬는 통에 시끄러워서 짜증이 났다.가뜩이나 초조한 마음인데 손건호의 한숨 소리에 더 조급해지는 듯하다.여기서 자신을 방해하도록 그냥 두기보다는 차라리 다른 일을 하게 하는 것이 나을 터였다.“예, 사모님.” 대답한 손건호는 바로 욕실로 가서 수건을 꺼냈다.“한 장 더 갖다 주세요.” 성연이 침착한 음성으로 부탁했다.왠지 성연을 보던 손건호는 안심이 되었다.두말없이 바로 안에서 수건을 하나 더 꺼내 왔다.성연은 수건 한 장을 무진에 이마에 올려 두고 다른 수건 한 장으로 무진의 몸을 닦으며 체온을 낮췄다.좀 늦은 시간이 되자 무진과 성연 두
꼭두새벽에 손건호가 별장에 도착했다.성연이 코디한 무진의 정장이 후리후리한 체형에 잘 매치되자, 성연의 두 눈에는 그야말로 하트가 가득했다.‘정말 멋있어, 너무 멋있어!’손건호가 다급한 표정으로 초대장을 건네주었다.“보스, 운성시의 상공회의소에서 보낸 초대장인데, 오늘 저녁 8시에 유니버설 호텔에서의 파티입니다.”무진은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이런 초대는 매일 몇 개나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오늘 스케줄에 이건 없지?” 말을 하면서 회사로 출발할 발걸음을 재촉했다.“없습니다.” 손건호는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더듬었다.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고 손건호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 있으면 빨리 말해. 빙빙 돌리지 말고!”“예!” 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이겁니다. 오늘 밤 이 파티의 주최자가 연계진의 연운그룹입니다. 그리고 진씨 가문도 참석한다고 합니다!”무진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진씨 가문은 정말 연계진과 같은 길을 가려고 하는 모양이네. 진 백부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진교철 한 명 때문에?’“손 비서, 곧바로 진교철의 국외에서의 모든 이력을 샅샅이 조사해줘! 그리고 파티에 참석하는 걸로 저녁 일정을 바꿔!”무진의 눈빛이 변했고, 그윽하게 빛나는 눈빛에는 형언할 수 없는 예리함이 가득했다.“보스, 왜 참석하시려는 겁니까? 그러면 연계진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닙니까? 보스, 가지 마세요. 연계진에게 보스는 쉽게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손건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무진이 가볍게 웃으면서 손건호의 어깨를 토닥였다.“너는 아직 좀 어려. 연계진 그 인간이 이렇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왜 굳이 보냈겠어?”“그럼 이건 연계진이 고의로 도발한 겁니까?”고개를 끄덕이며 거실에서 나온 무진은 벤틀리를 향해 걸어갔다.손건호가 얼른 차문을 열어준 뒤 바로 운전석에 올랐다.2층 안방에서 남편이 떠나는 모습
연운그룹 빌딩 회장실.연계진은 명문가의 두 자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가문은 모두 WS그룹 자회사에 납품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전 선생님과 임 선생님께서 가문의 사람들을 설득해서 상품을 우리 연운그룹에 조달할 수 있다면, WS그룹의 가격보다 30%를 더 쳐서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전혀 이익을 보지 않고 모두 당신들에게 양보하는 거나 한가지입니다.”연계진의 가늘고 긴 두 눈이 웃는 듯 마는 듯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두 부잣집 도련님들은 크게 동요한 게 분명했다. 30%의 이윤이라면 대충 계산해도 1년에 20억 원이 넘는 이익이 더 생길 것이다.이런 이익이라면 그들은 당연히 집안 어른들 앞에서 내세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기만 한다고 자신들을 욕하지 못할 것이다.“연 회장님,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분명히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며칠의 시간을 더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일단 좋은 소식이 있으면 즉시 회장님께 연락 드리겠습니다.”두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연계진이 이렇게 좋은 조건을 제시한 것은 WS그룹과 한 판 겨뤄보겠다는 게 분명했다. 만약 WS그룹과 등을 돌리게 된다면 결과는 아주 심각할 것이다.“그렇게 하세요. 가문의 발전에 관한 큰일이니까 두 분은 돌아가서 잘 협상해 보세요. 절대 가족들의 화목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연계진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여유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그의 온몸에는 제왕의 기세가 가득해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연계진을 믿게 되었다.두 부잣집 도련님이 나가자, 조수경의 마음은 크게 동요하면서 연계진을 대하는 눈빛은 반작거렸다.‘과거에 강무진에게 꽂혔을 때는 강무진이야말로 비즈니스의 제왕이라고 생각했어.’그러나 이제는 연계진도 이렇게 사람을 매혹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강무진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라서 원한을 풀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 돕고 싶었다.‘물론 송성
이른 아침, 샤넬의 전화를 받은 성연은 임신기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연이 전통 지식들을 가르쳐 주자, 샤넬은 어리둥절하게 들으면서 목현수에게 받아 적도록 했다.“샤넬, 이건 현수 사형도 다 알아요. 사실 당신이 직접 물어보면 되는데 굳이 내게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성연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샤넬이 크게 웃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샤넬이 뽐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무진은 최근 양대 조직의 부하들을 모두 모은 뒤에 훈련을 실시했다.손건호와 서한기는 서로 팀장 자리를 놓고 한바탕 겨뤘다.서로 치열하게 경합하자 결국 무진이 나서서 두 사람이 교대로 팀장을 맡고 한 달에 한 번 교대하도록 조치했다. 이번 달에는 서한기가 팀장을 맡도록 하자, 부팀장이 된 손건호는 불만이 가득했다.최종적으로 합친 조직의 이름은 무진과 성연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진성’으로 정했다.성연은 이 명칭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진성의 이름은 곧 전국, 나아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해외의 수많은 조직에서는 보스들이 분분히 부하들에게 앞으로 ‘진성’을 만나면 처벌하지 않을 테니까 임무를 바로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이렇게 많은 준비를 한 진성의 첫 임무는 당연히 연계진을 전방위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다.“무진 씨, 이건 너무 사소한 일에 조직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거 아니에요? 한 가문에 불과한 연씨 가문이 대단한 무력을 보유할 정도는 아니잖아요?”성연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무진에게 물었다.“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적은 드러나지 않았고 우리는 드러난 상태야.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어떤 위험도 없기를 원해. 그래서 안전을 확보하려고 조사하는 거야.”최근 한동안 무진은 운성시 전체에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전개되었고, 중견 기업의 기업가들과 일부 가문들도 연계진의 포섭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약속한 이익이 매혹적이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매수되었다.물론 거절하는 쪽이 더 많았다. 그들은 모두WS그룹의 든든한 지원군으
이른 아침, 연계진은 최근에 구입한 운성의 저택 침실에 있었다.잠에서 깬 조수경은 손에 시가를 든 연계진이 창문 앞에 선 채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헐렁하고 섹시한 잠옷 차림의 조수경이 고양이처럼 가볍게 남자의 뒤로 다가가서 껴안았다.조수경은 이 남자의 능력은 무진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이 남자는 성연에게 복수하겠다는 내 소원을 반드시 실현시킬 수 있을 거야.’고개를 숙여 자신을 껴안은 두 손을 보는 연계진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일어났네!”“계진 씨, 정말로 진혜선과 결혼할 거예요?”이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소원을 이루기만 하면 된다고 일찌감치 자신에게 다짐했지만, 스킨십이 있게 되자 조수경도 다소 감성적이게 되었다.몸을 돌린 연계진의 두 눈에는 순식간에 따뜻함이 가득했다. 손에 든 시가를 끄고는 돌아서서 활짝 웃으면서 조수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이건 반드시 해야 해. 진씨 가문의 실력은 WS그룹의 모든 지지 세력 중에서 가장 강력해. 진씨 가문과 혼인할 수만 있다면, 연씨 가문이 강씨 가문을 이겨서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야!”남자는 마치 7, 8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위로하는 것처럼 천천히 완곡하게 말했다.조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당신 말을 따를 테니까 나를 잊지만 않으면 돼요!”연계진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그럴 리가. 내 가장 큰 조력자인 당신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내가 왜 가장 먼저 당신을 찾았겠어?”약속을 받자 조수경은 흡족했다.오늘이 계획 실행을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송성연, 결혼했다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너에게 가장 심각한 일격을 날려 줄게!”옷을 갈아입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조수경이 총총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연계진의 비서 서진아가 조수경을 그 감옥으로 안내하는 일을 책임질 것이다.한 시간 남짓 달려서 운성시 북쪽의 한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조수경은 절차에 따라서 접견실에서 송아연
“혜선 언니는 승낙했어요?”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진혜선의 눈빛에 걱정이 드러났지만 곧바로 웃으면서 숨겼다.“아직 승낙하지 않았어. 하지만 무진이도 알겠지만 나는 집안의 결정을 거역할 수 없어. 당연히 두 사람의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야.”“무진 씨보고 이 모든 걸 막아달라는 말이에요?”성연은 갑자기 뭔가 불편한 느낌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이건 결국 진혜선 자신의 혼사야. 내 남편이 다른 여자의 혼사에 간섭하는 건 어쨌든 좀 이상한 걸.’무진은 줄곧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진씨 가문에서 뜻밖에도 연씨 가문과 가깝게 지내기로 결정할 줄은 몰랐어. 연계진은 도대체 어떤 좋은 점을 약속한 걸까?’‘두 집안이 이미 이렇게 오랫동안 연합하면서, 진씨 가문은 줄곧 기꺼이 강씨 가문의 거대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어. 원래 진상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자립해서 가문을 이끌 수 있었지. 아니면 WS그룹에서 나오는 진씨 가문의 이익을 차단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 진씨 가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걸 선택하지 않았어.’‘지금 갑자기 태도를 바꾸다니, 이건 정말 너무 이상한데.’무진의 마음을 한순간에 간파한 듯 진혜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무진아, 진씨 가문에는 두 일가가 있다는 걸 잊지 마. 우리 장남 일가는 과거에 줄곧 차남 일가를 눌렀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강씨 가문과 함께 할 수 있었어. 그러나 최근 차남 일가에서 진교철이라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 나왔어. 진교철이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해외에서 돌아왔는데, 이번에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 일가와 관계를 끊겠다는 거야.”“형제 간의 반목으로 가문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우리 아버지는, 진교철의 요구에 동의하고는 나보고 연계진과 혼인하라고 하셨어. 아무튼 이번에는 정말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어.”이렇게 직접적인 진혜선의 SOS 요청에 무진은 다소 놀란 듯했다. ‘진혜선은 평소에 성숙하고 침착한 여장부의 모습을 보였어. 정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렇게 먼저 내게 도
진혜선이 고른 식당은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탄 뒤에야 도착했다.남쪽에서는 흔치 않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한옥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공기 중에는 은은한 풀내음이 났고, 개울가의 작은 다리와 고풍스러운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상쾌한 환경에 아주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진혜선이 성연을 보자 웃으면서 인사했다.“성연 씨 오늘 이 옷은 정말 운치가 있네. 과연 결혼한 여자야말로 진정한 매력이 넘치는 모양이야.”“혜선 언니 놀리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 언니하고 여자의 운치를 비교할 수 있겠어요?” 성연은 진혜선의 옷차림을 관찰했다. 오늘은 오히려 캐주얼한 옷차림인데, 이전에 몇 번 봤던 화려한 옷차림과는 전혀 달랐다.‘정말 아름다워. 이렇게 간단하게 꾸몄는데도 막 대학을 졸업한듯한 모습이야.’하지만 성연은 진혜선이 무진보다 두 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성연은 마음 속으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혜선 언니와 무진 씨는 자연스럽게 친근한 관계야. 그리고 탁월한 능력에 저런 미모라면 내가 남자라도 마음이 움직일 거야.’“가자, 이 식당은 예약제야. 매일 여덟 테이블의 손님만 받아.” 진혜선은 두 사람을 데리고 청룡각이라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 여덟 테이블 중에서 청룡각이 제일 먼저 공략 대상이 될 게 분명해. 예약한 사람도 아마 더 많을 것 같은데.”무진은 진혜선을 바라보았다.진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어렵긴 했어. 하지만 오늘 WS그룹 대표께서 오셨으니 이 사람들 복이기도 해!”고전적인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메뉴를 건네주자 지배인이 공손하게 말했다.“강 대표님과 사모님, 두 분께서 메뉴를 좀 봐주세요. 고르기 어려우시면 제가 메뉴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무진은 성연에게 메뉴를 건네주었다.“좋아하는 게 있는지 한번 봐.” 성연이 메뉴를 보니 요리 이름도 ‘안개비 내리는 숲’ ‘눈 덮인 호숫가’ ‘호수의 기억’처럼 남쪽 지방의 정취가 가득한 독특한
무진이 일어나려고 할 때 갑자기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자리에 앉은 무진이 손건호에게 눈빛을 보냈다.“들어오세요!”손건호가 대답했다.문이 열리자 잘생긴 젊은 남자가 들어와서 무진을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들어온 사람은 바로 소지연의 먼 친척이자 유럽지역 본부장인 소태경이다.“괜찮아요. 무슨 보고할 게 있습니까?” 무진은 평온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다소 어색해하면서 몇 초 동안 망설이던 소태경이 결국 입을 열었다.“대표님, 바로 이 얘기인데요. 제가 사전에 상황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연계진 씨의 초청에 잘못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연씨 가문과 우리 WS그룹이 아주 직접적인 경쟁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잘못된 처신을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무진은 소태경이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사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원래 그 일이었군요! 괜찮아요,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당신을 유럽 지역의 본부장으로 임명한 건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작은 일을 가지고 어떻게 소 본부장을 의심할 수 있겠어요?”무진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지만, 소태경은 무진의 동작 하나 하나가 책략을 세우는 듯한 느낌이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소태경은 조금도 기쁜 기색이 없이 계속 말했다.“다음번에는 반드시 명심하고 절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 귀국한 것도 사촌누님의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예전에 농촌에 있던 저를 데리고 나와 주셨기 때문입니다.”“효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나도 이 점을 굳게 믿습니다!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일이 마무리되면 빨리 유럽으로 가서 진두지휘하세요. 지금 MS 가문은 이미 몰락했으니 소 본부장이 실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무진의 간단한 몇 마디에 사기가 고무된 소태경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빛을 빛냈다.“제가 반드시 우리 WS그룹을 유럽에서 3위 안에 들게 만들겠습니다!”소태경이 나가
WS그룹 대표 사무실.“보스, 보스가 안 계시던 요 며칠 동안 연계진은 파티를 크게 열었습니다. 북성의 명사들을 참석하도록 초청했는데 아주 떠들썩했습니다.”“뿐만 아니라 연계진은 비밀리에 우리 회사의 두 지역 본부장을 만났습니다. 유럽 본부장으로 새로 부임한 소태경과 북미 본부장 진상철입니다.”손건호도 유럽으로 따라갔지만, 북성에 배치된 모든 정보망은 끊임없이 계속 운영되고 있었다. 돌아오자마자 바로 모든 정보를 정리해서 가장 빠르게 무진에게 보고했다.소태경, 무진은 그 이름이 익숙했다. 소지연의 먼 사촌동생으로서 전에는 소지연을 도와서 유럽 업무를 처리했다. 소지연이 잘린 뒤에도 소태경은 계속 위로 올라갔다.진상철, 이 사람도 오랜 지인이었다. 진씨 가문과 강씨 가문은 수십 년 동안 친밀한 관계를 이어 왔다. 무진이 둘째, 셋째 일가를 정리할 때 진씨 가문은 더욱 확고부동하게 무진의 모든 결정을 지지하였다. 물론 진상철은 바로 진혜선의 오빠라는 또 하나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 성격이 침착하고 업무 처리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북미 지역의 최근 2년 동안의 실적은 대단히 빠르게 늘어났다.연계진이 왜 하필 이 두 사람을 찾은 것인지 무진은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소태경만 찾았다면 오히려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결국 앞서 소지연의 일로 격노한 무진은 소씨 가문에 아주 쓰라린 교훈을 안겨주었다. 소씨 가문의 일맥인 소태경이 소지연의 복수를 생각하거나, 쉽게 모반을 획책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그러나 진상철 그는 무진보다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진상철은 이미 북미 지역에 7년을 머물렀지만 돌아온 적이 없었다. 평소에 화상회의 외에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고, 무진도 기본적으로 진상철의 어떤 일에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업적을 올릴 생각만 하는 순수한 사람이었다.“그래서 네 말은 진상철이 최근에 귀국했다는 거야?” 이 핵심을 떠올린 무진의 입꼬리가 절로 떠올랐다.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습니다. 돌아온 지 며칠
북성, 이씨 가문의 저택.눈앞의 연계진을 살펴보는 이상효의 마음이 한바탕 복잡해졌다.유난히 얌전하게 홍차를 우려낸 소지연이 이상효 앞에 공손하게 차를 들고 왔고, 곧바로 손님에게도 차를 내주었다.마치 노예처럼 마음속으로 무수한 괴로움을 겪었지만, 소지연은 발버둥칠 수도 없었다.입덧을 꾹 참은 채, 언제든지 차를 추가할 수 있도록 찻주전자를 들고 옆에서 조심스럽게 기다려야 했다.‘나를 이렇게 쓰라린 처지로 만든 건 바로 송성연이야.’ 소지연은 수없이 분노하고 저주하면서 성연이 일찍 죽기만을 기원했다.“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기회만 있다면 독사처럼 목덜미를 물어뜯겠어.”소지연의 마음은 이미 완전히 비뚤어졌다. 만약 뱃속의 아이가 아니었다면, 성연과 함께 죽을 생각도 수없이 많이 했다.지금 이상효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느꼈다. 당대에는 견줄 만한 바가 없던 결혼식에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강씨 가문의 넓은 인맥과 막강한 권세였다.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이상효가 강씨 가문을 번거롭게 만드는 걸 반대하고 나섰다.그러나 이상효는 강력한 적일수록 베어 먹는 이익은 더욱 감동적이라면서 반박하는 의견을 제기하였다.이씨 가문의 세력은 너무 작아서 이렇게 큰 운성시에서는 전혀 주류를 이루지 못했다. 그의 야심은 반드시 강력한 세력에 의지해야만 실현될 수 있었다.의심의 여지없이 지금의 연계진은 아주 좋은 기댈 만한 세력이다.연씨 가문이 이번에 남방에서 손을 썼는데,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연씨 가문이 이미 재정비하고 일어섰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아주 명확한 태도를 취했다. 물론 연씨 가문이 생각처럼 그렇게 약하지 않아서, 함께 협력하면 강씨 가문을 상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이상효에게도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연계진이 그렇게 준수하고 깨끗하게 생기지 않았다면, 이상효는 좀 더 신임했을 것이다.“연계진 씨, 예전에 강씨 가문에 내분이 일어나서 죽기 살기로 싸웠을 때, 당신은 왜 그 기회를 틈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