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듣는 순간, 낙청연은 몸을 흠칫 떨었다.뭐라고?낙청연은 믿기 어려웠다.하지만 소향은 말을 계속 이어가지 않고 갑자기 동굴 입구에서 사라졌다.낙청연은 다시 한번 머리 위 하늘에 시선을 빼앗겼다. 커다란 무언가가 서서히 모든 빛을 가렸다.마지막 틈까지 전부 막혔을 때, 소향의 목소리가 들렸다.“아무도 당신을 구하지 않을 것이오. 당신도 안에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기를 기다리시오!”“10일 뒤 시신을 거두러 오겠소!”소향은 이를 악문 채로 마지막 한 마디를 내뱉었다.소향이 낙청연을 이기지 못하는 게 아니었더라면 낙청연은 아마 지금쯤 소향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낙청연을 이길 수 없었기에 그녀를 이곳에 가두어 죽게 만들 셈인 듯했다.위에 놓인 석판은 아주 무거워 보였다. 낙청연은 석판이 떨어질까 봐 걱정됐다.소향이 이런 것까지 찾아내다니, 그건 소향이 이곳 환경에 아주 익숙하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 이곳에서 사람을 죽이는 게 처음이 아니란 걸 의미했다.그녀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일찍 귀도에 들어왔다.하지만 낙청연은 이해할 수 없었다. 두풍진 같은 음마가 어떻게 소향의 유일한 사랑이 된 걸까?그녀가 기억하기로 두풍진의 아내는 잔인하게 학대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뒤로 두풍진은 온갖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어떤 여인이 진심으로 두풍진을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낙청연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낙청연은 잠잠해지자 계속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서 죽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나갈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공간은 밀폐되어 있고 주위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그래서 석벽 내에서 나는 소리를 더욱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낙청연은 석벽을 한 바퀴 쭉 둘러보았고 끝내 물소리를 들었다.낙청연의 눈빛이 번뜩였다.석벽은 얇았기에 분명 길이 있을 것이다.낙청연은 이곳저곳 두드려 보다가 가장 얇은 곳을 찾은 뒤 돌멩이를 들어 힘껏 내리쳤다.그렇게 반복적으로 내리치다 보니 석벽이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했고 낙
홍해의 목소리였다!“홍해?”낙청연이 떠보듯 묻자 상대는 화들짝 놀라며 곧바로 대답했다.“당신도 여기 있었습니까?”낙청연은 깜짝 놀랐다. 구십칠!두 사람은 곧바로 공격을 멈췄다.낙청연은 다시금 불을 지펴 주변을 밝혔다.“왜 이런 것이냐?”다급히 달려간 낙청연은 홍해의 손등에서 뱀에게 물린 상처를 보았다. 뱀의 독에 당한 듯했다.낙청연은 부랴부랴 해독약을 홍해에게 건네 먹게 한 뒤 침을 놓아 독을 뺐다.덕분에 홍해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구십칠은 바닥에 쭈그려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당신을 만나서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홍해는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두 사람을 본 낙청연은 그들이 험한 일을 당했음을 직감했다.“몇 명이나 같이 있느냐? 숲에서 취산을 만났었는데 이미 죽었더구나.”낙청연이 걱정스레 물었다.구십칠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습니다. 제가 만난 이들 중 세 명이 죽었습니다. 지금은 홍해뿐입니다.”“다른 두 명도 위험할 것 같습니다.”낙청연은 그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어디 있느냐? 날 데리고 가거라.”구십칠은 홍해를 부축하며 낙청연을 데리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갔다.그들은 다른 세 사람의 시신을 찾았다.세 사람의 시신은 밧줄로 한데 묶여 있었다. 구십칠은 그들을 데리고 함께 갈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죽지 않은 홍해를 고려해야 했기에 우선 세 사람의 시체를 그곳에 두었다.시체의 몸에는 물린 흔적이 대부분이었고 칼과 검에 당한 상처도 있었지만 치명적인 건 뱀독이었다.낙청연은 병을 꺼내 취혼부로 그들의 혼백을 모두 병에 담았다.그녀는 구십칠을 보고 말했다.“가자.”“우리는 아직 출구를 찾지 못해서 시신을 데리고 나갈 수 없다.”구십칠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우선 출구를 찾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이 안에는 뱀이 아주 많고 독뱀도 많습니다.”낙청연은 서둘러 그들에게 뱀 퇴치용 분말을 건네주었고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몸과 발에 분말을 발랐다.그런데 바로 그때, 낙청연은
전부 뱀이었다.그것도 아주 빼곡했다.위에는 덩굴이 그물처럼 되어 있었고 그 위에 뱀이 도사리고 있었다.이따금 뱀이 물에 빠지기도 했다.구십칠은 초조한 듯 말했다.“이 숲에 많은 사람이 끌려갔습니다. 맨 위의 구덩이에서 떨어져 여기서 뱀들에게 모조리 잡아먹힙니다.”“저도 여기서 일행을 만났는데 홍해밖에 구하지 못했습니다.”그 말에 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했다.벙어리도 끌려가서 이곳에 빠진 걸까?낙청연은 철삭 끝을 바라보았다. 평평했지만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한번 가봐야겠다.”낙청연은 천참검을 들고 수면 위 부교로 향했다.구십칠은 그녀를 말릴 수 없어 홍해를 내려두고 낙청연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봤다.위험해진다면 곧바로 나설 생각이었다.낙청연은 최대한 물에 닿지 않으려고 빠른 걸음으로 부교를 지났다. 물에 닿으면 발에 묻힌 뱀 퇴치용 가루가 씻겨 내려가기 때문이다.그곳에 달려가 보니 바닥에 누워있는 벙어리가 보였다.낙청연은 곧바로 벙어리를 업었다. 다행히 그의 근처에는 뱀이 없었고 뱀에게 물린 상처도 없었다.낙청연은 힘겹게 그를 업은 뒤 이를 악물고 억지로 버텼다.“구십칠, 나 대신 위에 좀 봐주거라.”“알겠습니다. 발밑을 조심하세요!”구십칠은 바짝 긴장했다.낙청연은 이를 악물고 간신히 벙어리를 업어 부교 밖으로 향했다.무거운 걸음이 부교에 닿자 발이 물에 풍덩 빠졌다.그런데 물속에도 뱀이 가득했다. 뱀들은 갑자기 모두 떠올랐고 시커먼 뱀들을 보니 머리털이 쭈뼛 섰다.낙청연은 온 힘을 다해 부교 밖으로 돌진했지만 반 밖에 가지 못했다.그런데 갑자기 위에서 뱀이 부교로 떨어져 낙청연의 길을 막았다.바로 그때, 몸을 날린 구십칠이 장검으로 그 뱀을 들어 날려 보냈고 낙청연이 업고 있던 벙어리를 건네받았다.낙청연은 천참검을 들고 줄곧 엄호했다.다행히도 그들은 무사히 통로로 돌아올 수 있었다.비교적 안전한 곳에 벙어리를 내려놓은 뒤 낙청연은 급히 살펴봤다.독에 당하지도 않았고 물리지도 않았지만 등의 상처에서 피
다행히도 한 시진 정도 걷자 집 하나가 보였다.그것은 석벽과 붙어있는 집이었는데 집이라기보다는 동굴 같아 보였다.그곳은 비교적 추레했고 먼지도 두껍게 쌓여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듯했다.하지만 방에 지푸라기가 두껍게 깔려 있고 상대적으로 건조해 그들은 일단 그곳에서 휴식하기로 했다.낙청연은 검사한 뒤 말했다.“이곳은 뱀을 기르는 사람이 지내는 곳 같지 않다.”구석에 뱀을 담는 바구니가 많이 놓여 있었지만 전부 비어 있었다.낙청연은 솥과 그릇을 씻은 뒤 약을 달였고 기다리는 동안 벙어리의 상처를 싸맸다.상처가 너무 아팠는지 벙어리가 정신을 차렸다.낙청연은 그 틈을 타 그에게 약을 건넸다.“명줄이 질기니 당신은 절대 죽지 않을 것이오.”약그릇을 받아 든 벙어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바닥에 소향이 의심스럽다고 적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난 이미 알고 있소. 하지만 소향이 아니었다면 나도 당신을 찾지는 못했을 것이오.”소향이 벙어리도 공격한 듯했다.주위는 점점 더 추워졌고 구십칠은 불을 더 세게 지피며 말했다.“이미 밤이 되었을 것입니다.”“쉬세요, 제가 보초를 서겠습니다.”낙청연은 벽에 기대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녀는 구십칠에게 물었다.“그날 아침 깨어나 보니 다들 보이지 않더구나. 어딜 간 것이냐?”“당시 무슨 일을 겪었는지 기억하고 있느냐?”구십칠은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습니다. 제가 깨어났을 때는 산에 있었습니다.”“저도 제가 어떻게 산에 오른 건지 모르겠습니다. 머리가 흐리멍덩한 것이 기억을 잃은 건 아닐까 의심되기도 했습니다.”그 말에 낙청연은 살짝 놀라며 사색에 잠겼다.“그렇다면 우리는 당시 모두 뿔뿔이 흩어졌겠구나.”구십칠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것 같습니다.”말하면서 구십칠은 궁금한 듯 물었다.“조금 전 말한 소향이란 자는 누굽니까? 산을 오른 뒤 동행한 동료입니까?”갑자기 불어오는 밤바람에 낙청연은 추워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고개를 드니 창문 틈 사이로 창백한 얼굴이 보였
낙청연의 말에 구십칠과 홍해는 모두 깜짝 놀랐다.“그녀였다니.”“하지만 임신한 여인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낙청연은 미간을 구긴 채로 고민에 잠겼다.“그러게. 우향은 우리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고 있지만 임신한 상태다. 그런데 어떻게 한 것일까?”이곳은 산 중턱이라고 할 수 있었다.도명 일행도 여기까지 오는 길에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소향이 그들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했고 이렇게 많은 걸 알고 있다니, 소향은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뱀 퇴치용 가루만으로는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없었다.“분명 도와주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녀 혼자서 밤새 우리 여덟 명을 각기 다른 곳으로 옮기는 건 불가능합니다.”“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구십칠은 우향을 알지 못했고 그녀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도 몰랐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나뭇가지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낙청연은 그들이 걸어온 노선을 그렸고 내일 갈 길을 정했다.“이곳은 전문적으로 뱀을 기르는 뱀굴인 듯하다.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면 분명 출구가 있을 것이다.”“내일 이 방향으로 가다 보면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구십칠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그들은 반드시 사흘 내로 나가야 했다.이곳에는 식량이 없었고 다들 다친 상태였다. 식량이 없으면 체력을 회복할 수 없으니 이곳에서 쉽게 죽을 수 있었다.낙청연은 벽에 기대어 몇 시진 동안 잤다.날이 밝은 뒤 나가서 길을 찾을 생각이었는데 구십칠이 갑자기 그녀를 깨웠다.낙청연은 잠에서 깼다.“무슨 일이냐?”낙청연은 방 안의 불더미가 꺼져 온통 캄캄하다는 걸 발견했다.구십칠은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벽에 귀를 대고 자세히 들어 보니 정말 발소리가 들렸다.게다가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이 안은 미궁처럼 동굴 통로가 모두 연결되어 있고, 갈림길이 많고 곧은 길이 적었다. 그래서 소리가 아주 빨리, 뚜렷하게 전해졌다.낙청연은
낙청연은 앞으로 다가가 관찰한 뒤 곧바로 손을 움직여 기관을 해체하기 시작했다.뒤에서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구십칠과 홍해는 바짝 긴장했고 무기를 손에 꼭 쥔 채로 언제든 전투할 준비를 했다.그들은 당장이라도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구십칠 일행이 모퉁이에서 그림자들을 보았을 때,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기관이 열렸다.낙청연은 석문을 열고 들어갔다.“얼른 들어오거라!”그 순간, 낙청연은 살기등등해서 뒤쫓아 오는 소향을 보았다. 소향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 여섯 명과 함께 빠른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다.낙청연 일행은 신속히 석문 안으로 들어간 뒤 함께 석문을 닫았다.낙청연은 벽 쪽에 있는 기관을 보더니 곧바로 기관을 눌렀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석문이 다시 잠겼다.밖에 있는 이들은 사력을 다해 석문을 깨부수려 했지만 석문은 꿈쩍하지 않았다.낙청연 일행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자.”낙청연은 그제야 몸을 돌렸다. 등 뒤에는 대전처럼 보이는 곳이었다.그들이 있는 위치는 대전의 옆쪽에 있는 높은 돌계단이었다.“이 산에 이런 곳이 있다니?”홍해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낙청연은 대전의 후방에 높이 꽂힌 깃발과 위엄 넘치는 그곳의 장식품들을 보았다.그녀는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이 아마 귀도 수령의 자리일 것이다.”계단에서 내려온 낙청연은 탁자를 만져봤다. 위에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하지만 오랫동안 아무도 오지 않은 것 같다.”홍해는 대전 위 위엄있는 위치로 걸어가 말했다.“이 의자에 왜 여인의 석상이 조각된 겁니까? 설마 이 귀도의 수령이 여인인 겁니까?”그들은 수색하기 시작했다.벙어리는 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들고 낙청연에게 다가갔다.확인해 보니 여인의 초상화였다.그림 속 여인은 위엄 넘치는 모습으로 대전 위에 앉아있었다. 붉은 옷에 은색 갑옷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위풍당당했다.그러나 그 초상화는 검에 잘려 반으로 갈라졌고 그 위에는 피도 튀었다.이 귀도의 수령은 정말 여인
“가자!”낙청연은 떠날 때 대문을 닫는 걸 잊지 않았다.그녀는 벙어리를 데리고 재빨리 다리를 건넜다.“빨리!”그들은 부랴부랴 철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밑을 내려다보니 끝없는 어둠과 심연뿐이었고, 위태위태한 것이 언제든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그들은 바짝 긴장했다.하지만 지금 그렇게 많은 걸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그들은 공포를 견디며 필사적으로 쇠사슬을 잡고 다리의 맞은편을 향해 나아갔다.반까지 걸었는데 등 뒤의 사람들이...쫓아왔다!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해 걸음을 멈추었다.그런데 벙어리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했다.낙청연은 그를 보며 말했다.“만약 그들이 쇠사슬을 자른다면 우리 모두 살지 못할 것이오!”절벽 사이의 철교가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한동안 손보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바로 그때 철추가 튀어나왔다.“어머니, 제가 가서 그들을 막겠습니다.”낙청연은 나침반을 꺼내며 벙어리를 바라봤다.“날 꽉 잡으시오!”벙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낙청연은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낸 뒤 다시 한번 소령진을 사용했다.벼랑 사이에서 삽시에 광풍이 일기 시작했다. 바람은 사람들을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끌어들일 생각인지 매섭게 불었다.절벽 위 철교가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낙청연 일행은 필사적으로 쇠사슬을 잡았다.소향은 사람들을 데리고 후방에서 쫓다가 광풍 때문에 연신 뒷걸음질 쳤다. 그들은 광풍 때문에 벼랑 밑으로 떨어질까 두려웠다.“가지.”낙청연은 안색이 창백했다. 그녀는 현재 몸이 아주 허약해 이렇게 큰 소모를 감당할 수 없었다.벙어리는 온 힘을 다해 쇠사슬과 낙청연을 붙잡았고, 구십칠 또한 쇠사슬을 단단히 잡은 채 낙청연을 부축했다.그들은 세찬 바람을 견디며 벼랑 사이를 건넜다.홍해가 먼저 맞은편으로 달려가 그들을 맞았다.그런데 바로 그때, 소향이 화가 난 목소리를 고함을 질렀다.“다리를 잘라버리거라!”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장검으로 쇠사슬을 자르려 했다.그들이
육중한 철교가 순식간에 아래로 무너지며 낙청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광풍 속, 마른 몸 또한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벙어리!”낙청연은 깜짝 놀랐고 숨 쉬는 법을 잊었다.그녀는 벼랑 끝으로 달려갔고 구십칠이 제때 그녀를 말렸다.“조심하세요!”광풍은 여전히 휘몰아치고 있었다. 수많은 영혼의 귀청을 때리는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절벽을 바라보는 낙청연의 마음 또한 순식간에 절벽 아래로 가라앉았다.조금만!조금만 더 빨랐더라면!세 사람 모두 마음이 무거웠다.그런데 바로 그때 홍해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밧줄이 팽팽합니다.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던진 밧줄이 갑자기 팽팽하게 당겨졌다.구십칠은 부랴부랴 달려가 밧줄을 잡아당겼고 낙청연은 벼랑 끝에 엎드려 아래를 바라봤다.그녀는 벼랑 속에서 애처롭게 흔들리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그는 언제든 바람에 흩날릴 것 같은 작은 먼지처럼 한없이 작아 보였다.낙청연은 애타는 마음을 안고 다가가 밧줄을 끌어당기는 걸 도왔다.드디어 손 하나가 올라왔다.세 사람은 합심하여 벙어리를 끌어올렸다.위로 올라왔을 때 벙어리는 무기력하게 바닥에 누워 숨을 골랐다.낙청연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고 바닥에 주저앉아 쉬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벼랑 사이의 바람이 조금 잠잠해졌다.그들은 맞은편에 있는 소향 일행을 보았다.멀리서도 소향의 분노와 살기에 가득 찬 눈빛이 보였다.“두고 보자고!”소향은 분노하며 몸을 돌려 떠났다.낙청연은 구십칠에게 물었다.“보았느냐? 네가 알고 있는 우향이 맞느냐?”구십칠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그녀가 이런 곳에 사람까지 데리고 온 걸 보면 보통 신분은 아닌 듯하군요.”“하지만 아쉽게도 예전에 그녀에 대해 알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임신했고 두풍진을 좋아하지만 두풍진이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낙청연은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왜 상처를 준 사람을 좋아한단 말이냐?”구십칠은 어쩔 수 없다
묵계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뱀독이 확산하여 썩어가는 송천초의 피부를 보니, 그녀는 못내 싫어졌다.시간이 흐르면 뱀독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오장육부를 다치면 이 몸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묵계는 갑자기 방법이 떠올랐다.“좋다. 진법을 거두거라. 나오겠다.”묵계도 조금 조급해졌다.“약속하거라. 너에게 다른 몸을 찾아줄 테니 절대 다른 짓 하지 말거라.”낙요가 말했다.“그래. 어서!”두 사람은 드디어 의견이 맞았다.낙요가 진법을 없애자, 묵계도 순순히 송천초의 몸에서 나왔다.낙요는 특별히 두 가닥의 혼이 모두 나왔는지 확인했다.낙요는 얼른 부적을 송천초의 몸에 붙였고 묵계는 다시 송천초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하지만 묵계는 낙요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낙요가 가까이 오자 바로 낙요의 미간을 파고들었다.그녀는 순식간에 낙요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낙요는 심한 충격을 입은 듯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서 의자를 붙잡고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그녀의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다른 몸을 찾을 필요 없다. 네 몸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혼을 빼앗는 것에 난 도가 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를 대신하여 여국의 여제가 될 것이다.”낙요는 안정을 찾고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동하국에 너무 오래 있어, 바깥세상을 본 적 없는 모양이구나.”“아무나 너에게 혼과 몸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제사장족의 대제사장들을 들어본 적 있느냐?”묵계는 낙요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제사장족? 동하국 사람한테서 들은 적 있다. 그때 나를 공격한 젊은이들도 제사장족 사람들이었다.”“그들이 쓰는 진법은 네 진법과 다를 것이 없다. 보아하니 너도 제사장족이구나.”“잘됐구나. 네가 강할수록 너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묵계는 아직도 기뻐하고 있었다.낙요가 난감한 듯 웃었다.“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너처럼 순진한 요괴는 처음 보
백서는 바로 방에서 물러나 방문을 닫았다.조영궁 밖이 조용해지자, 병풍 뒤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초경이었다.그는 쓰러져 있는 송천초를 품에 안고 있었다.낙요는 안색을 굳히고 다급히 앞으로 걸어갔다.“어찌 된 일입니까?”초경은 송천초를 연탑에 눕히고 설명했다.“동하국에서 괴물을 만났습니다...”초경은 사건의 경과를 간단히 설명했고 묵계의 신분도 알려주었다.그의 말을 듣고 낙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렇습니까?”“방법이 있습니까? 그 괴물은 천초의 몸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독을 없애서 깨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천초가 위험할 것입니다!”초경은 몹시 조급했다.낙요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급해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천초 몸 안에 있는 묵계의 혼을 뽑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밖을 지키고 있으세요.”초경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낙요는 여국에서 제일 강한 대제사장이었으니,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천초는 괜찮을 것이다!“예. 밖에 있겠습니다.”초경은 바로 방에서 나가 정원을 지키고 있었다.낙요는 피로 진을 그려 송천초의 몸을 뒤덮었다.그리고 송천초 몸 안의 혼을 빼내기 시작했다.물론 묵계가 그녀의 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아, 과정이 쉽지 않았다.손을 세게 쓰면 송천초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약하게 하면 묵계를 꺼낼 수 없었다.“넌 누구냐? 감히 나를 상대하려는 것이냐?”묵계의 낮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국과 오랫동안 싸웠는데, 여국의 여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낙요는 가소롭다는 듯 답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깜짝 놀랐다.“여국 여제? 평범한 사람을 위해 이 진까지 쓰는 것이냐?”“이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난 너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나와 손을 잡지 않겠느냐?”낙요가 가볍게 웃었다.“보아하니 넌 사람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랑도 모르고 우정도 모른다.”“네가 몸을 원한다면 더 좋은 몸을 찾아주겠다. 얌전히 송천
“대체 뭘 하려는 거냐!”초경이 매섭게 물었다.“나는 살고 싶다. 나를 풀어주면 안전한 곳에 가서 이 여자를 풀어주마.”그 말을 듣고 초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를 풀어주면 천초를 놓아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묵계가 담담하게 웃었다.“비록 웅황주가 나를 몰아냈지만, 이미 이 여인의 몸에 혼을 한 가닥 남겼다. 지금 두 가닥의 혼이 몸에 들어있으니, 7일 후 혼을 잃고 나의 몸이 될 것이다.”“이 몸은 이제 내 것이다.”“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얘기할 자격도 없다. 내 말대로 해야 이 여자는 살 기회가 있다!”“나를 놓아주거라!”묵계의 위협에 초경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눌렀다.“가거라.”“3일 후, 반드시 천초를 만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널 찾아 죽일 것이다.”묵계가 입꼬리를 올렸다.“좋다!”말을 마치고 묵계는 약사의 몸을 끌고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낙현책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정말 이렇게 풀어주는 것입니까? 천초 고모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초경은 묵계가 떠난 방향을 빤히 보며 말했다.“괜찮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낙현책은 살짝 놀랐다.이내 다들 그녀를 따라갔다.그들은 바닷가 암초에서 묵계를 따라잡았고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유생은 그녀가 중독된 것을 알아차렸다. 발목을 보니, 어느새 뱀에게 물려 있었다.유생이 고개를 돌려 초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초경이 한 일인 것 같았다.초경은 놀라지 않고 마음 아픈 표정으로 송천초를 안았다.“천초를 데리고 먼저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부 태사를 돕거라.”“예!”이내 초경은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다들 부 태사를 도우러 갔다.부진환은 병사를 이끌고 동하국을 공격했다. 비록 동하국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방어에 강한 성벽과 무기가 없었고 선박뿐이었다.여국 병사들이 끊임없이 섬에 오르고 있으니, 동하국이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초경은 송천초를 안고 청주로 돌아와 묵계의 혼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했지만, 줄곧 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금색 진법이 나타나 묵계를 진법 안으로 가두었다. 귀를 뚫을 듯한 그 노랫소리는 진법 속에 가로막혔다.흰옷을 입은 제사장족 제자 수십 명이 하늘에서 나타났다.그들은 복숭아나무 위에 가볍게 서서 열 손가락으로 진법을 그렸고 손끝에는 금빛 부문이 흐르고 있었다.묵계는 깜짝 놀란 후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깜짝 놀라 송천초를 바라보았다.“너구나!”송천초가 차갑게 웃었다.“설마 내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묵계는 굳은 표정으로 분노에 찬 듯 말했다.“괘씸하구나! 너에게 속다니!”그때, 밖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천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가 사람을 데리고 동하국을 공격했으니, 당신은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차라리 순순히 잡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그녀는 어젯밤 묵계를 만난 후 막사로 돌아가 바로 이 일을 부진환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했다.부진환은 그 여자가 동하국 약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초경도 분명 그 여자의 손에 있을 테니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그녀가 혼자 묵계를 만나러 간 것도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기관선을 이용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묵계가 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송천초는 웅황을 가득 챙겨 몸을 지키려 했다.묵계는 진법 속에서 절망하여 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너와 나도 동족이라 할 수 있다. 나한테 한 짓을 다시 너한테도 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정말 저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냐?”“초경. 난 너를 죽이려 한 적 없다!”초경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우린 동족이 아니다.”“우린 다르니, 같다고 하지 말거라.”“너의 딱한 처지를 보아, 솔직히 말하마. 동하국은 곧 멸망할 것이니, 너도 원수를 갚은 셈이다. 마음 놓고 떠나거라.”그 말을 듣고 묵계는 넋을 잃고 그들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죽으려면 함께 죽겠다!”묵계는 하늘을 향해 소
“그는 감금되었다. 우리는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너의 몸과 나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기회가 있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입니까?”묵계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느냐? 그를 구할 수도 있고 그와 같은 수명을 가질 수도 있다.”“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하지만 대가로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할 수 있느냐?”송천초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묵계가 말을 이었다.“이곳은 동하국이다. 그들이 설치한 함정에 나는 들어갈 수 없고 평범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들어가도 그를 구할 수 있겠느냐?”“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다! 잠시 힘을 합쳐 그를 구하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 떨어지는 것이 어떠냐?”묵계가 한참 말을 한 뒤에야 송천초는 그녀의 말을 허락했다.“좋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기쁠 따름이었다. 송천초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만약 이 몸을 빼앗는다면 초경에게 청신요를 쓰지 않아도 된다.“좋다. 바로 자리를 옮겨서 시작하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계를 따라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갔다.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복숭아나무였고 다른 것은 없었다.송천초는 묵계의 말에 따라 다리를 꼬고 앉았다.묵계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었다.“시작할 것이다. 조금 불편할 테니 참거라.”묵계는 말을 마치자마자 시작했다.송천초는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온몸의 기운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복숭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밀실에서 독을 없애려 애쓰고 있던 초경은 순간 송천초의 존재를 느꼈다.그는 번뜩 눈을 뜨고 송천초가 주위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위험하다!초경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송천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독을 없애기도 전에 다급히 밀실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다.묵계의 혼이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분명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송천초를 향해 걸어오는 도중 옷과 머리카락이 말랐다.송천초는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 사람을 부르려 했다.그녀가 있던 곳에 마침 암초가 있어 그 여자의 모습을 막았다. 옆에 바로 청주군의 막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대담하게 이곳으로 오다니!송천초가 사람을 부르려는 그때, 여자가 입을 열고 그녀를 저지했다.“나는 적의가 없다. 그저 너를 찾으러 왔다.”“저요?”송천초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송천초라 하느냐?”묵계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본 기억 속의 그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어떻게 아는 것입니까?”묵계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묵계라고 한다. 초경이 위험에 처해 있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송천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저도 몰래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무슨 일입니까?”“당신은 대체 무슨 사람입니까? 어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묵계 뒤에서 뱀 꼬리가 나타났다.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나는 그와 동족이다. 그가 너를 찾아오라 한 것이다.”“만약 그를 구하고 싶다면 오늘 밤 홀로 이곳에 오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겠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물었다.“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동하국입니까?”“그곳 말고 더 있느냐?”“오직 너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거라. 초경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내가 시킨 대로 하거라.”말을 마치고 묵계는 경계하며 막사를 힐긋 보고 몸을 돌려 바다로 사라졌다.송천초가 추궁하기도 전에 묵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가 무슨 사람인지 말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종일 불안했던 것을 생각하면, 초경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병사가 상황을 보러 왔다.“방금 이쪽에서 인기척이 있길래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 없는 것입니까?”송천초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그 노랫소리는 그의 의식을 흐릿하게 했다. 그는 애써 소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자꾸 귀를 파고들었다.초경은 한참 몸부림치다가 결국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졌다.묵계는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그에게 다가갔다.“너를 상대하기가 참 어렵구나. 하지만 나를 너무 얕본 것 같구나. 인어족의 청신요는 죽어가던 사람도 깨울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해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다. 쉬이 사용하지 않던 방법인데 이렇게 너에게 쓰게 됐구나.”묵계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 손을 뻗어 초경의 얼굴을 스쳤다.“청신요로 너의 기억을 바꾸면 오늘부터 나의 명을 따르며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거부하지 말거라.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묵계는 웃으며 말을 마치고 손을 초경의 머리 위에 얹은 후 청신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소리가 주문처럼 초경의 귓가에 맴돌면서 바늘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묵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먹였다.그녀는 의지력이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묵계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봐야겠구나!”그녀의 손끝이 초경의 미간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그의 기억 속에는 온통 다른 여자뿐이다.그것도 평범한 여자였다.청신요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기억을 지우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니.묵계는 내키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자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원인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고작 수십 년의 수명만 갖고 있어 결국 늙어 죽기에 그들과는 다르다.감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육체가 다치지 않았다면 청신요를 쓰는 것도 애먹을 리 없었을 것이다.보아하니 이 방법으로는 그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럼...묵계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묵계는 초경을 업고 돌아가 밀실에 가두었다.묵계는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묵계는 이 남자를 죽이기 아까웠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나긴 수명을 갖고 있어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이런 사람을 또 찾기 어려울 것이다.초경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그럼, 너는 진정한 약사가 아니냐?”묵계가 콧방귀를 뀌었다.“물론이다. 그 여자는 이미 죽었다. 나의 몸을 망가트렸으니, 그녀가 바다로 들어간 기회를 틈타 그녀를 죽이고 몸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뱀의 기운은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동안 약사의 신분으로 동하국에서 지내며 바다에서 보물을 발견하여 일반인과 다른 힘을 얻었다고 그들을 속이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찾게 했다.”“이로써 그들의 내전을 일으켜 영원히 평화로이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의 한을 풀었다!”초경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여국 바다에 있는 진도 네가 깬 것 같구나.”초경은 부진환에게서 여국과 동하국의 전쟁에 관해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다들 대진이 깨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하국 사람은 여국 땅으로 침입할 수 없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은 할 수 있었다.역시나 묵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물론 나다.”“내가 아니었다면 동하국 사람은 평생 여국 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초경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복수를 하고 싶지만, 동하국 사람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살생을 저질러 화를 입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그래서 대진을 파괴하고, 동하국 내전을 일으키고 그들을 선동하여 여국을 공격한 것이냐? 그들이 전쟁으로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아주 완벽한 계획이구나.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으니, 결국 운명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묵계가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나의 계획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똑똑하구나.”“그들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대진이 사라졌다 해도 여국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나와 상관없다.”“내가 화를 입는다 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말을 마치고
그는 이내 약사를 찾으러 갔다.그러나 도림을 벗어나기도 전에 초경은 앞에 길이 없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사방을 관찰하다 이곳이 미로라는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을 들었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자세히 맡아보니, 바람 속에 복숭아 꽃향기와 옅은 약재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독이 있다!뒤에서 여유로운 발소리와 묵계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왜 앞으로 가지 않습니까?”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묵계는 무서운 표정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초경은 가슴이 떨려왔고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네가 바로 약사냐?”묵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먼 곳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약사라는 이름만 알고 계십니까? 제 이름도 모르는 것입니까?”“다들 저를 자릉약사라 부릅니다.”“이곳에 온 순간부터 알아차렸습니다. 비록 신분을 모르지만, 홀로 이곳에 온다는 건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겠지요. 그래서 도림에 손을 조금 썼습니다.”“도림에 들어선 후부터 이미 중독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독은 더욱 세질 것입니다.”“그리고 이 독은 사족을 겨냥한 독입니다.”묵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초경을 바라보았다.초경은 슬쩍 내공을 써봤지만, 사지가 무기력했다. 무언가가 갑자기 그의 경맥을 막은 것처럼 내공이 안정을 잃고 통제하기 어려웠다.그는 손을 움켜쥐고 불편함을 참으며 내색하지 않았다.“사족? 나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냐? 넌 대체 누구냐?”초경은 의아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할 것 없이 평범한 사람 같았다.묵계가 가볍게 웃자, 뒤에 환영이 나타났고 그녀의 꼬리가 보였다.하지만 재빨리 사라져 버려서 초경은 뱀 꼬리인지 아닌지를 똑똑히 보지 못했다.“공자, 우린 같습니다.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묵계는 흥미진진하게 초경을 훑어보았고 눈빛에는 탐욕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초경의 강한 수위를 탐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