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청연의 말에 구십칠과 홍해는 모두 깜짝 놀랐다.“그녀였다니.”“하지만 임신한 여인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낙청연은 미간을 구긴 채로 고민에 잠겼다.“그러게. 우향은 우리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고 있지만 임신한 상태다. 그런데 어떻게 한 것일까?”이곳은 산 중턱이라고 할 수 있었다.도명 일행도 여기까지 오는 길에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소향이 그들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했고 이렇게 많은 걸 알고 있다니, 소향은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뱀 퇴치용 가루만으로는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없었다.“분명 도와주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녀 혼자서 밤새 우리 여덟 명을 각기 다른 곳으로 옮기는 건 불가능합니다.”“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구십칠은 우향을 알지 못했고 그녀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도 몰랐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나뭇가지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낙청연은 그들이 걸어온 노선을 그렸고 내일 갈 길을 정했다.“이곳은 전문적으로 뱀을 기르는 뱀굴인 듯하다.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면 분명 출구가 있을 것이다.”“내일 이 방향으로 가다 보면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구십칠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그들은 반드시 사흘 내로 나가야 했다.이곳에는 식량이 없었고 다들 다친 상태였다. 식량이 없으면 체력을 회복할 수 없으니 이곳에서 쉽게 죽을 수 있었다.낙청연은 벽에 기대어 몇 시진 동안 잤다.날이 밝은 뒤 나가서 길을 찾을 생각이었는데 구십칠이 갑자기 그녀를 깨웠다.낙청연은 잠에서 깼다.“무슨 일이냐?”낙청연은 방 안의 불더미가 꺼져 온통 캄캄하다는 걸 발견했다.구십칠은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벽에 귀를 대고 자세히 들어 보니 정말 발소리가 들렸다.게다가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이 안은 미궁처럼 동굴 통로가 모두 연결되어 있고, 갈림길이 많고 곧은 길이 적었다. 그래서 소리가 아주 빨리, 뚜렷하게 전해졌다.낙청연은
낙청연은 앞으로 다가가 관찰한 뒤 곧바로 손을 움직여 기관을 해체하기 시작했다.뒤에서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구십칠과 홍해는 바짝 긴장했고 무기를 손에 꼭 쥔 채로 언제든 전투할 준비를 했다.그들은 당장이라도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구십칠 일행이 모퉁이에서 그림자들을 보았을 때,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기관이 열렸다.낙청연은 석문을 열고 들어갔다.“얼른 들어오거라!”그 순간, 낙청연은 살기등등해서 뒤쫓아 오는 소향을 보았다. 소향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 여섯 명과 함께 빠른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다.낙청연 일행은 신속히 석문 안으로 들어간 뒤 함께 석문을 닫았다.낙청연은 벽 쪽에 있는 기관을 보더니 곧바로 기관을 눌렀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석문이 다시 잠겼다.밖에 있는 이들은 사력을 다해 석문을 깨부수려 했지만 석문은 꿈쩍하지 않았다.낙청연 일행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자.”낙청연은 그제야 몸을 돌렸다. 등 뒤에는 대전처럼 보이는 곳이었다.그들이 있는 위치는 대전의 옆쪽에 있는 높은 돌계단이었다.“이 산에 이런 곳이 있다니?”홍해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낙청연은 대전의 후방에 높이 꽂힌 깃발과 위엄 넘치는 그곳의 장식품들을 보았다.그녀는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이 아마 귀도 수령의 자리일 것이다.”계단에서 내려온 낙청연은 탁자를 만져봤다. 위에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하지만 오랫동안 아무도 오지 않은 것 같다.”홍해는 대전 위 위엄있는 위치로 걸어가 말했다.“이 의자에 왜 여인의 석상이 조각된 겁니까? 설마 이 귀도의 수령이 여인인 겁니까?”그들은 수색하기 시작했다.벙어리는 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들고 낙청연에게 다가갔다.확인해 보니 여인의 초상화였다.그림 속 여인은 위엄 넘치는 모습으로 대전 위에 앉아있었다. 붉은 옷에 은색 갑옷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위풍당당했다.그러나 그 초상화는 검에 잘려 반으로 갈라졌고 그 위에는 피도 튀었다.이 귀도의 수령은 정말 여인
“가자!”낙청연은 떠날 때 대문을 닫는 걸 잊지 않았다.그녀는 벙어리를 데리고 재빨리 다리를 건넜다.“빨리!”그들은 부랴부랴 철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밑을 내려다보니 끝없는 어둠과 심연뿐이었고, 위태위태한 것이 언제든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그들은 바짝 긴장했다.하지만 지금 그렇게 많은 걸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그들은 공포를 견디며 필사적으로 쇠사슬을 잡고 다리의 맞은편을 향해 나아갔다.반까지 걸었는데 등 뒤의 사람들이...쫓아왔다!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해 걸음을 멈추었다.그런데 벙어리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했다.낙청연은 그를 보며 말했다.“만약 그들이 쇠사슬을 자른다면 우리 모두 살지 못할 것이오!”절벽 사이의 철교가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한동안 손보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바로 그때 철추가 튀어나왔다.“어머니, 제가 가서 그들을 막겠습니다.”낙청연은 나침반을 꺼내며 벙어리를 바라봤다.“날 꽉 잡으시오!”벙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낙청연은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낸 뒤 다시 한번 소령진을 사용했다.벼랑 사이에서 삽시에 광풍이 일기 시작했다. 바람은 사람들을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끌어들일 생각인지 매섭게 불었다.절벽 위 철교가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낙청연 일행은 필사적으로 쇠사슬을 잡았다.소향은 사람들을 데리고 후방에서 쫓다가 광풍 때문에 연신 뒷걸음질 쳤다. 그들은 광풍 때문에 벼랑 밑으로 떨어질까 두려웠다.“가지.”낙청연은 안색이 창백했다. 그녀는 현재 몸이 아주 허약해 이렇게 큰 소모를 감당할 수 없었다.벙어리는 온 힘을 다해 쇠사슬과 낙청연을 붙잡았고, 구십칠 또한 쇠사슬을 단단히 잡은 채 낙청연을 부축했다.그들은 세찬 바람을 견디며 벼랑 사이를 건넜다.홍해가 먼저 맞은편으로 달려가 그들을 맞았다.그런데 바로 그때, 소향이 화가 난 목소리를 고함을 질렀다.“다리를 잘라버리거라!”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장검으로 쇠사슬을 자르려 했다.그들이
육중한 철교가 순식간에 아래로 무너지며 낙청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광풍 속, 마른 몸 또한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벙어리!”낙청연은 깜짝 놀랐고 숨 쉬는 법을 잊었다.그녀는 벼랑 끝으로 달려갔고 구십칠이 제때 그녀를 말렸다.“조심하세요!”광풍은 여전히 휘몰아치고 있었다. 수많은 영혼의 귀청을 때리는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절벽을 바라보는 낙청연의 마음 또한 순식간에 절벽 아래로 가라앉았다.조금만!조금만 더 빨랐더라면!세 사람 모두 마음이 무거웠다.그런데 바로 그때 홍해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밧줄이 팽팽합니다.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던진 밧줄이 갑자기 팽팽하게 당겨졌다.구십칠은 부랴부랴 달려가 밧줄을 잡아당겼고 낙청연은 벼랑 끝에 엎드려 아래를 바라봤다.그녀는 벼랑 속에서 애처롭게 흔들리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그는 언제든 바람에 흩날릴 것 같은 작은 먼지처럼 한없이 작아 보였다.낙청연은 애타는 마음을 안고 다가가 밧줄을 끌어당기는 걸 도왔다.드디어 손 하나가 올라왔다.세 사람은 합심하여 벙어리를 끌어올렸다.위로 올라왔을 때 벙어리는 무기력하게 바닥에 누워 숨을 골랐다.낙청연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고 바닥에 주저앉아 쉬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벼랑 사이의 바람이 조금 잠잠해졌다.그들은 맞은편에 있는 소향 일행을 보았다.멀리서도 소향의 분노와 살기에 가득 찬 눈빛이 보였다.“두고 보자고!”소향은 분노하며 몸을 돌려 떠났다.낙청연은 구십칠에게 물었다.“보았느냐? 네가 알고 있는 우향이 맞느냐?”구십칠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그녀가 이런 곳에 사람까지 데리고 온 걸 보면 보통 신분은 아닌 듯하군요.”“하지만 아쉽게도 예전에 그녀에 대해 알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임신했고 두풍진을 좋아하지만 두풍진이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낙청연은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왜 상처를 준 사람을 좋아한단 말이냐?”구십칠은 어쩔 수 없다
석문 안으로 들어가니 대청이 보였는데 좀 전에 봤던 대전처럼 위엄 넘치지는 않았다.그곳의 장식품들은 보니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곳처럼 보였고 배치가 무척 아늑했다.벽에는 서화가 가득 걸려있고 탁자 위에는 화병이 놓여 있었다.화조가 그려진 병풍 뒤에는 낮은 탁자와 향로가 창문 맞은편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밖은 싱그러운 화초향이 풍기는 풀밭이었다.낙청연의 머릿속에 어떠한 장면이 그려졌다.남녀 두 사람이 창문 앞에 앉아 술을 마시며 눈을 감상하는 것, 그것은 아름다운 장면이었다.다른 한쪽에는 고금(古琴)이 있었고 벽과 가까운 곳에는 칼과 창, 검이 있었다. 여인은 금을 다루고 사내는 검을 연마하는 것도 하늘이 내린 연인의 모습이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고금의 현이 끊어졌다.고금을 천천히 만지작대던 낙청연은 어쩐지 서글퍼졌다.“안이 꽤 넓은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이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홍해는 말하면서 뒤쪽으로 걸어갔고 다른 이들도 그를 따라 뒤쪽으로 향했다.밖으로 나오자 경치가 삽시에 달라졌다.그곳은 뜻밖에도 협곡이었다.환한 빛이 있었고 고개를 들면 구름이 보였다.그들은 기품 있고 아늑한 저택의 내원에 있었다.“어쩐지 다른 사람 저택에 온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여기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고금 소리가 들렸다. 현음이 길게 떨렸다.사람들은 깜짝 놀라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누군가 온 것일까요?”홍해는 곧바로 경계했다.낙청연은 고개를 돌려 보았고 병풍 사이로 붉은 옷을 보았다.검은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었다.“아무도 없다.”낙청연이 홍해를 붙잡고 말했다.“이곳은 꽤 넓은 것 같으니 일단 다들 식량과 약재를 찾는 것이 좋겠다.”그들은 곧바로 흩어져 찾기 시작했다.벙어리는 낙청연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다.낙청연은 가장 큰 방으로 갔고 방 안을 뒤져서 약을 찾았다.냄새를 맡아봤지만 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이곳의 진열을 보니 이곳에 사는 사람이 아주 부귀할 것
“이건 네 것이고 이건 벙어리 것이다.”“각각 독을 빼는 것과 외상을 치료하는 것이니 헷갈리지 말거라.”홍해는 그것을 건네받은 뒤 웃으며 대답했다.“감사합니다!”살면서 구십칠을 제외하면 그에게 이렇게 잘해준 사람이 없었다.처음 누군가 그를 위해 약을 준비해 줬다.홍해는 내심 기뻤고 그것을 들고 얼른 주방으로 달려갔다.낙청연과 벙어리 두 사람이 서방을 모두 정리하기도 전에 홍해가 음식을 다 준비했다.네 사람은 탁자 앞에 둘러앉아 탁자 위 채소와 국을 바라봤다. 아주 단촐했지만 무척 맛있어 보였다.그중에서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이 유독 맛있어 보였다.그들은 이미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지경이라 맛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밥을 몇 그릇 해치워 배를 채웠다.“잠시 뒤 저와 홍해는 근처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우리는 계속 여기 있을 수 없습니다.”구십칠의 말에 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찾아보는 게 좋겠다. 분명 나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다.”“그리고 우향을 경계해야 한다. 우향이 정말 이곳에 익숙하다면 분명 또 찾아올 것이다.”원래 낙청연은 이미 우향을 떨쳐냈을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마지막 대문의 기관에 나타난 글이 우자였다.낙청연은 그 때문에 우향의 신분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쩌면 귀도 사람일지도 몰랐다.심지어 귀도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그렇다면 우향은 이곳으로 찾아올 수 있었고 심지어 그들에게 아주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었다.구십칠도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반드시 경계해야 했다.-밥을 먹고 나니 날이 어두워졌고 그들은 서방에 불을 켰다.두 사람은 아직도 온전하지 않은 서책들을 정리하면서 서책에 적힌 내용을 보았다.낙청연은 거기에서 실마리를 조금 얻었다.이곳은 귀도 성주의 거처가 맞았고 귀도 성주는 여인이 옳았다. 그녀의 이름은 우단봉(虞丹鳳)이었다.그중에는 그녀가 사무를 처리하며 쓴 서신이 아주 많았다. 비록 온전한 것은 없었으나 그녀의 이름은 볼
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했다.그녀는 흉악한 눈빛과 돌출된 안구를 단번에 알아봤다.복맹!또 복맹이었다!그가 또 온 것이다!벙어리가 갑자기 달려와 낙청연을 책꽂이 뒤로 당겨와 숨게 하더니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곧이어 그는 촛불을 끄고 다른 곳으로 몸을 숨겼다.방문이 삐걱거리며 열렸고, 얼굴 반쪽이 뭉개진 남자가 흉악한 모습으로 방문 쪽에 나타났다.낙청연은 조용히 나침반을 꺼내 봤다. 일월경에 다른 쪽 얼굴이 나타났다.그건 다른 사내의 얼굴이었다.그날 밤 보았던 그 사내였다.그런데 또 이따금 복맹의 얼굴이 나타나기도 했다.복맹의 영혼이 상대방보다 강하지 않은 탓에 그의 몸은 거의 상대방에게 침탈당했다.낙청연은 천참검을 꺼내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낸 뒤 부문을 적었다.평범한 검으로는 그를 상대할 수 없었다.그런데 부문을 다 적기도 전에 낙청연의 머리 위에서 고함이 울려 퍼졌다.곧이어 무거운 무언가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고개를 드니 흉악하게 일그러진 공포스러운 얼굴이 보였다.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했다.그런데 복맹이 그녀에게 닿기도 전에 검 하나가 그를 막았다.벙어리가 달려들어 복맹과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하지만 지금 벙어리는 복맹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복맹은 온몸에서 아주 강한 음기를 내뿜고 있었고 그에게 빙의한 그것은 원념이 아주 깊었다.벙어리는 세게 날아가 궤에 부딪혀서 바닥에 쓰러졌다.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했다. 그녀는 곧바로 일어나 부적 몇 장을 던졌고 나침반에서 금진이 나와 복맹을 공격했다.그러나 낙청연은 현재 몸이 허약했기 때문에 진법의 위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라 그저 복맹을 방 밖으로 날려 보내는 게 다였다.낙청연은 다급히 달려가 벙어리를 부축했다.“어떻소? 괜찮소?”벙어리가 일어나자마자 흉악한 몰골의 그자가 다시 방문 앞에 나타났다. 달빛 아래에서 보니 더욱더 섬뜩했다.그는 확 달려들었고 낙청연은 검을 휘둘렀다.복맹의 몸이 소리를 냈다. 그는 으르릉거리면서 포효했고 검날을 움켜쥐더니 억센 힘으로 낙청연의
낙청연은 복맹을 힘껏 걷어차서 벙어리를 구했다.그녀는 천참검을 든 채로 바짝 거리를 좁혔고 검을 계속해 휘둘렀다. 복맹은 그녀를 당해내기 어려웠다.기세가 얼마나 강한지 마치 천 년 동안 봉인된 맹수가 마침내 피 맛을 보고 걷잡을 수 없이 날뛰는 것만 같았다.심지어 낙청연은 그 여인의 강렬한 원망과 한을 느낄 수 있었다.아주 살기등등했다.복맹은 결국 얻어맞고 헐레벌떡 도망쳤다.낙청연은 그를 뒤쫓고 싶었지만 몸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낙청연은 부적으로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을 강제로 몸에서 떠나게 했고, 그 순간 바닥에 무릎을 털썩 꿇고 피를 왈칵 토했다.그녀의 눈앞에서 붉은색 치맛자락이 밤바람에 가볍게 날리고 있었다.낙청연은 그제야 그녀가 신은 붉은색 신발이 혼롓날 신는 신발이라는 걸 발견했다.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약속한 걸 잊지 말거라”“난 또 널 찾으러 올 것이다.”고개를 든 낙청연은 달빛 아래 창백한 얼굴과 길게 늘어뜨린 검은색 머리카락을 보았다.그 순간, 낙청연은 어쩐지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미간 사이의 뛰어난 기상은 초상화 속의 인물과 닮아있었다.“이름이 무엇이지?”창백한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다음 순간, 그녀는 낙청연의 눈앞에서 사라졌다.바람 소리와 함께 여인의 웃음소리가 낙청연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내 물건을 그리 많이 뒤지고 초상화도 그리 많이 봤으면서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이냐?”그 목소리는 아득히 멀어져 갔다.낙청연은 움찔했다.“우단봉!”귀도의 성주!계속 그들을 따라다니던 건 귀도의 성주 우단봉이었다!그녀가 그 고금을 만진 이유가 있었다.이곳이 그녀가 지내던 곳이기 때문이었다.우단봉이 벙어리가 독사에게 물리지 않게 한 것도, 낙청연이 그를 구할 수 있게 길을 안내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복맹을 죽인 그날 밤, 소령진으로 불러들인 것이 우단봉인 듯했다.그리고 복맹의 몸에 빙의한 사내도 아주 강했다. 평범한 사람은 아닌 듯했다.주위는 다시 고요해졌고 낙청연은 고통을 찾으며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