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희는 몸을 휘청했다. 마음 깊숙이에서부터 희열이 머리를 내밀자마자 나은희는 싹을 잘랐다.여형민이 이혼을 원치 않은 이유는 그녀와 다를 것이다. 그녀는 좋을 대로 해석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할 말은 다 했어요.”허태준은 똑바로 앉고 안전벨트를 맸다.“여형민과 같은 동네에 사니까 집 부근까지 데려다주면 됩니다.”“...네.”나은희는 머리를 흔들면서 쓸데없는 잡생각을 훌훌 털어버리고 입술을 오므린 채 엑셀을 밟았다. 화려한 슈퍼카는 빨간색 번개마냥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면서 주차장을 떠났다.**나은희는 허태준을 동네 문앞에다가 내려놓았다.허태준은 차에서 내리고 나서 주머니에서 무음모드를 해놓은 핸드폰을 꺼냈다.스크린에는 여형민한테서 온 전화뿐이었다. 삼십몇 통이나 되었다. 안 읽은 메세지도 이십여 개나 되었다. 보지 않아도 이 메세지를 누가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허태준은 무시한 채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와 열정적이게 인사를 나눈 경비한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천천히 집으로 걸어갔다.심연희의 사건을 해결하니 해결해야 할 일들이 또 한 건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 시름을 놓기에는 일찍 하다. 남은 일들이 더 성가신 일들이기 때문이다.그중 제일 성가신것은...허태준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심유진은 도대체 언제 자신한테 연락을 줄까?** 심연희가 잡힌 뉴스는 금세 각 웹사이트 메인에 떴다.이 사건과 동시에 일어난 일은 바로 사영은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 사건은 폭탄과도 같아 그 영향은 어마어마했다.사영은은 머리를 다쳐 혼수상태에 빠졌고 의사도 식물인간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사영은은 호흡기와 영양액으로 목숨을 부지했다.하지만 어제저녁에 순찰을 돌던 간호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영은의 호흡기는 누군가에 의해 제거되었고 그녀 침대 옆 계측기에는 아무런 기복이 없는 직선이 그려져 있었다.한차례의 구급을 진행한 후 의사는 정식으로 사영은의 사망을 선고했다.신고를 접수한 경
밤이 깊었다.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허태준은 파일을 닫고 펜을 놓았다.옆에 놓인 핸드폰은 울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별이는 두 날 전 유치원에서 조직한 겨울 캠프를 떠났기에 핸드폰을 가지고 갈 수 없어 연락할 길이 없었다.오랜 습관이 바뀌게 되니 허태준은 정신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무언가를 잃은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업무를 했고 생기를 점점 잃어갔다.그는 피곤하여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두 손가락으로 아픈 눈썹 혈을 지그시 눌렀다.12시가 다가오자 통유리창을 통해 여전히 불빛이 환한 옆 건물 인터넷 회사를 볼수 있었다.마음속의 허전함은 조금 가셔지는 듯했다—적어도 이렇게 깊은 밤에 외로운 사람은 허태준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허태준은 여형민에게 전화했다.그날 대회장 주차장에서 여형민을 버린 채 떠난 후로 그에게서 삼십여 통의 전화가 걸려와도 허태준은 받지 않았다. 그 뒤로 여형민은 허태준을 찾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허태준은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여전히 답장이 없다.전화도 무응답이었다.허태준은 지금 남은 게 시간뿐이었다.그래서 그는 전화를 한 통 한 통 걸었고 문자도 한 통 한 통 보냈다. 심지어 심한 말까지 했다. “전화를 안 받으면 집 앞에까지 찾아갈 거야.”아마도 허태준한테서 광기를 느꼈는지 여형민은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상당히 불친절한 말투였다.“저녁인데 뭐 하는 거야? 여자나 찾지! 나를 왜 귀찮게 해!”그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금방 잠에서 깬 목소리가 아니었다.허태준은 여형민의 분노를 무시한 채 물었다.“술 마실래?”“마시긴 뭘 마셔!”**허태준은 위스키 한 병을 까자마자 룸의 문이 열렸다.여형민은 욕설을 퍼부으면서 들어왔다. 짜증이 가득한 얼굴을 하면서 말이다.“미친놈! 이렇게 늦었는데 나를 왜 불러!”허태준은 술이 담긴 잔을 건네면서 말했다.“마셔봐. 비싼 술이야.”비싸다는 말은 마법과도 같아 여형민은 금세 부정적인 정서를 버렸다.그는 천천히 한 모금을 음미하면서 평가를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널 좋아하니까.”허태준의 목소리는 룸 안에 퍼졌다. 은근 질투하는 것 같았다.“누가 나은희를 좋아한대!”여형민은 발칵 뒤집힌 듯했다. 술잔을 탁자에 쾅 하고 놓고 허태준한테 경고했다.“제멋대로 상상하지 마!”하지만 그의 반짝이는 눈과 피날 것 같이 빨갛게 물든 귀는 그의 마음을 폭로하였다.“나도 눈이 있어서 볼 수 있어.”허태준은 피식하더니 금세 정색했다.“나한테 솔직하게 말할 수 없어?”여형민의 몸은 흠칫했다.허태준의 말은 바늘처럼 그의 몸을 찔러댔다. 그의 모든 기를 방출한 것 같았다.술을 마시자 그는 용기를 얻었다. 자존심 또한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은 게 아니라...내 마음을 아직 잘 모르겠어.”여형민은 솔직하게 말했다.그는 나은희한테 아직 증오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그녀가 하찮은 수법으로 그를 해치고 그가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게 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증오했던 마음도 함께 보낸 오랜 시간 동안 점점 옅어만 갔다. 이윽고 무언가 다른,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여형민은 이게 무슨 감정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그는 단지 나은희가 자신을 오해할 때 화가 나고 슬퍼지고 무서워졌다는 감정을 느낄 뿐이다. 나은희가 이혼 얘기를 꺼낼 때 그의 몸속 모든 세포가 반항을 하는 것 같았다.“그게 좋아하는 거야.”허태준은 결론을 내려줬다.다만 이런 좋아하는 마음은 아직 그가 나은희에 대한 습관적인 반감에 가려져 알아차릴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여형민은 말없이 술을 마셨다.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허태준한테 정곡을 찔리자 그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소화해야만 했다.“좋아한다면 잘해줘.”허태준은 말렸다.“쓸데없는 자존심은 버리고. 마누라가 떠나면 후회하게 될 거야.”“너처럼?”여형민은 곁눈질로 허태준을 보면서 장난스레 웃었다.“나는 너랑 달라.”허태준은 당당했다.“심유진은 날 좋아하지 않아.”그는 그녀를 조사했다. 그녀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한테 얼마나 차갑고 매정하게 대했는지를 잘 알았
무슨 일?“무슨 일인지 알았으면 좋겠다.”허태준은 자신을 비웃었다.그래야 그는 핑계라도 댈 수 있지.심유진은 하필 입을 꾹 다물고만 있어 허태준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허태준은 또 짜증이 났다.“술이나 줘.”그는 긴 팔을 내밀면서 술잔을 가지려 했다. 여형민은 뒤로 숨으면서 술잔 안의 술을 흘렸다. 두 사람의 옷은 술에 젖었다.질척한 옷감이 피부에 닿자 차가워났다. 허태준은 이마를 찌푸렸다.그는 옷을 벗어 던지고 웨이터를 불렀다.“새것으로 부탁해요.”오늘의 웨이터는 새로 온 사람이었다. 매니저의 귀띔하에 허태준을 기억했지만 여형민은 몰랐다. 이 시각 룸안에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을 한 두 사람을 보자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이렇게 되니 허태준은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그는 양팔을 안고 여형민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기다리는 시간은 무료했다.여형민은 잘못을 인지하고 더 까불지 않았다.“옷은 내가 빨아줄게.”웨이터는 나가자마자 다시 돌아왔다. 문을 열자마자 여형민의 빨아주겠다는 말을 듣고 그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웨이터의 머릿속에는 피 끓는 드라마가 스쳐 지나갔다.허태준은 차갑게 웨이터를 바라보았다. 웨이터는 몸을 흠칫했다.그는 미소를 띠면서 물었다.“허대표님, 옷 사이즈가 어떻게 되시나요?”허태준은 사이즈를 얘기하였고 웨이터는 받아적었다. 그리고 급히 떠났다.옷이 더러워지자 허태준은 계속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결산하고 웨이터가 보내온 새 옷을 들고 떠나려 했다.여형민은 금세 따라붙었다.“나도 데려다주지?”그는 예쁘게 웃었다.두 사람은 모두 술을 마셨기에 운전을 할 수 없었다. 허태준은 데리러 올 기사가 있었지만 여형민은 없었다.웨이터는 문밖에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 사람은 너무 주동적인 게 아닐까?더 놀라운 것은 허태준이 거절하지 않은 것이다.**경주의 상류층에는 금세 CY 허대표가 게이라는
코를 찌르는 향수냄새에 허태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허태준은 그녀를 밀어내면서 말했다. “꺼져.” 여자들을 옆에 끼고 좋아하던 다른 사람들도 허태준의 목소리에 숨을 죽였다. 대표는 잠시 멈칫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아이고, 내 기억 좀 봐.” 그는 아가씨들을 내보내고 직원을 불러 작은 목소리로 뭔가를 지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 크고 마른 체형의 젊은 남자들이 들어왔다. 20대 정도 돼보였는데 값싼 정장을 입고 화장을 진하게 한 모습이 무척 느끼했다. 그들은 아까 들어온 여자들처럼 허태준에게 들러붙었다. 허태준은 예상도 못하고 있다가 그들이 자신에게 달라붙고 나서야 화가 나서 몸을 일으켰다. 허태준은 주변사람들의 만류에도 뒤도 안 돌아보고 방을 나왔다. 허태준은 화장실부터 갔다. 그는 수도꼭지를 틀고 아까 남자들이 입을 맞춘 얼굴을 벅벅 씻어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아까의 그 구역질 나는 상황을 잊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 다가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려왔지만 허태준은 얼굴을 씻느라 고개를 들지 않았다.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대표님?” 놀란듯한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세요?” 허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김욱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허태준이 급히 피했다. 그는 휴지를 뽑아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냈다. “언제 귀국하셨어요?” 허태준이 침착한 척하며 김욱에게 물었다. 하지만 심장은 계속 거세게 뛰고 있었다. 긴장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주머니에 꽂은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어제요.” 김욱이 손을 씻으며 대답했다. “비약회사와의 합작을 논하려고 들어왔어요.” 비약은 무역회사였는데 CY 그룹과도 합작한 적이 있었기에 허태준도 낯설지 않았다. “그렇군요.” 허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유진의 상황을 물어보고 싶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유진의 일에 관해서 허태준은 직접 들은 사실만 믿을 수 있었다. 직접 들은 것이 없다면 그는 계속 자신을 속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욱이
“무슨 일인데?” 허태준이 물었다. 여형민은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말했다. “어제 킹 호텔에서 유진 씨를 만났어.” 허태준은 심장이 덜컹했다. 잠시 뇌가 멈춘 것처럼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방금 뭐라고 했어?” 온밤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허태준은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여형민은 한번 더 방금 했던 말을 중복했다. “어제 고객님 한 분을 킹 호텔에 모셔다 드렸는데 체크인할 때 유진 씨 오빠를 만났어. 이름이 뭐더라? 김... “김욱.” 허태준이 먼저 대답했다. “그래, 맞아! 그래서 내가 인사를 하려는데 자세히 보니까 옆에 누굴 부축하고 있더라고.” 여형민이 뒤의 말을 이어가지 않아도 허태준은 그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허태준은 손발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심유진이 귀국한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젯밤 김욱과 만났지만 그 역시도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거리감은 허태준에게 두려움을 안겨줬다. 그는 이 원인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의자에 걸린 외투를 들고 허태준이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럽게 몸을 일으켜서인지 아니면 너무 불안해서인지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다행히 얼른 테이블을 붙잡았기에 여형민 앞에서 주저앉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 여형민이 얼른 달려와서 부축했다. “괜찮아. 나 나갔다 올게. 오늘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어. 비서한테 대신 전달해 줘. 중요한 일은 일단 부대표한테 전달하고 급하지 않은 건 나 돌아와서 다시 보자고.” “지금 킹 호텔로 갈 거야?” 여형민이 시간을 확인했다. “다섯 시밖에 안 됐어. 유진 씨가 일어나지도 않았겠다.” “집에 가서 씻으려고.” 허태준은 지금 온몸에 술냄새와 향수냄새가 가득했다. 일에 집중할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은 왠지 그 코를 찌르는 냄새가 너무 불편했다. 여형민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같이 갈까?”여형민은 허태준이 순간 흥분해서 심유진을 자극할만한 말을 내뱉을까 봐 두려웠다.
허태준의 집은 킹 호텔과 매우 가까웠다. 하지만 그는 호텔 주변을 몇 바퀴 빙빙 돌면서 긴장이 조금 가시고 나서야 킹 호텔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호텔 로비로 들어가고 난 뒤에도 그는 여전히 심장이 뛰었다. 허태준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직원들의 환영을 거부하고 혼자 휴게실 소파에 앉았다. 그는 일부러 시야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사용하는 모든 손님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이렇게 무작정 기다린다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허태준에게는 더욱 쉽지 않았다. 그의 손을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고 온몸의 근육은 경직되어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릴 때마다 허태준은 한 사람 한 사람 자세히 살펴봤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익숙한 두 얼굴이 보였다. 허태준이 다급히 몸을 일으켜 그쪽으로 다가갔다. 김욱은 심유진보다 먼저 그를 발견하고 놀란 얼굴로 물었다. “허대표님?” 심유진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태준을 보는 순간 심유진은 얼굴이 굳어졌다.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허태준은 그 반응을 보며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좋은 아침입니다.” 허태준이 억지로 웃었다. “좋은 아침이네요.” 대답한 건 김욱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출근할 때 마침 킹 호텔을 지나고 있는데 어제 여형민이 여기에서 두 분을 만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제 운을 테스트해 보고자 들어와 봤어요.” 김욱이 장난을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저희를 만난 게 행운인가요 불행인가요?” 허태준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당연히 행운이죠.” 허태준에게는 엄청 큰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어디 가세요?” 허태준이 화제를 돌렸다. “병원이요.” 김욱이 대답하자 허태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심유진의 다리로 갔다. “무슨 일 있어요?”
사영은이 죽고 난 후 허태준은 병원의 감시인원들을 다 철수했기에 이 중요한 소식을 놓친 것이었다. 허태준은 자신이 조금 더 일찍 알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사영은의 후사는 대충 사람을 붙여서 처리하면 되는 거였기에 심유진이 아픈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올 필요가 없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지금은 모른 척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허태준은 잠시 멈칫하다가 조금의 기대를 품은 채 물었다. “제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아니요.” 심유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심유진은 한시라도 빨리 허태준을 떼여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허태준은 그 냉정한 말투에 온몸이 얼어붙은 듯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입을 뗄 수 있었다. “알겠어요.” 김욱은 허태준을 살피다가 자리를 뜨면서 낮게 그에게 말했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유진이는 강한 애이니까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기 싫어서 그런 거예요.” 심유진의 다리는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니었지만 저번에 미국에서 만났을 때에 비하면 많이 호전된 상태였다. 이제는 혼자 걸을 수 있었지만 걸음걸이가 조금 어색했고 오래 걸으려면 아직도 부축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김욱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허태준을 거절한 건 이 원인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욱은 몰랐지만 허태준은 잘 알고 있었다. 김욱의 따뜻한 배려에 허태준은 씁쓸하게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허태준은 주차장까지 같이 가서 그들이 차에 오르는 걸 보고 나서야 몸을 돌렸다. 김욱도 차 안에서 허태준이 가는 모습을 눈으로 배웅했다. 심유진은 여전히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하다가 차 시동을 걸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혹시 대표님이랑 싸웠어?” 김욱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물었다. 사실 김욱은 미국에 있을 때부터 심유진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계속 멍을 때리고 있기도 했고 의사의 권유는 듣지도 않은 채 재활운동의 강도를 높이기도 했으며 말수도 훨씬 적어졌다. 허태준이 그리워서 얼른 회복한 후 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