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부진환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서늘한 어투로 답했다.“난 괜찮으니, 장군이나 즐기시오.”침서는 고묘묘와 함께 천천히 걸어왔다.고묘묘는 침서에게 돌아가자고 설득하려 했으나, 침서가 이곳에 올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런 말까지 내뱉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세자, 소소 낭자가 싫다면 공주는 어떻소? 세자만 좋다면 공주를 세자에게 주겠소.”침서는 대범한 어투로 답했다.이 말을 들은 고묘묘는 깜짝 놀라 분노하며 말했다.“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침서는 앞으로 다가온 고묘묘를 걸리적거리는 듯 옆으로 밀었다.“세자와 공주도… 말 못 할 과거가 있지 않았소. 세자만 좋다면 나도 공주를 보내주겠소.”침서는 흥미로운 듯 웃으며 부진환이 겪었던 모욕을 회상시켰다.낙인처럼 부진환의 몸에 새겨진 과거는 가시가 되어 그를 콕콕 찔렀다.부진환은 어두운 눈빛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세자, 어찌 말이 없소? 걱정하지 마시오, 공주가 세자를 잘 모실 거요.”침서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비꼬는 듯 말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고묘묘는 분노하며 침서의 뺨을 때렸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겁니까!”술에 취한 침서는 뺨을 맞자 곧바로 고묘묘의 목을 잡고 그녀를 부진환에게 밀었다.“너를 세자에게 보내겠다고 했다, 몇 번을 말해야겠냐!”바로 그때, 부진환은 재빨리 몸을 돌려 피했다.그러자 고묘묘는 비명과 함께 호수에 빠지고 말았다.그러나 호숫가의 두 남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침서는 음침한 눈빛으로 말했다.“세자, 공주를 호수에 밀어 넣다니. 나를 무엇으로 보는 것이오?”말을 마친 침서는 앞으로 다가가 부진환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부진환이 몸을 돌려 피하자, 매서운 바람 소리가 그의 귓가에 스쳤다.그러고는 주먹으로 침서의 배를 쳤다.두 사람은 격렬하게 싸움을 벌였다.소소 낭자는 행여나 자신도 다칠까 봐 겁에 질려 도망쳤다.호수에 빠진 고묘묘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어, 혼자 아등바등하며 호숫가로 기어 나
상냥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밤도 깊었으니 세자는 궁궐로 돌아가 일찍 쉬시오."부진환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노인은 고개를 돌려 침서를 바라보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장군은 날 따라오지 않고 뭐하는 건가.만약 오늘 황제께서 커진다면 황상께서 정말 기분 나빠하실지도 모르오."침서는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돌려 부진환을 한 번 쳐다보았다. 마음속의 분노가 아직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고묘묘가 불쾌한 듯 말했다. "영감이 무슨 상관이오! 부진환이 날 물에 빠뜨린 것을 본 증인도 있는데! 증인은 바로 침서이오! 오늘 누구도 여길 떠날 생각 하지 마시오!"고묘묘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녀는 침서가 고의로 부진환을 도발해, 그녀에게 손대게 한 것을 알고 있었다.고묘묘는 침서가 마음속에 그렇게 강한 원한을 품고 있는 이상, 부진환을 먼저 손 봐 침서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마냥 물에 빠질 수 없었다.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서을 힐끗 쳐다보았다.침서가 불쾌한 표정으로 고묘묘에게 호통을 쳤다. "입 다물 거라!"고묘묘 역시 화가 났다. "뭐하는 겁니까? 난 그냥 돕는 건데, 왜 나한테 화를 내는 겁니까?"침서가 눈을 치켜뜨고 살기 가득하게 말했다. "입 다물라고 했다! 감히 한마디만 더 하면 오늘 장군부로 돌아갈 필요 없다!"말을 마친 침서가 분노에 차서 몸을 홱 돌려 걸어갔다. 고묘묘가 기가 차서 외쳤다. "침서!"하지만 침서는 돌아오지 않았다.노인은 결국 미소를 지으며 부진환을 힐끗 쳐다보더니 몸을 돌려 멀어졌다.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궁중연회의 사람들이 하나둘 달려왔다."무슨 일입니까?"그들은 다투는 소리에 홀린 듯 이곳으로 몰려왔다.하지만 싸우거나 다투는 장면은 없었다.부진환도 몸을 돌려 그자리를 떠났다.결국 온몸이 흠뻑 젖은 고묘묘만 남아 있다."공주님, 어쩌다가 물에 빠지셨습니까? 태, 태의를 지금 당장 모셔오겠습니다."고
부진환은 낙요의 어깨에 턱을 기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낙요를 묵묵히 안고 있을 뿐이다.낙요가 미소를 살짝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까?"부진환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낙요는 그가 억울한 일을 당해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집에 가서 얘기해주세요."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낙요의 손을 잡고 궁 밖으로 나갔다. 궁궐에서 나온 그들은 마차에 올라탔다. 밖을 내다보기 위해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부진환이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낙요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누굴 기다리십니까?"부진환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침서가 나오지 않은 것 같소.이상하군, 어디로 간 건지..."낙요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갑자기 침서를 걱정하는 겁니까?"침서가 나타나지 않자, 부진환은 결국 마부에게 차를 출발하라고 일렀다. 그들은 대제사장부로 간다.부진환이 설명했다. "침서가 오늘 밤 고의로 트집을 잡아 한창 다투던 중 웬 노인이 갑자기 나타나 지팡이를 침서에게 휘둘렀소.그런데 침서가 화도 내지 않더군. 게다가 그 노인이 날 바라보는 눈빛이 어찌나 이상하던지... 침서도 그 노인을 따라갔는데, 아직도 나오지 않은 걸로 보아, 다른 곳으로 간 것 같소."낙요는 살짝 놀란 것처럼 보였다."황궁에서 사는 노인이라면, 몇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혹시 그 노인의 몸에서 약재 냄새가 나지는 않으셨습니까?"부진환의 눈을 번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아는 사람이오?"낙요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분은 약로입니다. 제사 일가는 약각을 관리하는 사람이 바로 약로입니다. 제사 일가의 의원입니다. 하지만 성품이 괴상하고 청정한 것을 좋아해, 제사 일가 사람 중 감히 그분을 먼저 찾아뵙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불치병이 아닌 이상 약각을 찾아가지 않으니, 약로의 존재감도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부진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약로의 지팡이가 다시 무겁게 떨어져 그의 몸을 때렸다.한 번, 또 한 번...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심한 통증에도 침서는 아프다고 발버둥을 치거나, 도망가지 않았다."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거요?"감히 부진환을 다시 해칠 생각이면 접어두는 게 좋을 거요! 후회스러운 삶을 보내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약노인의 눈빛은 지금 날카롭고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이 말을 들은 침서가 충격에 잠긴 채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침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뭘 하려는 작정이오?"약로가 그를 차갑게 쳐다보았다. "내가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소? 경고하는데, 부진환이 다시 위험에 빠진다면, 내가 직접 자네의 사람에게 갑절이 되는 고통을 줄 걸세!" 약로의 다짐은 침서의 마음속에 깊이 박혔다."들리는가!" 약로의 말투는 위협으로 가득 차 있었다.침서가 주먹을 단단히 쥐었다.-"에취!"방 안에서 약을 바르고 있던 부진환이 갑자기 재채기했다. 낙요가 손에 들고 있던 가루약이 담긴 그릇의 들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덕분에 낙요도 재채기를 했다. "에취!""일부러 이런 거죠!" 낙요가 재채기를 하면서 불쾌하게 말했다.부진환은 손수건으로 그녀의 얼굴에 묻은 가루약을 닦아내며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실수한 거야, 어디 눈 좀 봐봐."그는 낙요의 눈꺼풀을 만지며 살펴보았고, 이물감에 낙요는 눈물을 흘렸다. "눈에 뭐가 들어간 것 같아요.""내가 불어줄게." 부진환은 그녀의 눈꺼풀을 입바람으로 살짝 불었다.낙요는 얼마 뒤 눈을 제대로 떴다."내가 약도 챙겨주는데, 이렇게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게 어디 있어요?"부진환이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미안해.""다시 약 발라, 이번에는 재채기 안 할게."낙요가 약을 들어 올랐다. "눈 감으세요."부진환은 눈을 감고 그녀가 약을 발라주길 기다렸다. 낙요는 입꼬리를 샐쭉 올리더니, 약을 바꿔 손끝에 연고를 살짝 바른 뒤, 부진환의 얼굴에 발랐다.
이튿날, 류운한은 현비로 책봉되었다.류운한은 궁중연회에서 춤을 선보였다는 이유로 현비로 봉해졌다. 이건 후궁의 법규에 어긋나는 일이었다.그러나 황후가 이것을 따지기 위해 황제를 찾아가자, 황제가 냉담하게 말했다. "후궁과 관련된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던 황후가 설마 현비 때문에 날 찾아온 거요?"황제의 뜻밖의 말투에 황후는 가슴이 철렁했다. "아닙니다. 현비를 전하께서 이토록 아끼니 신첩도 좋습니다."오랜 세월, 누구에게 머리를 숙이며 들어가 본 적 없었던 황후는 차마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황제가 그녀에게 더욱 의지했다.그래서 이번에도 황후는 자기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았다."신첩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황후는 돌아서서 나갔고, 황제의 마음은 더욱 답답했다.황후는 현비를 만나기 위해 갔다.그러나 현비의 침전에 도착하자마자, 온씨 가문의 사람을 만났다.온 영감은 류운한이 현비로 봉해졌다는 소식에, 선물을 준비해서 부랴부랴 궁궐로 찾아온 것이다.류운한은 화려하게 차려입고 높은 의자에 고고하게 앉아 있었다.온 영감은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류운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마마, 비록 우리 부녀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이지만, 마마의 신분이 마음에 걸려 이렇게 찾아왔습니다.마마께서 막 궐에 들어왔고 든든하게 받혀질 가문도 없어 마음이 적적하실 것 같아..."류운한이 그의 관사와 류씨 부인의 딸이라는 사실은 더는 온 영감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류운한을 자기의 양녀로 삼고 싶었다."그래서 제 아비가 되겠다는 말씀인가요? 계산이 이렇게 빠르신 분인 줄 몰랐습니다."류운한이 차갑게 대꾸했다.온 영감이 무릎을 꿇은 채 웃으며 말했다. "부디 마마께서 지나간 일들을 마음에 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앞으로 저희가 서로 이끌어 주는 게 어떻습니까?"류운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제안했다. "제가 아비로 인정하기 위해선 한가지 요구가 있습니다.제 어머니께서
온연이 낙요을 바라보며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대제사장님, 얼굴은 왜 그러십니까?"낙요는 얼떨떨하게 설명했다. "최근에 연구하고 있는 미인 연고인데 효과가 어떨지 몰라 내 얼굴에 먼저 발랐소. 사흘간 얼굴을 씻지 못하는 연고이오, 그래서 이 상태로 온연 낭자를 맞이할 수밖에 없소."그녀의 말을 감쪽같이 믿은 온연이 흥분하여 물었다. "그 대사제님이 만드신 연고 저도 하나 가질 수 있습니까?"낙요가 멋쩍게 웃었다. "되고말고.""근데 온연 낭자가 날 왜 찾아온 것이오?"낙요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온연은 상자 몇 개를 낙요에게 건넸다. "이건 제가 대제사장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연지 가루와 약재입니다.대제사장님의 취향을 잘 몰라 여러 가지 준비했습니다.이번에 저희 가문의 큰 문제를 해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제사장님이 아니었으면 우리 가문은 아직도 음택한 소문이 나돌았을 것입니다."낙요가 선물을 받았다. "굳이 이렇게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됩니다."온연은 참지 못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사실 대제사장님께 부탁할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어서 말씀하시오."온연이 말했다. "제 앞날을 봐주셨으면 합니다.온씨 가문을 맡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겉만 번지르르했지, 실제로는 적자가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특히 돈을 버는 놈 따로 쓰는 놈 따로 있고, 게다가 씀씀이나 어찌나 큰지, 나가서 향락을 즐기고 돈도 제대로 내지 않아 전부 채무 신세입니다.부채가 한 가득합니다!솔직히 이런 가문을 제가 책임질 생각을 하니, 부담이 커서 머리가 아픕니다.그래서 온씨 가문을 정상적으로 되돌릴 방법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낙요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이었군."낙요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낭자의 앞날이 아주 교묘하오. 인연이 나타날 것 같소."온연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낙요이 대답했다. "난관에 부딪히긴 하지만 혼인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 싶소."이 말에 온연은 얼굴을 찡그렸다.
이 말을 들은 온연은 눈썹을 찡그리며 손에 든 열쇠를 바라보았다. "자물쇠를 바꾸신 겁니까?"온 영감 역시 부인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 장방의 자물쇠뿐만 아니라 재물고의 자물쇠도 바꿨다. 가게들도 전부 내게 장부를 보여주지 말라고 일러두었다."온연이 화를 내며 말했다. "아버지, 무슨 뜻입니까? 저희 가문의 형편을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아버지 첩과 아들이 집안의 재물들을 흥청망청 쓰고 있는 걸 모릅니까? 이 상태로 몇 년이나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온 영감이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집안 재정 상태는 내가 잘 안다. 그렇다고 집안 식구끼리 박대할 수 없지. 돈을 벌 방법을 생각해야지, 식구에게 아껴 먹고 살 수는 없다!"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내 딸까지 집안일에 관여하게 할 수 없다."온연이 냉소했다. "아버지가 말하는 방법이 류운한에게 아부하는 겁니까?"온 영감은 얼굴을 찡그리며 호통쳤다. "온연! 무슨 말버릇이냐!"온연도 화가 났다. "네, 전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집안 재물의 절반은 할머니께서 제게 남겨주신 겁니다. 제 돈이니 아버지는 참견하지 마십시오!"그녀의 말에 화가 난 온 영감이 그녀의 뺨을 때렸다."너, 이젠 나와 재산을 두고 다투려는 게야?이 아비가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돈을 달라는 것이야?"말을 마친 온 영감은 몸을 홱 돌려 사라졌다. 온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밖으로 뛰쳐나갔다.때마침 풍옥건이 방문을 했고,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폐백은 내가 다 준비했소, 처자는 대제사장을 찾아 황도길일을 받고 청혼을 하는 게 어떻소?"온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내가 언제 나리께 시집간다고 했소!"풍옥건은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 어리둥절했다. 기가 죽은 그가 말했다. "대감께서 승낙하신 일이거늘... 게다가 낭자의 사주도 이미 나에게 줬소.설마... 아무 얘기도 못 들은 것이오?"이 말을 들은 온연은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분노를 금
그날 밤, 온 영감은 자기의 첩을 껴안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창 밖에서 천둥이 번쩍이더니 바람이 몰아쳤다.그러더니 방문이 벌컥 열렸다.온연은 위패 하나를 안고 온 영감의 앞에 나타났다.첩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고 온 영감 역시 걸상 위로 뛰어올랐다.온 영감은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온연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분노하며 따졌다. "뭐하는 짓이냐!"온연은 할머니의 위패를 들고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아버지, 할머니의 앞에서 다시 한번 말하겠습니다. 가문의 재산 절반을 돌려주시겠습니까?""전 가문이 패가망신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온 영감은 얼굴에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자신 어머니의 위패를 보며 내뱉지 못했다.온 영감이 싸늘하게 말했다. "줄 수는 있다만, 네가 시집을 가야 한다. 풍옥건에게 시집을 가면, 가문의 재산 중 절반을 네게 주겠다!"온연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약속하신 겁니다.""만약 아버지가 약속을 어긴다면 모든 것을 공개하고, 아버지의 명성에 먹칠할 것입니다."말을 끝낸 온연이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 온 영감은 화가 나서 발로 걸상을 걷어차고 주저앉았다.옆에 있던 첩이 그를 염려하며 물었다. "나리, 정말 재산의 절반을 넘길 것입니까?저렇게 반골처럼 구는데, 재산을 넘겼다가...혹여..."온 영감이 침울한 목소리로 눈을 내리깔았다. "나도 방법이 있어."-이틀 후에, 온연과 풍옥건이 혼인을 한다는 소식이 도성 전체에 퍼졌다.낙요와 부진환은 물건을 사기 위해 시장에 나갔다가, 거리의 사람들이 이 일을 떠드는 것을 들은 적 있었다.온연은 온씨 가문의 금쪽같은 딸이고 풍옥건은 부잣집 도련님이었다.모두 풍옥건이 옥연과 결혼할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온연함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없다.부진환이 궁금한 듯 물었다. "지난번 온연 낭자가 점괘를 보러 왔을 때, 혼인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다고 하지 않았소? 그 혼인 상대가 설마, 풍옥건이오? 풍옥건, 그자가 믿을만한 사람이오?"낙요가 눈썹을 찌푸리며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