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도 한 시진 정도 걷자 집 하나가 보였다.그것은 석벽과 붙어있는 집이었는데 집이라기보다는 동굴 같아 보였다.그곳은 비교적 추레했고 먼지도 두껍게 쌓여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듯했다.하지만 방에 지푸라기가 두껍게 깔려 있고 상대적으로 건조해 그들은 일단 그곳에서 휴식하기로 했다.낙청연은 검사한 뒤 말했다.“이곳은 뱀을 기르는 사람이 지내는 곳 같지 않다.”구석에 뱀을 담는 바구니가 많이 놓여 있었지만 전부 비어 있었다.낙청연은 솥과 그릇을 씻은 뒤 약을 달였고 기다리는 동안 벙어리의 상처를 싸맸다.상처가 너무 아팠는지 벙어리가 정신을 차렸다.낙청연은 그 틈을 타 그에게 약을 건넸다.“명줄이 질기니 당신은 절대 죽지 않을 것이오.”약그릇을 받아 든 벙어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바닥에 소향이 의심스럽다고 적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난 이미 알고 있소. 하지만 소향이 아니었다면 나도 당신을 찾지는 못했을 것이오.”소향이 벙어리도 공격한 듯했다.주위는 점점 더 추워졌고 구십칠은 불을 더 세게 지피며 말했다.“이미 밤이 되었을 것입니다.”“쉬세요, 제가 보초를 서겠습니다.”낙청연은 벽에 기대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녀는 구십칠에게 물었다.“그날 아침 깨어나 보니 다들 보이지 않더구나. 어딜 간 것이냐?”“당시 무슨 일을 겪었는지 기억하고 있느냐?”구십칠은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습니다. 제가 깨어났을 때는 산에 있었습니다.”“저도 제가 어떻게 산에 오른 건지 모르겠습니다. 머리가 흐리멍덩한 것이 기억을 잃은 건 아닐까 의심되기도 했습니다.”그 말에 낙청연은 살짝 놀라며 사색에 잠겼다.“그렇다면 우리는 당시 모두 뿔뿔이 흩어졌겠구나.”구십칠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것 같습니다.”말하면서 구십칠은 궁금한 듯 물었다.“조금 전 말한 소향이란 자는 누굽니까? 산을 오른 뒤 동행한 동료입니까?”갑자기 불어오는 밤바람에 낙청연은 추워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고개를 드니 창문 틈 사이로 창백한 얼굴이 보였
낙청연의 말에 구십칠과 홍해는 모두 깜짝 놀랐다.“그녀였다니.”“하지만 임신한 여인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낙청연은 미간을 구긴 채로 고민에 잠겼다.“그러게. 우향은 우리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고 있지만 임신한 상태다. 그런데 어떻게 한 것일까?”이곳은 산 중턱이라고 할 수 있었다.도명 일행도 여기까지 오는 길에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소향이 그들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했고 이렇게 많은 걸 알고 있다니, 소향은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뱀 퇴치용 가루만으로는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없었다.“분명 도와주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녀 혼자서 밤새 우리 여덟 명을 각기 다른 곳으로 옮기는 건 불가능합니다.”“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구십칠은 우향을 알지 못했고 그녀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도 몰랐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나뭇가지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낙청연은 그들이 걸어온 노선을 그렸고 내일 갈 길을 정했다.“이곳은 전문적으로 뱀을 기르는 뱀굴인 듯하다.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면 분명 출구가 있을 것이다.”“내일 이 방향으로 가다 보면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구십칠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그들은 반드시 사흘 내로 나가야 했다.이곳에는 식량이 없었고 다들 다친 상태였다. 식량이 없으면 체력을 회복할 수 없으니 이곳에서 쉽게 죽을 수 있었다.낙청연은 벽에 기대어 몇 시진 동안 잤다.날이 밝은 뒤 나가서 길을 찾을 생각이었는데 구십칠이 갑자기 그녀를 깨웠다.낙청연은 잠에서 깼다.“무슨 일이냐?”낙청연은 방 안의 불더미가 꺼져 온통 캄캄하다는 걸 발견했다.구십칠은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벽에 귀를 대고 자세히 들어 보니 정말 발소리가 들렸다.게다가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이 안은 미궁처럼 동굴 통로가 모두 연결되어 있고, 갈림길이 많고 곧은 길이 적었다. 그래서 소리가 아주 빨리, 뚜렷하게 전해졌다.낙청연은
낙청연은 앞으로 다가가 관찰한 뒤 곧바로 손을 움직여 기관을 해체하기 시작했다.뒤에서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구십칠과 홍해는 바짝 긴장했고 무기를 손에 꼭 쥔 채로 언제든 전투할 준비를 했다.그들은 당장이라도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구십칠 일행이 모퉁이에서 그림자들을 보았을 때,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기관이 열렸다.낙청연은 석문을 열고 들어갔다.“얼른 들어오거라!”그 순간, 낙청연은 살기등등해서 뒤쫓아 오는 소향을 보았다. 소향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 여섯 명과 함께 빠른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다.낙청연 일행은 신속히 석문 안으로 들어간 뒤 함께 석문을 닫았다.낙청연은 벽 쪽에 있는 기관을 보더니 곧바로 기관을 눌렀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석문이 다시 잠겼다.밖에 있는 이들은 사력을 다해 석문을 깨부수려 했지만 석문은 꿈쩍하지 않았다.낙청연 일행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자.”낙청연은 그제야 몸을 돌렸다. 등 뒤에는 대전처럼 보이는 곳이었다.그들이 있는 위치는 대전의 옆쪽에 있는 높은 돌계단이었다.“이 산에 이런 곳이 있다니?”홍해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낙청연은 대전의 후방에 높이 꽂힌 깃발과 위엄 넘치는 그곳의 장식품들을 보았다.그녀는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이 아마 귀도 수령의 자리일 것이다.”계단에서 내려온 낙청연은 탁자를 만져봤다. 위에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하지만 오랫동안 아무도 오지 않은 것 같다.”홍해는 대전 위 위엄있는 위치로 걸어가 말했다.“이 의자에 왜 여인의 석상이 조각된 겁니까? 설마 이 귀도의 수령이 여인인 겁니까?”그들은 수색하기 시작했다.벙어리는 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들고 낙청연에게 다가갔다.확인해 보니 여인의 초상화였다.그림 속 여인은 위엄 넘치는 모습으로 대전 위에 앉아있었다. 붉은 옷에 은색 갑옷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위풍당당했다.그러나 그 초상화는 검에 잘려 반으로 갈라졌고 그 위에는 피도 튀었다.이 귀도의 수령은 정말 여인
“가자!”낙청연은 떠날 때 대문을 닫는 걸 잊지 않았다.그녀는 벙어리를 데리고 재빨리 다리를 건넜다.“빨리!”그들은 부랴부랴 철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밑을 내려다보니 끝없는 어둠과 심연뿐이었고, 위태위태한 것이 언제든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그들은 바짝 긴장했다.하지만 지금 그렇게 많은 걸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그들은 공포를 견디며 필사적으로 쇠사슬을 잡고 다리의 맞은편을 향해 나아갔다.반까지 걸었는데 등 뒤의 사람들이...쫓아왔다!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해 걸음을 멈추었다.그런데 벙어리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했다.낙청연은 그를 보며 말했다.“만약 그들이 쇠사슬을 자른다면 우리 모두 살지 못할 것이오!”절벽 사이의 철교가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한동안 손보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바로 그때 철추가 튀어나왔다.“어머니, 제가 가서 그들을 막겠습니다.”낙청연은 나침반을 꺼내며 벙어리를 바라봤다.“날 꽉 잡으시오!”벙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낙청연은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낸 뒤 다시 한번 소령진을 사용했다.벼랑 사이에서 삽시에 광풍이 일기 시작했다. 바람은 사람들을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끌어들일 생각인지 매섭게 불었다.절벽 위 철교가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낙청연 일행은 필사적으로 쇠사슬을 잡았다.소향은 사람들을 데리고 후방에서 쫓다가 광풍 때문에 연신 뒷걸음질 쳤다. 그들은 광풍 때문에 벼랑 밑으로 떨어질까 두려웠다.“가지.”낙청연은 안색이 창백했다. 그녀는 현재 몸이 아주 허약해 이렇게 큰 소모를 감당할 수 없었다.벙어리는 온 힘을 다해 쇠사슬과 낙청연을 붙잡았고, 구십칠 또한 쇠사슬을 단단히 잡은 채 낙청연을 부축했다.그들은 세찬 바람을 견디며 벼랑 사이를 건넜다.홍해가 먼저 맞은편으로 달려가 그들을 맞았다.그런데 바로 그때, 소향이 화가 난 목소리를 고함을 질렀다.“다리를 잘라버리거라!”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장검으로 쇠사슬을 자르려 했다.그들이
육중한 철교가 순식간에 아래로 무너지며 낙청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광풍 속, 마른 몸 또한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벙어리!”낙청연은 깜짝 놀랐고 숨 쉬는 법을 잊었다.그녀는 벼랑 끝으로 달려갔고 구십칠이 제때 그녀를 말렸다.“조심하세요!”광풍은 여전히 휘몰아치고 있었다. 수많은 영혼의 귀청을 때리는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절벽을 바라보는 낙청연의 마음 또한 순식간에 절벽 아래로 가라앉았다.조금만!조금만 더 빨랐더라면!세 사람 모두 마음이 무거웠다.그런데 바로 그때 홍해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밧줄이 팽팽합니다.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던진 밧줄이 갑자기 팽팽하게 당겨졌다.구십칠은 부랴부랴 달려가 밧줄을 잡아당겼고 낙청연은 벼랑 끝에 엎드려 아래를 바라봤다.그녀는 벼랑 속에서 애처롭게 흔들리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그는 언제든 바람에 흩날릴 것 같은 작은 먼지처럼 한없이 작아 보였다.낙청연은 애타는 마음을 안고 다가가 밧줄을 끌어당기는 걸 도왔다.드디어 손 하나가 올라왔다.세 사람은 합심하여 벙어리를 끌어올렸다.위로 올라왔을 때 벙어리는 무기력하게 바닥에 누워 숨을 골랐다.낙청연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고 바닥에 주저앉아 쉬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벼랑 사이의 바람이 조금 잠잠해졌다.그들은 맞은편에 있는 소향 일행을 보았다.멀리서도 소향의 분노와 살기에 가득 찬 눈빛이 보였다.“두고 보자고!”소향은 분노하며 몸을 돌려 떠났다.낙청연은 구십칠에게 물었다.“보았느냐? 네가 알고 있는 우향이 맞느냐?”구십칠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그녀가 이런 곳에 사람까지 데리고 온 걸 보면 보통 신분은 아닌 듯하군요.”“하지만 아쉽게도 예전에 그녀에 대해 알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임신했고 두풍진을 좋아하지만 두풍진이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낙청연은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왜 상처를 준 사람을 좋아한단 말이냐?”구십칠은 어쩔 수 없다
석문 안으로 들어가니 대청이 보였는데 좀 전에 봤던 대전처럼 위엄 넘치지는 않았다.그곳의 장식품들은 보니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곳처럼 보였고 배치가 무척 아늑했다.벽에는 서화가 가득 걸려있고 탁자 위에는 화병이 놓여 있었다.화조가 그려진 병풍 뒤에는 낮은 탁자와 향로가 창문 맞은편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밖은 싱그러운 화초향이 풍기는 풀밭이었다.낙청연의 머릿속에 어떠한 장면이 그려졌다.남녀 두 사람이 창문 앞에 앉아 술을 마시며 눈을 감상하는 것, 그것은 아름다운 장면이었다.다른 한쪽에는 고금(古琴)이 있었고 벽과 가까운 곳에는 칼과 창, 검이 있었다. 여인은 금을 다루고 사내는 검을 연마하는 것도 하늘이 내린 연인의 모습이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고금의 현이 끊어졌다.고금을 천천히 만지작대던 낙청연은 어쩐지 서글퍼졌다.“안이 꽤 넓은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이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홍해는 말하면서 뒤쪽으로 걸어갔고 다른 이들도 그를 따라 뒤쪽으로 향했다.밖으로 나오자 경치가 삽시에 달라졌다.그곳은 뜻밖에도 협곡이었다.환한 빛이 있었고 고개를 들면 구름이 보였다.그들은 기품 있고 아늑한 저택의 내원에 있었다.“어쩐지 다른 사람 저택에 온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여기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고금 소리가 들렸다. 현음이 길게 떨렸다.사람들은 깜짝 놀라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누군가 온 것일까요?”홍해는 곧바로 경계했다.낙청연은 고개를 돌려 보았고 병풍 사이로 붉은 옷을 보았다.검은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었다.“아무도 없다.”낙청연이 홍해를 붙잡고 말했다.“이곳은 꽤 넓은 것 같으니 일단 다들 식량과 약재를 찾는 것이 좋겠다.”그들은 곧바로 흩어져 찾기 시작했다.벙어리는 낙청연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다.낙청연은 가장 큰 방으로 갔고 방 안을 뒤져서 약을 찾았다.냄새를 맡아봤지만 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이곳의 진열을 보니 이곳에 사는 사람이 아주 부귀할 것
“이건 네 것이고 이건 벙어리 것이다.”“각각 독을 빼는 것과 외상을 치료하는 것이니 헷갈리지 말거라.”홍해는 그것을 건네받은 뒤 웃으며 대답했다.“감사합니다!”살면서 구십칠을 제외하면 그에게 이렇게 잘해준 사람이 없었다.처음 누군가 그를 위해 약을 준비해 줬다.홍해는 내심 기뻤고 그것을 들고 얼른 주방으로 달려갔다.낙청연과 벙어리 두 사람이 서방을 모두 정리하기도 전에 홍해가 음식을 다 준비했다.네 사람은 탁자 앞에 둘러앉아 탁자 위 채소와 국을 바라봤다. 아주 단촐했지만 무척 맛있어 보였다.그중에서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이 유독 맛있어 보였다.그들은 이미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지경이라 맛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밥을 몇 그릇 해치워 배를 채웠다.“잠시 뒤 저와 홍해는 근처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우리는 계속 여기 있을 수 없습니다.”구십칠의 말에 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찾아보는 게 좋겠다. 분명 나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다.”“그리고 우향을 경계해야 한다. 우향이 정말 이곳에 익숙하다면 분명 또 찾아올 것이다.”원래 낙청연은 이미 우향을 떨쳐냈을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마지막 대문의 기관에 나타난 글이 우자였다.낙청연은 그 때문에 우향의 신분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쩌면 귀도 사람일지도 몰랐다.심지어 귀도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그렇다면 우향은 이곳으로 찾아올 수 있었고 심지어 그들에게 아주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었다.구십칠도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반드시 경계해야 했다.-밥을 먹고 나니 날이 어두워졌고 그들은 서방에 불을 켰다.두 사람은 아직도 온전하지 않은 서책들을 정리하면서 서책에 적힌 내용을 보았다.낙청연은 거기에서 실마리를 조금 얻었다.이곳은 귀도 성주의 거처가 맞았고 귀도 성주는 여인이 옳았다. 그녀의 이름은 우단봉(虞丹鳳)이었다.그중에는 그녀가 사무를 처리하며 쓴 서신이 아주 많았다. 비록 온전한 것은 없었으나 그녀의 이름은 볼
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했다.그녀는 흉악한 눈빛과 돌출된 안구를 단번에 알아봤다.복맹!또 복맹이었다!그가 또 온 것이다!벙어리가 갑자기 달려와 낙청연을 책꽂이 뒤로 당겨와 숨게 하더니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곧이어 그는 촛불을 끄고 다른 곳으로 몸을 숨겼다.방문이 삐걱거리며 열렸고, 얼굴 반쪽이 뭉개진 남자가 흉악한 모습으로 방문 쪽에 나타났다.낙청연은 조용히 나침반을 꺼내 봤다. 일월경에 다른 쪽 얼굴이 나타났다.그건 다른 사내의 얼굴이었다.그날 밤 보았던 그 사내였다.그런데 또 이따금 복맹의 얼굴이 나타나기도 했다.복맹의 영혼이 상대방보다 강하지 않은 탓에 그의 몸은 거의 상대방에게 침탈당했다.낙청연은 천참검을 꺼내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낸 뒤 부문을 적었다.평범한 검으로는 그를 상대할 수 없었다.그런데 부문을 다 적기도 전에 낙청연의 머리 위에서 고함이 울려 퍼졌다.곧이어 무거운 무언가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고개를 드니 흉악하게 일그러진 공포스러운 얼굴이 보였다.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했다.그런데 복맹이 그녀에게 닿기도 전에 검 하나가 그를 막았다.벙어리가 달려들어 복맹과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하지만 지금 벙어리는 복맹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복맹은 온몸에서 아주 강한 음기를 내뿜고 있었고 그에게 빙의한 그것은 원념이 아주 깊었다.벙어리는 세게 날아가 궤에 부딪혀서 바닥에 쓰러졌다.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했다. 그녀는 곧바로 일어나 부적 몇 장을 던졌고 나침반에서 금진이 나와 복맹을 공격했다.그러나 낙청연은 현재 몸이 허약했기 때문에 진법의 위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라 그저 복맹을 방 밖으로 날려 보내는 게 다였다.낙청연은 다급히 달려가 벙어리를 부축했다.“어떻소? 괜찮소?”벙어리가 일어나자마자 흉악한 몰골의 그자가 다시 방문 앞에 나타났다. 달빛 아래에서 보니 더욱더 섬뜩했다.그는 확 달려들었고 낙청연은 검을 휘둘렀다.복맹의 몸이 소리를 냈다. 그는 으르릉거리면서 포효했고 검날을 움켜쥐더니 억센 힘으로 낙청연의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