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돌린 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했다.위치와 거리를 계산해 본 낙청연은 목소리를 낮추며 벙어리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분산으로 가지.”“그 뒤에 마을이 있소.”그 마을의 환각진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전에 복맹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인데 아직도 있었다.벙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낙청연을 업고도 날듯이 걸었다. 그는 다른 이들을 데리고 빠른 속도로 분산으로 향했다.우홍은 십여 명과 함께 활과 화살을 꺼내 들고 잇달아 고묘묘를 공격해 그녀를 막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마을로 뛰어 들어갔다.낙청연은 바닥에 발이 닿자 걱정스럽게 벙어리를 바라보았다.“아토, 괜찮소?”벙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는 걸 표현했다.곧이어 우홍 등 사람들도 속속 도착했다.모든 이들이 마을 안에 들어오자 낙청연은 부문의 위치를 옮겼다.“됐습니다, 성주. 두 사람을 여기에 남겨서 지켜보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일단 앞에 있는 마당으로 갈 겁니다.”이제 곧 저녁이라 숲속에 안개가 자욱했고, 거기에 더해 환각진의 작용 때문에 마을 전체가 모습을 감췄다.그들은 마을 안에서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바로 마을 밖에 있었고 수도 적지 않았지만 마을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고묘묘는 분산에 도착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곧이어 부하들이 도착했다.“공주마마, 괜찮으십니까?”고묘묘는 화를 내며 그를 걷어찼다.“쓸모없는 놈!”“수색하거라! 분산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찾아야 할 것이다!”고묘묘는 분노가 치밀었다.그렇게 고묘묘의 부하들은 전부 분산에 모였다.낙청연은 날이 어두워지자 사람들을 데리고 출발했다. 그들은 정면에서 마을을 떠나 고묘묘 일행을 지나쳐 그 허름한 절로 향했다.그곳에는 산꼭대기까지 직통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낙청연은 일행은 순조롭게 비밀 통로에 진입해 산꼭대기로 향했다.그들이 비밀 통로에서 나왔을 때는 날이 거의 밝았다.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호위는 인기척을 듣고 깜짝 놀라 사람들을 모은 뒤 출구를 겹겹이 에워쌌다.낙
“그녀가 죽은 뒤 다리가 끊겼습니다.”그들은 그 저택에 도착했다. 낙청연은 우홍을 데리고 우단봉이 살던 방으로 향했다. 곳곳에 그녀가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었다.낙청연은 또 우홍을 데리고 뱀굴로 향하는 절벽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의 다리는 아직 시공 전이었다.벼랑 사이에 서자 광풍이 휘몰아쳤고 우홍은 놀라움을 느꼈다.“이건... 우단봉이 만든 것이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정 아저씨에게 방어 배치도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것에는 우단봉이 손수 적은 글이 있었다.“그녀는 귀도에 대한 큰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곳뿐만 아니라 산 전체에 기관이 있습니다. 그녀가 모든 방어를 만들었지요.”우홍은 그 내용을 보는 순간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우단봉은 예전에 내게 이런 생각을 얘기한 적이 있었소. 하지만 현실적이지 않다고 나와 내 아버지에게 부정당했지.”“그런데 지금 보니 우리가 틀렸소.”“만약 당시 우리가 우단봉을 인정하고 그 아이에게 자신감을 줬다면 우리 몰래 이런 일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그랬다면 지금처럼 나쁜 결과가 있지는 않았겠지.”우홍은 비통했고 또 죽도록 후회됐다.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법이고 예전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었다.우홍은 낭떠러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낙청연은 우홍이 혼자 있을 수 있게 다른 이들과 먼저 자리를 떴다.마당으로 돌아오자 정 아저씨가 다급히 말했다.“성주, 제가 주방에 먹을 걸 준비하라고 이르겠습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또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산에 백 명 정도 사람이 왔는데 지금 절 찾고 있습니다.”“그들의 동향을 살피세요. 만약 그들이 계속해 산에 오르려 한다면 필요할 때 개입하십시오.”정 아저씨가 대답했다.“알겠습니다!”구십칠도 도와주러 갔다.고개를 든 낙청연은 햇볕이 좋아 마당의 풀밭에 앉았다.앞을 내다보니 구름이 둥둥 떠 있었다.벙어리는 조용히 그녀의 곁에 서 있었다.“우홍은 아마 진정으로 자신의 여동생
“고묘묘는요?”낙청연이 물었고 정 아저씨가 대답했다.“사람이 너무 많아 그자는 보지 못했습니다. 아직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낙청연은 고묘묘의 실력으로는 산을 오르는 것이 꽤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사람이 거의 다 죽는다면 어려움을 알고 물러날 것이다.정 아저씨가 떠난 뒤 그들은 밥을 먹으러 돌아갔다.식탁 앞에서 우홍이 물었다.“정 아저씨는 예전에 우단봉과 함께 있었습니까?”정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 우 성주께서 귀도를 갓 창립하셨을 때부터 있었습니다.”“알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기억한다면 말입니다.”“나이가 있어서 어떤 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우홍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밥을 먹고 난 뒤 얘기를 나누시지요.”식사를 마친 뒤 우홍은 정 아저씨와 단둘이 우단봉의 과거에 대해 얘기했다.우홍은 우단봉이 귀도에서 지내면서 있었던 일이 궁금했다.낙청연은 할 일이 없어 벙어리를 데리고 산을 누볐다.산의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르자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벼랑 끝 나무 아래, 낙청연은 자리에 앉아 나무에 기댔다.앞은 첩첩산중으로 구름과 안개가 자욱했고 마치 선경처럼 천 리 밖의 봉우리가 보일 듯했다.“이 산에 또 다른 풍경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예전에는 귀도가 마냥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산의 경치에는 소홀했소.”벙어리는 나뭇가지를 들어 바닥에 천천히 글을 적었다.“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는 경치를 볼 여유가 없지.”낙청연은 웃었다.“그렇소. 죽을 수도 있는데 경치를 볼 여유가 있을 리가.”“이 풍경은 산 정상의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오.”이곳은 아마 우단봉이 신중하게 고른 곳일 것이다. 이곳의 지형을 보면 산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용의 기운도 은은히 느껴지는 것이 풍수가 좋은 곳이었다.벙어리는 천천히 섰다.“다행인 건 우리가 산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오.”그리고 산에 오르지 못한 자들은 영원히 산 중턱에 남아있을 것이다.두 사람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
낙청연도 정 아저씨와 작별한 뒤 우홍과 함께 산에서 내려갔다.그들은 돌아갔다.돌아가는 길에 낙청연은 우홍에게 말했다.“귀도의 모든 재물과 보물은 당신 우씨 집안의 것입니다. 당신은 우단봉의 오라버니이기 때문에 당신이 귀도를 물려받아야 합니다.”“만약...”낙청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홍이 입을 열어 그녀를 막았다.“괜찮소.”“난 정 아저씨에게서 모든 상황을 전해 들었소. 귀도는 내 동생이 그대에게 준 것이오.”“그대는 내 여동생을 대신해 원수를 갚았으니 우리 우씨 일가의 은인이기도 하오.”“그대는 귀도의 성주이니 사양하지 마시오.”우홍은 무척 감격했고 전에 낙청연을 오해했던 일 때문에 후회했다.다행히 낙청연은 그 일로 따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날 밤 아마 우씨 집안의 모든 이들이 재앙을 맞이했을 것이고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그런 생각이 들자 우홍은 갑자기 웃으면서 낙청연을 바라보았다.“낙 낭자는 용기도 있고 머리도 좋으며 사악한 것을 물리칠 줄도 알고 의술까지 할 줄 알지. 귀도에는 많은 기관과 함정, 위험이 있는데 길을 하나 뚫었지. 난 정말 탄복했소.”“내가 낙 낭자와 의남매를 맺어도 되겠소?”“내 나이쯤이면 낭자의 아버지뻘인 걸 알지만 득을 보고 싶지는 않으니 남매가 어떻겠소?”그 말을 들은 순간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남매요? 그러면 제가 득을 보는 것이 아닙니까?”우홍은 고개를 젖히고 큰 소리로 웃었다.“난 좋소!”“그러니 낙 낭자의 의지에 달렸소.”낙청연은 주저하지 않고 과감히 대답했다.“좋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오라버니라고 부르겠습니다!”우홍은 그 말을 듣고 무척이나 흡족했고 심지어 감동했다.그는 아주 오랜만에 오라버니라는 호칭을 듣는 것이었다.“하하하하, 좋다! 앞으로 넌 내 여동생이자 암시장의 아가씨다! 앞으로는 내가 반귀성을 관리하고 네가 귀도를 관리하는 것이다.”“앞으로 뭔가 필요하면 언제든 오라버니에게 말하거라!”“그리고 누가 널 괴롭힌다면 내게 얘기하거라!”우홍
이때도 낙청연은 별생각이 없었다. 돌아가서 우홍은 그녀를 데리고 이른바 보물창고로 갔다.그제야 낙청연은 우씨 집안의 풍부한 재력을 알게 되었다.여기저기 바닥 한가득 놓여있는 금빛 찬란한 상자를 보고, 낙청연은 믿을 수가 없었다. “오라버니, 이 돈이면 부의 나라와 대적할 만합니다!”낙청연은 암시장의 성주에게 돈이 많은 줄 알았지만, 이 정도로 부자인 줄은 몰랐다.게다가 성주 집안의 장식품들은 비록 정교하지만 그렇게 귀한 것은 아니었다.생각밖에 진짜로 귀한 물건들은 모두 보물창고에 있었다.우홍은 웃으며 두 손을 펼치며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걸 마음대로 골라가거라.”“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니, 이 물건들은 가져가지 못한다.”“나에게는 후손이 없으니, 여기에 놔둬 봐야 기껏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다.”우홍의 이 말은, 약간 암시를 띠고 있었다.그러나 낙청연은 이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물었다. “오라버니에게 이렇게 많은 돈이 있는데, 암시장의 장사를 더 멀리 발전시킬 생각은 없습니까?”우홍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바로 물었다. “천궐국을 말하느냐?”우홍은 느긋하게 앞으로 걸어가더니 웃으며 말했다. “생각은 해봤지만, 천궐국에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더구나.”“천궐국에 가서 장사꾼을 만나 협력을 논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저 생각만 했을 뿐 그만뒀다.”“내 곁에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는 도저히 그렇게 많은 일을 신경 쓸 겨를이 없구나.”“게다가, 부모님도 돌봐야 하지 않느냐?”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하긴 그렇습니다.”“그리고 오라버니는 장사를 이렇게 크고 하고 있는데, 혹시 누군가 오라버니의 세력과 재산에 눈독을 들일까 봐 두렵지 않습니까? 필경 우경성도 이것 때문에 오라버니를 노리지 않았습니까?”하지만 우홍은 소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운명에 이런 재난이 있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으냐?”“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우씨 남매처럼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이 재
“급한 일이 없으면, 여기서 며칠 더 지내거라.”“어차피 지금 돌아가면, 그 고묘묘가 또 너를 귀찮게 할 터이니, 여기서 좀 더 지내다 가거라.”“그리고 내가 직접 백여 명의 호위를 뽑아, 앞으로 너를 따라다니게 할 것이다. 이제 누가 또 감히 너를 괴롭히나 보겠다!”낙청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황족 전체를 건드렸다.하지만 우홍의 이 태도를 보아하니, 황족과 맞서는 걸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필경 그는 이렇게 놀라운 부를 소유하고 있으니까!하지만 그는 생각보다 겸손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창고에서 나간 후, 낙청연은 그 약재들을 전부 두 노인의 병을 치료하고, 몸을 조리하는데 썼다.우단봉의 유골을 받은 후, 두 노인은 며칠 동안 매우 슬퍼했다. 그러나 우단봉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마음속 매듭은 완전히 풀렸다.어쨌든 우단봉은 다시 가족 옆으로 돌아왔고, 원수도 이미 갚았으니까!약을 연달아 며칠 드신 아버님의 기력은 이미 많이 회복되었다.할 일 없으면 밖에 나가 햇볕을 쬐고, 가끔 낙청연이 곁을 지키곤 했다.“아가야, 네 오라비에게서 들었는데 네가 불전연이라는 약재를 찾고 있다고?”아버님은 물어보면서 소맷자락에서 긴 비단함을 꺼냈다.“마침, 내 방에 있었다. 이건 예전에 다른 분에게서 받은 선물이다.”“자, 넣어두거라.”낙청연은 작은 상자를 열어보았다. 정말 불전연이었다.낙청연은 순간 몹시 감격했다. “감사합니다. 의부!”기뻐하는 낙청연을 보며 아버님의 마음도 더없이 흐뭇했다. 마치 또 자기 딸을 보는 것 같았다.그해, 우단봉이 집을 나갈 때 이 정도 나이였다.순간, 마치 또 그해의 우단봉을 보는 것 같았다.낙청연은 반귀성에서 며칠을 지냈지만, 아직 암시장을 제대로 돌아본 적이 없다.이날 밤, 암시장은 유달리 시끌벅적했다. 거리 곳곳에 초롱을 달고 오색천으로 장식했으며, 예전의 신비로운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어제는 귀성이었지만, 오늘은 사람 사는 냄새가 더해졌다거리에 기묘한 보물 외에, 간식
구십칠은 말을 끝내더니, 경공으로 날아갔다.두 거리를 지나서야, 구십칠은 그 가면을 쓴 주술사를 따라잡았다. 그는 경공으로 간단하게 상대방을 제압해, 벽으로 밀어붙였다.“돈은?”“감히 내 것을 훔쳐? 네가 재수없다고 생각하거라!”구십칠은 말을 하며 바로 손으로 돈주머니를 만졌다.“아, 아, 아니, 아무 데나 만지지 마십시오!”그런데 이 말을 할 때, 구십칠의 손은 마침 상대방의 가슴을 만지더니, 화들짝 놀라서 황급히 손을 뗐다.그 사람은 구십칠과 등을 맞대고 있었고, 널찍한 주술복과 그 가면을 더해, 구십칠은 사실 그 사람이 여인이었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구십칠은 즉시 그 여인의 어깨를 잡고 그녀를 자기 앞으로 돌리더니, 바로 가면을 벗겨버렸다.머리에 꽂은 잠이 가면에 걸려 함께 떨어지더니, 청초하고 아리따운 얼굴이 구십칠의 눈앞에 나타났다.검은 머리가 폭포처럼 쏟아졌다.순간 구십칠은 그 모습에 넋을 잃었다.여인은 구십칠의 눈빛에 완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돈주머니? 저의 몸에 돈은 없습니다.”“오라버니, 사람을 잘 못 본 게 아닙니까?”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는 그 달콤한 오라버니 소리에 구십칠은 순간 얼이 빠졌다.“네가 훔친 게 아닌데 왜 도망가느냐?”낭자는 온통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라버니가 저를 쫓아오는데 제가 어찌 도망가지 않겠습니까? 저는 나쁜 사람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구십칠은 미간을 찡그리며, 그 당시 상황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때 같은 복장을 한 사람이 확실히 많았기 때문에 그는 체형을 보고 따라갔다. 설마 그가 잘못 알아본 건가?구십칠은 재빨리 계속 쫓아갔다.뒤에서 그 여인은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었다.구십칠은 이 골목을 지나서 문득 깨달았다. 그는 미간을 찡그리며, 그리 쉽게 그 여인의 말을 믿은 자신을 탓했다.이런 생각이 든 그는 깨닫고 다시 뒤돌아 쫓아갔다.그 여인은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구십칠은 또 두 거리를 연달아 쫓아가, 길모퉁이에서 그 여인을 막아섰
여인은 더욱 서럽게 울며 말했다. “오라버니, 혹시 이 돈을 저에게 주면 안 됩니까?”“제가 급하게 필요하단 말입니다!”구십칠은 미간을 찌푸리며 냉랭하게 말했다. “허튼수작 부지지 말거라.”구십칠이 돈주머니를 가져가려고 하자, 그 여인은 털썩 무릎을 꿇더니, 여전히 돈주머니를 꽉 움켜쥐고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여인은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원해서 물건을 훔친 게 아닙니다. 단지 저는 이미 사흘 동안 물건을 훔치지 못했을 뿐입니다. 만일 오늘도 빈손으로 돌아가면 또 굶어야 합니다.”“저는 이미 사흘 동안 밥을 못 먹었습니다.”“오라버니, 제발 저를 가엽게 생각하셔서 좀 도와주십시오!”이 말을 들은 구십칠은 깜짝 놀랐다.“뭐라고? 물건을 훔치라고 협박하는 자가 있다고?”여인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저와 저의 벗은 도적 떼에게 잡혔습니다. 그들은 저를 협박하여 돈을 훔치게 했습니다. 만일 7일 이내 돈을 훔치지 못하면 저를 청루에 팔아넘긴다고 했습니다……”여인은 말을 하며 더욱 서럽게 울었다.이 말을 들은 구십칠의 안색이 확 변했다.그는 즉시 손을 내밀어 여인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구십칠의 어투는 조금 전보다 훨씬 온화했다.여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쳐다보았다. “저의 이름은 기옥(祁玉)입니다.”구십칠은 냉랭하게 말했다. “울지 말고 나와 함께 너의 벗을 구하러 가자꾸나.”“정말입니까?” 기옥은 눈물을 스쳤다.“그럼, 가자꾸나.”구십칠이 발걸음을 옮기자, 기옥은 급히 따라오며 물었다. “오라버니의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구십칠이라고 한다.”이름을 들은 기옥은 매우 놀라 하더니, 휘둥그레진 두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쳐다보았다.“오라버니가 바로 그 구십칠입니까? 전설 속에 단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다는 그 신투(神盜), 구십칠입니까?”구십칠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었다.기옥은 격동되어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오라버니, 저를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