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영은은 역시나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심유진은 속으로 웃었다.사영은은 황급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 사촌언니 딸이 맞아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옆에서 키우다보니 연희랑 같이 저를 ‘엄마’라고 부르더라구요.” 그리고는 심유진한테 눈치를 줬다. 심유진은 이 거짓말을 하기 싫었다. 그래서 옆에서 차가운 얼굴을 하고 서있었다. 심연희가 부득이 나서서 웃으면서 얘기했다. “언니가 저한테는 친언니나 마찬가지예요! 엄마아빠도 친딸처럼 대해줬구요. 저희 한가족은 사이가 아주 좋답니다!” 정현철은 그들의 설명이 납득이 갔다. 하지만 설명을 들은후 정연우가 심유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유진아 소개시켜주마.” 정현철은 자신의 품에 안긴 여자를 가리키며 소개를 했다. “이분은 유비란다. 내 아내지.” 심유진은 유비의 나이를 모르는척 하고는 공경스럽게 인사했다. “유비아줌마 안녕하세요.” 그리고는 아첨을 하기 시작했다. “유비아줌마는 어떤 화장품을 쓰시나요. 피부가 너무 좋아요. 삼십대처럼 보이는걸요!” 유비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정현철의 표정도 보기가 안좋아졌다.심유진이 원하는 바이다.맞선을 보는 자리였다면 이런 아첨때문에 잘 안됐을 것이다.심연희는 심유진의 팔소매를 잡아당기고는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유비아줌마는 올해 겨우 스물셋이야...언니랑 나보다도 어려...” 심유진은 경악스레 입을 틀어막고는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몰랐어요...” 유비는 화나서 얼굴을 돌렸다. 그녀를 한눈이라도 더 보기 싫었다. 정현철은 아량을 베풀듯이 말했다. “아니야. 괜찮다. 모르니 그럴수가 있겠지!” 하지만 그 미소는 억지스러웠다. 그는 한켠에 서있는 정연우를 끌어당겼다. “이놈은 내 아들 정연우다.” 정연우는 심유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심아가씨 안녕하세요.”목소리에 온도가 있다면 그의 목소리는 딱 적절한 20도일 것이다. 따뜻했고 차지도 덥지도 않아 그가 사
정현우는 웃었다. 녹두알같은 작은 눈은 없어진듯 했다. 두볼의 살은 떨려서 보기에 무서웠다.심유진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정현우가 남겨준 첫인상이 너무 나빠 메쓰꺼움을 참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만나뵙게 되어서 반가워요.” 그는 억지로 웃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하지만 손을 도로 빼려고 할때 정현우는 힘껏 그녀의 손을 잡았고 염치 없이 어루만졌다.그 손바닥안의 끈적한 땀이 전부 그녀의 손에 묻었다. 심유진은 온몸에 닭살이 돋았지만 사람들 앞이라 뭐라하지 못했다.다행히 정현우한테 일말의 염치가 있어 그녀를 너무오래 잡아두진 않았다. 다만 옹졸하게 웃고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심유진은 주먹을 쥐고는 그와 떨어진 곳으로 물러났다.삼층 객실에는 의자가 없어 서서 얘기하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심유진과 심연희는 사영은을 부축하여 침대에서 내려오게 한 후 정현철 일가와 일층 거실에 앉았다. 심유진은 제일 마지막에 자리에 앉았다. 정연우의 옆자리밖에 빈자리가 없어 부득이 그리로 앉았다. 정현우는 이를 보고 정연우와 자리를 옮기려 하였으나 일어서기 바쁘게 정현철의 눈빛 하나로 제재당했다. 정현우는 성을 내며 도로 앉았다. 그 한쌍의 눈은 자꾸만 심유진에게로 갔다. 그의 적나라한 눈빛은 심유진더러 가시방석에 앉은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그녀는 갑자기 안좋은 예감이 들었다. 혹시 사영은이 그녀를 위해 찾은 남편감이 정연우가 아닌 정현우가 아닐까? 하지만...정현우는 정현철의 조카라서 그의 재산을 물려밭지 못할텐데. 또한 정현우의 조급한 모습을 보니 그리 대단한 사람은 같지 않아 보였다. 사영은이 이렇게까지 해서 그녀를 속여 여기로 데려왔는데 심씨일가에 한푼의 도움도 안되는 사람에게 시집보낼리는 없었다. 심유진의 의혹은 쌓여만 갔고 머리는 점점 아파졌다.정연우는 쇼파에 등을 붙이고 편하게 앉았으나 어느순간부터 단정하게 앉아 정현우의 대담한 시선을 막았다. “심아가씨는 현
”좋아요.” 심유진은 태연스레 받아들였다. “먼저 밖을 둘러볼게요.” 오후의 햇빛은 강렬하여 따뜻하게 쏟아내렸다. 한겨울의 차가움을 녹여주는 해빛이었다. 심유진은 눈을 반쯤 감으며 정연우와 조금 걸었다. 그리고는 입을 막으며 하품을 했다. “피곤한가요?” 정연우는 물었다. “조금요.” 심유진은 눈가에 흘러나온 눈물을 손끝으로 닦아내고는 길옆 벤치에 비스듬히 앉았다. 먼곳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 “정원은 보시는것처럼 크지 않아요. 둘러보시다가 같이 돌아가죠.”정연우는 그의 앞에 다가섰다. 그녀의 몸에 내려앉는 햇살을 막아 그녀는 음영에 놓이게 되었다.“같이 가지 않으실건가요?” 그는 조금 놀랐다. 그녀의 집안이랑 집밖에서의 태도가 이렇게나 차이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정도련님.” 심유진은 입에 미소를 살짝 머금었다. 하지만 입가의 미소는 눈안의 차가움에 비할바는 안됐다. “저는 심훈이 대구시에서 납치해서 여기 오게 됐고 그쪽이랑 맞선을 보게 된겁니다. 저는 대구에서 이미 한번 결혼을 했고 지금 이차 혼례를 준비하는 중입니다. 또한 저는 사영은의 사촌언니 딸이 아니라 사영은이 어디서 온 사람인지도 모르는 남자랑 낳은 사생아입니다. 정도련님, 당신이랑 당신 아버님은 속고 계시는겁니다. 심씨일가와 어떤 거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여기에서 그친다면 늦지는 않을겁니다.” 그녀는 사영은의 목적이 이게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힘에 닿는데까지 이 계획을파토낼 예정이다. 정연우는 타격을 심하게 받은듯 했다. 그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이런 얘기는 처음 듣네요.” 그는 웅얼거렸다. “그만큼 배우는거지요.” 그녀는 타일렀다. “앞으로는 심씨일가와 가까이 하지 마세요. 특히 거래는 더 하지 마시구요. 아니면 얼마나 당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연우는 그의 옆에 앉아 호기심에 찬 말투로 물었다. “이걸 저한테 왜알려주는거죠? 심씨일가가 그쪽한테
심훈이 어느 방송국의 새해활동에 참가하기 위해 멀리 떠나 내일에야 돌아오기에 사영은은 정씨네 네식구를 심씨저택에 하루밤 묵게 하였다. 그들이 묵는 곳은 당연히 삼층에 있는 객실이었고 정연우의 방은 일부러 심유진의 맞은켠에 안배되었다. 저녁에 잠들기 전 하인은 손님들에게 심유진을 포함하여 따뜻한 우유 한잔과 과일샐러드 한접시를 올려드렸다. 심유진은 이미 이빨을 닦은터라 음식들은 모두 그대로 책상위에 뒀다.그녀는 정연우의 일침을 상기하여 방문을 잠구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정연우가 아무 이유없이 그런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을 잠그라고 하였으니 저녁에 누군가가 그녀의 방에 들어온다는 뜻이 아닐까?이렇게 생각하자 심유진은 자신의 생각에 놀랐다.그녀는 귀를 세우고 숨을 참으며 문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잘 살폈다. 새벽두시쯤 되었을때 심유진은 일부러 침대옆 알람을 봤다. 누군가 그녀의 방문을두드렸다.소리는 그녀를 깨우기 싫은듯 작았다.심유진은 입술을 깨물고 답을 하지 않았다.그사람은 한참을 두드리고는 멈췄다. 이어서 문잡이가 돌려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생각처럼 문이 열려지지 않자 그사람은 낮은 소리로 욕을 했다. “씨발”.심유진은 그게 정현우의 목소리라는것을 알아챘다.그녀 마음속의 의혹은 커져만 갔다.정연우는 어떻게 정현우가 저녁에 그녀의 방안에 들어올것을 알았을까? 이것도 심씨와 정씨 두가문의 계획중의 하나인가? 하지만 왜? 그들은 자기를 정연우한테 시집보내려고 하는것이 아닌가?“왜 그러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정현철이었다. “문이 잠겼어요.” 정현우는 원망스레 대답했다.“문이 왜 잠겨있겠어요?” 사영은은 경악했다. “그애는 어릴때부터 문을 안잠그고 자는데요.”그녀의 방앞에 모이는 사람이 많을수록 심유진은 공포스럽고 비참했다.“사람을 불러 열쇠를 가져오라고 할게요.” 사영은이 얘기했다.심유진은 더 가만히 있을수가 없었다.이대로 당하느니 나가서 맞서는
그녀는 문을 닫고 다시금 잠궜다. 문밖에 두사람의 발걸음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하지만 내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금방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심유진은 뜬눈으로 밤을 샜다.다시 잠들수가 없었다.그사람들은 다시 오지 않았다.아침은 여전히 하인이 방까지 가져다줬다.심유진이 문을 닫으려고 할 때 맞은편에서 정연우가 마침 나오고 있었다.그는 그녀 손안에 든 접시를 보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먹지마.”어제밤 일을 겪고 나니 심유진이 정연우에 대한 믿음은 이 집안 모든 사람을 초과했다. 그녀는 죽과 만두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어제 저녁처럼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삼십분 정도가 지나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언니, 안에 있어?” 이번에는 정현우가 아닌 심연희였다.심유진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심연희는 문잡이를 돌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미리 준비한 열쇠를 열쇠구멍에 들이밀었다.그녀가 방안에 들어서자 마자 눈안에 들어온것은 팔짱을 끼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심유진이었다.심연희는 깜짝 놀랐다. 손안에 열쇠는 ‘찰랑’ 하고 땅에 떨어졌다.“언,언니, 방안에 있으면서 왜 아무 소리도 안내?” 그녀는 웃으면서 탓했다.“잠이 들었는데 너때문에 깼어. 문을 열어주려는데 니가 들어왔어.” 심유진은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주어 주머니에 넣었다. “이게 내 방의 열쇠지? 내껀 없어졌는데 마침 이걸 내가 가지면 되겠다.”심연희는 입을 열었지만 이내 어쩔수 없이 얘기했다. “그래요.”“볼일이 더 있어?” 심유진은 물었다.“아!” 심연희는 방금 생각난듯 말했다. “아빠가 돌아왔어. 지금 모두들 아래 거실에 있거든. 나보고 올라와서 언니랑 같이 내려오래.”“됐어.” 심유진은 거절했다. “방금 아침을 먹었는데 웬지 모르게 피곤해. 좀더 자고싶어.”심연희는 어제처럼 격하게 말리지 않고 기쁜듯 웃었다. “언니가 졸리다니 잘 쉬어. 아빠도 이해할거야.” 그는 다정하게 얘기했다. “아
거실의 분위기는 심유진때문에 더 어색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얘기를 하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아까처럼 앉아만 있지는 않았다.심유진은 한바퀴 둘러보았다. 정연우를 빼고는 모두들 다 있었다.그녀는 묻지 않았다.드디어 점심을 먹을때가 왔다.사영은 심유진에게 분부했다. “유진아 연우가 오전에 불편해서 방안에서 쉰다고 하니 내려와서 밥먹으라고 얘기해 주려무나.”심유진은 혼자 정연우를 만나는것쯤은 할수 있었다.“네.” 그녀는 바로 계단을 올라갔다.정연우의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녀가 두번을 두드리자 안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심유진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방안은 불을 켜지 않고 커튼도 열지 않아 칠흙같이 어두웠다.심유진이 이 어두운 환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큰힘이 그녀를 끌여당겨 침대에 던졌다.등은 부드러운 침대에 부딪혔다. 그녀는 무서운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 “아!”누군가가 인차 그녀위에 올라타 그녀의 옷을 세게 찢었다.“정연우 너 지금 뭐하는거야?!” 심유진은 무의식적으로 밀어내고 그를 때렸다. 놀라움때문에 목소리마저 나갔다.심연우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얘기했다. “미안해.”심유진은 그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 머리위의 등불이 켜졌다.“연우오빠, 우리 언니가...아!”심연희는 문앞에 서서 두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소리질렀다.그의 소리는 재빨리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이끌었다.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한무리의 사람들이 정연우 방문앞을 에워쌌다.심연희가 도착했을때 정연우는 이미 심유진의 위에서 내려왔다. 심유진은 재빨리 이불로 자기몸을 감싸고 침대머리에 움추려 있었다."연희야 왜그러니?” 사영은이 긴장해하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길래?” 그녀가 방안을 들여다 보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침대위의 두사람을 가리키고는 얘기했다.”너희...너희둘...”정현철이 제일 앞으로 나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엄격하게 정연우한테 물었다. “연우, 솔직
사람들은 다 나갔다. 방문도 닫혀있었다. 방안에는 심유진과 정연우 둘만 남았다.정연우는 또한번 말했다. "미안해."심유진은 아무 표정없이 풀어헤쳐진 옷을 잘 입고 침대에서 내려왔다."나도 어쩔수가 없었어. 미안해." 정연우는 혼자 계속 얘기했다. "내가 이러지 않으면...나도 정씨집안에서 잘 지낼수 없을거야."심유진은 발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그는 초점을 잃은채 문을 바라보면서 비웃듯이 웃었다. "사과 하지 않아도 돼. 어쩔수 없었다는걸 나도 이해해."그는 정연우를 탓하지 않는다.천진하고 타인을 너무 쉽게 믿은 자신을 탓할 뿐이다.정연우는 오늘 그녀에게 뜻깊은 수업을 해주었다. 그녀는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심유진의 셔츠단추는 정연우때문에 두개밖에 남지 않았다. 아예 못입게 되었다.그녀는 방으로 돌아가 후드로 갈아입고 심훈의 분부대로 그의 서재로 갔다.심훈 외 사영은, 정현철과 정현우도 거기에 있었다.사영은은 여전히 분노와 부끄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심훈과 정현철은 진정되어 보였다.정연우는 고개를 숙이고 정현철 옆에 앉아있었다. 두손은 무릎위에 놓여져 있었고 세게 주먹을 쥐고 있었다."심유진, 정연우와 정아저씨한테 사과해." 심훈이 얘기했다.심유진은 곧게 섰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심아저씨가 반대로 얘기한거 아닌가요?" 그는 차갑게 웃었다. "오늘일은 제가 사과받아야 하는게 아닌가요?""이 천한것!" 사영은은 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심유진의 한마디때문에 멈췄다. "지금은 정신이 나나 보네요. 전혀 암 말기인 환자처럼 보이지가 않는걸요."그는 의자 손잡이를 세게 쥐였다. 손등은 푸른 힘줄이 튀어나왔다."은혜도 모르는 것이! 너 같은 걸 이십몇년이나 키우다니!""십칠년이죠." 심유진은 바로 잡았다. "저 나이 열일곱에 대구로 대학을 다녔고 그 이후 생활비는 제가 아르바이트 하면서 벌었기 때문에 저를 키우시진 않으셨죠.""그래도 너를 십칠년이나 키웠어! 이게 너의 보
서재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는 조금 난감한 기색을 내보였다. 사실 그 정도 돈은 정현철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영화 한 편에 투자하는 돈의 몇십분의 일 정도밖에 안 되는 금액이었기에 쉽게 내놓을 수 있을 만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는 심유진을 믿을 수 없었다. 정현철은 심유진이 많이 단단해졌다는 걸 느꼈다. 심훈 부부가 키워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무슨 일이나 가리지 않고 다 하던 그 멍청하리만큼 착한 심유진은 이제 없었다. 그래서 10억을 줘도 아무 이익도 못 볼 가능성이 클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여자에게 자신의 그 멍청한 아들을 장가보내면 이제 아들의 앞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정현철은 심유진과 협상을 해보려고 했다.“아니면 먼저 2억을 받고 나머지는 혼인신고를 한 다음에 받는 건 어떤가?”2억 정도는 손해를 봐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심유진에게 주는 보상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심유진이 단호하게 거절했다.“싫어요.”그녀는 이미 정현철이 뭘 걱정하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물러설 수 없었다.“절 그렇게 믿지 않으시는 거라면 저도 믿음이 안 가죠. 혼인신고를 마친 후 나머지 돈을 안 주실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그쪽 집안사람이 되면 이모랑 삼촌도 더는 제 편에 서주지 않으실 텐데요.”심유진은 일부러 이모라는 단어에 힘을 줘서 말했다. 사영은의 표정이 어두웠다.“그렇게 성의가 없으신 거라면 더 이상 얘기할 필요도 없겠네요.”심유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고 하자 정현철이 다급히 그녀를 불러 세웠다.“그쪽 이모랑 한번 상의해 보도록 하지.”“그러세요, 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연우야, 같이 나가봐.”정현철이 정연우에게 말했다. 심유진은 여전히 정연우를 아는 체도 하지 않으며 아무 말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정연우가 다급히 다가와 그녀 앞에 섰다.“정말 저한테 시집올 거예요?”“아니면요? 다른 선택지가 있나요 지금?”심유진이 차갑게 웃었다.“이게 당신이 원하던 거 아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