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가 강력하게 요구했기에 심유진은 라이브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그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라이브가 진행될 때 심유진은 휴대폰으로 라이브방송을 시청하며 상당한 금액의 선물을 보냈다. 선물을 보내자마자 모니터에 심유진의 닉네임이 떴다. “제로최고님, 선물 너무 감사합니다!” 이율과 김이현이 옆에서 박수를 피며 좋아했다. “헐, 진짜 감사드려요. 대박. 역시 아름다우셔서 그런가 통도 크시네.” 심유진은 머쓱해났다. “이 기능은 요즘에 생긴 건가요?” 그녀는 라이브 방송에서 선물을 보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생긴 지 한 달쯤밖에 안 됐어요.” 이율이 말했다. “말도 마세요. 이 기능이 생기고 나서 팬들 사이에서도 누가 선물을 많이 보내나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 같더라고요. 이번달 수입이 저번달보다 배는 늘었어요.” “잘됐네요.” 심유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니터에 메시지가 두 개나 떴다. “연희사랑해 님이 풍선을 다섯 개 보냈습니다.” “연희사랑해 님이 풍선을 다섯 개 보냈습니다.” 심유진이 기억한 게 맞다면 풍선 한 개당 백만 원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저 사람은 어마어마한 부자인 게 틀림없었다. “아니 또 저분이시네.” 이율이 눈을 흘겼다. “그냥 광고를 해라 광고를. 아니 심연희랑 관계가 있는 사람인 걸 아주 온 세상에 다 알릴 기세예요.” “네?” 심유진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bj한테 선물을 보낸 건데 심연희 씨랑 무슨 상관이 있나요?” “방금 선물을 보낸 게 심연희 씨가 관리하는 애들이에요. 그러니까 저 돈 중에 어느 정도는 심연희 씨 주머니에 들어가는 거죠. 매번 어마어마한 선물에 광고까지 받았으니 이번달 수입이 저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아요. 어쩌면 저희 회사에서 가장 많이 번 매니저가 되지 않을까요?” 이율은 매우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지난 1년간 최고수입은 저였는데 저런 낙하산한테 밀렸네요. 분하다 분해.” “진정해.” 김이현이 이
심연희의 옆에 마르고 키가 작은 남자 두 명이 서있었다. 유명 브랜드의 후드티를 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손질한 모습이 심유진이 상상하고 있던 남자 bj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구부정한 자세와 조금 경박해 보이는 웃음소리가 왠지 상상하고 있던 모습과 비슷했다. 이율은 제로를 보며 말했다. “우리 조금 기다렸다가 가자.”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이고, 제로 형님 아니십니까!” 그중 한 남자애가 제로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기고만장해 보이는 모습에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거 참 죄송하게 됐습니다. 오늘 라이브 랭킹 3위로 밀려나셨던데 저희를 원망하시는 건 아니죠?” 이율과 김이현 모두 불쾌해 보이는듯했다. 심유진마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제로는 차분했다. “잘하시던데 당연한 성과죠.” 타격감이 전혀 없는듯한 답변에 그 둘은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엘리베이터가 마침 도착하자 내내 휴대폰만 들여다보던 심연희도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도 쳐다보지 않고 급히 재촉하기만 했다. “빨리 가기나 해, 뭔 말이 이렇게 많아.” 방금까지 기세등등하던 둘은 심연희의 말 한마디에 순한 양이 돼서 엘리베이터에 따라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도 심유진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그렇게 강압적인 태도의 심연희를 처음 봤다. 자신의 앞에서는 항상 애교 많고 연약한 모습만 보였기에 충격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심유진은 이거야말로 심연희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저 둘 다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는 제로를 얼마나 따랐어. 맨날 제로한테 게임 한수만 가르쳐달라고 애교도 부리고. 근데 지금 봐, 기세등등해서는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잖아.” 이율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제로가 그런 이율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언니, 참아. 그래도 나 아직 3위안에는 들잖아.” “그래도 화가 나는 걸 어떡해. 실력으로 올라온 게 아니라 편법을 써서 올라온 주제에 널 비웃잖
심유진이 한참을 변명하고 나서야 제로는 그녀가 아무 문제없다는 걸 믿었다. 하지만 식사하는 내내 심유진은 계속 심연희와 허태준 생각이 나서 식사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식사자리가 끝나고 심유진은 리친시아로 돌아왔다. 저 멀리 서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마침 허태준이 차를 자주 세우는 위치였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심유진은 그 두 사람이 자신이 바로 자신이 계속 신경 쓰던 그 사람들이 맞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둘은 대화하는 내내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모습이 그다지 친밀해 보이진 않았다. 심유진은 더욱 궁금해졌다. 저 둘은 도대체 무슨 사이일까. 그녀는 그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차를 돌려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리친시아의 지하주차장은 그들이 사는 아파트와는 조금 멀었다. 여형민이 자리를 양도하기는 했으나 심유진은 차를 세울 데가 전혀 없을 때 빼고는 지하주차장까지 와서 차를 세우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허태준 앞을 지날 때 그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가 손을 갑자기 뻗었기에 급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면 그를 칠 수도 있을뻔한 상황이었다. 허태준이 운전석의 창문을 가볍게 노크하자 심유진은 차창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디가?” 허태준이 허리를 숙이고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주차장이요.” 심유진은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려고 애썼다. “전에는 계속 길옆에 세워두지 않았었나?” 심유진은 계속 심연희가 신경 쓰여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허태준은 그런 그녀를 보고 지금 심유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는 자기 차 옆을 가리키며 명령하듯 말했다. “저기에 세워.” 허태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그의 스포츠카가 눈에 들어왔다. 심유진은 아까 심연희가 저 차에 타던 모습이 저도 모르게 떠올랐다. “아니에요, 그냥 주차장에 세울게요.” 심유진이 차갑게 거절했다. 그때 심연희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언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심연희가 차창을 잡으려다가 자연스럽게 허태
그에게서는 심연희의 향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심연희는 향수를 듬뿍 뿌리고 다니는 편이었기에 몇 미터 밖에서도 그 향이 맡아질 정도였다. 심연희가 심유진 집에서 며칠 지낼 때 심유진의 옷에서 온통 향수 냄새밖에 나지 않아 다들 무슨 향수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만약 정말 허태준이 심연희를 집까지 데려다 준거라면 좁은 차 안에서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 향수 냄새가 배어야 정상이었다. “둘이 사이가 되게 좋네. 너무 부럽다.” 심연희는 가까워 보이는 둘을 보며 입꼬리가 더욱 경직된 것 같았다. 허태준이 말했다. “심연희 씨도 정재하 씨랑 사이가 좋은 걸로 알고 있는데.” 성의도 없고 영혼도 없는 형식적인 칭찬이었다. 심연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심유진은 그제야 정재하가 떠올라 심연희에게 물었다. “정재하 씨랑 화해했어?” 심연희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화해까진 아니고... 그냥 나한테 자꾸 매달리는데 내가 거절을 잘 못하는 거지.” “그래?” 허태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눈빛이 더욱 서늘해진 것만 같았다. “정재하 씨가 데려다주는 거 몇 번 봤는데? 그리고 되게 주동적으로 차에 타길래 나도 화해한 줄 알았지.” 심연희는 허태준이 그 장면을 목격했을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건... 제가 타지 않으면 계속 쫓아다니는 게 너무 귀찮아서...” 심연희의 구차한 핑계가 계속 이어졌다. “그래.” 허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부턴 정재하 씨가 찾아온 걸 보면 그냥 바로 신고할게.” 심연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차마 허태준과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네, 감사해요.”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후 허태준은 19층을, 심연희는 27층을 눌렀다. 심연희가 이사를 간 후 심유진은 한 번도 그를 아파트 단지에서 마주친 적이 없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건 알고 있었으나 몇 층에 사는지는 몰랐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늘에서야 그녀는
심연희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멍하니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으나 흐르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19층에 도착하자 허태준은 심유진을 감싸 안은채 내리고 심연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고마워요.” 심유진이 말했다. 방금 허태준이 말한 건 모두 심유진이 마음속에 품고 있으나 차마 입밖에 내지 못했던 말들이었다. 어릴 때의 경험으로 그녀는 늘 이런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가족이건 친구건 이유 없이 남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은 없다고. 그러니 그녀는 심연희마냥 당당하게 다른 사람을 질책할 줄 몰랐다. 이런 자신이 싫었던적은 없다. 그저 가끔 떠올렸을 때 조금 서러울 뿐이었다. “동생조차 밥 한 끼 대접하겠다는데 그냥 고맙다고만 하면 다야?” 허태준은 그녀의 집문 앞에 기대서서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썹을 움찔했다. “아니면...” 심유진이 그런 그를 살짝 떠봤다. “밥 먹고 갈래요?” “허!” 허태준이 코웃음 쳤다. “밥 한 끼로는 안될 것 같은데.” “네?” “앞으로 매일 아침 호텔까지 데려다줄게. 저녁에 당직 안서는 날엔 데리러 갈게.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나 보러 와줘. 같이 점심 먹자. 저녁은... 이제 상황 봐서 다시 정하는 걸로.” 요구가 과하지 않았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허태준이 손해 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대체 왜 이런 요구를 거는 건지 심유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요?” “정말 모르겠어? 당신 동생이 나 좋아하잖아.” 허태준의 목소리가 매우 평온했다. 이런 엄청난 말을 하면서도 마치 오늘 날씨가 정말 좋다고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사람 마냥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저 눈빛에 심유진의 둔한 반응에 대한 불만이 조금 묻어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심유진도 그렇게 둔한 게 아니었다. 그녀도 당연히 보통의 관심과는 미묘하게 다른 그 호감을 눈치채고 있었다. 심지어 몇 시간 전만 해도 그 둘이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발전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심유진은 전부터 이 일의 배후에 허태준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었다. 하지만 허태준이 이렇게 시원하게 자기 입으로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의 예상이 맞구나 싶어서 식은땀이 쫙 났다. 그녀는 심연희를 아끼지도 않았고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지만 심연희가 대구에서 사고를 당하는 건 원치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사영은이 내내 귀찮게 굴게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말한 대로 할게요.” “좋아.” 허태준이 만족하며 손을 놓고 바로 섰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심유진을 등지고 말했다. “내일 아침 8시, 밑에서 기다리고 있어.” 심유진의 출근시간은 9시였기에 그녀는 보통 8시 반에 출발했다. 그 정도면 아침을 먹을 여유도 있었다. 하지만 허태준이 말한 시간을 맞추기 위해 삼십분이나 일찍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1층에 내려갔을 땐 허태준이 아니라 심연희가 서있었다. 어젯밤 심연희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장문의 사과 메시지를 보냈었다. 우느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언니, 내가 미안해.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 “대표님 말이 다 맞아. 내가 언니한테 전혀 신경을 못썼어. 동생으로서의 책임감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아.” “내가 고칠게. 앞으로 진짜 언니한테 잘할게.” 심유진은 감동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머리가 아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심연희가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 심연희는 심유진을 보자 부리나케 달려왔다. “언니!” 심연희는 손에 소중하게 들고 있던 도시락통을 건넸다. “내가 직접 만든 아침이야.” 도시락통 안에는 샌드위치가 두 개 들어있었다. 이건 바쁜 요리가 아니니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유진은 도시락통을 건네받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심연희는 그런 심유진을 끌어안았다. 죄책감과 미안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어제 내가 말이 너무 심했어, 미안해.” 심유진이 웃었다. “괜찮아.” “그럼 혹시... 이제 화 안
그녀의 이 행동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허태준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그래.” 그는 조수석의 문을 대신 열어주고는 머리가 차에 부딪히지 않도록 살짝 감싸주며 그녀가 차에 타는 걸 지켜본 후 자신도 운전석 쪽으로 갔다. 심연희가 따라와서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저도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허태준이 물었다. “정재하 씨가 안 데려다 주나?” 심연희는 난감해했다. “제가 더 이상 쫓아다니지 말라고 했어요.” 심연희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쫓아온다고 해도 이젠 제가 모른척할 거예요.” “하지만 우린 같은 길이 아닌 거 같은데.” “네?” 심연희가 말문이 막혀 어쩔 줄 몰라하는 틈을 타서 허태준은 운전석에 올라탔다. 차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며 심연희를 분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때 여형민이 차를 몰고 그녀의 옆을 지나다가 경적을 두 번 울렸다. “지하철역까지 모셔다 드릴까요?” 심연희는 사양하는척하며 말했다. “제가 너무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심연희가 차문을 열려고 하는데 여형민이 담담하게 말했다. “불편하시면 말고요.” 여형민은 빠른 속도로 차를 몰고 자리를 떠났다. 오직 심연희만이 그 자리에 남아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차 안에서 허태준은 자꾸 올라가는 자신의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는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아까 너무 잘했어.” 그는 심유진을 칭찬했다. “고마워요.” 심유진은 그저 예의상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심유진은 이미 식당에 들어섰는데 허태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CY로 와.” 그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간신히 분노를 억누르는듯한 목소리였다. 아침에 헤어질 때 하고는 완전 딴판이었다. 심유진은 어떤 부분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을지 알지 못했지만 이럴 때는 아무것도 묻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게 가장 좋을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허태준은 뭔가 못마땅해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마.” “그럼 뭐라고 불러요?” “왜, 아침에 잘만 부르더니.” 아침에 뭐라고 불렀더라? 심유진은 다급히 기억을 되짚어봤다. 그러고 보니 태준 씨라고 불렀던 것 같다. 아까는 심연희 앞에서 연기를 하기 위해서였기에 막상 둘이 있을 때 부르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는 건 한층 더 가까워 보였고 자신과 허태준은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심유진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가져온 음식을 탁자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여형민에게 문자를 보내려는데 그가 텔레파시라도 받은 양 타이밍 좋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앞만 쳐다보며 들어왔기에 심유진이 서있는걸 미처 보지 못했다. “왜 너랑 심연희 씨 사이에 뭔가 있다는 소문이 도는 거야?” 그가 허태준에게 물었다. 심유진은 인사를 건네려다가 멈칫했다. 허태준은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심유진 쪽을 쳐다봤다. 그녀의 놀란 얼굴을 보며 허태준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허태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사람을 보내서 조사해 보라고 했어. 누가 낸 소문인지 밝혀내기만 하면...” 뒤의 말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심유진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제 제로를 만나서 그들과 나눴던 대화내용이 떠올랐다. 만약 정말 이 소문의 근원이 그들이라면... 심유진은 벌써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았다. 심유진은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제로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다른 사람한테 심연희와 회장님에 관한 얘기한 적 있어?” 제로는 방송이 있을 때만 회사에 오기 때문에 오늘 발생한 일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난 말한 적 없어. 언니들은 잘 모르겠는데... 근데 왜 그래?” “한번 물어봐봐.” 심유진의 타자속도가 빨라졌다. 전송버튼을 막 눌렀는데 여형민이 놀라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 왜 여기 계세요?” 심유진이 휴대폰을 재빨리 주머니에 넣으며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