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이 사그라들자 석문도 열렸다.낙요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길을 지났고 또 모퉁이에 도착했다.조금 전의 길과 똑같이 생긴 통로였다.이번이 세 번째였다.심지어 통로의 길이도 똑같았다.낙요는 문득 봉시가 건네줬던 지도가 떠올랐다.지도에는 기관이 아주 많았는데 그것은 도주영 안의 기관들이었다.도주영에서 위험했던 적이 없었기에 낙요는 그 지도가 쓸모없을 줄 알았다.그런데 이 별원 아래의 기관이 지도와 똑같을 줄은 몰랐다.지도 위 기관은 똑같은 통로에 똑같은 배치였다. 그러나 그런 통로가 적어도 십여 개, 많으면 백여 개쯤 되었다.그리고 서로 다른 통로에 같은 기관이 있을 수도 있었다.만약 누군가 그곳에 갇힌다면 똑같이 생긴 곳에서 반복적인 경험을 하다 보니 환각을 느끼며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그곳은 미궁과 같았다. 계속 같은 곳을 맴돌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는 것이다.낙요는 도주영에서는 위험하지 않다가 이곳에서 이 기관들을 체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지도 위 기관들은 그걸 분해하는 법이 상세히 적혀 있었고 낙요는 일찌감치 그것을 달달 외웠다.그래서 그 기관들은 낙요에게 그리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을 꽤 많이 허비해야 했다. 이 통로가 얼마나 긴지, 어느 곳으로 향하는 길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나 활을 떠난 화살은 돌아갈 수 없는 법이다. 그저 앞으로 가야만 했다.-그렇게 밤이 끝나고 날이 밝았다.강여는 일찍 일어나 음식을 만들었다. 이 별원에는 하인이 없어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음식을 다 만들고 나니 기옥이 일어났다.“벌써 깨어났소?”기옥이 의아해했다.“그럼요. 얼른 앉아서 드세요. 제가 스승님을 부르러 가겠습니다.”강여는 낙요가 묵고 있는 마당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으나 반응이 없었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 안이 텅 비어 있었다.강여는 깜짝 놀랐다.“스승님?”그녀는 이곳저곳 찾기 시작했다.기옥은 소리를 듣고 부랴부랴 달려왔다.“왜 그러시오?”“스승님을 보셨습니까? 방
큰 밀실 안, 벽에 맞닿아 있는 진열대 위에는 대량의 기관과 무기들이 나열되어 있었다.낙요는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가 확인해 보았다. 대부분이 아주 귀한 보물들이었다.그 무기들은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졌는데 이상하게도 위에 오래된 혈흔이 묻어있었다.무기들은 전부 쇠사슬로 묶여 궤에 고정되어 있었다. 촛불 아래 그것들은 섬뜩한 살기를 뿜어댔다.낙요는 그 기관과 무기들이 누구의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가, 별안간 아주 정교한 목함이 눈에 들어왔다.그것은 진열대의 맨 중앙에 놓여 있었다.목함을 열어 보자 안에 옥패 두 개가 놓여 있었고 옥패 아래에는 서신 하나가 깔려 있었다.낙요는 옥패를 꺼냈고 옥패에도 오래된 혈흔이 묻어있는 걸 발견했다.옥패는 맑고 투명했는데 피가 침투된 건지 한 줄기 빨간색이 보였다.자세히 살펴보니 옥패에 갈라진 흔적이 있었다.옥패의 뒷면을 보니 작은 글자가 하나 보였다.“박(薄)...”낙요는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설마 기관 세가 박씨 일가일까?그러나 박씨 일가는 아주 신비로웠다.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그들은 곤륜산(崑崙山)에 머무르고 있으며 세상과 동떨어져 살고 있다고 한다.많은 사람이 그들의 기관과 보물을 탐냈지만 평생 박씨 일가의 거주지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그들은 기관 가문이기 때문에 그들이 살고 있는 곳도 분명 기관이 많아 사람들이 쳐들어가지 못할 것이다.그래서 박씨 일가에 관한 소문은 아주 드물었다.그런데 박씨 일가의 성이 적힌 옥패가 이곳에 있다니.이 밀실이 박씨 일가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관은 너무도 허술했다.낙요는 아래 깔려있던 서신을 펼쳤다.“이번 생에 당신을 만난 건 나 중성(仲盛)의 행운이오. 이걸 증표로 나 중성의 모든 걸 당신에게 바칠 것이오. 난 단지 이번 생에 우리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기만을 바라오.”“중성?”“박중성?”그것은 박중성의 옥패였다.낙요는 밀실 안에 진열된 기관과 무기들을 둘러보며 놀라워했다. 그것들이 박중성이 말한 그의 모든 것이었다.그것은
강여는 곧바로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방안에서 이곳저곳 향기를 맡으며 낙요가 사라진 곳을 찾기 시작했다.역시나, 그녀는 책궤 옆 벽 쪽에서 향기가 가장 짙은 걸 발견했다. 벽을 두드려 보니 확실히 비어 있었다.강여는 기관을 찾기 시작했다.옆 첵궤 위 향로를 건드리자, 밀실 문이 열렸다.강여는 화색을 띠며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통로 안으로 들어섰을 때, 바닥에 있는 흔적들을 본 강여는 심장이 철렁했다.“스승님...”그녀는 저도 모르게 걱정이 됐다.낙요가 다친 채로 밀실 안에 갇힌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강여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그녀는 통로 안의 기관들이 전부 해결됐음을 발견했고 막힘없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도주의 경계 지역에 도착한 부진환은 드디어 주락을 찾았다.하지만 주락은 대부대와 함께 있었다. 그들은 반귀성의 사람들이었다.“주락!”부진환이 곧바로 말을 타고 달려갔다.부대가 멈췄고 주락은 살짝 놀랐다.“당신이 여긴 어쩐 일이오?”부진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초상화를 꺼내 들었다.“성주부에서 당신이 많은 백성들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소. 목격자가 당신의 초상화를 그렸다고 하오.”주락은 난처한 표정이었다.“그런 적 없소.”“난 그동안 반귀성에서 바빴고 오늘에야 이곳에 도착했소.”그 말에 부진환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는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다.“큰일이군! 당했소!”이때 우홍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란 말이오? 설마 내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오?”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였다.“가는 길에 얘기하겠습니다.”그렇게 그들 일행은 곧바로 말을 타고 빠른 속도로 사람을 구하러 갔다.-밀실 안. 낙요는 실마리를 찾고 있었다.별안간 등 뒤의 벽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이어 누군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몸을 홱 돌린 낙요는 상대방과 시선이 마주쳤다.상대방을 확인한 낙요는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했던 바였다.그 별원은 그녀의 것이었으니 말이다.별원의 길이 그녀의 구역으로 향하는
말을 끝맺기 무섭게 허서화의 눈빛이 돌변했다.그녀는 살기등등해서 낙요를 공격했다.낙요는 곧바로 손을 들어서 막았다. 두 사람은 아주 치열하게 싸웠다.낙요는 이내 허서화의 실력이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해 상대하기 쉽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낙요는 곧바로 분심검을 뽑았다.그러자 허서화는 다급히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그녀는 주먹으로 등 뒤의 벽을 쳤고 쾅 소리와 함께 낙요의 몸 아래 석판이 열렸다.추락하는 기분이 느껴짐과 동시에 낙요는 아래로 떨어졌다.하지만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다. 깊이가 깊지 않았고 마침 머리가 위로 나오는 높이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지면이 아주 큰 범위로 내려앉았다. 벽과 맞닿아 있는 궤들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것들이 아래로 가라앉았다.이렇게 큰 밀실에 벽에 맞닿아 있는 궤만 있는 이유가 있었다.낙요가 중심을 잡은 뒤 위로 올라가려 하자 네 개의 벽에서 화살들이 쏟아졌다.서늘한 빛을 번뜩이면서 말이다.낙요는 다시 한번 물러서야 했다.동시에 위에서 무기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커다란 철창이 내려와 빈틈없이 아래로 내려앉은 공간을 감쌌다.동시에 아래서 물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숙여 보니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며 발을 적셨다.그 모습에 허서화는 천천히 걸어가 소매 안에서 갈고리를 하나 꺼내더니 낙요가 들고 있던 분심검을 낚아챘다.낙요는 피하려 했지만 다른 갈고리가 그녀의 얼굴을 공격했다.결국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분심검을 놓아야 했다.허서화는 분심검을 빼앗은 뒤 그것을 찬찬히 살펴보았다.“좋은 검이군. 그동안 내 마음에 드는 것이 거의 없었는데 말이오.”낙요는 미간을 구겼다.“절 잡은 것이 겨우 분심검 때문입니까?”그렇게 단순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허서화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입을 열려 했다.그런데 갑자기 벽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세 번 들렸다. 아주 묵직한 소리였다.마치 기관으로 두리는 듯한 울림이었다. 그 밀실의 벽은 아주 두꺼웠기 때문에 밖의 소리를 완벽히 차단할 수 있었다.밀실이 이렇게 지
“그래, 그래. 그러면 괜찮을 것이다. 도주영에 가서 그녀가 있는지 찾아보거라. 내가 사람을 시켜 성안을 찾아보게 할 것이다.”기옥은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러면 도주영에 가보겠습니다.”기옥은 말을 마친 뒤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런데 바로 그 순간 미풍과 함께 익숙한 향기가 났다.기옥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몸을 홱 돌려 허서화를 바라봤다.허서화는 아직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허서화를 바라봤다.“왜 그러느냐?”기옥은 목구멍이 꽉 막힌 기분으로 다시 그녀에게로 다가갔다.그녀는 허서화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고모, 낙청연은 제 얼마 없는 친우 중 한 명입니다. 꼭 절 도와 그녀를 찾아주세요.”허서화는 결연한 어조로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말거라. 고모가 꼭 찾아주마.”가까운 거리에 기옥은 다시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 냄새는 허서화의 몸에서 나는 것이 확실했다.아주 옅은 향기였지만 기옥은 맡을 수 있었다.그날 밤새 향낭을 만들며 약재들의 냄새를 똑똑히 기억했기 때문이다.기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애썼다.하지만 그녀는 낙청연을 찾느라 걱정되고 또 초조한 상태였기에 허서화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기옥은 몸을 돌려 대문 쪽으로 향했다.그러나 그녀는 성주부를 떠나지 않고, 한 바퀴 에둘러 성주부에서 가장 외진 마당의 벽 밖에 섰다.그것은 분명 낙청연의 향낭에서 느껴지는 향이 맞았다.허서화는 분명 낙요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왜 본 적 없다고 그녀를⁷ 속인 것일가?낙청연은 아마 성주부에 있을 것이다.기옥은 벽을 넘어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그리고 공기 속에 퍼진 옅은 향기를 따라서 아무도 없는 마당으로 향했다.그러나 그녀가 마당 안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고모가 한 정자 안에 들어갔다.그리고 곧이어 그 정자에 설진재가 나타났다.기옥은 몰래 숨어 그들을 지켜봤다.설진재는 앉아있는 허서화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그 정중한 태도와 모습에 기옥은 큰 충격을 받았다.설진재는
설진재가 정중하게 대답했다.“알겠소!”말하면서 설진재는 의아한 듯 말했다.“낙청연의 신분은 가짜인데 성주는 왜 이렇게 정성을 들여 그녀를 죽이려는 것이오?”“그들을 그냥 잡아서 죽이면 되지 않소?”허서화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흘겨봤다.그녀는 이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기옥이 날 미워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러지.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겠소?”“똑똑히 기억하시오.”“낙청연을 죽이는 것도, 부진환을 죽이는 것도, 반드시 깔끔히 처리해야 하오, 절대 기옥이 날 의심하게 해서는 아니 되오.”설진재가 황급히 대답했다.“성주,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모든 일을 잘 처리할 것이오.”“부진환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아마도 오는 길일 것이오. 내가 기회를 틈타 그를 도주영의 기관으로 유인하여 죽이겠소. 그리고 도주영에게 덤터기를 씌우겠소.”허서화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소.”“그렇게 하시오.”이내 설진재가 떠났다.허서화는 차를 한 잔 다 마신 뒤 그 방으로 향했다.-허서화가 밀실을 떠난 뒤 낙요는 기관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철창은 너무 견고하고 무거워 도망칠 수가 없었다.그런데 바로 그때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낙요는 눈을 감고 잠시 느끼더니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부문을 적은 뒤 어두운 곳을 향해 걸어갔다.이내 여인 한 명이 튀어나왔다.낙요는 화들짝 놀랐다.상대방은 겁 먹은 얼굴로 낙요를 바라보고 있었다.이곳에 갇힌 것이 낙요 한 명은 아닌 듯했다.낙요가 말했다.“보아하니 이곳에 오래 갇혀 있었던 것 같은데 이곳에서 나가고 싶소?”여인은 겁먹은 얼굴로 낙요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낙요가 눈을 빛냈다.“날 도와 한 가지 일을 한다면 내가 당신을 데리고 나가 자유를 주겠소.”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의 눈동자에 악랄한 빛이 맴돌았다.낙요는 상대방의 표정과 눈빛을 전부 보고 있었다.그곳에 묶여 있는 혼백이라면 아마 허서화의 손에 죽어서 원망이 아주 많을 것이다.그러나 낙요가 막 이곳에 왔을 때는 발
그 말에 낙요는 살짝 당황했다.“알겠다.”말을 마친 뒤 낙요는 급히 강여를 불렀다.“너희는 얼른 이 벽을 원래대로 돌려놓거라. 안과 밖이 차이가 있다. 잠시 뒤 허서화가 돌아온다면 누군가 온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두 사람은 다급히 벽을 밀어 그것을 원래대로 회복시키려 했다.그러나 너무 무거워서 두 사람으로는 버거웠다.낙요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벽은 들어가거나 나올 때 기관이 전부 한 방향으로만 열렸다.사람이 온 적이 없는 것처럼 해놓으려면 밖의 기관을 손봐야 했다.기옥도 이내 그 점을 깨달았다.그녀는 이를 악물었다.“제가 밖에 나가겠습니다!”“전 들킨다고 해도 해명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낙요가 그녀를 불렀다.“잠깐!”“내가 해보겠다.”말하면서 낙요의 시선이 물속 구석에 있는 여자에게로 향했다.그녀는 낙요의 눈빛을 받자 황급히 말했다.“난 시험해 보았으나 밀리지 않았소.”낙요는 가라앉은 눈빛으로 차갑게 말했다.“당신의 원기는 아주 강하오.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벽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오.”여자는 들켰다는 생각에 낙요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낙요는 천명 나침반을 꺼내 금빛 진을 친 뒤 힘껏 휘둘렀다.그 여인은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엄청난 음기로 벽을 공격했다.같은 시각, 허서화가 그 마당으로 향하고 있었다.허서화가 마당에 발을 들이는 순간, 벽이 닫혔다.강여와 기옥은 황급히 밀실 문 뒤로 몸을 숨겼다.이내 벽이 움직이고 허서화가 들어왔다.밀실 안에 들어선 순간, 허서화는 밀실 속 기운이 이상함을 눈치챘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낙요 또한 그 점을 보아냈다.허서화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지 않은 순간, 낙요는 비수를 꺼내 들어 그녀를 공격했다.허서화는 아주 빠르게 피했다.비수가 매섭게 벽에 꽂혔다.허서화는 차갑게 코웃음 치더니 낙요를 거만하게 내려다보았다.“이 수뢰는 내가 10년의 시간을 들여 만든 기관이오. 그런데 도망칠 생각을 한 것이오?”“그냥 포기하시오.”낙요
낙요는 깜짝 놀랐고 이내 모든 걸 깨달았다.그녀는 차갑게 웃었다.“그래서 우리가 성주부에 도착한 첫날, 당신은 이미 날 노렸군요.”“강풍산 때문입니까?”허서화는 솔직히 대답했다.“그렇소.”“이 강풍산은 그 사람 손 안의 유일한 무기라 절대 쉽게 남에게 선물로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암시장에 내다 팔 리는 더더욱 없고.”“그동안 줄곧 몸을 숨기고 있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는 강풍산뿐이라니.”“당신은 그를 본 적이 있소. 내 말이 맞소?”허서화는 말하면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낙요를 바라보았다.낙요는 눈을 가늘게 떴다.“당신이 말한 그 사람이 박중성입니까?”그 이름을 듣는 순간 허서화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뜨겁게 눈을 빛냈다.그녀의 눈동자에 미처 감추지 못한 흥분이 보였다.그 표정을 보고 있으면 섬뜩했다.“역시나 그를 본 적이 있군! 그는 어디에 있소? 그가 어디 있는지 말해준다면 당신을 편히 죽여주겠소!”그 말을 들은 낙요는 황당했다.그녀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박중성 때문에 절 노린 것이라고 하셨지요. 제가 당신에게 박중성의 행방을 얘기 해준다고 해도 절 죽일 생각입니까?”“이렇게 큰 비밀을 얘기해주는 데 겨우 편안하게 죽여주겠다고요?”허서화는 웃으며 말했다.“지금의 당신에게는 편안히 죽는 것도 사치요.”“이 아래의 기관이 작동된다면 당신은 내게 고마워할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제가 알려줄 수도 있습니다. 전 박중성이 당신에게 쓴 편지와 당신에게 준 사랑의 증표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서로 원수가 된 겁니까?”그 얘기에 허서화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그녀는 악랄하게 말했다.“그가 날 버렸소!”“말만 번지르르했지. 내게 모든 걸 줄 수 있다고 했으면서 결국에는 후회했소!”“혼인을 치르는 날 도망을 쳐서,내가 웃음거리가 되게 했지!”낙요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허서화가 말한 그 사람이 봉시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먼저 함정을 파놓아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