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이 한참을 변명하고 나서야 제로는 그녀가 아무 문제없다는 걸 믿었다. 하지만 식사하는 내내 심유진은 계속 심연희와 허태준 생각이 나서 식사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식사자리가 끝나고 심유진은 리친시아로 돌아왔다. 저 멀리 서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마침 허태준이 차를 자주 세우는 위치였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심유진은 그 두 사람이 자신이 바로 자신이 계속 신경 쓰던 그 사람들이 맞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둘은 대화하는 내내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모습이 그다지 친밀해 보이진 않았다. 심유진은 더욱 궁금해졌다. 저 둘은 도대체 무슨 사이일까. 그녀는 그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차를 돌려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리친시아의 지하주차장은 그들이 사는 아파트와는 조금 멀었다. 여형민이 자리를 양도하기는 했으나 심유진은 차를 세울 데가 전혀 없을 때 빼고는 지하주차장까지 와서 차를 세우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허태준 앞을 지날 때 그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가 손을 갑자기 뻗었기에 급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면 그를 칠 수도 있을뻔한 상황이었다. 허태준이 운전석의 창문을 가볍게 노크하자 심유진은 차창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디가?” 허태준이 허리를 숙이고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주차장이요.” 심유진은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려고 애썼다. “전에는 계속 길옆에 세워두지 않았었나?” 심유진은 계속 심연희가 신경 쓰여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허태준은 그런 그녀를 보고 지금 심유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는 자기 차 옆을 가리키며 명령하듯 말했다. “저기에 세워.” 허태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그의 스포츠카가 눈에 들어왔다. 심유진은 아까 심연희가 저 차에 타던 모습이 저도 모르게 떠올랐다. “아니에요, 그냥 주차장에 세울게요.” 심유진이 차갑게 거절했다. 그때 심연희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언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심연희가 차창을 잡으려다가 자연스럽게 허태
그에게서는 심연희의 향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심연희는 향수를 듬뿍 뿌리고 다니는 편이었기에 몇 미터 밖에서도 그 향이 맡아질 정도였다. 심연희가 심유진 집에서 며칠 지낼 때 심유진의 옷에서 온통 향수 냄새밖에 나지 않아 다들 무슨 향수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만약 정말 허태준이 심연희를 집까지 데려다 준거라면 좁은 차 안에서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 향수 냄새가 배어야 정상이었다. “둘이 사이가 되게 좋네. 너무 부럽다.” 심연희는 가까워 보이는 둘을 보며 입꼬리가 더욱 경직된 것 같았다. 허태준이 말했다. “심연희 씨도 정재하 씨랑 사이가 좋은 걸로 알고 있는데.” 성의도 없고 영혼도 없는 형식적인 칭찬이었다. 심연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심유진은 그제야 정재하가 떠올라 심연희에게 물었다. “정재하 씨랑 화해했어?” 심연희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화해까진 아니고... 그냥 나한테 자꾸 매달리는데 내가 거절을 잘 못하는 거지.” “그래?” 허태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눈빛이 더욱 서늘해진 것만 같았다. “정재하 씨가 데려다주는 거 몇 번 봤는데? 그리고 되게 주동적으로 차에 타길래 나도 화해한 줄 알았지.” 심연희는 허태준이 그 장면을 목격했을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건... 제가 타지 않으면 계속 쫓아다니는 게 너무 귀찮아서...” 심연희의 구차한 핑계가 계속 이어졌다. “그래.” 허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부턴 정재하 씨가 찾아온 걸 보면 그냥 바로 신고할게.” 심연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차마 허태준과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네, 감사해요.”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후 허태준은 19층을, 심연희는 27층을 눌렀다. 심연희가 이사를 간 후 심유진은 한 번도 그를 아파트 단지에서 마주친 적이 없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건 알고 있었으나 몇 층에 사는지는 몰랐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늘에서야 그녀는
심연희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멍하니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으나 흐르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19층에 도착하자 허태준은 심유진을 감싸 안은채 내리고 심연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고마워요.” 심유진이 말했다. 방금 허태준이 말한 건 모두 심유진이 마음속에 품고 있으나 차마 입밖에 내지 못했던 말들이었다. 어릴 때의 경험으로 그녀는 늘 이런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가족이건 친구건 이유 없이 남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은 없다고. 그러니 그녀는 심연희마냥 당당하게 다른 사람을 질책할 줄 몰랐다. 이런 자신이 싫었던적은 없다. 그저 가끔 떠올렸을 때 조금 서러울 뿐이었다. “동생조차 밥 한 끼 대접하겠다는데 그냥 고맙다고만 하면 다야?” 허태준은 그녀의 집문 앞에 기대서서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썹을 움찔했다. “아니면...” 심유진이 그런 그를 살짝 떠봤다. “밥 먹고 갈래요?” “허!” 허태준이 코웃음 쳤다. “밥 한 끼로는 안될 것 같은데.” “네?” “앞으로 매일 아침 호텔까지 데려다줄게. 저녁에 당직 안서는 날엔 데리러 갈게.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나 보러 와줘. 같이 점심 먹자. 저녁은... 이제 상황 봐서 다시 정하는 걸로.” 요구가 과하지 않았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허태준이 손해 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대체 왜 이런 요구를 거는 건지 심유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요?” “정말 모르겠어? 당신 동생이 나 좋아하잖아.” 허태준의 목소리가 매우 평온했다. 이런 엄청난 말을 하면서도 마치 오늘 날씨가 정말 좋다고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사람 마냥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저 눈빛에 심유진의 둔한 반응에 대한 불만이 조금 묻어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심유진도 그렇게 둔한 게 아니었다. 그녀도 당연히 보통의 관심과는 미묘하게 다른 그 호감을 눈치채고 있었다. 심지어 몇 시간 전만 해도 그 둘이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발전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심유진은 전부터 이 일의 배후에 허태준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었다. 하지만 허태준이 이렇게 시원하게 자기 입으로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의 예상이 맞구나 싶어서 식은땀이 쫙 났다. 그녀는 심연희를 아끼지도 않았고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지만 심연희가 대구에서 사고를 당하는 건 원치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사영은이 내내 귀찮게 굴게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말한 대로 할게요.” “좋아.” 허태준이 만족하며 손을 놓고 바로 섰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심유진을 등지고 말했다. “내일 아침 8시, 밑에서 기다리고 있어.” 심유진의 출근시간은 9시였기에 그녀는 보통 8시 반에 출발했다. 그 정도면 아침을 먹을 여유도 있었다. 하지만 허태준이 말한 시간을 맞추기 위해 삼십분이나 일찍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1층에 내려갔을 땐 허태준이 아니라 심연희가 서있었다. 어젯밤 심연희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장문의 사과 메시지를 보냈었다. 우느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언니, 내가 미안해.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 “대표님 말이 다 맞아. 내가 언니한테 전혀 신경을 못썼어. 동생으로서의 책임감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아.” “내가 고칠게. 앞으로 진짜 언니한테 잘할게.” 심유진은 감동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머리가 아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심연희가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 심연희는 심유진을 보자 부리나케 달려왔다. “언니!” 심연희는 손에 소중하게 들고 있던 도시락통을 건넸다. “내가 직접 만든 아침이야.” 도시락통 안에는 샌드위치가 두 개 들어있었다. 이건 바쁜 요리가 아니니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유진은 도시락통을 건네받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심연희는 그런 심유진을 끌어안았다. 죄책감과 미안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어제 내가 말이 너무 심했어, 미안해.” 심유진이 웃었다. “괜찮아.” “그럼 혹시... 이제 화 안
그녀의 이 행동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허태준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그래.” 그는 조수석의 문을 대신 열어주고는 머리가 차에 부딪히지 않도록 살짝 감싸주며 그녀가 차에 타는 걸 지켜본 후 자신도 운전석 쪽으로 갔다. 심연희가 따라와서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저도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허태준이 물었다. “정재하 씨가 안 데려다 주나?” 심연희는 난감해했다. “제가 더 이상 쫓아다니지 말라고 했어요.” 심연희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쫓아온다고 해도 이젠 제가 모른척할 거예요.” “하지만 우린 같은 길이 아닌 거 같은데.” “네?” 심연희가 말문이 막혀 어쩔 줄 몰라하는 틈을 타서 허태준은 운전석에 올라탔다. 차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며 심연희를 분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때 여형민이 차를 몰고 그녀의 옆을 지나다가 경적을 두 번 울렸다. “지하철역까지 모셔다 드릴까요?” 심연희는 사양하는척하며 말했다. “제가 너무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심연희가 차문을 열려고 하는데 여형민이 담담하게 말했다. “불편하시면 말고요.” 여형민은 빠른 속도로 차를 몰고 자리를 떠났다. 오직 심연희만이 그 자리에 남아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차 안에서 허태준은 자꾸 올라가는 자신의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는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아까 너무 잘했어.” 그는 심유진을 칭찬했다. “고마워요.” 심유진은 그저 예의상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심유진은 이미 식당에 들어섰는데 허태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CY로 와.” 그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간신히 분노를 억누르는듯한 목소리였다. 아침에 헤어질 때 하고는 완전 딴판이었다. 심유진은 어떤 부분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을지 알지 못했지만 이럴 때는 아무것도 묻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게 가장 좋을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허태준은 뭔가 못마땅해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마.” “그럼 뭐라고 불러요?” “왜, 아침에 잘만 부르더니.” 아침에 뭐라고 불렀더라? 심유진은 다급히 기억을 되짚어봤다. 그러고 보니 태준 씨라고 불렀던 것 같다. 아까는 심연희 앞에서 연기를 하기 위해서였기에 막상 둘이 있을 때 부르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는 건 한층 더 가까워 보였고 자신과 허태준은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심유진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가져온 음식을 탁자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여형민에게 문자를 보내려는데 그가 텔레파시라도 받은 양 타이밍 좋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앞만 쳐다보며 들어왔기에 심유진이 서있는걸 미처 보지 못했다. “왜 너랑 심연희 씨 사이에 뭔가 있다는 소문이 도는 거야?” 그가 허태준에게 물었다. 심유진은 인사를 건네려다가 멈칫했다. 허태준은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심유진 쪽을 쳐다봤다. 그녀의 놀란 얼굴을 보며 허태준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허태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사람을 보내서 조사해 보라고 했어. 누가 낸 소문인지 밝혀내기만 하면...” 뒤의 말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심유진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제 제로를 만나서 그들과 나눴던 대화내용이 떠올랐다. 만약 정말 이 소문의 근원이 그들이라면... 심유진은 벌써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았다. 심유진은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제로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다른 사람한테 심연희와 회장님에 관한 얘기한 적 있어?” 제로는 방송이 있을 때만 회사에 오기 때문에 오늘 발생한 일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난 말한 적 없어. 언니들은 잘 모르겠는데... 근데 왜 그래?” “한번 물어봐봐.” 심유진의 타자속도가 빨라졌다. 전송버튼을 막 눌렀는데 여형민이 놀라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 왜 여기 계세요?” 심유진이 휴대폰을 재빨리 주머니에 넣으며 웃어 보였다.
"그럼 회사에서 심연희와 나에 대한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사실은 너란 말이야?" 허태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위협적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심유진은 온몸이 얼어붙었고, 그녀의 두꺼운 코트로는 허태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를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방금 한 말을 뒤엎고 모든 것을 부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녀의 이성은 빨리 돌아왔고, 그와 시선을 마주한 채 무겁게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맞아요.” 허태준이 김이현을 추적하고 제로와 이율을 연루시키는 것보다 그녀가 혼자서 책임을 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녀와 허태준의 친분에 의하면 아마도, 어쩌면 그들은 여전히 일종의 ‘친분’ 을 가지고 있고, 그는 화를 내고 벌을 내릴 수도 있지만 그녀를 죽일 정도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허태준의 미소가 깊어질수록 그의 눈은 더욱 차가워져만 갔다. “좋아.”두 글자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심유진은 또 한 번 몸을 떨었고, 그는 그 이후로 다시 말하지 않았다. 그는 젓가락을 바꾼 뒤 묵묵히 식사를 마쳤다.중간중간 여형민이 여러 번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노력했지만 허태준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고, 심유진도 줄곧 정신을 딴 데 두고 있자 여형민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허태준은 빈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1시 반이 다 돼 가는데 왜 안 가고 있어?”그가 심유진에게 물었고, 그녀는 줄곧 겁에 질린 채로 있어서 시간이 흐르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1시 30분쯤 됐다는 말을 들은 그녀는 재빨리 남은 밥을 버리고 가방을 손에 든 채 소파에서 일어났다."저는 다시 일하러 갈게요! 그럼 두 분도 잘 계세요!" 그녀는 출근 시간이 늦어졌다는 생각과, ‘수라장’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녀가 두 걸음도 떼기 전에 허태준이 뒤에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내가 데려다줄게.”그가 너무 단호하게 말한 탓에 그녀는 거절할 타이밍도 잡지 못했다. 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덥
"허 대표님, 저는 이 행동이 제 책임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그녀는 단지 그의 여자친구인 척했을 뿐이지, 그들이 실제 커플이 할 일을 하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자 허태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이건 네가 함부로 루머를 퍼뜨린 대가야. 물론 이걸로 그치지 않을 거야. 나와 심연희의 스캔들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 놓도록 해.” 그 순간 심유진의 얼굴이 십 년은 늙은 듯했다. "여기까지만 데려다주지, 그럼 저녁에 봐.”허태준은 손을 흔들며 몸을 돌렸고, 그녀에게 유독 시크한 뒷모습만 보여주고는 떠났다. 그들이 얘기를 하는 동안 엘리베이터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심유진은 너무 화가 나서 버튼을 힘껏 두 번 쳤다.그러자 멀리서 허태준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렇게 세게 쳐서 부수면 물어내야 할걸.”심유진은 그의 말에 즉시 손을 등 뒤로 숨겼고 서둘러 부인했다."아뇨, 제가 안 했어요, 잘못 들은 거겠죠.” 허태준이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잡담을 나누던 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귓속말을 나누던 무리들도 모두 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고는 진지하게 업무를 보는 척 양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박수를 두 번 치며 모두를 주목시켰다."다들 기억하도록 하세요, 방금 나간 심유진 씨가 바로 제 여자친구입니다. 이 일을 여러분이 아는 어느 누구라도 다 말하고 다녀도 됩니다.” 그가 해도 된다는 것은 “무조건” 하라는 뜻이기도 하다.대표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은 모두 그의 숨은 의도를 꿰뚫고 있었다. “알아들었습니까?”허태준이 물었다.그러자 모두가 만장일치로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 여형민은 여전히 허태준의 사무실에 머물면서 테이블에 남은 음식을 “소탕”하고 있었다. 이때, 입구에서 소리가 들리자 그는 고개를 돌려 허태준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물었다. "심유진을 데려다주고 오는 거 아니었어?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온 거야?”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