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경위를 들은 진 태위는 등골이 오싹함과 동시에 미친 듯이 치솟는 분노를 느꼈다.자신의 며느리와 손자가 그림에 갇혀 매일 밤 불에 타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는 말에 진 태위는 가슴께를 부여잡았다.“어찌! 어찌 사람이 이렇게 잔혹할 수 있는 것인지!”“누가, 누가 그런 짓을 한 것입니까?”낙청연은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배후가 누군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류훼향과 큰 연관이 있다는 건 확실하지요.”진 태위는 그 말에 경악했다. 그는 겨우 평정을 되찾고 주먹을 꽉 쥐면서 말했다.“어쩐지 섭정왕부 문 앞에 가서 난리를 치더니…”현재 진 태위는 등허리가 서늘했다. 류훼향이 이렇게 악랄한 사람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진 태위는 분노를 다스리면서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왕비 마마, 왕비 마마는 신통한 능력을 갖췄으니 저희 며느리와 손자를…”진 태위는 헛된 희망을 안고 물었으나 낙청연이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죽은 사람은 살리지 못합니다.”“하지만 그들이 전하고 싶은 말들을 전해 생전에 미련이 남았던 일들을 해결할 수는 있지요.”진 태위는 실망한 기색을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 가슴을 두드리며 발을 굴렀다.”이렇게 큰일을 의심 한 번 하지 않고 계람이 제 손자를 데리고 다른 남정네와 도망쳤다는 그들의 말을 믿었다니. 정말 몹쓸 인간은 저입니다.”“배후의 사람을 전 절대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진 태위의 눈빛에 살기가 담기면서 예리하게 번뜩였다.낙청연은 그에게 더는 묻지 않았다. 시간도 늦었으니 이만 돌아갈 생각이었다.그리고 그녀는 진백리가 깨어난 다음 다시 자신을 찾아오라 진 태위에게 일렀고 진 태위는 사람을 시켜 그녀를 섭정왕부까지 바래다주었다.왕부로 돌아오고 나서 낙청연은 방 안으로 들어가 작은 물건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온계람은 그녀의 곁에 갑자기 나타나더니 조용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은공, 제 부군께서는 별일 없으시겠지요?”낙청연은 다소 엄숙해진 말투로 말했다.”진천리를 구할 것을 선택했으니 몸이 성치 않을 것이
소서가 떠난 뒤, 소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저는 왕비 마마께서 남경의 일을 알 정도로 실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진 태위를 도와 일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그 말에 부진환은 다시 한번 멈칫했다.그의 눈동자에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면서 서늘한 음성으로 말했다.“만약… 누군가 그녀에게 남경의 일을 얘기해준 것이라면?”소유는 깜짝 놀랐다.“다른 사람 말입니까? 저희도 방금 안 소식인데 누가 저희보다 더 빨리 이 소식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까?”“궁.”부진환은 계속해 붓을 놀렸다. 내리뜨린 그의 시선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한기가 감돌고 있었다.소유는 그의 말에 경악했다.그의 말대로 이러한 소식은 맨 처음 궁으로 전해지니 궁에서 가장 먼저 알 것이었다.그리고 오황자는 최근 며칠간 계속 입궁했었다.그러니 어쩌면 오황자가 왕비에게 알려준 걸지도 몰랐다.—낙월영은 낙청연이 진씨 일가의 마차를 타고 위신 있게 돌아왔다는 걸 전해 듣고는 화가 나다 못해 온몸을 벌벌 떨었다.겨우 화를 억눌러 물건을 부서뜨리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에 가위를 들어 정원에 있는 꽃과 풀들을 사정없이 잘랐다.“낙청연! 천한 것!”낙청연이 기대는 권세가들이 많아질수록 낙월영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녀를 막고 싶었지만 얼굴을 치료하지 못해 밖에 나갈 수조차 없었다.그러나 이번 일로 그녀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낙월영은 옷을 갈아입고 면사포를 쓴 다음 저택을 나섰다.“둘째 아씨, 어디 가십니까?”장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집에 가서 물건 좀 가져올 테니 넌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낙월영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결연히 떠났다.이번엔 꼭 일을 신속히 처리해버려 절대 낙청연에게 승승장구할 기회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낙청연은 이틀의 시간을 이용해 정교한 영롱구(玲瓏球) 장식품을 만들었는데 그 안에는 작은 사람이 그려진 그림이 있었고 뒷면에는 부문이 적혀있
분위기가 삽시에 어색해졌다. 낙청연은 부운주가 아직도 기억하지 못한 건지 자신을 청연이라고 부르고 또 하필 부운주가 그걸 들었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역시나, 부진환은 몸을 돌리면서 한없이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인제 보니 다섯째 너는 낙청연이 어떤 사람인지 기억하지 못했나 보구나.”“본왕이 기억하게 해주랴?”그 말에 부운주는 두려운 기색을 드러내더니 고개를 숙이며 해명했다.“최근 초상화를 한 폭 그렸는데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아 형수님께 물으러 온 것입니다. 마음이 급한 바람에 호칭을 잘못 불렀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형님.”그 말을 들은 낙청연은 부운주의 손에 들린 초상화를 발견했고, 고개를 숙인 부진환도 그것을 발견했다.그는 초상화를 가로채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모르는 게 있다면 본왕에게 물어보거라.”부진환은 그 말과 함께 화폭을 펼쳤고 그림을 보는 순간 부진환의 동공이 떨렸다.초상화 안에 있는 여인은 살집이 있는 편이었고 붉은색 혼례복을 입고 있었는데 고개를 돌려서 보이는 얼굴 반쪽이 낙청연과 제법 닮아있었다.그 순간 부진환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갑자기 어두워진 부진환의 안색을 확인한 낙청연은 화폭에 뭐가 그려져 있길래 부진환이 이토록 큰 반응을 보이는지 의아해하고 있었다.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화폭을 보려는데 부진환이 돌연 화폭을 거두면서 눈에 살기를 띠었고 냉기가 감도는 목소리로 말했다.“본왕이 보기에는 아주 놀라울 정도로 잘 그린 것 같구나.”“본왕이 이것이 누구인지를 몰라볼까 두려워서 그러는 것이냐?”찌직—부진환의 차가운 손가락이 가차 없이 화폭을 찢었고 부운주는 창백해진 얼굴로 놀란 듯 소리를 질렀다.“형님!”부운주는 바닥에 털썩 꿇어앉았다.“형님, 찢지 말아 주십시오!”부진환은 가차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림을 찢었다.낙청연은 그것이 마음 아파 부진환을 말리려 했다.“그림일 뿐인데 이렇게 화를 내실 필요가 있으십니까?”그림이 뭐
부진환은 심각하게 화가 난 상태로 발길질했고 그의 발밑에 깔려있던 것은 그의 발길질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갔다.나뭇조각과 빨간 술(穗子: 가마·기·띠·끈이나 여자의 옷 따위에 장식으로 다는 여러 가닥의 실), 줄이 함께 날아갔고 주울 수조차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부스러기들이 낙청연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얼굴에서 피가 났다.그녀의 나비 날개와도 같은 속눈썹 아래에는 노여움이 가득 담긴 눈동자가 있었다. 낙청연은 주먹을 꽉 쥐더니 씩씩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왕야, 저와 오황자가 사통한다고 의심하는 것이면 차라리 수세를 써주세요.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부진환은 더없이 싸늘한 얼굴로 몸을 약간 숙이며 낙청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곧이어 음산한 목소리가 낙청연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그렇게 쉽게 떠날 생각이었느냐? 꿈 깨거라.”말을 마친 부진환은 단호히 몸을 돌려 떠났고 낙청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 깊숙이 차오른 분노가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처참히 부서진 영롱구를 보는 낙청연은 마음이 칼로 에는 듯 아팠다.부진환에게 밟힌 것은 영롱구가 아니라 그녀의 자존심이었다.낙청연이 허리를 숙여 술을 주우려고 할 때 뼈마디가 분명한 손이 먼저 술을 주워 그녀에게 건넸다.고개를 들어보니 오황자의 미안함 가득한 얼굴이 보였다.“저 때문에 곤욕을 치르셨군요.”부운주는 가슴 아픈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낙청연은 술을 건네받으면서 그를 위로했다.“그대 탓이 아닙니다.”“왕야는 원래도 감정 기복이 심하신 분이라 언제 역정을 내실지 모릅니다. 이미 익숙한 일인걸요.”낙청연은 눈동자에 담겨있던 노여움을 거두면서 평온하게 대꾸했다.그러나 오황자는 여전히 자책하고 있었다.“이건 어디서 산 것입니까? 제가 배상해드리겠습니다.”“제가 직접 만든 것이라 배상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값어치가 없거든요.”낙청연은 돌돌 말린 작은 사람이 그려진 그림을 주워들었다.종이는 밟혀 꾸깃꾸깃해졌고 뒤에 적힌 부문도 더러워져 쓸 수
“하지만 고 신의를 조심해야 한다. 고 신의가 남각에 있다면 가지 말거라.”온계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그를 따라갔다.낙청연은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뒤 다시 영롱구를 만들기 시작했다.잠시 뒤 온계람이 돌아와서 말했다.“보았습니다.”“그 그림은 은공을 그린 것 같았습니다.”그 말에 낙청연의 손이 흠칫 떨렸다.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다니? 부진환이 그런 얘기를 한 이유가 있었다.낙청연이 놀라움에 빠져있는 와중에 온계람이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오황자께서는 찢어진 그림을 맞추면서 은공을 좋아한다고 중얼거렸습니다.”낙청연은 완전히 굳어버렸다.부운주가 진짜 낙청연을 좋아한다니…어쩐지 부운주가 그녀에게 그렇게 잘해주면서 세심하게 챙겨준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낙청연이 부운주에게 시집오기 전부터 그녀를 좋아한 듯했다.동병상련이라고 두 사람은 서로를 막역한 친구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낙청연의 마음은 온통 부진환뿐이었으니 부운주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온계람이 계속해 말했다.“오황자도 참으로 일편단심인 듯합니다. 섭정왕보다는 성격이 훨씬 좋을 테지요.”낙청연은 부진환의 암울한 표정을 떠올리고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다. 어쩐지 짜증이 났다.“왕야 얘기는 꺼내지 말거라.”“그와 갈라설 수 있었다면 내가 이런 일을 당했을 리도 없지!”하지만 부진환의 태도를 봐서는 수세를 써주지 않을 것 같았다.온계람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처소로 돌아온 부진환은 무척 화가 나 있었다.처음에는 그래도 자중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의 두 사람은 아주 대놓고 왕부에서 왕래하고 있었다.낙청연은 자신에게 시집오면서 첫째로는 부운주와 자주 접촉할 수 있고 둘째로는 자신의 옆에서 첩자 노릇을 할 수 있으며 셋째로는 아내가 바람이 났다는 소문까지 나돌게 만들 수 있었다.이렇게 간사한 짓을 벌이다니!화가 치밀어오른 부진환은 살기등등한 기세로 검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소서는 처마 밑에서 그런
“독장산의 동굴에서 보름을 갇혀있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목숨은 건졌지만 아직 치료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 태위와 함께 내원으로 향했다.진 태위는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그런데 백리가…”낙청연은 순간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진 태위를 따라서 방 안으로 들어가니 침대 위에 있는 창백한 사람이 보였다. 그는 침상맡에 몸을 기대고 있었는데 흰 천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그 장면에 낙청연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진 태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백리도 정신을 차렸지만 안타깝게도… 눈을 잃었습니다.”진 태위는 그제야 낙청연이 말한 대가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다.눈을 잃다니.낙청연은 의아한 얼굴로 다급히 그에게로 걸어가 진백리와 얘기를 나눴다.“제가 살펴보겠습니다.”낙청연은 진백리의 눈에 감긴 흰 천을 풀어보았다. 그의 동공은 마치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낙청연은 그의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았다.“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까?”진백리는 고개를 저었다.“보이지 않습니다.”진 태위는 마음 아픈 듯이 그를 보며 말했다.“아직 태의를 부르지는 않고 먼저 왕비를 불렀는데 혹시 치료할 방법이 있습니까?”인과관계가 있는 일이라 진 태위는 즉시 태의를 부르지 않았고 낙청연에게 희망을 걸었다.낙청연은 진백리의 맥을 짚으면서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치료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진 태위는 팔을 들며 예를 갖췄다.“고맙습니다, 왕비 마마!”바로 그때, 구석에서 구슬피 울고 있는 온계람 때문에 방 안에 한기가 감돌면서 진백리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는 긴장되면서도 기대에 부푼 마음을 안고 고개를 돌렸다.“아버지, 왕비와 단둘이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진 태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방에서 나갔다.방문이 닫히는 순간, 진백리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왕비 마마, 계람미인도를 가져온 것입니까?”낙청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이내 심각한
“방금… 느껴진 것 같습니다!”“그들이 이곳에 있는 것입니까?”낙청연이 대답했다.“네. 그들은 바로 진 공자의 곁에 있습니다.”진백리는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그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던 낙청연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면서 방을 나갔다. 세 사람에게 그들만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진백리는 비록 보지는 못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낙청연은 매우 안타까웠다. 오늘 그들 가족이 한데 모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정원을 나오자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는 진 태위의 뒷모습이 보였다.“태위 대감.”낙청연이 그를 부르자 그는 얼른 눈물을 닦으면서 몸을 돌렸다.“왕비 마마.”“전 최선을 다해 진 공자를 치료할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슬퍼 마세요. 적어도 살아있지 않습니까?”낙청연은 그를 위로하며 말했고 진 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고맙습니다, 왕비 마마. 은 천 냥은 하인에게 일러 준비해두라고 했습니다.”“급하지 않습니다. 우선 처방부터 내리고 진 공자께 침을 놔드리겠습니다.”뒤이어 낙청연은 처방을 내리러 갔다.진백리와 그의 처자식에게 함께할 시간을 충분히 준 다음 낙청연은 그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가 그에게 침을 놔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효과가 나타났다.끝나고 나서 진 태위는 그녀에게 은표를 주었고 마차를 보내 그녀를 저택까지 바래다주었다.온계람은 더는 그녀와 함께하지 않고 태위부에 남았다.마차에 앉은 낙청연의 머릿속은 진백리의 눈에 관한 일로 가득찼다. 그녀는 그가 시력을 잃은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고 그래서 꼭 진백리를 낫게 해서 그가 처자식을 볼 수 있었으면 했다.돌아간 뒤 제대로 연구에 몰두해야 할 듯했다.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는데 마차가 저잣거리를 지날 때 누군가 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렸다.“거기 서거라!”“저 부도를 지키지 않은 사람을 잡으시오!”한 무리의 사람이 몰려들자 말이 놀랐는지 펄쩍 뛰어오르면서 소리를 냈고, 마차는 옆에 있던
“움직이거라!”낙청연은 죽을힘을 다해 버둥거렸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밧줄로 낙청연의 손을 묶었고 입안에는 낡은 천 쪼가리를 물린 채 낙청연을 억지로 끌고 가고 있었다.낙청연은 극도로 화가 났다. 멀건 대낮에, 그것도 저잣거리에서 이렇게 대놓고 사람을 묶어서 납치하려 하다니, 법도라고는 없었다.적어도 백여 명은 될 듯한 사람들이 갑자기 저잣거리에 나타나 거리를 가득 메우자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했다.“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렇게 소란스러운 것이오? 산적들도 아니고 말이오!”“부도를 지키지 않은 여인을 쫓고 있다고 들었소. 첩인데 시동생과 사통했다고 지금 강에 빠뜨리려고 하는 게 아니겠소?”“그렇구먼. 쌤통이오.”“우리도 얼른 가서 구경이나 해보세.”사람들은 수군덕거리기 바빴지 낙청연을 구하려는 자는 없었다.마부는 급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마차는 망가졌고 말도 움직이려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급하게 태위부로 달려가 이 소식을 전해야 했다.—낙청연이 태위부로 향한 지 반 시진이 지나서야 부진환은 소서에게서 그 얘기를 전해 들었다.“왕야, 진천리를 정말 찾은 듯합니다. 조금 전 태위부에서 왕비 마마를 모셔갔습니다.”부진환은 그의 말에 의아한 얼굴로 대꾸했다.“진짜 찾았다는 말이냐?”낙청연에게 그렇게 대단한 실력이 있었다니?“본왕도 가봐야겠다.”부진환은 미간을 잔뜩 구기며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고 말을 타고 태위부로 향했다.아무리 생각해도 믿기 힘들었다. 낙청연의 실력이 그렇게 대단한가? 천리 밖에서 벌어진 일들도 이렇게 정확히 알 수 있다니?그는 태위부로 가서 직접 알아볼 셈이었다.저잣거리에 들어서니 거리에 사람들이 가득했고 무척이나 떠들썩했다. 말을 타고 지나갈 수 없는 상태라 부진환은 어쩔 수 없이 방향을 돌려 다른 길로 돌아가야 했다.사람들에게 끌려가던 낙청연은 부진환의 뒷모습을 발견하고는 다급히 그를 불러서 멈춰 세우려고 했지만 제대로 된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