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이 발걸음을 멈췄다. 허태준이 먼저 갔을 줄 알았는데 사실 생각해 보니 변수가 많은 일이었다. 별이가 삼촌을 못 가게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심유진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별이가 얼른 뛰여와서 심유진의 손을 잡았다. 별이는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웃음이 가득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아빠랑 한참 기다렸어!” 별이는 일부러 아빠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모두가 듣을 수 있게 했다. 사방팔방에서 몰려오는 시선에 심유진은 몸 둘 바를 몰랐다. 특히는 그 시선 중에 부러움이 가득한것 같았다. 심유진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당장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심유진은 허태준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의 눈빛에 묻어나있는 미안함을 엿볼 수 있었다. “미안해요.” 허태준이 말했다. “별이를 혼자 두고 가려니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유진 씨가 오면 가려고 했는데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길래 일이 생겨서 못 오는 줄 알았어요.” 사실 심유진의 잘못이 컸기에 그녀는 다른 사람을 질책할 수가 없었다. “이제 왔으니까 전 이만 갈게요.” 허태준이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랑 재밌게 놀아.” 허태준의 표정에서 살짝 보이는 아쉬움을 심유진이 모를 리가 없었다. “어차피 왔는데 그냥 같이 놀죠.” 허태준이 깜짝 놀라서 심유진을 바라봤다. 심유진이 얼른 시선을 피했다. “좋아!” 이 순간 가장 신난 건 별이었다. 별이는 심유진과 허태준의 손을 잡으며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린아이들의 인내심을 걱정해서인지 운동회 개막식은 굉장히 빨리 끝났다. 이번 가족 운동회는 운동장에서 진행되는 여러 가지 활동들에 자유롭게 참여하면서 도장을 맞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자신의 신체상황이나 흥미에 따라 아예 참여하지 않아도 되고 모든 활동에 다 참가할 수도 있었다. 매 아이마다 작은 공책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한 가지 활동을 할 때마다 심판이 그
“우정이 첫 번째야.” 심유진이 당부했다. “일등 못해도 상관없어.”두 남성은 동시에 그녀를 쳐다보면서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엄마, 우리 방해하면 안 돼.” 별이가 경고했다.“그래 방해 안 할게.”심유진이 몸을 돌려 가려는 시늉을 했다.“둘이서 놀아. 난 갈 테니까.”“아니.”허태준이 얼른 심유진을 붙잡았다. 심유진은 그 순간 발을 헛디뎌 허태준의 몸에 부딪쳤다. 허태준은 얇은 운동복을 입고 있었기에 단단한 근육이 오늘따라 유달리 두드러졌다. 심유진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얼른 몸을 일으켜 허태준과 거리를 두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몇몇 학부모들이 심유진을 놀렸다.“방금 무슨 드라마인 줄 알았어.”심유진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별이는 가장 처음으로 캥거루 뛰기 게임을 하러 갔다. 쌀포대기 안에 다리를 넣고 50m 뛰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되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가족을 단위로 참가하는데 릴레이로 뛰는 형식이었다. 허태준은 이미 뛰는 순서를 정해놨다. 별이가 첫 번째 심유진이 두 번째 그리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뛰어서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했다. 대부분의 가족들이 이런 순서로 뛰었다. 그들과 함께 시합을 한 가족들은 대부분 유치원대반 아이들이었다. 그러니 별이는 그 사이에서 딱히 우세가 없었다. 하지만 별이는 승부욕이 매우 강했기에 시작할 때 뒤로부터 두 번째였지만 이를 악물고 뛰어 종점에 도착했을 때는 일등과 얼마 차이 나지 않았다. 심유진은 저도 모르게 별이에게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래서 심유진은 한 박자 늦게 출발을 하고야 말았다. 순식간에 세 명의 엄마들에게 밀려 뒤로 가게 되었다. “엄마 파이팅!” 별이가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 심유진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열심히 뛰었다. 심 유진은 운동신경이 좋지 않았기에 조금만 격렬한 운동을 하면 바로 숨이 찼고 온몸이 쑤셨다. 하지만 그건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심유진은 여러 번 포기하고 싶었지만 기대 찬 별이에 눈빛을 보며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곧 3등
허태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심유진을 감싼 채 허리를 숙이며 심유진에게 물었다. “다쳤어요?” 차갑기만 했던 목소리에 따뜻함이 묻어났다. 걱정 어린 그 눈빛에 심유진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였다. “아니요.” 분명 스킨십도 없고 오글거리는 대화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 주위에만 핑크빛 기류가 가득한 것처럼 보여 구경하던 사람들도 그 달달함에 푹 빠져들었다. “아빠, 우리 질 것 같아!” 별이의 외침에 허태준은 그제야 시합에 집중했다. 허태준이 그러고 있는 사이 이미 여러 명이 반환점에 도착해 있었다. 아마 허태준이 죽을힘을 다해 쫓아도 꼴찌는 면하지 못할 것이다. 심유진이 얼른 길을 트고는 허태준을 응원했다. “파이팅!”허태준은 순간 심유진의 그 순수한 미소를 보며 온몸에 힘이 솟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허태준이 재빨리 뛰어나갔다.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심판도 놀랄 정도였다. 허태준은 아빠들 중 가장 마른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반환점을 돌고 앞에 사람을 초과했다. 그 흥미진진한 장면에 구경하던 사람들 모두 허태준을 응원했다. 하지만 그전에 차이가 너무 났었기에 뒤로부터 두 번째 순서로 종점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허태준을 존경에 찬 눈길로 봤다. 성적이 안 좋아서 별이가 실망할까 봐 걱정했는데 별이는 기뻐하며 허태준의 다리를 감싸안았다. “아빠 진짜 최고야!”허태준도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심유진도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허태준에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응원을 너무 열심히 한 탓이었다. “최고였어요.” 심유진이 진심으로 허태준에게 말했다. 허태준은 처음으로 조금 쑥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아니에요.” 심유진이 휴지를 내밀면서 말했다. “땀 좀 닦아요.” 허태준이 휴지를 받으려는데 작은 손 하나가 그를 막았다. “엄마가 닦아줘야지!” 별이가 자연스럽게 애정행각을 하는 다른 부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봐봐, 다른 엄마아빠들
허태준은 사실 바라고 있었지만 심유진의 낯빛을 보고 나서 별이처럼 선을 넘을 수는 없었다. 허태준은 얼른 휴지를 건네받고 대충 닦고는 휴지를 뭉쳐서 쓰레기통을 향해 던졌다. 휴지가 완벽한 포물선을 던지며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주위사람들은 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심유진도 그의 신기한 묘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빠, 나 농구는 언제 가르쳐줄 거야?” 허태준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주말에 별이 쉴 때.” “약속한 거다!” 별이가 기뻐하며 허태준과 손가락을 걸었다. 심유진은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첫 게임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기에 허태준과 별이는 심유진을 데리고 거의 모든 게임에 다 참가했다. 심유진은 처음에 시합 결과에 연연하지 않았지만 승부욕이 불타오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흥을 깰 수가 없어 저도 모르게 같이 열심히 했다. 사실 대부분의 가족들은 심유진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어른들은 그 선물에 딱히 관심이 없었기에 심유진네 가족은 경쟁상대가 매우 적었다. 그러니 최종적으로 그들은 1등을 따냈다. 별이는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해 보였다. 심유진은 별이의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하은설과 자신의 앞에서는 항상 철든 남자아이의 모습을 보여줬었는데 허태준과 함께 있을 때만 별이는 정말로 아이가 되어있었다. 보통의 아이처럼 고집도 부리고 울기도 하고 떼도 썼다. 마음껏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심유진은 순간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1등 상품은 일본 7일 여행상품권이었다. 비행기표와 호텔, 가이드 서비스와 관광지 입장권까지 포함된 상품권이었다. 이 유치원에 아이를 보낼 수 있는 재력을 가진 부모라면 이 정도 돈은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이렇게 세심하게 여행계획을 세우는 건 쉽지 않으니 확실히 가치 있는 선물이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바로 심유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돈을 드릴 테니까 그 상품권을 저한테 주시는 건 어떠세요?” 사실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심유진
심유진은 별이 앞에 앉아 별이의 손을 잡고 차분하게 얘기했다.“엄마는 그렇게 긴 휴가를 낼 수 없어. 그러니 이 상품권을 그냥 낭비하기보다 다른 친구한테 선물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하지만 별이가 입을 삐쭉거렸다.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엄마 일이 바쁘다는 것도 알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이 다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별이는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소중 했다.“난 가고 싶어.”별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심유진은 입을 꼭 다물었다.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별이와 함께 있었던 시간이 짧았기에 다른 아이들은 다 세계 각지로 여행을 다닐 때 별이는 집에서 영화나 보고 책이나 읽었었다.“그러면 이렇게 하자.”심유진이 별이와 협상을 하려고 했다. “이건 일단 양보하고 나중에 엄마가 휴가를 써서 이틀 동안 놀고 오자. 어때?”이틀은 7일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별이는 이 정도만 돼도 심유진이 많이 양보해 준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럼 삼촌은?”“삼촌은 안 가.”심유진은 말을 하며 허태준 쪽을 바라봤다. 허태준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 중 가장 눈이 부셨고 자신과 많이 동떨어진 사람 같아 보였다. 언짢은 과거가 없었다 하더라도 심유진은 그와 가까이할 생각 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심유진의 의견은 별이에게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상품권은 삼촌이 따온 거야.”별이는 심유진의 의견에 반대했다.“삼촌 허락도 안 받고 다른 사람한테 준 것도 모자라서 여행 갈 때 데리고 가지도 않는 거야? 난 엄마한테 실망했어.”별이의 진지한 표정에 심유진은 마음이 뜨끔 했다. 너무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그럼 삼촌한테 물어볼게.”심유진은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허태준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다 흩어진 뒤에야 심유진은 별이를 데리고 그쪽으로 갔다. 허태준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엄마가 여행 상품권을 다른 친구한테
별이는 여전히 실망한 것처럼 보였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날 밤 허태준은 심 유진네 집에서 자지 않았다. 더 이상 핑계를 대면서 그 집에 있으면 심유진이 조금 짜증을 낼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때는 심유진이 다시 자신을 받아줄 것 같지 않았다. 허태준이 없으니 심유진은 마음이 한결 편했다. 하지만 또 허전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별이는 기분이 안 좋은 것이 표정에 확 드러났다. 계속 삼촌을 보고 싶어 하면서 잠이 들 때까지도 심유진이 세 번이나 재촉해서야 방으로 돌아갔다. 하루 종일 호텔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심유진은 서재로 가서 밀린 업무를 완성했다. 일을 마치니 새벽 세 시가 되어 있었다. 심유진은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면서 서재에서 나오다가 하마터면 뭔가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코코가 서재 입구에 누워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코코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상하게 편안한 감정이 들었다. 심 유진은 코코를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면서 물었다.“솜이는?”말을 마치자마자 케이지 안에 가만히 누워 있는 솜이가 보였다. 케이지의 문이 닫히지 않았기에 코코가 뛰어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솜이는 심유진의 목소리를 듣고도 고개를 살짝 움직였을 뿐 힘없이 누워 있기만 했다. 아마 자신이 어제 잘못을 했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별이는 심하게 다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도 정기적으로 예방접종을 하는 고양이들은 병균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적다고 말했었다. 심유진은 솜이를 탓하지 않았지만 허태준은 굉장히 미안한지 고양이들을 다시 가져가려고 했다. 하지만 심유진이 그를 막았다. 심 유진은 고양이들을 다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별이가 고양이들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니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솜이가 자책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심유진은 사료로 소미를 유혹하며 케이지 안에서 나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솜이가 먹고 있을 때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매번
별이와 하루 종일 놀고 집에 돌아오자, 허태준은 무음 모드로 돌려놓은 핸드폰을 꺼냈다.스크린에는 십몇 통의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전부 부모님이 거신 전화였다.그는 갑자기 짜증이 밀려왔다. 크게 한숨을 들이마시고 기분을 조절한 후 전화를 걸었다.허아주머니는 금방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물으셨다.“태준아 오늘 뭐하러 갔니?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회사랑 집에도 사람이 왜 없고?”허태준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고객 만나러 갔습니다.”허아주머니는 그러려니 했다.허태준은 물었다.“무슨 일이세요?”거리감은 허아주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오늘 그들이 임 변호사를 만났다고 하는구나. 네 할아버지 유산분배에 관해서 말이다...”허아주머니는 멈추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니 할아버지가 생전에 유언을 수립하지 않아 그들이 강하게 나오는구나...보기가 안좋았어.”허태준의 예상속 일이었다.심지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상상이 갔다.“마지막까지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허아주머니는 어쩔 수 없는 말투로 말했다.“태준아—”허아주머니는 화제를 돌렸다. 허태준도 정신을 가다듬었다.“나랑 니 아버지는 나이가 많아 그들과 싸울 힘이 없다. 더군다나 매년 그룹에서 나오는 보너스도 우월한 생활을 유지할수 있게 할수 있고. 그래서 우리는 유산을 포기하려 한다. 평정함과 맞바꿀 겸. 하지만 니 의견을 먼저 물어야 할 것 같구나. 유산에는 네 몫도 있으니 말이다.”“포기하시려면 하세요.”허태준은 태연했다.YT그룹은 그의 눈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삼분의 일의 YT라니?“저는 딱 한 가지 요구가 있습니다.”그는 핸드폰을 꽈악 잡고 말했다.“할아버지의 한옥은 저를 줘야 합니다.”할아버지의 한옥은 몇십억을 하였지만 YT그룹의 주가에 비하면 그렇게 흡인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그곳은 할아버지가 한평생을 살던 곳이었고 할아버지의 모든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집이었다.허태준은 허씨사람들이 그곳을 파괴하는 것을 원치 않았
허아주머니는 말했다.“다 해결되었다.”상속프로세스를 밟으면 한옥은 곧 허태준의 것이 된다.“둘째 삼촌과 셋째 삼촌 가족이 어제 비밀리에 협상을 한것 같더구나. 네 셋째 삼촌이 5% 주가와 할아버지의 기타 부동산을 가지기로 했고 나머지는 전부 둘째 삼촌한테 준다고 했더구나.”허할아버지가 그룹 내에 보유하신 주가는 56%였다. 셋째 삼촌이 5%만 가져가는 것은 허태서가 제일 많은 주가를 보유해 총재의 위치에 안정적으로 앉아있는 것을 확보하기 위함일 것이다.둘째 삼촌과 셋째 삼촌은 시종 내부적으로 투쟁을 했다. 셋째 삼촌이 이렇게 큰 희생을 하다니 둘째 삼촌 집안에서는 어떤 보장을 했을 것이다. 아니면 둘째 삼촌 집에서 어떠한 꼬투리를 잡았을 것이다.허태준은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계획을 진행시킬수 있을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허태서의 직위는 변하지 않기에 그도 걱정할 것이 따로 없다.오후에 그는 한옥으로 갔다.할아버지의 후사가 끝나자, 여기도 예전의 썰렁함을 되찾았다.허태준은 문어구에서 문을 한참 두드렸다. 한 하인이 땀을 흘리면서 달려왔다.“도, 도련님!”하인은 거친 숨을 쉬면서 말했다.허태준은 이상하게 여겼다.“아주버님은요?”한옥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일은 아주버니께서 늘 하시던 일이다. 여기로 찾아오는 손님은 다들 귀한 손님이었기에 허할아버지보다 한자리 아래인 집사, 아주버님이 손님을 맞이해야 빈틈이 없었다.하인은 슬픈 기색을 보였다.“아주버님은... 짐을 싸고 계십니다.”허태준은 이마를 찌푸렸다.“무슨 짐이요? 어디로 가시는데요?”“본가로 내려간다고 합니다.”하인은 말했다.“주인님이 가셨으니, 집도 비었고 저희들도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집사도 간다고 하니... 에구!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나겠네요!”허태준은 황급히 문턱을 넘어 아주버님 방으로 왔다.“아주버님, 계세요?”문은 끼익 소리를 내고 열려다. 아주버님은 천천히 나왔다.“작은 도련님?”허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