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요?” 별이는 다시 희망이 생겼다. “그럼!” 허태준이 또 한 번 확신을 주자 별이는 기뻐서 침대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니까 이모 말이 틀렸다는 뜻이고 즉 태준 삼촌이 엄마가 좋아할 스타일이 아니라는 그 말도 틀릴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결론을 얻자 별이는 힘이 불끈 솟아올랐다. 당장 엄마랑 태준 삼촌을 만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조심스레 진행해야 했다.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됐다. 본사에서 신청해 준 보디가드는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심유진 집으로 왔다. 매일 출퇴근을 도와주던 기사님도 더욱 프로페셔널한 분으로 바뀌여졌다. 심유진은 조금이나마 덜 불안해졌다. 하지만 정소월의 판결이 나지 않았으니 완전히 걱정이 안 되는 건 또 아니었다. 어제 정소월이 경찰에 잡혀갈 때도 호텔에서 꽤나 큰 소동이 일었다고 한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이미 소문은 심유진과 별이랑 관련이 있는 일이라고 파다하게 퍼졌다. 심유진은 별이랑 호텔에 도착하고부터 주변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사무실에 도착하고 심유진은 웃느라 경직된 볼의 근육을 풀어줬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전화가 걸려 왔다. 경찰 두 명이 심유진을 찾아왔다는 전화였다. 어제 보안실에서 오늘 중으로 경찰들이 사건의 경과를 물어보러 방문할 것이라고 전달했었다. 심유진은 경찰들을 사무실로 모셨다. 하지만 경찰들은 심유진에게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별이에게 물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을까?”심유진이 얼른 별이를 가로막았다.“어제 사건은 cctv에 이미 다 찍히지 않았나요?”별이는 아직 어리기에 심유진은 별이가 또다시 그 기억을 떠올리며 힘들어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미 cctv자료를 경찰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호텔방 안에 cctv가 없었어요.”경찰들도 입장이 난감했다. “저희는 정소월씨가 아드님을 방 안으로 데려가서 뭘 했는지 알아야 하거든요. 정소월 측 변호인의 입장에 따르면
하루가 지났는데 별이 몸에 생긴 멍자국들은 옅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짙어졌다. 경찰들도 그걸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잠시 옷을 벗겨주시겠어요? 사진 좀 찍겠습니다.” 심유진은 별이의 옷을 벗겨 상처들을 드러냈고 경찰들은 꼼꼼히 사진을 찍었다. “제가 방에 들어갔을 때 정소월이 저희 아들을 심하게 때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달려가서 정소월이 행동을 멈추도록 끌어안았고요. 때린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증거는 없어요.” 심유진은 당시 동영상을 찍어두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하지만 별이를 구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호텔 보안인원들이 들어와서 정소월을 제압했어요. 그때 심한 말들을 해서 참지 못하고 뺨을 때렸습니다.” 심유진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만약 그걸 고의상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네요.” 심유진의 침착함이 정소월과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그리고 누구를 대하든지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붓는 정소월과 달리 아무리 화가 나도 예의 있고 조리 있게 얘기하는 심유진의 모습에 경찰들도 저도 모르게 마음이 심유진 쪽으로 기울었다. “상황은 잘 알았습니다. 혹시 사건수사에 다른 진전이 있으면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경찰들이 떠나고 심유진은 별이에게 옷을 다시 입히고 꼭 안아줬다. “아직 많이 힘들어?” 심유진이 걱정하자 별이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별이가 자신을 살짝 꼬집었다. 금세 눈에 눈물이 고였다. 심유진은 마음이 아프면서도 정소월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더 가득해졌다. “엄마, 나 피자 먹고 싶어.” 별이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그래.” 심유진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피자뿐만 아니라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엄마 최고!” 별이가 활짝 웃으며 심유진에게 입을 맞췄다. 그 웃음을 보니 심유진도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별이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도 기꺼이 속아 넘어가 주고 싶었다. 별이가 기쁘기만 하면
“다 오래전에 로그인한 계정들인데 로그인 시간이 비슷하고 IP주소도 한동안 같았습니다. 왠지 같은 회사에서 악의적으로 쓴 악플들 같은데...” 담휘가 허태준에게 악플에 관한 상황을 보고했다. “주소가 경주와 멀어서 정확한 위치를 추적하기 어렵습니다. 대체 누가 이런 장난을 하는 건지 찾기도 힘들고요.” “찾지 마세요.” 허태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누가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사실 그건 담휘도 마찬가지였다. “매직큐브 쪽은 게임 출시일이 언제죠?” 허태준이 물었다. “미뤄졌다는 것 같습니다.” 담휘는 CY가 이겼다는 생각에 조금 우쭐해진 것 같았다. “그래요.” 허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방심하지 마세요. 저쪽은 수단이 많을 테니까.” “네.” 허태준이 “산과 바람”에 대한 평가들을 좀 더 물어보려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이 휴대폰은 허태준이 퇴원하고 새로 바꾼 개인휴대폰이었다. 저장해 둔 연락처도 여형민과 별이것밖에 없었다. 둘 중 누구든지 허태준이 하던 일을 멈추게 만들기 충분했다. “잠시만요.” 허태준이 문자를 확인했다. 별이에게서 온 문자였다. 허태준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담휘는 깜짝 놀랐다. CY에서 허태준과 함께 일을 하는 내내 지금처럼 기뻐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허태준은 그제야 담휘가 아직 옆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별이와 연락을 나눈다는 건 될수록 다른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야 여러 귀찮은 상황과 위험을 모면할 수 있었다. “일단 나가 계세요. 나머지는 이따 회의할 때 다시 얘기하죠.” “알겠습니다.” 담휘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바빠. 왜?” 허태준이 문자를 보냈다. 별이는 일부러 우물쭈물 물었다. “혹시... 저녁에 시간 있으세요?” “그럼!”허태준은 얼른 비서에게 연락했다. “오늘 저녁 일정 다 취소하고 내일로 미루세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심유진은 미리 퇴근했다. 원래는 가까운 곳에 별이를 데려가려고 했으나 별이는 가고 싶은 가게가 있는지 굳이 럭키쇼핑몰로 가자고 했다. 사실 항상 사람이 많은 쇼핑몰이라 심유진은 딱히 내키지 않았지만, 별이가 가고 싶어 하니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별이가 선택한 피자가게는 굉장히 인기가 많았지만, 다행히 일찍 도착했기에 줄을 설 필요가 없었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대기구역에 사람들이 많이 왔다. 별이가 갑자기 밖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엄마, 태준 삼촌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확실히 허태준이 있었다. 혼자 왔는지 고독하게 앉아서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평범한 검은 양복을 입었음에도 그 특유의 분위기는 감출 수가 없었다. 허태준은 그 수많은 사람들 중 가장 시선을 끄는 존재였다. 지나가는 이성들은 모두 그를 한 번씩 돌아봤고 앞자리에 앉아있는 여자들도 같이 수군대며 허태준을 힐끔거렸다. 마침내 그중 한 명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휴대폰을 내미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허태준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 뭐라고 얘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삼촌도 줄 서나 봐!” 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심유진이 반응할 새도 없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삼촌도 불러와서 같이 앉자!” 심유진이 다급히 불렀지만 별이는 이미 뛰여나간 뒤였다. 별이가 허태준과 신이 나서 이야기하며 자신이 앉아있는 쪽을 가리키는 것이 보였다. 허태준이 고개를 들자 심유진과 눈이 마주쳤다. 허태준은 인사라도 하듯 미소를 지어 보였고 심유진도 억지로 웃으며 인사했다. 별이는 허태준을 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야근 안 해요?” 허태준이 심유진에게 물었다. “별이가 피자가 먹고 싶다고 해서 일찍 퇴근했어요.”허태준은 대답하며 별이와 함께 심유진의 맞은쪽에 앉았다. 허태준과 함께 식사를 할 때마다 심유진은 너무 불편했지만 그래도 예의상 메뉴판을 허태준 쪽으로 밀어주었다. “뭐 드시고 싶으신 거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별이가 아빠를 그리워한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빠의 존재가 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도 알지만 그 첫걸음을 떼기가 너무 힘들었다. 가게에 사람이 많았기에 음식이 매우 늦게 나왔다. 피자가 가장 먼저 나왔다. 금방 만들어서 치즈가 쭉 늘어났고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 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심유진마저 군침을 삼켰다. 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을 보며 피자 첫 조각을 심유진의 접시에 올려줬다. 심유진이 깜짝 놀라서 허태준을 바라봤다. 허태준은 자연스럽게 또 피자 한 조각을 별이의 접시에 올려줬다. “많이 먹어.” 허태준이 별이에게 말했다. “키가 쑥쑥 커야 엄마도 지켜주지.” “네!”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많이 먹고 삼촌만큼 커져야지! 그럼 누구도 나랑 엄마 못 괴롭힐 테니까.” 별이가 얼른 피자를 입 안에 넣었다가 너무 뜨거워서 혀를 데고 말았다. 아까까지의 감동이 이 순간 파사삭 무너졌다. 심유진이 얼른 얼음물을 건네며 낮은 목소리로 타박했다. “천천히 먹어! 지금 빨리 먹는다고 키 크는 거 아니거든.” 별이는 얼음물을 꿀꺽꿀꺽 삼키더니 멋쩍게 혀를 내밀었다. 허태준은 이런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별이가 부탁해서 왔을 뿐이었다. 별이가 아까 전화로 이 가게의 피자를 사서 호텔로 온 뒤 자신을 데리고 영화를 보러 가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늦게 온 탓에 가게는 이미 자리가 없었고 바로 포장해 가는 건 안 된다는 직원의 말에 그냥 인내심을 가지고 밖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별이가 이미 와있을 줄은 몰랐다. “엄마가 갑자기 야근을 안 한대요. 너무 기뻐서 삼촌한테 연락하는 걸 까먹었어요.” 별이의 해명을 듣고도 허태준의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별이가 함께 밥을 먹자며 식당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때 허태준은 별이와 영화를 보지 못할까 봐 실망스러웠던 감정이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허태준은 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수시로 휴지를 뽑아 입
심유진이 멈칫했다. 허태준을 바라보니 그도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뜨거운 시선을 견디기가 힘들어 심유진은 고개를 돌렸다. 별이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건 당연히 문제가 없을 테지만 허태준과 함께라니... 심유진은 고민에 빠졌다. “오늘은 좀 늦었는데.” 심유진은 별이를 설득하려 했다. “엄마가 쉬는 날에 다시 와도 될까?”별이는 허락할 리가 없었다. “난 꼭 오늘 볼 거야!” 별이가 처음으로 생떼를 썼다. 허태준도 심유진을 설득했다. “아직 너무 늦은 시간도 아니고 별이도 내일 유치원 안 가는 날인데 그냥 보죠.” 허태준이 도와주니 별이가 더 떼를 썼다. “그러니까! 오늘 보자!” 잘 맞는 두 사람을 보면서 심유진은 허태준이 별이의 친아빠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얼마나 별이를 감싸고돌지 눈에 선했다. “그래요.” 결국 심유진이 허락했다. 별이는 허태준을 바라보며 윙크를 했다. 허태준은 귀여운 별이의 작은 꼼수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여름방학 시즌이어서 그런지 상영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이 꽤 많았다. 심유진이 아무거나 골라서 영화표를 구매하려는데 별이가 말렸다. “이건 너무 유치해.” 인상을 찌푸리는 별이의 모습에 심유진은 웃음이 나왔다. “그럼 별이가 보고 싶은 걸로 사.” 별이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등을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별이가 영화표를 들고 왔다. 심유진이 영화표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요즘 유명한 멜로영화였다. “이거 볼 거야?” 심유진은 아직 글을 다 못 뗀 별이가 자신이 산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는 알고 있을지 궁금했다. “응!” 별이가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이 형이 잘생겼고 누나가 예쁘니까 이 영화도 재밌을 거야.” 심유진은 결정권을 별이에게 준 것이 후회됐다. 당연히 애니메이션 중에서 고를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이건 별이가 이해하기 힘들 거야. 저 애니메이션은 어때?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
허태준이 팝콘을 별이에게 건넸다 “먹을래?” 별이는 팝콘을 밀어냈다. “엄마가 엄청 좋아해요. 엄마 주세요.”허태준은 또 심유진에게 내밀었다. 심유진이 손을 저었다. “전 배가 불러서 괜찮아요.” “삼촌, 엄마가 거짓말하는 거예요.” 심유진이 별이를 살짝 째려봤다. 별이는 허태준이 옆에 있어서인지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허태준은 아예 팝콘을 심유진의 품에 안겨줬다. “드세요.” 심유진은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사실 심유진은 정말 팝콘을 좋아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단 거라면 다 좋아했다. 어쩌면 삶이 너무 써서 단 걸 보충하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 영화 내용에 대해서 심유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여러 나라에서 리메이크한 명작인 데다가 대학교 시절 하은설 때문에 여러 번 봤기 때문이었다. 하은설은 매번 영화에 깊이 빠져들었지만, 심유진은 매우 지루했다. 배우들은 다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영화 내용도 여전히 지루했다. 심유진은 영화에 흥미를 잃었기에 팝콘만 열심히 먹고있었다. 그때 차가운 손이 팝콘 통 안에서 심유진과 스쳤다. 그 차갑고 익숙한 촉감에 심유진의 몸이 굳어졌다. 심유진은 얼른 손을 빼내며 앞만 주시했다. 차마 옆을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허태준은 팝콘을 입에 넣으며 영화관의 어두운 불빛을 빌려 심유진을 힐끗 바라봤다. 아무 표정도 없어서 그녀의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몇 분 지나서 심유진이 또 팝콘에 손을 대자 허태준도 또 손을 넣었다. 또 한 번 손이 부딪혔다. 이 작은 스킨십만으로도 허태준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심유진은 더욱 침착함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머릿속이 창백해지고 영화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순간 목이 말라와 심유진은 옆에 놓인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다 마시고 병을 내려놓는데 허태준의 시선이 느껴졌다. “왜, 왜요?” 허태준이 웃으며 방금 심유진이 내려놓은 병을 가리켰다. “저거 제 거인 것 같은데.
심유진은 화장실로 달려갔다.아직 영화가 끝나지 않아 늘 사람들로 붐볐던 여자 화장실에는 드물게 사람이 없었다.그녀는 수도를 틀어 찬물을 받아 얼굴에 뿌렸다.열기는 찬물에 식혀졌다. 심유진은 티슈로 물기를 닦아냈다. 심장도 점점 정상적으로뛰기 시작했다.그녀는 거울을 보면서 파운데이션을 얇게 펴 발랐다. 아직 가라앉지 않은 빨간 빛을 가리기 위해서였다.그녀는 조금씩 표정을 조절하였다. 아까와 같은 긴장과 부끄러움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가슴을 펴고 나갔다. 카운터에서 허태준에게 줄 콜라 한 잔을 샀다.다시 영화관 안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영화가 절반이나 방영되었다.허태준은 중심을 한쪽으로 기울고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핸드폰 밝기를 제일 어둡게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다른 한쪽에 별이는 손받침대에 엎드린 채 자고 있었다.심유진은 콜라를 허태준에게 건네주면서 소리를 낮춰 물었다.“별이는 언제 잠들었어요?”“당신이 나가서 이분도 안 지나 잤어.”허태준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우습기도 해서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런 영화를 보기에는 아직 어리지. 하필 이런 영화를 골라서는. 당신 앞에서 자기도 뭐했나 봐. 당신이 오면 깨워달라고 했는데─”그는 심유진을 바라보고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깨울까?”심유진은 자고 있는 아들을 깨우기 싫었지만, 훈수도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깨워줘요.”그녀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말했다.“영화를 다 보게 해야 해요.”허태준은 그녀가 무슨 뜻인지 알고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는 별이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별이야. 엄마가 왔어!”별이는 꾸물대더니 금세 똑바르게 앉고 앞을 빤히 바라면서 영화를 열심히 보는척했다.심유진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드디어 영화가 끝나자, 별이는 허태준의 차를 타겠다고 졸랐다. 심유진은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하고 허태준이 데려다주게 하였다.별이는 진짜로 졸렸는지 차에 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