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은 핸드폰을 들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김욱 한테서 온 메세지는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카톡으로 김욱한테 물었다.“어때요, 허태준 씨가 동의 해요?”하지만 답장이 없었다.갑자기 문에서 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심유진은 김욱이 돌아온 줄 알았다. 그래서 고개도 들지 않은 채 투정 부렸다.“저한테 카톡을 보낸다면서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들어오는 사람 얼굴을 봤다. 그리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도로 삼켰다.“당신이 어떻게?”그녀는 놀랐다. 허태준은 평온하게 설명했다.“김욱형이 나더러 널 집에 바래다주래.”“네?”심유진은 더 놀랐다.“저 보고 남아 있으라면서요?”허태준은 곧장 침대로 걸어왔다. 심유진이 멍해 있는 틈을 타 그녀를 안아 올렸다.“내일 아침에 일이 있어서 나더러 별이를 데려다주고 널 회사에 데려다주래.”“엇, 네.”심유진은 두 사람의 친밀한 접촉에 또다시 부끄러워졌고 당황했다. 그래서 허태준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하지도 못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안은 채 안정된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왔다.아래층에 연회는 이미 끝났다. 손님은 다 가버리고 현장은 형편없었다.집안 도우미들은 열심히 청소하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갈 때 황송하게 “아가씨” 또는 “허 대표님”하고 불렀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할 건지에 대해서는 묻지 못했다.육윤엽과 김욱은 보이지 않았다. 허태준은 말했다.“두 분 다 손님을 배웅하러 가셨어.”그래서 허태준은 눈치 볼 필요 없이 그녀를 안아 차에 태웠다. 그녀의 다리가 불편하니 허태준은 그녀를 뒷좌석에 앉혔다. 그리고 상한 다리를 곧게 펼 수 있게 자세를 조절해 줬다.차가 별장을 떠날 때 심유진은 손님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육윤엽과 김욱을 봤다.그들도 허태준의 차를 발견했다.육윤엽은 바로 고개를 돌렸고 김욱은 허태준한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널찍한 도로에 들어서자 허태준은 엑셀을 밟아 속도를 냈다.도로 양옆 나무와 집은
김욱의 목소리는 너무 커 심유진이 스피커를 켜지 않아도 허태준은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다.“무슨 뜻이에요?”심유진은 의아했다.“오빠가 허태준 씨더러 절 데려가라고 했잖아요?”심유진은 의혹스런 눈으로 앞에 앉은 허태준을 바라보았다.허태준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엑셀을 더 세게 밟았다.김욱은 화를 가라앉히더니 아까보다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허태준 씨더러 널 데려가라고 한 게 맞아.”심유진은 어안이 벙벙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내가 허태준 씨더러 널 데려가라고 한 게 맞아.”김욱은 말했다.“아까 삼촌이 옆에 있길래 연기 해봤어. 안 그러면 삼촌이 내 다리를 분질러버릴 거야.”심유진은 김욱이 왜 자신과 상의 없이 허태준더러 자신을 데려가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김욱의 긍정적인 답변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적어도 허태준이 설계한 납치 사건은 아니니 말이다.“집에 도착하면 문자 줘. 내일 아침 회사에서 널 기다릴게. 도착하면 바로 전화하고, 마중 나갈 테니.”김욱은 자세하게 알려줬다.“네.”심유진은 대답했다.심유진이 전화를 끊자 허태준도 속도를 늦췄다.“잠깐 쉬고 있을래?”허태준은 심유진한테 물었다.“집에 도착하려면 한 시간 가까이 있어야 해.”시간은 멀었고 심유진은 다른 할 일이 없었다.“좋아요.”허태준의 차는 어디에서 구해온 것인지 차 안의 장식은 유난히 포근했다. 각종 털 달린 장난감이 있을 뿐만 아니라 눈을 붙일 때 필요한 쿠션과 담요도 있었다.심유진은 차 안의 라벤더 향을 맡으면서 고개를 시트와 차 문 사이에 기댄 채 점차 잠이 들었다.백미러로 곤히 자고 있는 심유진의 얼굴을 보자 허태준의 불안하기 그지없던 마음도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유진아?”그는 조심스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가 반응이 없자 그제야 한쪽에 차를 멈춰 세웠다.무음모드로 바꿔놓은 핸드폰은 메세지 몇 개가 와있었다.여형민이 보낸 것도 있었고 김욱이 보낸 것도 있었다.여형민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고 허태
심유진이 문을 열고 들어갈 때 하은설과 별이는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갑자기 부둥켜안고 소리 질렀다. 심유진은 고막이 나갈 것만 같았다.심유진은 스위치를 켰다. 따뜻한 색깔의 빛이 금세 방안 곳곳을 밝혔다.“늦은 저녁에 자지 않고 뭐 해?”심유진은 이마를 찌푸렸다.“귀신을 본 것처럼 소리는 왜 질러.”심유진인 것을 확인하자 하은설과 별이는 그제야 시름을 놓고 서로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니 아들과 같이 코난을 보는 중이야.”하은설은 심장이 쫄깃했다.“너무 무서워! 놀라서 죽을 뻔했어!”별이는 바로 하은설의 흉을 봤다.“이모가 담이 작은 거예요. 하나도 안 무서운데!”“방금 놀라서 소리 지른 게 누군데?”하은설은 별이의 작은 콧날을 잡으면서 까밝혔다. “어린 친구,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집니다!”별이는 하은설의 손을 내려놓고 걱정하면서 자신의 코를 만졌다. 길이를 가늠하는 것 같았다.심유진이 앞으로 한발 걷자 밖에 서있던 허태준은 드디어 집안에 들어왔다.“여기 앉아있어. 슬리퍼 갖다 줄게.”허태준은 심유진을 부축하여 현관 작은 걸상에 앉게 하고 몸을 굽혔다. 찰나, 작은 그림자가 쏜살같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다리를 끌어안고 기뻐서 소리 질렀다.“아빠!”허태준은 별이에게 웃는 얼굴로 대답하고 별이의 옷깃을 들어 별이를 옆으로 옮겨놓았다.“잠깐만, 아빠가 엄마 슬리퍼 신는 것을 도와주고.”“네.”별이는 입을 삐죽하면서 불만스레 옆으로 비켜섰다.처음부터 끝까지 별이한테 인사를 못 받은 심유진은 차가운 눈으로 별이를 노려보면서 콧방귀를 뀌고 불만스레 말했다.“돌아온 지 한참 되는데 엄마를 부르는 소리도 못 듣고.”그제야 별이는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심유진의 품에 안기면서 연속 엄마를 불렀다.심유진은 별이를 내치는 척하면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별이의 마음속에는 아빠밖에 없지. 엄마는 꼬물만치도 없지.”“절대 아니에요!”별이는 심유진의 목을 끌어안고 심유진이 아무리 별이의 손을 치워도 손을
별이가 있으니 심유진은 허태준더러 안아달란 말을 못 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팔을 잡고 한발로는 바닥을 짚었다. 그리고 총총 앞으로 뛰었다.별이는 다른 한쪽으로 달려가 심유진을 부축했다. 현관에서부터 안방으로 가는 길 내내 별이는 잔소리했다.“엄마는 앞으로 높은 구두를 신지 마요!”“다 큰 어른이 왜 이렇게 조심하지 않아요?”“이래서 어떻게 엄마 혼자 출근하는 걸 시름 놓겠어요?”별이는 심유진이 평소에 자신한테 훈수를 두는 모습 그대로 재연했다.심유진이 침대에 앉자마자 별이는 신발을 벗어 던지고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가 심유진의 곁으로 갔다.“저랑 오늘 저녁 같이 잔다고 약속했어요!”별이는 심유진이 약속을 어길까 봐 이불을 꼭 잡고 자신을 번데기처럼 감싸안았다. 이마와 맑은 눈동자만 드러냈다.심유진은 검지로 별이의 이마 중간을 살짝 짚고는 말했다.“알았어!”어쩔 수 없는 미소 속에는 별이에 대한 총애가 가득했다.“가라고 하지 않아. 하지만...”심유진은 옆에 서있는 허태준을 보면서 별이를 놀렸다.“아빠도 오늘 여기에서 잘 건데~ 별이는 아빠랑 같이 안 자고 싶어?” “네?”별이는 멈칫했다. 몇 초 지나자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아빠랑도 자고 싶고 엄마랑도 자고 싶은데...”별이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눈동자는 또르르 굴러갔다. 심유진을 바라보다가 또 허태준을 바라보다가 누구를 선택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심유진은 별이의 대답을 내심이 기다렸다.허태준도 소리를 내지 않고 흥미로운 듯 별이의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갑자기 별이는 어떤 절묘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는지 입꼬리가 귀밑까지 올라갔다. 눈에는 교활한 빛이 아른거렸다.“세 사람이 같이 자면 되겠네요! 그러면 아빠랑도 잘 수 있고 엄마랑도 잘 수 있으니까요!”“콜록! 콜록!”심유진은 사레가 들렸다. 기침이 멈추지 않았는데도 옆으로 몸을 날려 별이의 입을 막았다.“앞으로 이런 얘기는 함부로 하면 안 돼!”심유진은 별이를 교육했다.“남자애랑 여자애는 이
심유진은 별이에게 입을 맞추고 아쉬워하며 말했다. “잘 자.” “응!” 별이는 두 팔을 벌려 허태준의 목을 감쌌다. “이제 아빠 차례야!” 허태준과 심유진은 모두 멍하니 멈춰 섰다. “뭐?”“굿나잇 뽀뽀!” 별이가 재촉했다. “엄마 아직 아빠한테 뽀뽀하고 잘 자라는 인사 안 했잖아.” 심유진은 부끄럽고 난감했다. “그...” 심유진이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려는데 이마에 허태준의 입술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허태준은 금방 입술을 뗐다. “잘 자.” 심유진을 바라보는 허태준의 눈빛이 매우 따뜻했다. 이마에 닿았던 입술의 따뜻한 촉감이 온몸에 퍼지는 것 같았다. 심유진은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여 허태준을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일어나고는 나가면서 해석했다. “아빠가 말했잖아. 엄마는 여자라서 부끄러움이 많다고. 이럴 땐 남자가 먼저 하는거야.” 별이는 알아들은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러니까 내가 먼저 Lily한테 뽀뽀를 해야 된다는 거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심유진은 아까까지 설레던 기분이 이 대화로 확 깨졌다. 엄마로서의 책임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너 이리 와.” 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허태준은 심유진에게 별이에게 사랑에 대한 조숙한 감정들을 심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장장 이틀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던 심유진은 그날 처음으로 해가 뜰 때까지 푹 잤다. 심유진은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대에 알람을 설정했다. 힘겹게 씻고 주방으로 와보니 이미 전등이 켜져 있었다. 허태준은 캐릭터가 그려진 앞치마를 입고 계란 프라이를 만드는 중이었다. 어디에서 찾아 입은 건지 모를 잠옷을 입고 왁스로 깔끔하게 고정해 놓았던 머리도 싹 내려놓으니 인상이 훨씬 따뜻해 보였다. 허태준은 인기척을 듣고는 고개를 돌렸다. 심유진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다시 차가운 인상으로 돌아왔다.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을 텐데.” 허태준은 요리 준비를 멈
허태준은 별이를 데려다주고 나서 차 문을 열었다. 시선이 뒷좌석에 앉아있는 심유진에게 꽂혔다. 심유진은 몸을 차창에 기댄 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집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내내 별이가 말을 걸 때 빼고는 계속 이 상태였다. “왜 그래?” 허태준이 물었다. 심유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생각나는 게 있어서요.” “뭔데?” “아무것도 아니에요.” 심유진이 고개를 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이번에는 여기에서 얼마동안 지낼 거예요?” “아직 몰라.” 허태준이 시동을 걸면서 대답했다.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요.” 심유진은 그냥 담담하게 대답하고 나서 또 조용히 창밖을 응시했다. 허태준은 모든 걱정들을 다 가슴속에 삼키려 했지만 심유진이 걱정되는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달라진 모습을 보인 걸까? 허태준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마도 식탁에서 하은설과 별이가 자신이 만든 음식을 칭찬하고 평소에 심유진이 만들던 음식과 비교했을 때부터 심유진의 표정이 조금 안 좋았던 것 같다. 비록 그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럼 앞으로 내가 한 음식은 먹지 말라며 장난식으로 넘어가긴 했지만 그래도 그게 조금 속상했었나 보다. “당신이 한 음식도 맛있어.” 허태준의 말이 정적을 깼다. “네?” 심유진은 순간 허태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화난 거 아니야?” 허태준이 심유진의 표정을 살피면서 말했다. “은설 씨랑 별이는 그냥 예의상 한 말이었을 거야.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네? 그럼 제가 그래서...” 심유진은 그제야 허태준의 뜻을 알아차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화난 거 아니에요.” 허태준은 멍해졌다. “뭐?” “저도 그 두 사람을 잘 아는걸요.” 심유진은 평소에 하은설과 장난도 많이 치고 말도 스스럼없이 막 하는 편이었다. 그래도
허태준은 심유진보다 먼저 내려서 차문을 열어주고 팔을 내밀었다. 심유진은 허태준의 팔에 지탱하며 차에서 내렸다. 오랜만에 하이힐을 신으려고 했는데 집안 두 남성의 닦달하에 결국 편안한 털부츠로 갈아 신었다. 다행히 바지가 충분히 길었기에 오늘 착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발이 어느 정도 가려졌다. 허태준은 심유진의 패딩 지퍼를 목까지 올려줬다. “바람이 차네.” 허태준이 말했다. 심유진이 못마땅하다는듯한 표정을 짓자 허태준은 아이를 달래듯 말을 보탰다. “말 들어.” 심유진은 그 말에 또 얼굴이 붉어져서 허태준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하루동안 휴식한 데다가 외출 전 허태준이 마사지를 해줬기 때문에 발목의 붓기도 이제 많이 내렸다. 하지만 걸을 때는 아직도 오른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심유진은 허태준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혼자서 절뚝거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심유진을 쳐다봤다. 김욱이 사전에 사원증을 제작해서 줬었기 때문에 순조롭게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출근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심유진은 괜히 김욱에게 전화 걸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엘리베이터 안은 꽉 막혀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심유진의 몸에서 풍기는 고약한파스냄새에 다들 코를 틀어막았다. 엘리베이터 안은 사방이 유리였기에 심유진은 자신을 훑어보는 시선들을 느낄 수 있었다. 심유진은 모르는 척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개 층에서 멈춰 서고 나니 이제 엘리베이터 안에는 심유진을 포함해서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한 사람은 금발에 명품옷을 입은 굉장히 예쁜 여성분이셨는데 몸매도 매우 좋았다. 그녀도 심유진과 마찬가지로 대표 사무실이 있는 꼭대기층으로 가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문이 열리자마자 그 여인은 심유진보다 먼저 내렸다. 심유진은 그녀가 자신을 스쳐 지나가면서 은은하게 비웃는 소리를 낸 걸 들은 것 같았다. 심유진은 자신의 차림을 다시 한번 살피면서 한숨을 쉬었다.
직원들은 저마다 태도가 달랐다. 남자직원들은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었다. 심유진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을 젓는 사람도 있었다. 여자 직원들도 웃고 있긴 했지만 진심 어린 웃음인 것 같지는 않았다. 심유진은 그들이 자신에게 묘한 적대심을 품고 있음을 느꼈다. 심유진은 이런 적대심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심유진의 업무내용은 그들과 완전히 달랐기에 그들의 자리를 위협할리는 없고 오늘의 옷차림도 전혀 화려하지 않았다. 심유진은 그냥 못 본척하며 예의 있는 모습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김욱의 사무실은 육윤엽 바로 옆이었고 이 층의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지난번에 심유진을 안내해 준 비서는 그녀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지 보자마자 일어나서 열정적으로 인사했다. “육윤엽 씨를 찾아오신 건가요?” 김욱은 고개를 저으며 옆의 사무실을 가리켰다. “김욱 씨를 만나러 왔어요.” “전화해 드릴까요?” “아니요, 이미 연락했어요.””알겠습니다.” 비서가 웃으면서 말했다. “무슨 일 있으시면 언제든지 호출해 주세요. Maria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심유진은 인사를 하고 김욱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심유진이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남자 직원이 비서에게로 다가왔다. “아는 사이에요?" Maria는 육윤엽의 비서로서 차가운 성격으로 유명했다. 평소에 다른 직원들한테도 쌀쌀맞은 사람인데 새로 온 직원에게 따뜻할 리가 없었다. Maria는 다시 평소처럼 차가운 얼굴로 돌아왔다. “당신이랑은 상관없는 일일 텐데요.” 남자 직원은 머쓱하게 자리로 돌아갔다. 김욱은 심유진이 들어온 걸 보고 하던 일을 내려놓고 심유진을 부축했다. 잔소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화하라니까. 내가 데리러 간다고 했잖아.” 심유진은 강제로 소파에 앉으면서 어김없이 과한 걱정을 하는 김욱을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걷지 못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오빠가 그렇게 나 챙기면 직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