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가 떠난 뒤, 소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저는 왕비 마마께서 남경의 일을 알 정도로 실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진 태위를 도와 일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그 말에 부진환은 다시 한번 멈칫했다.그의 눈동자에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면서 서늘한 음성으로 말했다.“만약… 누군가 그녀에게 남경의 일을 얘기해준 것이라면?”소유는 깜짝 놀랐다.“다른 사람 말입니까? 저희도 방금 안 소식인데 누가 저희보다 더 빨리 이 소식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까?”“궁.”부진환은 계속해 붓을 놀렸다. 내리뜨린 그의 시선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한기가 감돌고 있었다.소유는 그의 말에 경악했다.그의 말대로 이러한 소식은 맨 처음 궁으로 전해지니 궁에서 가장 먼저 알 것이었다.그리고 오황자는 최근 며칠간 계속 입궁했었다.그러니 어쩌면 오황자가 왕비에게 알려준 걸지도 몰랐다.—낙월영은 낙청연이 진씨 일가의 마차를 타고 위신 있게 돌아왔다는 걸 전해 듣고는 화가 나다 못해 온몸을 벌벌 떨었다.겨우 화를 억눌러 물건을 부서뜨리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에 가위를 들어 정원에 있는 꽃과 풀들을 사정없이 잘랐다.“낙청연! 천한 것!”낙청연이 기대는 권세가들이 많아질수록 낙월영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녀를 막고 싶었지만 얼굴을 치료하지 못해 밖에 나갈 수조차 없었다.그러나 이번 일로 그녀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낙월영은 옷을 갈아입고 면사포를 쓴 다음 저택을 나섰다.“둘째 아씨, 어디 가십니까?”장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집에 가서 물건 좀 가져올 테니 넌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낙월영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결연히 떠났다.이번엔 꼭 일을 신속히 처리해버려 절대 낙청연에게 승승장구할 기회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낙청연은 이틀의 시간을 이용해 정교한 영롱구(玲瓏球) 장식품을 만들었는데 그 안에는 작은 사람이 그려진 그림이 있었고 뒷면에는 부문이 적혀있
분위기가 삽시에 어색해졌다. 낙청연은 부운주가 아직도 기억하지 못한 건지 자신을 청연이라고 부르고 또 하필 부운주가 그걸 들었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역시나, 부진환은 몸을 돌리면서 한없이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인제 보니 다섯째 너는 낙청연이 어떤 사람인지 기억하지 못했나 보구나.”“본왕이 기억하게 해주랴?”그 말에 부운주는 두려운 기색을 드러내더니 고개를 숙이며 해명했다.“최근 초상화를 한 폭 그렸는데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아 형수님께 물으러 온 것입니다. 마음이 급한 바람에 호칭을 잘못 불렀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형님.”그 말을 들은 낙청연은 부운주의 손에 들린 초상화를 발견했고, 고개를 숙인 부진환도 그것을 발견했다.그는 초상화를 가로채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모르는 게 있다면 본왕에게 물어보거라.”부진환은 그 말과 함께 화폭을 펼쳤고 그림을 보는 순간 부진환의 동공이 떨렸다.초상화 안에 있는 여인은 살집이 있는 편이었고 붉은색 혼례복을 입고 있었는데 고개를 돌려서 보이는 얼굴 반쪽이 낙청연과 제법 닮아있었다.그 순간 부진환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갑자기 어두워진 부진환의 안색을 확인한 낙청연은 화폭에 뭐가 그려져 있길래 부진환이 이토록 큰 반응을 보이는지 의아해하고 있었다.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화폭을 보려는데 부진환이 돌연 화폭을 거두면서 눈에 살기를 띠었고 냉기가 감도는 목소리로 말했다.“본왕이 보기에는 아주 놀라울 정도로 잘 그린 것 같구나.”“본왕이 이것이 누구인지를 몰라볼까 두려워서 그러는 것이냐?”찌직—부진환의 차가운 손가락이 가차 없이 화폭을 찢었고 부운주는 창백해진 얼굴로 놀란 듯 소리를 질렀다.“형님!”부운주는 바닥에 털썩 꿇어앉았다.“형님, 찢지 말아 주십시오!”부진환은 가차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림을 찢었다.낙청연은 그것이 마음 아파 부진환을 말리려 했다.“그림일 뿐인데 이렇게 화를 내실 필요가 있으십니까?”그림이 뭐
부진환은 심각하게 화가 난 상태로 발길질했고 그의 발밑에 깔려있던 것은 그의 발길질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갔다.나뭇조각과 빨간 술(穗子: 가마·기·띠·끈이나 여자의 옷 따위에 장식으로 다는 여러 가닥의 실), 줄이 함께 날아갔고 주울 수조차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부스러기들이 낙청연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얼굴에서 피가 났다.그녀의 나비 날개와도 같은 속눈썹 아래에는 노여움이 가득 담긴 눈동자가 있었다. 낙청연은 주먹을 꽉 쥐더니 씩씩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왕야, 저와 오황자가 사통한다고 의심하는 것이면 차라리 수세를 써주세요.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부진환은 더없이 싸늘한 얼굴로 몸을 약간 숙이며 낙청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곧이어 음산한 목소리가 낙청연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그렇게 쉽게 떠날 생각이었느냐? 꿈 깨거라.”말을 마친 부진환은 단호히 몸을 돌려 떠났고 낙청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 깊숙이 차오른 분노가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처참히 부서진 영롱구를 보는 낙청연은 마음이 칼로 에는 듯 아팠다.부진환에게 밟힌 것은 영롱구가 아니라 그녀의 자존심이었다.낙청연이 허리를 숙여 술을 주우려고 할 때 뼈마디가 분명한 손이 먼저 술을 주워 그녀에게 건넸다.고개를 들어보니 오황자의 미안함 가득한 얼굴이 보였다.“저 때문에 곤욕을 치르셨군요.”부운주는 가슴 아픈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낙청연은 술을 건네받으면서 그를 위로했다.“그대 탓이 아닙니다.”“왕야는 원래도 감정 기복이 심하신 분이라 언제 역정을 내실지 모릅니다. 이미 익숙한 일인걸요.”낙청연은 눈동자에 담겨있던 노여움을 거두면서 평온하게 대꾸했다.그러나 오황자는 여전히 자책하고 있었다.“이건 어디서 산 것입니까? 제가 배상해드리겠습니다.”“제가 직접 만든 것이라 배상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값어치가 없거든요.”낙청연은 돌돌 말린 작은 사람이 그려진 그림을 주워들었다.종이는 밟혀 꾸깃꾸깃해졌고 뒤에 적힌 부문도 더러워져 쓸 수
“하지만 고 신의를 조심해야 한다. 고 신의가 남각에 있다면 가지 말거라.”온계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그를 따라갔다.낙청연은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뒤 다시 영롱구를 만들기 시작했다.잠시 뒤 온계람이 돌아와서 말했다.“보았습니다.”“그 그림은 은공을 그린 것 같았습니다.”그 말에 낙청연의 손이 흠칫 떨렸다.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다니? 부진환이 그런 얘기를 한 이유가 있었다.낙청연이 놀라움에 빠져있는 와중에 온계람이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오황자께서는 찢어진 그림을 맞추면서 은공을 좋아한다고 중얼거렸습니다.”낙청연은 완전히 굳어버렸다.부운주가 진짜 낙청연을 좋아한다니…어쩐지 부운주가 그녀에게 그렇게 잘해주면서 세심하게 챙겨준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낙청연이 부운주에게 시집오기 전부터 그녀를 좋아한 듯했다.동병상련이라고 두 사람은 서로를 막역한 친구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낙청연의 마음은 온통 부진환뿐이었으니 부운주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온계람이 계속해 말했다.“오황자도 참으로 일편단심인 듯합니다. 섭정왕보다는 성격이 훨씬 좋을 테지요.”낙청연은 부진환의 암울한 표정을 떠올리고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다. 어쩐지 짜증이 났다.“왕야 얘기는 꺼내지 말거라.”“그와 갈라설 수 있었다면 내가 이런 일을 당했을 리도 없지!”하지만 부진환의 태도를 봐서는 수세를 써주지 않을 것 같았다.온계람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처소로 돌아온 부진환은 무척 화가 나 있었다.처음에는 그래도 자중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의 두 사람은 아주 대놓고 왕부에서 왕래하고 있었다.낙청연은 자신에게 시집오면서 첫째로는 부운주와 자주 접촉할 수 있고 둘째로는 자신의 옆에서 첩자 노릇을 할 수 있으며 셋째로는 아내가 바람이 났다는 소문까지 나돌게 만들 수 있었다.이렇게 간사한 짓을 벌이다니!화가 치밀어오른 부진환은 살기등등한 기세로 검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소서는 처마 밑에서 그런
“독장산의 동굴에서 보름을 갇혀있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목숨은 건졌지만 아직 치료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 태위와 함께 내원으로 향했다.진 태위는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그런데 백리가…”낙청연은 순간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진 태위를 따라서 방 안으로 들어가니 침대 위에 있는 창백한 사람이 보였다. 그는 침상맡에 몸을 기대고 있었는데 흰 천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그 장면에 낙청연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진 태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백리도 정신을 차렸지만 안타깝게도… 눈을 잃었습니다.”진 태위는 그제야 낙청연이 말한 대가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다.눈을 잃다니.낙청연은 의아한 얼굴로 다급히 그에게로 걸어가 진백리와 얘기를 나눴다.“제가 살펴보겠습니다.”낙청연은 진백리의 눈에 감긴 흰 천을 풀어보았다. 그의 동공은 마치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낙청연은 그의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았다.“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까?”진백리는 고개를 저었다.“보이지 않습니다.”진 태위는 마음 아픈 듯이 그를 보며 말했다.“아직 태의를 부르지는 않고 먼저 왕비를 불렀는데 혹시 치료할 방법이 있습니까?”인과관계가 있는 일이라 진 태위는 즉시 태의를 부르지 않았고 낙청연에게 희망을 걸었다.낙청연은 진백리의 맥을 짚으면서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치료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진 태위는 팔을 들며 예를 갖췄다.“고맙습니다, 왕비 마마!”바로 그때, 구석에서 구슬피 울고 있는 온계람 때문에 방 안에 한기가 감돌면서 진백리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는 긴장되면서도 기대에 부푼 마음을 안고 고개를 돌렸다.“아버지, 왕비와 단둘이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진 태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방에서 나갔다.방문이 닫히는 순간, 진백리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왕비 마마, 계람미인도를 가져온 것입니까?”낙청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이내 심각한
“방금… 느껴진 것 같습니다!”“그들이 이곳에 있는 것입니까?”낙청연이 대답했다.“네. 그들은 바로 진 공자의 곁에 있습니다.”진백리는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그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던 낙청연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면서 방을 나갔다. 세 사람에게 그들만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진백리는 비록 보지는 못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낙청연은 매우 안타까웠다. 오늘 그들 가족이 한데 모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정원을 나오자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는 진 태위의 뒷모습이 보였다.“태위 대감.”낙청연이 그를 부르자 그는 얼른 눈물을 닦으면서 몸을 돌렸다.“왕비 마마.”“전 최선을 다해 진 공자를 치료할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슬퍼 마세요. 적어도 살아있지 않습니까?”낙청연은 그를 위로하며 말했고 진 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고맙습니다, 왕비 마마. 은 천 냥은 하인에게 일러 준비해두라고 했습니다.”“급하지 않습니다. 우선 처방부터 내리고 진 공자께 침을 놔드리겠습니다.”뒤이어 낙청연은 처방을 내리러 갔다.진백리와 그의 처자식에게 함께할 시간을 충분히 준 다음 낙청연은 그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가 그에게 침을 놔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효과가 나타났다.끝나고 나서 진 태위는 그녀에게 은표를 주었고 마차를 보내 그녀를 저택까지 바래다주었다.온계람은 더는 그녀와 함께하지 않고 태위부에 남았다.마차에 앉은 낙청연의 머릿속은 진백리의 눈에 관한 일로 가득찼다. 그녀는 그가 시력을 잃은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고 그래서 꼭 진백리를 낫게 해서 그가 처자식을 볼 수 있었으면 했다.돌아간 뒤 제대로 연구에 몰두해야 할 듯했다.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는데 마차가 저잣거리를 지날 때 누군가 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렸다.“거기 서거라!”“저 부도를 지키지 않은 사람을 잡으시오!”한 무리의 사람이 몰려들자 말이 놀랐는지 펄쩍 뛰어오르면서 소리를 냈고, 마차는 옆에 있던
“움직이거라!”낙청연은 죽을힘을 다해 버둥거렸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밧줄로 낙청연의 손을 묶었고 입안에는 낡은 천 쪼가리를 물린 채 낙청연을 억지로 끌고 가고 있었다.낙청연은 극도로 화가 났다. 멀건 대낮에, 그것도 저잣거리에서 이렇게 대놓고 사람을 묶어서 납치하려 하다니, 법도라고는 없었다.적어도 백여 명은 될 듯한 사람들이 갑자기 저잣거리에 나타나 거리를 가득 메우자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했다.“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렇게 소란스러운 것이오? 산적들도 아니고 말이오!”“부도를 지키지 않은 여인을 쫓고 있다고 들었소. 첩인데 시동생과 사통했다고 지금 강에 빠뜨리려고 하는 게 아니겠소?”“그렇구먼. 쌤통이오.”“우리도 얼른 가서 구경이나 해보세.”사람들은 수군덕거리기 바빴지 낙청연을 구하려는 자는 없었다.마부는 급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마차는 망가졌고 말도 움직이려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급하게 태위부로 달려가 이 소식을 전해야 했다.—낙청연이 태위부로 향한 지 반 시진이 지나서야 부진환은 소서에게서 그 얘기를 전해 들었다.“왕야, 진천리를 정말 찾은 듯합니다. 조금 전 태위부에서 왕비 마마를 모셔갔습니다.”부진환은 그의 말에 의아한 얼굴로 대꾸했다.“진짜 찾았다는 말이냐?”낙청연에게 그렇게 대단한 실력이 있었다니?“본왕도 가봐야겠다.”부진환은 미간을 잔뜩 구기며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고 말을 타고 태위부로 향했다.아무리 생각해도 믿기 힘들었다. 낙청연의 실력이 그렇게 대단한가? 천리 밖에서 벌어진 일들도 이렇게 정확히 알 수 있다니?그는 태위부로 가서 직접 알아볼 셈이었다.저잣거리에 들어서니 거리에 사람들이 가득했고 무척이나 떠들썩했다. 말을 타고 지나갈 수 없는 상태라 부진환은 어쩔 수 없이 방향을 돌려 다른 길로 돌아가야 했다.사람들에게 끌려가던 낙청연은 부진환의 뒷모습을 발견하고는 다급히 그를 불러서 멈춰 세우려고 했지만 제대로 된 소리를
마부는 비틀거리며 안으로 뛰어 들어와 외쳤다.“큰일입니다! 백성들이 왕비 마마를 억지로 끌고 갔습니다!”그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진 태위는 미간을 구겼다.“뭐라고? 백성들이 끌고 갔다니? 멀건 대낮에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냐?”마부는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진짜입니다! 그들이 사람을 잘못 알아보고 왕비 마마를 잡아갔습니다. 왕비 마마를 강물에 빠뜨리겠다고 했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부진환의 머릿속에 사람이 가득 몰려있던 거리가 문득 떠올랐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그는 순간 안색이 달라지면서 태위부 대문을 박차고 나갔다.—낙청연은 사람들에게 잡혀 강가까지 끌려온 상태였고 그곳에는 구경하러 몰려든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천박하긴! 어찌 시동생과 사통한다는 말이냐? 오늘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다.”남자는 그녀를 모욕하면서 그녀의 몸에 밧줄을 둘렀다.낙청연은 사나운 기세로 말했다.“나는 섭정왕비다! 감히 날 잡다니, 결과가 어떨지 생각해 보았느냐? 대체 누가 너희를 보낸 것이냐? 목숨이 아깝지 않으냐?”낙청연은 그들이 사람을 잘못 알아봤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분명 누군가 시킨 일일 것이다.감히 멀건 대낮에 사람들 다 있는 곳에서 사람을 잡다니, 간이 배밖으로 나온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나 그 사내는 콧방귀를 뀌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당신들은 이 사람이 섭정왕비 같소? 섭정왕비가 어찌 이렇게 생겼단 말이오? 돼지처럼 살쪘는데!”사내는 거리낌 없이 비웃었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그를 따라 웃기 시작했다.“그건 불가능하오! 이런 외모를 하고 어떻게 섭정왕비가 될 수 있다는 말이오? 꿈이라도 꾼 것이오?”“그러게나 말이오. 그럴 리가 없지.”또렷이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웃는 소리는 칼날이 되어 낙청연의 몸을 마구 찔렀다. 그들의 비아냥거리는 어조와 눈빛은 낙청연의 화를 끊임없이 돋웠다.사내는 머리를 젖히며 큰소리로 웃었다.“들었느냐? 다들 눈이 제대로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