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유현진은 일찍 일어났다.그녀는 오늘따라 더 외모에 힘을 주었다. 아무리 강한서와 이혼했다고 해도 기세는 꺾이면 안 된다.게다가 오늘 만날 상대는 신미정이다.그녀는 9시 40분에 흥지로에 도착해 건너편에 차를 세우고 기다렸다.10시가 되자 카페 앞에 하얀색 BMW가 멈춰서더니 기사가 먼저 내려 뒷문을 열어주었다.신미정이 차에서 내렸다.신미정은 늘 그렇듯 정교한 옷차림이다. 클래식한 흰색의 샤넬 외투와 검정색 스커트, 웨이브를 넣은 머리 스타일, 오른손에는 악어백을 들고 왼손 검지는 비둘기알만 한 에메랄드 반지를 착용한 채로 턱을 쳐들고 카페에 들어갔다.카페에 들어선 신미정은 유현진이 보이지 않으니 미간을 찌푸렸다. 직원은 신미정을 테이블로 안내했다. 신미정은 미간을 찌푸리고 뭐라고 얘기하는 듯싶었다.직원은 이내 휴지를 꺼내 의자를 닦았다.유현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카페에서 발생하는 일을 지켜보았다. 유현진과의 약속이 아니면 신미정같이 물질적인 여자는 자기의 비싼 구두가 더럽혀질까 봐 절대로 이런 거리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서두르지 않았다.시간을 확인하며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신미정이 짜증을 부리는 모습에 그제야 유현진은 느릿느릿하게 차에서 내렸다.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신미정은 유현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늦었구나."유현진은 의자를 빼서 앉으며 말했다."와주는 것만 해도 고마워하셔야 할 텐데, 트집은 잡지 마시죠."신미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유현진은 코웃음을 쳤다."강씨 가문이 그렇게 대단해요? 당신이 뭔데요? 나라를 구하셨어요? 아니면 영부인이라도 돼요? 내 말버릇이 뭐요?"신미정은 표정이 일그러졌다."교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것!""엄마도 없는데 교양이 왜 필요해요. 그런데 강민서는 당신이 살아있는데도 교양 없잖아요."유현진은 신미정을 힐끗 보며 말했다."살아있으면서도 딸을 그렇게 키웠으니, 죽은 우리 엄마보다도 못하시네요."그 말인즉슨, 당신은 죽기만 못하다.
비록 유현진은 그 이유를 모르지만 신미정은 잘 알고 있다.옥반지 자체는 가치가 없지만, 의미는 대단했다. 옥반지를 가진 사람이 바로 집안 안주인이 되는 것이다.옥반지의 유래는 아주 오래되었다. 강씨 가문에서 대대손손 내려온 옥반지는 정인월의 손에 들어갔다. 정인월은 젊었을 적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분투했고 어느새 그녀 손가락의 옥반지는 강씨 가문 안주인이라는 상징성이 부여되었다.정인월은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았다. 딸은 멀리 시집갔기에 현재는 두 아들만 남았다.이치대로라면 두 아들이 결혼하면 정인월은 옥반지에게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마땅했다. 관례상으로는 맏며느리에게 주어야 한다.하지만 정인월은 신미정에게 옥반지를 물려주지 않았다.당시 신미정은 강단한과 혼전임신으로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정인월은 신미정에게 편견을 가지고 옥반지를 물려주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정인월은 송민희에게도 물려주지 않았다.만약 쭉 그렇게 했더라면 누구도 얻지 못했으니 다들 그런 거니 했겠지만 하필 유현진이 시집오자마자 정인월은 그 옥반지를 유현진에게 주었다.그것도 차를 따르는 도중에 아무렇지 않게 유현진에게 선물로 주었다.강한서는 신미정과 사이가 친밀하지 않다 보니 아들이 아내를 얻는 것도 엄마인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처음부터 유현진을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하필 마음에 들지도 않는 며느리가 자기는 평생 애써도 받지 못했던 옥반지를 쉽게 받았으니 유현진이 미울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두 사람이 이혼했으니 신미정은 당연히 그 반지를 받아 낼 속셈이다.직접 유현진에게서 가졌으니 정인월도 도로 내놓으라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유현진은 창밖을 힐끔 보더니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테이블에 엎어놓고 머리를 들었다."내가 왜 강민서한테 사과해요? 내가 일하는 곳에 쳐들어와 분장실을 아작내서 나 손까지 다쳤어요. 사과받아야 할 사람은 나예요. 그런데 왜 나한테 사과하라고 하세요?"신미정은 표
신미정은 속으로는 당황했지만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내가 약을 먹여서 불임이 됐다고 하는데, 너 증거 있어? 그깟 약 가지고?"신미정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너 워낙 몸에 냉기가 많아서 내가 특별히 한의사를 찾아 널 위해 지은 약이야. 아무 데나 가서 성분 분석해 봐. 어디서 분석해도 독성은 없어."유현진은 주먹을 꼭 쥐었다.이게 바로 신미정의 대단한 구석이다.독을 탔으면 너무 명백하여 성분 분석만 해도 바로 나올 수 있어 바로 신미정의 기를 꺾을 수 있다.하지만 한약재는 다르다.한약재는 한 번에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의 축적이 필요하다. 아무리 한약에서 임신을 방해하는 성분이 검출된다 해도 그녀는 신미정을 어떻게 할 수 없다.상해죄는 증거가 충분해야 만이 성립된다. 하지만 그녀는 고작 신미정의 이번 약물 분석 리스트만 가지고 있었다. 전에 마신 약이 이 약과 성분이 같다고 증명할 방법이 없기에 이 리스트는 유효 증거가 될 수 없다.이게 바로 신미정의 무서운 점이다. 그녀는 빠질 길을 미리 생각하고 일을 저질렀다.신미정이 인정하지 않고 유현진이 더 확실한 증거를 가져오지 못하면 신미정의 죄를 증명할 다른 방법은 없다.신미정은 천천히 컵을 돌리며 머리를 들고 말했다."네 몸이 그따위라 내가 좋은 마음으로 보약까지 지어다 주었는데 인제 와서 내 탓 하는 거야? 유현진, 넌 양심이란 게 있기나 해?"유현진은 주먹을 꼭 쥐었다. 신미정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다. 증거를 내밀어도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맞아요. 독성 검출 증거는 없어요. 그런데 만약 내가 이 일을 떠벌리고 다닌다면 어떨까요?"유현진이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강한서의 아이를 임신했는데 당신이 준 약을 먹고 유산. 그래서 강한서와 이혼. 만약 이 스토리가 할머니 귀에 들어간다면 할머니는 어떻게 하실까요?"신미정은 멈칫하더니 독기 가득한 눈길로 유현진을 노려보았다."그딴 거짓말을 어머님이 믿으실까?"유현진은 몸을 의자에 기대며 말
"옥반지만 내놓으면 한서한테서 받은 돈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게."유현진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신미정 씨,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 내가 맨몸으로 나왔다고 강한서가 말 안 해요?"비록 이혼 뒤에 강한서가 미친놈처럼 그녀에게 돈을 이체했지만 말이다.유현진의 "신미정 씨"라는 호칭에 신미정은 안색이 굳어지며 미간을 찌푸렸다."맨몸으로 나왔다고?"유현진은 답답했다.'강한서 이 자식은 왜 이혼 얘기를 알리지 않은 거지? 강민서도 모르고 신미정도 모르네?'신미정은 유현진의 옷차림을 훑어보았다. 그녀의 확실히 상대적으로 저렴한 국내산 브랜드를 착용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몇십만 원 정도의 의상에 백만 원 대의 핸드백을 들고나온 거로 보아서 확실히 위자료를 많이 받은 모양새는 아니다.'한서가 위자료를 한 푼도 안 줬다고?'생각 밖의 전개에 신미정은 의아했지만 계속 말했다."비록 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한때는 고부 사이였고 나도 정이란 게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원하는 가격 말해. 그 반지 나한테 판다고 생각하고 너도 내 돈 받고 편히 살아."유현진은 신미정의 가증스러운 말투가 역겨웠다.그녀는 신미정의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정말 사실 거예요?"신미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게 아니라면 내가 이런 얘기 왜 하겠어?"유현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정 사시겠다면 가격 매겨드리죠."신미정은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유현진은 빨간 입술을 열더니 담담하게 세글자를 뱉었다."이백억."신미정은 안색이 창백해졌다."유현진, 너 돈에 미쳤어?"유현진은 신미정의 눈을 빤히 보며 말했다."적게 불렀는데요. 강한서가 사겠다면 최소 이천억에 팔았을 거예요."강한서는 어이가 없었다.유현진은 신미정의 차림새를 훑어보며 말했다."설마요. 여사님이 이백억도 없으려고요?"신미정은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이백억이라는 돈은 신미정에게도 큰돈이다. 신미정은 기껏해야 유현진이 4억을 요구할 줄 알았다.'나한테도 이백억이 없는데 그
"네가 뭔데?"신미정은 이를 꽉 깨물었다.카페에 들어선 강한서는 눈앞의 상황에 표정이 굳어졌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커피는 유현진의 얼굴에서부터 턱으로, 이어 목으로 흘러내리며 그녀의 하얀 셔츠를 갈색으로 물들였다.초여름의 따뜻한 날씨에 유현진은 옷을 얇게 입었다. 그런데 커피를 끼얹었으니 그녀의 얇은 셔츠는 몸에 착 달라붙으며 속옷이 훤히 들여다보였다.강한서는 굳은 표정으로 코트를 벗어 다급히 걸어가 그녀의 몸에 걸쳐주고는 고개를 돌려 신미정을 차갑게 노려보았다."엄마 지금 뭐 하는 짓이야?"강한서는 워낙 신미정에게 존댓말을 사용했지만 이 순간 그는 반말로 소리를 질렀다.신미정은 갑자기 나타난 강한서 때문에 당황스러웠다.담담하게 커피를 닦아내는 유현진의 모습에 신미정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유현진 짓이야! 이년이 강한서를 여기로 불렀어!'신미정은 유현진이 무슨 짓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급히 설명했다."한서야, 그게 아니고. 유현진이 먼저 버릇없이 굴었어."강한서는 표정이 일그러졌다."이백억이 아니면 안 팔겠다니까 창피해서 화났어요?"신미정은 표정이 굳어지며 말했다."그 옥반지 원래 강씨 가문 물건이야. 너랑 이혼하고 내가 돈 주고 사겠다는데 고마워하지도 못할망정 나한테 흥정했어. 그런데 내가 어떻게 화가 안 나?"강한서는 목소리를 깔았다."할머니가 준 반지예요. 어떻게 하던 유현진 마음이고 누구도 빼앗을 자격 없어요. 그게 엄마라도 말이에요!"신미정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강한서,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난 네 엄마야!"강한서는 주먹을 꽉 쥐었다."그러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강한서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유현진은 커피잔을 들어 신미정의 얼굴에 똑같이 커피를 뿌렸다.그녀의 동작은 빠르고 정확해서 옆에 있던 강한서도 제때 보지 못했다.신미정은 한참 뒤에야 반응하며 소리를 질렀다."강한서, 이게 네가 감싸고 있는 사람이야!""강한서가 날 감싸지 않았어도 똑같이 했을 거예요."유현진
"신경 쓰지 마!"고개를 돌린 유현진은 눈시울이 빨개졌다."필요할 땐 어디 있다가 인제 와서 가증스럽게 구는 거야? 아니면 설마 당신 엄마한테 커피 끼얹었다고 따지러 왔어?"평소 같으면 강한서는 반박했을 것이다.하지만 오늘, 강한서는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심스럽게 그녀 얼굴의 커피를 닦아주며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뜨거웠어?"강한서의 한마디에 유현진은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나올 뻔했다.그녀는 강한서의 손을 뿌리쳤다."당신이 상관할 일 아니야. 우리 이젠 남이야. 당신이랑 당신 엄마, 더는 내가 임신할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돼. 당신들 때문에 난 이미 평생 아이는 못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야. 이젠 만족해?"강한서는 목이 메어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미안해.""세상에서 제일 부질없는 말이 미안하다는 말이더라."유현진은 애써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강한서, 당신 집안사람들 잘 관리해. 강민서든 신미정이든, 또다시 나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어차피 우리 엄마도 돌아가셨으니 난 이 거지 같은 세상에 더는 미련없어. 죽어도 그만이니까 두 사람이랑 같이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아!"유현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신호등이 바뀌었다.그녀는 매정하게 몸을 돌려 성큼성큼 길을 건넜다.얼마 안 되는 거리는 마치 건너갈 수 없는 높은 산처럼 그와 그녀를 갈라놓았다. 강한서는 처음으로 유현진과의 거리가 이렇게 멀게 느껴졌다.강한서는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런 행동들이 그녀에게 가장 상처가 된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민경하는 천천히 차를 강한서 앞에 세웠다."대표님, 일단 타세요. 사모님 아직 솔로잖아요. 기회는 많아요."강한서는 정신을 차리고 차 문을 열고 차에 탔다."회사로 가세요."차에 탄 유현진은 옥반지를 찾아 꺼내 들었다.아무리 봐도 너무 평범하고 깨끗한 디자인이다. 그저 반지 안쪽 부분에 "강"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으며 다른 장식은 없었다.'왜 이걸 돈 주고 사
강한서는 어이가 없었다."옆에서 지금 불난집에 부채질하는거지?"한성우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하더니 그는 바로 카톡에서 캡쳐했던 사진을 강한서한테 보냈다."이것 좀 봐."그리고 팩폭을 날리는것도 잊지 않았다."너 지금 전 와이프한테 차단 당해서 보지 못한건 그렇게 쳐."강한서의 안색은 그 사진을 보자마자 급속도로 어두워졌다.한성우는 물었다."너 와이프가 말한거야, 생리적으로 건강한 사람 우선이 뭔 소리야? 너 혹시 정력이 부족해?"강한서의 표정은 삽시에 새파래지면서 소리쳤다."개소리 집어치워!"한성우는 할 말을 잃었다.(그냥 물어본건데. 이렇게 까지 화 낼 일인가? 전 와이프가 말한거지 내가 말한게 아니잖아.)이혼에 대해선 강한서는 특별에 외부에 공개하지는 않았었다, 강한서는 그냥 살짝 토라진줄로만 알았었기에 시간이 조금 지난후에 데려와서 재혼하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현진이 이 사실을 먼저 인터넷에 공개했던것이였다.지금 상황으로 미루어볼때 유현진이 강한서와 다시 재결합하려는 생각은 요만큼도 없어보였다.한성우는 갑자기 자신의 절친에 대한 동정심이 들기 시작했다."한서야, 내가 하나만 알려줄게. 네 와이프는 예쁘고 몸매 좋고 한주시에서 그녀한테 사심을 품고 있는 사람도 결코 적지 않아. 너가 이렇게 손을 놔버린 이상 그 사람들이 과연 잠자코 있을까? 서두르는게 좋아, 아니면 결혼식 초청장 받기를 기다리던가."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렸다."도와주러 온거야 아니면 날 열 받게 하러 온거야?""구경하러 왔지 뭐."한성우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누가 그런 얘기를 했었지, 진짜 나를 안 사랑할리 없다고, 지금은 그냥 조금 심하게 삐진것뿐이라고. 지금 보기에도 그냥 삐진걸로 보여?"한성우는 일부러 목소리를 깔고 말을 했다. 너무나도 얄미웠지만 강한서에게는 너무나도 맞는 말이였다.강한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더니 마지막엔 있는 힘껏 전화를 끊었다.유현진이 이 소식을 모멘트에 올리고 난뒤 그녀의 이혼 소식은 말에 날
(그 정돈가?)유현진은 마음속으로 투덜거렸다.하지만 순순히 입고 있던 옷가지를 벗기 시작했다.의사는 한마디 덧붙였다."팬티빼고는 다 벗어야돼요."유현진은 할 수없이 말을 따를수밖에 없었다.송민준은 옆방에서 모니터안 옷을 벗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유현진이 속옷을 벗기 시작할때 그는 눈을 돌리며 잔을 두드리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뒤돌게 해, 등을 확인해봐."여의사는 이에 곧바로 방금의 말을 따라했다."뒤돌아 주세요."유현진은 뒤를 돌았다.송민준은 눈을 천천히 뜨자마자 유현진의 왼쪽 어꺠에 박혀있는 분홍색 구름모양의 모반을 발견했다.그의 손은 떨리기 시작했고 표정은 엄청 진지해졌다.그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등에 있는게 뭔지 물어봐?"여의사는 이에 유현진한테 다가간후 검사 하는척 하면서 왼쪽 어깨에 있는 모반을 터치하면서 물었다."이건 모반이예요? 아니면 상천가요?""모반이예요. 어릴때부터 있던거예요."유현진은 멈칫 하더니 말을 이었다."혹시 문제되거나 하진 않겠죠?"이어폰안에서 더 이상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여의사는 할 수없이 답했다."괜찮아요, 얼굴에 난것도 아니라 상관없어요."시간이 꽤 흐른뒤 이어폰에서 송민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뭔가 아주 쉰거 같은 목소리였다."옷 입으라고 해."여의사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검사는 끝났어요, 옷 입어도 돼요."유현진이 옷을 다 입기를 기다린후 의사는 서명을 마친 진료표를 그녀한테 건네주었다."피 검사하러 가보세요, 아마도 지금 이 시간이면 사람이 그렇게 많진 않을거예요.""의사 선생님, 감사합니다."유현진은 진료표를 들고 피 검사 하러 떠났다.옆 방.송민준은 의자에 앉아있었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긴듯 했다.구름 모양의 태반, 기억속에서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니, 몇 배는 확대되였지만 위치는 똑같았다.(세상에 이렇게 우연한 일이 또 있을까?)그는 간호사가 산모방에서 안고 나온 애기 왼쪽 어깨에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