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눈을 찌푸리고 손으로 불빛을 가렸다.차는 이내 전조등을 껐다. 벤틀리 한 대가 그녀의 앞에 차를 세우더니 차창을 내렸다. 차 안에서 송민준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현진 씨. 여기서 보네요."유현진은 멈칫하더니 경계심을 드러내며 입술을 오므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 대표님."송민준은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시간에 혼자 여기서 걷고 있었어요?""차가 고장 나서 택시 기다리고 있었어요." 유현진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여기 택시 없는데. 타세요, 태워다 드릴게요.""사양할게요. 저 콜택시 불렀어요."송민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한서한테 연락해서 데리러 오라고 할까요? 이 시간에 여자 혼자는 위험해요. 봤는데 모르는 척하기도 그렇고."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 "한서는 야근 중이에요." 유현진은 멈칫하다가 다시 말했다. "그럼 송 대표님이 저 좀 태워주세요."차에 탄 유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얼굴색이 창백했으며 손가락에는 핏줄이 생생하게 보였다.밖은 추웠고 그녀는 다소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송민준이 말했다. "해서야, 히터 틀어."유현진은 머리를 돌려 고맙다고 인사했다.송민준은 조용히 그녀를 훑어보다가 시선을 그녀의 귀에 있는 점에서 멈추었다.유현진은 송민준의 눈길을 느꼈는지 뒤돌아보았다.송민준은 이내 물 한 병을 넘겨주며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현진 씨, 물 마실래요?"송민준은 여전히 자연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착각했다고 생각했다.유현진은 물을 받지 않고 말했다. "괜찮아요, 고마워요."송민준은 그녀의 긴장한 표정을 알아챈 듯 말했다. "아름드리 펜션으로 가."유현진이 말했다. "아름드리 펜션 말고 병원으로 갈게요."송민준은 그녀를 훑어보며 물었다. "현진 씨 어디 아파요?""아니요." 유현진은 멈칫하다가 다시 말했다. "가족이 병원에 있어서요."송민준은 더는 묻지 않고 박해서에게 병원으로 가라고 말했다.병원에
강민서는 오늘 새벽 환경미화원에게 발견됐다. 발견 당시 입가에는 온통 피범벅이었으며 혼미 상태로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사람들은 경찰서에 신고하고 그녀를 병원에 데려갔다. 그리고 그녀의 소지품에서 휴대폰과 주민등록증을 발견하고 신미정에게 연락했다.병원에 도착한 신미정은 얼굴이 삽시에 창백해지더니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강민서의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고 입속에는 아직도 돌덩어리를 감싼 천 뭉치가 있었다. 얼굴이 부어있어 스스로 입을 벌려 뱉을 수가 없었다.의사는 수술 가위로 그녀 입안의 천을 조금씩 베어가면서 돌덩어리를 꺼냈다. 그제야 그녀의 상처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강민서의 입 속은 온통 미세한 상처들이 가득했다. 치명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도 다치지 않았지만, 촘촘한 상처들은 보기에도 끔찍할 정도였다.구강 내부는 피부와 달리 점막이라 타액이 부단히 분비되기 때문에 상처가 아무는 데 시간을 훨씬 더 소요한다. 강민서의 상처로 보았을 때 아마 그녀는 약 반 달간 말을 하기도 힘들뿐더러 음식을 먹기도 힘들 것이다.음식 섭취는 구강으로부터 시작되며 만약 구강 내부의 상처에 음식이 닿으면 통증은 더 격해질 것이 뻔하다.그녀의 주치의는 크고 작은 외상을 많이 보았다. 팔다리가 부러지고 창자가 나온 환자는 많이 봐왔지만, 얼굴만 집중 공격당한 환자는 처음 본다.그렇다고 상처가 심한 것도 아니지만 가히 모욕적이고 괴로울 것이다.신미정은 강민서가 고통스럽다는 듯이 신음을 내는 소리에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나왔다."대체 누구 짓이야!"강민서는 뻥진 얼굴로 입술을 오므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때 경찰이 노크하고 들어왔다. "환자 상태는 어때요? 상황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강민서가 머리를 끄덕이자 신미정은 눈물을 닦고 빨간 눈을 하고 말했다. "들어오세요."강민서는 입을 벌릴 수 없었다. 그래서 경찰이 묻는 말에 대답은 휴대폰으로 타자를 한 뒤에 보여주었다.경찰은 어젯밤의 일을 상세하게 물었다.강민서는 그저 화장실로 갔고 누군가 입을 막
강한서는 입술을 오므리고 말했다. "잘못했으면 반성할 줄 알아야지 술 마시러 가? 엄마가 오냐오냐하니까 이런 일 생긴 거 아냐!"신미정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강한서! 너도 내가 키웠거든!"경찰은 두 사람의 싸움에 얼떨떨해서 말했다. "유현진이 누구죠?"신미정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와 머리를 돌려 경찰에게 어제 일을 말했다. "어제 일로 앙심을 품은 게 틀림없어요. 그래서 사람을 보내 민서를 이렇게 만들었을 거예요. 민서는 누구랑 원한을 살 아이가 아니에요. 그런데 하필 어제 일이 생겼으니 유현진밖에 없어요."경찰은 신미정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어디 있죠?""같이 가요."강한서는 앞을 막아서서 입술을 오므리고 말했다. "이따가 내가 직접 데리고 갈게요. 지금 병간호 중이에요."경찰은 강한서의 반응을 유심히 지켜보며 말했다. "강한서 씨, 우리는 절차대로 움직이는 것뿐이에요. 혐의가 없으면 절대 오래 걸리지 않아요. 몇 가지 질문만 하는데 별거 아니지 않나요?"신미정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어 앞장서 어르신의 병실로 향했다.강한서는 얼굴을 굳힌 채로 병실에서 나와 민경하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 CCTV에는 얼굴이 잡히지 않았어요. 인근 술집도 모두 10시 좌우의 CCTV는 조작된 상태예요. 경찰 측에서는 목격자들을 상대로 조사중이며 아직 다른 소식은 없어요.""누가 조작한 건지 알 수 있어요?""아니요, 책임자는 휴가 신청을 하고 고향에 갔다네요.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해요."강한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해요.""알겠어요."______"조금만 더 드세요." 유현진이 나지막한 소리로 어르신을 달래고 있었다."이따가 먹을게." 어르신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기 간병인도 있는데 넌 집에서 좀 쉬려무나. 왜 아침부터 왔어?"유현진은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습관 돼서 그래요. 7시만 지나면 잠이 안 오더라고요."어르신은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어제 강한서 그놈이랑
유현진은 몸을 일으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미정은 분노한 얼굴로 유현진의 팔을 잡으며 다짜고짜 따지기 시작했다. "네 짓이지? 네가 사람 시켜 민서 그렇게 만들었지? 너 맞지?"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리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아가씨가 왜요?""너 시치미 뗄래?" 신미정은 강민서의 피투성이 된 얼굴을 생각하며 유현진의 뺨을 때리려고 손을 높이 휘둘렀다.어르신은 두 눈을 부릅뜨고 침대를 두드리며 큰 소리로 호통쳤다. "감히 누구한테 손을 대!"유현진은 이미 한 대 맞을 각오를 했지만 이내 누군가 신미정의 손목을 낚아채며 옆으로 당겼다. 신미정의 손은 강한서의 턱을 가격했다.강한서의 턱은 신미정의 날카로운 손톱에 긁혀 생채기가 났다.유현진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강한서를 바라보며 주먹을 쥔 두 손에 힘을 주었다.강한서는 턱을 만져보고는 굳은 표정으로 신미정을 보며 말했다. "속 시원해? 나가서 얘기해!"신미정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강한서가 유현진을 대신해 맞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그저 소란을 피우는 자기를 막아섰어도 이렇게까지 화나지는 않았을 것이다.경찰도 다급히 상황을 종료하려고 그들을 말렸다. "사모님, 흥분하지 마세요. 우선 조사부터 할게요." 경찰은 머리를 돌려 유현진에게 물었다. "유현진 씨, 어제 납치 폭력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에 관해 유현진 씨에게 물을 말이 있어요. 나가서 얘기 좀 하실까요?"어르신은 '납치 폭력'이라는 말에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납치 폭행? 잘못 알고 온 거 아니세요?"경찰은 어르신이 아마도 이 사건과 관련되어 있고 또 발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강민서 사건의 경위를 말해주었다.어르신은 그 말에 즉각 입을 열었다. "우리 현진이는 절대 아니에요. 어제저녁에 날 돌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경찰은 또 다른 알리바이에 눈썹을 치켜올렸다."유현진 씨가 범인이라는 말이 아니고요. 사태 파악하는 중이에요.""그러면 여기서
경찰이 아무 소득이 없이 나가려고 하니 신미정은 다급해 났다. "취조도 안 하고 사람도 안 잡고 이렇게 그냥 가는 거예요?""사모님. 급한 마음은 알겠는데요, 사건 해결이라는 게 혐의가 있다고 해서 바로 체포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새로운 단서가 생기면 바로 연락드릴게요."신미정은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어 막 말을 뱉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경찰은 이내 얼굴색이 확 변하며 말했다. "사모님, 말씀 가려 하시죠!"신미정은 유현진을 노려보더니 씩씩거리며 병실을 나갔다.유현진은 입술을 오므리며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죄송해요. 우리 어머니가 성격이 급하셔서 그렇지 악의는 없어요. 제가 두 분 바래다 드릴게요."경찰은 유현진이 신미정이 말하는 그런 사람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더군다나 돌덩어리를 입에 쑤셔 넣고 뺨을 때리는 행동은 보통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기는 힘든 일이다.엘리베이터에서 한 경찰이 말했다. "나 생각났어. 아까 그 여성분 '법역' 1화에서 나오는 여주인공 아니야?"또 다른 경찰은 흠칫하더니 다급히 휴대폰을 꺼내 검색했다. 정말 여배우가 맞았다."배우니까… 연기도 잘하겠지?""내가 보기엔 피해자 엄마라는 사람이 더 연기를 잘하더구먼. 밖에서는 참하다고 소문났던데 어딜 봐서 참해? 설사 정말 그 집 며느리가 한 짓이라 해도 난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집안 어르신이 저렇게 다쳐서 누워있는데 가만히 있겠어?""야, 너 경찰관이야. 이해는 무슨."…...어르신은 처음 받아보는 꽃다발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유현진이 들어왔을 때, 어르신은 꽃다발을 품에 안고 송민준에게 꽃의 이름을 하나하나 묻고 있었다.송민준도 인내심 있게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강한서는 보이지 않았다. 강민서에게 간 듯했지만 유현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송민준이라고? 한서 놈 친구야?""저 현진 씨 친구이기도 해요. 현진 씨가 내 동생 생명의 은인이라 내가 많이 고마워하고 있어요."어르신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한발 늦었어요. 이미 다 처리했었거든요." 박해서는 잠시 멈칫하더니 물었다. "설마 강 대표님이 의심이라도 하셨어요?"송민준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말했다. "강한서가 바보도 아니고, 내가 현진 씨 알리바이를 제공해 줬는데 의심 안 하겠어? 강민서에게 사고가 났으니 강한서도 제일 먼저 CCTV부터 확인하려고 했을 거야."박해서가 말했다. "강 대표님이 CCTV 확인하러 간 게 아니고요, 우리처럼 없애려고 간 거예요."송민준은 멈칫하며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 말 확실해?""확실해요."송민준은 입술을 오므리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거 점점 재밌어진단 말이야.""대표님, 가게 앞의 CCTV는 해결하기 쉽지만 위성카메라는 우리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만약 강 대표님께서 계속 이 일을 캐신다면 유현진 씨가 일을 벌인 장소에 우리 차가 있었다는 것도 다 아시게 될 거예요.""괜찮아." 송민준이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방관했을 뿐.유현진을 병원까지 태워다 준 후 두 사람은 다시 원래 길을 따라 사건 발생지로 돌아갔다.강민서는 정신을 차린 뒤 폐기 공장에서 뛰쳐나왔고 비틀거리며 오가는 차를 세우려고 했다.송민준은 쌀쌀하게 보기만 했을 뿐, 차를 세우지 않았다.송민준이 돌아간 원인은 단 하나, 강민서가 얼마나 다쳤는지 궁금해서였다. 만약 심각하지 않으면 심각하게 만들려고 했다.강민서는 송가람을 화장실에 가두어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뻔했다. 그러니 송민준은 강민서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송민준이 송가람을 얼마나 아끼는지 박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박해서는 송가람과 같은 학교에 다녔다. 송가람은 워낙에 몸이 약하다 보니 또래 아이들보다 많이 왜소했다. 항상 아파 보이는 모습에 몇몇 아이들은 송가람을 괴롭히기도 했다.그녀의 물을 버리는가 하면 그녀의 숙제를 찢어버리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으며 가방에 벌레를 잡아넣기도 했다.이렇게
하지만 여섯 명의 가해자는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 일로 그들은 트라우마가 생겼다. 게다가 송가람의 약을 훔쳐 간 사실도 밝혀지며 전교 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1년도 안 되는 사이에 가해자들은 모두 전학을 가버렸다.두 눈으로 직접 송민준이 가해자 아이들을 응징하는 장면을 보았던 박해서는 아직도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있었다.그러다가 성인이 되고 나서 면접을 보았는데 하필 대표가 송민준이라 박해서는 이력서를 가지고 도망가고 싶었다.송민준은 보기엔 착하고 친절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특히 송가람의 일이라면 목숨도 바치는 우주 최강 동생 바보이다.하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 많이 좋아졌다. 예전대로라면 강민서는 아마 지금쯤 팔다리가 부러졌을지도 모른다.어제 일은 유현진을 도왔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사람을 죽이는 것과 다름없었다.박해서는 착해 보이는 유현진이 그런 일을 꾸몄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방법으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유현진과 송민준은 닮은 곳이 있는 듯하다. 두 사람 모두 독한 면이 있다."아, 맞다. 대표님이 가져다 달라고 하셨던 하현주와 유상수의 정보 가져왔어요."박해서는 송민준에게 서류 봉투를 넘기며 말했다. "전부 여기 들어있어요."송민준은 서류를 확인하다가 눈길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유상수와 하현주 이혼했어?"박해서는 머리를 끄덕였다. "6개월 전에 절차 다 끝났더라고요. 유상수가 꽁꽁 숨겨서 유현진 씨는 아직 모르고 계셔요."하현주는 식물인간이라 이혼이 쉬웠다.유상수가 대단한 것은 이혼 후에도 법원에 하현주의 치료를 계속 돕겠다며 보호자를 신청했다.하현주가 깨어나지 않는다면 이혼한 사실은 아무도 모를 것이며 유상수는 하현주 명의로 된 모든 재산을 빼앗아 갈 수 있다.송민준은 입을 오므리고 하현주의 정보를 자세히 보았다.부잣집 딸과 가난한 집안의 아들.송민준은 또 뭔가를 발견했다. 하현주와 유상수는 모두 A형인데 유현진은 AB형이다.송민준은 서류 종이를 꽉 쥐며 목소리를 깔고 말했
송민준은 멈칫하더니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이 곳의 장미들은 수십년동안 자라왔기에 이미 저멀리 깊숙히 뿌리를 내렸어. 그렇게 쉽게 정리하긴 어렵지, 아마도 대청소를 해야 할것 같아.""알았어, 그럼 내가 그대로 엄마아빠한테 전할게.""응, 전해줘."전화를 끊고 송민준은 또 다시 자료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보는걸 그만두고 자료를 옆에 두었다.정원의 장미는 그와 그의 어머니가 함께 심었었다.몇년간 꽃이 피고 시들었지만 그녀는 이것을 볼 수 없었다.- - - -강한서가 병실에 다시 돌아왔을때 어르신은 이미 주무시고 계셨다.유현진은 의자에 기대앉고 있었고 반쯤 감긴 눈에 얼굴엔 피곤이 묻어있었다.그가 들어오자 그녀는 화들짝 놀랬다.그녀는 그를 차가운 눈길로 바라봤다."밖으로 나와."강한서는 그녀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유현진은 일어서서 외투를 챙기고 강한서를 따라 병실밖으로 나갔다.걷는 도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차에 탄후에야 강한서가 말문을 열었다."어젯밤, 당신 도대체 어디에 간거야?""송 선생님이랑 같이 있었어, 아까 다 들을거 아니였어?"강한서는 입술을 만지며 말했다."당신, 지금 경찰쪽에서 감시하는곳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이에 유현진은 무덤덤하게"얼마나 많은데?"강한서는 진지하게"만약 감시카메라에 얼굴이 찍히기라도 한다면 어디로 갔는지 다 알수 있어.""그래? 근데 미제사건들은 왜 그렇게 많아?"강한서의 얼굴은 경련을 일으켰다."당신, 내가 지금 농담하는걸로 보여?""아니."유현진은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감시시스템이 발달한건 나한테 좋은거 아니겠어? 범인도 곧 찾겠지, 그럼 내 누명도 풀릴거고.""당신 누명?"유현진은 멈칫하더니 그가 쥐고 있고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내 말을 유도하는거야?"이에 강한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유현진은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강한서, 그때 자선사업연회에서 내가 한 말 기억나?"강한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것 같
한현진은 그녀의 호적지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이시연은 오래 기다렸고 그 사이 네 명이 더 끼어든 후에야 은서하가 비로소 돌아왔다. 그녀는 땀에 젖어 얼굴이 여전히 창백했고 얼굴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이시연은 그녀를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아직도 괜찮지 않은 거예요? 의사한테 같이 가줄까요?”은서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화장실 갔다 오니까 많이 나아졌어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이시연은 결과지를 건네며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하면 승진하고 나 좀 잘 챙겨줘요.”은서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일자리만 지킬 수 있어도 감사하죠. 승진은 꿈도 안 꿔요.”잠시 멈추고선 덧붙였다. “대회 준비는 어떻게 돼가요?”“그냥 그럭저럭이죠. 서 대표님이 이번에 강력한 카드를 데려왔으니까 우리는 그저 배경일 뿐이죠.” 이시연의 자조 섞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친선 경기라고 보면 되죠 뭐.”은서하는 향료 조향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그래도 좀 더 열심히 해봐야죠. 안 그러면 너무 아쉬울 거 같아요.”이시연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 차례가 되었기 때문이다.클라우드 아파트 902.“현진아, 이건 어때?”차미주는 흰 티에 청바지 오버롤을 입고 한현진 앞에서 빙그르르 돌며 물었다. “어때?”한현진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듯 여유 있게 대답했다. “나쁘지 않아.”“그럼 아까 그 꽃무늬 원피스는?”“그것도 괜찮아.”차미주는 눈꺼플이 살짝 뛰었다. “그럼 이 노란 운동복은?”“비슷해.”차미주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너 지금 뭐야? 그냥 대충 말하는 거지? 다 비슷하면 난 도대체 뭘 입어야 해?”한현진은 웃으며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 “내가 너 대충 대하는 게 아니야. 오면서 계속 생각했어. 너한테 좀 더 격식을 차린 옷을 입힐지 아니면 너의 스타일에 맞는 옷을 입힐지 말이야. 평소에 이렇게 캐주얼한 옷을 입고 다니니까 갑자기 정장 스타일을 입으면 길도 제대로 못 걸을 거고 스
한현진은 잠시 동작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 “서해금 옆에 있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벌써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법을 배우셨군요.”은서하의 얼굴이 잠시 창백해졌지만 이내 급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한 대표님, 저를 싫어하시든 미워하시든 상관없어요. 하지만 주혁이라는 사람. 그 사람만큼은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단순한 사람이 아니에요.”“주혁 씨가 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냥 운전기사일 뿐인데? 당신 말대로라면 그 사람이 다른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건가요?” “정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난 당신이 정말로 걱정해서 경고해 주는 건지 아니면 고의로 우리 사이를 흔들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은서하는 더 조급해졌다. “저는 이간질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만큼은 가까이 하지 말고 멀리 하세요. 한 대표님, 당신이 저를 도와주셨어요. 제가 아무리 배은망덕한 사람이라도 당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절대 안 할 거예요.”초조해하는 은서하와는 달리 한현진은 차분한 태도를 유지한 채 단호하게 물었다. “내가 그때 당신을 도와줬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했죠? 갑자기 등을 돌리지 않았나요? 은서하 씨, 내가 당신을 믿을 수 있을까요?”은서하는 갑자기 몸을 움츠리며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한 대표님, 저는 겁이 많고 피할 줄 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알아요. 최소한 저를 도와주셨던 대표님을 해칠 수 없다는거요.” 그녀의 진지한 말투에 한현진은 마음이 흔들렸다. 침묵을 지키며 그녀를 바라보다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럼 주혁 씨를 멀리하라는 이유라고 말해보세요. 내가 믿을 수 있도록 설득 될 만한 이유요.”은서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손을 움켜잡은 채 잠시 입을 다물었다.한현진은 지칠 대로 지쳐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이유가 없다면 더 이상 여기서 나를 걱정한다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 하지 말고 그냥 가세요.”은서하는 급히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말하지
[서해금이 나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나를 회사에서 쫓아내려고 하고 있어. 만약 네가 은서하고 우연히 내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걸 이용해서 서대금이 나를 잠시라도 회사에서 밀어낼 수 있게 할 수 있어. 그리고 넌 그 기회를 통해 승진하고 월급도 올리고 사장 앞에서 좋은 이미지도 쌓을 수 있어. 그 상황에서 너라면 그걸 참을 수 있겠어?]차미주는 그 말에 감탄하며 말했다. [임신한 채로도 이렇게 계산적이네? 너 아이 낳으면 두 명의 도깨비가 나올까 봐 걱정돼.]한현진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럴 리 없을 거야. 강한서가 매일 내 옆에서 를 읽어주고 있어. 맨날 애들한테도 읽어주니까 조금은 성품이 좋을 거야.][강한서 진짜 대단하다. 넌 그걸 듣고 있어?][안 듣지.] 한현진이 대답했다. [난 이어폰 끼고 드라마 봐. 강한서가 애들한테 읽어주고.]차미주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결국 는 아무 소용없다는 거네.][왜?] 한현진이 물었다.차미주가 익살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우리 엄마가 항상 그러셨어. 아이는 유전이 중요하다고.] [옛말에 그런 말 있잖아. 용은 용을 낳고 봉항은 봉황이 낳는다고. 네가 도덕이 없다면 강한서이 아무리 를 많이 읽어줘도 소용없어.”[너 진짜!] 한현진이 이빨을 갈며 말했다. [한성우 씨랑 있더닌 이제는 입만 잘 돌아가네.][오래 배운 거 이럴 때 써먹어야지.]한현진은 코웃음을 쳤다. [나랑 연습하면 뭐 해. 능력 있으면 너희 사장한테 가서 연습해.]차미주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건 안 돼. 사장한테서 월급 받아야 해.]차미주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있잖아.그 사람이 나를 자기 집에 초대해서 밥을 먹자고 하는데 네가 봤을 때 첫 만남에 뭘 입고 어떤 선물을 가져가야 할까? 정말 고민돼.]한현진은 답했다. [내가 경험이 많아 보여?][두 번이나 결혼했잖아. 너가 없으면 누가 경험 있겠어.]한현진은 담담하게
은서하는 빠르게 시선을 거두고 건강검진표를 꽉 쥔 채 한현진의 뒤로 갔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레 한현진의 배로 향했다. 한현진은 회사에 와서부터 항상 허리 라인이 보이지 않는 넉넉한 옷만 입었다. 뒷모습으로 보면 여전히 날씬해 보였고 이상한 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한현진이 특정 동작을 할 때 배가 살짝 불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에 한현진의 차에 탔을 때 그 모습을 잠깐 본 적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살이 찐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임신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은서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왜 한현진은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 ‘혹시 서해금 때문일까?’은서하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있었지만 한현진은 마치 그녀의 발견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잠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전화를 받고 몇 마디를 나누고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줄을 빠져나갔다.은서하는 잠시 멈칫하며 물었다. “한 대표님, 검사 안 하세요?”한현진은 천천히 돌아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일이 생겨서 나중에 다시 올려구요.” 그리고는 아무런 표정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한현진이 떠난 뒤 이시연이 나타났다. “한 대표님 어디 가셨어요?” 이시연은 주위를 살펴보며 물었다.은서하가 대답했다. “전화를 받으시더니 일이 생겼다며 먼저 가셨어요. 나중에 다시 오신다고 했어요.”“그렇군요.” 이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한 대표님과 얘기 해봤어요? 예전에 그 분의 옷을 받고 따돌림 당하고 급여도 깎였다고 했을 때 한 대표님이 굉장히 마음 아파했어요.” “그때 한 대표님이 먼저 도와주겠다고 했었죠. 후에 그렇게 된 건 어쩔 수 없지만 한 대표님은 정말 착한 분이세요. 잘 사과하면 한 대표님이 이해해줄 거예요.”은서하는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대표님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저는 그런 얘길 꺼낼 입장이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그냥 작은 직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서 이시연과 은서하가 진단서를 들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이시연이 은서하의 손을 이끌고 다가오며 말했다. “한 대표님, 여기서 뵙네요. 건강검진 받으러 오신 거예요?” 한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은서하를 가볍게 훑어본 뒤 다시 이사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분도 오늘입니까?” 이시연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어제가 제 날짜였는데 어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른 분이랑 바꿨어요. 서하 씨랑 같이 오려고요.” “가족은 안 데리고 왔어요?” 이시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직장에서 추가 의료보험을 들어두셔서 제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서하 씨 외할머니의 병은 보험으로는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서요.”은서하는 내내 말이 없었다. 이시연이 얘기하는 동안 그녀의 시선은 자꾸만 주혁에게로 흘러갔다. 주혁은 예민하게 그 시선을 포착했다. 둘의 눈이 맞닿자 은서하는 움켜쥔 손에 힘을 주며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혁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는 별다른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마침 건강검진 순서가 불리기 시작했다. 주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얘기 나누세요. 전 애들 데리고 먼저 검진 받으러 가겠습니다.” 그가 주상욱와 함께 자리를 떠나자 이시연이 한현진에게 조용히 제안했다. “한 대표님, 같이 가실래요? 먼저 채혈하고 나서 초음파 검사하면 순서가 빨라요. 그러면 금방 검사 끝내고 식사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한현진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채혈은 이미 했어요. 먼저 가요. 난 초음파실 앞에서 번호표 뽑아둘게요.” 한현진은 애초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었다. 주혁이 진짜 주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고 난 뒤부터 직접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방금까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내내 무심한 척 주혁을 은근히 살폈다. 주혁의 외모는 평범했다. 사람들 사이에 섞이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흐릿한 얼굴이었다.
주혁이 설명했다. “상욱이가 자신이 보낸 그림 잘 받았는지 물어봐요. 마음에 드는지 궁금해해요.”한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주혁에게 물었다. “마음에 든다는 걸 수화로 어떻게 하면 돼요?”주혁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말하면 돼요. 상욱이는 들을 수는 있지만 말하는 게 서툴러요.”사실 주상욱은 말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납치 사건에서 구출된 후 청력을 잃었다. 오랫동안 그는 청각장애인처럼 생활했으며 오랜 시간동안 소리를 못 들은 것도 있지만 또한 납치 당시 겪은 충격 때문에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언어 능력도 점차 떨어졌고 말을 꺼내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 이후 보청기를 장착한 뒤 청력은 조금씩 회복되었지만 언어 능력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과 소통할 때 수화를 사용하는 것을 더 편하게 느꼈다.한현진은 주상욱에게 미소 지으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정말 마음에 들어.”주상욱은 눈이 반짝이며 수화를 하려다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글을 한 문장 써서 한현진에게 건넸다.“나 보라고?” 한현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주상욱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현진은 고개를 숙여서 화면을 읽었다. [누나, 아빠에게 휴가를 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아빠와 함께 생일을 보낼 수 있었어요. 아빠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이제 누나 옆에서 일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빠를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아빠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저와 엄마를 위해 많은 고생을 했어요. 우리가 아빠를 힘들게 한 거예요. 아빠 대신 사과하고 싶어요. 아빠를 용서해 주실 수 있나요?]한현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아이의 말은 서툴고 순수했지만 그 마음은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입에 담은 ‘아빠’가 진짜 아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핸드폰에 글 한 줄을 적었다. [다 지나간 일이야. 이제 네 아빠를 탓하지 않아.]주혁은 이제 그녀 곁에서
대장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물론이죠. 이미 먼저 주혁 씨에게 연락했어요. 집에서 가족들과 상의한 후 곧바로 답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의 집안 사정으로 회사가 이렇게 좋은 혜택을 주는데 그가 신청하지 않겠어요? 절대 그럴 리 없죠.”원율은 잠시 담배를 피운 뒤 담배 끝을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부서에도 더 전해야 하니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대장님, 일 보세요.”원율을 보내고 나서 대장은 다시 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혁 씨, 가족이 두 명이니까 연간 십만 원도 안 되게 더 내면 돼.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고 가족이 병원 갈 때 드는 비용은 전부 보장돼. 이 작은 돈 아끼려고 하지 말고 큰 기회를 놓치지 마.”주혁은 돈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싫어한 건 그 돈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을 위한 보험에 가입하면 이번 주 금요일에 반드시 그들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설령 병원이 서대금이 손수 준비한 곳이라 해도 그에게는 그 사실이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일이었다.대장은 계속해서 재촉하며 보험 가입 후의 이점을 설명했다. 결국 주혁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럼 내 아내와 아들도 함께 가입시켜줘. 나중에 주민등록증 사진 보내줄게.”“알겠어. 잘 쉬고 빨리 회복해. 듣자 하니 곧 송가람 씨 밑에서 일하게 된다면서? 잘 됐어. 정해지면 꼭 한턱 쏴.”주혁은 송가람 밑에서 일하게 될 생각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에 부드러운 감정이 스며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확정되면 한 번 쏠게.”최종적으로 제출된 명단에 주혁의 가족이 포함된 것을 확인한 한현진은 비로소 안심했다. 체크업은 금요일과 토요일로 이틀에 걸쳐 나뉘어 진행되었고 한현진은 주혁이 토요일에 가는 것을 일부러 확인한 후 같은 날에 병원을 가기로 했다.주혁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의 아내는 평범한 주부였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한현진이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주혁
회의실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자 한현진은 물건을 정리한 뒤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서해금을 향해 파일을 들고 다가갔다. “아주머니, 방금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가 직원들을 생각해서 한 거니까 당연히 지지해야지. 우리 모두 같은 회사에 있는 한 하나의 팀이니까.” 한현진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가 제가 먼저 조사를 했다고 문제 삼지 않으셔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집에 보내주신 곤약도 가람 씨 통해 잘 받았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여유 있게 말했다. “가족끼리 서로 아끼는 거지. 너무 예의 차리지 마.”한현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회사에 온 이래로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게 해드렸어요. 제가 성격이 직설적이고 고집도 세서 가끔 말이 거칠어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아주머니께서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아빠한테 들었어요. 아주머니가 아빠한테 저를 칭찬해 주셨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무겁고 어쩌면 제가 너무 어리석게 행동했나 싶어요.”“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서해금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가 무슨 말이야. 어른이 아이와 다툴 일이 뭐가 있겠어? 현진아, 아주머니는 네 친엄마는 아니지만 너희 어머니와는 정말 소중한 친구였어. 네가 송씨 가문에 돌아올 수 있게 되어 아주머니는 그 누구보다 기뻐.” “지금 네가 집안에서 가람이랑 함께 지내는 걸 보니 젊은 시절 너희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가끔 떠올라. 우리가 반평생을 함께 지냈고 너희는 진짜 자매가 된 거지.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란 거야.”한현진은 속으로 토할 뻔했다. ‘정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고?’만약 당시 아이를 바꾼 일과 그녀 어머니의 죽음이 모두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온화하고 친절한 여자과 관련이 있었다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없다면 이렇게 진심 어린 말투를 들었을 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
하지만 이 제안이 실행되면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그것을 한현진 덕분이라고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서해금은 아마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서해금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안은 나쁘지 않지만 실비보험은 본래 회사가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기본적인 보장이기에 만약 직원들에게 요금을 부과하게 되면 일부 사람들은 이를 회사가 급여를 삭감하려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직원들의 가족은 병원을 거의 가지 않아 이 비용이 꼭 필요한 지출은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 전액을 회사가 부담하게 된다면 일부 직원들이 가족을 허위로 신고해 다른 사람의 보험을 대신 받으려 할 가능성도 생길 수 있을 겁니다.”한현진은 그녀가 이렇게 말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말하는 방식에 약간의 여유를 두었다. 서해금이 자신의 의문을 제기하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직원들이 가족을 위한 보험을 구매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자발적입니다. 회사는 강제로 요구하지 않아요. 다만 구매의 문턱을 낮춰놓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원하는 사람은 구입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서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서해금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잠시 침묵한 후 말문을 열었다. “현진 씨, 구입을 개방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쪽은 괜찮지만 보험사와의 협상이 필요해요. 어떤 보험사도 손해 보려고 하진 않잖아요.” 한현진이 살짝 웃으며 답했다. “보험사와의 협상은 제가 맡을게요. 지금 여쭤보는 건 서 대표님 개인의 의견이에요. 동의하시는지요?” 서해금은 당연히 반대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회의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반대한다고 말하면 그 소문이 바로 회사 전체에 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그동안 쌓아온 직원들을 위하는 좋은 상사의 이미지가 무너질 게 뻔했다. 서해금은 절대 자기를 망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서해금은 잠시 침묵한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