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승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지윤 씨는 도대체 왜...""어이, 너! 이쪽으로 와봐."연희승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무리의 사람이 그들을 에워싸기 시작하더니, 밍크코트를 입고 시가를 피우는 남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지윤을 바라봤다."너 실력이 꽤 좋아 보이던데 우리 클럽에 들어오지 않을래? 우리 클럽에 들어오면 2억보다 훨씬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거야."대부분 격투 선수에게 다 스폰서가 있다. 경기 중에 승자를 걸고 도박하는 사람도 물론 있기 때문에, 스폰서는 지윤처럼 훌륭한 선수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게 당연했다.지윤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관심 없어요."지윤은 격투에 관심만 있을 뿐, 직업으로 먹고 살 생각은 없었다. 취미 생활에 굳이 목숨을 걸 필요도 없고 말이다. 강성연을 만난 다음의 그녀는 이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남자는 약간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너 우리를 무시하는 거야?"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연희승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도 설날인데 언성을 높이지 말고 좋게 좋게 말해요.""안경쟁이가 어디서 감히 끼어들어?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데 고맙다고 넙죽 엎드리지 못할망정 감히 토를 달아?"남자가 언성을 높이자 부하들이 옷 소매를 걷으며 위협했다. 연희승은 느긋하게 안경을 벗더니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닦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머리도 들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누가 마음에 들었다고요?""영웅 놀이라도 하려는 거야? 현실은 얼마나 잔혹한지 오늘 좀 배워야겠다."남자는 부하가 건네는 라이터로 새 시가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반쯤 죽여버려."부하들은 슬금슬금 연희승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연희승은 안경을 주머니 속에 넣고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주먹을 휘두르는 한 남자의 머리를 잡고 몇 미터 밖으로 차버렸다. 다른 남자들도 연이어 공격했지만 연희승은 1대 6으로 손쉽게 모든 공격을 피했다. 그들은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연
차에 올라탄 두 사람은 빠르게 멀어져갔다. 평소 사람으로 북적이던 거리는 설날인 관계로 아주 한적했다.지윤은 턱을 괴고 창문에 기대 연희승을 바라보며 말했다."아까는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야 하는 줄 알았어요.""저도 밤새 싸울 생각은 없었거든요.""만약 반 대표님이 위험에 빠졌다면, 그 속도로 퍽이나 구할 수 있겠어요?"연희승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위험에 빠진 대표님을 왜 제가 구해요? 저는 비서이지, 보디가드가 아니에요."더구나 반지훈은 연희승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지윤은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역할 구분이 참 명확하네요.""그럼요. 비서 월급을 받고 보디가드 일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게다가 그건 보디가드의 일자리를 뺏는 거예요.""참고로 저 녹음하고 있어요."연희승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며 지윤을 바라봤다."그런 게 어디 있어요!"지윤은 창밖의 고깃집으로 가리키며 말했다."녹음을 지우고 싶다면 고기를 사줘요.""상금을 받은 사람 따로, 밥을 사는 사람 따로 있는 거예요?""그렇다고 해서 수표로 고깃값을 낼 수는 없잖아요.""..."할 말을 잃은 연희승은 고깃집 밖에 차를 세웠다. 설날에도 문을 닫지 않은 고깃집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이 커플이었다.직원은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희 요즘 커플 세트를 주문하면 반값으로 해드리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두 사람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저희가 커플 같아요?""저희가 커플 같아요?"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두 사람은 원가로 세트를 주문하고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앞에는 젊은 커플이 앉아 있었는데 주변 환경도 잊은 듯 열정적으로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연희승은 마른세수를 했다. 요즘 젊은이는 사상이 너무 지나치게 개방된 감이 있었다. 반대로 지윤은 전혀 어색함 없이 키스하는 커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적나라한 눈빛에 오히려 어색해진 커플은 주섬주섬 일어날 준비를 했다. 핑크색 머리의 여자는 화
앞서 걷던 희승은 한참을 걸어가고 나서야 지윤이 따라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그러다 길 잃어버리면 나도 책임 못 져요.”지윤이 시선을 내려뜨리며 아련한 눈빛을 감췄다.“내가 혼자 돌아가지도 못할까 봐서요.”희승이 팔짱을 끼고 물었다.“그래서 이제 뭐 하고 싶어요?”지윤이 아직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는 건 진작 눈치챘었다.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 수 있었다.설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다. 그는 부모가 없었기에 최근 몇 년 동안은 반 씨 가문에서 설을 보냈었다. 그에게 있어서 반 씨 가문은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지윤의 부모도 국내에 없었기에 이런 시기일수록 가족 생각이 나는 게 당연했다.“나 불꽃놀이를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지윤이 그를 보며 말했다.희승이 당황하며 되물었다.“네?”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다시 한번 말했다.“나 불꽃놀이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요.”희승이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그가 떠나고 한참이 지났다. 지윤은 기다란 벤치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매서운 칼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쳤지만 그녀는 동상처럼 우두커니 그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희승이 크고 작은 주머니를 잔뜩 들고 나타나서야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궁금한 표정으로 다가갔다.“이렇게나 많이 샀어요?”그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불꽃놀이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면서요. 적게 사면 또 갔다 오라고 할 것 같으니까 한 번에 많이 샀어요. 아주 실컷 놀아볼 수 있게 해줄게요.”두 사람은 해변에서 불꽃놀이를 시작했다.손끝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밤 하늘 위에서 팡 하고 터지며 모래사장 위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었다. 지윤이 허공에서 휘황찬란하게 피어난 불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희승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싸늘한 표정만 짓고 있던 그녀의 얼굴 위로 알록달록한 빛이 스며들었다. 웃는
-하 씨 가문.“짝!”하진석이 하정원의 뺨을 내려쳤다. 위층에서 소리를 들은 한혜숙이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여보 지금 뭐 하는 거야?”하정원은 방금 맞은 따귀가 아프지도 않다는 듯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의 뺨을 쓰다듬었다. 잔뜩 화가 난 하진석이 테이블 위에 있는 사진을 바닥에 내던졌다.“결혼까지 한 애가 조신치 못하게 다른 남자와 놀아나? 네가 아주 내 속을 뒤집으려고 환장했구나!”한혜숙이 하정원 옆으로 다가가 바닥에 널브러진 사진을 주워 들었다. 전부 하정원이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는 장면이 포착된 파파라치 컷이었다.“정원이 네가 어떻게…”한혜숙이 고개를 들고 하정원을 바라보았다. 목 끝까지 욕설이 차올랐지만 왼쪽 뺨이 미세하게 부어오른 딸아이의 얼굴을 보고 차마 내뱉지 못했다.자신의 딸이 이렇게까지 된 건 그들 부모의 탓도 있었다.“욕 다 하셨어요?”하정원이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싱긋 웃었다.“두 분이 결혼하라고 해서 했어요. 두 분 뜻대로 충분히 따라줬으니까 그 뒤에 제가 어떻게 사는지는 상관하지 마시죠?”“너—”하진석이 다시 손을 번쩍 쳐들었다.“장인어른.”진여훈이 언제 왔는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를 확인한 하진석이 그제야 천천히 손을 내리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굴에는 온통 진여훈에 대한 미안함뿐이었다.“내가 애를 잘못 키웠어. 정말 자네를 볼 면목이 없네.”진 씨 가문과 하 씨 가문의 정략결혼은 두 가문 모두한테 이득이 되는 결혼이었다.이번 하정원의 스캔들은 하 씨 가문 뿐만 아니라 진 씨 가문의 얼굴까지 깎게 되었다.진여훈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와 하정원을 힐끗 쳐다보았다.“화 좀 가라앉히세요. 장인어른. 일단 정원이는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저희 둘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잘 얘기해 볼게요.”하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진여훈이 하정원의 팔목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겉보기에는 그냥 팔을 잡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힘을 실어 잡아끌고 있었다.정원으로 나오자 진여훈이 그녀의 손
진철이 그를 바라보았다.“정원이는 또 자기 아버지와 싸운 거냐?”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시력만큼은 젊은 사람 못지않은 그였다.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빨갛게 부어오른 그녀의 왼쪽 뺨을 정확히 보아낸 것이다.그녀를 때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아버지밖에 없었다.자기 손자는 아무리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녀에게 손찌검할 사람이 아니었다.진여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진철이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면 위에서 쉬게 놔두거라.”그리고 고용인에게 점심을 준비해서 위로 올리라고 지시했다.강성연이 진철을 바라보았다. 진철은 하정원의 소문에 대해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이로써 소문의 진위는 뻔해졌다.점심 식사를 마친 뒤 강성연은 강유이와 함께 정원을 산책했다. 강유이가 그녀의 팔짱을 꼭 꼈다.“엄마 정략결혼 하면 불행해져요?”강성연이 당황하며 아이를 돌아보았다.“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아이가 답했다.“숙모랑 삼촌은 정략결혼 때문에 억지로 같이 있잖아요.”“그거 누가 알려줬어?”“서율 오빠가요.”강유이가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정원 숙모가 서율 오빠 사촌 누나거든요.”강성연이 아이의 삐친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그건 사람마다 달라. 어떤 사람은 강제로 맺은 인연을 인정하고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 운명이 싫어서 맞서기도 해.”부잣집 가문 간의 혼인은 결국 비슷한 수준의 사람끼리 만나, 각자의 이득을 위해 자녀의 행복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마음에도 없는 낯선 남녀가 만나 한 집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자유 연애나 결혼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엄마 그럼 나중에… 저도 정략결혼 해야 하는 거 아니죠?”강유이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강성연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바보야, 네 아빠는 너를 결혼시키지 않을지언정 절대 정략결혼 같은 건 시키지 않을 사람이야.”-진 씨 저택으로 돌아온 뒤 하정원은 줄곧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날 저녁을 먹을 때도 내려오지
원피스 자체가 귀엽고 발랄한 느낌이라 나이가 많은 여자보다 어린 여자아이한테 어울리는 스타일이었다.하정원의 예상대로 원피스는 강유이한테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렸다.강유이는 나이가 어린 것도 맞지만, 또래 아이들한테 없는 특유한 분위기가 있었다. 거기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한테 물려받은 훌륭한 미모까지.올해 14살밖에 안 되었지만 이미 미인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이대로만 큰다면 나중에 서울 제일의 미녀가 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우리 유이는 어쩜 이렇게 예쁘지. 너무 사랑스러워!”하정원이 강유이를 품에 꼭 끌어안고 자신의 얼굴을 비비적거렸다.“내가 만약 남자였다면 너를 십 년도 더 기다릴 수 있었을 거야!”하정원은 강유이가 너무 사랑스러웠다.강유이는 어쩔 수 없이 그녀가 하는 대로 가만히 몸을 맡겼다.“어머 하정원이잖아?”그때 등 뒤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정원이 순식간에 웃음을 거두었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늘씬한 몸매의 빨간 머리 여자가 서 있었다.여자는 온몸에 명품을 두르고 있었다. 짙은 화장에 범상치 않은 분위기,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연예인이래도 믿었을 것이다.가게 매니저가 불안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카지노계 대부의 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주얼리계 큰손의 딸이었다. 하 씨 가문이나 천 씨 가문 모두 그들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가문이었다.“어머 천지현 씨, 저희 이번에 신상 많이 들어왔는데 한번 입어보시지…”“여긴 손님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예요? 이렇게 풍기 문란한 여자를 다 들이다니?”천지현이 매니저의 말을 끊고 하정원을 바라보았다.“결혼까지 하고도 다른 남자와 놀아나는 저런 여자 말이에요. 하진석 어르신 대신 내가 다 한탄스럽네요. 하 씨 가문에 저런 방탕한 딸이 나왔는데 얼마나 가문의 수치겠어요?”하정원은 군오의 여자 셀럽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자유분방하고, 교제하는 상대를 자주 바꾸는 등 소문이 자자한 하정원은 고상한 셀럽들이 봤을 때 그냥 꽃뱀으로밖에 보이지
“하 씨 가문이 다 뭐야. 내가 하정원 저 여자를 때린다고 해도 쟤 아버지는 그러려니 할 거야. 자기 딸이 먼저 맞을 짓을 했으니까. 진 씨 가문이라고 감싸줄 것 같아? 소란스럽기만 한 며느리 지금껏 쫓아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이 봐준 거야.”하정원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강유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우리 유이가 이렇게 든든하게 지켜주니까 숙모 하나도 겁 안 나는 것 같아.”그녀가 천지현을 보며 눈썹을 찡긋거렸다.“한번 때려 봐요. 나도 보고 싶네요. 내일 천 대표님이 당신을 어떻게 때릴지.”하정원의 도발에 천지현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녀가 손을 번쩍 쳐들었다.그녀의 손이 미처 강유이의 얼굴에 닿기 전에 누군가가 낚아챘다.천지현이 휙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진여훈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진여훈 씨, 설마 지금 이년 편드는 거예요?”진여훈은 하정원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미 결혼까지 한 두 사람이지만 하정원은 자기 멋대로 행동하며 다녔고, 진여훈은 공식적인 장소에서 절대 아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결혼만 했을 뿐 제각기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이런 이유로 천지현은 진 씨 가문에서 절대 하정원을 도와주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진 씨 가문에서는 그저 하진석의 체면을 봐서 그녀를 봐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지금껏 하정원의 이상 행동들을 봐줄 리가 없었다.진여훈이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말조심해요.”강유이가 배시시 웃으며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삼촌 어떻게 왔어?”삼촌?천지현이 경악한 표정으로 강유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진여훈한테 이런 조카가 있는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내가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 만약 너한테 무슨 사고라도 나면 나, 네 아빠 못 봐.”천지현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보아하니 진여훈은 하정원이 아니라 저 꼬마 때문에 나선 것이었다.그녀가 피식 웃었다.“미안해요. 저 꼬마가 진여훈 씨 조카인 줄 몰랐어요. 아이한테는 볼일 없으니까,
천지현은 그녀보다 꼴이 더 심했다. 얼굴은 맞아서 팅팅 부어있었고, 머리와 옷도 다 흐트러져 있었다. 현재 그녀의 모습은 부잣집 아가씨는커녕 방금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미친 여자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누가 신고했는지 곧바로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싸운 사람들은 어디 있습니까?”경찰이 그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진여훈을 알아보고 당황했다.“진여훈 도련님?”천지현이 울면서 하정원을 가리켰다.“이봐요. 여기 이 여자가 나를 때렸어요.”경찰은 천지현의 처참한 모습을 한번 본 후, 하정원을 돌아보았다.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저 사람은 분명 진여훈과 결혼한 하 씨 가문의 딸이었다.경찰은 자연스럽게 진여훈의 눈치를 보았다.진여훈이 뭐라 말하기 전에 하정원이 먼저 경찰한테 다가갔다.“저 순순히 따라갈 거고, 수사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할 거예요.”조급해 난 강유이가 천지현을 가리키며 말했다.“우리 숙모가 먼저 때리지 않았다고요. 저 여자가 먼저 우리 숙모를 때렸는데!”순간 천지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잠깐 침묵하던 경찰이 부하에게 천지현도 함께 데려가도록 명령했다.강유이가 쫓아가려고 하자 진여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먼저 집으로 돌아가.”유이가 손을 뿌리쳤다.“삼촌, 분명 숙모 잘못이 아니잖아요. 삼촌은 왜 숙모 안 도와줘요!”진여훈의 얼굴이 굳어졌다.“저 여자도 손댔어.”“그럼 손대지 않고 가만히 맞고만 있어요?”강유이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삼촌은 숙모가 그렇게도 싫어요?”진여훈은 답을 하지 않았다.확실히 그는 그녀가 싫었다. 마음에도 없는 여자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으니까.하지만 그라고 모르는 게 아니었다. 하정원과 자신은 집안의 강요 때문에 결혼하게 된 것이다. 그들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그는 그녀의 명성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결혼했어도 그냥 한집에 사는 것뿐이고, 할아버지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그녀가 조금만 조용하게 지냈다면 그도 충분히 그녀를 존중해 줬을 것이다.하지만 결혼 후,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