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은 한 번도 친아빠를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첫 순간부터 사영은은 심훈과 같이 있었다. 지금 기억나는 건 사영은이 얘기하던 아빠의 모습밖에 없었다. 무능한 놈이라고 했으니 어쩌면 신체가 왜소하고 꾀를 부릴 줄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고 벙어리라고 했으니 말수가 적거나 내성적인 사람일 수도 있고 돈도 못 벌고 여자 돈만 쓰는 촌놈이라고 했으니 어쩌면 옷차림이 소박하거나 깔끔하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심유진 기억 속에 아빠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심유진은 사영은의 말들이 정확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심유진은 사영은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녀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허영심과 권력욕이 넘치는 사람이니 만약 친아빠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결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사영은이 이렇게 된 것은 그 실패한 혼인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뭐가 됐던 심유진이 아빠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했다. 사영은은 여러 번 심유진에게 친아빠는 이미 가루가 되어 바다에 뿌려졌다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심유진은 여전히 어느 날 아빠가 짠하고 나타나서 이 지옥 같은 집에서 자신을 구출해 주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런 희망이 심유진을 그 긴 세월 동안 버티게 만들었고 무너지지 않게 만들었었다. 자신이 이런 고통들을 겪었기에 심유진은 별이에게 최대한 잘해주려고 노력했다. 아빠의 사랑까지도 자신이 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어린 아이에게 아빠의 자리란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자리라는 것을. 그래서 별이의 소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전 저희 엄마를 많이 원망해요.” 심유진이 말했다. “만약 그때 제 생각을 조금 더 신경 써줬더라면 제가 지금 더 행복할 수도 있었을텐데.”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육윤엽의 목소리가 떨렸다. 사실 그는 이미 상상이 갔다. 자신을 그토록 미워하던 사영은이 딸을 잘 챙겼을 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심유진에게 직접 들으니 마음이 갈기갈기
심유진은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네?” 육윤엽은 그 시선을 피하며 또다시 물었다. “그럼 아빠는요?” 심유진이 멈칫하더니 웃어 보이며 말했다. “엄마 말로는 아빠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대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요. 그게 평생 아쉬웠어요. 그래서 우리 아들도 저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아요.” 육윤엽은 또 심장에 고통이 밀려왔다. 심유진에게 내가 바로 친아빠라고 알리고 싶었지만 오랫동안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자신을 미워하기라도 할까 봐,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우정을 빌미로 만날 수도 없을까 봐 걱정됐다. “아빠가 그리워요?” “어릴 때는 그랬어요. 특히 슬플 때는 좀 보고 싶더라고요.” 심유진이 예전을 추억했다. 그때의 고통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제는 옅은 그리움만이 남아있었다. “이젠 생각 안 해요. 생각해도 소용이 없잖아요.” “그럼 아빠가 갑자기 나타난다면 받아줄 거예요?” “돌아가신 분인데 제 앞에 나타난다면 그건 귀신이지 않을까요?” 심유진은 육윤엽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채 농담을 던졌다.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요? 놀라서 울지도 모르겠네요.” “돌아가신 게 아니라면요?” 육윤엽이 심유진을 진지하게 바라봤다. 심유진이 멈칫했다. “혹시 뭔가 알고 계시는 거예요?” 심유진의 목소리에 절박함이 묻어났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전 아무것도 몰라요.” 하지만 육윤엽은 끝내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심유진은 왠지 이상한 육윤엽의 태도를 보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마침 이때 김욱이 들어와 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트렸다. 육윤엽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퇴원수속 다 끝났어요.” 김욱이 육윤엽의 캐리어를 들며 말했다. “이제 가도 될 것 같아요.” “그래.” 육윤엽은 얼른 일어나 앞장섰다. “이만 가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심유진은 김욱도 옆에 있었기에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호텔에 두 분
심유진이 발걸음을 멈췄다. 허태준이 먼저 갔을 줄 알았는데 사실 생각해 보니 변수가 많은 일이었다. 별이가 삼촌을 못 가게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심유진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별이가 얼른 뛰여와서 심유진의 손을 잡았다. 별이는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웃음이 가득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아빠랑 한참 기다렸어!” 별이는 일부러 아빠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모두가 듣을 수 있게 했다. 사방팔방에서 몰려오는 시선에 심유진은 몸 둘 바를 몰랐다. 특히는 그 시선 중에 부러움이 가득한것 같았다. 심유진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당장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심유진은 허태준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의 눈빛에 묻어나있는 미안함을 엿볼 수 있었다. “미안해요.” 허태준이 말했다. “별이를 혼자 두고 가려니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유진 씨가 오면 가려고 했는데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길래 일이 생겨서 못 오는 줄 알았어요.” 사실 심유진의 잘못이 컸기에 그녀는 다른 사람을 질책할 수가 없었다. “이제 왔으니까 전 이만 갈게요.” 허태준이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랑 재밌게 놀아.” 허태준의 표정에서 살짝 보이는 아쉬움을 심유진이 모를 리가 없었다. “어차피 왔는데 그냥 같이 놀죠.” 허태준이 깜짝 놀라서 심유진을 바라봤다. 심유진이 얼른 시선을 피했다. “좋아!” 이 순간 가장 신난 건 별이었다. 별이는 심유진과 허태준의 손을 잡으며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린아이들의 인내심을 걱정해서인지 운동회 개막식은 굉장히 빨리 끝났다. 이번 가족 운동회는 운동장에서 진행되는 여러 가지 활동들에 자유롭게 참여하면서 도장을 맞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자신의 신체상황이나 흥미에 따라 아예 참여하지 않아도 되고 모든 활동에 다 참가할 수도 있었다. 매 아이마다 작은 공책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한 가지 활동을 할 때마다 심판이 그
“우정이 첫 번째야.” 심유진이 당부했다. “일등 못해도 상관없어.”두 남성은 동시에 그녀를 쳐다보면서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엄마, 우리 방해하면 안 돼.” 별이가 경고했다.“그래 방해 안 할게.”심유진이 몸을 돌려 가려는 시늉을 했다.“둘이서 놀아. 난 갈 테니까.”“아니.”허태준이 얼른 심유진을 붙잡았다. 심유진은 그 순간 발을 헛디뎌 허태준의 몸에 부딪쳤다. 허태준은 얇은 운동복을 입고 있었기에 단단한 근육이 오늘따라 유달리 두드러졌다. 심유진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얼른 몸을 일으켜 허태준과 거리를 두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몇몇 학부모들이 심유진을 놀렸다.“방금 무슨 드라마인 줄 알았어.”심유진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별이는 가장 처음으로 캥거루 뛰기 게임을 하러 갔다. 쌀포대기 안에 다리를 넣고 50m 뛰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되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가족을 단위로 참가하는데 릴레이로 뛰는 형식이었다. 허태준은 이미 뛰는 순서를 정해놨다. 별이가 첫 번째 심유진이 두 번째 그리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뛰어서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했다. 대부분의 가족들이 이런 순서로 뛰었다. 그들과 함께 시합을 한 가족들은 대부분 유치원대반 아이들이었다. 그러니 별이는 그 사이에서 딱히 우세가 없었다. 하지만 별이는 승부욕이 매우 강했기에 시작할 때 뒤로부터 두 번째였지만 이를 악물고 뛰어 종점에 도착했을 때는 일등과 얼마 차이 나지 않았다. 심유진은 저도 모르게 별이에게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래서 심유진은 한 박자 늦게 출발을 하고야 말았다. 순식간에 세 명의 엄마들에게 밀려 뒤로 가게 되었다. “엄마 파이팅!” 별이가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 심유진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열심히 뛰었다. 심 유진은 운동신경이 좋지 않았기에 조금만 격렬한 운동을 하면 바로 숨이 찼고 온몸이 쑤셨다. 하지만 그건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심유진은 여러 번 포기하고 싶었지만 기대 찬 별이에 눈빛을 보며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곧 3등
허태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심유진을 감싼 채 허리를 숙이며 심유진에게 물었다. “다쳤어요?” 차갑기만 했던 목소리에 따뜻함이 묻어났다. 걱정 어린 그 눈빛에 심유진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였다. “아니요.” 분명 스킨십도 없고 오글거리는 대화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 주위에만 핑크빛 기류가 가득한 것처럼 보여 구경하던 사람들도 그 달달함에 푹 빠져들었다. “아빠, 우리 질 것 같아!” 별이의 외침에 허태준은 그제야 시합에 집중했다. 허태준이 그러고 있는 사이 이미 여러 명이 반환점에 도착해 있었다. 아마 허태준이 죽을힘을 다해 쫓아도 꼴찌는 면하지 못할 것이다. 심유진이 얼른 길을 트고는 허태준을 응원했다. “파이팅!”허태준은 순간 심유진의 그 순수한 미소를 보며 온몸에 힘이 솟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허태준이 재빨리 뛰어나갔다.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심판도 놀랄 정도였다. 허태준은 아빠들 중 가장 마른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반환점을 돌고 앞에 사람을 초과했다. 그 흥미진진한 장면에 구경하던 사람들 모두 허태준을 응원했다. 하지만 그전에 차이가 너무 났었기에 뒤로부터 두 번째 순서로 종점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허태준을 존경에 찬 눈길로 봤다. 성적이 안 좋아서 별이가 실망할까 봐 걱정했는데 별이는 기뻐하며 허태준의 다리를 감싸안았다. “아빠 진짜 최고야!”허태준도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심유진도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허태준에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응원을 너무 열심히 한 탓이었다. “최고였어요.” 심유진이 진심으로 허태준에게 말했다. 허태준은 처음으로 조금 쑥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아니에요.” 심유진이 휴지를 내밀면서 말했다. “땀 좀 닦아요.” 허태준이 휴지를 받으려는데 작은 손 하나가 그를 막았다. “엄마가 닦아줘야지!” 별이가 자연스럽게 애정행각을 하는 다른 부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봐봐, 다른 엄마아빠들
허태준은 사실 바라고 있었지만 심유진의 낯빛을 보고 나서 별이처럼 선을 넘을 수는 없었다. 허태준은 얼른 휴지를 건네받고 대충 닦고는 휴지를 뭉쳐서 쓰레기통을 향해 던졌다. 휴지가 완벽한 포물선을 던지며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주위사람들은 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심유진도 그의 신기한 묘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빠, 나 농구는 언제 가르쳐줄 거야?” 허태준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주말에 별이 쉴 때.” “약속한 거다!” 별이가 기뻐하며 허태준과 손가락을 걸었다. 심유진은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첫 게임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기에 허태준과 별이는 심유진을 데리고 거의 모든 게임에 다 참가했다. 심유진은 처음에 시합 결과에 연연하지 않았지만 승부욕이 불타오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흥을 깰 수가 없어 저도 모르게 같이 열심히 했다. 사실 대부분의 가족들은 심유진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어른들은 그 선물에 딱히 관심이 없었기에 심유진네 가족은 경쟁상대가 매우 적었다. 그러니 최종적으로 그들은 1등을 따냈다. 별이는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해 보였다. 심유진은 별이의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하은설과 자신의 앞에서는 항상 철든 남자아이의 모습을 보여줬었는데 허태준과 함께 있을 때만 별이는 정말로 아이가 되어있었다. 보통의 아이처럼 고집도 부리고 울기도 하고 떼도 썼다. 마음껏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심유진은 순간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1등 상품은 일본 7일 여행상품권이었다. 비행기표와 호텔, 가이드 서비스와 관광지 입장권까지 포함된 상품권이었다. 이 유치원에 아이를 보낼 수 있는 재력을 가진 부모라면 이 정도 돈은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이렇게 세심하게 여행계획을 세우는 건 쉽지 않으니 확실히 가치 있는 선물이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바로 심유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돈을 드릴 테니까 그 상품권을 저한테 주시는 건 어떠세요?” 사실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심유진
심유진은 별이 앞에 앉아 별이의 손을 잡고 차분하게 얘기했다.“엄마는 그렇게 긴 휴가를 낼 수 없어. 그러니 이 상품권을 그냥 낭비하기보다 다른 친구한테 선물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하지만 별이가 입을 삐쭉거렸다.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엄마 일이 바쁘다는 것도 알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이 다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별이는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소중 했다.“난 가고 싶어.”별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심유진은 입을 꼭 다물었다.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별이와 함께 있었던 시간이 짧았기에 다른 아이들은 다 세계 각지로 여행을 다닐 때 별이는 집에서 영화나 보고 책이나 읽었었다.“그러면 이렇게 하자.”심유진이 별이와 협상을 하려고 했다. “이건 일단 양보하고 나중에 엄마가 휴가를 써서 이틀 동안 놀고 오자. 어때?”이틀은 7일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별이는 이 정도만 돼도 심유진이 많이 양보해 준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럼 삼촌은?”“삼촌은 안 가.”심유진은 말을 하며 허태준 쪽을 바라봤다. 허태준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 중 가장 눈이 부셨고 자신과 많이 동떨어진 사람 같아 보였다. 언짢은 과거가 없었다 하더라도 심유진은 그와 가까이할 생각 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심유진의 의견은 별이에게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상품권은 삼촌이 따온 거야.”별이는 심유진의 의견에 반대했다.“삼촌 허락도 안 받고 다른 사람한테 준 것도 모자라서 여행 갈 때 데리고 가지도 않는 거야? 난 엄마한테 실망했어.”별이의 진지한 표정에 심유진은 마음이 뜨끔 했다. 너무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그럼 삼촌한테 물어볼게.”심유진은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허태준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다 흩어진 뒤에야 심유진은 별이를 데리고 그쪽으로 갔다. 허태준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엄마가 여행 상품권을 다른 친구한테
별이는 여전히 실망한 것처럼 보였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날 밤 허태준은 심 유진네 집에서 자지 않았다. 더 이상 핑계를 대면서 그 집에 있으면 심유진이 조금 짜증을 낼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때는 심유진이 다시 자신을 받아줄 것 같지 않았다. 허태준이 없으니 심유진은 마음이 한결 편했다. 하지만 또 허전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별이는 기분이 안 좋은 것이 표정에 확 드러났다. 계속 삼촌을 보고 싶어 하면서 잠이 들 때까지도 심유진이 세 번이나 재촉해서야 방으로 돌아갔다. 하루 종일 호텔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심유진은 서재로 가서 밀린 업무를 완성했다. 일을 마치니 새벽 세 시가 되어 있었다. 심유진은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면서 서재에서 나오다가 하마터면 뭔가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코코가 서재 입구에 누워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코코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상하게 편안한 감정이 들었다. 심 유진은 코코를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면서 물었다.“솜이는?”말을 마치자마자 케이지 안에 가만히 누워 있는 솜이가 보였다. 케이지의 문이 닫히지 않았기에 코코가 뛰어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솜이는 심유진의 목소리를 듣고도 고개를 살짝 움직였을 뿐 힘없이 누워 있기만 했다. 아마 자신이 어제 잘못을 했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별이는 심하게 다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도 정기적으로 예방접종을 하는 고양이들은 병균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적다고 말했었다. 심유진은 솜이를 탓하지 않았지만 허태준은 굉장히 미안한지 고양이들을 다시 가져가려고 했다. 하지만 심유진이 그를 막았다. 심 유진은 고양이들을 다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별이가 고양이들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니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솜이가 자책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심유진은 사료로 소미를 유혹하며 케이지 안에서 나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솜이가 먹고 있을 때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매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