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준은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휴대폰을 꺼내 여형민에게 문자를 보냈다. "10분 뒤에 전화해 줘."그는 부모님의 체면을 고려해 이 자리에 온 것이다. 그가 할 일을 끝냈기에 이젠 나가도 된다.그는 원래 부모님을 모시고 끝날 때까지 있을 생각이었으나, 둘째 삼촌의 가족이 성가시게 구는 탓에 이 자리에 잊고 싶지 않았다.둘째 아주머니는 그를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입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태준아, 내가 일부러 널 창피하게 하는 게 아니야." 허태준을 탓하는 그녀의 말투가 더욱 짙어졌다. "돈을 벌어서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몇 년만 더 있으면 부모님도 세상을 뜨실 건데, 그 돈 다 벌어서 어디에 쓸 거니!""둘째 아주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허태준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전 매년 우리 부모님께 아주머니 두 아들보다 더 많이 드려요. 더군다나, 저한테 딸도 있으니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죠."허 아주머니의 안색이 더없이 어두워졌다. 허태준의 입꼬리가 억누를 수 없이 올라갔다, 그의 눈에는 경멸로 가득했다."그러네." 허 아주머니가 동의하는 듯 말했다. "여자애는 부유하게 키워야지. 하나뿐인 딸 잘 키워야지. 그래야 나중에 네 사업을 이어받지."허태준이 가볍게 말했다. "네.""그런데-" 허 아주머니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오늘 같은 날 왜 네 딸을 데리고 오지 않은 거야?" "오랫동안 보지 못해서 보고 싶었는데."허태준은 약간 당황했으나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그게... 오늘 친구들이랑 논다고 해서요." 허태준의 표정과 말투가 많이 어색했다.허태서는 허아리의 납치 사실을 알게 된 뒤로 항상 납치사건의 진행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모든 정보를 정소월을 통해 받았기에, 그는 허아리를 납치한 배후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부모님께 허아리를 안전하게 구할 방법이 있는지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지금까지 허아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를 자기도 모르게 초조하게 만들었다.허태서는 처음부터 허아리
"경찰에 신고는 했니? 경찰에서 뭐라고 해?""납치범들한테 연락 왔니? 얼마를 요구했니?"온갖 말들이 난무하는 토론은 주위의 많은 손님의 주의를 끌어서 단상에서 축사하는 둘째 삼촌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둘째 삼촌은 일부러 마이크를 두드리며 여러 번 목소리를 다듬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되돌릴 수 없었다.허태준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꽉 쥐었다."네." 한참 후 그가 힘겹게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이렇게 오래됐는데 아직도 구하지 못한 거야?" 허태서의 목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높아졌다.멀리 있던 손님들이 놀라서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허태서는 이 일을 널리 알리고 싶었기에 목소리 톤을 조절하지 않았다."아리는 네 딸이잖아!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지독할 수 있어! 태준아! 그깟 돈이 뭐라고 딸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그는 분노에 찬 것처럼 말했고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태준아, 몸값을 내지 않은 거야?""얼마나 오래된 거야? 아리가 설마... 경찰한테 연락이 안 온 거야?"허태준은 입술을 꽉 깨물고 감정을 억눌렀다."그들이 180억을 요구했어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많은 많은 손님의 구할 수 없었어요. 그 돈을 모았을 땐 이미 납치범과 연락이 끊겼고요."속사정을 알고 있던 부모님은 허태준이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을 보고 그에게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슬픈 척 연기를 했다. 심지어 어머니는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둘째 아주머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렇게 기뻐하던 기색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입을 반쯤 벌리고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이 잔혹한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 허태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를 내며 허태준의 멱살을 잡아 끌어당겼다. "허태준, 이 양심 없는 놈!""사람 목숨이잖아!""네 딸 목숨이 , 180억 원에 미치지 못하는 거야?""넌 정말 아빠가 될 자격이 없어!"쏟아지는 비난을 허태준은 견딜
허태준은 건물에서 나왔다, 그제야 여형민이 뒤늦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 이미 나왔어." 손을 흔들며 다가오려는 호텔 지배인의 접근을 거절한 허태준은 밖으로 나가 자신의 차에 올랐다. "벌써?" 여형민은 의외라는 듯 물었지만 이내 눈치를 챘다. "그 뱀파이어 같은 사람들이 또 트집 잡은 거야?" 허태준은 그 사람들을 싫어하지 않았지만, 결코 먼저 시비를 건 적은 없었다. 매번 허씨 가문에서 의도적으로 그를 도발했다. 허태준은 더는 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넌 어때?" 여형민은 굳게 닫힌 병실 문을 힐끗 쳐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기긴 했지." 허태준은 신고를 곤두세우며 엑셀을 밟았다. 검은 마세라티가 화찰처럼 빠르게 내달렸다. 로열호텔에서 S 대학병원까지 40분 거리였다.허태준은 그 거리를 20분으로 단축했다. 그는 병원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뒤, 외과병동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정형외괴 병동에 도착했고, 그는 성큼성큼 병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허태준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형민이 그를 반겼다. "태준!"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입구를 바라보았다. 허태준은 입꼬리를 올리고 터벅터벅 들어갔다. 그를 발견하고 심유진이 의아해했다. "둘째 삼촌 생일 파티 간다고 하지 않았어?" "약간의 갈등이 생기는 바람에 먼저 일어났어." 허태준은 결코 심유진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밥 먹었어? 배달 시켜줄까?" 심유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허태준을 바라보았다. 육윤엽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 큰 어른이 배가 고프면 자기절로 챙겨먹을 줄 알아야지." "아빠!" 심유진은 어이없다는 말 했다. "이렇게 눈치줄 필요 있어?" 육윤엽은 허태준을 한번 째려보더니 차갑게 얼굴을 돌렸다. "아저씨 말이 맞아." 허태준은 의자를 끌어당겨 침대머리에 기대 앉았다. 얼굴의 미소가 더욱 깊어
"사영은이 옆 병실에 입원했어. 그리고 고석이 더는 머물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여형민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허태준에게 큰 충격은 없었다."둘이 무슨 일 있었어?" 그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사영은이 오늘 희열 엔터에 가서 소란을 피우다가 말리는 고석한테 뺨을 날렸다고 하더군. 그래서 사영은이 심훈에게 맞아 병원에 실려갔는데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아." 사영은이 입원했다는 소식은 들은 여형민은 즉시 사람을 시켜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 하지만 고석이 일찍 떠난 바람에 아무도 이번 사건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고 추측만 할 뿐이다."사영은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어. 오후에 경찰이 와서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어."사영은이 심하게 다쳤지만, 심유진이 안위를 위협할 수 없었다. 허태준은 마음속에 있던 긴장감이 완전히 해제되어 홀가분해졌다."옆 방 다른 사람한테 주시하라고 할게." 그는 약간의 불길함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그는 그들을 안심시켰다."사람을 보내는 게 무슨 소용이 있니?" 육윤엽이 코웃음을 쳤다. "사람을 보내서 감시를 해봤자 결국 정신이 나간 놈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것은 변하지 않아."허태준의 가장 큰 상처를, 가장 기억하기 싫은 과거였다.눈빛이 점차 흔들리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당신 잘못도 아닌데, 무슨 사과를 해?" 심유진은 그의 손을 가볍게 잡고 따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를 위안하는 듯했다."우리 아빠가 마음이 급해서 화풀이하는 거야." "아빠도 그만해."그는 부드러운 손바닥으로 그의 손을 잡았고 허태준이 심장이 떨렸다. 허태준은 넓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손을 감쌌다."응." 그의 목소리는 심장 박동과 함께 떨렸다.육윤엽은 그와 정 반대다.김욱은 분위기를 보고 황급히 둘을 제지했다. "나도 항상 지켜볼 테니 무언가 불길하면 즉시 유진이 병원을 옮기겠다."심유진은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고 병원을 옮기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이다. 만약 필요하다면 그녀를 미국으로 데려가 치
경주 공항.심유진이 얼마나 나가 있어야 할지 몰랐다.이상하게도 매번 그녀는 마음한 켠이 유난히 무거웠다. 마치 6년 전 그녀가 떠났던 그날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떠날 준비 해요." 비행기 이륙 시간이 다가오자, 김욱은 육윤엽을 부축했다. 육윤엽은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래." 곧 휠체어가 움직였고 심유진은 복잡하던 생각을 접고 허태준이 어젯밤 강제로 그녀에게 쥐여준 휴대폰을 손바닥에 꼭 쥐었다.육윤엽은 그녀의 몸에서 시선을 떼고 그 휴대폰을 바라보았다."하!" 그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모두 떠나는데, 배웅할 줄도 모르네!"주어가 없었으니 심유진은 그가 누구에게 불평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는 휴대폰을 뒤집었고 스크린이 자동으로 밝아졌다.여전히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심유진은 입술을 오므렸다. 마음속 한편이 서늘해졌다.심유진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퍼스트 클래스를 전부 예약했다.세 사람은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좌석에 앉았다.김욱은 자리에 앉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키보드를 두르렷다. 이상하리만큼 바쁘게 움직였다. 육윤엽은 좌석을 조정한 뒤, 스튜어디스에게 담요를 요구하고 눈을 감았다.그들은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심유진은 어젯밤 너무 오래 잤던 탓에 지금 졸리지 않았으나, 비행기 안에서 할 일이 별로 없었고 결국 영화 한 편을 고른 후 헤드폰을 썼다.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방송에서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 중이니 휴대폰을 꺼달라는 안내음이 들려왔다.심유진은 휴대폰을 끄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고, 곧 그녀의 휴대폰으로 문자 하나가 왔다.새 휴대폰인 만큼 저장된 번호도 허태준 뿐이다.심유진은 떨리는 심장으로 문자를 확인했다."돌아올 때까지 기다릴게."짧은 문자였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켜 싹.그녀는 문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올라오는 감정을 억눌렀다. 울컥 올라온 감정은 목을 매고 했고 눈과 코를 찡하게 하였다.그녀가 답장했다. "응."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던 그녀가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녀는 다시
"나랑 이렇게 오래 일했는데도, 왜 이렇게 쓸모가 없어요?" 심훈은 매우 싫은 듯 그를 힐끗 쳐다보며 시가 한 모금을 빨아먹었다."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 입 다물고 앞으로 말조심이나 하세요." 심훈이 말하자, 정남일은 그제야 안도했다."대표님, 고석이 아직 아무런 연락도 해오지 않았습니다." 정남일은 다시 주눅이 들었다.심훈은 안색이 변하더니 힘껏 책상을 쳤다. "체면을 그렇게 줬는데!"정남일은 깜짝 놀라 살짝 떨더니 급히 해명했다. "사모님께서... 아니, 사영은 씨가 그를 때리는 바람에 너무 자존심이 상해 숨을 쉴 수 없다고 합니다.""그 나쁜 년!" 심훈은 분노의 화살을 사영은에게 옮겼다. "정말 그년을 그때 죽이지 않은 게 후회돼!"정남일은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 한것처럼, 자기에게 불똥이 튈까 봐 머리를 숙이고 한쪽에 조용하게 있었다.곧 심훈이 다시 진정하고 말했다."고석을 다시 찾아가 봐요, 그쪽에서 요구를 제시하라고 하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만족하게 해야 해요."고석은 그가 애써 찾아낸 것이다. 영화계에서 그의 지위는 아무도 대처할 수 없었다.그는 지금 돈이 부족하지 않았다. 다만 재기할 만한 대작이 부족했다. 모든 것을 잃지 않기 위해 그는 자기 명예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려 했다.정남일은 다시 한 번 고석의 집을 찾았다.그러나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고석 말고도, 허태준과 여형민도 있었다.이렇게 정직한 만남이 그에게 있어서는 처음이라, 정남일은 순간 당황하여 무의식적으로 두 발짝 뒤로 물러났다."손님도 오셨으니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그는 얼른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그러나 고석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들어오세요. 정 비서." 허태준이 그를 여유롭게 쳐다보았다. "오랫동안 당신 기다렸어."정남일은 식은땀을 흘려다, 그의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그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허태준과 시선과 마주쳤고, 상대방의 차갑고 그윽한 눈빛에 그는 곧 눈을 깔았다.
심훈은 요즘 매우 바빴다, 계속해서 생기는 접대 자리가 수두룩했다. 엔터 회사의 대표부터 매니저 그리고 배우까지, 전부 그에게 돈을 내밀었다.그날 그를 접대한 사람은 엄청나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얼굴이 알려진 유명 여자 연예인이다.그들은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호텔까지 함께 갔다. 그리고 두 사람이 침대에서 뒹굴 때쯤, 누군가 거세게 방문을 두드렸다."문 열어! 경찰이다!"술기운이 반쯤 깬 심훈은 부시시하게 눈을 떴다.자기 몸에 달라붙었던 여자를 당황한 듯 밀치고 바닥에 있던 옷을 주워 껴입었다.심훈은 급히 팬티를 껴입고 슬리퍼를 신고 문쪽으로 다가갔다.문고리에 손을 올리고 조심스럽게 밖의 상황을 내다보았다. 문 밖에는 경찰 여러 명이 서 있었다.그는 서둘러 뒤로 돌아가 옷을 하나하나 주워 입었다.곧 문을 부수는 소리가 들렸고 경찰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문 열어!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지금 당장 문 안 열면 강제로 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호텔 웨이터에게 마스터 룸 카드를 가져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는 경찰이 들이닥치기 전에 문을 열고 애써 침착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앞에 있던 경찰이 눈짓하자 옆에 있던 경찰이 수갑을 꺼내 그의 팔에 채웠다."심훈 씨, 제보를 받았습니다. 일부러 사람을 때렸다죠? 폭행 건으로 고소되었으니 지금 저희와 함께 경찰서로 가, 조사를 받으시죠."심훈은 몇 초간 멍을 때리다가 경찰의 말뜻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고함을 질렀다. "고의적이라니요? 이건 모함입니다!"그는 경찰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채워진 수갑을 풀 수가 없었다."아무런 증거도 없이 사람을 이렇게 체포해도 되는 겁니까?"심훈이 당당하게 말했다.그가 사영은을 때린 것은 사영은과 정남일만 알고 있는 일이다.사영은은 지금 의식불명 상태고 정남일은 절대 이 일을 어디에 고발할 사람이 아니다."급해 마세요." 경찰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증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방에서
경찰이 속도를 내자, 조수석에 앉아있던 사람이 몸을 돌려 심훈을 바라보았다. "휴대폰 가져왔어요?"심훈이 경계하며 반문했다. "왜요?""저희 서장님한테 연락하라고요!" 경찰이 웃으면서 말했다."휴대폰 없으면 빌려줄까요?" 그는 말을 하면서 옷 주머니에서 자기 휴대폰을 더듬어 꺼냈다."아니요! 나도 휴대폰 있어요! 오른쪽 주머니에 있으니까 꺼내줘요!" 심훈은 익숙하게 경찰에게 명령했다.경찰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휴대폰을 꺼내 그의 손에 친절하게 가져다주었다.심훈은 바로 임 서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내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거신 전화가 꺼져있어..."연결되지 않았다."모르는 것 같은데...." 심훈의 오른쪽에 앉은 휴대폰을 꺼내준 경찰이 말했다. "임 서장님께서 지난달에 뇌물 건으로 구속되셨어요. 그 번호는 더는 사용하지 않아요."심훈은 그제야 그가 임 서장에서 전화하도록 내버려 둔 것을 알았다. 그가 추태를 부리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알았다.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당황한 표정을 애써 감추었다."내가 임 서장만 아는 줄 알아?" 심훈이 계속해서 말했다. "유 부장도 알고 있어!""아, 깜빡하고 말하지 못했군요. 유 부장님도 서장님과 함께 체포되셨습니다. 최근 비리를 저지른 공무원들을 전부 정리하면서 우리 경찰서도 아주 엄격한 조사를 당했거든요. 그쪽이 아는 사람 전부 체포되었거나, 고소 고발로 현직에 없을 겁니다."경찰의 말에 심훈은 맥이 빠졌다.그는 정남일에게 반드시 사영은과 연관된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했다. 경찰서 내부에 그와 연관되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간 다져놓았던 연줄이 전부 끊기는 바람에 그는 항거불가의 상태가 되었다.심훈은 절망감을 느꼈다."저기요." 그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주변 경찰들을 불렀다. "제가 일부러 사람을 다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어요. 오해한 게 아니에요?""아니요, 저희와 함께 경찰서로 가야 합니다."경찰들은 그가 무슨 얘기를 하든, 그의 말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