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지 않아?”“아직.””간단한 안부를 물은 원수정은 카메라를 뒤집어 방을 향하게 했다.“보여? 전에 살던 방보다 너무 좋아.”“응, 보여.”“나 혼자 이렇게 큰 곳을 쓸 수는 없는데.”“크면 편하지, 뭐.”원수정이 카메라를 다시 돌려 그의 얼굴을 마주봤다.“내가 어떻게 당신한테 감사해야 하지? 그리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내가 여기서 얼마나 살아야 할지 모르고, 심지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른다는 거야…….”“부담 갖지 마. 언제까지든 계속 살 수 있어, 나한테 감사할 필요도 없고. 내가 이러는 것도 다 유희를 위해서야.”윤정의 말에, 원수정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호텔에 대해서만 조금 더 이야기하다가 영상통화를 끝냈다. 어린 여자처럼 줄곧 윤정을 붙잡고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일은 해야 하는데, 이렇게 있는 듯 없는 듯한 느낌이 서로의 관계 발전에 더 좋지 않을까?방을 대충 정리한 원수정은 밖에 나가 쇼핑을 하며 옷을 샀다. 호텔에서 상점까지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사모님의 생활에 익숙한 그녀는 걷고 싶지 않아서 택시를 불렀다.이틀째 밖에 나가 놀고 있는 그녀. 매일 심심하고, 소비 외에 다른 즐길거리가 없다. 그래도 전의 호텔은 마작이라고 할 수 있었지…….4시가 좀 넘은 시각. 밖에서 돌아온 원수정이 호텔 로비에 들어섰고, 뒤에 있는 호텔 종업원이 그녀를 도와 차에 있는 크고 작은 쇼핑백을 들고 내렸다.“수정 씨.”원수정은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돌려 윤정을 보고 의아해했다.“어떻게 온거지?”“출장 온 김에 잠깐 들렀어.”말을 마친 윤정의 눈길이 호텔 종업원의 손으로 향했다.“쇼핑하러 갔다왔어?”“내 물건도 부쳐줄 수 없다는데, 당연히 가서 새로 사야지.”윤정이 그 말을 듣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물었다.“부쳐줄 수 없다니? 무슨 일이 생긴거야?”“일단 방으로 가. 내가 너희 집 그 두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해주지.”한숨을 내쉰 원수정이 윤정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유희가 태어났을 때 얼마나 쭈글쭈글했던지, 내가 왜 이렇게 못생긴 녀석을 낳았을까, 싶었다니까? 후에 자랄수록 예뻐졌기에 망정이지.”회상하던 원수정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옆에 있는 윤정도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그런데, 낳긴 했지만, 키울 용기가 없었어. 그래서 우리 오빠네 부부한테 맡기고, 개인적으로 생활비를 보내줬지. 나중에 오빠가 결코 좋은 아버지가 아니란 걸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들이 유희한테 잘해주도록 그저 더 많은 돈을 줄 수밖에.”“당신한테도 사정이 있었잖아.”“나는 늘 당신한테 아이의 존재를 알려주면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을까 자문했어. 아이의 귀엽고 앳된 얼굴을 볼때마다, 사랑해줄 아버지가 없다는 게 안타까웠지. 우리 오빠 때문에 아이가 섭섭해 할 때마다, 정말 너의 친아버지는 부드러운 남자고, 너에게 웃어주고, 사탕도 사주고, 같이 유치원에도 가 줄 거라고 말하고 싶었어…….”윤정은 말이 없었다. 이건 그녀의 탓이 아니다.“과거 일 가지고 고민하지 마. 유희는 앞으로 아직 살 날이 많고, 우리가 계속 그 아이 옆에 있을 거야.”“그 아이가 앞으로 살 날은 김신걸이 다 망쳤어. 그때 오빠네 부부가 사고가 난 후, 유희를 김씨 가문으로 데리고 가서 김영에게 내 조카딸이라고 소개했지. 그 사람은 내 체면을 봐서 아이를 아껴줬는데, 그때 김신걸 눈에 들 줄은 몰랐지.”“그때 유희는 몇 살이었어?”윤정의 얼굴빛이 변한 걸 보고, 원수정은 그가 오해했다는 걸 알았다.“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 유희를 괴롭혔어. 유희가 걔를 무서워하고, 찍소리도 못했지. 후에 유희는 외국으로 도망갔고, 김신걸도 갑자기 실종된 것 같았어. 더 이상 김영에게 돌아오지도 않고 제성에 나타나지도 않아서 유희도 괜찮을거라 생각하고 전화해서 그 애를 불렀는데, 뜻밖에도 김신걸에게 가로막혀서 호텔에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김신걸이 당신 때문이라고 하는 걸 들었는데…….”“뭐가 나 때문이야, 헛소리! 내 말 들어봐. 애초에 김영이 나를
바람이 불자 원수정은 호텔 쪽으로 걸어갔고, 윤정은 몸을 풀었다.하늘에 걸려 있는 달, 그리고 온 하늘에 가득한 별이 내일의 화창한 날씨를 말해주는 순간. 그러나 윤정의 마음은 그리 화창하지 않다. 망설여지고, 무겁고, 복잡한 마음…….그는 차마 원수정에게 헤어진 후 오랫동안 바깥 세상으로 나올 수 없었다고, 억지로 나온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미 정이 없어진 전처와 재혼하는 그 괴로움은 딸을 대할 때만 좀 편해질 수 있다. 딸이 없을 때는, 모든 힘과 노력을 사업에만 쏟아부었다.시간은 빨리 흘러갔고, 그리운 마음도 희미해져갔다.다만 마음 속에 있던 사람을 다시 만나면 책임감이 더 강해지고 마음이 더 무거울 뿐이다. 원수정은 모를 것이다. 자신과 그녀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그녀에게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만약 유희가 정말 표원식을 좋아한다면, 윤정도 아버지로서 자연히 그녀 생각을 하게 되겠지. 원수정은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며 샤워하고 있다. 스위트룸에는 윤정의 그림자가 없지만, 그에게 이렇게 큰 담력이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급하지 않아, 한 번이나 두 번이나 똑같지 뭐.’원유희는 거실 바닥에 누워 세 아이들에게 눌려 장난치며 웃고 있다.“그만, 그만해…….”기운이 좋은 어린아이는 아무리 놀아도 피곤하지 않다. 갓 태어났을 때처럼 낮에는 잠도 안 자고 밤에도 힘이 넘친다. 그때 원수정과 아주머니는 모두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다.“엄마 목 마르죠? 제가 물 따라드릴게요!”조한이 일어나서 물을 따르러 갔다.“물 마시고, 계속 같이 놀아요!”“음…….”유담의 말에 원유희는 입꼬리를 두 번 당겼다.“엄마, 다리 아프죠? 안마해 드릴게요!”상우는 옆에서 두 손으로 다리를 얼얼하게 꼬집는다.원유희가 품 속에 애교 부리고 있는 유담이를 안고 장난치고 있을 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엄마, 누가 찾아요! 제가 가져올래요!”유담이 작은 얼굴을 내밀고 일어서서 휴대폰을 가지러 갔다.“고마워, 우리
그녀는 지금 6층에 있으니, 집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아빠 지금 5층이세요? 저 지금 동네 산책 중이예요!”전화를 끊은 원유희가 아이들과 황급히 인사를 하고 나갔다.문이 쾅 닫히고, 조한이 물컵을 손에 든 채 어른처럼 한숨을 내쉬며 묵묵히 물을 마셨다.원유희가 재빠르게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계단 모퉁이에 윤정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을 때, 윤정이 의아해했다.“동네 산책하고 있다며? 왜 위에서 내려왔어?”아버지가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그녀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동네 산책하다가 6층 아이를 만나서 데려다줬거든요. 올라가자마자 아빠한테서 전화가 온 거예요.”윤정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라는 단어가 순식간에 그의 마음을 건드렸을 뿐. 원유희가 잃었던 아이와 그녀의 성하지 못한 몸만 연상되었다.“아빠는 왜 이 시간에 왔어요? 밥은요?”뭔가 들킬까 두려워 원유희는 화제를 도렸다.“여기로 먹을 걸 좀 보냈거든, 지금 거의 다 왔다고 하니까 문 좀 열어봐.”“네.”원유희가 문을 열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누군가가 저녁을 집까지 가져다주었다. 김신걸도 이전에 같은 행동을 했었는데. 부자들은 정말 제멋대로다.윤정은 원유희와 몇 번 식사를 같이 하면서, 딸과 자신이 입맛이 참 비슷하다는 걸 알았다. 안 먹는 것, 좋아하는 것, 못 먹는 것이 다 똑같았고, 이 사실이 자신으로 하여금 그녀를 더 아끼게 한다.“너네 엄마를 보러 갔었어.”윤정의 말에, 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아주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아버지가 어머니를 보러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너의 엄마가 나에게 표원식에 대해 말했어. 아직도 그와 연락하니?”윤정이 관심을 가지며 물었다.“그냥… 저번에 한 번 만났어요. 그냥 애들 때문에 만나는 거고, 나머지는 다 피해요. 저와 그 사람 사이 아무것도 아니예요.”그녀는 윤정의 말 뜻을 알아들었다는 듯 대답했
이 말을 들었음에도, 원유희는 이미 아무런 설렘과 기대도 없었다.“아빠, 제 상황을 모르시잖아요…….”“아빠도 알아, 그건 문제가 아니야. 표원식이 마음에 들면, 너희 둘의 감정만 확실하면, 다른 건 아빠가 다 해결할게.”엄숙한 표정을 보고, 원유희의 얼굴이 멍해졌다. 이게 맞는걸까? 비록 지금 김신걸이 그녀를 보고도 못 본 척하지만, 자신에게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여전히 호적 문제가 남아있기에.“김신걸에게 답을 받아낼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마.”윤정이 그녀를 위로했지만, 원유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제 문제예요.”“무슨 문제인데? 네가 표원식한테 마음이 있으면 된 거지”원유희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이제 세 아이들의 일도 모두 나수빈에게 알려졌는데, 어찌 자기 아들을 그런 여자와 결혼시킬 수 있겠는가? 이전에 표원식과 표씨 가문과 함께 밥을 먹을 때, 그녀는 숨겨진 아이들을 걱정했다. 지금 알려진다면 상황이 더 어려워질 걸 알았기에.“이 일은 아빠한테 맡겨, 다 잘 되게 해줄 테니까.”윤정이 한 마디 반대도 없이 결정을 내렸고, 그녀는 정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만약 김신걸이 그녀와 표원식을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자유도 먼 일이 아닌 걸까?한번 떠 봐야 되나? 그럼 원수정의 집은 어떻게 하지? 그냥… 하나 하나 해 보자!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을 테니.윤씨 가문에서 식사 자리가 있다며 윤정이 원유희를 초대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은 윤씨 집안 세 식구와, 예비 사위 김신걸. 처음 먹은 식사와 많이 다르지 않고, 마음도 처음 식사 때보다 많이 적응했다. 다른 사람들은 결코 그녀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김신걸. 그의 기가 너무 강해서 공기 중의 산소가 부족하고, 호흡마저 원활하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였다.일주일 전 드래곤 그룹을 찾아가 굴욕을 당한 뒤 처음 만나는 자리. 본체만체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장미선 모녀는 그녀는 보고 능청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지난번에 집을 빼앗은 건
윤설은 숙녀처럼, 끼어들지 않고, 말을 가로채지 않으며 교양있게 대화하고 있다.“설이가 막 태어났을 때, 그렇게 많은 아이들 중에 혼자만 깨끗했지, 어릴 때부터 참 예뻤어!”장미선이 윤설을 칭찬하다가, 갑자기 윤정을 끌어들였다.“당신, 설이 태어날 때 당신 모습 기억나?”“내가 뭐 어땠는데?”윤정이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내가 못 본 줄 알고? 눈시울이 붉어져서, 손에 폭탄이라도 안듯이 조심스럽게 안는 모습 말이야.”장미선이 웃을 때, 윤정은 말없이 원유희에게 눈을 돌렸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접시에 있는 쇠고기를 썰어 입에 넣어 천천히 씹어 삼켰다.“유희야, 또 뭐가 먹고 싶니?”“네?”윤정의 물음에 원유희가 고개를 들어 대답할 때, 그녀의 입가에 후추가루가 묻은 걸 보고 윤정은 웃음이 터져서 물티슈를 들어 입가를 닦아주었다.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태도에 원유희는 얼굴이 붉어져서 물티슈를 가져와 스스로 닦았다.장미선과 윤설이 이 광경을 보자마자 안색이 변했지만, 김신걸도 현장에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냥 지나갔다.“저는 배 불러요, 더 안 먹어도 돼요.”원유희가 말한 순간, 윤정의 몸에 있는 휴대폰이 울리더니 문자가 왔다. 원수정이 보낸 문자. 다 본 후에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주머니에 쑤셔 넣었는데, 장미선이 예민하게 물어왔다.“왜? 사업 때문에 연락 온거야?”“별 일 아니야.”윤정의 말을 들으며, 원유희는 시선을 멈추었다. 장미선 이 사람은 의심병이 정말 심한 것 같다. 문자 한 통 내용까지 다 물어보다니.휴대폰을 놓은 후, 윤정이 말했다.“설이와 유희는 모두 내가 아끼는 딸이야. 설이는 좋은 짝을 만났지만, 유희가 걱정이지. 그래서 유희에게 잘 맞는 짝을 찾아주려고 해.”말이 끝나고, 원유희는 모든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김신걸은 아무 내색 없이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장미선과 윤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고 있다.그녀는 그저 김신걸의 반응에만 신경이 쓰였다. 별다른 변화가 없는 듯하지
강경한 말투에, 장미선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좋은 가문이든, 원유희는 김신걸을 제외하고는 아무리 좋은 남자에게 시집가도 영원히 윤설에게 짓눌려 살 것이다. 그렇다면 뭐가 걱정인가? 다만, 원유희를 위해 일심전력으로 도와줄 생각을 하는 윤정의 그 마음이 그녀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윤정에게는 딸이 하나여야 마땅하다, 바로 윤설.원유희의 마음은 장미선 모녀에게 있지 않았고 모든 주의력이 김신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눈은 그쪽을 보지 않았지만 몸과 마음이 모두 묶인 듯하다.말도 다 했고, 밥도 다 먹었다. 아무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으며, 윤정의 태도도 확고하다.원유희는 윤정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아직 뭘 걱정해? 신걸이도 반대하지 않잖아, 반대할 자격도 없지.”원유희도 윤정이 그녀를 위해 모든 사람 앞에서 그 자신의 아이디어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걸 알고 있다.“아빠, 표씨 집안과 표원식을 찾아가지 않으셔도 돼요…….”“왜, 싫으니?”“저는 지금 그런 생각이 없어요.”“네 뜻을 이해해. 표원식과 연락하면서 만약에 그런 생각이 생기면 언제든지 말해야 해.”“알았어요…….”자상하게 웃는 윤정에게 원유희는 건성으로 말했다.그녀는 알고 있다, 이미 불가능하다는 걸. 세 아이들이 가장 큰 문제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문제……. 그래서 아무도 그녀의 심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아파트로 돌아온 원유희는 일단 5층으로 돌아가 목욕을 하기 전에 김신걸의 위치를 살펴보았다.어전원.그녀가 예민한 게 아니라, 정말 김신걸에게 학대를 받아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다.목욕을 마친 그녀가 6층으로 올라갔고, 문이 열리자마자 조한이 새끼 펭귄처럼 앞에 서서 통통하고 작은 얼굴을 젖히며 말했다.“나는 엄마인줄 아라떠요! 엄마 오셔따!!!”유담도 서서 깡충깡충 뛰었다.“오래 기다려떠요 엄마!”“엄마, 여기예여!”소파에 서서 손을 들어 엄마의 주의를 끌려고 하는 상우의 포동포동한 두 발이 소파를 바짝 붙들고
집을 나온 두 사람은 계단으로 갔다. 원유희의 마음 속에는 표원식이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의문으로 가득하다. 그냥 애들 보러 왔나? 오늘 방금 윤씨 가문에서 그녀와 표원식의 관계에 대해 얘기했는데, 마침 이렇게 만나다니.그러나 표원식은 이런 얘기가 언급됐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기에, 생각만 해도 마음이 좀 불편하다.“밥 먹으러 나갔던 거예요?”“네, 우리 아빠랑요.”“이틀 전에 윤 선생님을 만났어요, 제 삼촌과 식사 중이셨죠.”원유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알아보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식사까지 함께 한 사이라니. 단순히 사업을 위해서일까, 아니면…….“아빠가 뭐라고 하던가요?”“걱정돼요?”원유희의 물음에, 표원식이 농담을 던지는 듯한 눈빛으로 다시 물어왔다.“아니 제가 무슨 걱정이 있어요…….”“당신 아버지가 우리가 서로 아는 사이인지, 사적으로 물어보셨어요.”“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는데요?”“뭐라고 대답했으면 좋겠는데요?”계단을 내려오던 표원식의 발이 멈추고, 그녀를 보았다. 그를 따라 멈춘 원유희는 시선을 한쪽으로 회피했다.“우리가 안 된다는 걸 알아요. 너무 많은 장애가 있고…….”“그래요? 근데 당신 아버지는 다음에 당신과 나와 셋이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하셨어요. 그럼 거절할 거예요?”원유희는 대답하지 않았고, 표원식도 강요하지 않고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그렇게 그가 차에 타고 떠날때까지, 그녀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다음날 출근할 때까지 원유희의 머릿속에는 이 일이 떠나지 않았다.‘아빠와 정말 밥을 먹었다고? 언제? 어제 아빠와 만났을 때도 이런 얘기는 없었는데. 그냥 하는 얘기일까?’정말 셋이 같이 밥을 먹는다면, 윤정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녀도, 표원식도 분명히 알고 있다.“원 매니저, 10분 후에 나와 함께 총재실로 가요.”고선덕이 부서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하는 말을 듣고, 원유희의 심장박동이 터질 듯 커졌다.총재실… 김신걸이 있는 사무실 아니야? 다른 사람이 빌려쓰거나 그럴 일은 없겠지?총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