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요, 짐작 가는 것이 없어요, 추측하고 싶지도 않고요, 성진 씨가 여기서 시시콜콜 따지는 걸 들을 기분이 없어요. 그러니까 알아서 길을 비켜주는 게 좋을 거예요, 아니면 당신을 밟고 지나가도 나 원망하지 말아요!”훤칠한 성진은 나른하게 차 앞에 주저앉았는데 차설아의 경고는 들은 체도 하지 않으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그동안 설아 씨가 많이 강해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겁쟁이네요. 사실을 마주할 용기도 없다니. 이렇게 자신을 속이는 게 정말 못나 보여요.”“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차설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할게요, 비켜요!”그녀의 발은 액셀을 밟고 있었다. 살짝 밟기만 해도 성진은 차에 깔리게 될 것이다.“흥, 나를 차로 깔아 죽인다고 해도 재수 없는 사촌 형이 죽어서 돌아올까요?”성진은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더니 두 팔로 무릎을 지탱하고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운전석에 앉은 여자를 바라보더니 말을 이어갔다.“제가 왜 설아 씨를 이 황폐한 산으로 데려왔는지 궁금하다고 했죠. 여기 묘지를 좀 봐봐요, 풍수가 엄청 좋아요. 여기가 바로 성씨 가문에서 성도윤을 위해 특별히 고른 묘지라고 하네요. 장례를 치르는 때가 되면 평생 도도하게 살았고, 사람들을 우습게 보던 사촌 형도 영원히 이곳에 머물게 되겠네요...”“아니, 그럴 리가 없어요. 지금 분명 저 속이고 있잖아요!”차설아의 머릿속이 하얘졌다.성진이 계속 주절주절 뭔가를 말하고 있었는데 알아듣지도 못하고, 알아들을 마음도 없었다.그녀의 귓가에는 오직 성진이 했던 말 한마디가 맴돌고 있었다.“재수 없는 사촌 형이 죽어서 돌아올까요?”‘아니, 그럴 리가 없어. 성도윤이 왜 갑자기 죽어? 구미호보다 더 대단한 사람인데. 구미호도 목숨이 아홉 개니, 성도윤은 분명 목숨이 열 개나 있을 거야. 성도윤이 이대로 죽었다는 사실은 절대로 믿지 않아!’“내가 설아 씨를 속였는지 아닌지
성진이 다리를 거두고는 고개를 돌려 차설아를 보더니 씩 웃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저는 원래 좋은 놈 아니에요. 소문난 쓰레기라고요,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살아있는 성도윤을 상대하지 못해도 죽은 성도윤도 상대하지 못하겠어요? 수모를 안겨줄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죠!”차설아는 눈가가 붉어진 채 이를 악물며 말했다.“당신은 미친 사람이야, 성도윤은 죽어도 당신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라고!”성진의 눈빛이 음흉하게 번지더니 차설아에게 점점 다가가며 말했다.“그래요? 하지만 지금의 성도윤은 뭘 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 얼굴에는 내 발자국이 찍혀 있는데요. 지금 성도윤 앞에서 그의 여자와 하룻밤을 가져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도 저보다 낫다고요?”“뻔뻔스럽네!”차설아가 팔을 들더니 성진의 뺨을 세게 때렸다.“당신 같은 쓰레기가 무슨 엄두로 감히 나 차설아를 탐내? 주제를 모르는 놈!”차설아는 그래도 화가 안 풀리는지 가는 다리를 들어 매섭게 성진의 배를 향해 걷어찼다.“웁!”성진은 허리를 굽히더니 그대로 묘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차설아는 그를 내려다보며 발로 그의 등을 꾹 밟고는 콧방귀를 뀌었다.“이래야 사촌 형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거죠. 그래도 모르겠다면 한 번 더 가르쳐줄 수도 있어요.”“하하하, 계속 이렇게 대해줘요. 멈추지 마세요, 이런 당신이 좋으니까!”성진은 분명 차설아에게 맞아 목숨이 거덜 났는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매우 고조되었다. 심지어 눈에는 흥분된 빛까지 반짝이고 있었다.“전에 물었었죠, 제가 설아 씨를 그렇게 숭배하고 좋아했는데도 설아 씨가 성도윤과 결혼하고 나서 왜 난처하게 굴고 수모를 안겨줬는지. 이제 알려주죠, 설아 씨는 그때 저를 실망하게 했기 때문이에요!”남자가 눈을 감고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분명 설아 씨는 누구보다 훌륭한 우수한 여자이고, 그렇게 밝게 빛났는데, 그렇게 매력적이었는데, 건드릴 엄두조차 나지 않는 성스러운 존재였는데. 그런 설아 씨는
차설아는 성진과 말씨름하기도 귀찮아 돌아서서 차에 올라타고는 액셀을 밟고 이 숲을 떠났다.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위 말하는 성도윤의 묘비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성도윤이 죽었다는 것을 절대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달빛을 맞으며 차설아는 가장 빠른 속도로 도심 한복판에 있는 배경윤의 아파트로 돌아갔다.오늘 그녀는 너무나도 많은 일을 겪었기에 이미 피곤할 대로 피곤했다. 눈꺼풀이 무거웠기 때문에 다른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단지 잠을 푹 자고 싶었다.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아파트 안에는 배경윤뿐만 아니라 배경수도 있었다.성대 그룹에서 결별을 겪어 그런지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 어색하기만 했다.“설아 언니, 드디어 돌아왔네. 계속 안 돌아온다면 오빠랑 경찰에 신고할 뻔했어.”배경윤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다정하게 그녀의 팔을 끌어안으며 물었다.“안 배고파? 배고프면 내가 야식 해줄까?”차설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피곤한 눈으로 말했다.“안 배고파, 그냥 너무 졸려서 한잠 푹 자고 싶어. 그러니까 야식은 둘이 먹어.”차설아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배경수를 돌아 자기 방으로 걸어갔다.“자고 싶다고?”배경윤은 차설아의 뒷모습을 보더니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설마 원이에게서 소식이 온 건가? 아니면 설아 언니는 절대 잠을 잘 기분이 나지 않을 텐데 말이야.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원이를 찾으려고 할 텐데 잠을 자려고 하다니?’“언니, 혹시 성진 그 개자식한테 정말 당한 건 아니지? 왜 언니가 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배경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그녀는 차설아와 배경수가 이미 헤어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두 사람이 성진 같은 개자식 때문에 헤어졌다는 것도 알아 마음속으로 배경수를 다소 감싸고 있었다.오빠인 배경수는 오랫동안 두 사람의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많은 것을 바쳤기 때문이다.만약 상대가 성도윤이라면 차라리 패배를 인정하겠는데 성진 같은 쓰레기가 차설아를 가로챈다면 배경수는 물론이고 당사자가 아닌
“괜찮은 게 아닌데?”배경윤은 다급한 마음에 계속 침묵을 지키던 배경수를 향해 말했다.“오빠, 무슨 방법이라도 좀 생각해 봐. 설아 언니 분명 무슨 타격을 받은 모양이야. 아니면 이렇게 기운이 없을 리가 없다고. 둘이 아무리 헤어졌다고 하지만 언니 아예 내버려 두면 안 되지. 설아 언니 기다려서 같이 잘 얘기하려고 여기서 온밤 동안 기다린 거 아니야? 왜 이제 와서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어?”그녀는 워낙 성격이 화끈했기에 아예 배경수를 차설아 방에 밀어 넣고는 문을 쾅 닫아 밖에서 잠갔다.배경수는 마음이 조급해져 문을 열려고 했지만 전혀 열리지 않아 목소리를 높였다.“배경윤, 너 정말 나한테 혼날래? 당장 문 안 열어?”“몰라, 오늘 밤에 꼭 설아 언니 기분 풀어줘. 잘 풀어주기 전엔 그 방에서 나올 생각 하지 마.”말을 마친 배경윤은 심지어 자물쇠가 쓸모가 없을까 봐, 쇠꼬챙이까지 꽂아 두었다.‘저렇게 우물쭈물해서야. 동생인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시간을 허투루 보내겠네!”그렇게 큰 방에는 차설아와 배경수 두 사람만이 남았다.“미안해, 경윤이가 생각이 짧은 애라는 걸 알잖아.”배경수가 두 손을 주머니에 꽂고는 일부러 덤덤하고 쿨한 척했다. 마치 전에 성대 그룹에서 있었던 일이 전혀 발생하지 않은 듯이 말이다.차설아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피곤한 미소를 짓고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건 나야. 성진 그 사람, 완전 정신 나간 인간이었어. 그 사람한테서 쓸만한 정보를 빼낼까 생각했지만 헛소리만 계속하더라고. 괜히 시간만 낭비했어, 게다가 우리 두 사람의 감정만 상하고. 내가 정말 바보였지!”화장대 앞에 앉은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그녀는 아름다운 얼굴을 두 손에 깊이 묻혔는데 마치 이 세상을 마주하기 싫은 가녀린 타조처럼 어깨를 살짝 떨었다.그 모습을 본 배경수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가슴이 아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보아하니 그 일을 알게 된 모양인데. 만약 울고 싶다면 소리 내어서 울어
해안 시내 한복판에 있는 어느 호텔에서.원이는 양반다리로 스위트룸 거실 소파에 앉아 작은 얼굴로 열심히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서는 지금 ‘도라에몽’이 방송되고 있었다.임채원은 깨끗이 씻은 과일을 원이에게 넘겨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원이야, 과일 좀 먹어, 과일을 먹어야 비타민이 보충돼.”원이는 귀여운 웃음을 활짝 짓고는 말했다.“채원이 이모, 고마워요. 채원이 이모는 정말 아름답고 마음씨도 예쁘시네요. 역시 엄마의 좋은 친구세요.”“어머, 얘가 말을 참 예쁘게 하네.”“그럼요, 원이는 채원이 이모가 직접 씻은 달콤한 과일을 먹었으니 말도 예쁘게 해야죠!”몇 차례 대화가 오고 가자 임채원은 원이 덕분에 입꼬리가 귀여 걸렸다.이 꼬마는 악녀 차설아와 성도윤의 아이라며, 성씨 가문에 시집가는 데 지장을 줄 수 있어 절대 곁에 두면 안 된다는 걸 자신에게 백 번 경고했지만 천사 같은 아이의 미소와 마음을 녹이는 달콤한 말에 임채원은 자기도 모르게 원이와 친해지고 싶었다. 마치 마가 낀 것처럼 원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예쁜 옷을 입히고 싶었다.임채원은 자신을 따르던 강우혁을 불러 원이를 영흥 부둣가에 있는 특별한 사람의 손에 넘기려고 했지만 원이가 자꾸 눈에 밟혀 계속 시간을 미룬 거였다.상황이 급박하고 복잡한지라 그녀는 자신에게 반드시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경고했다.‘오늘 밤 당장 원이를 보내야 해, 이대로 시간을 끌면 안 된다고...’그녀는 과일 쟁반을 든 채 원이 옆에 앉았다.볼이 볼록하게 부풀어 올라 햄스터처럼 포도를 먹는 아이를 보며 임채원은 귀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원이는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애니메이션만 봤다.임채원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원이야, 너 도라에몽 좋아하잖아, 그럼 퉁퉁이를 제일 싫어하겠네?”하지만 원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에요, 퉁퉁이가 전혀 싫지 않아요. 퉁퉁이는 겉으로 나빠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비록 퉁퉁이는 매회 진구를 괴롭히지만
좋은 남자는 자고로 뺏어야 하는 법이다. 좋은 남자를 가지려면 뻔뻔스러워야 하고 마음이 독해야 한다. 시집을 잘 가야만이 굳건한 지위를 유지할 수 있고, 나약한 여자는 도태될 뿐만 아니라 아이도 따라서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나야 한다고 했다.그래서 임채원은 다른 재주가 없었지만, 남자 하나는 제대로 뺏었다.성도현은 바로 그녀가 뺏어온 남자였다, 게다가 그의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았었다.바보 같은 성도현은 임채원이 자기 아이를 임신한 줄 알지만 사실 그 아이는... 성씨 가문의 핏줄이 아니었다.그 말인즉, 그녀가 임신했던 아이가 건강하다고 해도 임채원은 그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그리고 차설아는 마침 그 죄명을 떠안게 되었다.성도윤은 그녀가 처음부터 눈여겨보던 남자였다.성도윤에게 시집만 갈 수 있다면 그녀는 어떤 대가라도 치를 것이다.“원이야, 채원이 이모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믿어야 해. 채원이 이모는 절대 원이를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고. 엄마한테 감사해야 해, 채원이 이모 같은 좋은 친구가 있다는 걸 말이야.”임채원이 미소를 지은 채 부드러운 손길로 원이의 작은 얼굴을 어루만지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임채원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왜 원이는 하필 차설아가 낳은 아이인 거야? 꼬마야, 네가 탓하려면 엄마를 탓하거라!’갑자기 원이는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고 몸을 돌리고는 포도알같이 둥글고 큰 눈으로 임채원을 빤히 쳐다봤다.“왜, 왜 그래?”임채원은 원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했다.원이는 성도윤 판박이였다.특히 웃지 않을 때의 그 눈은 성도윤과 똑같이 예리하고 엄숙했는데 마치 사람의 속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아니에요, 원이는 채원이 이모가 너무 좋아서요. 채원이 이모를 만나고 알게 된 게 너무 좋아요... 채원이 이모, 안아주세요!”녀석이 말하고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임채원의 목을 끌어안았다.“어...”임채원은 몸이 굳더니 꼼짝도 못 했다.원이의 손은 말랑말랑했다.그리고 꼬순내 나는 조그마한 원이는 그녀의 마음을 움
임채원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는데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온갖 아부를 떨었던 강우혁이었다.“나 상 받으러 왔어!”강우혁은 눈이 벌게진 채로 곧장 임채원에게 달려들더니 난폭하게 그녀를 벽에 밀치고는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임채원은 두 손을 들어 무표정한 얼굴로 키스를 하는 남자를 바라봤는데 시큰둥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한바탕 키스가 끝나고 강우혁도 재미가 없는지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놓아줬다.“그렇게 내가 싫으면 왜 그때 나에게 약속했어? 내가 임무만 잘 수행한다면 나한테 몸을 내어주겠다고 말이야.”그는 긴 손가락으로 부드럽고 하얀 그녀의 얼굴을 만지고는 사랑과 원한이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넌 그저 아무 반응도 영혼도 없는 나무 같아. 나한테 상을 주는 거야? 아니면 수모를 안겨주는 거야?”임채원이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어갔다.“뭐가 그렇게 급해? 나 임채원은 약속을 지키는 여자라고. 너한테 약속한 건 반드시 내어줄게. 다만 지금은 아니야...”“또 핑계를 찾으려고 그래?”두 눈을 붉힌 강우혁은 인내심이 거의 소진되었다.“나 이렇게 오랫동안 너만을 사랑해 왔어. 그때의 너는 꽃보다 청순했던 걸 단 한시도 잊지 않았어. 나는 그때 너의 입술에 키스하는 엄두조차 나지 않았지. 우리가 헤어지고 나서야 네가 얼마나 지독한 년인지 알게 되었어...”“왜 다른 남자는 쉽게 너를 얻을 수 있는데 나는 안 돼? 내가 한이 맺혀서 그래. 그래서 너한테 이렇게 집착하는 거고. 나는 꿈에서라도 너를 갖기를 원해. 너를 얻기 위해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는지 알아? 나 심지어 엄청 착한 여자애에게 상처까지 줬어. 그런데 이제 와서 약속을 번복하겠다는 거야?”남자는 말할수록 손에 더 많은 힘을 주며 표독스러운 눈빛을 보였다.“나 자극하지 마. 아니면 너 끌어서라도 같이 죽을 거니까.”임채원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식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우혁, 왜 갑자기 통제 불능이
강우혁은 곤히 잠든 원이를 보더니 표정이 확 바뀌었다.“임채원, 미쳤어? 이젠 아이한테까지 손을 대? 성심 전당포는 어린아이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지. 하늘이 무섭지도 않아?”임채원은 그에게 ‘특수한’ 물건을 영흥 부둣가의 성심 전당포에 옮기라고 했다.성심 전당포에는 세계 각지의 진귀한 보물들이 모여있어, 겉으로는 평범한 전당포이지만, 사실 죄악이 모인 곳이었다.전당포의 사장은 범상치 않은 신분을 갖고 있었다. 일찍이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만 저당한다면 그 어떤 소원도 이루어줄 수 있다고 선포했었다.어떤 사람들은 값진 보석으로 갈망하던 사랑을 얻었고, 어떤 사람들은 몸의 장기를 팔아 재부를 얻었다.아무튼... 전당포 사장이 원하는 물건만 갖고 있다면 어떤 소원이든 이룰 수 있었다.임채원이 원이를 저당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전당포 사장과 어떤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해준다.이제 믿을만한 사람이 원이를 성심 전당포로 데려간다면, 거래는 정식으로 이루어진다!“솔직히 말해. 전당포 사장이 너한테 뭘 주기로 약속했어? 돈? 권력? 건강?”강우혁은 머리를 쥐어짜도 짐작할 수 없어 다급하게 말했다.“넌 다 가졌잖아. 하지만 이 꼬마의 인생은 이제 시작이야. 전당포에 넘어가면 인생을 망치게 된다고. 지금 멈춰도 늦지 않아, 다시 생각해 봐.”“하하!”임채원은 마치 오만한 공작새처럼 주황색 등불 아래에 꼿꼿하게 서서 비웃었다.“선을 넘는 일은 네가 더 많이 했어. 이제 와서 보살인 척 연기하기에는 좀 늦었다는 생각 안 해?”“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얻었으니, 이제 손을 떼려는 거잖아. 난 아무것도 못 가졌어. 사랑하는 남자는 이미 행방을 알 수 없고, 내가 동경하던 성가는 나를 불운한 존재로 여기고, 심지어 어머니가 될 기회조차 잃었어. 지금이라도 발버둥 치지 않으면 돌아가신 엄마가 체면을 구겼다고 밤낮으로 날 욕하고 때릴 거야. 그래서 최소한의 선이라는 게 뭔데? 먹는 거야?”요 몇 년 동안, 임채원은
야맹주를 확인한 배경윤은 신속히 잠수했다.“천천히 가!”사도현은 그녀가 걱정되어 조심하라고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호바다였지만 단면이 너무 높아 일부 산호는 쉽게 만졌다가 위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하지만 이때,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배경윤은 마치 큰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면서 야맹주 위에 덮여 있던 산호초를 맨손으로 제거했다.그녀는 차설아가 평안 무사할수 있도록 이 야맹주를 선물하고 싶었다.“아!”배경윤이 야맹주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산호초 틈새에서 은색 원형 물체가 튀어나와 그녀의 손등을 덥석 물었다.“바다뱀이야!”바다뱀이 배경윤을 물고 옆을 쓱 스쳐 자나가자 머릿속이 하얘진 사도현은 급히 잠수하여 그녀의 손을 잡았다.“봐봐...야맹주!”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배경윤은 그저 벌레에게 물렸다고 생각하면서 순진하게 사도현에게 야맹주를 자랑했다.“입 다물어!”사도현은 눈앞의 이 덜렁거리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녀는 과연 이런 바다뱀이 독성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진찬영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긴 팔로 배경윤의 허리를 감싸고, 긴 다리를 쭉 뻗어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갔다.진찬영과 하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차례로 수면으로 떠올라 잠수 마스크를 벗었다.“여기 도와주세요! 보트를 준비해 주세요. 병원으로 가야겠어요!”사도현의 잘생긴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고, 잠긴 목소리로 육지에 있는 안전요원에게 외쳤다.“무슨 일이에요?”진찬영이 신속히 배경윤 곁으로 다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벌레에게 물렸을 뿐이에요...”배경윤은 뱀에게 물린 손등을 들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였고, 오히려 사도현이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일반적으로 뱀에게 물리면 독이 체내에 바로 퍼지지 않아 아직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야맹주를 들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다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진찬영은 이런 중요한 기회를 사도현을 놓칠 수가 없었다.“저는 저의 파트너로 하늘 씨를 선택하고 싶어요.”진찬영이 사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안전요원에게 이렇게 말하자 사도현과 배경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자식 뭐하는 거야. 포기라도 하는 거야?”사도현은 믿기지 않는지 진찬영을 째려보면서 말했다.“어떻게 하늘 씨를 선택할 수 있어요? 어쩌다 정면으로 승부를 겨룰 기회가 생겼는데 왜 포기하는 거예요?”진찬영이 사도현을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잠깐 경윤 씨를 도현 씨한테 맡길게요. 꼭 잘 지켜주셔야 해요.”사도현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수복을 입고 하늘과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진찬영을 쳐다보았다.“왜 저래?”제대로 한판 붙어볼 줄 알았는데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자기뿐이라 갑자기 김이 새는 느낌에 불쾌하기만 했다.“갑시다. 파트너님.”사도현은 더는 생각하기도 싫어 멍한 표정의 배경윤한테 터벅터벅 걸어갔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랑 짝이 된 거야.”배경윤은 싫증난 표정을 하고있었다.진찬영과 손잡고 바다 경치를 즐길 줄 알았는데 말이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도현한테 자기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아까 등산할 때까지만 해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이 타이밍에 진찬영이 뒤로 물러설 줄 몰랐다.“난 다이빙 챔피언까지 땄던 사람이야. 기다려 봐. 오늘 야맹주를 꼭 찾아줄게.”사도현의 오늘 주요 목적은 야맹주를 찾는 것이었다.비록 전설일 뿐이었지만 만약 정말 찾아서 배경윤한테 준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고 로맨틱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은 하나둘씩 바다에 뛰어들었다.하트섬은 물고기 떼, 가지각색의 산호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수질이 좋았다. 더 깊이 내려가면 잭피시가 보이기도 했다.배경윤은 산소 호흡기를 꽉 깨물고 천천히 밑으로 향했다.파트너인 사도현은 그녀에게 무슨 사고라도 일어날까 봐 옆에 꼭 붙어있었다.진찬영은 몇 미터 밖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중이염을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
배경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머리를 긁적거렸다.“급할 필요 없어요. 아직 시간은 많아요. 어제저녁 하늘 씨를 선택한 것은 저랑 사도현 씨의 모순을 와해시키려고 그랬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오늘 저녁은 경윤 씨 마음에 따라 선택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진찬영은 배경윤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계속 지금처럼 애매모호하지 말았으면 했다.이런 명분 없는 사이가 싫기도 했고, 사도현의 맹렬한 공격하에 배경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다.그래서 하루빨리 결정짓고 싶었다.“알았어요.”배경윤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저녁은 제 마음에 따라 더는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오늘 아침 진찬영과 함께 잠깐 아침햇살을 만끽하면서 롤러코스터처럼 기복이 심한 생활이 아니라 평온한 생활을 기대했다.배경윤과 진찬영이 함께 하산할 때, 사도현도 마침 기상했다.사도현은 지금까지 스코어가 가장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경윤과 방을 바꾸기로 하고 짐을 배경윤의 바다뷰 별장으로 옮기기로 했다.복식 별장에는 방이 네 개나 있었고,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배경윤이 상냥하게 대해준다면 기꺼이 방을 하나 내어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같은 지붕 아래에 있는 모습만 상상해도 기분이 좋았다.입이 귀에 걸려있을 때, 배경윤과 진찬영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웃으면서 걸어오는 것이다.“어디 갔었어요?”사도현의 안색은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어딜 갔든 보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냉랭하게 말했다.“그러다 저를 놓칠 수도 있어요. 지금 경윤 씨한테 방을 하나 내어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죠...”사도현이 턱을 만지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이 상황에서 할수 있는 가장 진지한 말이었다.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유치하긴. 어차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디서 지내든 상관없어요. 도현 씨한테는 천장에 별이 가득 붙어있는 저 방이 어울릴 것 같
다음날.아침햇살이 비추는 섬은 몽롱하고 매력적이었다.아침 조깅하는 습관 있는 배경윤은 다들 자고 있을 때 이미 일어나 뛰고 있었다.산 주위를 따라 2킬로 정도 뛰면서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개운한 느낌이었다.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에 서서 파란 바닷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좋은 아침이에요.”배경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진찬영이었다.“이런 우연이. 찬영 오빠도 조깅하러 오셨어요?”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얼굴은 자기도 모르게 발그레해졌다.어제저녁 진찬영이 대놓고 고백하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의 장벽이 무너져 이제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우연이 아니라...”진찬영은 오늘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살짝 가르마를 탄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어 청춘 로코물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잊지 못하는 킹카처럼 보였다.그는 난간을 잡고 옆모습으로 의미심장하게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번에 경윤 씨가 조깅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어서... 일부러 만나려고 온 거예요.”배경윤과 이곳에서 만나려고 그녀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난 것이다.그때는 아직 날도 밝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혼자서 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와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론 배경윤과 함께 이 경치를 보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배경윤이 흔들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제가 이 코스를 달릴지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다 못 만나면요?”“만나지 못해도 아쉬운 대로 아름다운 경치를 봤잖아요.”진찬영은 고개돌려 전방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저는 어떤 일이든 결과를 바라지 않아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된 거예요. 그리고 결국엔 경윤 씨를 만났잖아요.”배경윤은 잘생긴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렇다. 결과보다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되었다.이 부분에서는 진찬영과 생각이 똑
“에헴!”하늘을 신경 쓰지도 않던 사도현은 두 사람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길래 질투심을 느꼈다.하늘도 그제야 선을 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바로 입을 닫으면서 자세를 고쳐잡았다.“죄송해요. 경윤 씨,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다른 사람을 선택해 보세요.”“그게 뭐 어때서요? 어차피 저희 서로 선택하는 과정이잖아요. 하늘 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과 셋이 함께 스노클링하면 되잖아요. 둘이든 셋이든 저는 상관없어요.”배경윤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녀는 하늘이 컨트롤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제일 안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진찬영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고 사도현도 어쩔 수가 없었다.“그래요? 경윤 씨는 정말 내일 아침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과 함께 스노클링할 수 있는 거예요?”하늘은 억울한 강아지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럼요. 저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 3각 구도는 제일 안정적이니까요.”배경윤이 익살스럽게 말했다.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입이 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그래요. 그러면 내일 경윤 씨, 저, 그리고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 세 명이 함께 스노클링하는 거예요. 마음이 변하면 안 돼요.”“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빠지는 일이 없을 거예요. 제가 빠지면 평생 짝을 찾지 못할 거예요.”배경윤은 하늘에 대고 진지하게 맹세했다.이때 하늘이 진지하게 말했다.“사실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사도현 씨에요. 그리고 오늘 모든 사람 앞에서 사실대로 말했고요.”사도현이 눈썹을 움찔하더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희 내일 봐요.”‘왜 이렇게 된 거지?’배경윤은 흐뭇한 표정의 사도현을 보면서 그가 일부러 함정을 파놓았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바로 이때, 진찬영이 입을 열었다.“3각 구도가 안정적이긴 하지만 재미가 없잖아요. 저도 끼워주시면 안 돼요?”진찬영은 사도현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사도현을 쳐다보았다.“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은 배경윤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 다부진 몸매에 끌려 그대를 쭉 지켜보게 되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대의 모습을 보면서 심장이 떨려왔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그대가 유독 빛나 보였거든요. 그대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하늘은 배경윤이 쓴 편지를 천천히 읽으면서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성 참가자 중에서 진찬영이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진찬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도현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첫인상 1위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대라고 하고 싶어요. 하늘 씨,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봐요. 하늘 씨랑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하늘 씨의 마음도 궁금해요. 단둘이 얘기 나누고 싶어요.”편지를 다 읽은 하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늘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고 배경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경윤 씨, 언제부터 저한테 호감이 생긴 거예요?”하늘을 포함한 게스트들은 전부 두 눈을 크게 뜨고 배경윤을 쳐다보았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배경윤은 사도현, 진찬영이 아닌 뜬금없는 하늘한테 고백했던 것이다.[지금 사람 마음 갖고 장난하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지 다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거야?][이거 대본 맞지? 대본의 냄새를 맡았어. 제작진한테 너무 실망이야.][대본이든 말든 나는 사도현과 배경윤이 이어지길 기도할 거야.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잖아. 이러다가 진짜 이어져서 결혼할 수도 있어.][결혼이라니, 너무 앞서간 거 아니야? 사도현이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아. 배경윤은 진찬영을 더 좋아한다고!]네티즌은 댓글 수백 개씩 달면서 열렬하게 토론했다. 진찬영의 평온한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사도현도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사도현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열렬하게 구애했는데도 하늘 씨한테 졌어요. 정말 아쉬워요.”“사도현 씨, 제 말 좀 들어봐요. 경윤 씨가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저는 오늘 경윤 씨랑
배경윤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진찬영은 배경윤이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꾸준하게 좋아했던 연예인이기도 했다.배경윤은 그동안 진찬영과 지내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정적인 팬에서부터 진찬영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다.가끔 진찬영과 손을 잡고 천천히 늙어가는 평화로운 삶을 그리기도 했었다.진찬영은 자신을 향해 뻗은 배경윤의 손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불쾌함을 전부 씻어버리고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그런데 이때 사도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배경윤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어요.”말을 마친 사도현은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리고 배경윤을 데리고 게스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이 손 안 놔? 누구 마음대로 내 손을 덥석 잡는 거야? 때리기 전에 놔줘.”배경윤은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사도현을 쳐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사도현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진찬영과 배경윤이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훼방했다.“내가 잡고 싶어서 잡은 줄 알아? 제작진이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사도현은 게스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사회자 최빈을 향해 말했다.“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죠.”최빈은 뒤쪽에 서 있는 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찬영 씨,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곧 고백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은 매일 밤에 게스트들이 모여 앉아 호감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야 했다. 다 쓴 편지는 추첨함에 넣고 제작진이 지목한 게스트가 나와서 뽑은 편지를 읽으면 되었다.낯부끄러운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게스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아주 궁금했다.마음을 편지에 담아 공개하기에
배경윤은 초가집의 뒷문으로 나온 뒤에 일부러 바닷가를 돌아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게스트들은 배경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다.“경윤 언니, 오셨어요?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경윤 언니가 와서 너무 기뻐요.”장유빈이 머무는 숙소는 배경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장유빈은 바비큐 파티에 같이 참가하자고 했지만 배경윤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못내 아쉬웠던 장유빈은 배경윤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벌떡 일어났다.“모두 참가했는데 저만 빠지면 그렇잖아요. 저만 유별난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늦게 와서 죄송해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요. 경윤 씨, 이것 좀 봐요. 찬영 오빠가 경윤 씨를 위해서 쉬지 않고 고기만 구웠어요. 경윤 씨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고요.”소수민은 불판에 올려진 고기를 보면서 부러운 어조로 말했다.“같은 여자라도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요. 저희는 먹고 싶은 걸 구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구웠어요. 그런데 경윤 씨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찬영 오빠가 양념 고기, 불닭 소스 고기, 허니 고기를 준비했대요. 먹음직스러워서 침이 저절로 고였어요.”배경윤은 진찬영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미안했다.“찬영 오빠, 고기를 굽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뭐라도 할게요.”배경윤은 진찬영의 옆으로 걸어가서 같이 고기를 굽고 양념을 발랐다.“조심해요!”진찬영은 튀어 오르는 숯불을 막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숯불은 그대로 진찬영의 손에 튀었다.“찬영 오빠, 괜찮아요? 이 고귀한 손으로 왜 막은 거예요! 흉이 지면 안 되니까 얼른 가서 약부터 발라요.”소수민은 입을 틀어막고 기겁하더니 이내 소리를 질렀다.“찬영 오빠, 저...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가 다쳤어요.”깜짝 놀란 배경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괜찮아요. 덴 것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