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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1화

앞서 걷던 희승은 한참을 걸어가고 나서야 지윤이 따라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러다 길 잃어버리면 나도 책임 못 져요.”

지윤이 시선을 내려뜨리며 아련한 눈빛을 감췄다.

“내가 혼자 돌아가지도 못할까 봐서요.”

희승이 팔짱을 끼고 물었다.

“그래서 이제 뭐 하고 싶어요?”

지윤이 아직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는 건 진작 눈치챘었다.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 수 있었다.

설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다. 그는 부모가 없었기에 최근 몇 년 동안은 반 씨 가문에서 설을 보냈었다. 그에게 있어서 반 씨 가문은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윤의 부모도 국내에 없었기에 이런 시기일수록 가족 생각이 나는 게 당연했다.

“나 불꽃놀이를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지윤이 그를 보며 말했다.

희승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네?”

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다시 한번 말했다.

“나 불꽃놀이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요.”

희승이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가 떠나고 한참이 지났다. 지윤은 기다란 벤치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쳤지만 그녀는 동상처럼 우두커니 그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희승이 크고 작은 주머니를 잔뜩 들고 나타나서야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궁금한 표정으로 다가갔다.

“이렇게나 많이 샀어요?”

그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불꽃놀이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면서요. 적게 사면 또 갔다 오라고 할 것 같으니까 한 번에 많이 샀어요. 아주 실컷 놀아볼 수 있게 해줄게요.”

두 사람은 해변에서 불꽃놀이를 시작했다.

손끝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밤 하늘 위에서 팡 하고 터지며 모래사장 위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었다. 지윤이 허공에서 휘황찬란하게 피어난 불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희승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싸늘한 표정만 짓고 있던 그녀의 얼굴 위로 알록달록한 빛이 스며들었다. 웃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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