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중한 철교가 순식간에 아래로 무너지며 낙청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광풍 속, 마른 몸 또한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벙어리!”낙청연은 깜짝 놀랐고 숨 쉬는 법을 잊었다.그녀는 벼랑 끝으로 달려갔고 구십칠이 제때 그녀를 말렸다.“조심하세요!”광풍은 여전히 휘몰아치고 있었다. 수많은 영혼의 귀청을 때리는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절벽을 바라보는 낙청연의 마음 또한 순식간에 절벽 아래로 가라앉았다.조금만!조금만 더 빨랐더라면!세 사람 모두 마음이 무거웠다.그런데 바로 그때 홍해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밧줄이 팽팽합니다.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던진 밧줄이 갑자기 팽팽하게 당겨졌다.구십칠은 부랴부랴 달려가 밧줄을 잡아당겼고 낙청연은 벼랑 끝에 엎드려 아래를 바라봤다.그녀는 벼랑 속에서 애처롭게 흔들리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그는 언제든 바람에 흩날릴 것 같은 작은 먼지처럼 한없이 작아 보였다.낙청연은 애타는 마음을 안고 다가가 밧줄을 끌어당기는 걸 도왔다.드디어 손 하나가 올라왔다.세 사람은 합심하여 벙어리를 끌어올렸다.위로 올라왔을 때 벙어리는 무기력하게 바닥에 누워 숨을 골랐다.낙청연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고 바닥에 주저앉아 쉬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벼랑 사이의 바람이 조금 잠잠해졌다.그들은 맞은편에 있는 소향 일행을 보았다.멀리서도 소향의 분노와 살기에 가득 찬 눈빛이 보였다.“두고 보자고!”소향은 분노하며 몸을 돌려 떠났다.낙청연은 구십칠에게 물었다.“보았느냐? 네가 알고 있는 우향이 맞느냐?”구십칠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그녀가 이런 곳에 사람까지 데리고 온 걸 보면 보통 신분은 아닌 듯하군요.”“하지만 아쉽게도 예전에 그녀에 대해 알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임신했고 두풍진을 좋아하지만 두풍진이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낙청연은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왜 상처를 준 사람을 좋아한단 말이냐?”구십칠은 어쩔 수 없다
석문 안으로 들어가니 대청이 보였는데 좀 전에 봤던 대전처럼 위엄 넘치지는 않았다.그곳의 장식품들은 보니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곳처럼 보였고 배치가 무척 아늑했다.벽에는 서화가 가득 걸려있고 탁자 위에는 화병이 놓여 있었다.화조가 그려진 병풍 뒤에는 낮은 탁자와 향로가 창문 맞은편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밖은 싱그러운 화초향이 풍기는 풀밭이었다.낙청연의 머릿속에 어떠한 장면이 그려졌다.남녀 두 사람이 창문 앞에 앉아 술을 마시며 눈을 감상하는 것, 그것은 아름다운 장면이었다.다른 한쪽에는 고금(古琴)이 있었고 벽과 가까운 곳에는 칼과 창, 검이 있었다. 여인은 금을 다루고 사내는 검을 연마하는 것도 하늘이 내린 연인의 모습이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고금의 현이 끊어졌다.고금을 천천히 만지작대던 낙청연은 어쩐지 서글퍼졌다.“안이 꽤 넓은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이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홍해는 말하면서 뒤쪽으로 걸어갔고 다른 이들도 그를 따라 뒤쪽으로 향했다.밖으로 나오자 경치가 삽시에 달라졌다.그곳은 뜻밖에도 협곡이었다.환한 빛이 있었고 고개를 들면 구름이 보였다.그들은 기품 있고 아늑한 저택의 내원에 있었다.“어쩐지 다른 사람 저택에 온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여기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고금 소리가 들렸다. 현음이 길게 떨렸다.사람들은 깜짝 놀라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누군가 온 것일까요?”홍해는 곧바로 경계했다.낙청연은 고개를 돌려 보았고 병풍 사이로 붉은 옷을 보았다.검은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었다.“아무도 없다.”낙청연이 홍해를 붙잡고 말했다.“이곳은 꽤 넓은 것 같으니 일단 다들 식량과 약재를 찾는 것이 좋겠다.”그들은 곧바로 흩어져 찾기 시작했다.벙어리는 낙청연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다.낙청연은 가장 큰 방으로 갔고 방 안을 뒤져서 약을 찾았다.냄새를 맡아봤지만 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이곳의 진열을 보니 이곳에 사는 사람이 아주 부귀할 것
“이건 네 것이고 이건 벙어리 것이다.”“각각 독을 빼는 것과 외상을 치료하는 것이니 헷갈리지 말거라.”홍해는 그것을 건네받은 뒤 웃으며 대답했다.“감사합니다!”살면서 구십칠을 제외하면 그에게 이렇게 잘해준 사람이 없었다.처음 누군가 그를 위해 약을 준비해 줬다.홍해는 내심 기뻤고 그것을 들고 얼른 주방으로 달려갔다.낙청연과 벙어리 두 사람이 서방을 모두 정리하기도 전에 홍해가 음식을 다 준비했다.네 사람은 탁자 앞에 둘러앉아 탁자 위 채소와 국을 바라봤다. 아주 단촐했지만 무척 맛있어 보였다.그중에서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이 유독 맛있어 보였다.그들은 이미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지경이라 맛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밥을 몇 그릇 해치워 배를 채웠다.“잠시 뒤 저와 홍해는 근처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우리는 계속 여기 있을 수 없습니다.”구십칠의 말에 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찾아보는 게 좋겠다. 분명 나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다.”“그리고 우향을 경계해야 한다. 우향이 정말 이곳에 익숙하다면 분명 또 찾아올 것이다.”원래 낙청연은 이미 우향을 떨쳐냈을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마지막 대문의 기관에 나타난 글이 우자였다.낙청연은 그 때문에 우향의 신분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쩌면 귀도 사람일지도 몰랐다.심지어 귀도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그렇다면 우향은 이곳으로 찾아올 수 있었고 심지어 그들에게 아주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었다.구십칠도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반드시 경계해야 했다.-밥을 먹고 나니 날이 어두워졌고 그들은 서방에 불을 켰다.두 사람은 아직도 온전하지 않은 서책들을 정리하면서 서책에 적힌 내용을 보았다.낙청연은 거기에서 실마리를 조금 얻었다.이곳은 귀도 성주의 거처가 맞았고 귀도 성주는 여인이 옳았다. 그녀의 이름은 우단봉(虞丹鳳)이었다.그중에는 그녀가 사무를 처리하며 쓴 서신이 아주 많았다. 비록 온전한 것은 없었으나 그녀의 이름은 볼
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했다.그녀는 흉악한 눈빛과 돌출된 안구를 단번에 알아봤다.복맹!또 복맹이었다!그가 또 온 것이다!벙어리가 갑자기 달려와 낙청연을 책꽂이 뒤로 당겨와 숨게 하더니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곧이어 그는 촛불을 끄고 다른 곳으로 몸을 숨겼다.방문이 삐걱거리며 열렸고, 얼굴 반쪽이 뭉개진 남자가 흉악한 모습으로 방문 쪽에 나타났다.낙청연은 조용히 나침반을 꺼내 봤다. 일월경에 다른 쪽 얼굴이 나타났다.그건 다른 사내의 얼굴이었다.그날 밤 보았던 그 사내였다.그런데 또 이따금 복맹의 얼굴이 나타나기도 했다.복맹의 영혼이 상대방보다 강하지 않은 탓에 그의 몸은 거의 상대방에게 침탈당했다.낙청연은 천참검을 꺼내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낸 뒤 부문을 적었다.평범한 검으로는 그를 상대할 수 없었다.그런데 부문을 다 적기도 전에 낙청연의 머리 위에서 고함이 울려 퍼졌다.곧이어 무거운 무언가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고개를 드니 흉악하게 일그러진 공포스러운 얼굴이 보였다.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했다.그런데 복맹이 그녀에게 닿기도 전에 검 하나가 그를 막았다.벙어리가 달려들어 복맹과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하지만 지금 벙어리는 복맹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복맹은 온몸에서 아주 강한 음기를 내뿜고 있었고 그에게 빙의한 그것은 원념이 아주 깊었다.벙어리는 세게 날아가 궤에 부딪혀서 바닥에 쓰러졌다.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했다. 그녀는 곧바로 일어나 부적 몇 장을 던졌고 나침반에서 금진이 나와 복맹을 공격했다.그러나 낙청연은 현재 몸이 허약했기 때문에 진법의 위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라 그저 복맹을 방 밖으로 날려 보내는 게 다였다.낙청연은 다급히 달려가 벙어리를 부축했다.“어떻소? 괜찮소?”벙어리가 일어나자마자 흉악한 몰골의 그자가 다시 방문 앞에 나타났다. 달빛 아래에서 보니 더욱더 섬뜩했다.그는 확 달려들었고 낙청연은 검을 휘둘렀다.복맹의 몸이 소리를 냈다. 그는 으르릉거리면서 포효했고 검날을 움켜쥐더니 억센 힘으로 낙청연의
낙청연은 복맹을 힘껏 걷어차서 벙어리를 구했다.그녀는 천참검을 든 채로 바짝 거리를 좁혔고 검을 계속해 휘둘렀다. 복맹은 그녀를 당해내기 어려웠다.기세가 얼마나 강한지 마치 천 년 동안 봉인된 맹수가 마침내 피 맛을 보고 걷잡을 수 없이 날뛰는 것만 같았다.심지어 낙청연은 그 여인의 강렬한 원망과 한을 느낄 수 있었다.아주 살기등등했다.복맹은 결국 얻어맞고 헐레벌떡 도망쳤다.낙청연은 그를 뒤쫓고 싶었지만 몸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낙청연은 부적으로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을 강제로 몸에서 떠나게 했고, 그 순간 바닥에 무릎을 털썩 꿇고 피를 왈칵 토했다.그녀의 눈앞에서 붉은색 치맛자락이 밤바람에 가볍게 날리고 있었다.낙청연은 그제야 그녀가 신은 붉은색 신발이 혼롓날 신는 신발이라는 걸 발견했다.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약속한 걸 잊지 말거라”“난 또 널 찾으러 올 것이다.”고개를 든 낙청연은 달빛 아래 창백한 얼굴과 길게 늘어뜨린 검은색 머리카락을 보았다.그 순간, 낙청연은 어쩐지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미간 사이의 뛰어난 기상은 초상화 속의 인물과 닮아있었다.“이름이 무엇이지?”창백한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다음 순간, 그녀는 낙청연의 눈앞에서 사라졌다.바람 소리와 함께 여인의 웃음소리가 낙청연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내 물건을 그리 많이 뒤지고 초상화도 그리 많이 봤으면서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이냐?”그 목소리는 아득히 멀어져 갔다.낙청연은 움찔했다.“우단봉!”귀도의 성주!계속 그들을 따라다니던 건 귀도의 성주 우단봉이었다!그녀가 그 고금을 만진 이유가 있었다.이곳이 그녀가 지내던 곳이기 때문이었다.우단봉이 벙어리가 독사에게 물리지 않게 한 것도, 낙청연이 그를 구할 수 있게 길을 안내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복맹을 죽인 그날 밤, 소령진으로 불러들인 것이 우단봉인 듯했다.그리고 복맹의 몸에 빙의한 사내도 아주 강했다. 평범한 사람은 아닌 듯했다.주위는 다시 고요해졌고 낙청연은 고통을 찾으며 입
낙청연도 긴장하고 있는 그를 느끼고 다급히 입을 열었다. “상처가 매우 심하니, 약을 좀 발라야겠소.”벙어리는 고개를 끄덕이었다.태연하게 책상다리하고 앉았지만, 결국 견디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옷소매를 꽉 움켜쥐었다.낙청연은 바짝 다가가, 매우 세심하게 그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몸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그러니 이렇게 야윌 수밖에!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그의 몸은 쇄골과 늑골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부진환은 눈앞의 이 여인을 바라보았다.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맴돌았고, 찡그린 미간과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 그녀를 부진환은 품에 껴안고 싶었다.그러나 그는 할 수 없었다.그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고, 심지어 호흡마저 균일하게 조절했다.낙청연은 상처를 싸매 주고, 약을 달여 가져와, 옆에 놓고 식혔다.달빛이 참 좋았다. 낙청연은 고개를 돌려 물었다. “몸에 상처가 왜 그리 많은 것이요?”벙어리는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손으로 뭔가 쓰려고 했다.하지만 종이와 붓이 없었다.낙청연은 손바닥을 펼쳐 그에게 내밀었다.벙어리는 멈칫하더니 곧 그녀의 손바닥에 썼다: 살수들은 다 그런 게 아니요?낙청연은 눈썹을 들썩이더니, 말했다. “당신은 대단한 실력을 갖춘 사람인데 왜 진익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요? 무능한 진익이 싫지 않소?”벙어리가 글을 썼다: 그는 나의 목숨을 구해줬소.낙청연은 의아했다. “그래서 진익이 나를 보호하라고 하니, 이렇게 목숨까지 내놓으려는 것이요?”벙어리는 잠깐 멍해 있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이 말을 들은 낙청연은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면 진익에게 신세를 진 셈이 아닌가?한참 생각하더니, 낙청연은 눈썹을 들썩이며 벙어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오?”벙어리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그녀의 손바닥에 한 글자를 썼다.낙청연은 약간 놀랐다. “소토(小土)?”“왜 이런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요?’벙어리는 계
산에 오른 이후로 벙어리는 여러 번 낙청연을 구해줬다.그러니 낙청연도 당연히 벙어리가 좀 더 오래 살길 바란다.그러나 벙어리는 고개를 저으며 글을 썼다: 나를 상관하지 말고 당신이 필요한 걸 요구하시오.“급하지 않소. 그때 가서 보기오.” 벙어리가 별로 원하는 것 같지 않아서 낙청연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밤바람이 불어와 한기가 몰려왔다.“돌아가 쉬시오. 나는 서방에 혹시 또 다른 단서가 있는지 다시 가보겠소.”낙청연은 서방으로 돌아갔다.그러나 벙어리는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서방 밖에서 지키고 있었다.--어두운 밤, 복맹은 이리저리 도망가고 있었다.그리고 그 홍의 그림자가 뒤에서 바짝 뒤쫓아 오고 있었다.홍의 여인의 음랭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성(敬成), 왜 도망가는 것이냐? 이제야 무서운가 보네. 늦었다고 생각되지 않느냐?”복맹은 긴장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두 눈은 공포가 가득했고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숨었다.한참 숲속에서 길을 찾던 홍해와 구십칠은 발걸음 소리를 듣고 순간 깜짝 놀라 다급히 풀숲에 숨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그들은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가는 복맹을 보았다. 마치 그 어떤 무서운 것에 쫓기는 듯했다.두 사람은 조용히 상황을 살피다가, 곧 슬그머니 뒤를 따라갔다.--날이 밝을 무렵, 홍해와 구십칠이 돌아왔다.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던 낙청연이 깨어났다.방문을 열자, 눈 부신 햇살이 사람의 몸을 따사롭게 비추었다.구십칠은 흥분해서 말했다. “나가는 길을 찾았습니다!”“어젯밤 우리는 이상한 남자를 따라가다가 나가는 길을 찾았습니다.”“다만 절벽을 끼고 가야 하고 길은 매우 좁으며, 게다가 안전장치도 없으며 밧줄도 없습니다.”“매우 위험합니다!”“이곳을 나가려면 일단 상처부터 잘 치료해야 할 것 같습니다!”“그렇지 않으면 너무 위험합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럼, 요 며칠은 다들 상처를 잘 치료하거라.”낙청연은 또 가서 약을 몇 첩 지어왔다. 그녀는 그
낙청연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 몸을 돌려 일어났다.낙청연은 창문 틈으로 스쳐 지나가는 홍의 그림자를 보고, 앞으로 다가가 방문을 열었다.마침 홍해가 장도를 들고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방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이를 본 낙청연은 달래며 말했다. “괜찮다. 놀라지 말고 들어가 쉬거라.”홍해는 자신이 정말 그 홍의 그림자를 봤다고 말하려 했지만, 낙청연이 전혀 두려워하지 않자,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갔다.낙청연이 방으로 돌아오자, 그 홍의 여인이 방 안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우단봉(虞丹鳳)?” 낙청연이 떠보았다.홍의 여인은 눈썹을 들썩이더니 말했다. “그리 멍청하진 않군!”“너는 어떻게 죽은 것이냐?” 낙청연은 귀도가 이렇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순간 우단봉의 두 눈에 증오가 불타올랐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살해됐다.”“가장 사랑하는 사람?” 낙청연은 무심코 앉으며, 우단봉의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이었다.“너도 보았을 것이다. 이곳은 내가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만든 것이다.”“본래의 뜻은 노예로 인정받은 사람들을 거두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세상의 불공평함을 바꿀 힘이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여 그들에게 더욱 나은 은신처를 주려고 노력했다.”“그리고 우경성은, 귀도가 받아들인 첫 번째 노예였다.”“나는 내가 굉장히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늑대를 집으로 끌어들였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오랜 세월 함께 지내다 보니,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그와 나의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그도 그중에 참여시켰다.”“하지만 우리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귀도는 노예라는 부문이 찍힌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곳인데 그는 더 많은 사람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이 많으면 자원도 나누어야 하니까!”“비록 갈등이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의견을 존중했고, 서서히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귀도도 점점 숨겨진 곳이 되었다.”“그런데 우리 혼인하는 날, 그는 나를 죽이고, 나
묵계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뱀독이 확산하여 썩어가는 송천초의 피부를 보니, 그녀는 못내 싫어졌다.시간이 흐르면 뱀독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오장육부를 다치면 이 몸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묵계는 갑자기 방법이 떠올랐다.“좋다. 진법을 거두거라. 나오겠다.”묵계도 조금 조급해졌다.“약속하거라. 너에게 다른 몸을 찾아줄 테니 절대 다른 짓 하지 말거라.”낙요가 말했다.“그래. 어서!”두 사람은 드디어 의견이 맞았다.낙요가 진법을 없애자, 묵계도 순순히 송천초의 몸에서 나왔다.낙요는 특별히 두 가닥의 혼이 모두 나왔는지 확인했다.낙요는 얼른 부적을 송천초의 몸에 붙였고 묵계는 다시 송천초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하지만 묵계는 낙요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낙요가 가까이 오자 바로 낙요의 미간을 파고들었다.그녀는 순식간에 낙요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낙요는 심한 충격을 입은 듯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서 의자를 붙잡고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그녀의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다른 몸을 찾을 필요 없다. 네 몸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혼을 빼앗는 것에 난 도가 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를 대신하여 여국의 여제가 될 것이다.”낙요는 안정을 찾고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동하국에 너무 오래 있어, 바깥세상을 본 적 없는 모양이구나.”“아무나 너에게 혼과 몸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제사장족의 대제사장들을 들어본 적 있느냐?”묵계는 낙요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제사장족? 동하국 사람한테서 들은 적 있다. 그때 나를 공격한 젊은이들도 제사장족 사람들이었다.”“그들이 쓰는 진법은 네 진법과 다를 것이 없다. 보아하니 너도 제사장족이구나.”“잘됐구나. 네가 강할수록 너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묵계는 아직도 기뻐하고 있었다.낙요가 난감한 듯 웃었다.“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너처럼 순진한 요괴는 처음 보
백서는 바로 방에서 물러나 방문을 닫았다.조영궁 밖이 조용해지자, 병풍 뒤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초경이었다.그는 쓰러져 있는 송천초를 품에 안고 있었다.낙요는 안색을 굳히고 다급히 앞으로 걸어갔다.“어찌 된 일입니까?”초경은 송천초를 연탑에 눕히고 설명했다.“동하국에서 괴물을 만났습니다...”초경은 사건의 경과를 간단히 설명했고 묵계의 신분도 알려주었다.그의 말을 듣고 낙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렇습니까?”“방법이 있습니까? 그 괴물은 천초의 몸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독을 없애서 깨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천초가 위험할 것입니다!”초경은 몹시 조급했다.낙요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급해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천초 몸 안에 있는 묵계의 혼을 뽑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밖을 지키고 있으세요.”초경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낙요는 여국에서 제일 강한 대제사장이었으니,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천초는 괜찮을 것이다!“예. 밖에 있겠습니다.”초경은 바로 방에서 나가 정원을 지키고 있었다.낙요는 피로 진을 그려 송천초의 몸을 뒤덮었다.그리고 송천초 몸 안의 혼을 빼내기 시작했다.물론 묵계가 그녀의 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아, 과정이 쉽지 않았다.손을 세게 쓰면 송천초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약하게 하면 묵계를 꺼낼 수 없었다.“넌 누구냐? 감히 나를 상대하려는 것이냐?”묵계의 낮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국과 오랫동안 싸웠는데, 여국의 여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낙요는 가소롭다는 듯 답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깜짝 놀랐다.“여국 여제? 평범한 사람을 위해 이 진까지 쓰는 것이냐?”“이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난 너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나와 손을 잡지 않겠느냐?”낙요가 가볍게 웃었다.“보아하니 넌 사람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랑도 모르고 우정도 모른다.”“네가 몸을 원한다면 더 좋은 몸을 찾아주겠다. 얌전히 송천
“대체 뭘 하려는 거냐!”초경이 매섭게 물었다.“나는 살고 싶다. 나를 풀어주면 안전한 곳에 가서 이 여자를 풀어주마.”그 말을 듣고 초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를 풀어주면 천초를 놓아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묵계가 담담하게 웃었다.“비록 웅황주가 나를 몰아냈지만, 이미 이 여인의 몸에 혼을 한 가닥 남겼다. 지금 두 가닥의 혼이 몸에 들어있으니, 7일 후 혼을 잃고 나의 몸이 될 것이다.”“이 몸은 이제 내 것이다.”“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얘기할 자격도 없다. 내 말대로 해야 이 여자는 살 기회가 있다!”“나를 놓아주거라!”묵계의 위협에 초경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눌렀다.“가거라.”“3일 후, 반드시 천초를 만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널 찾아 죽일 것이다.”묵계가 입꼬리를 올렸다.“좋다!”말을 마치고 묵계는 약사의 몸을 끌고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낙현책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정말 이렇게 풀어주는 것입니까? 천초 고모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초경은 묵계가 떠난 방향을 빤히 보며 말했다.“괜찮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낙현책은 살짝 놀랐다.이내 다들 그녀를 따라갔다.그들은 바닷가 암초에서 묵계를 따라잡았고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유생은 그녀가 중독된 것을 알아차렸다. 발목을 보니, 어느새 뱀에게 물려 있었다.유생이 고개를 돌려 초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초경이 한 일인 것 같았다.초경은 놀라지 않고 마음 아픈 표정으로 송천초를 안았다.“천초를 데리고 먼저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부 태사를 돕거라.”“예!”이내 초경은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다들 부 태사를 도우러 갔다.부진환은 병사를 이끌고 동하국을 공격했다. 비록 동하국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방어에 강한 성벽과 무기가 없었고 선박뿐이었다.여국 병사들이 끊임없이 섬에 오르고 있으니, 동하국이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초경은 송천초를 안고 청주로 돌아와 묵계의 혼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했지만, 줄곧 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금색 진법이 나타나 묵계를 진법 안으로 가두었다. 귀를 뚫을 듯한 그 노랫소리는 진법 속에 가로막혔다.흰옷을 입은 제사장족 제자 수십 명이 하늘에서 나타났다.그들은 복숭아나무 위에 가볍게 서서 열 손가락으로 진법을 그렸고 손끝에는 금빛 부문이 흐르고 있었다.묵계는 깜짝 놀란 후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깜짝 놀라 송천초를 바라보았다.“너구나!”송천초가 차갑게 웃었다.“설마 내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묵계는 굳은 표정으로 분노에 찬 듯 말했다.“괘씸하구나! 너에게 속다니!”그때, 밖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천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가 사람을 데리고 동하국을 공격했으니, 당신은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차라리 순순히 잡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그녀는 어젯밤 묵계를 만난 후 막사로 돌아가 바로 이 일을 부진환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했다.부진환은 그 여자가 동하국 약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초경도 분명 그 여자의 손에 있을 테니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그녀가 혼자 묵계를 만나러 간 것도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기관선을 이용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묵계가 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송천초는 웅황을 가득 챙겨 몸을 지키려 했다.묵계는 진법 속에서 절망하여 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너와 나도 동족이라 할 수 있다. 나한테 한 짓을 다시 너한테도 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정말 저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냐?”“초경. 난 너를 죽이려 한 적 없다!”초경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우린 동족이 아니다.”“우린 다르니, 같다고 하지 말거라.”“너의 딱한 처지를 보아, 솔직히 말하마. 동하국은 곧 멸망할 것이니, 너도 원수를 갚은 셈이다. 마음 놓고 떠나거라.”그 말을 듣고 묵계는 넋을 잃고 그들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죽으려면 함께 죽겠다!”묵계는 하늘을 향해 소
“그는 감금되었다. 우리는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너의 몸과 나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기회가 있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입니까?”묵계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느냐? 그를 구할 수도 있고 그와 같은 수명을 가질 수도 있다.”“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하지만 대가로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할 수 있느냐?”송천초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묵계가 말을 이었다.“이곳은 동하국이다. 그들이 설치한 함정에 나는 들어갈 수 없고 평범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들어가도 그를 구할 수 있겠느냐?”“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다! 잠시 힘을 합쳐 그를 구하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 떨어지는 것이 어떠냐?”묵계가 한참 말을 한 뒤에야 송천초는 그녀의 말을 허락했다.“좋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기쁠 따름이었다. 송천초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만약 이 몸을 빼앗는다면 초경에게 청신요를 쓰지 않아도 된다.“좋다. 바로 자리를 옮겨서 시작하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계를 따라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갔다.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복숭아나무였고 다른 것은 없었다.송천초는 묵계의 말에 따라 다리를 꼬고 앉았다.묵계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었다.“시작할 것이다. 조금 불편할 테니 참거라.”묵계는 말을 마치자마자 시작했다.송천초는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온몸의 기운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복숭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밀실에서 독을 없애려 애쓰고 있던 초경은 순간 송천초의 존재를 느꼈다.그는 번뜩 눈을 뜨고 송천초가 주위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위험하다!초경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송천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독을 없애기도 전에 다급히 밀실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다.묵계의 혼이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분명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송천초를 향해 걸어오는 도중 옷과 머리카락이 말랐다.송천초는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 사람을 부르려 했다.그녀가 있던 곳에 마침 암초가 있어 그 여자의 모습을 막았다. 옆에 바로 청주군의 막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대담하게 이곳으로 오다니!송천초가 사람을 부르려는 그때, 여자가 입을 열고 그녀를 저지했다.“나는 적의가 없다. 그저 너를 찾으러 왔다.”“저요?”송천초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송천초라 하느냐?”묵계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본 기억 속의 그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어떻게 아는 것입니까?”묵계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묵계라고 한다. 초경이 위험에 처해 있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송천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저도 몰래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무슨 일입니까?”“당신은 대체 무슨 사람입니까? 어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묵계 뒤에서 뱀 꼬리가 나타났다.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나는 그와 동족이다. 그가 너를 찾아오라 한 것이다.”“만약 그를 구하고 싶다면 오늘 밤 홀로 이곳에 오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겠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물었다.“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동하국입니까?”“그곳 말고 더 있느냐?”“오직 너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거라. 초경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내가 시킨 대로 하거라.”말을 마치고 묵계는 경계하며 막사를 힐긋 보고 몸을 돌려 바다로 사라졌다.송천초가 추궁하기도 전에 묵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가 무슨 사람인지 말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종일 불안했던 것을 생각하면, 초경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병사가 상황을 보러 왔다.“방금 이쪽에서 인기척이 있길래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 없는 것입니까?”송천초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그 노랫소리는 그의 의식을 흐릿하게 했다. 그는 애써 소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자꾸 귀를 파고들었다.초경은 한참 몸부림치다가 결국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졌다.묵계는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그에게 다가갔다.“너를 상대하기가 참 어렵구나. 하지만 나를 너무 얕본 것 같구나. 인어족의 청신요는 죽어가던 사람도 깨울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해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다. 쉬이 사용하지 않던 방법인데 이렇게 너에게 쓰게 됐구나.”묵계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 손을 뻗어 초경의 얼굴을 스쳤다.“청신요로 너의 기억을 바꾸면 오늘부터 나의 명을 따르며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거부하지 말거라.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묵계는 웃으며 말을 마치고 손을 초경의 머리 위에 얹은 후 청신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소리가 주문처럼 초경의 귓가에 맴돌면서 바늘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묵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먹였다.그녀는 의지력이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묵계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봐야겠구나!”그녀의 손끝이 초경의 미간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그의 기억 속에는 온통 다른 여자뿐이다.그것도 평범한 여자였다.청신요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기억을 지우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니.묵계는 내키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자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원인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고작 수십 년의 수명만 갖고 있어 결국 늙어 죽기에 그들과는 다르다.감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육체가 다치지 않았다면 청신요를 쓰는 것도 애먹을 리 없었을 것이다.보아하니 이 방법으로는 그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럼...묵계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묵계는 초경을 업고 돌아가 밀실에 가두었다.묵계는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묵계는 이 남자를 죽이기 아까웠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나긴 수명을 갖고 있어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이런 사람을 또 찾기 어려울 것이다.초경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그럼, 너는 진정한 약사가 아니냐?”묵계가 콧방귀를 뀌었다.“물론이다. 그 여자는 이미 죽었다. 나의 몸을 망가트렸으니, 그녀가 바다로 들어간 기회를 틈타 그녀를 죽이고 몸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뱀의 기운은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동안 약사의 신분으로 동하국에서 지내며 바다에서 보물을 발견하여 일반인과 다른 힘을 얻었다고 그들을 속이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찾게 했다.”“이로써 그들의 내전을 일으켜 영원히 평화로이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의 한을 풀었다!”초경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여국 바다에 있는 진도 네가 깬 것 같구나.”초경은 부진환에게서 여국과 동하국의 전쟁에 관해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다들 대진이 깨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하국 사람은 여국 땅으로 침입할 수 없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은 할 수 있었다.역시나 묵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물론 나다.”“내가 아니었다면 동하국 사람은 평생 여국 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초경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복수를 하고 싶지만, 동하국 사람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살생을 저질러 화를 입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그래서 대진을 파괴하고, 동하국 내전을 일으키고 그들을 선동하여 여국을 공격한 것이냐? 그들이 전쟁으로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아주 완벽한 계획이구나.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으니, 결국 운명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묵계가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나의 계획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똑똑하구나.”“그들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대진이 사라졌다 해도 여국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나와 상관없다.”“내가 화를 입는다 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말을 마치고
그는 이내 약사를 찾으러 갔다.그러나 도림을 벗어나기도 전에 초경은 앞에 길이 없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사방을 관찰하다 이곳이 미로라는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을 들었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자세히 맡아보니, 바람 속에 복숭아 꽃향기와 옅은 약재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독이 있다!뒤에서 여유로운 발소리와 묵계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왜 앞으로 가지 않습니까?”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묵계는 무서운 표정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초경은 가슴이 떨려왔고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네가 바로 약사냐?”묵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먼 곳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약사라는 이름만 알고 계십니까? 제 이름도 모르는 것입니까?”“다들 저를 자릉약사라 부릅니다.”“이곳에 온 순간부터 알아차렸습니다. 비록 신분을 모르지만, 홀로 이곳에 온다는 건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겠지요. 그래서 도림에 손을 조금 썼습니다.”“도림에 들어선 후부터 이미 중독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독은 더욱 세질 것입니다.”“그리고 이 독은 사족을 겨냥한 독입니다.”묵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초경을 바라보았다.초경은 슬쩍 내공을 써봤지만, 사지가 무기력했다. 무언가가 갑자기 그의 경맥을 막은 것처럼 내공이 안정을 잃고 통제하기 어려웠다.그는 손을 움켜쥐고 불편함을 참으며 내색하지 않았다.“사족? 나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냐? 넌 대체 누구냐?”초경은 의아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할 것 없이 평범한 사람 같았다.묵계가 가볍게 웃자, 뒤에 환영이 나타났고 그녀의 꼬리가 보였다.하지만 재빨리 사라져 버려서 초경은 뱀 꼬리인지 아닌지를 똑똑히 보지 못했다.“공자, 우린 같습니다.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묵계는 흥미진진하게 초경을 훑어보았고 눈빛에는 탐욕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초경의 강한 수위를 탐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