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호는 수하들을 이끌고 89호 창고로 갔다.이번에 몇 명만 데리고 가서 그곳의 동태만 살펴볼 생각이었다.그런데 손건호가 89창고에 갔을 때 강문호가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손건호가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자 강문호가 불평을 늘어놓았다.“왜 이제야 옵니까?”“여기서 얼마나 기다렸어?” 손건호가 강문호 앞에 서서 조용히 물었다.“6시부터 지금까지 기다렸구만.” 강문호의 어조에는 짙은 원망이 담겨 있었다.이 황량하고 인적이 없는 곳에서 모기에게 얼마나 물어 뜯겼는지. 그런데도 강무진 쪽에서는 사람이 올 생각을 안 하니.그 말을 듣던 손건호가 되려 웃었다.“누가 너한테 우리가 오늘 올 거라고 했어?”강문호가 여기에 함정을 파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어 은밀하게 움직였다.하지만 행적이 드러났다.강문호가 알아서 실토를 하니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이리 멍청하니 겨우 강상철, 강상규 패거리에 낀 거겠지만.강문호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저들이 올 거라고 당연히 강일헌이 말했었다.또 여기서 지키고 있다가 강무진이 오면 물건을 온전히 넘겨주라고 강문호에게 지시했다.하지만 강문호는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바닷가의 창고는 불법이기 때문에 모든 곳이 매우 외진 곳에 있었다. 여기에서 손을 쓰는 것이 가장 좋았다.그래서 그냥 물건을 돌려주라는 건지 아니면 직접 그들에게 보낼 건지 물었었다.그떼 강일헌은 다른 계획이 있다고만 말했었다.그래서 강문호는 부득이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무진 곁에 있는 이 손건호라는 비서, 정말 예리했다. 문제의 핵심을 바로 파악해 내다니 말이다.강문호은 눈알을 굴리며 목을 꼿꼿이 세운 채 대답했다.“내, 내가 짐작하는 게 무슨 문제야?”손건호가 콧방귀를 뀌었다. 강문호한테 그런 걸 알아맞힐 머리가 있다는 걸 믿으라고?누가 정보를 흘렸는지는 간단하지 않는가?오늘 자신이 온 목적은 그 물건들 때문이라는 걸 더 이상 말하는 것도 귀찮았다.강문호도 여기에 있으니 물건이 도망갈
물건을 확보한 것은 물론 좋은 소식이다.하지만 무진은 이 일을 처리하며 자신이 너무 터무니없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남의 물건을 대놓고 빼앗다니.어릴 때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은 무진은 사람을 대할 때면 그에 맞는 방식을 취해 왔다.생판 남의 물건을 대가 없이 가져가는 일은 해본 적이 없다.뿐만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무진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부끄러운 감정을 오랜만에 느꼈다.물건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그러나 애초에 두 무리가 이 약재 상자를 가져가려 했음이 기억났다.이 약재의 주인이 창고에서 먼저 본 자들인지, 아니면 그 후에 나타난 자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무진은 고민을 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대개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바닷가의 불법 창고는 원래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물건을 숨기는 용도였다.어쩌면, 이 약재 상자는 원래 그 패거리들이 햇빛을 보지 못하게 할 수단으로 가져온 것일지도 모른다.그래서 주인이 누구인지 아직 단정할 수가 없었다.정말 돌려주고 싶지만 정말 까다로웠다.옆에 서있는 손건호를 본 무진이 이 일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간단하게 설명했다.“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제자리에 서서 잠시 생각한 손건호가 대답했다.“이 내용을 조직의 채널을 통해 내보낼 수도 있습니다. 대충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 거지요. 주인이라면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말할 수 있을 테니 확인하고 건네줄 수 있을 겁니다. 어떻습니까?”세계적으로 거대한 조직들은 모두 각자의 조직 내 채널을 가지고 있다.대부분의 용병들은 채널을 통해 임무를 맡는다. 각종 임무나 가격, 난이도 지수 등 모두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매우 잡다한 종류가 있지만 사람이나 물건을 찾는 면에서 꽤나 유용했다.“음, 괜찮은 아이디어야.” 무진이 찬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손건호의 의견이 상당히 유효해 보였다. 그 패거리들, 딱 봐도 보통이 아니었다. 몸놀림이 모두 아주 좋았다.무진이 직접 훈련시
무진이 돌아오기 전에 성연은 호텔로 돌아왔다.소리 없이 나갔다가 돌아와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아마도 무진이 붙여 놓은 경호원 두 명은 적을 너무 가볍게 여겼다. 성연 같은 어린 여자애는 노릴만한 게 없다고 생각하고 경계를 늦추었다.호텔로 돌아오니 성연은 소파에 틀어박혀 몸을 웅크리고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그녀를 보는 순간 무진은 문득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자신이 어디를 가든 항상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가슴이 가득 부풀어올랐다.온몸의 피로까지 싹 사라지는 듯하다.외투를 한쪽 소파에 걸쳐 놓은 무진이 성연 옆에 앉았다.“오늘 호텔에서 뭐 했어?”성연은 머리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아무것도.”이 호텔에 놀만한 게 뭐 있다고?아직도 무진에게 약재를 빼앗겨 기분이 처져 있는 성연이다.무진이 다시 물건을 토해내도록 달려들고 싶은 것을 참은 것만해도 대단할 지경이다.푹 가라앉아 있는 성연의 표정을 본 무진은 병이 난 게 아닌가 걱정스러웠다.손을 내밀어 성연의 이마를 짚었다.이마의 온도는 정상이었다. 별 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호텔 안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지 좀 기운이 없어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무진이 물었다.“오후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손 비서에게 사오라고 할까?”“다 괜찮아요. 마음대로 해요.” 성연은 이제 뭘 먹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약재를 무진에게 빼앗긴 후로 성연의 세계는 이미 암흑으로 변했다.하필이면 강무진 이 인간에게 모진 마음을 못 먹어서는.성연은 누구도 싫어하지 않는다.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본인일 것이다.‘정말 못났다!’“그럼 손 비서한테 알아서 준비하라고 할게.” 무진이 성연의 머리카락을 쓸었다.멀쩡하던 머리카락이 금세 위로 치켜 뻗어도 성연은 상관하지 않았다.그냥 다른 모든 일에 조금도 흥미도 생기지 않았다.무진은 손건호를 시켜 호텔 밖의 맛있다고 정평 난 음식점에서 음식을 포장해 오게 했다.늘 호텔 음식을 먹었더니, 이거나 저거나 결국 그
무진은 성연이 평소와 달리 보이는 게 호텔에서 너무 오래 있어서라고 생각했다.성연이는 원래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말이다.성연이 답답해할까 다음 날 무진은 성연을 데리고 인근 놀이공원에 놀러 가자고 했다.성연의 눈에 놀라움의 빛이 가득 들어찼다. X국 놀이공원의 기구들이 아주 자극적이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예전부터 한번 체험해 보고 싶었다.그러나 무진의 곁에 있느라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그래서 결국 속으로 나중에 기회를 봐서 다시 와서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그런데 무진이 자신을 데리고 놀러 가자고 하다니, 정말 뜻밖이다.“무진 씨는 처리해야 할 일이 많잖아요?” 성연은 무척 가고 싶었지만 무진을 위해 슬쩍 사양하는 척했다.“일이 바쁘긴 해도 하루 종일 시간을 못 낼 정도는 아니야. 어때? 가고 싶어?” 무진은 주로 성연이 자신을 따라와서 아무것도 못 놀고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당연하죠. 당장 옷 갈아입고 올게요.” 성연이 뛸 듯이 기뻐했다.쏜살같이 뛰어가는 성연의 뒷모습을 보며 무진이 혼자 실소를 흘렸다.남들이 또 자신들을 남매로 오해할까 신경 쓰인 무진은 슈트를 입지 않았다. 머리에도 왁스를 바르지 않았다. 캐주얼 웨어와 약간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차갑던 무진의 전체 분위기를 젊고 부드럽게 만들었다.나가면 대학생이라고 해도 아마 다들 믿을 정도다.그런데 성연 또한 무진의 성숙한 분위기를 생각해서 좀 분위기 있는 원피스를 입었다.침실에서 나온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선택한 옷차림을 보며 시선을 교환하며 웃었다.두 사람은 호흡이 꽤 잘 맞았다.객실 입구까지 갔을 때 성연이 자발적으로 다가가 무진의 팔짱을 꼈다.무진의 입술 끝이 올라갔다.국내 놀이공원과 비교해서 X국의 놀이공원이 좀 더 성인 취향에 자극적이었다.스릴 넘치는 바이킹, 귀신의 집, 그리고 드롭 타워…….아마도 비교적 무난한 기구가 관람차 정도일 것이다.드롭 타워 매표구에 선 성연은 빨리 타고 싶어 안달 난 눈치다.“아가씨, 표
귀신의 집에서 나오니 날이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야간의 X국은 가는 곳마다 불빛으로 반짝였다. 도로 위로 올라서니 끝없이 넓은 들판이 한 눈에 들어왔다.무진의 손을 잡은 채 그에게 기댄 성연은 아주 가볍고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바람에 날린 성연의 머리카락이 팔 위로 떨어졌다. 마치 두 사람을 하나로 묶으려는 듯이.거리의 중심부까지 걸어가니 북적대는 것이 상당히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였다.거리 곳곳에서 공연 중인 사람들 틈에 한 남자 아이가 기타를 치고 있었다.성연의 고개가 자꾸 그리로 향하자 무진이 앞으로 나서며 성연의 시선을 가렸다.성연이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아니, 난 예술 감상도 못해? 진짜 치사해.’“어디 가서 뭐 좀 먹자.” 무진이 성연의 손을 꼭 잡은 채 앞으로 끌며 나아갔다.인파가 너무 많이 몰려 있었던 터라 군중 속에서 성연을 놓칠까 걱정이 된 무진이다.“뭐 먹을래?” 하루 종일 놀았던 성연도 배가 고팠다.“따라와.” 그녀의 손을 꼭 잡은 무진이 발걸음을 재촉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목조로 장식된 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벽에 그려진 정교한 삽화로 예술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무진이 종업원에게 몇 마디를 건넸다.그러자 종업원은 두 사람을 이층의 룸으로 안내했다.곧이어 다시 돌아온 종업원의 트레이 위에는 와인과 촛불이 있었다.성연이 속으로 생각했다.‘설마 말로만 듣던 촛불 디너?’종업원이 스테이크와 다른 요리를 올린 후, 조명을 껐다.환한 촛불은 음식을 먹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으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냈다.와인을 딴 무진이 성연의 잔에 따른 다음 자신의 잔에도 따랐다.그리고 성연의 접시를 자기 앞으로 당겨와 스테이크를 썰어 주었다.촛불에 무진의 이목구비가 더 도드라지며 무척이나 아름다웠다.턱을 괸 채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무진을 바라보며 성연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쿵, 쿵, 쿵’하는 소리가 귓가에서 아주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다.그러나 지금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음식점을 나온 무진과 성연은 산책을 하며 호텔로 돌아갔다.모처럼 출국해서인지 차분하니 다른 나라의 풍속과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조금 전 부끄러움에 달아올랐던 얼굴의 붉은 기운이 바람을 쐬는 동안 많이 사라졌다.세상에, 강무진이 이렇게 자신을 건드리며 자극하다니, 예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나날이 변해가는 세상풍조에 미색마저 사람을 홀리고 있다.무진은 계속 딴 데 정신을 팔고 있는 성연의 손을 단단히 잡아당겨 발 밑의 돌을 피하게 했다.자신을 세심히 살피는 무진의 동작에 성연의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졌다.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는 이런 느낌이 정말 좋았다.수하들은 모두 성연이 뭐든 못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며, 보스로서 자신을 하늘처럼 떠받들었다.그러나 그녀도 한낱 소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워낙 자신이 강하다 보니 그녀 자신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하지만 무진의 다정한 보살핌은 매번 성연 내면의 연약함을 건드렸다.무진이라면 안심하고 자신을 내맡길 수 있었다. 아무런 염려 없이.갑자기 생각이 난 듯 성연이 물었다.“무진 씨, 왜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거예요? 나를 좋아해요?”성연의 말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던 무진이 곧 다시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너는 내 약혼녀야. 널 좋아하지 않으면 누구를 좋아하겠니?”아직 어린 성연은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는 무진에게 좀 놀랐다.하지만 무진의 고민을 이해하기엔 아직 서투른 성연은 그의 애매한 대답에 기분이 나빠졌다.‘그 말은 뭐야? 누구든 자기 약혼녀라면 다 좋아한다는 뜻 아냐?’성연은 왠지 좀 짜증스러운 기분을 느꼈다.서로 자기 생각에 빠진 두 사람이 침묵에 빠졌다.앞의 골목만 지나면 곧 묵고 있는 호텔이다.그때 골목에서 발자국 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오자 표정이 어두워진 무진이 걸음을 멈추었다.무진의 뒤에서 이런저런 일을 생각하며 걷고 있던 성연이 갑자기 멈춘 무진의 등에 곧바로 콕, 부딪혔다. 고개를 들어 한 마디 따지려던 성연이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잠시
처음에는 능히 상대할 수 있던 무진이었지만, 이 검은 옷의 남자들은 실로 실력이 상당했다.성연을 엄호하며 저들을 상대하느라 무진의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점차 힘에 부치는 것 같았다.무진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비상벨을 눌렀다.지금이면 손건호가 이미 신호를 받았을 것이다.그러나 오늘 손건호는 자신의 지시에 따라 지사로 간 터였다.서둘러 온다 해도 일정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잠시 시간을 끈다 해도 잠시일 뿐이다.이 패거리는 확실히 좋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오로지 싸움에만 집중하는 모양새가 꼭 목숨을 내놓고 싸우도록 전문적 훈련을 받은 치들 같았다.저들이 칼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 순간, 무진은 어쩌면 오늘 밤 상황이 아주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자신이 아니라 성연이 가장 염려스러웠다.무진은 성연 쪽을 흘깃 쳐다보았다.멍하니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선 성연이 눈에 들어왔다.겁에 질린 듯한 모습이다.무진의 눈에 걱정스러운 빛이 비쳤다.“송성연, 괜찮아?”분명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던 무진이 이때 또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다.“무진 씨, 제발 저들에게 집중해요! 한눈팔지 말고!”이를 부득부득 가는 듯 다소 격분한 어투로 성연이 소리쳤다.상대방은 칼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알고는 있는 건지?’“나는 네가 걱정이야.” 무진의 어투는 차분했지만 깊은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도대체 이 남자, 멍청한 건지 어떤 건지 감을 못 잡겠어.’그녀는 무진에게 소리를 낮춰 외쳤다.“나는 무진 씨 뒤에서 안전하게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그러니 당신은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라고요.’하지만 마지막 한마디는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무진은 성연이 자신과 여상이 대화할 수 있음을 확인하고 다소 안심이 되었다.이내 눈앞의 패거리를 물리치기 위해 다시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조들은 마치 꽉 들어찬 말벌집처럼 하나와 싸우면 또 하나가 튀어나왔다. 체력도 어찌나 좋은 지.무진은 자신의 동작이
순간 무진의 동공이 수축하며 삽시간에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절체절명의 위기.무진이 성연을 잡아당기는 순간 성연을 향했던 칼이 무진의 팔에 박혔다.붉은 피가 팔을 타고 흘러내렸다.검은 옷의 남자가 칼을 뽑을 때, 무진이 심음을 흘리며 반쯤 무릎을 꿇었다.성연의 얼굴에 경악스러운 표정이 들어찼다.사실 유연하고 민첩한 몸을 가진 그녀는 스스로 이 칼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칼날이 다가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그런데 무진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선혈이 흐르는 팔을 본 성연은 순간 멍했다.곧이어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코가 시큰거리며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사람은 모두 이기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강무진은 무엇때문에 스스로를 희생해서 그녀 자신을 구하려 든거지?성연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강무진, 당신 바보야? 왜 당신이 뛰어들어 칼을 맞아! 당신, 정말 바보야.”몸을 웅크리고 앉아 무진의 상처를 보는 성연의 손이 조금씩 떨려왔다.무진이 그녀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위로하듯이 미소를 지었다.“겁먹지 마, 난 괜찮아.”“나는 분명히 피할 수 있었다고요. 지금 뭐하는 거예요?” 성연은 무진을 바라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알아, 너 대단해. 알아서 피할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내가 겁이 났어.” 무진의 새카만 눈동자가 성연을 똑바로 쳐다보았다.성연이 다치고 상처를 입을까 봐 겁이 났다. 자신 때문에 성연이 뜻밖의 사고를 당할까 봐 무서웠다.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차라리 자신이 다치는 게 나았다.무진의 눈빛에 꼭 데일 것만 같은 기분이 든 성연은 어색한 듯이 무진의 다친 팔로 시선을 옮겼다.치마의 한쪽을 찢어 무진에게 지혈을 해주려 했다.그런데 도저히 지혈이 되지 않았다.칼날이 박혔던 상처가 너무 컸다.피로 흠뻑 젖은 하얀 치마 조각을 본 성연의 눈이 금세 붉어졌다.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검은 옷의 패거리들은 성연과 무진을 가만둘 생각이 없었다.두 사람을 완전히 없애 버릴 생각인지 공격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보낸 후 성연의 시간은 다시 한가해졌다.지금 성연은 정원에서 꽃나무에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꽃모종이라고 하지만, 사실 다소 귀한 약재들이다.엠파이어 하우스는 산중턱에 위치해 있다.거의 비료를 준 적이 없는 셈인데도 토양이 아주 비옥했다.성연이 몇 그루를 심어 보았는데 모두 살아남았다.손을 씻고 거실로 들어오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낯선 번호에 성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누구지, 이 사람은?’‘기억에 없는 번호인 것 같은데?’원래 받기 싫은 마음에 잠시 망설이던 성연이 결국 전화를 받았다.“네.”“송성연 양, 저 조수경이에요.”휴대폰 건너편에서 조수경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성연의 두 눈썹 앞머리가 올라갔다.“조수경 씨가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조수경이 자신 때문에 고택에서 쫓겨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성연은 조수경을 보지 못했다.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자신에게 전화를 할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그런데 내 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조수경은 가는 음성으로 말했다.“송성연 씨, 얘기 좀 하고 싶어요.”성연은 나갈 생각이 없었다. 조수경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고.조수경을 본다면 그날 밤의 그 장면이 떠오르며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그런데 왜 조수경은 자신의 화를 돋우려 하는 거지?’“죄송합니다만, 요즘 바빠서 시간이 없네요.” 성연의 음성은 의외로 담담했다. 음성이 오르내림이 전혀 없이.오늘 반드시 성연을 만날 결심을 한 조수경이 애원을 하듯이 사정했다.“송성연 씨, 제발, 한 번만 저를 만나 주세요. 요 며칠 저는 무척 괴로웠어요.”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수경이 더 간절히 매달리며 이어 말했다.“그냥 송성연 씨와 몇 마디 하고 싶을 뿐이에요.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성연 씨, 제발 부탁해요.”성연이 조수경을 겁내서가 아니었다.그러나 그녀가 이렇게 억울하다는 듯이 사정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도대체 조수경이 자신에게 무슨 이
5일의 일정 동안 세 사람은 북성의 명소 네다섯 곳을 돌아다녔다.원래 좀 더 있을 생각이었지만, 샤넬 가문에 뭔가 일이 생겼는지 곧 돌아가야 했다.성연은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더 재미난 곳도 많은데.풀이 죽어 있는 성연의 모습에 미스 샤넬이 웃으며 성연의 뺨을 꼬집었다.“그러지 마. 나중에 우리 다시 올 기회가 있을 거야.”갑자기 일이 생겼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에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은 매일 같이 업무로 바쁜 무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떠나는 미스 샤넬과 목현수를 대접하기 위해 음식점 한 곳을 예약했다.성연이 이번에 예약한 곳은 평이 좋은 가정식 요리 전문점이었다.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한 목현수가 이런 정통 가정식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을 거라 생각한 성연이 특별히 그에게 맛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테이블에 오른 음식들은 소담하면서도 먹음직스러웠다. 미스 샤넬은 눈앞의 음식들을 보며 폰을 들어 한참 촬영을 한 후에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정말 맛있어. 와, 매번 색다른 맛을 경험하게 해 주네요.” 이곳의 음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미스 샤넬이 연신 감탄했다.입에 맞지 않는 것들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맞아요. 우리 북성에는 맛있는 음식과 재미난 것들이 정말 많아요.” 성연이 미스 샤넬씨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맞아요. 이곳은 산수가 수려해서 경치도 너무 아름다워요. 앞으로 현수 씨가 원한다면, 현수 씨를 따라 이곳에 와서 정착해도 좋겠어요.” 첫날을 제외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미스 샤넬은 무척 즐겁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좋아요. 그러면 그 때 우리 적당한 곳을 고를 수 있어요. 나랑 무진 씨도 두 사람과 같은 곳에 살고.” 그 생각을 하던 성연은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것도 좋죠.” 샤넬 양이 맞장구를 쳤다.그러나 그 가능성은 몹시 희박했다.샤넬 가문은 유럽에서 세력이 무척 큰 가문 중의 하나.지금 연세가 많은 미스 샤넬의 아버지는
남은 일정 내내 성연은 미스 샤넬, 목현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북성 주위의 관광 명소들은 전부 한 바퀴 돈 셈이다.무진의 당부를 새기며 최대한 깊은 물이 있는 곳은 피하면서.또 성현은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을 위해 온갖 명소들을 방문해서 즐길 계획을 짰다.성연은 하룻밤 내내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그래도 무진의 말을 잘 따른 셈이다. 위험한 곳들은 가지 않았으니까.오늘 그들이 함께 온 곳은 커플들을 위한 테마파크였다. 주위에는 온통 팔짱을 낀 젊은 커플들이었다. 공기 중에는 핑크빛 기운이 가득했다.반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사이에 혼자 낀 성연은 눈치 없는 들러리 같았다.성연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거니까 말이다.그러나 지금 서로 손을 깍지 낀 채 닭 털을 날리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성연 자신이 피해 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성연은 속으로 후회했다. ‘괜히 사서 고생한 거 아냐?’‘진즉 알았으면 무진 씨를 데리고 올 걸 그랬지.’“샤넬, 저기 아이스크림 파는데, 먹을래요?”성연은 핑크색으로 장식을 한 건너편의 가판대를 가리켰다.성연과 미스 샤넬은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그래서 성연은 미스 샤넬이나, 샤넬 양이라고 부르는 게 좀 어색해서 그냥 바로 이름을 불렀다.“나도 먹어요.” 미스 샤넬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목현수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아직 해가 높이 떠 있는 낮 시간.하지만 건녀편에는 그늘이 전혀 없었다.목현수는 양산을 두 사람에게 건네며 말했다.“두 사람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내가 사올 게. 무턱대고 저쪽으로 갔다가 더위 먹으면 어떡하려고?”고개를 살짝 끄덕인 성연은 목현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샤넬,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야?” 목현수가 먼저 미스 샤넬에게 물었다.“다 괜찮아요, 당신이 사 주는 거랴면요.”
식당 안.미스 샤넬은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앞접시에 가득 담았다.그러나 목현수는 음료수 한 잔만 손에 쥔 채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의아하게 쳐다보던 미스 샤넬이 물었다.“안 먹어요? 왜 날 쳐다보고 있어요?”오늘 목현수가 좀 이상했다.“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켜줄 게.” 정상적인 대화이긴 하지만, 목현수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진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조금 전에는 먼저 수저를 놓아주기도 했다.이전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사람이 목현수였다.미스 샤넬의 오늘 모습은 목현수로서는 정말이지 좀 새롭게 보였다.주스를 한 모금 마신 목현수가 입을 열었다.“미스 샤넬, 오늘 왜 굳이 성연을 구하러 강에 뛰어들었어? 설마 네도 위험하게 될 줄 몰랐어?”목현수의 눈에 미스 샤넬은 늘 연약하기만 한 존재였다.그런데 위급한 상황에 제일 먼저 강에 뛰어들어 성연을 구한 사람은 미스 샤넬이었다. 목현수의 물음에 잠시 멍해 있던 미스 샤넬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송성연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어요. 만약 그때 그러지 않고 송성연이 잘못되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평생 자책하며 살 테죠. 그래서 나는 반드시 송성연을 구해야 했어요.”그러니까 미스 샤넬은 목현수 때문에 송성연을 구했다는 의미.만약 송성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강물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을 터였다.미스 샤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어 말했다.“공교롭게도 내가 한 수영하잖아요? 그러니까 내려갔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감히 그런 용기 못 냈지.”미스 샤넬의 유머러스한 표현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순간 목현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목현수를 위해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은 미스 샤넬.목현수 자신이 더 이상 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목현수가 진지한 음성으로 미스 샤넬에게 약속했다.“이전에는 정말이지 결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미스 샤넬 당신과 기꺼이 결혼할 거야.”미스 샤넬의 눈에
민박집에 들어오기 전에 성연은 이 일을 무진에게 알리지 말라고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지금은 이미 괜찮아졌는데, 말해 봤자 쓸데없이 걱정만 할 뿐이니까.그러나 이렇게 큰 일을 손건호는 자신의 보스에게 감히 숨길 수가 없었다그래서 무진도 알게 되었다.모든 일을 내팽개친 채 무진은 당장 성연 일행이 간 관광지로 달려갔다.지금 성연은 이미 옷을 단정하게 갈아입은 상태였다.성연이 무사한 모습을 본 무진은 비로소 완전히 안심했다.그는 미스 샤넬을 보고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스 샤넬, 성연이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미스 샤넬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그런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성연 씨는 제 친구인 걸요.”“어쨌든 감사합니다.” 오늘 일어난 상황을 생각한 무진은 두려웠다.자신이 성연의 곁에 없었기에 성연이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다.“괜찮아요. 배고파요, 현수 씨. 우리 뭐 먹으러 가요.” 말을 마친 미스 샤넬은 목현수를 끌고 나가면서 성연과 무진에게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었다.방안은 곧 조용해졌다.성연을 보는 무진의 표정은 심각했다.성연은 감히 무진의 얼굴을 볼 생각도 못한 채 입술을 삐죽거리며 발 밑만 내려다보았다. “잘못한 거 알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무진은 결국 차마 책망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성연이 소리치며 말했다.무진은 하마터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잡은 채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먼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구해야지?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무진은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진저리를 쳤다.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무진의 어깨를 다시 안고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지금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이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잠시 잊었다.‘언제나 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인데
목현수도 한숨을 돌렸다.방금 성연에게 일이 생기자 목현수는 바로 손건호에게 알렸다.원래 다른 곳에 있던 손건호가 그제서야 달려왔다.“작은 사모님, 괜찮으십니까?” 성연의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것을 본 손건호의 표정에 걱정이 가득했다.“난 괜찮아요.” 손사래를 치던 성연이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이 일은 무진 씨에게 말하지 마세요. 그냥 지나가면 돼요.”손건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리 둘이 옷을 갈아입게 민박집을 좀 잡아주세요. 자칫하다 감기에 걸리겠어요.”이 관광지는 비교적 유명한 곳이라 근처에 민박집들이 많이 있었다.물론 이곳에 오기 전에 성연이 미리 조사한 사항들이다.“예.” 고개를 살짝 끄덕인 손건호가 그들을 데리고 나가서 모두 차에 올랐다.차에 올라탄 성연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정중하게 말했다.“미스 샤넬, 고맙습니다. 오늘 당신 덕분에 살았어요.”물속에서의 질식감을 떠올린 성연은 여전히 심장이 벌렁거리는 듯했다.“괜찮아요. 당신은 내 친구니까 구할 수 있었어요. 물론 내가 구하긴 했지만 마음에 두지 말아요. 친구끼리는 서로 도와야지요.” 미스 샤넬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대범하게 말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연은 그전에 미스 샤넬과 적지 않은 오해를 겪었다.그런데도 그녀가 몸을 던져 자신을 구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미스 샤넬의 손을 잡은 성연은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곧 그들은 손건호가 잡은 민박집으로 들어갔다.목현수가 미스 샤넬과 성연을 향해 말했다.“두 사람은 먼저 들어가서 좀 씻어. 내가 갈아입을 옷을 구해올 게. 여기 있는 옷들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또 무슨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그래요.” 미스 샤넬은 별 생각이 없었다.그러나 목현수가 옷을 사 주겠다고 하자 성연은 아무래도 좀 어색했다.예전엔 별일 아니었지만, 이제 그들은 다 자란 성인들이었다.성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나, 나는 필요 없으니까 미스 샤넬만 사주면 돼요
미스 샤넬이 성연의 팔을 잡아당기자 성연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물속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성연의 반응이 너무 커서 곧 사레가 들릴 지경이 되자, 샤넬이 황급히 성연의 입을 막았다.물속에서 말하기가 불편한 미스 샤넬은 입모양으로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점차 침착함을 되찾은 성연이 미스 샤넬의 동작에 따랐다.미스 샤넬이 성연을 끌면서 점점 강가로 헤엄쳐 갔다.강가에 거의 도착한 미스 샤넬이 힘을 써서 먼저 성연을 보냈다.옆에서 누군가가 즉시 와서 도와서 성연을 끌어올렸다.미스 샤넬도 따라서 천천히 강기슭으로 올라갔다.강가에 서서 두 사람 모두 성공적으로 구조된 것을 본 사람들이 곧장 환호성을 질렀다.“정말 운이 좋았어요. 다행이에요, 괜찮아서 다행이에요.”그때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을 끌고 다가왔다.그녀는 성연과 샤넬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천만에요. 다음에는 아이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피세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이번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 성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하겠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의 어머니는 겁에 질려서 여전히 떨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성연과 샤넬이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것이다.“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달래 주세요. 오늘 같은 상황에 아이가 분명히 많이 놀랐을 거예요.”성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성연의 옷은 젖어서 축축했다.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구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누나, 고마워요.” 아이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성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맑은 목소리에 성연도 마음이 점차 누그러졌다.“괜찮아, 네가 괜찮으니 됐어.”“두 분 아가씨, 제 제가 돈을 얼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돈이라도 드려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불
“누가 물에 빠졌어요.”“빨리 와요, 사람 살려요.”“빨리 여기 구조대에게 연락해서 빨리 사람을 구하러 오게 해.”주위에서는 모두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성연은 물에 빠지는 순간 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다행히 호수의 물이 깊어서 바닥에 부딪치지는 않았다.그러나 갑자기 물살에 충격을 받자 현기증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아래의 물살이 좀 급해서 물살에 말려들자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성연은 수영을 할 줄 알지만 손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짙은 무력감이 그녀를 엄습해 왔다.성연의 몸은 천천히 계속해서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이럴 수가, 누구 수영을 할 줄 알아요? 빨리 내려가서 사람을 구해주세요.” 구조된 소년의 어머니도 옆에서 소리쳤다.자신의 과실로 인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마당에, 다른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비록 자기 자식이 사고를 당하는 걸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기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몹시 조급해진 목현수는 몇 번이나 아래로 바로 뛰어내리려고 했다.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게 그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주위의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점점 커갔지만, 구조대는 한참이나 오지 않고 있었다.“이걸 어떡하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아니면 구급차를 불러서 구해달라고 해.”“여기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CCTV도 있지 않아? 왜 이렇게 사고가 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는 거야!”“...”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말을 해대고 있었지만, 직접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었다. 성연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물에 뛰어들 용기는 부족했다.자기 자식이 잘못된 걸 본다면 뛰어들었겠지만 말이다.옆에서 잠시 지켜보던 미스 샤넬이 주저함 없이 바로 물에 뛰어들려고 했다.그러나 옆에 있던 목현수가 눈치 빠르게 붙잡았다.“샤넬, 뭘 하려는 거야?”성연 한 명이 빠진 걸로 이미 충분히 애
성연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데리고 온 관광지는 교외에 있었다.산과 물을 끼고 곳곳에 푸른 풀이 깔려 있어서 생동감이 넘쳤다.그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관광지에는 또 전문적으로 설계된 정자와 누각이 있었다. 넓은 숲의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어서 또 그 속으로 소풍을 갈 수도 있다.미스 샤넬이 앞으로 걸어가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이곳의 공기는 정말 좋네요.”“맞아요, 내가 오기 전에 자료를 좀 찾아봤는데,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순수하고 천연적이라고 했어요. 원래의 모습을 파괴하지 않은 채 약간만 손을 댔을 뿐이니, 진정한 원래의 생태 관광지인 셈이죠.”성연은 설명할 때, 미스 샤넬이 일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영어로 말하기도 했다.미스 샤넬은 혀를 내두르며 박수를 쳤다.“성연 씨, 아는 게 정말 많네요.”“아니에요, 이런 관광지는 우리 A국에 아주 흔해서 조금만 이해하면 알 수 있어요. 유럽 각지에 정통한 미스 샤넬을 난 따라가지도 못하는 걸요.”각기 장점이 있다. 성연은 북성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서 기본적인 상식을 좀 알고 있는 것이지, 칭찬할 건 아니다.“성연 씨가 그렇게 전면적이지 않다는 건 알아요. 가요, 우리 저쪽으로 가 봐요.” 샤넬 양이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성연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미스 샤넬의 뒤를 따라가면서 목현수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목현수는 성연이 자신을 계속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됐어, 성연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면 나도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샤넬 양과의 관계는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해.’그들은 다리 위로 걸어갔다. 아래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호수였다.미스 샤넬이 포즈를 취하고 성연이 사진을 찍었다.성연은 여러 장면을 잘 포착해서 찍었다. 아주 의기양양해 보였다.미스 샤넬이 달려왔다. “어떤 지 내가 한번 볼게요.”성연은 핸드폰을 건네주었다.미스 샤넬은 한 장 한 장 살펴보면서 감탄했다.“성연 씨, 사진 촬영 기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