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이 유럽에 온 이후 그림자처럼 성연의 뒤를 쫓은 소지연.예의 성연을 주시하며 빈틈을 노렸다.친구와 쇼핑을 하던 중에 웬 잘생긴 남자와 함께 작은 가게에 있는 성연을 포착했다.성연과 남자가 있는 룸은 후문을 마주보며 반투명으로 되어 있어서 내부 모습을 볼 수 있었다.그런 까닭에 성연과 목현수가 같이 있는 모습을 소지연이 보게 된 것.소지연은 바로 휴대폰으로 성연과 남자의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소지연은 교묘한 각도로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두 사람 사이에 마치 끈적한 뭔가 있는 듯 찍힌 영상에 소지연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옆에 있던 친구가 그런 소지연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는 사람이야?”소지연은 부인하지 않았다.“바로 저 계집애야. 엄연히 약혼자가 있으면서 다른 남자와 어울리다니, 정말이지 내 친구와는 비교할 가치가 없어.”“그래? 세상에, 너무 못됐다. 이거 지금 바람 피우고 있는 거 맞지?” 옆에 있던 친구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누가 아니래? 그런데 하필 내 친구가 저 계집애를 무지 아낀다는 거야.” 소지연은 흰자위가 보일 듯 노려보며 성연을 비방하는 말을 쏟아냈다.성연의 험담을 한바탕 쏟아냈더니 속이 시원함을 느낀 소지연.“그래서 네 친구에게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사진을 찍은 거야?” 친구는 계속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당연하지, 이렇게 다른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건 절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저 계집애가 내 친구를 속이고 다른 남자와 여자와 몰래 만나는데, 당연히 내 친구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 소지연의 눈에 경멸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소지연의 옆에 있던 친구는 소지연과 무진, 그리고 성연과의 사이에 얽힌 상황을 알지 못했다.그저 소지연의 친구인 줄로만 알았다.그래서 소지연의 옆에서 말렸다.“그냥 내버려 둬. 장거리 연애라는 게 원래 쉽지가 않아. 게다가 타국 아니니? 만에 하나 알고 봤더니 우리가 본 것과 다르다면? 그럼 낭패지 않아?”소지연은 갑자기 차
그때, 거실의 반대쪽 끝에서부터 발자국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몸집이 작고 유약한 생김새의 여자 아이가 종종걸음으로 소지연 앞에 와서 섰다. 그러더니 차가운 소지연의 표정을 보고는 몸을 움찔하며 가는 음성으로 변명했다.“죄송합니다, 마담 소. 주방에서 빵을 굽고 있느라 오시는 걸 몰랐어요.”“커피 가져와.” 소지연은 얼굴을 찡그린 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고용인은 얼른 소지연에게 커피를 내려 주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잠시 후, 어린 고용인이 돌아왔다.소지연은 얼굴을 더 찡그린 채 소리쳤다.“커피 가져오라고 한 지가 언제인데 시간을 이렇게 끄는 거야? 근무 능력이 그렇게 없어?”어린 여자고용인은 속으로 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평소 갓 내린 커피만 마시는 소지연, 커피를 내리는데 적어도 10분은 걸린다.만약 소지연의 입에 맞지 않기라도 한다면 더 많은 소리를 들을 터.자신의 행동이 굼떠서 커피를 늦게 내려온 것이 아니었다.그러나 소지연은 그 사실을 아는 게 분명한데도 자신을 비난하고 있었다.여자고용인은 무조건 고용주의 지시에 따라 일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그래서 마음속의 억울함을 참았다.“마담 소, 죄송합니다. 저는...”여자고용인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촥, 하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내밀었던 커피가 얼굴에 끼얹어졌다. 이어서 소지연의 노발대발하는 음성이 들렸다.“변명이나 할 생각이야? 일도 제대로 잘하지 못하는 걸 보고 내가 뭐라 하지도 못해?”연신 고개를 가로젓는 여자고용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행히 커피가 따뜻한 정도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오늘 자신의 얼굴은 화상을 입었을 터였다.소지연이 냉소를 지으며 여자고용인을 바라보았다.“그래도 억울해? 그렇게 불쌍한 척하면 내가 동정해 줄줄 알았어? 사람을 꼬실려고 타고난 물건이네 이거, 하! 잊지 마, 너한테 일할 기회를 준 사람이 나라는 걸. 만약 다음에 또 이렇게 마음에 안 들게 군다면 당장 짐 싸야 할 거야!”말을 마친 후 소지연은 여자고용인
강씨 집안 고택, 안금여와 강운경이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그때 집사가 들어와서 방문자가 있음을 알렸다.“회장님, 밖에 누가 찾아왔습니다.” “누구?” 안금여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둘째, 셋째 일가가 몰락한 이후 모처럼 평탄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당연히 조용히 지내는 게 제일 좋은 거지.’혹시나 또 말썽을 피우려는 주주들은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안금여는 더 이상 그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젊은 여자아이입니다. 주OO라고 하는군요.” 잠시 생각하던 집사가 이름을 떠올리고 말했다. “성이 주라고? 확실해?” 안금여가 소파에서 일어나며 되물었다.강운경은 엄마 안금여의 반응에 궁금해서 물었다.“엄마, 누군데요?” “내 친구의 손녀일게다. 집사, 얼른 데려와 보게.” 안금여는 강운경을 향해 말했다.강운경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집사가 늘씬하게 키가 큰 소녀를 데리고 들어왔다. “할머니.” 소녀가 안금여를 소리 내어 불렀다. “오, 얘야, 그새 이렇게 컸구나.” 안금여가 앞으로 다가가서 소녀를 끌어다 소파에 앉혔다.이 소녀는 안금여의 오랜 지기 경성 지역의 조씨 집안 손녀, 조수경이다.예전에 친구가 보내 준 사진이 있었기에 안금여는 한 눈에 이 소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조수경은 안금여의 자상한 모습에 눈시울을 붉히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안금여는 자신의 친구를 보는 듯 무척 반가웠다.둘도 없는 친구의 손녀를 안금여 역시 자신의 손녀처럼 생각했다.그런데 조수경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했다.조수경의 발개진 눈시울을 보자 속이 상한 안금여가 다정한 음성으로 물었다.“수경아, 무슨 일이니?”안금여의 말에 조수경이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입을 열었다.“할머니, 저희 집에 큰 변고가 생겼어요.”말을 꺼내자 마자 조수경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안금여가 티슈를 집어 조수경에게 건네며 달랬다.“아이고, 얘야, 그만 울거라.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다 해결할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이 입술만 짓씹듯이 깨물던 조수경이 결국 안금여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경성 손씨 집안의 장남에게 구애를 받았어요. 손민철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 사람에게 아무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상식적인 선에서 거절했을 뿐인데 그 사람 손민철이 화가 나서 저희 집안에 경제적 보복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 때문에 집안에 경제적인 문제가 생기고, 부모님도 그만 구속이 되셨어요. 이런 일이 터지자 할머니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셨는데,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계세요.”말을 하던 조수경은 코가 시큰거리며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간신히 참았다.안금여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수경이, 이 아이도 참 고생이구나,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이처럼 꿋꿋하게 버티다니.’친구의 멀쩡하던 집안이 한순간에 이렇게 되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 “괜찮아, 괜찮아. 이 할머니가 있으니 이제 걱정하지 말거라.” 안금여는 자상하고 따뜻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대기업의 회장이라는 높은 직위에 있으면서도 조금도 귀찮게 여기지 않고 조수경을 위로해 주었다.조수경은 조금 전까지 절망적이던 마음에 다시 희망이 생기며 가슴이 훈훈해졌다.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면한 듯했다. 이제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었으니.손민철을 떠올릴 때마다 혐오스러웠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손민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조수경이 계속 말했다.“이렇게 우리 집안을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건지 손민철은 지금도 저를 계속 괴롭히고 있어요. 정말이지 어찌할 방도가 없어요. 할머니, 저 손민철을 피해 여기에 잠시 와 있어도 될까요?”손민철은 그 전부터 부모님의 일을 빌미로 자신을 협박해 왔다.자신의 구애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손민철은 조수경을 생각해서 더 이상 그녀의 부모님을 괴롭히지 않고 도와줄 터였다.조수경 역시 모두 자신 때문에 집안에 이런 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아니면 손민철에게 승낙하기만 하면 된다. 그럼 적어도 부모님이 나오실 수는 있을 것이다.하
가련한 조수경의 모습에 안금여는 화가 났다.경성 지역의 손씨 집안에 대해서는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날뛰다니.’경성의 큰 가문은 맞지만 신분과 지위를 이용해서 이런 날강도 같은 짓을 하다니, 그야말로 횡포가 극심했다.조수경이 여기서 지내면서도 불안해할까 걱정이 된 안금여가 안심을 시켰다.“아무 일 없을 거야. 여기서 지내다 폭풍이 지나가거든 다시 이야기하자. 손씨 집안 사람들이라 해도 내 앞에 와서 행패를 부리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안심하고 여기에서 지내.”다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입을 뻐끔거리는 조수경.조수경의 입 모양을 본 안금여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챘다.그 즉시 손을 들어 다시 감사인사 하려는 조수경을 막아세웠다.“됐다. 내가 제일 듣고 싶지 않은 말이 ‘고맙다’ 세 글자다. 내 친구의 손녀인 넌 내 손녀이기도 해. 이 할머니를 너무 어려워 말거라.”조수경은 안금여의 손을 잡은 채 감동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안금여 할머니에게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이고 아가씨, 너무 부담 갖지 마. 그저 상에 수저 더 놓는 것뿐이야.”강운경도 옆에서 한마디 했다.말을 하지 않을 때의 강운경은 꽤나 엄한 인상이다.그래서 조수경에게 무서운 이미지를 심어 줄까 신경이 쓰인 것. “운경 이모, 할머니, 모두 정말 친절하세요.” 조수경은 지금의 이 심정을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하이고 얘도 참. 너 뭐 좀 먹었니?” 안금여가 다정한 음성으로 물었다.자신의 배를 쓸던 조수경의 볼이 금세 새빨개졌다.서두르는 바람에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고택으로 바로 왔다. 안금여가 자신을 거두지 않는다면 얼른 다른 곳을 찾기 쉽도록.조수경의 얼굴을 본 안금여가 눈치를 채고 강운경에게 일렀다.“운경아, 주방에 먹을 것 좀 준비하라고 하거라.”안금여의 세심한 배려에 조수경은 더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할머니, 아니에요, 배고프지 않아요. 정말 괜찮아요.”안금여는 강운경에게 눈짓을 보내
식사를 마친 후, 하인이 조수경을 데리고 방으로 안내했다.목욕을 하고 나온 후에 옷까지 갈아입고 나니 마치 새 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조수경은 기분이 좋아졌다.그저 방 안에서 쉬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거실로 나가 안금여, 강운경과 함께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그때, 거실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하던 안금여는 마침 무진이 유럽에서 북성으로 막 돌아온 게 생각났다.무진을 불러 서로 인사도 시키고 또 앞으로 조수경이 북성에서 지내는 동안 보살피게 하는 것도 좋을 듯했다.어쨌든 지금 강씨 집안을 안팎으로 관리하는 이는 자신이 아니라 무진이니까.무진이 하는 말이 좀더 설득력이 있을 터.안금여가 직접 무진에게 전화를 걸어 상의할 일이 있다고 말하자 무진이 바로 고택으로 건너왔다.무진이 거실로 들어서자 안금여는 조수경을 가리키며 무진에게 소개했다.“무진아, 여긴 수경이야, 조수경, 할머니 친구 손녀.”안금여의 소개에 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결같이 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안녕, 난 강무진이다.”조수경은 무진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그저 멍한 기분이었다.뚜렷한 이목구비에 맞춤 정장 차림의 무진은 목 끝까지 셔츠 단추를 채고 있어 금욕적이면서 시크한 분위기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조수경이 순간 얼굴을 붉히며 더듬더듬 인사했다. “안, 안녕하세요.”무진은 맞은편에 앉은 할머니 안금여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그저 한 사람 소개하기 위해 자신을 부르지는 않았을 테니까.그러나 무진은 생각지 못했다. 바로 그 때문에 안금여가 자신을 불렀다는 것을, 그저 무진과 조수경을 서로 소개시켜 줄 생각뿐이었음을.안금여는 두 사람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무진아, 수경이는 당분간 이곳에서 지낼 거야. 나는 이제 늙어서 기력이 딸리니까 앞으로 수경이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네가 좀 도와주도록 해.”안금여의 말을 듣는 순간 그제서야 무진은 할머니가 자신을 이곳으로 부른 까닭을 알아차렸다.그러나 할머니의 절친한 친구 손녀라는 생각에 무진은 흔쾌히 대답했다.
두 사람이 서로 인사를 다 나누었다 싶은 안금여는 무진에게 조씨 집안에 일어난 변고를 전해주었다.그러나 옆에서 듣고 있는 조수경의 마음을 생각해서 다소 완곡한 표현으로 무진이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무진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으며 두 눈에 동정의 빛을 띄었다. 그저 북성에 놀러 온 조수경이 며칠 고택에 머무는 거라고만 생각했다.그런 힘든 일을 당하고 왔을 줄이야.그제야 조수경을 바라보는 무진의 눈빛이 다소 부드러워졌다.조수경의 눈자위가 다시 붉어지기 시작하며 음성에도 울먹임이 더해졌다.“무진 오빠, 정말 어쩔 수 없이 여기 고택에 와서 폐를 끼치게 됐어요. 진짜 너무 많은 폐를 끼치는 것 같아요.”그 말에 무진이 안심시키듯이 말했다.“신경 쓸 필요 없어. 안심하고 여기에서 지내.”할머니의 목적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무진.자신에게 조수경을 비호하라는 뜻.같은 남자로서 무진 역시 손민철이 한 짓은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이다.또한 할머니가 직접 말씀하셨는데 자신이 안 도울 수가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무진 오빠, 정말 고마워요. 여기가 아니면 전 정말 갈 데가 없어요.” ‘강씨 집안 사람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야.’강무진은 언뜻 냉정해 보였지만 사실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안금여가 조수경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북성에 왔으니 여기서 마음 놓고 지내.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 말고. 휴가 온 것으로 생각하면서 말이야. 모든 건 금세 지나갈 거야.”“네.” 조수경이 코를 훌쩍이며 감동된 음성으로 말했다.“항상 너희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해. 손씨 집안 같은 사람들을 그냥 둬서는 안돼. 저들의 기를 살려주면 더 미쳐 날뛰게 될 거야.”조수경이 가족들 생각에 지금까지 끌어왔으리라 생각하며 한 말이다.“할머니, 저희 할머니도 똑같이 말씀하셨어요.”안금여의 말을 듣고 할머니를 떠올린 조수경은 안금여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자신의 할머니를 경성에 홀로 두는 게 마음에 걸린 조수경은 자신도 경성에 남아 할머니를 돌볼 생각
안금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되긴 뭐가 돼? 네가 이제 막 왔으니 우리도 제대로 대접을 해야지. 무진이가 아무리 바쁘다 해도 그 정도 시간은 뺄 수 있다.”일단 조수경의 정서가 걱정되는 데다 손민철 쪽의 사람들이 찾아올 지도 모른다.‘이럴 때는 누군가 함께 있어 주는 게 좋을 테지.’조수경은 망설이며 무진을 한 차례 슬쩍 쳐다보았다.무진에게 호감을 느낀 자신은 무진과 같이 나간다니 당연히 좋았다.하지만 자신에 대한 동정심을 이용해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무진은 속으로 어쩔 도리가 없다 생각하며 대답했다.“뭐 쇼핑 정도는 시간을 내 볼 수 있겠네요.”조수경의 두 눈이 반짝였지만, 이내 자신의 마음을 감추었다.“어디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무진이 조수경에게 물었다.조수경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무진 오빠, 옷을 좀 사고 싶어요. 여기 올 때, 시간이 너무 빠듯해서 제대로 챙겨 오질 못했어요.”손민철이 눈치챌까 봐 거의 야밤도주 하다시피 해서 온 참이었다.무진 역시 수긍하며 말했다. “그래, 데리고 백화점으로 가도록 하지.”고택에는 상시 대기 중인 운전기사가 있어서 언제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안금여는 무진이 좀 냉담한 성정이지만 속은 따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사람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마음은 더더욱 없다는 것도.그래서 믿고 조수경을 맡긴 것이다.안금여가 입술을 옆으로 늘이며 살며시 웃었다.“그럼 두 사람 외출해서 쇼핑을 하도록 해. 할머니는 집에서 저녁을 준비하여 너희들을 기다리마. 쇼핑한 김에 겸사겸사 근처에서 좀 놀다 와도 돼. 북성엔 경치 아름다운 곳이 많단다.”“가지.” 무진이 조수경에게 말했다.조수경은 안금여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할머니, 나갔다 올게요. 늦지 않게 돌아올게요.”“어여 가거라.”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안금여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나이가 드니 젊은 아이들이 자신의 곁에서 북적대는 것이 좋았다.차 안.무진이 오른쪽에 앉고 조수경이 왼쪽에 앉
연계진의 환하게 웃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무진이 정말 참석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일부러 도발하기 위해서 초청장을 보냈는데, 무진이 와도 망신만 당할 뿐이라는 걸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그러나 무진의 표정에 드러난 자신감과 얼굴에서 발산되는 담담함, 그리고 시선이 지나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가문의 자제들이 잇달아 머리를 숙이는 장면들.의심의 여지없이 연계진에게 진정한 제왕 앞에서 매수와 포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시선도 마주치지 못 하는 것이 바로 무진의 강력한 억지력이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가슴 속에 응어리가 지자, 연계진의 눈빛이 굳어졌다.바로 무진의 앞으로 걸어가자 두 사람의 눈빛이 부딪쳤다. 그러나 무진의 깊은 눈빛 속에는 짙은 경멸이 스쳐 지나갔다.연계진은 화가 났지만,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강 대표께서 와 주셔서 정말 오늘 밤 이 파티를 영광스럽게 해 주셨군요!”“연계진 씨, 당신이 초청장을 보냈으니 제가 반드시 와야지요. 만약 오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당신을 무서워하는 줄 알겠지요!”무진은 연계진에게 어떤 체면치레도 시켜주지 않고 바로 연계진의 이름을 언급했다.“하하, 강 대표께서 중시해 주셔서 저 연계진도 좀 긍지를 느낄 수 있겠습니다.”연계진의 무진의 시선이 계속 충돌하자, 주위의 모든 손님들은 호기심 가득히 주목했다.두 사람의 강한 카리스마 때문에 실내 공기마저 올라가는 듯했다.그러나 은인자중하는 연계전은 무진의 날카로운 눈빛에 계속 맞설 수 없었다.무진의 눈빛이 압박하자, 불편해진 연계진이 시선을 옮기려고 했다.“연계진 씨, 지금은 당신도 꽤 성과를 거둔 편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사업을 잘 관리해야지요. 운성에서는 위세를 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이 말은 경고의 의미가 짙었다.기세에서 패배한 연계진의 안색이 변했지만, 눈빛을 깜빡이더니 곧 웃는 표정을 지었다.웃는 얼굴로 무진의 차가운 시선을 마주했다.이 순간, 연계진도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다.
진양산과 진혜선의 출현은 일시에 다른 참석자들의 시선을 끌었다.연운그룹에 의탁하기로 결정했지만 강씨 가문에의 미움을 살까 봐 걱정하던 사람들은, 진씨 가문 사람들이 등장하자 일시에 의구심을 떨쳐버렸다.‘진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 진혜선 양이 연계진 씨와 결혼한다는 게 사실인 모양이야.’‘이렇게 되면 연씨 가문의 세력은 틀림없이 더욱 공고해질 거야. 어쩌면 정말 WS그룹에 도전할 수 있을 지도 몰라.’여러 손님들이 술잔을 권하며 안부를 묻자, 진양산은 속으로는 거북했지만 그래도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진혜선은 재벌 2세들과 교류하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한쪽에 앉아 있었다.“진혜선 씨, 안녕하세요. 저는 연 회장님의 비서 조수경입니다!”진혜선의 앞에 간 조수경은 술잔을 들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진혜선 씨와 한 잔 할 수 있을까요?”미소를 지으면서 진혜선이 재빨리 거절했다.“미안합니다. 제 주량이 좋지 않아서 마시지 않겠어요. 조 비서님은 아주 우수한 분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저를 놀리시는 거죠. 제가 회사 운영에 대한 지식은 조금 알고 있습니다만, 진혜선 씨야말로 정말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셨잖아요. 하지만 과연 진씨 가문이에요. 사람들이 그렇게 뛰어나도 모두 당신처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아니랍니다.”조수경이 웃으면서 하는 말 속에 조롱이 담겨 있다는 걸 진혜선도 알아차리지 못했다.술을 마실 기회조차 주지 않자 조수경은 차갑게 경멸할 뿐이다. ‘세상에는 진혜선이 속세의 음식을 먹지 않는 것처럼 소문이 자자하던데 정말 그렇네.’‘이런 여자는 연계진이 좋아하지 않을 거야.’“진혜선 씨, 오늘은 우리 연운그룹에서 한턱내는 날입니다. 만약 필요하신 게 있으면 사양하지 마시고 언제든지 저를 찾으세요.”조수경은 인사치레로 말한 뒤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조수경 씨는 정말 유능하세요! 사실 저도 조수경 씨야말로 연 회장님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혼약은 정말 제 본의가 아니니까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니버설 호텔 8층의 연회장.오늘 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운성 전체의 상류층으로 모두 상장회사의 CEO급이다.파티의 주최자인 연계진은 이런 화려한 느낌에 대단히 만족했다. 끊임없이 각 가문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샴페인잔을 부딪치면서 미래의 협력에 대해 이야기했다.이런 모습은 연계진 자신의 손에 의해서 연씨 가문의 과거 영광이 다시 돌아왔다고 느낄 정도였다.검은색 원피스 차림의 조수경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붉은 입술과 요염한 눈빛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마치 이미 연계진의 부인인 것처럼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가능한 한 모든 손님들과 접촉하면서 손님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인상을 새기기를 원했다.‘그런 인상이 확고해져야 연계진이 진혜선과 결혼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나를 연계진의 진정한 여자라고 인정하게 될 거야.’강한 여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조수경의 마음은 즐거웠다.이때 진씨 가문의 현재 가주인 진양산이 성큼성큼 연회장으로 들어섰다.그 뒤로 투 톤의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탁월한 몸매의 진혜선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청년들의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진혜선은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순간 조수경은 사람들이 자신을 진혜선과 비교했다는 걸 알아차렸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진혜선을 흘겨보았다.‘괜찮아, 연계진은 단지 이익 때문에 저 여자와 혼인할 뿐이지, 정말 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게다가 진혜선이 좋아하는 남자는 강무진이 맞아. 진혜선이야말로 송성연의 경쟁 상대야.’조수경은 마음속으로 진혜선도 마찬가지로 성연을 적으로 간주한다면, 자신과 진혜선이 함께 협력해서 성연을 대처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수경아, 내가 가서 좀 접대할게.” 연계진의 눈빛에는 부드러움이 어려 있었다.“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조수경은 마음 놓고 연계진의 손목을 놓았다. 결국 진씨 가문 사람이 왔으니 조수경은 잠시 억울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진양산과
병원의 초음파검사실.한 여의사가 화면을 보고 있었고, 성연도 좀 긴장된 표정이었다.“축하해요, 송성연 씨. 아주 건강한 쌍둥이예요! 벌써 한 달 반이나 됐네요.”“우리 병원에 임산부의 지식 수첩이 있으니까 가져가서 많이 보면서 알아두세요. 나중에 우리 병원 산부인과에서 출산하실 생각이라면, 연락처를 드릴 테니까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문의하시면 됩니다.”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의사가 부드럽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성연은 정말 놀랍고 기뻤다. ‘처음부터 바로 쌍둥이를 임신하다니. 하늘이 너무 큰 선물을 주셨어.’‘시간을 따져 보니 무진 씨하고 처음 관계를 가졌을 때 임신한 게 분명해.’‘한 번에 임신이 되다니! 무진 씨의 능력도 정말 대단한데!’성연은 또 의사와 의견을 나누었다. 의사인 자신이 난치병에도 대처할 수 있지만, 오히려 정상적인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아직도 배워야 할 지식이 적지 않았다.병원에서 나왔을 때, 성연의 마음은 날아가는 듯했고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할머니와 고모에게 소식을 알려 드리면 기뻐하시면서 어떤 모습을 보이실까?’‘그리고 무진 씨는 또 어떤 반응일까?’서한기는 성연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궁금했지만, 임신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보스, 의사가 중병으로 오진해서 공연히 놀라셨습니까? 왜 이렇게 기뻐하세요?”성연은 어이가 없어 바로 서한기를 째려보면서 입술을 삐죽거렸다.“좀 좋은 생각 좀 할 수 없어?”서한기는 멋쩍게 웃으면서 한참을 생각했지만 그래도 감을 잡지 못했다.“이제 돌아갈까요?”“응, 돌아가. 넌 이제 진성 조직의 대장이니까 앞장서서 무진 씨 근심을 덜어줘야 해. 알겠지?” 성연이 당부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두말없이 승낙한 서한기는 성연을 집으로 돌려보낸 뒤 바로 손건호와 합류하였다. 두 사람은 요즘 그야말로 운성시를 샅샅이 뒤졌다. 어떤 고수가 비밀리에 연계진을 보호하고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그러나 연운그룹의 고위 임원들을 포함한 계속된 추적 조사에도 불구
꼭두새벽에 손건호가 별장에 도착했다.성연이 코디한 무진의 정장이 후리후리한 체형에 잘 매치되자, 성연의 두 눈에는 그야말로 하트가 가득했다.‘정말 멋있어, 너무 멋있어!’손건호가 다급한 표정으로 초대장을 건네주었다.“보스, 운성시의 상공회의소에서 보낸 초대장인데, 오늘 저녁 8시에 유니버설 호텔에서의 파티입니다.”무진은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이런 초대는 매일 몇 개나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오늘 스케줄에 이건 없지?” 말을 하면서 회사로 출발할 발걸음을 재촉했다.“없습니다.” 손건호는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더듬었다.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고 손건호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 있으면 빨리 말해. 빙빙 돌리지 말고!”“예!” 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이겁니다. 오늘 밤 이 파티의 주최자가 연계진의 연운그룹입니다. 그리고 진씨 가문도 참석한다고 합니다!”무진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진씨 가문은 정말 연계진과 같은 길을 가려고 하는 모양이네. 진 백부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진교철 한 명 때문에?’“손 비서, 곧바로 진교철의 국외에서의 모든 이력을 샅샅이 조사해줘! 그리고 파티에 참석하는 걸로 저녁 일정을 바꿔!”무진의 눈빛이 변했고, 그윽하게 빛나는 눈빛에는 형언할 수 없는 예리함이 가득했다.“보스, 왜 참석하시려는 겁니까? 그러면 연계진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닙니까? 보스, 가지 마세요. 연계진에게 보스는 쉽게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손건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무진이 가볍게 웃으면서 손건호의 어깨를 토닥였다.“너는 아직 좀 어려. 연계진 그 인간이 이렇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왜 굳이 보냈겠어?”“그럼 이건 연계진이 고의로 도발한 겁니까?”고개를 끄덕이며 거실에서 나온 무진은 벤틀리를 향해 걸어갔다.손건호가 얼른 차문을 열어준 뒤 바로 운전석에 올랐다.2층 안방에서 남편이 떠나는 모습
연운그룹 빌딩 회장실.연계진은 명문가의 두 자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가문은 모두 WS그룹 자회사에 납품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전 선생님과 임 선생님께서 가문의 사람들을 설득해서 상품을 우리 연운그룹에 조달할 수 있다면, WS그룹의 가격보다 30%를 더 쳐서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전혀 이익을 보지 않고 모두 당신들에게 양보하는 거나 한가지입니다.”연계진의 가늘고 긴 두 눈이 웃는 듯 마는 듯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두 부잣집 도련님들은 크게 동요한 게 분명했다. 30%의 이윤이라면 대충 계산해도 1년에 20억 원이 넘는 이익이 더 생길 것이다.이런 이익이라면 그들은 당연히 집안 어른들 앞에서 내세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기만 한다고 자신들을 욕하지 못할 것이다.“연 회장님,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분명히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며칠의 시간을 더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일단 좋은 소식이 있으면 즉시 회장님께 연락 드리겠습니다.”두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연계진이 이렇게 좋은 조건을 제시한 것은 WS그룹과 한 판 겨뤄보겠다는 게 분명했다. 만약 WS그룹과 등을 돌리게 된다면 결과는 아주 심각할 것이다.“그렇게 하세요. 가문의 발전에 관한 큰일이니까 두 분은 돌아가서 잘 협상해 보세요. 절대 가족들의 화목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연계진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여유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그의 온몸에는 제왕의 기세가 가득해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연계진을 믿게 되었다.두 부잣집 도련님이 나가자, 조수경의 마음은 크게 동요하면서 연계진을 대하는 눈빛은 반작거렸다.‘과거에 강무진에게 꽂혔을 때는 강무진이야말로 비즈니스의 제왕이라고 생각했어.’그러나 이제는 연계진도 이렇게 사람을 매혹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강무진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라서 원한을 풀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 돕고 싶었다.‘물론 송성
이른 아침, 샤넬의 전화를 받은 성연은 임신기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연이 전통 지식들을 가르쳐 주자, 샤넬은 어리둥절하게 들으면서 목현수에게 받아 적도록 했다.“샤넬, 이건 현수 사형도 다 알아요. 사실 당신이 직접 물어보면 되는데 굳이 내게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성연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샤넬이 크게 웃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샤넬이 뽐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무진은 최근 양대 조직의 부하들을 모두 모은 뒤에 훈련을 실시했다.손건호와 서한기는 서로 팀장 자리를 놓고 한바탕 겨뤘다.서로 치열하게 경합하자 결국 무진이 나서서 두 사람이 교대로 팀장을 맡고 한 달에 한 번 교대하도록 조치했다. 이번 달에는 서한기가 팀장을 맡도록 하자, 부팀장이 된 손건호는 불만이 가득했다.최종적으로 합친 조직의 이름은 무진과 성연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진성’으로 정했다.성연은 이 명칭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진성의 이름은 곧 전국, 나아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해외의 수많은 조직에서는 보스들이 분분히 부하들에게 앞으로 ‘진성’을 만나면 처벌하지 않을 테니까 임무를 바로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이렇게 많은 준비를 한 진성의 첫 임무는 당연히 연계진을 전방위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다.“무진 씨, 이건 너무 사소한 일에 조직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거 아니에요? 한 가문에 불과한 연씨 가문이 대단한 무력을 보유할 정도는 아니잖아요?”성연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무진에게 물었다.“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적은 드러나지 않았고 우리는 드러난 상태야.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어떤 위험도 없기를 원해. 그래서 안전을 확보하려고 조사하는 거야.”최근 한동안 무진은 운성시 전체에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전개되었고, 중견 기업의 기업가들과 일부 가문들도 연계진의 포섭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약속한 이익이 매혹적이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매수되었다.물론 거절하는 쪽이 더 많았다. 그들은 모두WS그룹의 든든한 지원군으
이른 아침, 연계진은 최근에 구입한 운성의 저택 침실에 있었다.잠에서 깬 조수경은 손에 시가를 든 연계진이 창문 앞에 선 채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헐렁하고 섹시한 잠옷 차림의 조수경이 고양이처럼 가볍게 남자의 뒤로 다가가서 껴안았다.조수경은 이 남자의 능력은 무진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이 남자는 성연에게 복수하겠다는 내 소원을 반드시 실현시킬 수 있을 거야.’고개를 숙여 자신을 껴안은 두 손을 보는 연계진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일어났네!”“계진 씨, 정말로 진혜선과 결혼할 거예요?”이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소원을 이루기만 하면 된다고 일찌감치 자신에게 다짐했지만, 스킨십이 있게 되자 조수경도 다소 감성적이게 되었다.몸을 돌린 연계진의 두 눈에는 순식간에 따뜻함이 가득했다. 손에 든 시가를 끄고는 돌아서서 활짝 웃으면서 조수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이건 반드시 해야 해. 진씨 가문의 실력은 WS그룹의 모든 지지 세력 중에서 가장 강력해. 진씨 가문과 혼인할 수만 있다면, 연씨 가문이 강씨 가문을 이겨서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야!”남자는 마치 7, 8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위로하는 것처럼 천천히 완곡하게 말했다.조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당신 말을 따를 테니까 나를 잊지만 않으면 돼요!”연계진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그럴 리가. 내 가장 큰 조력자인 당신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내가 왜 가장 먼저 당신을 찾았겠어?”약속을 받자 조수경은 흡족했다.오늘이 계획 실행을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송성연, 결혼했다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너에게 가장 심각한 일격을 날려 줄게!”옷을 갈아입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조수경이 총총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연계진의 비서 서진아가 조수경을 그 감옥으로 안내하는 일을 책임질 것이다.한 시간 남짓 달려서 운성시 북쪽의 한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조수경은 절차에 따라서 접견실에서 송아연
“혜선 언니는 승낙했어요?”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진혜선의 눈빛에 걱정이 드러났지만 곧바로 웃으면서 숨겼다.“아직 승낙하지 않았어. 하지만 무진이도 알겠지만 나는 집안의 결정을 거역할 수 없어. 당연히 두 사람의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야.”“무진 씨보고 이 모든 걸 막아달라는 말이에요?”성연은 갑자기 뭔가 불편한 느낌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이건 결국 진혜선 자신의 혼사야. 내 남편이 다른 여자의 혼사에 간섭하는 건 어쨌든 좀 이상한 걸.’무진은 줄곧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진씨 가문에서 뜻밖에도 연씨 가문과 가깝게 지내기로 결정할 줄은 몰랐어. 연계진은 도대체 어떤 좋은 점을 약속한 걸까?’‘두 집안이 이미 이렇게 오랫동안 연합하면서, 진씨 가문은 줄곧 기꺼이 강씨 가문의 거대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어. 원래 진상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자립해서 가문을 이끌 수 있었지. 아니면 WS그룹에서 나오는 진씨 가문의 이익을 차단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 진씨 가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걸 선택하지 않았어.’‘지금 갑자기 태도를 바꾸다니, 이건 정말 너무 이상한데.’무진의 마음을 한순간에 간파한 듯 진혜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무진아, 진씨 가문에는 두 일가가 있다는 걸 잊지 마. 우리 장남 일가는 과거에 줄곧 차남 일가를 눌렀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강씨 가문과 함께 할 수 있었어. 그러나 최근 차남 일가에서 진교철이라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 나왔어. 진교철이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해외에서 돌아왔는데, 이번에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 일가와 관계를 끊겠다는 거야.”“형제 간의 반목으로 가문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우리 아버지는, 진교철의 요구에 동의하고는 나보고 연계진과 혼인하라고 하셨어. 아무튼 이번에는 정말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어.”이렇게 직접적인 진혜선의 SOS 요청에 무진은 다소 놀란 듯했다. ‘진혜선은 평소에 성숙하고 침착한 여장부의 모습을 보였어. 정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렇게 먼저 내게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