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원의 식당에는 사람들이 몇 없었다. 매 사람마다 스테이크 세트를 시켰다. 음식은 반시간도 되지 않아 모두 나왔다.이 식당도 보통 음식점의 수준이였다. 맛은 별로였기에 여형민은 두 입을 먹고 칼과 나이프를 내려 놓았다.그는 찻물로 입가심을 하고 열심히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별이를 조용히 바라보았다.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원인이었는지 전부 심유진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던 별이의 얼굴은 보면 볼수록 허태준과 닮아 있었다.짙고 긴 속눈썹이며 오똑한 코며 또 핑크 빛이 나는 입술까지.그가 한참동안 움직임이 없자 심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접시에 아직도 절반이나 남은 스테이크를 보고 물었다.”안 드세요?””맛이 없어.”별이는 엄숙한 표정을 하였다. 애기 목소리로 교육을 하기 시작했다.”아저씨,음식을 가리면 안돼요~ 음식을 낭비해도 안 되고요~ 엄마가 돈을 힘들게 벌어요~”여형민은 푸흡하고 웃었다.”아저씨가 잘못했어.”그는 흔쾌히 잘못을 인정하고 심유진을 칭찬했다.”애교육을 잘 시켰네요.” 심유지은 그의 눈빛을 피하면서 담담히 얘기했다.”저랑 상관이 없어요. 별이 엄마가 교육을 잘 시킨 거죠.”여형민은 그녀의 거짓말을 들춰내지 않았다. 다시 칼과 나이프를 집어 들고 맛이 없는 것을 참으면서 세트음식을 모두 먹으려 노력했다.결산을 할 때 그는 심유진의 앞에 나섰다.“걱정마요. 또 얻어먹진 않을 테니까요.”여형민은 그녀를 웃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았다.마음을 들키자 심유진은 난처했다. 억지로 웃으면서 얘기했다.”고마워요.”어린 애는 무한한 정력이 있는 것 같았다.별이는 각종 놀이기구 중간에서 뛰어다녔고 심유진은 어린애 뒤를 쫓아다니는 것만 해도 숨이 찼다.체력이 그녀보다 좋은 여형민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그녀는 살아서 놀이공원을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별이가 회전목마를 탈 때 여형민은 심유진과 같이 밖에서 기다렸다.오늘 하루동안 처음으로 단독으로 같이 있게 된 순간이었다.여형민은 목마를 타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는 이마를 찌푸리고 귀찮은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오랜 시간동안 느낀 고초를 호소하려거든 다른 사람을 찾아가세요.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이라면.”심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귀찮은듯한 소리를 냈다.”저랑 허태준 씨는 이미 이혼을 했어요. 그 사람이 어떻든 저랑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한순간 여형민은 별이의 신분을 밝히고 싶었다.하지만 허태준은 명령했기에 그는 결국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네.”하늘은 어두워졌다.심유진은 놀이기구로 달아가는 별이를 붙잡으면서 말했다.”늦었으니 돌아가야지.”별이의 정서는 금방 내려앉았다. 하지만 얌전히 대답했다.”네.”여형민은 그들과 같이 출구 쪽으로 갔다. 그리고 여기에 나타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보았다.“여기서 뭐해?”그는 차가운 얼굴을 하고 불쾌하게 물었다.나은희는 두 발짝 다가가 그들의 앞에 섰다.심유진은 첫눈에 그녀를 바로 알아보았다.저번의 만남보다 큰 변화는 없었다. 갈색 펌을 한 머리는 버건디색으로 변했고 가슴까지 늘어져 있었다.장소가 달라 그런지 포멀하게 입지 않았다.하얀색 티에 하이 웨스트 스키니 진은 그녀의 늘씬한 몸매를 자랑했다.“제 남편이 내연녀와 사생아랑 공원을 갔다고 들어서 잡으러 왔다가 이렇게 아는 분을 만나게 되네요.”나은희는 웃으면서 심유진한테 손을 내밀었다.”오랜만이에요. 심유진 씨.”심유진의 주의력은 남편이라는 칭호에 놓였다.벼락에 맞은 것처럼 그녀는 입을 벌리고 놀란 표정으로 나은희와 여형민을 바라보았다.”두분...”나은희는 태연히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맞아요, 저희 결혼했어요.”심유진은 놀라서 욕을 할 뻔했다.너무 충격적인 소식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몰랐다.나은희는 손을 도로 가져가고 의심쩍게 여형민을 바라보았다.”참 실망이다.”여형민의 안경 뒤의 눈은 차가운 빛을 뿜고 있었다.“너도 마찬가지야.”그는 말했다.나은희 얼굴의 미소는 이 초 동안 멈췄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심유진한테 물었다.”이렇게 만나게 된
심유진이 아무리 타일러도 별이는 미국으로 가지 않겠다고 했다.심유진은 하은설과 오랫동안 상의를 한 끝에 별이를 남아있으라고 했다.하은설은 별이의 퇴학수속을 밟으러 갔고 심유진 쪽은 처리해야 할 문제가 더 많았다. 경주의 교육자원은 희박하다. 공립 유치원의 명액은 한정되어 있었고 호적에 관해 엄격한 요구가 있었다.심유진은 이미 영주권을 따냈지만 이민을 하지 않았기에 호적은 아직 경주에 있다.하지만 별이는 미국에서 태어났기에 바로 미국국적으로 올려 뒀다. 하지만 이로 인해 별이는 공립 유치원을 다닐 수 없게 되었다.심유진은 부근에 유명한 사립유치원을 알아보려 했다. 특히 국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유치원이라면 별이가 적응하는데 더 쉬울 것 같았다.심유진은 휴식시간을 이용해 몇 곳을 돌아다녀보고 최종 부자와 연예인들도 아이를 맡긴다는 유치원으로 결정했다. 일 년의 학비만 해도 놀랍도록 높은 곳이었지만.별이는 유치원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입학하기 전날밤에는 흥분이 되어서 12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유치원은 호텔과 차로 반시간정도 거리에 있었다. 심유진은 출근을 해야 하기에 아침 일찍 별이를 선생님한테 데려다주었다.그들은 첫번째로 도착했다. 개원 시간보다 이십분이나 빨랐다.유치원 선생님들은 친절했고 별이도 낯을 가리지 않아 금세 모두와 친해지기 시작했다.심유진은 별이가 적응하는 것을 보자 안심하고 떠났다.**하교시간은 오후 4시였다. 학생들은 늦어서 7시까지 있을 수 있었다. 사업이 바쁜 학부모들을 배려하여 내린 규칙이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유진은 지각을 했다.유치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7시반이 넘었다. 유치원 안은 어두웠고 교실에도 불이 없었다.별이는 담임선생님과 경비실에서 기다렸다.심유진은 연신 담임선생님한테 사과를 하고 다시는 늦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다.담임선생님은 화를 내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친절하게 별이의 표현을 상세하게 설명해줬다.심유진은 마음이 놓였다. 별이가 배척을 당하지도 않고 이 무리에 잘 스며들
별이는 말을 잘 들었다. 불필요할 때에는 여자애들의 손도 잡지 않았다.그래서 여자아이의 강제적인 뽀뽀를 받은 별이는 어쩔 줄을 몰랐다.어린아이들의 일은 어른들이 봤을 때 그리 큰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심지어 귀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심유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베이비라는 아이가 악한 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 아이의 성격으로 보아 아마 집에서 예쁨만 받고 자랐기에 이런 데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 같다.“베이비가 뽀뽀한 것은 너를 좋아하기 때문이야. 너무 화를 내진 말았으면 좋겠어~”유진은 인내심이 있게 별이를 교육했다.”하지만 앞으로 또 뽀뽀를 하면 꼭 잘 얘기해야 돼. 여자아이는 쉽게 남자아이한테 뽀뽀를 하면 안된다고~”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네.”**이튿날.심유진은 겨우 7시가 되기전에 별이를 데리러 갔다.별이는 심유진을 보자마자 품에 안기며 억울한듯 입을 삐죽거리며 눈물을 흘렸다.“무슨 일이니?”심유진은 쪼그려 앉아 그의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며 급히 물었다.별이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을 하지 않았다. 뒤에서 따라오던 담임선생님이 미안한듯 입을 열었다.”별이가 오늘 어떤 여자아이한테 물렸습니다... 그 아이한테 교육을 했지만...”선생님은 입을 오므리고 눈을 피했다. 난처한 기색이었다.심유진의 첫 반응은 이랬다.”그 여자아이가 혹시 반의 베이비인가요?”그 애가 아니고서야 심유진은 다른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담임선생님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별이가 어제 그 아이에 대해 말해줬습니다.”심유진은 디테일에 관해 얘기하지 않았다.“에휴!”담임선생님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이 아이가 반에서...”선생님은 말을 흐렸다.”좀 이기적이예요. 집에서 오냐오냐하면서 키웠고 어머님 성격도... 좀 애기가 계속 친구들을 괴롭혀요. 장난은 아무것도 아니고 반에 남자아이들을 땅에 눕히고 때리기가 일쑤예요. 부모님들도 원성이 자자하지만 그 아이의 집안 사람들한
심유진은 베이비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효과가 있든 없든 대방이 자신의 불만을 알게 해야 했다.“뚜”가 한참 울려서야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그쪽에서는 짜증이 나는 말투였다. 날카로운 목소리는 어딘가 귀에 익었다.심유진은 어디에서 이 목소리를 들었는지 생각이 안 났다.“여보세요. 혹시 베이비의 어머니신가요?”심유진은 예의 있게 물었다.그쪽에서는 쾅 하고 전화를 끊었다.심유진이 또 전화를 걸었을 때는 이미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신호로 바뀌었다. 아마 그쪽에서 번호를 블로킹한 것 같았다.직업특성상 심유진은 말도 안되는 사람을 수도 없이 만나와 웬만해서는 마음이 평온했다.어쩌다 이렇게 열을 받게 하는 사람을 만나 핸드폰을 박살내고 싶었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우고 온밤을 새웠다. 이튿날 업무를 반 넘게 하고 출근 해서도 고군분투를 해서 오후에 휴가를 맡아 호텔을 일찍 나왔다.유치원 하교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다.초, 중반 아이들이 나오고 나서 고급반 차례가 되었다.학부모들은 질서 있게 안으로 걸어갔다. 사람이 많아 붐볐지만 혼잡하지는 않았다.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심유진의 팔을 잡아당겼다.“유진이?”익숙한 목소리는 심유진의 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하지만 몸은 점점 굳어져 갔다.심유진의 가슴은 빠르게 뛰었다. 귓가에는 우뢰 같은 소리가 맴돌았다. 그래서 다른 소리는 들리지가 않았다.머리는 공백이 되어갔다. 심유진은 천천히 목을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관리를 잘한 탓인지 그 얼굴은 오년 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주름도 많아지지 않았다.“어...”심유진은 금세 고쳐 불렀다.”아주머니.”허아주머니의 놀란 표정은 점점 슬픔으로 변했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유진아...”허 아주머니는 심유진의 팔을 꼭 잡았다.그들의 행동은 지나가던 학부모들로 하여금 돌아보게 만들었다. 호기심에 찬 눈빛은 심유진을 금세 정신을 차리게 했다.“아주머니, 무슨 일이 있으면 나가서 얘기 해요! 애를 데리러 가야 해
그래서 반 아이들의 학부모가 그렇게 베이비네 집안을 무서워했구나!그래서 엊저녁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귀에 익었구나!양갈래 머리를 하고 통통한 여자아이가 이쪽으로 달려와 쿵 하고 허 아주머니의 품에 안겼다.“할머니!”아이는 예쁘게 불렀다. 큰 눈은 웃음때문에 실 같았다. 활발하고 귀여워 보였으며 담임선생님과 별이의 말처럼 남을 괴롭히는 아이 같지는 않았다.허 아주머니도 웃었다. 그제야 얼굴에 몇 가닥의 옅은 주름이 보였다. 허 아주머니는 자애롭게 베이비를 보았고 베이비의 머리를 만지고 손을 잡았다.담임선생님은 별이를 불러와 심유진한테 보냈다.허아주머니는 별이를 보고 유감스럽게 또 위안스럽게 말했다.”닮았네. 너무 이쁘다.”심유진은 예의 있게 웃고 별이한테 말했다.”할머니한테 ‘감사합니다’해야지.”별이는 중복했다.”할머니, 감사합니다!”“그래.”허 아주머니의 웃음주름은 더 짙어졌다. 별이를 보는 눈빛도 더 복잡해졌다.아마 자신의 할머니가 다른 아이한테 집중을 해서 그런지 베이비 얼굴의 웃음기는 사라졌다. 다섯 살짜리 아이한테는 나타나지 말아야 할 독함이 있었다. 그 악독한 눈빛은 심유진도 몸을 떨게 했다. “할머니!”베이비는 애교를 떨며 허 아주머니의 손을 흔들었다. 입을 삐죽하며 귀여운 모양을 하였다--아까 모든 것은 심유진의 착각인 것 같았다.허아주머니는 고개를 숙여 베이비를 보면서 부드럽게 물었다.”베이비, 왜?”베이비는 허 아주머니를 잡아당기며 밖으로 향했다.”배고파요. 빨리 집에 가요!”“잠깐만요!”심유진은 그들을 불러 세웠다.허 아주머니는 돌아봤다.”응?”눈에는 기대가 충만했다.심유진은 별이를 앞으로 내세우고 말했다.”아주머니, 한 가지 말씀 드릴 게 있어요.”심유진은 별이의 팔을 들었다.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자국을 사람들한테 보였다.”어제 베이비가 문 거예요. 별이한테 물어봤더니 별이가 베이비를 뽀뽀하지 못하게 했다고 베이비가 화나서 물었다고 하네요.”담임선생님도 거들어줬다.
어제 베이비가 별이를 문 행동은 별이한테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래서 베이비가 별이의 손을 다쳤을 때 별이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나 흠칫했다.심유진은 가슴이 아팠다.별이는 늘 밝고 주위의 모든 사람과 잘 어울렸다. 이렇게 누군가를 배척하는 현상은 드물었다.그는 작게 고개를 두 번 흔들었다.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심유진을 바라보았다.심유진은 별이의 공포를 헤아리고 몸으로 막아 나섰다.“아주머니.”심유진은 허아주머니를 마주보고 말했다.”베이비가 사과를 했으니 그만하죠.”허 아주머니는 부끄러워했다.”미안하다. 유진아. 베이비가 유치원에서 이런 일을 벌일 줄은 몰랐다.”심유진은 괜찮다라는 세 글자를 말하지 못했다. 별이의 상처를 생각하면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심유진은 대답하지 못했다.옆에 학부모 한명이 애를 끌고 와 허 아주머니한테 고발을 했다.”사리에 밝으신 분이니 얘기 좀 할게요. 그쪽 집안 애를 좀 잘 보셔야겠네요! 매일 유치원에서 다른 애들을 괴롭히고 우리 애도 그 집 애한테 몇 번을 맞았는데요! 애 엄마랑 얘기했더니 애 엄마가 오히려 저희가 거짓말을 한다고 하고 애를 교육하지도 않아요! 반에 애들 몇명이나 그 집 아이 때문에 전학을 갔어요. 믿지 않으시다면 유 선생님한테 물어보세요!”허 아주머니는 담임선생님을 돌아보았다. 담임선생님도 난처하게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베이비는 위기를 느꼈는지 허아주머니 다리를 안고 급하게 말했다.”할머니! 나 집에 갈래! 집!”허 아주머니는 담임선생님과 말했다.”내일 찾아뵐게요.”그리고 심유진을 깊게 바라본 후 베이비를 데리고 떠났다.그들이 나가자 다른 학부모도 몰려왔다.아까 말을 한 학부모가 심유진한테 물었다.”그 집 아이도 허아리한테 괴롭힘을 당했어요?”심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학부모들은 입을 삐죽했다. 그리고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우리집 애도 그 애한테 괴롭힘을 당했어요. 물린 건 그나마 다행이지 언젠가 얼굴이 부어서 왔더라구요. 그러면서도 그 애한테 얻어맞은 거라고 말도 못하
그 베이비는 쉽지 않은 아이다.다섯 살짜리 애가 그렇게 생각이 많을 리 없겠지만.허태준과 정소월의 딸이니 그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면 생각이 많은 것도 정상적인 거겠지?심유진은 베이비가 생각만 많은 아이이기를 바랐다. 마음이 어두운 아이 말고.**심유진은 간만에 일찍 돌아와 아래에서 여형민을 만났다.그들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게 아니기에 여기에 나타나지 말았어야 했다.여형민은 말했다.”산책하러.”심유진은 믿지 않았다!별이는 여형민을 보자 반갑게 불렀다.”아저씨.”목소리는 밝고 웃음은 찬란했다.심유진은 별이를 데리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려는 충동을 막았다.여형민은 물었다.”별이가 근처의 유치원을 다닌다고? 미국으로 안 보내려고요?”“애 엄마가 돌볼 틈이 없어서요. 여기 사립유치원도 더 오래 맡길 수 있다고 들어서 그냥 남아라고 했어요. 기숙에 보낼까 생각했지만 적응을 하지 못할까ㅜ봐 매일 데리러 다녀요.”심유진은 미리 생각해둔 핑계를 댔다.여형민은 의심을 하지 않은 척하고 대답했다.그는 또 별이한테 말을 걸었다.”별아. 유치원은 다닐 만해? 다른 친구들과 잘 지내?”“네.”별이는 대답했다.”친구들과 다 잘 지내는데, 한 친구는...”팔을 들어 여형민한테 보였다.”어제 물린 거예요. 너무 아팠어요!”여형민의 눈은 작아졌다. 얼굴의 미소도 옅어졌다.“누구한테 물렸어?”그는 허리를 낮춰 별이와 같은 눈높이에 멈췄다.“베이비요!”별이는 머뭇거림이 없이 그 이름을 댔다.“베이비?”여형민은 허태준의 제일 친한 친구이니 베이비에 대해 잘 알았다. 그는 머리를 살짝 들어 심유진한테 질문했다.”허아리?”심유진은 다른 학부모들이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른 것이 기억났다.숨길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대답했다.”네, 맞아요.”여형민의 얼굴은 굳어졌다.“태준이의 부모님한테 얘기할게요.”“아니에요.”심유진은 말렸다.”오늘 유치원에서 아주머니를 만나서 다 얘기했어요.”여형민은 머리를 끄덕이고 별이를 달랬다.”별이는 무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