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이 겹친 도로 위로 차가 가득했다.소남의 격려에 힘입어 원아가 드디어 시동을 걸었다.몇 번 안 해 본 운전이지만, 원아는 운전석에 앉을 때면 평소보다 몇 배나 더 조심스러워졌다. 본인에 의해서든 타인에 의해서든 사고가 난다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하지만, 원아가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거의 모든 차가 원아가 운전하고 있는 차를 발견하는 즉시, 멀리 피한다는 것이었다.이렇게 비싼 차와 접촉 사고라도 난다면 큰일이었다. 조금만 상처를 내어도 보통 차 한 대 값은 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큰 위험부담을 안
원아는 조금 전 사고 때문에 소남에게 미안해 죽을 지경이었다.소남은 술을 마신 상태라 운전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또 목숨을 건 운전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하는 수 없이, 원아는 대리기사를 불렀다.소남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원아를 지켜보았다.원아가 앱을 켜고 대리기사를 호출하는 것을 보던 소남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이런 앱으로 대리운전을 부를 수 있어?”문씨 집안의 장남인 소남은 평상시에는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탔다. 상황에 따라 본인이 운전을 하기도 했다. 택시나 대리기사를 호출할 일이
미경은 말을 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정안의 흔적을 찾으러 방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그런데 이모, 정안 오빠는 아직 안 왔어요?”마침내 미경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영란은 이때다 싶어 한숨을 크게 내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글쎄다. 너도 알다시피 지금 회사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잖니? 우리 정안이가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죽어가는 회사를 살리려고 이 고생을 하니 어쩌면 좋니? 어휴, 정말 방법이 없으려나…….”“이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집에 돌아가면, 아버지와 오빠에게 말해 볼게요. 돈을 융자받으면 장 씨 그룹은
소은은 직장생활을 오래 해 오면서, 상대의 약점을 잡고 끌어내리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원아를 만나고, 그녀에게 깊은 호감이 생겼다.원아와 소은이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팀장인 서현이 다가왔다.서현은 알 수 없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둘 앞에 선 서현은 무척이나 의기양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소은 씨, 몸이 불편하단 걸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사무실에 틀어박혀 일만 하도록 해요. 그리고 원아 씨, 앞으로는 내가 건축 리모델링 프로젝트의 일원이 될 거예요. 우리가
그 여자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오늘, 소은과 마주한 동준은 그녀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맡고 잠시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날 밤, 자신과 함께 있었던 여자에게서 맡았던 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동 비서님, 저 좀 놔 줄래요?”소은의 말투가 무뚝뚝했다.사실 소은은 남자와의 신체접촉을 정말 싫어했다. 비단, 동준뿐만은 아니었다.“…….”그녀의 차가운 눈빛에 동준은 당황하며 얼른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소은이 동준의 어깨를 밀치고, 사무실로 걸어갔다.동준의 입가가 작게 떨렸다,주소은이라는 여자는 겉보기
사건은 이랬다.T그룹 산하 자회사가 개발하여 지난 2년간 세운 고급 아파트 단지 ‘그린 팰리스 타운' 고층에서 큰불이 났다. 이 화재로 입주민 손 씨의 아내와 여섯 살 난 아들이 숨졌다.방화범은 바로 잡혔는데, 놀랍게도 손 씨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였다.평소에도 욕심이 많았던 가정부는 손씨 집안의 재물을 탐내다 어느 날부터인가는 훔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범죄 현장을 여주인에게 들키고 말았다.화가 난 여주인은 경찰을 부르겠다며 소리를 질렀다.가정부는 자신의 범죄행위가 드러나 정말 감옥에 가게 될까 봐 두려웠다
영은은 기분이 나빠져 종료 버튼을 눌러 전화를 끊었다.영은이 전화를 끊고 나자, 장인숙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이번엔 소남의 핸드폰이었다.소남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장인숙이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영은이가 너한테 전화했지? 지금부터 엄마 말 잘 들어. 영은이가 도와주면 방화 사건 처리가 훨씬 쉬워질 거야. 영은에게 좀 더 잘 해 줘. 영은이 생각보다 좋은 아이야. 집안도 좋고, 얼굴도 예쁘고 말이야.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너를 좋아한다는 거지.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깬 원아가 시간을 확인했을 땐 오전 8시였다. 이미 소남이 출근한 뒤였다.아래층 화장실에서 세수를 마치고 나온 원아는 거실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인숙이 원아를 보며 꾸짖었다.“지금이 몇 신데 이제 일어나? 소남인 회사일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어떻게 넌 여태껏 잠을 자니? 내 아들이 어찌 되든 관심이 없구나! 네가 문씨 집안에서 살고 있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지 뭐냐. 너 같은 며느리를 들였다면, 난 벌써 채수분한테 비웃음거리가 되어 죽고 말았을 거야. 너 같은 여자가 우리 아들이랑 살 수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