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우는 웃었다. 녹두알같은 작은 눈은 없어진듯 했다. 두볼의 살은 떨려서 보기에 무서웠다.심유진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정현우가 남겨준 첫인상이 너무 나빠 메쓰꺼움을 참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만나뵙게 되어서 반가워요.” 그는 억지로 웃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하지만 손을 도로 빼려고 할때 정현우는 힘껏 그녀의 손을 잡았고 염치 없이 어루만졌다.그 손바닥안의 끈적한 땀이 전부 그녀의 손에 묻었다. 심유진은 온몸에 닭살이 돋았지만 사람들 앞이라 뭐라하지 못했다.다행히 정현우한테 일말의 염치가 있어 그녀를 너무오래 잡아두진 않았다. 다만 옹졸하게 웃고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심유진은 주먹을 쥐고는 그와 떨어진 곳으로 물러났다.삼층 객실에는 의자가 없어 서서 얘기하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심유진과 심연희는 사영은을 부축하여 침대에서 내려오게 한 후 정현철 일가와 일층 거실에 앉았다. 심유진은 제일 마지막에 자리에 앉았다. 정연우의 옆자리밖에 빈자리가 없어 부득이 그리로 앉았다. 정현우는 이를 보고 정연우와 자리를 옮기려 하였으나 일어서기 바쁘게 정현철의 눈빛 하나로 제재당했다. 정현우는 성을 내며 도로 앉았다. 그 한쌍의 눈은 자꾸만 심유진에게로 갔다. 그의 적나라한 눈빛은 심유진더러 가시방석에 앉은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그녀는 갑자기 안좋은 예감이 들었다. 혹시 사영은이 그녀를 위해 찾은 남편감이 정연우가 아닌 정현우가 아닐까? 하지만...정현우는 정현철의 조카라서 그의 재산을 물려밭지 못할텐데. 또한 정현우의 조급한 모습을 보니 그리 대단한 사람은 같지 않아 보였다. 사영은이 이렇게까지 해서 그녀를 속여 여기로 데려왔는데 심씨일가에 한푼의 도움도 안되는 사람에게 시집보낼리는 없었다. 심유진의 의혹은 쌓여만 갔고 머리는 점점 아파졌다.정연우는 쇼파에 등을 붙이고 편하게 앉았으나 어느순간부터 단정하게 앉아 정현우의 대담한 시선을 막았다. “심아가씨는 현
”좋아요.” 심유진은 태연스레 받아들였다. “먼저 밖을 둘러볼게요.” 오후의 햇빛은 강렬하여 따뜻하게 쏟아내렸다. 한겨울의 차가움을 녹여주는 해빛이었다. 심유진은 눈을 반쯤 감으며 정연우와 조금 걸었다. 그리고는 입을 막으며 하품을 했다. “피곤한가요?” 정연우는 물었다. “조금요.” 심유진은 눈가에 흘러나온 눈물을 손끝으로 닦아내고는 길옆 벤치에 비스듬히 앉았다. 먼곳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 “정원은 보시는것처럼 크지 않아요. 둘러보시다가 같이 돌아가죠.”정연우는 그의 앞에 다가섰다. 그녀의 몸에 내려앉는 햇살을 막아 그녀는 음영에 놓이게 되었다.“같이 가지 않으실건가요?” 그는 조금 놀랐다. 그녀의 집안이랑 집밖에서의 태도가 이렇게나 차이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정도련님.” 심유진은 입에 미소를 살짝 머금었다. 하지만 입가의 미소는 눈안의 차가움에 비할바는 안됐다. “저는 심훈이 대구시에서 납치해서 여기 오게 됐고 그쪽이랑 맞선을 보게 된겁니다. 저는 대구에서 이미 한번 결혼을 했고 지금 이차 혼례를 준비하는 중입니다. 또한 저는 사영은의 사촌언니 딸이 아니라 사영은이 어디서 온 사람인지도 모르는 남자랑 낳은 사생아입니다. 정도련님, 당신이랑 당신 아버님은 속고 계시는겁니다. 심씨일가와 어떤 거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여기에서 그친다면 늦지는 않을겁니다.” 그녀는 사영은의 목적이 이게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힘에 닿는데까지 이 계획을파토낼 예정이다. 정연우는 타격을 심하게 받은듯 했다. 그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이런 얘기는 처음 듣네요.” 그는 웅얼거렸다. “그만큼 배우는거지요.” 그녀는 타일렀다. “앞으로는 심씨일가와 가까이 하지 마세요. 특히 거래는 더 하지 마시구요. 아니면 얼마나 당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연우는 그의 옆에 앉아 호기심에 찬 말투로 물었다. “이걸 저한테 왜알려주는거죠? 심씨일가가 그쪽한테
심훈이 어느 방송국의 새해활동에 참가하기 위해 멀리 떠나 내일에야 돌아오기에 사영은은 정씨네 네식구를 심씨저택에 하루밤 묵게 하였다. 그들이 묵는 곳은 당연히 삼층에 있는 객실이었고 정연우의 방은 일부러 심유진의 맞은켠에 안배되었다. 저녁에 잠들기 전 하인은 손님들에게 심유진을 포함하여 따뜻한 우유 한잔과 과일샐러드 한접시를 올려드렸다. 심유진은 이미 이빨을 닦은터라 음식들은 모두 그대로 책상위에 뒀다.그녀는 정연우의 일침을 상기하여 방문을 잠구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정연우가 아무 이유없이 그런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을 잠그라고 하였으니 저녁에 누군가가 그녀의 방에 들어온다는 뜻이 아닐까?이렇게 생각하자 심유진은 자신의 생각에 놀랐다.그녀는 귀를 세우고 숨을 참으며 문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잘 살폈다. 새벽두시쯤 되었을때 심유진은 일부러 침대옆 알람을 봤다. 누군가 그녀의 방문을두드렸다.소리는 그녀를 깨우기 싫은듯 작았다.심유진은 입술을 깨물고 답을 하지 않았다.그사람은 한참을 두드리고는 멈췄다. 이어서 문잡이가 돌려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생각처럼 문이 열려지지 않자 그사람은 낮은 소리로 욕을 했다. “씨발”.심유진은 그게 정현우의 목소리라는것을 알아챘다.그녀 마음속의 의혹은 커져만 갔다.정연우는 어떻게 정현우가 저녁에 그녀의 방안에 들어올것을 알았을까? 이것도 심씨와 정씨 두가문의 계획중의 하나인가? 하지만 왜? 그들은 자기를 정연우한테 시집보내려고 하는것이 아닌가?“왜 그러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정현철이었다. “문이 잠겼어요.” 정현우는 원망스레 대답했다.“문이 왜 잠겨있겠어요?” 사영은은 경악했다. “그애는 어릴때부터 문을 안잠그고 자는데요.”그녀의 방앞에 모이는 사람이 많을수록 심유진은 공포스럽고 비참했다.“사람을 불러 열쇠를 가져오라고 할게요.” 사영은이 얘기했다.심유진은 더 가만히 있을수가 없었다.이대로 당하느니 나가서 맞서는
그녀는 문을 닫고 다시금 잠궜다. 문밖에 두사람의 발걸음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하지만 내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금방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심유진은 뜬눈으로 밤을 샜다.다시 잠들수가 없었다.그사람들은 다시 오지 않았다.아침은 여전히 하인이 방까지 가져다줬다.심유진이 문을 닫으려고 할 때 맞은편에서 정연우가 마침 나오고 있었다.그는 그녀 손안에 든 접시를 보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먹지마.”어제밤 일을 겪고 나니 심유진이 정연우에 대한 믿음은 이 집안 모든 사람을 초과했다. 그녀는 죽과 만두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어제 저녁처럼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삼십분 정도가 지나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언니, 안에 있어?” 이번에는 정현우가 아닌 심연희였다.심유진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심연희는 문잡이를 돌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미리 준비한 열쇠를 열쇠구멍에 들이밀었다.그녀가 방안에 들어서자 마자 눈안에 들어온것은 팔짱을 끼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심유진이었다.심연희는 깜짝 놀랐다. 손안에 열쇠는 ‘찰랑’ 하고 땅에 떨어졌다.“언,언니, 방안에 있으면서 왜 아무 소리도 안내?” 그녀는 웃으면서 탓했다.“잠이 들었는데 너때문에 깼어. 문을 열어주려는데 니가 들어왔어.” 심유진은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주어 주머니에 넣었다. “이게 내 방의 열쇠지? 내껀 없어졌는데 마침 이걸 내가 가지면 되겠다.”심연희는 입을 열었지만 이내 어쩔수 없이 얘기했다. “그래요.”“볼일이 더 있어?” 심유진은 물었다.“아!” 심연희는 방금 생각난듯 말했다. “아빠가 돌아왔어. 지금 모두들 아래 거실에 있거든. 나보고 올라와서 언니랑 같이 내려오래.”“됐어.” 심유진은 거절했다. “방금 아침을 먹었는데 웬지 모르게 피곤해. 좀더 자고싶어.”심연희는 어제처럼 격하게 말리지 않고 기쁜듯 웃었다. “언니가 졸리다니 잘 쉬어. 아빠도 이해할거야.” 그는 다정하게 얘기했다. “아
거실의 분위기는 심유진때문에 더 어색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얘기를 하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아까처럼 앉아만 있지는 않았다.심유진은 한바퀴 둘러보았다. 정연우를 빼고는 모두들 다 있었다.그녀는 묻지 않았다.드디어 점심을 먹을때가 왔다.사영은 심유진에게 분부했다. “유진아 연우가 오전에 불편해서 방안에서 쉰다고 하니 내려와서 밥먹으라고 얘기해 주려무나.”심유진은 혼자 정연우를 만나는것쯤은 할수 있었다.“네.” 그녀는 바로 계단을 올라갔다.정연우의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녀가 두번을 두드리자 안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심유진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방안은 불을 켜지 않고 커튼도 열지 않아 칠흙같이 어두웠다.심유진이 이 어두운 환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큰힘이 그녀를 끌여당겨 침대에 던졌다.등은 부드러운 침대에 부딪혔다. 그녀는 무서운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 “아!”누군가가 인차 그녀위에 올라타 그녀의 옷을 세게 찢었다.“정연우 너 지금 뭐하는거야?!” 심유진은 무의식적으로 밀어내고 그를 때렸다. 놀라움때문에 목소리마저 나갔다.심연우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얘기했다. “미안해.”심유진은 그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 머리위의 등불이 켜졌다.“연우오빠, 우리 언니가...아!”심연희는 문앞에 서서 두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소리질렀다.그의 소리는 재빨리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이끌었다.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한무리의 사람들이 정연우 방문앞을 에워쌌다.심연희가 도착했을때 정연우는 이미 심유진의 위에서 내려왔다. 심유진은 재빨리 이불로 자기몸을 감싸고 침대머리에 움추려 있었다."연희야 왜그러니?” 사영은이 긴장해하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길래?” 그녀가 방안을 들여다 보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침대위의 두사람을 가리키고는 얘기했다.”너희...너희둘...”정현철이 제일 앞으로 나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엄격하게 정연우한테 물었다. “연우, 솔직
사람들은 다 나갔다. 방문도 닫혀있었다. 방안에는 심유진과 정연우 둘만 남았다.정연우는 또한번 말했다. "미안해."심유진은 아무 표정없이 풀어헤쳐진 옷을 잘 입고 침대에서 내려왔다."나도 어쩔수가 없었어. 미안해." 정연우는 혼자 계속 얘기했다. "내가 이러지 않으면...나도 정씨집안에서 잘 지낼수 없을거야."심유진은 발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그는 초점을 잃은채 문을 바라보면서 비웃듯이 웃었다. "사과 하지 않아도 돼. 어쩔수 없었다는걸 나도 이해해."그는 정연우를 탓하지 않는다.천진하고 타인을 너무 쉽게 믿은 자신을 탓할 뿐이다.정연우는 오늘 그녀에게 뜻깊은 수업을 해주었다. 그녀는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심유진의 셔츠단추는 정연우때문에 두개밖에 남지 않았다. 아예 못입게 되었다.그녀는 방으로 돌아가 후드로 갈아입고 심훈의 분부대로 그의 서재로 갔다.심훈 외 사영은, 정현철과 정현우도 거기에 있었다.사영은은 여전히 분노와 부끄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심훈과 정현철은 진정되어 보였다.정연우는 고개를 숙이고 정현철 옆에 앉아있었다. 두손은 무릎위에 놓여져 있었고 세게 주먹을 쥐고 있었다."심유진, 정연우와 정아저씨한테 사과해." 심훈이 얘기했다.심유진은 곧게 섰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심아저씨가 반대로 얘기한거 아닌가요?" 그는 차갑게 웃었다. "오늘일은 제가 사과받아야 하는게 아닌가요?""이 천한것!" 사영은은 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심유진의 한마디때문에 멈췄다. "지금은 정신이 나나 보네요. 전혀 암 말기인 환자처럼 보이지가 않는걸요."그는 의자 손잡이를 세게 쥐였다. 손등은 푸른 힘줄이 튀어나왔다."은혜도 모르는 것이! 너 같은 걸 이십몇년이나 키우다니!""십칠년이죠." 심유진은 바로 잡았다. "저 나이 열일곱에 대구로 대학을 다녔고 그 이후 생활비는 제가 아르바이트 하면서 벌었기 때문에 저를 키우시진 않으셨죠.""그래도 너를 십칠년이나 키웠어! 이게 너의 보
서재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는 조금 난감한 기색을 내보였다. 사실 그 정도 돈은 정현철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영화 한 편에 투자하는 돈의 몇십분의 일 정도밖에 안 되는 금액이었기에 쉽게 내놓을 수 있을 만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는 심유진을 믿을 수 없었다. 정현철은 심유진이 많이 단단해졌다는 걸 느꼈다. 심훈 부부가 키워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무슨 일이나 가리지 않고 다 하던 그 멍청하리만큼 착한 심유진은 이제 없었다. 그래서 10억을 줘도 아무 이익도 못 볼 가능성이 클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여자에게 자신의 그 멍청한 아들을 장가보내면 이제 아들의 앞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정현철은 심유진과 협상을 해보려고 했다.“아니면 먼저 2억을 받고 나머지는 혼인신고를 한 다음에 받는 건 어떤가?”2억 정도는 손해를 봐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심유진에게 주는 보상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심유진이 단호하게 거절했다.“싫어요.”그녀는 이미 정현철이 뭘 걱정하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물러설 수 없었다.“절 그렇게 믿지 않으시는 거라면 저도 믿음이 안 가죠. 혼인신고를 마친 후 나머지 돈을 안 주실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그쪽 집안사람이 되면 이모랑 삼촌도 더는 제 편에 서주지 않으실 텐데요.”심유진은 일부러 이모라는 단어에 힘을 줘서 말했다. 사영은의 표정이 어두웠다.“그렇게 성의가 없으신 거라면 더 이상 얘기할 필요도 없겠네요.”심유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고 하자 정현철이 다급히 그녀를 불러 세웠다.“그쪽 이모랑 한번 상의해 보도록 하지.”“그러세요, 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연우야, 같이 나가봐.”정현철이 정연우에게 말했다. 심유진은 여전히 정연우를 아는 체도 하지 않으며 아무 말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정연우가 다급히 다가와 그녀 앞에 섰다.“정말 저한테 시집올 거예요?”“아니면요? 다른 선택지가 있나요 지금?”심유진이 차갑게 웃었다.“이게 당신이 원하던 거 아
“여… 여긴 어떻게…”심유진은 그제야 상황 판단이 됐다.“전화가 꺼져있더라고. 연락이 안 되니까 너무 걱정됐어. 그러다가 새아버지랑 경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보러 왔어.”심유진은 허태준이 이곳으로 온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뭐가 됐던 그가 왔으니 자신도 벗어날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다. 심연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급히 올랐다.“대표님, 빨리 여기서 나가세요. 이따가 아빠랑 엄마가 보시면 둘 다 귀찮아지니까.”심연희가 다급히 얘기했지만 허태준은 흔들리지 않았다.“원래 그분들 만나러 온 거야.”심유진과 심연희 모두 이 말에 깜짝 놀랐다.“만나서 뭐 하려고요?”“당연히…”허태준이 뭔가를 얘기하려다가 멈추고 씩 웃었다.“조금 있다가 알게 될 거야.”허태준이 고개를 돌려 심연희를 바라보며 말했다.“부모님은 어디 계시지?”심연희는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했다. 심유진이 그 모습을 보며 서재 쪽을 가리켰다.“저랑 같이 가요.”“그래.”허태준의 손이 자연스럽게 심유진의 허리를 감았다. 서재 쪽으로 가려고 몸을 돌리는데 정연우와 몸이 부딪혔다. 허태준이 그를 쓱 훑어보며 말했다.“이쪽은?”심유진이 대신 소개해줬다.“정현철 씨 아들 정연우 씨예요. 뉴스에도 여러 번 나오셨는데 본 적 없어요?”“정연우? 내가 전에 만났었던 분이랑 다르게 생기셨는데.”정연우가 당황해서 얼버무렸다.“착각이시겠죠.”“착각인가?”허태준의 예리한 눈빛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정연우는 시선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몰라서 어색하게 그 자리에 서있었다.“그런데…”허태준이 아래층을 내려다봤다. 혼자 거실에 앉아있던 정현우도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데 보였다.“제 기억에는 방금 연희 씨랑 같이 있던 정현우 씨가 그때 파티에 정현철 씨와 함께 참석하셨던 친아들이라는 분이랑 더 닮은 것 같던데요.”정연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심유진과 심연희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말했잖아요. 착각하신 거라고.”정연우는 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