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언이 손에 들고 있던 연줄을 진여훈에게 건네고 해신과 유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하정원이 잠깐 당황하더니 팔짱을 끼고 줄을 풀고 있는 진여훈을 바라보았다.“당신은 왜 왔어?”“내가 우리 집에서 마음대로 다니는 것도 안 되나?”그가 너무 맞는 말만 하니 하정원이 반박하지 못했다.확실히 여긴 진여훈의 집이었다. 진여훈이 자기 집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걸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좋아. 그럼, 혼자 천천히 날려보든가.”그녀가 돌아가려는 걸 눈치챈 강유이가 얼른 소리쳤다.“숙모가 이대로 돌아가도 이따가 지면 숙모도 벌칙 받아야 해요.”사실 그들은 연날리기 내기를 하고 있었다. 더 높게 연을 띄우는 팀이 이는 걸로. 도중에 줄이 끊겨도 지는 걸로 쳤다.지는 팀은 이긴 팀의 소원을 들어줘야 했다. 이건 내기를 하기 전 그들이 합의하고 세운 규칙이었다.순간 당황한 하정원이 씩씩거리며 소리쳤다.“그럼, 시언이 네가 다시 들어와.”강유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지금은 삼촌이 숙모랑 한 팀이잖아요.”“갑작스러운 팀원 교체는 받아들일 수 없어!”“안 돼요.”강유이가 이어서 말했다.“한 팀에서 한 사람만 기권할 수 있어요. 큰오빠가 이미 기권했으니 숙모 혼자 남았잖아요. 마침 빈 자리를 삼촌이 채워줬으니 내기는 계속 진행 중인 거예요.”시언과 해신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우기는 거라면 아무도 자신들의 동생을 이길 사람이 없었다.하정원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어쩐지 이 세 아이가 합심해서 자신을 골탕 먹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리고 곧바로 그녀는 자신의 느낌이 맞다고 확신했다.진여훈이 들고 있던 연줄이 갑자기 툭 하고 끊겨버린 것이다.강유이가 팔딱팔딱 뛰며 기뻐했다.“숙모팀 연줄이 끊겼어요. 숙모랑 삼촌이 졌어요!”하정원이 진여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너무나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났다.“당신 일부러 그런 거지?”진여훈은 여전히 담담한 태도였다.“내가 줄을 끊기라도 했어?”“그러니까 왜 갑자기 쓸데없이
“자, 아빠가 할아버지와 할 얘기가 있으니까, 유이 넌 네 오빠들한테 가봐.”유이가 네 하고 답하고 서재를 나갔다.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두 오빠와 민서율이 거실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깜짝 놀란 그녀가 물었다.“서율 오빠?”민서율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새해 복 많이 받아. 유이야. 나 너한테 줄 선물도 갖고 왔어.”“어떤 선물이에요?”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민서율을 향해 달려갔다.민서율이 그녀에게 선물 박스를 내밀었다. 유이가 웃으며 박스를 받아 곧바로 열어보았다.박스 안에는 핑크로 된 크리스털 팔찌가 들어있었다. 팔찌는 특별 주문된 것이었다.해신이 쳇 하고 혀를 찼다.“유이 주려고 특별히 선물까지 챙겨오다니. 우리들 건 없어?”민서율 이놈, 제법 머리 좀 굴렸나 본데!유이한테 잘 보이려고 기를 쓰는군!민서율은 해신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는지 웃으며 말을 이었다.“다른 사람들 것도 다 있어!”그가 경호원에게 선물 박스를 갖고 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세쌍둥이 중 누구 하나 빠짐없이 선물을 준비해 왔었다.“좋아. 우리 몫도 준비한 걸 봐서 용서해 줄게.”해신이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선물을 받았다.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둘째 오빠, 말 좀 예쁘게 할 수 없어? 서율 오빠가 선물까지 줬잖아.”해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네가 시험을 잘 쳐서 반에서 일 등 하면 네 말 들어줄게.”“진짜지?”“큰형이 보증하잖아. 진짜야.”“좋아.”강유이가 해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나 꼭 시험에서 일등 할 거니까. 두고 봐!”해신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거꾸로 일등이나 하지 마.”그녀가 양팔로 허리를 짚으며 말했다.“그럴 일 없거든. 만만하게 보지 마!”-그날 저녁. 하 씨 가문 사람들이 진 씨 가문에 와서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하진석과 한혜숙은 반지훈과 진철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에 그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식사 중 한혜숙이 웃으며 말했다.“반지훈 대표님과 사모님이 이
이건 난륜 아닌가?진철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아이들의 이혼에 대해 자네들과 상의하려 하는 게 아니겠나?”그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말이 나오자 하 씨 집안 사람들은 상당히 괴이하게 느껴졌다.그들이 아는 진철은 도를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라도 이런 말에 하진석은 동의할 수 없었다.“어르신, 어르신께서 지금 저희 두 가문이 맺은 혼인을 애들 장난으로 취급하시는 겁니까?”진철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치며 잠깐 침묵했다.“하 회장, 우리 두 가문 사이의 관계는 굳이 혼인으로만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니네.”그가 하정원을 돌아보았다.“그래서 내가 정원이를 내 손녀로 들이고 싶다는 거네.”“지금 그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결정인 줄은 아시는 겁니까.”하진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다른 사람을 살필 겨를도 없이 말을 이었다.“어르신이 직접 들인 손주며느리를 손녀로 삼겠다뇨. 부부에서 남매가 된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랍니까!”진철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표정이 진지했다.“그러면, 자네 딸이 계속 염문설을 일으키고, 자네한테 반항하며 살아가게 하는 게, 그게 자네가 바라는 모습인가!”하진석이 그대로 얼어붙었다.그가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하진석 자네는 너무 고집스러워.”“그해에 벌어졌던 비극을 벌써 잊은 건가? 자네 딸이 어쩌다 오늘 이 모양이 되었는데!”하정원이 경악하며 진철을 바라보았다. 그가 어떻게 그 해 일에 대해 알고 있지?하진석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두 가문이 함께한 식사 자리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곧이어 하진석이 떠났고 식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강성연과 반지훈이 방으로 돌아왔다. 방금 그들의 대화에서 하진석이 그 해 일을 엄청나게 금기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지훈 씨.”그녀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저 정말 너무 궁금해요. 어떡하죠?”반지훈이 피
“나를 원망하느냐?”하정원이 두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피식 웃었다.“할아버님께서 저를 아껴주신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할아버님을 원망하지는 않아요.”그녀가 일부러 온갖 염문설을 뿌리고 다니며, 진 씨 가문의 체면도 깎아내렸는데도 진철은 한 번도 그녀를 나무란 적이 없었다.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녀가 진철한테 미안한 점이 더 많았다.“원망하지 않는다니 다행이구나.”진철이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걱정 말거라. 너희들이 이혼해도 너는 계속 내 손녀야. 너랑 여훈이 부부가 될 수 없다면, 남매로 지내는 건 괜찮지 않겠어?”하정원이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사실… 다 제 잘못이에요. 할아버님, 그 사람을 탓하지 마세요.”진여훈이 그녀를 싫어한 이유는, 그녀를 정말로 소문 속 그런 여자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그녀는 한 번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관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거리낌 없이 그 많은 황당한 일을 벌일 수 있었다.그렇게 너무 자기 생각만 하다 보니 할아버지가 자신한테 베푼 친절을 간과하고 있었다.확실히 그녀가 너무 이기적이었다.오늘날까지 할아버지가 그녀를 걱정하는 모습에 그녀는 더욱 자괴감이 들었다.“나도 안다. 이번 일은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 할아비는 그저 너희들이 나처럼 살지 말길 바랐을 뿐이야.”그는 개탄했다. 젊었을 적 그 역시 이익을 탐했고 야심도 있었다.하지만 연이 죽고 난 뒤 그는 다 부질없음을 깨달았다.그는 자기 자신을 자책하며 연의 복수를 위해 살았었다. 그러면서 황당하고 어리석은 일을 벌이기도 했었다.그 사이에 복수의 대상을 잘못 고른 적도 있었다.하진석은 하정원의 아버지였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런 일을 저질렀지만, 하정원은 자신의 아버지를 원망할 뿐 복수의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는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걸 선택했다.이렇게 가슴 아픈 아가씨를 그가 어떻게 탓할 수 있을까.하정원이 서재에서 나왔다. 고개를 드니 진여훈이 복도에 서 있었다.그
그가 운전석을 툭툭 치며 기사한테 출발하라고 지시했다.하정원이 미처 말을 하기도 전에 차가 그녀의 눈에서 점점 멀어져갔다.하정원이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었다.“내가 뭐 그쪽 차 아니면 타고 갈 차가 없는 줄 알아!”그녀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연락처를 뒤적거렸다. 사실 연락처에는 몇 명 없었다.그녀의 차는 집 차고에 주차되어 있었다. 이혼 수속하러 나왔기에 지갑도 두고 온 상태였고 텔레뱅킹도 되지 않았다. 진여훈이 자신을 버리고 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그녀는 이혼 후 진 씨 놈이 더 이상 자신한테 못되게 굴지 않을 거로 생각했었다.허, 완전한 착각이었다.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었던 그녀는 결국 자기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가 몰래 숨어 그들이 법원에서 나온 장면부터 그녀가 그에게 버려지는 장면까지 속속들이 찍고 있었다는 사실을.-다음날.진철이 책상 위로 잡지를 내던졌다.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이게 네가 나한테 약속했던 거냐.”진여훈이 잡지를 바라보았다. 그건 바로 어제 그들이 법원에서 이혼 수속을 마치고 나오는 장면이었다.두 사람은 우선 이혼 사실을 공개하지 않기로 할아버지와 약속했었다. 그런데 하필 그 장면이 파파라치한테 찍혔을 줄이야. 이제 언론에서도 그들의 이혼 사실을 추측하고 있었다.그가 입술을 깨물더니 조금 있다 입을 열었다.“어차피 언론에서도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었는데, 지금 밝혀진다고 해서 뭐 다를 게 있겠어요.”할아버지가 하정원을 손녀로 들인다는 사실도 어차피 공개해야 할 일이었다.진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너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만, 너 정원이 생각은 해 봤어?”“내가 너희 이혼을 허락한 건 맞지만, 분명 정원이를 손녀로 삼겠다고 발표하기 전까지 이혼 사실을 비밀로 하라고 당부했잖니. 그런데 이게 뭐냐. 언론에서 이 사진을 근거로 정원이한테 어떤 기사를 쏟아낼지 생각이나 해 봤어?”하정원과 그의 이혼이 사실로 밝혀지면 언론에서는 하정원의 행실이 나
강성연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두 가문이 억지로 사돈을 맺고 정원 씨가 진 씨 가문으로 들어왔어. 너는 정원 씨가 너희 집안의 얼굴에 먹칠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외부인들은 너희 진 씨 가문을 동정하고 있어. 그런 여자를 집에 들였다고.”그녀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진짜 온갖 비난을 듣고 있는 사람은 하정원 씨 한 사람뿐이었다고. 재밋거리가 필요한 사람들도 오직 정원 씨만 비웃었어. 근데 그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 왜냐면 그게 바로 그 사람이 원했던 결과였으니까.”“결혼하기 전부터 정원 씨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자기 명성을 떨어트리기 시작했어. 너는 이 결혼이 불만족스럽고, 그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지 않았겠지. 그러면 정원 씨는 이 결혼에 만족했을까? 이제와서 두 사람이 이혼하게 된 게, 어쩌면 정원 씨가 애초에 가장 바라고 있던 결과일 수도 있어.”“확실히 가장 멍청한 건 정원 씨가 맞아. 네 말 그대로야. 정원 씨의 염문설은 그녀 스스로가 쌓아 올린 거지. 본인은 신경도 쓰고 있지 않지만 말이야. 그런데 과연 세상 어떤 여자가 정말로 자기 명성이 더럽혀지는 걸 신경 쓰지 않을까?”만약 그녀가 하정원의 과거를 몰랐다면, 그녀 역시 하정원이 왜 기를 쓰고 자기 명성을 떨어트리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하정원은 자기 명성을 신경 쓰지 않은 게 아니었다.단지 그녀의 심장이 이미 죽어버렸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이미 죽어버린 사람은 세상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시체와도 같이.그녀의 아버지는 분명 그 일의 주모자이자, 이 비극을 만들어 낸 사람이었다. 그는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잃게 만들어 놓고, 여전히 그녀에게 각종 혼인을 주선해 주었다.어쩌면 사실 그녀는 강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녀가 약한 사람이었다면 진작 죽어버렸을 수도 있었다.아무도 그녀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모른다. 단지 그녀의 겉모습만 보고 그녀를 나쁜 여자로 단정 지어 버렸다.그녀를 둘러싼
나중에 그녀는 아예 전화기를 꺼버렸다. 그제야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었다.기자가 일부러 하정원의 말을 왜곡해서 기사를 낸 탓에, 하정원은 “방탕하고 건방진 여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 덕분에 새해 연휴가 다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사이버폭력을 당했다.모든 사람은 하정원이 건방지고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혼 후에는 횡포를 부리며 기자한테 대들기까지 했으니, 각종 언론과 댓글에는 그녀의 욕설이 난무했다.화가 난 진철이 악성 기사를 낸 잡지사에 전화를 걸었다. 진철이 그들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잔뜩 겁을 먹은 잡지사 사장이 당장 연예부로 달려가 물었다.“어제 인쇄한 잡지 오천 부는?”“다 출간했는데요.”잡지사 사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당장 배포한 곳에 연락해. 그 잡지들 당장 돌려받아야 한다고. 그거 출간하면 안 돼. 큰일 난다고!”부서 사람들이 오전 내내 바쁘게 일했지만 회수한 잡지는 삼천 부가 조금 넘는 정도였다. 이미 천 부가 넘는 잡지는 사람들에게 팔고 없었다.잡지사 사장이 머리를 잡아 뜯었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새해 연휴에 이 기사로 이목을 많이 끌 수 있을 거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진철이 하정원을 위해 직접 나설 줄이야!진철이 군오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그라고 모르는 게 아니었다. 단지 그는 하정원과 진여훈이 이혼했으니 진 씨 가문에서 더 이상 이 일에 대해 상관하지 않을 줄 알았다.그가 물었다.“남은 천 부는 누가 사 갔어?”부하가 답했다.“천 씨 가문의 따님이요.”잡지사 사장이 입을 다물었다.천 씨 가문의 딸이라면, 하 씨 가문과 트러블을 일으켰던 그 여자?천지현은 곧바로 자신이 사들인 잡지 천 부를, 폭로 전문인 다른 잡지사에 넘겨, 잡지 사천 부를 추가 발행했다.그녀는 하정원이 누명을 벗을 수 있도록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하정원이 이틀이나 집에 돌아오지 않자, 한혜숙이 직접 진 씨 가문으로 찾아왔다. 그녀의 물음에 진철이 놀라 되물었다.“집에 안 들어갔
하정원이 시선을 내려뜨리며 미소 지었다.“사실 제가 별로 한 것도 없는걸요. 전 그냥 아이들한테 종이학과 별을 접는 방법을 가르쳤을 뿐이에요. 그것도 다 예전에 육진우가 가르쳐줬던 거고요…”원장이 그녀한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정원아, 네가 지금껏 진우를 놓지 못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 진우는 좋은 애였어. 다만 안타깝게도…”그녀가 갑자기 원장의 말을 끊었다.“원장님, 거기까지만요.”“정원아, 넌 현실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해.”원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역시 슬프긴 마찬가지였다.“이제는 너 자신을 좀 사랑해 줘.”하정원이 어떻게든 붙잡고 있던 마음속 그 한 가닥이 그 순간, 툭 하고 끊어져 버린 것만 같았다.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몇 년간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어떻게 오해해도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다만 육진우는 예외였다.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억누르고 있던 고통이 화산처럼 폭발해 버렸다.원장이 가슴 아파하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원장의 눈이 붉어져 있었다.“정원아 이제 그만 진우를 잊어.”“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그녀가 흐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원장을 더 세게 끌어안으며 목메어 울었다.“만약 저까지 그를 잊으면 누가 그를 기억해요. 그 사람은 저 때문에 죽었는데.”원장은 가슴이 아팠다.육진우는 보육원에서 자라난 아이였다. 그는 아무런 집안 배경 없이 어릴 때부터 원장의 손에서 키워졌다.원장한테 육진우는 자기 아들과 마찬가지였다.육진우는 말도 잘 들었고 철이 빨리 들었었다. 햇살처럼 밝은 아이라 웃기 좋아했고 모든 사람한테 친절한 남자아이였다.그는 한평생 착하게 살았지만, 하정원과 연애를 하고 좋지 못한 결말을 맞았다.하진석은 그가 자기 딸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몰래 두 사람을 제지했다. 심지어 자기 딸을 이용해 납치 사건까지 계획했다.원래 그는 그 일을 통해 육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