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싫다면 섭정왕께서 어떻게 동서(董紓)와 결탁하여 여비의 복수를 하고 태상황을 해치려 했는지 말씀해 보시지요?”부진환의 이성이 고통을 이겼다. 그는 호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꺼지거라!”류 공공은 냉소를 흘렸다.“그렇다면 낙월영이 고생해야겠군요.”“계속 때리거라!”류 공공이 명령을 내리자 옥졸은 다시 한번 낙월영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했다.낙월영은 이미 온몸이 피로 물들어 한 발짝도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바닥에 웅크린 채로 비명만 내질렀다.“그만! 그만!”부진환은 다시 한번 흥분하며 힘껏 쇠사슬을 당겼다.분노를 터뜨리는 그의 입에서 피가 울컥울컥 뿜어져 나왔다.눈시울이 붉어진 낙청연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힘껏 주먹을 쥐고 있었다.그녀는 심장이 바늘에 찔린 듯 쿡쿡 쑤셔왔다.왜 저러는 걸까? 부진환이 왜 피를 토한다는 말인가?분명 문제가 있었다!낙청연은 곧바로 앞으로 나섰다.“그만!”그녀는 옥졸의 손에서 채찍을 빼앗아 들더니 옥졸을 밀쳤다.류 공공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왕비 마마, 뭐 하시는 것입니까?”낙청연은 서늘한 음성으로 대답했다“태상황께서 섭정왕을 다치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소!”류 공공은 안색이 돌변하며 콧방귀를 끼었다.“태상황께서 명령을 내리셨다고요? 태상황께서 직접 쓰신 명령서가 있습니까? 태상황께서는 병 때문에 침상에 누워계시고 말조차도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명령을 내린다는 말입니까?”낙청연은 매서운 눈초리와 오만한 말투로 또박또박 말했다.“내가 명령을 내렸다고 하면 내린 것이오!”류 공공은 분한 마음에 곧바로 반박했다.“하지만 저는 낙월영을 고문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태상황의 명령이란 말입니까?”낙청연은 바닥에 쓰러진 낙월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낙월영이 그냥 맞아 죽길 바랐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그녀를 구해야 했다.“낙월영이 태후 마마를 암살하려 했다는 데 흉기는 어디 있소? 무엇으로, 어떻게 암살하려 했소? 유죄인 게 확실하여 고문하려는 것이오?
낙청연은 잠깐 움찔하더니 삽시에 눈시울이 붉어졌다.“뭐라고요?”낙청연은 영문을 알지 못했다.부진환은 힘없는 목소리로 무력하게, 목이 살짝 메어 말했다.“미안하다. 나도 날 통제하지 못하겠다.”그 목소리에 낙청연은 마음이 아팠다. 그 순간 그녀는 모든 걸 이해했다.결국 참지 못한 낙청연은 그를 와락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알겠습니다. 다 알겠습니다.”낙월영을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니라 부진환은 정말로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부진환은 몇 번이나 낙청연에게 도움을 구하며 이 세상에 사람을 조종할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그런데도 낙청연은 부진환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고 그가 낙월영을 너무 사랑해서 그러는 건 줄로 알았다.낙월영이 맞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 머리가 아프고 피를 토한 게 아니라 무언가 부진환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었다!부진환은 너무 아파 꼼짝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애써 팔을 들어 낙청연을 품에 안았다.그녀의 어깨에 맥없이 턱을 올린 뒤 부진환은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의 입가에 창백한 미소가 걸렸다.“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그의 나긋나긋한 음성이 낙청연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마치 깃털처럼 언제든 날아갈 것 같은 목소리였다.낙청연은 마음이 아렸다.“왜 얘기하지 않은 것입니까?”“저한테 한 번도 얘기하지 않으셨지요.”“저희 함께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낙청연은 부진환의 감정 기복이 큰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부진환은 낙월영의 일이라면 항상 이성을 잃었다.멀지 않은 곳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낙월영은 두 사람이 서로 꼭 끌어안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콕콕 쑤셨다.그녀는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왠지 모르게 불쾌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왜 낙청연인 걸까?왕야는 낙청연을 밀어내야 하는데 왜 그녀를 안고 있는 것일까?지금까지 한 고생들이 전부 헛수고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부진환은 기운 없이 낙청연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통증이 조금 가신 지금 그는 이 순간이 제법 기꺼웠다
낙청연은 경계하며 낙월영을 등 뒤로 끌어당겼다.태후는 그 장면을 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별일이구나. 네가 스스로 나서서 낙월영을 보호하는 걸 보게 되다니. 낙월영이 널 어떻게 대했는지 잊은 것이냐?”“낙월영을 내게 넘기거라. 내가 절대 편히 지내지 못하게 할 것이다.”낙월영은 바짝 긴장하며 낙청연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낙청연은 서늘한 눈빛으로 태후를 보았다. 낙월영이 태후의 손에 들어간다면 태후는 낙월영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낙월영을 이용해 부진환을 괴롭히고 조종할 것이다.“낙월영도 어쨌든 섭정왕부의 사람입니다. 왜 태후 마마께 넘겨야 합니까?”“죽인다고 해도 제가 직접 죽여야지요.”태후의 표정이 싸늘해졌다.“낙청연, 태상황의 명령을 핑계로 부진환을 지키는 건 그렇다 쳐도 낙월영까지 보호하려는 것이냐? 내가 그렇게 쉽게 속을 것 같으냐?”낙청연은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날 선 눈매로 태후를 노려보았다.“태후 마마께서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습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태상황께 확인해보면 되니깐요. 태상황께서는 태후 마마께서 궁금해하는 모든 것에 대답해드릴 수 있습니다.”태후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지금 태상황을 찾아간다면 태상황은 낙청연을 도우려 할 것이다.태상황이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고개를 저을 수 있으므로 낙청연을 어찌할 수 없다.“잘됐구나. 낙청연, 굳이 나와 척지겠다면 어디 한 번 지켜보마. 네가 태상황을 등에 업고 언제까지 거만 떨 수 있을지 말이다.”“만약 태상황의 병이 확연히 호전되지 않는다면 넌 사지가 찢길 것이다!”말을 마친 뒤 태후는 차갑게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낙월영은 그제야 안도하며 천천히 낙청연의 옷자락을 놓았다.그녀는 복잡한 심경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낙청연이 태후와 대거리하면서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지키려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낙청연은 낙월영을 데리고 그곳에서 벗어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보았지? 엄씨 가문은 널 죽일 생각이다.
괘상은 호국천랑성(護國天狼星)이 추락하고 천궐국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했다.전쟁의 불길은 천궐국의 절반을 전부 삼킬 것이다.이것은 천궐국의 큰 재앙이었고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다.낙청연은 갑자기 만족과 진천리가 떠올랐다.그녀는 혹시나 진천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별안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하지만 부진환이 사람을 보냈을 때 별일 없다고 전한 적이 있었다.낙운희가 이렇게 오랫동안 아무런 소식도 전하지 않은 걸 보면 무사할 것이다.모든 것이 평화롭게 느껴졌지만 괘상이 틀릴 리 없었다.그래서 날이 밝자 낙청연은 사람을 시켜 폐하를 모셔 오라고 했고 그에게 변방의 만족에 관해 물었다.부경한이 대답했다.“그쪽은 태평한 듯하다. 아직은 좋지 않은 소식이 없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저번에 사라졌던 만족 사람들이 수상합니다. 변방 쪽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폐하, 요 며칠 변방 쪽 소식을 듣게 된다면 반드시 꼼꼼히 살펴봐 주시옵소서.”부경한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다.”“저번에 수희궁에 가보고 싶다고 했었지? 하지만 태후가 요 며칠 수희궁에서 요양하면서 외출을 거의 안 해 당분간은 태후를 유인할 방법이 없다.”“그러니 조금 더 기다려야겠다.”부경한 또한 마음이 급했지만 너무 대놓고 드러낼 수는 없었기에 기회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 역시 마음을 다잡고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이틀 뒤 드디어 부경리가 소식을 전했다.“역시나 일이 터졌습니다.”“만족이 변방을 습격해 군사 상황이 급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정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그 말에 낙청연은 흠칫했다. 과연 일이 터졌다.“지원이 필요할 정도로 갑자기 군사 상황이 급박해질 리가 없습니다. 분명 한참 전에 일이 터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식이 이제야 수도에 전해진 것이겠지요!”부경리는 그 말에 안색이 달라졌다.“일리 있습니다!”“지금 조정 대신들 사이에는 쟁론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들은 이제 막 소식을
낙청연은 지도를 보며 말했다.“무진도 중요하지만 무진의 뒤에는 산이 있어 자연적인 방어벽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적군이 나쁜 의도를 품고 무진을 공격하려 해도 당분간은 이 산을 뚫을 수 없습니다.”“오히려 이쪽이 문제입니다. 이곳이 함락된다면 만족은 막힘없이 곧장 천궐국으로 쳐들어올 수 있습니다.”부경한의 눈이 번뜩였다.“진 태위도 그렇게 말했다.”“하지만 엄 태사가 극구 말렸지. 진 태위는 자기 아들을 걱정하는 것뿐이라 공정하게 생각하지 못한다면서 말이다.”낙청연은 미간을 구겼다.“엄씨 가문은 미친 겁니까? 만족이 천궐국을 침범해서 그들이 얻는 게 뭐가 있습니까?”말을 내뱉자마자 낙청연은 그들이 챙길 이득을 하나 떠올렸다.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떴고 그녀의 눈동자에는 한기가 감돌았다.“왕야께서 옥에 갇혀 있으니 만족이 쳐들어온다면 엄씨 가문은 왕야의 손에서 병권을 빼앗을 명분이 생깁니다. 전력을 다해 만족에게 저항해야 한다면서 말입니다.”“계산을 아주 잘했군요.”그 말에 부경한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그러면 안 되지!”“만약 병권이 엄 태사의 수중에 들어간다면 이 천하는 엄씨 가문의 것이 될 것이다!”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그것이 바로 그들의 목적일지도 모릅니다.”낙청연의 미소에 머리털이 쭈뼛 선 부경한은 자세히 생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그렇다면 지금 어찌해야 하느냐?”부경한은 초조해 보였고 낙청연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수희궁에 가봐야겠습니다!”“방법을 생각해 보세요!”낙청연은 무언가를 놓친 기분이 들었고 정교하게 꾸민 그 방을 다시 한번 뒤져보고 싶었다.게다가 아직 동서의 비밀도 알아내지 못했다.그것들을 알아낸다면 돌파구가 생길지도 몰랐다.“그래. 짐에게 맡기거라!”잠시 고민하던 부경한은 방법을 떠올렸다.-다음 날, 부경한은 수희궁으로 향했다.최근 마음이 심란하다는 이유로 태후와 함께 엄씨 가문으로 가서 기분전환을 하겠다고 했다.겉으로는 대신들의 접견을 피하기 위해서였으나 사실은 사정하기 위
궤짝 안에서 발견했던 신발과 같은 재질인 듯했다.밑창이 닳은 정도도 비슷했고 안쪽이 더 많이 닳은 것도 비슷했다.류 공공은 곧 자리를 떴다.자리에서 일어난 낙청연은 주위에 사람이 보이지 않자 다급히 뒤쪽에 있는 화원으로 향했다.문을 열어 안쪽을 보니 많이 변한 모습이었다.침상 위 이불은 원래 개어 있었는데 마치 누군가 그곳에서 잔 적이 있는 것처럼 지금은 흐트러져 있었다.침상에 다가가 이불 안을 만져 보니 온기가 느껴졌다!낙청연은 깜짝 놀랐다. 저 사내가 이곳에서 지내고 있었단 말인가?옷장을 열어보니 옷장 안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그러나 탁자 위 찻주전자 안에 뜨거운 물과 누군가 썼던 찻잔이 늘어났다.조금 전 류 공공이 이 방향에서 나온 걸 떠올린 낙청연은 어쩌면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이 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와 동서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란 말인가?그건 아닌 듯했다. 류 공공이 아무리 태감이라도 해도 태후의 침궁 뒤쪽에서 지내고 있을 리 만무했다.그런 생각을 하면서 낙청연은 곧바로 방 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그녀는 더 많은 단서를 찾기 위해 자세히 둘러보았고 그러다가 침상에서 비밀 통로를 하나 찾았다. 나무 판자를 들어보니 아래쪽에 아주 깊어 보이는 통로가 있었다.낙청연은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혹시나 류 공공이 돌아오더라도 누군가 비밀 통로 안에 들어갔다는 걸 발견하지 못하게 이불과 나무판자를 손에 쥔 뒤 그것을 덮었다.순조롭게 지하로 들어간 낙청연의 눈앞에 통로가 펼쳐졌다.그녀는 화절자에 불을 붙인 뒤 앞으로 걸어갔다.비밀 통로는 넓은 편이 아니었고 수리도 안 된 것이 몰래 파놓은 통로 같아 보였다. 게다가 꽤 오래전에 파놓은 것 같았다.통로는 구불구불했고 낙청연은 한참을 걸어서야 출구에 도착했다.그녀는 마른 우물 안에서 기어 나왔다.그곳은 작은 마당이었다.낙청연은 밖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태감들이 지내는 곳 같아 보였다.혹시 류 공공의 거처일까?낙청연은 몰래 방 안으로 들어가서
“목 장원, 이 두 처방은 태의원에서 준 것이오?”목 장원은 그것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태의원에서 준 처방이 맞소. 하지만 진료한 뒤 쓴 처방이 아니라 태의원에서 규정대로 치른 시험에서 쓴 처방 같소.”“그렇다면 이 필적이 누구의 필적인지 알 수 있겠소?”목 장원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성백천의 필적일 것이오.”그 말에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성백천이라고?”목여해(穆如海)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왜 그런 걸 묻는 것이오? 그리고 이것들은 시험 때 작성했던 처방으로 태의원에 있어야 하는데 왜 당신에게 있는 것이오?”“성백천이 무슨 나쁜 짓을 한 것이오?”목여해는 긴장한 얼굴이었다.낙청연은 말머리를 돌리며 물었다.“장원, 그러면 하나만 더 묻겠소. 태의원의 정무량은 해결했소?”목여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해결할 것이오. 하지만 차근차근히 해야 하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처방을 들고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장원, 성백천이 말하길 그는 어릴 때부터 태의원에 있었다고 했소. 장원이 그를 주웠다고 하더군.”“맞소. 성백천은 태의원에 오랫동안 있었소.”“그런데 그는 왜 아직도 별 볼 일 없는 태의인 것이오? 성백천은 진료한 적도 아주 적던데 혹시 일부러 그를 숨기려 한 것이오?”그 말에 목여해의 안색이 달라졌다.그는 탄식하며 말했다.“일부러 그를 억압한 것은 아니오. 다만... 그 아이는 궁 밖의 사람이 아니오. 누구의 아인지는 나도 알지 못하오. 그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아 최대한 밖으로 나가는 걸 막은 것이오.”그렇군!낙청연은 그제야 어릴 때부터 태의원에서 의술을 배운 성백천이 왜 지위가 그토록 낮은지 깨달았다. 정무량이 일부러 압력을 가한 것도 있지만 목 장원의 사심도 있었다.그녀는 류 공공의 처소에서 발견한 아이의 옷이 문득 떠올라 반쪽짜리 옥패를 꺼냈다.“장원, 혹시 이 옥패의 반쪽을 본 적이 있소?”옥패를 보는 순간 목여해의 낯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뒤이어 낙청연은 목 장원을 따라 태의원에 갔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출입이 편하게 일부러 의관으로 변장했다.목 장원은 그녀를 데리고 당안각(檔案閣)으로 향했다.그는 책궤 안에서 오래되어 먼지가 쌓인 서권(書卷)을 뒤적이기 시작했다.한참을 찾은 끝에 목 장원은 두 권의 두꺼운 책을 꺼냈다.“이것이오.”낙청연은 책을 펼쳐 한 장씩 읽기 시작했다.그녀는 이궁의난이 발생하기 1년 전의 진맥 기록을 살폈다. 비빈들 모두 고정된 태의가 정기적으로 진맥했지만 태후의 진맥 기록을 보니 중간에 사람을 한 번 바꿨다.“장원, 이 허흥덕(許興德) 태의는 있소?”목 장원은 고개를 저었다.“돌아가신지 꽤 됐소.”낙청연은 다시 기록을 살피기 시작했고 이내 미간을 구겼다.“왜 그러시오? 무슨 문제가 있소?”낙청연이 말했다.“이걸 보시오. 3월 초 태후 마마께서는 식욕이 저하되고 속이 메스꺼우며 자주 졸리다고 했소. 하지만 진맥하지 않고 그저 약을 복용하셨소.”“4월이 되고 진맥한 태의가 허흥덕으로 바뀌었소.”“그 뒤로 열 달 동안 허흥덕 태의가 태후 마마를 진맥했고 맥은 전부 정상적이라고 기록되었소.”“허흥덕이 가짜 기록을 만든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소?”“장원은 허흥덕이 어쩌다가 죽었는지 기억하시오? 정상적으로 죽었소 아니면 사고로 죽었소?”목여해는 번개라도 맞은 듯이 경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머릿속이 윙윙 울렸다.그는 목이 메어 힘겹게 입을 열었다.“사고... 였소...”낙청연은 그 대답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그러니 당신이 주운 그 아이는 태후 마마의 아이일 것이오.”“목 장원, 이 사건이 있은 뒤 많은 시간이 흘렀소. 태의원에서 이와 관련된 증거를 찾을 수 있겠소?”목여해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그건 어렵소.”“당신의 추측대로 허흥덕이 입막음을 위해 죽임을 당했다면 그와 관련된 증거도 분명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을 것이오.”“그리고 난 성백천의 신분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소. 그는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