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현수는 성연을 데리고 도로와 골목을 통과해 지나갔다.한참을 운전했는데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자 성연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예요?”목현수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왜, 사형이 너를 팔아버릴까 봐?”성연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그건 무섭지 않아요. 사형은 감히 그럴 수 없으니까.”목현수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예, 예, 예, 넌 사부님이 가장 아끼는 어린 제자지. 만약 내가 너에게 무슨 짓이라도 한다면 사부님이 나를 심판하시겠지.”스승님 얘기가 나오자 성연의 표정이 따라서 한결 부드러워졌다.“알았으면 됐어요.”“다 왔어.” 두 사람이 말하는 사이에 목현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리고 차에서 내려 성연에게 차문을 열어 주었다.성연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목현수가 데리고 온 곳은 5성급 호텔 같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작은 골목 안, 많은 사람들이 일자로 죽 늘어서 있었으며 길가에 서서 먹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밖에 서 있으면 각종 음식들의 맛있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이곳 음식들은 아주 강한 향을 풍겼다.유럽에 온 이후, 이곳에 와서야 제대로 유럽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목현수는 성연이 계속 쳐다보는 쪽을 보며 설명해 주었다.“너 여기 우습게 보지 마. 여기서 만든 음식들이 레스토랑 음식들보다 훨씬 맛있어. 괜찮겠어? 도저히 못 먹겠으면 우리 다른 곳으로 갈까?”이 말을 하는 목현수의 어조엔 약간의 조마조마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어쨌든 성연과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성연이 잘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다.성연은 과감하게 목현수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예전에 다 생활해 봤었는데 어떻게 지금 적응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사형은 나를 뭘로 보는 거예요?”예전에 막 스승님께 배우기 시작했을 때 스승님은 매우 엄격하셨다.학습 진도와 깨달음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맛있는 음식의 맛을 보았다.성연은 아직 어렸다. 비록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지만 자연히 다른 사람들보다 실력이 떨어져
성연은 입을 삐죽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목현수는 스테이크를 썬 접시를 성연에게 건넨 후에 아직 썰지 않은 채 성연 앞에 놓여 있던 접시를 자기 앞으로 옮겼다.그러자 성연은 아주 자연스럽게 썰어 놓은 스테이크 조각을 포크로 찍어서 먹기 시작했다. 성연은 전혀 이상함을 느낄 수 없었다.사형은 늘 이렇게 자신을 챙겼다. 자신들 두 사람 사이에서는 너무나 정상적인 행동일 뿐.고기 덩어리를 입 안에 넣고 씹은 성연은 이렇게 오랜 시간 운전을 해서 이곳까지 와 먹는 게 전혀 헛되지 않다고 느껴졌다.그럴 만큼 이 스테이크는 너무너무 맛있었다.꽉 찬 육즙에 부드러운 육질이 그야말로 최상의 맛을 선사했다.성연이 먹는 것을 본 목현수의 눈에 빛이 돌며 마음도 즐거웠다.“내가 말했지? 여기 스테이크가 제일 맛있다고.”성연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스테이크가 확실히 맛있네요.”두 입 찍어 먹은 성연이 포크를 멈춘 채 엄한 표정으로 목현수를 바라보았다.목현수는 저도 모르게 동작을 멈추며 물었다.“왜 그래.”성연이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사형, 앞으로 여자 문제 일으키지 말아요. 여자들 꼬셔도 나를 핑계로 삼지 말라고요. 매번 이 수법을 쓰는데 너무 못됐어.”예전의 여자들은 별거 아니었는지 적어도 자신 앞에 와서 말한 적은 없었다.미스 샤넬의 행동은 정말이지 매우 기분이 나빴다.하지만 이 모든 일의 주범은 목현수다.목현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성연에게 하소연했다.“내가 여자들을 꼬신 게 아니야. 여자들이 나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으니 나도 어쩔 수가 없어.”눈에 띄게 잘생긴 목현수의 얼굴을 보면서 성연은 확실히 여자들을 끌어들이는 얼굴이라 생각했다.북성에 있을 때, 외출 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목현수를 연예인이라고 생각했다.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으니까.성연은 비록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목현수에게 잔소리했다.“진짜 잘났어.”“이렇게 생각하며 날 오해하다니. 나는
거의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 목현수는 비로소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아까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다는 한 것 기억해?”“기억해요.” 성연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목현수가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으면 귀찮아서 안 왔을 거였다.“좋아, 이제 말할게.”목현수의 표정이 좀 엄숙해졌다.“블레이크 교수가 네 입학을 막은 일, 나도 다 알고 있어. 누군가가 이십 억을 주고 블레이크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킨 거야. 그 여자는 분명 네 철천지원수일 거야.”성연은 원래 돈을 받았었구나, 생각했다.어쩐지 자신에게 증거를 내놓으라고 하더라니,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성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돈을 받고서 내 성과를 그렇게 부정하다니.’그런 사람이 무슨 교수라는 거야? 학교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얼마나 더 있는지 알 수 없다.‘지도교수가 수업을 못 받게 방해해서 진로를 망치다니.’‘너무 부도덕하잖아!’성연이 다급히 물었다.“블레이크 교수에게 돈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아냈어요?”목현수가 고개를 저었다.“그것까지는 찾아내지 못했어. 은밀하게 조사하느라 말이야. 단지 여자라는 사실만 알아냈어.”“사형, 그 증거 저에게도 한 부 보내주세요.” 그 증거들을 가지고 있으면 유용하게 쓸 데가 있을 테니까.그것 만으로는 블레이크 교수를 어떻게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남겨 둬서 나쁠 턱은 결코 없으리라.“그래, 돌아가면 보내 줄게. 다만 성연아, 네가 이렇게 하는 것은 썩 좋은 것 같지 않아.” 목현수가 성연을 바라보았다.“왜요?” 성연이 체리를 입에 넣으며 물었다.너무 새콤달콤해서 그냥 눈이 감길 정도였다.“약속했잖아, 무슨 일이든 생기면 날 찾아오겠다고? 아니면 나 혼자 가서 조사할게. 너는 이 일을 아예 나에게 말할 생각이 없었던 거니?” 목현수는 화가 난 척했다.성연은 그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사실 애초에 그 일이 있었을 때는 무진이 곁에 있었다. 그래서 목현수를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것.그리고
성연이 유럽에 온 이후 그림자처럼 성연의 뒤를 쫓은 소지연.예의 성연을 주시하며 빈틈을 노렸다.친구와 쇼핑을 하던 중에 웬 잘생긴 남자와 함께 작은 가게에 있는 성연을 포착했다.성연과 남자가 있는 룸은 후문을 마주보며 반투명으로 되어 있어서 내부 모습을 볼 수 있었다.그런 까닭에 성연과 목현수가 같이 있는 모습을 소지연이 보게 된 것.소지연은 바로 휴대폰으로 성연과 남자의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소지연은 교묘한 각도로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두 사람 사이에 마치 끈적한 뭔가 있는 듯 찍힌 영상에 소지연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옆에 있던 친구가 그런 소지연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는 사람이야?”소지연은 부인하지 않았다.“바로 저 계집애야. 엄연히 약혼자가 있으면서 다른 남자와 어울리다니, 정말이지 내 친구와는 비교할 가치가 없어.”“그래? 세상에, 너무 못됐다. 이거 지금 바람 피우고 있는 거 맞지?” 옆에 있던 친구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누가 아니래? 그런데 하필 내 친구가 저 계집애를 무지 아낀다는 거야.” 소지연은 흰자위가 보일 듯 노려보며 성연을 비방하는 말을 쏟아냈다.성연의 험담을 한바탕 쏟아냈더니 속이 시원함을 느낀 소지연.“그래서 네 친구에게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사진을 찍은 거야?” 친구는 계속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당연하지, 이렇게 다른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건 절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저 계집애가 내 친구를 속이고 다른 남자와 여자와 몰래 만나는데, 당연히 내 친구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 소지연의 눈에 경멸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소지연의 옆에 있던 친구는 소지연과 무진, 그리고 성연과의 사이에 얽힌 상황을 알지 못했다.그저 소지연의 친구인 줄로만 알았다.그래서 소지연의 옆에서 말렸다.“그냥 내버려 둬. 장거리 연애라는 게 원래 쉽지가 않아. 게다가 타국 아니니? 만에 하나 알고 봤더니 우리가 본 것과 다르다면? 그럼 낭패지 않아?”소지연은 갑자기 차
그때, 거실의 반대쪽 끝에서부터 발자국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몸집이 작고 유약한 생김새의 여자 아이가 종종걸음으로 소지연 앞에 와서 섰다. 그러더니 차가운 소지연의 표정을 보고는 몸을 움찔하며 가는 음성으로 변명했다.“죄송합니다, 마담 소. 주방에서 빵을 굽고 있느라 오시는 걸 몰랐어요.”“커피 가져와.” 소지연은 얼굴을 찡그린 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고용인은 얼른 소지연에게 커피를 내려 주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잠시 후, 어린 고용인이 돌아왔다.소지연은 얼굴을 더 찡그린 채 소리쳤다.“커피 가져오라고 한 지가 언제인데 시간을 이렇게 끄는 거야? 근무 능력이 그렇게 없어?”어린 여자고용인은 속으로 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평소 갓 내린 커피만 마시는 소지연, 커피를 내리는데 적어도 10분은 걸린다.만약 소지연의 입에 맞지 않기라도 한다면 더 많은 소리를 들을 터.자신의 행동이 굼떠서 커피를 늦게 내려온 것이 아니었다.그러나 소지연은 그 사실을 아는 게 분명한데도 자신을 비난하고 있었다.여자고용인은 무조건 고용주의 지시에 따라 일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그래서 마음속의 억울함을 참았다.“마담 소, 죄송합니다. 저는...”여자고용인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촥, 하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내밀었던 커피가 얼굴에 끼얹어졌다. 이어서 소지연의 노발대발하는 음성이 들렸다.“변명이나 할 생각이야? 일도 제대로 잘하지 못하는 걸 보고 내가 뭐라 하지도 못해?”연신 고개를 가로젓는 여자고용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행히 커피가 따뜻한 정도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오늘 자신의 얼굴은 화상을 입었을 터였다.소지연이 냉소를 지으며 여자고용인을 바라보았다.“그래도 억울해? 그렇게 불쌍한 척하면 내가 동정해 줄줄 알았어? 사람을 꼬실려고 타고난 물건이네 이거, 하! 잊지 마, 너한테 일할 기회를 준 사람이 나라는 걸. 만약 다음에 또 이렇게 마음에 안 들게 군다면 당장 짐 싸야 할 거야!”말을 마친 후 소지연은 여자고용인
강씨 집안 고택, 안금여와 강운경이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그때 집사가 들어와서 방문자가 있음을 알렸다.“회장님, 밖에 누가 찾아왔습니다.” “누구?” 안금여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둘째, 셋째 일가가 몰락한 이후 모처럼 평탄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당연히 조용히 지내는 게 제일 좋은 거지.’혹시나 또 말썽을 피우려는 주주들은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안금여는 더 이상 그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젊은 여자아이입니다. 주OO라고 하는군요.” 잠시 생각하던 집사가 이름을 떠올리고 말했다. “성이 주라고? 확실해?” 안금여가 소파에서 일어나며 되물었다.강운경은 엄마 안금여의 반응에 궁금해서 물었다.“엄마, 누군데요?” “내 친구의 손녀일게다. 집사, 얼른 데려와 보게.” 안금여는 강운경을 향해 말했다.강운경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집사가 늘씬하게 키가 큰 소녀를 데리고 들어왔다. “할머니.” 소녀가 안금여를 소리 내어 불렀다. “오, 얘야, 그새 이렇게 컸구나.” 안금여가 앞으로 다가가서 소녀를 끌어다 소파에 앉혔다.이 소녀는 안금여의 오랜 지기 경성 지역의 조씨 집안 손녀, 조수경이다.예전에 친구가 보내 준 사진이 있었기에 안금여는 한 눈에 이 소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조수경은 안금여의 자상한 모습에 눈시울을 붉히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안금여는 자신의 친구를 보는 듯 무척 반가웠다.둘도 없는 친구의 손녀를 안금여 역시 자신의 손녀처럼 생각했다.그런데 조수경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했다.조수경의 발개진 눈시울을 보자 속이 상한 안금여가 다정한 음성으로 물었다.“수경아, 무슨 일이니?”안금여의 말에 조수경이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입을 열었다.“할머니, 저희 집에 큰 변고가 생겼어요.”말을 꺼내자 마자 조수경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안금여가 티슈를 집어 조수경에게 건네며 달랬다.“아이고, 얘야, 그만 울거라.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다 해결할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이 입술만 짓씹듯이 깨물던 조수경이 결국 안금여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경성 손씨 집안의 장남에게 구애를 받았어요. 손민철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 사람에게 아무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상식적인 선에서 거절했을 뿐인데 그 사람 손민철이 화가 나서 저희 집안에 경제적 보복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 때문에 집안에 경제적인 문제가 생기고, 부모님도 그만 구속이 되셨어요. 이런 일이 터지자 할머니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셨는데,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계세요.”말을 하던 조수경은 코가 시큰거리며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간신히 참았다.안금여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수경이, 이 아이도 참 고생이구나,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이처럼 꿋꿋하게 버티다니.’친구의 멀쩡하던 집안이 한순간에 이렇게 되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 “괜찮아, 괜찮아. 이 할머니가 있으니 이제 걱정하지 말거라.” 안금여는 자상하고 따뜻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대기업의 회장이라는 높은 직위에 있으면서도 조금도 귀찮게 여기지 않고 조수경을 위로해 주었다.조수경은 조금 전까지 절망적이던 마음에 다시 희망이 생기며 가슴이 훈훈해졌다.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면한 듯했다. 이제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었으니.손민철을 떠올릴 때마다 혐오스러웠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손민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조수경이 계속 말했다.“이렇게 우리 집안을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건지 손민철은 지금도 저를 계속 괴롭히고 있어요. 정말이지 어찌할 방도가 없어요. 할머니, 저 손민철을 피해 여기에 잠시 와 있어도 될까요?”손민철은 그 전부터 부모님의 일을 빌미로 자신을 협박해 왔다.자신의 구애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손민철은 조수경을 생각해서 더 이상 그녀의 부모님을 괴롭히지 않고 도와줄 터였다.조수경 역시 모두 자신 때문에 집안에 이런 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아니면 손민철에게 승낙하기만 하면 된다. 그럼 적어도 부모님이 나오실 수는 있을 것이다.하
가련한 조수경의 모습에 안금여는 화가 났다.경성 지역의 손씨 집안에 대해서는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날뛰다니.’경성의 큰 가문은 맞지만 신분과 지위를 이용해서 이런 날강도 같은 짓을 하다니, 그야말로 횡포가 극심했다.조수경이 여기서 지내면서도 불안해할까 걱정이 된 안금여가 안심을 시켰다.“아무 일 없을 거야. 여기서 지내다 폭풍이 지나가거든 다시 이야기하자. 손씨 집안 사람들이라 해도 내 앞에 와서 행패를 부리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안심하고 여기에서 지내.”다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입을 뻐끔거리는 조수경.조수경의 입 모양을 본 안금여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챘다.그 즉시 손을 들어 다시 감사인사 하려는 조수경을 막아세웠다.“됐다. 내가 제일 듣고 싶지 않은 말이 ‘고맙다’ 세 글자다. 내 친구의 손녀인 넌 내 손녀이기도 해. 이 할머니를 너무 어려워 말거라.”조수경은 안금여의 손을 잡은 채 감동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안금여 할머니에게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이고 아가씨, 너무 부담 갖지 마. 그저 상에 수저 더 놓는 것뿐이야.”강운경도 옆에서 한마디 했다.말을 하지 않을 때의 강운경은 꽤나 엄한 인상이다.그래서 조수경에게 무서운 이미지를 심어 줄까 신경이 쓰인 것. “운경 이모, 할머니, 모두 정말 친절하세요.” 조수경은 지금의 이 심정을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하이고 얘도 참. 너 뭐 좀 먹었니?” 안금여가 다정한 음성으로 물었다.자신의 배를 쓸던 조수경의 볼이 금세 새빨개졌다.서두르는 바람에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고택으로 바로 왔다. 안금여가 자신을 거두지 않는다면 얼른 다른 곳을 찾기 쉽도록.조수경의 얼굴을 본 안금여가 눈치를 채고 강운경에게 일렀다.“운경아, 주방에 먹을 것 좀 준비하라고 하거라.”안금여의 세심한 배려에 조수경은 더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할머니, 아니에요, 배고프지 않아요. 정말 괜찮아요.”안금여는 강운경에게 눈짓을 보내
북성에 도착하자 그래함은 유채연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을 체크인했다.뒤에서 그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무진이 생각났다.‘나도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야. 뭐.’‘요 며칠 사형과 채연 언니가 애정을 과시하는 것만 바라보았지.’유채연과 그래함도 성연을 잊지 않았다.유채연이 물었다.“성연아, 너 우선 우리 호텔로 가서 쉬지 않을래? 차를 그렇게 오래 탔는데 힘들었잖아.”유채연은 멀미가 나서 창백한 표정으로 그래함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됐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두 사람의 세계를 방해할 수 있겠어요?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유채연은 성연이 떠나는 방향을 보면서 걱정했다.“성연이 걔가 갈 곳이 있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밖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특히 이런 대도시에서는.”그래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채연아, 성연이는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잊었어?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성연이에게는 아주 대단한 약혼자가 있다는 거 말이야.”유채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성연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약혼자를 찾아간 거야?”“그래, 걱정하지 마. 지금 멀미하지? 힘들면 내가 밖에 나가서 약 좀 사올까?” 그래함은 유채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좀 자면 돼.”“그럼 그렇게 해.” 그래함도 마음 놓고 유채연을 혼자 둘 수 없었다.‘처음 이곳에 왔는데, 내가 채연이 곁에 없다면 채연이가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아.’한편 성연은 바로 무진을 찾아갔다.그러나 자신이 돌아온 걸로 무진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고 무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성연은 예전에 지문을 입력해 놓아서, 보고 없이 바로 최고층까지 갈 수 있었다.요 며칠 동안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설레는 듯했다.성연이 집무실 입구에 도
외삼촌은 다가가서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부축했다.여전히 울고 있던 유채연이 일어나자, 그래함이 어깨를 감싸고 위로했다.“얼른 가거라.” 외삼촌도 울먹이는 목소리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래함은 외삼촌을 한 번 본 뒤 유채연이 차에 타도록 부축해 주었다.유채연은 외삼촌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성연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외삼촌이 몸을 돌릴 때 눈물이 땅에 떨어지는 걸 봤지만, 유채연이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이 옆에서 따라서 소리쳤다.“외삼촌, 제가 채연 언니하고 자주 돌아올 게요. 저는 외삼촌 가게 하드가 좋아요.”그제야 서둘러 눈물을 닦은 외삼촌이 몸을 돌려서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마.”차가 천천히 시동을 걸자, 창밖의 장면도 빠르게 바뀌었다.차에 앉아서도 유채연은 여전히 훌쩍거렸다.그래함은 유채연을 꼭 안고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채연아, 외삼촌이 보고싶으면 앞으로 자주 돌아와서 볼 수 있어. 내가 같이 올게.”“정말?” 그래함을 바라보는 유채연의 눈은 마치 토끼의 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물론이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다 해 줄게.” 예전에는 그래함도 뭘 해도 혼자였다.하지만 이제 유채연이 있으니 모두 달라졌다.그래함은 틀림없이 유채연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어쩌면 유채연을 위해 정말 국내로 이주할 수도.“그런데 내가 없는데 외삼촌은 어떡하지? 자기 몸을 잘 추스릴까?”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졌지.’‘지금 내가 떠났으니 외삼촌은 잘 수습할 수 있을지 몰라.’성연은 조수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성연은 일부러 그 자리에 앉아서 유채연과 그래함에게 공간을 내주었다.그 말을 듣고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채연 언니, 외삼촌은 마음이 그렇게 섬세한 분이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떠날 때 그래함은 외삼촌에게 체크카드를 남겨 두었다. 비밀번호도 쪽지에 써 두었다. 그 돈이면 외삼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 편안하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
이전에 유채연이 입었던 옷은 전부 그래함과 성연이 함께 골라준 옷으로 교체되었다.유채연은 트렁크를 사서 물건을 다 넣었다.곧 떠나야 할 때, 유채연이 외삼촌과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내가 같이 갈게.” 유채연을 도와 트렁크를 닫고서 그래함이 일어났다.“그래도 나 혼자 갈래...”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이제는 우리 둘이 같이 있잖아. 외삼촌은 우리 관계의 증인이자 네 유일한 가족이야. 내가 널 데리고 갔다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함이 유채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요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유채연은 자연스럽게 그래함과 더 가까워졌다.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그래함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만약 외삼촌이 그래함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 마음이 더 괴로울 거야.’“그래, 같이 가자.”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 사람이 함께 문을 나섰다.나오다가 마침 두 사람을 찾으려던 성연과 마주쳤다.“성연아, 우리 외삼촌 보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유채연은 요 며칠 성연과 계속 붙어 있어서, 성연에 대한 감정도 이미 예전처럼 좋았다.어디를 가든지 성연을 데리고 가야 해서, 그래함이 한바탕 질투하기도 했다.“출발하기 전에 외삼촌과 작별인사 하러 가는 거예요?”성연이 물었다.“그래.”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함께 갈게요.” 눈치 빠른 성연은 유채연의 손을 잡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채연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이 나란히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보면, 외삼촌이 좀 안심할 수 있겠지.’유채연과 그래함은 앞에서 함께 걸어갔다.유채연의 마음은 여전히 좀 불안했다.‘예전에 외삼촌이 못마땅했을 때는 여기를 탈출하겠다는 생각도 했지.’그러나 정말로 외삼촌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유채연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비록 그다지 내 생각대로 지내지는 못했지만.’‘하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내 유일한 피난처였지.’“걱정 마, 외삼촌은 좋은 분이니까 이해해 주실 거야.”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
“언니, 빨리 나와서 사형에게 보여주세요.” 성연이 바로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유채연은 바로 그래함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래함은 지금도 유채연이 겉모습만 꾸민 여자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여겼다.약간 수줍어하는 그 모습은 언제나 그래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그래함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한 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유채연도 그래함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걸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그런데 한참 기다렸는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그래함의 눈을 마주한 유채연이 어색하게 치마자락을 잡고 말했다.“어때? 보기 싫어?”“예뻐. 내가 홀딱 반할 정도야.” 그래함의 목소리는 가볍고 부드러웠다.유채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화장을 마친 뒤 그들은 계속 쇼핑을 했다.성연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게 자리를 양보했다.그래함이 바로 앞으로 가서 유채연의 손을 잡았다.유채연이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래함은 꼭 쥔 채 유채연이 벗어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성연이도 여기 있잖아.” 유채연은 20여 년을 살면서 그래함 이 한 사람만 좋아했다.평소에도 남자와 스킨십을 해본 적도 없었다.지금 그래함과 함께 걸으면서 유채연은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러나 그래함의 따뜻한 손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을 느끼자 마음은 달콤했다.“신경 쓸 필요 없어.”그래함이 바로 말했다.두 사람 뒤에 있던 성연은 하마터면 그래함을 흘겨볼 뻔했다.‘이건 날 훼방꾼으로 여기는 거야.’유채연은 감히 고개를 돌려 성연을 보지 못하고, 손을 잡힌 채 얼굴만 빨개졌다.그래함은 유채연이 자신에게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자 불만스러웠다.“채연아, 팔장을 낄래.”“아니, 손을 잡았잖아.” 유채연은 입술을 깨물며 수줍어했다.“우리 연인 사이잖아?” 그래함이 유채연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열기가 귓가를 스쳐 지나가자 유채연은 더욱 부끄러워했다.‘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외삼촌에게 차를 주자, 외삼촌은 드라이브를 하면서 이 차의 성능을 시험해 보겠다고 말했다.그래함이 자신을 속이는 건지 보려는 것이다.외삼촌이 차를 몰고 가자 성연과 그래함, 유채연만 남게 되었다.오늘 손님이 오기 때문에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자세히 헤아려 보니 외삼촌은 정말 디테일한 사람이야.’“채연 언니, 우리 쇼핑하러 가요.” 성연이 다가가서 유채연의 팔장을 꼈다.“그래.” 유채연은 성연이 쇼핑을 하려는 걸로 생각하고 함께 갔다.성연이 유채연을 데리고 온 곳은 모두 고급 쇼핑몰이었다.유채연도 옷을 좀 사고 싶었지만, 가격을 보고는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성연은 흰색 원피스를 유채연의 몸에 대고 비교해 보았다.“채연 언니, 이 원피스가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 보세요.”“난 됐어. 네가 맘에 들면 사.” 방금 유채연은 가격표를 언뜻 봤다.‘너무 엄청난 가격이야.’‘원피스 한 벌에 어떻게 가격이 이렇게 비쌀 수 있는지 정말 상상할 수가 없어.’‘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이야!’“언니, 이 치마가 정말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보고 싶지 않아요?” 성연은 눈을 깜빡이며 유채연을 바라보았다.눈앞의 원피스를 보고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한번 입어 봐.” 그래함도 유채연이 이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유채연은 자신의 그런 모습이 기대되면서도 머뭇거렸다.마침내 결정을 내린 뒤에 옷을 가지고 탈의실로 들어갔다.‘확실히 잘 어울리네.’유채연은 한번 입어 본 걸로 만족했고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성연과 그래함이 번갈아 설득해서 유채연도 결국 옷을 하겠다고 했다.두 사람은 또 유채연에게 많은 옷을 사주었다.처음에는 유채연도 두 사람이 돈을 쓰는 걸 걱정했다.그러나 두 사람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유채연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중에는 돈을 쓰는 것에도 무감각해졌다.예쁜 옷을 많이 산 뒤 그래함이 뒤에서 가방을 들어주었다.그래함의 두 손으로 겨우 들 수 있을 정도였다.성연은 또 유채연을 끌고
“정말 변변치 못하게!” 외삼촌은 유채연을 노려보았다.그래함은 외삼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파악했다.‘외삼촌은 이게 채연이가 만약에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거야.’그래서 그래함도 지나친 요구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이런 것들을 채연이에게 주는 것도 당연한 거야. 여기에 그치지 않고 채연이에게 훨씬 더 잘 해 줄 거야.게다가 외삼촌과 유채연은 그래함의 지위에 대해서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이 정도의 돈은 그래함에게 있어서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유채연이 직접 음식을 준비해서, 외삼촌 가게 뒤의 정원에서 모두 함께 밥을 먹었다.외삼촌의 표정은 시종 좋지 않있다.밥을 다 먹고 유채연이 치우려고 하자 외삼촌이 퉁명스럽게 말했다.“놔 둬! 나 혼자 해도 돼! 너는 그럴 시간이 있으면 가서 너 자신이나 좀 꾸며.”외삼촌은 말하면서 유채연을 물러서게 했다. 유채연이 비틀거리자 그래함이 뒤에서 유채연을 부축해 주었다.그리고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집 앞에 와서야 유채연은 그래함과 성연에게 미안한 듯이 웃었다.“정말 미안해. 외삼촌이 바로 저런 성격이셔. 미안해.”“언니, 외삼촌이 이런 성격인 건 우리도 이해할 수 있어요. 외삼촌이 치우지 말라고 했으니까 우리 좀 걸어요. 이쪽의 풍경이 좋네요.” 성연은 유채연을 데리고 앞으로 걸어갔다.그래함과 성연이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고, 유채연은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그들은 주변을 한가롭게 걸었다.길가에서 자동차 판매점을 본 그래함이 걸음을 멈추었다.유채연과 성연은 고개를 돌려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성연이 그래함에게 물었다.“사형, 왜 그래요?”“우리 들어가서 한번 보자.” 그래함은 판매점 안으로 들어갔다.그래함이 뭘 하려는 건지 몰랐지만, 유채연과 성연도 그래함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그래함은 한참동안 살펴보았다.여기는 읍내라서 그다지 비싼 차가 없었다. 겉모습이 좋아 보이는 차는 성능이 좋지 않았고 성능이 좋은 차는 스타일이 좋지 않았다.겨
“그렇게 하겠습니다.” 외삼촌이 말한 걸 그래함은 모두 승락했다.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외삼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유채연은 외삼촌이 제시한 조건들에 대해서 아주 불만이었다.‘내가 그래함과 함께 하는 건 두 사람이 예전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그러나 지금 외삼촌이 그렇게 많은 요구를 하는데, 오히려 내가 그래함의 돈 때문에 그래함과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유채연이 항의했지만 외삼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래함을 바라보았다.“어때? 내 이 조건들을 자네가 승낙한다면 채연이가 자네와 함께 떠나도 돼. 자네가 승낙하지 않는다면... 그럼 말할 필요도 없지!”유채연이 다시 말을 하려고 했지만, 바로 뒤에 있던 성연이 유채연의 옷소매를 당기면서 권유했다.“사형에게 저런 요구를 한 건, 외삼촌이 언니에게 사고가 생길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에요. 나중에 혹시라도 집안이 몰락하게 될까 봐 일부러 이런 요구를 한 거예요. 만약 언젠가 정말 의외의 사고가 생긴다 해도, 언니가 읍내로 돌아올 수 있게 말이죠.”옆에 있던 성연은 벌써 외삼촌의 뜻을 알아차렸다.‘외삼촌이 말한 조건은 모두 채연 언니에게 유리한 것들이야.’‘외삼촌은 자신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돈도 채연 언니 계좌에 넣고, 집 명의도 채연 언니 앞으로 하라고 했어.’‘모두 채연 언니에게 만약의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한 거야.’성연도 그제서야 외삼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삼촌의 마음이 이렇게 세심한 줄은 몰랐어.’‘사형이 채연 언니를 아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외삼촌이 말한 이런 상황은 생기지 않을 거야.’‘그러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해. 결국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유채연도 그제서야 외삼촌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외삼촌의 요구는 모두 나를 위해서였어.’유채연은 더더욱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그저 그래함을 바라볼 뿐이다.“외숙부님이 말씀하신 건 다 문제없습니다. 채연이에게 사 줄 집을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