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이랬다.T그룹 산하 자회사가 개발하여 지난 2년간 세운 고급 아파트 단지 ‘그린 팰리스 타운' 고층에서 큰불이 났다. 이 화재로 입주민 손 씨의 아내와 여섯 살 난 아들이 숨졌다.방화범은 바로 잡혔는데, 놀랍게도 손 씨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였다.평소에도 욕심이 많았던 가정부는 손씨 집안의 재물을 탐내다 어느 날부터인가는 훔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범죄 현장을 여주인에게 들키고 말았다.화가 난 여주인은 경찰을 부르겠다며 소리를 질렀다.가정부는 자신의 범죄행위가 드러나 정말 감옥에 가게 될까 봐 두려웠다
영은은 기분이 나빠져 종료 버튼을 눌러 전화를 끊었다.영은이 전화를 끊고 나자, 장인숙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이번엔 소남의 핸드폰이었다.소남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장인숙이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영은이가 너한테 전화했지? 지금부터 엄마 말 잘 들어. 영은이가 도와주면 방화 사건 처리가 훨씬 쉬워질 거야. 영은에게 좀 더 잘 해 줘. 영은이 생각보다 좋은 아이야. 집안도 좋고, 얼굴도 예쁘고 말이야.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너를 좋아한다는 거지.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깬 원아가 시간을 확인했을 땐 오전 8시였다. 이미 소남이 출근한 뒤였다.아래층 화장실에서 세수를 마치고 나온 원아는 거실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인숙이 원아를 보며 꾸짖었다.“지금이 몇 신데 이제 일어나? 소남인 회사일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어떻게 넌 여태껏 잠을 자니? 내 아들이 어찌 되든 관심이 없구나! 네가 문씨 집안에서 살고 있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지 뭐냐. 너 같은 며느리를 들였다면, 난 벌써 채수분한테 비웃음거리가 되어 죽고 말았을 거야. 너 같은 여자가 우리 아들이랑 살 수는 없지
원아가 T그룹에 도착하자마자 1층 로비에서 누군가 초조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큰일 났어요! 어떤 사람이 C동 꼭대기에서 자살하려고 해요. 입주자 손 씨예요. 손인국이요. 빨리 사람을 불러주세요!”그 말을 들은 원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서둘러 그를 따라가는 도중에 소남을 만났다.“그 입주자 손 씨 말이에요. 그 사람이 지금 C동에서 자살하려고 한대요.”원아가 허둥지둥 말했다.소남이 원아의 손목을 덥석 잡으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미 일의 경위를 다 알고 있어. 그러니 조급해하지 마. 내가 처리할게. 넌 여기
“원아!”문소남이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그의 동공이 놀라서 끊임없이 수축되고 있다. 운좋게도 위급한 순간에 문소남이 손을 뻗어 원아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원아의 몸이 공중에 거꾸로 매달리고,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린다. 검은 머리에 가려진 수수하고 창백한 얼굴. 몸 아래 수백 미터의 거리를 보고 멀미가 난 그녀는 놀라 기절할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도 그녀의 손은 죽어라 손안국의 팔을 잡아당기고 있다.“원아, 조금만 견뎌요, 구해줄 테니까!”문소남의 손도 떨리고 있다. 원아가 끌려가는 것을 본 순간 그의 심장과 호흡은
원아는 목소리를 낮추고 그의 몸에 볼을 비비며 끊임없이 사과했다.“소남씨, 미안, 미안해요……. 그냥 손 선생님을 구하고 싶었을 뿐, 이런 위험이 생길 줄은 몰랐어요. 다음에는 절대 이렇게 무모한 행동 하지 않을게요, 화 내지 마세요.”“당신이 무슨 스파이더맨이라도 되는 줄 알아요? 자기 몸도 못 지키면서 영웅 노릇을 하다니! 바보! 그때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아요? 당신이 떨어지는 순간,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는 알아요?”문소남이 몸을 돌려 눈시울을 붉혔다.하늘도 알 것이다. 그녀가 떨어지는 순간, 그의 마음이 얼마나
임 씨 집안.임영은은 오늘 별 일도 없어서 그냥 집에 있었다. 임문정과 주희진 모두 일을 하러 갔고, 가정부도 고향에 돌아가 설날 명절을 보내기로 해서 그녀 혼자만 집에 있는 상황. 밥을 하기도 귀찮아서 냉장고에서 라면 하나를 꺼내 끓여 먹기 시작했다.먹으면서 텔레비전을 켜서 채널을 한 곳에 고정했다. 그녀가 주연으로 출연한 사극 드라마가 오늘 이 채널에서 첫 방송된다. 드라마의 방송시간이 다가왔는데도 여러 광고가 뜨며 시작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그 순간, 텔레비전 화면이 전환되며 방화 사건의 최신 뉴스가
임영은의 눈밑에서 극도로 짙은 증오가 뿜어져 나오고, 이내 일어나서 장인숙을 찾으러 문씨 집안으로 가기로 결정했다.장인숙은 어리석은 데다 재물을 탐하는 편이고, 허영심도 있지. 그녀를 먼저 해치우고, 다음으로 집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 어르신, 또 그 다음으로는 자신의 부모를 끼어들게 하면…? 임영은은 마지막에는 분명 문소남이 순순히 따를 것이라고 믿었다.T그룹.사윤이 원아의 몸을 진찰한 결과, 손목이 빨갛게 부어 약간 당겨진 것을 제외하고 다른 곳은 괜찮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정신적으로 놀란 게 더 심했다. 88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