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취미가 비슷했던 탓일까 허태준과 별이는 유난히 잘 맞았다.그날 밤 이후 별이는 “허삼촌”을 입에 달고 살았다. 심지어”여삼촌”보다 더 불렀다.그는 허삼촌을 집에 초대하라고 심유진을 종종 졸랐다.심유진은 당연히 거절을 했다.**허아리는 전학을 갔다─허태준이 약속한 대로 말이다.선생님과 학생 부모들은 다들 기뻐했다.허아리가 어디로 전학을 갔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었고 담임선생님도 얘기를 하지 않았다.**간만에 휴가를 맞아 심유진은 네 시 반에 제때에 유치원에 도착했다. 별이를 데리고 영화나 보러 가기로 했다.계단을 올라서니 교실문어구 복도에 학부모들이 몰려 서 있는 것이 보였다.앞쪽에 선 몇몇은 세게 문을 두드렸고 뒤에 선 사람들도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면서 유리를 쾅쾅 두드렸다.너무나도 이상한 풍경에 심유진은 당황했다.그녀는 다가가 학부모 한 명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이예요?”그 학부모는 입을 삐죽하면서 말했다.“허아리 어머니가 와서 안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어요.”심유진은 심장이 철렁하고 더 불안해졌다.허아리의 전학은 별이와 관련이 많았다. 정소월이 여기서 소란을 피우니 별이한테 피해가 갈가봐 긴장했다.그녀는 힘겹게 문어구까지 비집고 가 문너머로 희미하게 들리는 소란소리에 귀를 기울였다.“저한테 통지도 없이 전학을 보낼 수가 있나요?”“당신이 담임인데 어디로 전학을 갔는지 어떻게 몰라요?”“알려주지 않으면 나 안가!”“다 못가!”정소월의 목소리는 앙칼지고 높아 구분하기 쉬웠다.담임선생님이 뭐라 했는지 심유진은 한마디도 못들었다.“아이가 울어요!”뒷쪽 창문으로 들여다 본 학부모가 말했다.“아이 여러명이 울어요!”“아니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다른 선생님은 교실 키가 없나?”“저 여자는 어디 아픈 사람이야?”학부모들은 의논을 하고 있었고 화는 점점 세졌다.그들은 더 세게 문과 창문을 두드렸다.“열어!”“빨리 문을 열어!”“들어가게!”이러한 풍경은 담임선생님을 더욱 무
그들이 나갔을 때 마침 몇몇 경찰들이 들어오고 있었다.일부 학부모는 멈춰서서 경찰들에게 길을 알려주면서 빨리 가보라고 했다.“저 여자는 미쳤어요! 사람을 때려요!”“너무 위험한 사람이예요. 구속해야 해요!”...심유진은 더욱 빨리 걸었다. 이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았다.**별이는 놀라서 차에 오르자 연속 무서워를 외쳤다.심유진은 별이를 안고 한참을 다독여 줬다. 결국에는 슈퍼맨 장난감을 사주겠다는 말로 별이의 주의를 끌었다.**영화를 보고 나서 심유진은 별이의 손을 잡고 지하주차장으로 갔다.그들은 늦게 온 탓에 엘리베이터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댔다.둘은 느긋하게 그쪽으로 갔다. 구석에서 차가 튀어나와 그들을 향해 직진해 오고 있었다.다행히 심유진은 반응이 빨라 별이를 안고 옆에 세워진 차량 중간에 숨었다.그 차는 브레이크를 제때에 밟지 않아 세워진 차의 머리를 박았다.쿵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차량은 세게 흔들렸다.별이는 깜짝 놀라 눈을 감았다.심유진은 그들을 치려는 게 어떤 사람인지를 볼 틈이 없이 제일 빠른 속도를 내려서 달려가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그리고 쇼핑몰로 다시 돌아왔다.군데군데 있는 사람들을 보니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심유진은 다시 내려가지 못했다. 그래서 일 층으로 내려가 택시를 잡았다.별이는 심유진한테 물었다.“엄마, 아까 그 삼촌은?”─별이는 아까 부딪친 기사를 가리켰다.별이는 아직 어려서 그 차량이 일부러 그들을 치려는것을 몰랐다.심유진도 별이한테 알려줄 리 없었다.그녀는 말했다.“아저씨 혼자서 구급차를 부를 거야.”별이는 더 묻지 않았다.**심유진은 생각했다. 도대체 누가 그녀를 그렇게 미워해 죽이려고까지 하는지.육년 전 그녀는 여기있는 사람들과 인연을 깨끗이 끊었다.그녀가 돌아온 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그녀는 예전의 인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상업적으로 경쟁이 될 만한 사람들을 세고 있었다.라이벌이라 하지만 그 누구와도 이 정도로 원수
허태준은 요새 바빴다.육년 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나 다시 CY를 경영하고 있었다. 때문에 매일 수도 없이 많은 문서들을 봐야 했고 수도 없는 회의에 참석해야만 했다.더군다나 이년 가까이 준비를 해온 게임 >이 론칭을 준비 중이다─이 게임은 올해 최대의 프로젝트이기에 그는 직접 나서야만 했다. 그래서 몇밤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도 모른다.여형민이 전화 왔을 때 그는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샷 두 개를 추가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 총책임자 담휘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허태준은 그더러 멈추게 하고는 전화를 받았다.“킹호텔에 지인한테 물어봤는데 심유진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라.”여형민은 말했다.“업무랑은 관계가 없는 일인 것 같아.”허태준은 이마를 찌푸리고 눈을 살짝 감았다.“알겠어.”그는 전화를 끊고 담휘한테 말했다.“계속하세요.”“홍보자료는 다 준비되었습니다. 원계획은 다음 달 1일에 공개하는 것인데...”담휘는 입술을 핥으면서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매직큐브에서 다음 달에 새로운 게임을 론칭할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쪽에서도 PC상 RPG였습니다. 저번처럼...”담휘가 말하는 매직큐브는 육년 전 허태준이 혼절상태에 있을 때 성립된 게임을 전문으로 만드는 작은 회사였다. 핵심멤버는 각 IT회사의 게임부서에서 스카웃한 경력자들이었다.이 회사 대표는 양연령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허태준은 잘 알고 있다. 이 양연령이라는 사람은 허태서의 오래된 조수였다. 다시 말해 매직큐브는 사실상 허태서가 성립한 회사이다.인터넷게임의 이윤은 어마어마하다. 제작에도 큰 투자가 필요 없기에─어설프게 만든 게임이라도 한 달에 20억을 훌쩍 넘는 거래가 성사된다.매직큐브가 갓 성립되었을 때는 한가지 게임의 테마를 바꾸는 방식으로 비도덕적이게 빠르게 돈을 벌어들였다.이러한 행위는 브랜드의 값을 바닥까지 떨궜다. 후에 개발한 몇몇 게임도 표절 및 아이디어 부족으로 성적이 저조했다.하지만 삼년 전 매직큐브에서 카드류 게
─하지만 유저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적지 않은 유저들이 매직큐브에 불만을 가져 게임을 포기했으며 이 게임의 서버도 사람들이 최고로 많이 접속했을 때의 40여 개에서부터 10개로 줄어들었다.하지만 이 게임은 아직도 매직큐브에서 제일 돈이 되는 게임이었다.담휘는 걱정 했다. 매직큐브가 또 한 번 같은 짓을 저지를가봐여서였다.>은 그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그는 이렇게 큰 손실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사실 >이 제작중에 있을 때 저희 팀 여러 제작사가 매직큐브한테서 연락을 받았었습니다. 높은 가격으로 저희의 설정을 사겠다고 했는데 제가 알기론 다들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모르는 것도 있을 수 있으니...”>은 PC상 RPG게임이고 매직큐브도 PC상 RPG게임을 론칭한다 했으니 실로 우연이 아닐수 없었다. “홍보자료는 이미 다 제작이 되었으니 내일 뿌리도록 하세요.”허태준은 말했다.“마케팅 부서에서 오늘 모두 야근을 하고 내일부터 추진방안을 집행하라고 하세요.”“네.”담휘는 만족스럽게 떠나갔다.사무실 문이 닫히자 허태준은 뒤로 기대고 피곤한 듯 콧등을 문질렀다.그는 사내전화를 돌려 비서와 통화를 하였다.“오늘 나머지 업무는 다 미루도록 하세요. 피곤해서 돌아가서 휴식해야겠습니다.”그의 업무강도가 얼마나 강한지 그의 비서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비서는 몇 번이고 무리하지 말라고 타일렀지만, 허태준은 다 귓등으로 흘려보냈다.이제 자기절로 집에 돌아가겠다고 하니 비서는 냉큼 대답했다.**허태준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킹호텔로 가 >제작팀을 만났다.CY는 >에 절반가량 투자하였다. 이 드라마가 제작 완료되면 CY의 “굿티비”에 단독출연이 된다.그래서 허태준이 만나러 가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그는 미리 제작팀에 전화를 하여 저녁에 제작팀에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다.이렇게 큰 행사는 당연히 심유진에게까지 보고 되었다.하지만 호텔
모든 사람들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허태준을 포함해서.그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하지만 이내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심유진은 그의 우호적인 반응을 뒤로 한채 시선을 그의 옆 제작사한테로 돌렸다.“위제작사님 안녕하세요!”그녀는 위제작사한테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위제작사는 그녀를 알고 있다. >제작팀이 온 그날 심유진은 직접 그를 만나러 갔었다.“심매니저님 안녕하세요!”그는 일어서서 웃으면서 심유진의 손을 잡았다.두 사람의 맞잡은 손은 마침 허태준의 눈앞에 놓였다.그는 입술을 오므리고 마음속의 불쾌함을 참았다. 그리고 눈썹을 치켜뜨면서 물었다.“심매니저?”위제작사는 급급히 그한테 소개를 해주었다.“킹호텔의 심총매니저님이십니다.”허태준은 몸을 일으켜 심유진의 손을 잡았다. 반쯤 뜬 눈에는 장난기가 돌았다.“심매니저님 안녕하세요.”예전과같이 차가운 손은 심유진으로 하여금 흠칫하게 하였다.그녀는 평온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대답했다.“허대표님 안녕하세요.”그녀는 손을 빼내려 하였으나 허태준은 더 세게 잡았다.그의 뜨거운 눈빛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심매니저님은 저를 아시나요?”심유진은 웃었다.“CY그룹 허대표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주변에서는 숨을 들이켰다.옆 테이블에서는 쉬쉬하기 시작했다.“이분이 CY그룹의 총재셔?”“아닐걸? CY의 그 얼굴을 내비친 적 없는 총재가 이렇게 잘생겼단 말이야? 늙은이인줄 알았는데!”“어머 어머! SNS에 올려야지! CY그룹 대표랑 밥을 먹다니! 이번 생에 이번 뿐일걸!”...허태준의 입꼬리는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걸.”심유진은 난처해졌다.하지만 허태준은 더 말하지 않았다.그는 그녀의 손을 놓고 다시 자리로 앉았다.심유진의 손은 주먹을 쥐었다. 방금 그의 온도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그녀는 이초동안 멍해있다가 부총지배인의 귀띔하에 미소를
**심유진과 부총지배인은 엘리베이터에서 헤어졌다.부총지배인은 그녀의 지시대로 로비로 갔고 그녀는 제일 위층 사무실로 갔다.별이는 놀다 지쳤는지 소파에서 잠들었다.그녀의 사무실에는 담요가 없었다. 심유진은 별이가 감기에 걸릴까 봐 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깨웠다.“집에 가자.”그녀는 모든 파일을 저장하고 컴퓨터의 전원을 껐다. 그리고 별이의 손을 잡고 내려왔다.그녀는 미리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그들이 호텔을 나왔을 때 차는 이미 문어구에 있었다.심유진이 차를 타고 문을 닫으려 하려는 찰나 한 손이 불쑥 들어와 차 문을 잡고 있었다.“잠깐만.”허태준은 차 문을 열고 심유진의 의아한 눈빛 하에 미안하다는 듯이 웃고 말했다.“술을 마셔서 차를 몰지 못해서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태워 주시겠나요?”그들은 같은 동네에 살았으니 같은 길이긴 했다.심유진이 거절을 한다면 너무 티가 나게 행동하는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고맙습니다.”허태준은 앞쪽 조수석에 앉았다.그는 무심결인 척 물었다.“별이는 유치원에 가지 않았나요?”심유진의 마음은 철렁했다. 어떻게 대답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별이가 입을 열었다.“며칠 전 엄마랑 영화 보러 갔는데 차에 치일 뻔했어요. 엄마가 트라우마가 생겨서 운전하지 못해요. 그래서 저를 유치원에 데려다주지 못해서 청가를 내줬고 기사아저씨한테 출퇴근을 부탁했어요.”심유진은 일이 그릇되고 있음을 알아챘다.얘는 무슨 아무 얘기나 다 하고 다니지?아니나 다를까 허태준의 얼굴색은 어두워졌다.그는 이마를 찌푸리고 물었다.“차에 치일뻔하다니? 어떻게 된 거야?”“아마 운전사가 술을 많이 마셔서 길을 잘못 보고 저랑 별이를 칠뻔한 것 같아요.”심유진은 덤덤히 말했다.허태준은 믿지 않았다.사고라면 그녀는 자신의 차를 운전하지 않을 리 없다. 별이를 시시각각 옆에 끼고 다니지도 않을 것이다.하지만 그녀가 그를 알게 하고 싶지 않아 하는것 같으니 그도 모른 척 해야 했다.“신고는
별이는 재빨리 받았다.“여삼촌~”별이는 달콤하게 불렀다.허태준의 마음은 시큼해났다.“별이야 나야.”차가운 목소리에는 간만에 온도가 느껴졌다.그는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별이의 프로필 사진을 봤다. 그 사진을 통해서 본인을 보는것 같았다.“아!”별이는 당황했지만 금방 덧붙혔다.“허삼촌 안녕하세요~”허태준은 허삼촌이라는 칭호가 만족스럽지 못했다.하지만...당분간은 이래야만 했다.“별이야. 삼촌이랑 엄마랑 치일뻔한 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얘기해줄 수 있어? 예를 들면 언제?어디서?”허태준은 인내심이 있게 별이를 유도했다.별이는 기억력이 좋아 시간과 지점을 금방 얘기해줬다.허태준은 핸드폰을 여형민한테 넘겨주었다. 여형민은 알아채고 그 쇼핑몰그룹 대표한테 전화를 걸었다.몇분뒤 그는 전화를 끊고 허태준한테 OK 사인을 보냈다.허태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별이와 계속 얘기했다.“너랑 엄마랑 다쳤어?”“아뇨. 다행히 엄마가 빨리 달아났어요!”그날을 되새기니 별이는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렸다.“너무 무서웠어요!”가슴이 두근거리기는 허태준도 마찬가지였다.“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그는 별이한테 약속했다.그들은 몇마디 더하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심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별이야, 샤워하고 있니?”별이는 급급히 전화를 끊었다.허태준은 그제야 전화를 여형민한테 돌려주었다.“CCTV는 늦어도 내일 오후까지 메일로 보내준대.”여형민은 말했다.“그래.”허태준은 전화를 받고 여형민한테 당부했다.“사람을 붙혀 심유진과 별이를 따라다니게 해.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나한테 보고를 하고. 요즘 게임을 론칭을 해야해서 나는 매직큐브쪽도 주시해야 하니까 네가 좀 수고를 해줘야겠어.”여형민은 그의 부탁 어린 말투에 적응하지 못했다.“수고는 뭔 수고야. 심유진은 내 친구이기도 해.”여형민은 그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말했다.“너는 니 일에나 전념을 해. 이쪽은 나한테 맡기고.”허태준은 소리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눈에는 감
“당황하지 말구요.”심유진은 숨을 들이쉬면서 조수를 위로했다.“당신 탓이 아닙니다. 별이를 본 사람들이 있는지 물어봐 주세요. 저는 경비처에 전화를 할게요. 먼저 끊을게요.”그녀는 경비처에 전화를 걸면서 문어구쪽으로 걸어갔다.호텔의 출입구는 두 곳이었다. 하나는 정문에, 하나는 뒷쪽 응급 출입문이다─하지만 이 문은 평소에 열지 않았다.별이가 납치되었다 하더라도 별이를 데리고 나가기 위해서는 이 두 출구중 하나는 지나야 했다.그녀는 경비처더러 레스토랑이 있는 층의 CCTV를 확보하게 하고 사람을 보내 이 두문을 지키게 하였다.“소식이 있으면 즉시 저한테 전화를 하세요.”그녀는 말했다.심유진은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았다. 그녀는 눈이 빠지게 둘러보고 있었다. 그녀의 앞을 지나는아이는 하나도 빠짐없이 훑어보고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별이는 보이지 않았다.경비처에서도 소식이 없었다.심유진의 불안한 마음은 점점 깊어졌다. 눈꺼풀도 뛰기 시작했다.한 시간이 지나자 경비처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심매니저님 아드님을 찾았어요! 이상한 차림새를 한 사람이 1503방으로 데려갔습니다. 저희가 가서 볼까요?”심유진은 10센치짜리 하이힐을 신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바로 안내데스크로 달려갔다.“그래요! 지금 바로 가세요! 저도 금방 갈게요!”그녀는 줄에 끼어들어 입주등기를 하려는 손님들의 앞에 서서 명령했다.“1503 방키를 주세요!”조절하지 못한 높은 목소리는 안내데스크의 직원들을 놀라게 하였다.“네, 심매니저님!”안내데스크에서는 제일 빠른 속도로 방키를 건넸다.심유진은 받자마자 다른 사람들을 밀치면서 엘리베이터로 비집고 들어갔다.다른 사람들의 원망과 풍자를 뒤로 한 채 올라가고 있는 스크린 숫자만 보고 있었다.숫자가 15가 되는 순간 그녀는 앞의 사람들을 제치고 달아나갔다.“아니 왜 저래!”“뭐가 저렇게 급해!”...심유진은 다른사람의 불평과 악담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1503번방은 엘리베이터와 가까워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