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은 알람이 울리자 별이를 깨우러 옆방으로 갔다.안방에서 나오자 크고 작은 두 남자가 이미 잘 차려입고 주방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엄마, 와서 아침을 먹어요! 허삼촌이 했어요!”별이는 흥분에 겨워 심유진한테 손을 흔들었다.“완전 맛있어요!”심유진은 반신반의하면서 걸어갔다.허태준의 아침은 간단했다. 계란후라이, 베이컨 그리고 그녀가 사 오자마자 서랍장에 넣어놔 꺼내보지도 못한 스파게티였다. 그는 끓인 후 후추소스를 넣고 볶았다.공기 중에는 맛있는 음식 향이 났다. 심유진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그녀는 별이의 맞은켠에 앉고 포크를 들었다.“수고하셨어요.”심유진은 약간 미안한 눈빛으로 허태준을 바라보았다.“아프신데 아침까지 준비하시고...”“두날동안 거두어준 방값이라 치지.”허태준은 웃으면서 턱으로 그녀의 앞에 놓인 접시를 가리켰다.“먹어봐.”허태준의 솜씨는 같이 살 적에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꽤나 괜찮았다.하지만 예상밖인것은 기억을 상실한 후에도 솜씨가 녹슬지 않았다는 것이다.“맛있어요.”한입 먹고 그녀는 결론을 내렸다.“그쵸!”별이는 우쭐했다. 심유진이 칭찬한 사람이 별이인것 마냥.심유진은 별이를 노려보았다. 별이는 심유진의 눈빛을 못 본 척했다.별이는 허태준을 불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허삼촌, 앞으로 우리 집에 자주 와서 밥을 해주면 안 돼요?”그는 물었다.“음식이 너무 맛있어요! 제가 먹어본것중에 제일 맛있어요!”이렇게 허태준을 칭찬하니 심유진은 질투를 했다.매일 메뉴를 갈아가면서 저녁을 해주고 퇴근하기도 전부터 저녁에는 어떤 야채를 사야하나 고민을 했는데 허태준의 아침에 지다니.“물론이지.”허태준은 흔쾌히 승낙했다.“별이만 좋다면 매일 와서 해줘도 되지.”“진짜요?!”별이의 눈은 동그래졌다. 하늘의 별처럼 빛이 났다.“가짜.”심유진은 늘 하던 것처럼 찬물을 끼얹었다. “허삼촌이 우리 집 전업셰프니? 아니면 별이가 허삼촌한테 월급을 줄꺼야?”별이는 입을 삐죽하고는 포크로 베이컨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심유진은 별이를 말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그냥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조심히 가요.” 심유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당부했다. 별이는 허태준 차에 처음 타보는 것이기에 뒷좌석 중간에 단정하게 앉아있었다. “삼촌, 저 기분이 너무 좋아요.” 별이의 말에 허태준이 물었다. “왜?” “삼촌이 유치원에 데려다주잖아요!” 별이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맞다, 그리고 삼촌...” 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선생님이 물어보면 삼촌이 우리 아빠라고 해도 돼요?” 아빠라는 두 글자에 허태준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 허태준은 기쁘면서도 씁쓸한 기분을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대답했다. 별이는 그 대답에 속으로 몰래 기뻐했다. “그럼 친구들이 물어봐도 그렇게 말해도 돼요?” “당연히 되지.” 허태준은 온 세계에 알리지 못하는 게 한이였다. 하지만 집안사람들부터 처리하는것이 첫 순서였다. 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허태준을 재촉했다. “삼촌, 우리 더 빨리 가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별이는 허태준의 손을 잡았다. 평소랑 다르게 허리도 쭉 펴고 턱도 치켜든 채 걸음걸이마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허태준은 그런 별이를 보며 웃음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한창 등교시간이라 아이를 데리고 등교하는 부모들이 매우 많았다. 유치원 입구는 사람으로 가득 차있었고 아이들이 장난을 치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와 매우 시끄러웠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허태준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존재였다. 부모님들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허태준을 빤히 쳐다봤다. 심지어 어떤 여자아이는 허태준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얘기하기까지 했다. “엄마, 저 삼촌 엄청 잘생겼어!” 그 말을 들은 별이는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친구들이 별이를 둘러싸고 물었다. “별아, 이분은 누구셔?” “우리 아빠야!” 허태준은 자애로운 표정으로 그
심유진은 오후에 별이를 데리러 갈 때 다른 학부모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는 여성들이 그녀를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심 유진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하고 있을 무렵 가끔 심유진과 대화를 나눴던 학부모 한명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남편이 정말 잘생겼더라고요. 어쩐지 한 번도 유치원에 안 데려 오더라니. 너무 잘 생겨서 감추고 있던 거였어요?”심유진은 잠시 멈칫했다. 한참 지나서야 그녀가 가리키는 남편이 허태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모른 척 하기는.”상대방이 팔꿈치로 심 유진을 툭 치며 살짝 눈을 흘겼다. “아침에 별이가 아빠라고 부르는 걸 들었어요.”심유진은 화가 나면서도 이 상황을 어떻게 해명할 겨를이 없어 그냥 웃어넘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실의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달려 나왔다. 별이는 신유진의 품에 폭 안겼다. 평소보다 더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엄마!”별이의 목소리가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심유진은 웃을 수 없었다. 별이가 이렇게 좋아하는 것이 허태준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자 아이 몇 명이 쭈뼛쭈뼛 곁으로 다가와서 별이에게 물었다. “별아, 너네 아빠도 내일 운동회에 와?”별이의 표정이 굳어졌다.“모르겠어. 아빠가 내일 시간이 있는지 봐야 돼.”아이들이 실망해서 흩어지고 심유진은 별이를 붙잡고 물었다.“무슨 운동회?”“가족 운동회.”별이의 대답에 심유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미국에 있을 때도 별이의 유치원에서는 가끔 이런 가족을 단위로 하는 활동을 조직했었다. 부모와 아이들 사이에 감정을 더욱 돈독히 다지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심유진은 이런 활동이 싫지 않았다. 확실히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심유진은 항상 일이 너무 바빴기에 매번 참석할 수 없었고 가끔 하은설이 그녀를 대신해서 참석했다. 그때마다 별이는 하은설을 엄마라고 불렀었다. 그래서 다른 학부모들은 하은설과
심유진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별이가 걱정하며 물었다. “엄마, 왜 그래?” 심유진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별아, 혹시 내일 운동회에 엄마만 참가하면 별이가 조금 속상할까?” “태준삼촌도 가면 안돼?” “삼촌은 별이 아빠가 아니야.” 심유진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사실대로 별이에게 얘기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삼촌한테 부탁하는 건 안돼. 삼촌은 널 도와줄 의무가 없어.” 별이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다. 별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엄마만 와.” 작은 목소리가 아이가 지금 매우 실망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도 난 안 속상해.” 심유진은 일찍 철이 든 별이를 보며 기특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심유진은 별이의 손을 꼭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별이가 원하는 걸 들어줄 수 없었기에 위로도 건넬 수 없었다. 차에 올라타서부터 별이는 내내 저기압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있는 별이를 보면서 심유진도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그날밤, 허태준은 또 심유진네 집에 찾아왔다. 이번에 그는 빈손으로 오지도 않았고 혼자 오지도 않았다. 그는 큰 케이지를 들고 있었는데 안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잠들어 있었다. “어제 얘기한 우리 어머니가 키우시는 고양이예요.” 허태준은 케이지를 내려놓고 다시 몸을 돌렸다. “사료랑 이런저런 물품들도 챙겨 왔는데 가지고 올게요.” 별이가 신나서 허태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저도 같이 갈래요!” 별이는 동물을 매우 좋아했다. 그래서 동물을 키우겠다고 심유진에게 여러 번 부탁했었지만 매번 거절당했었다. 원인은 간단했다. 애완동물은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데 심유진과 하은설은 별이를 돌볼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빴다. “삼촌, 우리 엄마는 어떻게 설득했어요?’ 허태준을 바라보는 별이의 눈빛에는 존경이 가득했다. 허태준이 웃으며 말했다. “설득한 적 없어. 별이 엄마가 먼저 키우겠다고 한 거야.” 별이
허태준은 별이처럼 긍정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별이에게 찬물을 끼얹을 수도 없었다. “삼촌이 일단 시도는 해볼게.” 고양이가 쓸 용품들을 가지고 올라가니 심유진은 이미 고양이들을 케이지에서 꺼내 무릎에 올려두고 쓰다듬고 있었다. 코코는 아직 심유진을 기억하기라도 하듯 그녀의 품을 파고들었고 솜이는 그 깊고 푸른 눈으로 심유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심유진은 고양이들을 품에 안은채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뻔했다. 별이는 사료를 내려놓고 심유진 곁으로 가서 신기한 눈길로 고양이들을 바라보았다. “엄마, 만져봐도 돼?”별이가 물었다. 굉장히 온순한 품종인 데다가 심유진은 한동안 고양이를 키운 경험이 있으니 이 두 마리의 성격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심유진은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별이가 기대에 찬 눈길로 손을 뻗었다. 근데 솜이에게 손을 대기도 전에 솜이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별이의 손에 상처를 냈다. 솜이는 많이 놀랐는지 심유진의 무릎에서 뛰여 내려서는 털을 곤두세우고 별이를 경계했다. 손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심유진은 얼른 코코를 내려놓고 별이를 품에 안았다. 허태준도 얼른 달려와서 일단 솜이와 코코를 다시 케이지 안에 넣었다. 상처가 깊지 않았기에 아픔이 가시자 별이도 금방 울음을 멈췄다. 비록 고양이들과 별이 모두 광견병 접종을 이미 마친 상태였지만 어쨌든 상처가 났으니 허태준은 혹시 몰라 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병원은 낮보다 사람이 적었지만 그래도 반시간 정도 줄을 서고 나서야 진료를 받을수 있었다. 주사를 맞을 때 별이는 또 한 번 울음을 터뜨렸다. 겨우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타자 별이는 2분도 안 돼서 심유진의 품에 안겨 잠들었다. 허태준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별이 자요?” “네. 잘 시간이에요.” 허태준이 입술을 잘근 씹으면서 미안해하며 말했다.“죄송해요.” “네?” 갑작스러운 사과에 심유진은 빨리 반응하지 못했다. “고양이들을 데려
심유진은 허태준에게 화가 나지 않았고 솜이가 밉지도 않았다. “근데요.” 심유진이 갑자기 진지하게 말했다. “혹시 따님한테 심리상담을 권유해 보는 건 어때요?” 솜이는 코코보다 훨씬 까불기는 했지만 절대 함부로 사람에게 상처를 내는 고양이는 아니었다. 만약 그랬으면 허태준이 데리고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심유진은 솜이의 이런 이상행동이 허아리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유진은 코코와 솜이의 털이 듬성듬성 빠진 곳이 생겼다는 걸 발견했다. 누군가가 일부러 잡아 뜯은 것 같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허아리 빼고 없었다. 유치원에서 다른 친구를 괴롭히는 모습을 봤을 때는 그냥 집에서 너무 곱게 키워서 밖에서도 그 버릇이 나오는 줄로만 알았는데 만약 동물을 학대한 거라면 그건 심리상의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허태준은 심유진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허태준은 허아리가 이미 정소월 때문에 망가져버렸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미 틀어진 성격을 고치기는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허태준은 허아리를 동정하지 않았다. 그는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외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허아리는 정소월과 허태서의 아이였다. 하지만 심유진 앞에서 허아리에 대해 무관심한 모습을 보인다면 심유진이 부정적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있었다. 허태준도 그 물음에 진지하게 답했다. “할아버지 장례가 끝나면 어머니랑 의논해 봐야겠어요.” “아, 맞다!” 어쩌다 보니 심각해진 분위기하에 허태준이 화제를 돌렸다. “별이가 내일 유치원에서 가족 운동회를 한다던데...” 말을 채 듣지 않고도 심유진은 그 뒤의 말을 맞출 수 있었다. “같이 가달래요?” 허태준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고 고개를 젓지도 않은 채 눈빛으로 모든 걸 설명했다. 별이가 다치지만 않았다면 심유진은 별이를 깨워서 호되게 혼을 냈을 것이다. 심유진은 허태준을 계속 여기에 있게 하는 것이 맞는 선택인지 고민됐다. “자
허태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유진이 한번 마음먹으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허태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이 얘기를 꺼낼 좋은 타이밍이 아니었다. 그저 심유진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살짝 테스트해 본 것뿐이었다. 이로부터 심유진은 여전히 예전과 다름없이 자신에게 어떠한 기회도 주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예전보다 더 심유진에게 믿음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은 척하는 건 그냥 단기적인 수단일 뿐 심유진의 마음을 완전히 얻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허태준은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심유진의 생명안전과 비교하면 이까짓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차는 심유진 집 앞에서 멈췄다 허태준은 먼저 차에서 내려 잠든 별이를 안았다. 별이는 비몽사몽 정신없는 와중에 허태준 얼굴을 희미하게 봤다. “아빠…” 별이가 잠결에 허태준을 아빠라고 부르며 그 품을 파고들었다. 비록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지만 고요한 밤 그 목소리는 허태준과 심유진 귀에 들어갔다. 허태준은 심유진을 힐끗 쳐다봤다. 차에서 내리던 심유진이 멈칫하는 것이 보였다. 표정도 매우 부자연스러웠다. 허태준은 아무 말 없이 계단을 올랐다. 지금 이 순간에는 무슨 말을 하던지 분위기만 더 어색해질 것 같았다. 허태준은 별이를 침대에 눕혔다. 근데 별이를 안은 손을 풀자마자 별이의 팔이 허태준의 목을 더 꽉 감았다. 별이가 울먹이며 잠꼬대를 했다. “아빠, 가지 마.” 허태준은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등 뒤에서 심유진의 시선이 느껴졌다. 심유진도 마음이 매우 복잡했다. 아빠를 그리워하는 별이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별이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한다면 자신의 삶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심유진은 지금 이대로 만족스러웠기에 변화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심유진은 조금 이기적으로 굴어야 할지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허태준이 몸을 돌려
심유진은 중립을 지키며 객관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유일하게 생각나는 사람은 허태준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면서도 인생 경험이 풍부한 육윤엽이었다. 가족운동회 때문에 유치원 등교시간은 한 시간 늦춰졌다. 허태준은 심유진에게 편하게 출근하라고 하면서 자신이 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심유진은 조금 망설였다. 허태준은 그 모습을 보면서 심유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허태준이 씩 웃으며 말했다. “데려다주고 저는 바로 갈게요.” 심유진은 조금 놀라면서도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고마워요.” 심유진이 고개를 숙였다. 웃음도 매우 어색했다. 심유진은 호텔로 가지 않고 병원에 갔다. 육윤엽이 오늘 퇴원을 하기에 이유가 뭐가 됐던 어차피 가봐야 하는 날이기도 했다. 육윤엽은 일찍 일어났기에 심유진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복으로 갈아입고 짐정리도 다한 상태였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심유진이 들어오자마자 육윤엽은 일어나서 그녀를 맞이했다. 심유진이 어제 오겠다고 미리 얘기를 했을 때부터 육윤엽은 그녀를 기다렸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호텔에 출근했다가 다시 올 테니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왔다. “고민이 있는데 잠시 얘기 좀 나눠도 될까요?” 육윤엽의 표정이 금방 진지해졌다. “뭔데요? 심각한 일이에요?” 심유진은 육윤엽이 오해했다는 걸 알고 얼른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조금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말씀 좀 여쭐 수 있을까 해서요.” 육윤엽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렇군요. 말씀해보세요.” “뭐냐면요...” 심유진이 메마른 입술을 달싹거렸다. 어떻게 얘기를 꺼낼지 여러 번 연습했는데 막상 얘기하려니 여전히 힘들었다. “저에게 아들이 있다는 거 아시죠?” 심유진은 겨우 말문을 뗐다. 육윤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계획에 없던 아이거든요. 어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