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청연은 경계하며 낙월영을 등 뒤로 끌어당겼다.태후는 그 장면을 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별일이구나. 네가 스스로 나서서 낙월영을 보호하는 걸 보게 되다니. 낙월영이 널 어떻게 대했는지 잊은 것이냐?”“낙월영을 내게 넘기거라. 내가 절대 편히 지내지 못하게 할 것이다.”낙월영은 바짝 긴장하며 낙청연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낙청연은 서늘한 눈빛으로 태후를 보았다. 낙월영이 태후의 손에 들어간다면 태후는 낙월영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낙월영을 이용해 부진환을 괴롭히고 조종할 것이다.“낙월영도 어쨌든 섭정왕부의 사람입니다. 왜 태후 마마께 넘겨야 합니까?”“죽인다고 해도 제가 직접 죽여야지요.”태후의 표정이 싸늘해졌다.“낙청연, 태상황의 명령을 핑계로 부진환을 지키는 건 그렇다 쳐도 낙월영까지 보호하려는 것이냐? 내가 그렇게 쉽게 속을 것 같으냐?”낙청연은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날 선 눈매로 태후를 노려보았다.“태후 마마께서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습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태상황께 확인해보면 되니깐요. 태상황께서는 태후 마마께서 궁금해하는 모든 것에 대답해드릴 수 있습니다.”태후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지금 태상황을 찾아간다면 태상황은 낙청연을 도우려 할 것이다.태상황이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고개를 저을 수 있으므로 낙청연을 어찌할 수 없다.“잘됐구나. 낙청연, 굳이 나와 척지겠다면 어디 한 번 지켜보마. 네가 태상황을 등에 업고 언제까지 거만 떨 수 있을지 말이다.”“만약 태상황의 병이 확연히 호전되지 않는다면 넌 사지가 찢길 것이다!”말을 마친 뒤 태후는 차갑게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낙월영은 그제야 안도하며 천천히 낙청연의 옷자락을 놓았다.그녀는 복잡한 심경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낙청연이 태후와 대거리하면서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지키려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낙청연은 낙월영을 데리고 그곳에서 벗어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보았지? 엄씨 가문은 널 죽일 생각이다.
괘상은 호국천랑성(護國天狼星)이 추락하고 천궐국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했다.전쟁의 불길은 천궐국의 절반을 전부 삼킬 것이다.이것은 천궐국의 큰 재앙이었고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다.낙청연은 갑자기 만족과 진천리가 떠올랐다.그녀는 혹시나 진천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별안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하지만 부진환이 사람을 보냈을 때 별일 없다고 전한 적이 있었다.낙운희가 이렇게 오랫동안 아무런 소식도 전하지 않은 걸 보면 무사할 것이다.모든 것이 평화롭게 느껴졌지만 괘상이 틀릴 리 없었다.그래서 날이 밝자 낙청연은 사람을 시켜 폐하를 모셔 오라고 했고 그에게 변방의 만족에 관해 물었다.부경한이 대답했다.“그쪽은 태평한 듯하다. 아직은 좋지 않은 소식이 없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저번에 사라졌던 만족 사람들이 수상합니다. 변방 쪽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폐하, 요 며칠 변방 쪽 소식을 듣게 된다면 반드시 꼼꼼히 살펴봐 주시옵소서.”부경한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다.”“저번에 수희궁에 가보고 싶다고 했었지? 하지만 태후가 요 며칠 수희궁에서 요양하면서 외출을 거의 안 해 당분간은 태후를 유인할 방법이 없다.”“그러니 조금 더 기다려야겠다.”부경한 또한 마음이 급했지만 너무 대놓고 드러낼 수는 없었기에 기회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 역시 마음을 다잡고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이틀 뒤 드디어 부경리가 소식을 전했다.“역시나 일이 터졌습니다.”“만족이 변방을 습격해 군사 상황이 급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정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그 말에 낙청연은 흠칫했다. 과연 일이 터졌다.“지원이 필요할 정도로 갑자기 군사 상황이 급박해질 리가 없습니다. 분명 한참 전에 일이 터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식이 이제야 수도에 전해진 것이겠지요!”부경리는 그 말에 안색이 달라졌다.“일리 있습니다!”“지금 조정 대신들 사이에는 쟁론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들은 이제 막 소식을
낙청연은 지도를 보며 말했다.“무진도 중요하지만 무진의 뒤에는 산이 있어 자연적인 방어벽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적군이 나쁜 의도를 품고 무진을 공격하려 해도 당분간은 이 산을 뚫을 수 없습니다.”“오히려 이쪽이 문제입니다. 이곳이 함락된다면 만족은 막힘없이 곧장 천궐국으로 쳐들어올 수 있습니다.”부경한의 눈이 번뜩였다.“진 태위도 그렇게 말했다.”“하지만 엄 태사가 극구 말렸지. 진 태위는 자기 아들을 걱정하는 것뿐이라 공정하게 생각하지 못한다면서 말이다.”낙청연은 미간을 구겼다.“엄씨 가문은 미친 겁니까? 만족이 천궐국을 침범해서 그들이 얻는 게 뭐가 있습니까?”말을 내뱉자마자 낙청연은 그들이 챙길 이득을 하나 떠올렸다.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떴고 그녀의 눈동자에는 한기가 감돌았다.“왕야께서 옥에 갇혀 있으니 만족이 쳐들어온다면 엄씨 가문은 왕야의 손에서 병권을 빼앗을 명분이 생깁니다. 전력을 다해 만족에게 저항해야 한다면서 말입니다.”“계산을 아주 잘했군요.”그 말에 부경한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그러면 안 되지!”“만약 병권이 엄 태사의 수중에 들어간다면 이 천하는 엄씨 가문의 것이 될 것이다!”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그것이 바로 그들의 목적일지도 모릅니다.”낙청연의 미소에 머리털이 쭈뼛 선 부경한은 자세히 생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그렇다면 지금 어찌해야 하느냐?”부경한은 초조해 보였고 낙청연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수희궁에 가봐야겠습니다!”“방법을 생각해 보세요!”낙청연은 무언가를 놓친 기분이 들었고 정교하게 꾸민 그 방을 다시 한번 뒤져보고 싶었다.게다가 아직 동서의 비밀도 알아내지 못했다.그것들을 알아낸다면 돌파구가 생길지도 몰랐다.“그래. 짐에게 맡기거라!”잠시 고민하던 부경한은 방법을 떠올렸다.-다음 날, 부경한은 수희궁으로 향했다.최근 마음이 심란하다는 이유로 태후와 함께 엄씨 가문으로 가서 기분전환을 하겠다고 했다.겉으로는 대신들의 접견을 피하기 위해서였으나 사실은 사정하기 위
궤짝 안에서 발견했던 신발과 같은 재질인 듯했다.밑창이 닳은 정도도 비슷했고 안쪽이 더 많이 닳은 것도 비슷했다.류 공공은 곧 자리를 떴다.자리에서 일어난 낙청연은 주위에 사람이 보이지 않자 다급히 뒤쪽에 있는 화원으로 향했다.문을 열어 안쪽을 보니 많이 변한 모습이었다.침상 위 이불은 원래 개어 있었는데 마치 누군가 그곳에서 잔 적이 있는 것처럼 지금은 흐트러져 있었다.침상에 다가가 이불 안을 만져 보니 온기가 느껴졌다!낙청연은 깜짝 놀랐다. 저 사내가 이곳에서 지내고 있었단 말인가?옷장을 열어보니 옷장 안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그러나 탁자 위 찻주전자 안에 뜨거운 물과 누군가 썼던 찻잔이 늘어났다.조금 전 류 공공이 이 방향에서 나온 걸 떠올린 낙청연은 어쩌면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이 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와 동서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란 말인가?그건 아닌 듯했다. 류 공공이 아무리 태감이라도 해도 태후의 침궁 뒤쪽에서 지내고 있을 리 만무했다.그런 생각을 하면서 낙청연은 곧바로 방 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그녀는 더 많은 단서를 찾기 위해 자세히 둘러보았고 그러다가 침상에서 비밀 통로를 하나 찾았다. 나무 판자를 들어보니 아래쪽에 아주 깊어 보이는 통로가 있었다.낙청연은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혹시나 류 공공이 돌아오더라도 누군가 비밀 통로 안에 들어갔다는 걸 발견하지 못하게 이불과 나무판자를 손에 쥔 뒤 그것을 덮었다.순조롭게 지하로 들어간 낙청연의 눈앞에 통로가 펼쳐졌다.그녀는 화절자에 불을 붙인 뒤 앞으로 걸어갔다.비밀 통로는 넓은 편이 아니었고 수리도 안 된 것이 몰래 파놓은 통로 같아 보였다. 게다가 꽤 오래전에 파놓은 것 같았다.통로는 구불구불했고 낙청연은 한참을 걸어서야 출구에 도착했다.그녀는 마른 우물 안에서 기어 나왔다.그곳은 작은 마당이었다.낙청연은 밖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태감들이 지내는 곳 같아 보였다.혹시 류 공공의 거처일까?낙청연은 몰래 방 안으로 들어가서
“목 장원, 이 두 처방은 태의원에서 준 것이오?”목 장원은 그것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태의원에서 준 처방이 맞소. 하지만 진료한 뒤 쓴 처방이 아니라 태의원에서 규정대로 치른 시험에서 쓴 처방 같소.”“그렇다면 이 필적이 누구의 필적인지 알 수 있겠소?”목 장원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성백천의 필적일 것이오.”그 말에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성백천이라고?”목여해(穆如海)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왜 그런 걸 묻는 것이오? 그리고 이것들은 시험 때 작성했던 처방으로 태의원에 있어야 하는데 왜 당신에게 있는 것이오?”“성백천이 무슨 나쁜 짓을 한 것이오?”목여해는 긴장한 얼굴이었다.낙청연은 말머리를 돌리며 물었다.“장원, 그러면 하나만 더 묻겠소. 태의원의 정무량은 해결했소?”목여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해결할 것이오. 하지만 차근차근히 해야 하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처방을 들고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장원, 성백천이 말하길 그는 어릴 때부터 태의원에 있었다고 했소. 장원이 그를 주웠다고 하더군.”“맞소. 성백천은 태의원에 오랫동안 있었소.”“그런데 그는 왜 아직도 별 볼 일 없는 태의인 것이오? 성백천은 진료한 적도 아주 적던데 혹시 일부러 그를 숨기려 한 것이오?”그 말에 목여해의 안색이 달라졌다.그는 탄식하며 말했다.“일부러 그를 억압한 것은 아니오. 다만... 그 아이는 궁 밖의 사람이 아니오. 누구의 아인지는 나도 알지 못하오. 그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아 최대한 밖으로 나가는 걸 막은 것이오.”그렇군!낙청연은 그제야 어릴 때부터 태의원에서 의술을 배운 성백천이 왜 지위가 그토록 낮은지 깨달았다. 정무량이 일부러 압력을 가한 것도 있지만 목 장원의 사심도 있었다.그녀는 류 공공의 처소에서 발견한 아이의 옷이 문득 떠올라 반쪽짜리 옥패를 꺼냈다.“장원, 혹시 이 옥패의 반쪽을 본 적이 있소?”옥패를 보는 순간 목여해의 낯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뒤이어 낙청연은 목 장원을 따라 태의원에 갔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출입이 편하게 일부러 의관으로 변장했다.목 장원은 그녀를 데리고 당안각(檔案閣)으로 향했다.그는 책궤 안에서 오래되어 먼지가 쌓인 서권(書卷)을 뒤적이기 시작했다.한참을 찾은 끝에 목 장원은 두 권의 두꺼운 책을 꺼냈다.“이것이오.”낙청연은 책을 펼쳐 한 장씩 읽기 시작했다.그녀는 이궁의난이 발생하기 1년 전의 진맥 기록을 살폈다. 비빈들 모두 고정된 태의가 정기적으로 진맥했지만 태후의 진맥 기록을 보니 중간에 사람을 한 번 바꿨다.“장원, 이 허흥덕(許興德) 태의는 있소?”목 장원은 고개를 저었다.“돌아가신지 꽤 됐소.”낙청연은 다시 기록을 살피기 시작했고 이내 미간을 구겼다.“왜 그러시오? 무슨 문제가 있소?”낙청연이 말했다.“이걸 보시오. 3월 초 태후 마마께서는 식욕이 저하되고 속이 메스꺼우며 자주 졸리다고 했소. 하지만 진맥하지 않고 그저 약을 복용하셨소.”“4월이 되고 진맥한 태의가 허흥덕으로 바뀌었소.”“그 뒤로 열 달 동안 허흥덕 태의가 태후 마마를 진맥했고 맥은 전부 정상적이라고 기록되었소.”“허흥덕이 가짜 기록을 만든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소?”“장원은 허흥덕이 어쩌다가 죽었는지 기억하시오? 정상적으로 죽었소 아니면 사고로 죽었소?”목여해는 번개라도 맞은 듯이 경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머릿속이 윙윙 울렸다.그는 목이 메어 힘겹게 입을 열었다.“사고... 였소...”낙청연은 그 대답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그러니 당신이 주운 그 아이는 태후 마마의 아이일 것이오.”“목 장원, 이 사건이 있은 뒤 많은 시간이 흘렀소. 태의원에서 이와 관련된 증거를 찾을 수 있겠소?”목여해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그건 어렵소.”“당신의 추측대로 허흥덕이 입막음을 위해 죽임을 당했다면 그와 관련된 증거도 분명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을 것이오.”“그리고 난 성백천의 신분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소. 그는 잘
낙청연도 당연히 걱정되었다. 하지만 엄씨 가문이 이러는 이유는 부진환에게서 병권을 빼앗기 위해서였기에 절대 그들의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오늘 수희궁에서 단서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증거를 충분히 모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유인할 생각입니다.”낙청연은 천천히 침상 옆으로 다가갔다. 태상황은 자지 않고 깨어있는 상태로 그녀의 얘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낙청연은 허리를 숙이고 물었다.“태상황, 저는 예전과 같은 방법을 쓸 생각입니다. 태상황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래 주실 수 있겠습니까?”태상황이 몸을 움직일 수 있게 침을 놓으면 그의 몸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태상황의 동의가 필요했다.태상황은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힘껏 그녀에게 눈짓했다.낙청연은 당황했다.“지금 당장 침을 놓으라는 말입니까?”태상황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지금 침을 놓으면 내일에 별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하지만 태상황은 마음이 조급했고 지금 당장 침을 놔달라는 의지가 무척 강했다.부경한이 다가와 탄식했다.“넌 부황의 뜻을 이해할 수 있으니 부황의 뜻대로 하거라.”그렇게 낙청연은 태상황에게 침을 놓아 강제로 몸의 감각을 회복시켜 움직일 수 있게 했다.침술이 끝난 뒤 태상황은 일어나기 위해 버둥거렸고 낙청연과 부경한은 다급히 그를 부축했다.태상황은 다급한 발걸음으로 비틀거리며 침상 오른쪽 벽으로 향하더니 장롱을 가리켰다.낙청연이 장롱을 열어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태상황의 손가락은 여전히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자세히 살피던 낙청연은 벽에 있는 기관을 발견했고 그것을 꾹 눌렀다.기관이 눌리면서 정교한 나무 상자가 시야에 들어왔다.낙청연은 그 나무 상자를 태상황에게 건네려 했으나 태상황은 나무 상자를 가리킨 뒤 낙청연을 가리켰다.낙청연은 깜짝 놀랐다.“제게 주는 것입니까?”태상황은 고개를 끄덕였다.열어 보니 안에는 용과 호랑이가 조각된 작은 옥새가 있었다.부경한도 그것
은침이 태상황의 손목에 박혀 들어가자 태상황은 붓을 놓치고 뒤로 넘어졌다.낙청연은 서늘한 눈빛으로 구석에 있는 그자를 보았다.류 공공!“부황!”부경한은 다급히 태상황을 부축했다.태후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태상황의 손을 힘껏 움켜쥐었고 그 은침은 태상황의 손목에 깊이 박혀 들어갔다.태상황은 매우 아팠지만 소리를 낼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곧이어 태후는 몸을 일으키며 낙청연에게 호통을 쳤다.“낙청연, 태상황께서는 아직 다 낫지 않으셨다. 태상황을 그만 고생시키거라!”“태상황께서는 이 글을 적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얼마나 진이 빠졌겠느냐? 넌 대체 뭘 위해 이러는 것이냐?”“난 이런 일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태후는 말을 마친 뒤 백관을 물러나게 했다.사람들은 잇따라 자리를 떴고 침궁을 나와서야 의논하기 시작했다.“태상황께서는 대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었던 것이오? 태후 독이라니?”“태후 마마의 체내에도 독이 있다는 말 아니겠소?”“태후 마마도 독에 당했다고?”“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소. 거 참 답답한 일이군.”진 태위는 눈살을 찌푸렸다.“태후 마마가 독을 썼다?”그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안색이 달라지더니 조용히 하라는 듯이 검지를 손가락에 가져다 댔다.“진 태위, 말을 조심하시오.”“모든 건 태상황께서 나으신 뒤에야 알 수 있소.”“우리는 제멋대로 추측하지 않는 것이 좋겠소.”“증거도 없는 일을 입에 올렸다가는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소.”그렇게 사람들은 흩어졌고 더는 의논하지 않았다.멀지 않은 곳 처마 밑에서 엄 태사는 조용히 그들을 지켜보았다.그는 그들의 말을 들었다.엄 태사의 눈동자에서 한기가 느껴졌다.어찌 됐든 더는 태상황을 살려둘 수 없었다.더는 지체할 수 없다!태후도 침궁을 떠났고 문밖으로 나설 때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엄 태사와 눈빛을 주고받은 뒤 그와 함께 떠났다.낙청연은 허리를 숙여 태상황의 손을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잠깐 아픈 것일 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부경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