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환을 바라보던 주인장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렇게 할 수는 있습니다만 이 홍보석 세트 외에도 다양한 품목이 많은데 다른 것도 한 번 보시지 않겠습니까?”전소환은 고개를 들어보니, 점원이 계축목 쟁반을 들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한눈에 자신이 고른 세트와는 가치를 비교할 수 없는 물건임을 알아차렸다. 1층이나 2층에서 가져온 것이라 생각한 그녀는 즉시 장신구를 보호하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전 꼭 이 세트를 원하옵니다.” 옆에 있던 전노부인도 발끈했다.“무엇을 더 고른단 말이냐? 이 세트를 원한다고 말했지 않느냐? 우리와 함께 가서 은표를 받기만 하면 될 것을 금경루에서는 어찌 이리도 쓸데없는 말이 많단 말이냐?” 견문이 넓었던 주인장은 이런 손님들이 금경루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3층에는 이러한 경우가 드물었다. 이는 모녀가 며느리에게 혼수를 사게 하려는 목적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 가문은 다소 이상해 보였다. 나이가 많지 않은 노부인은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임이 분명했기에 이런 금전 문제는 그가 주도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옆에 있는 젊은 부인이 울상인 것을 보면 그녀가 내야 하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즉, 그녀의 사적인 돈을 써야 할 가능성이 제일 컸다.두 사람은 그녀에게 강매를 요구하고 있었고, 젊은 부인은 체면을 잃고 싶지 않아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억울한 표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상황이 점점 꼬여가는 그때, 소박한 옷차림의 한 부인이 방에서 나왔다. 그녀의 표정은 온화했고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이 홍보석 세트는 제가 예약한 것이 아닙니까? 어찌 다른 사람에게 팔고 있는지요?”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왕청여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두 사람은 아는 사이였다. 부인은 이석이라 불리었으며, 형부상서 이 대감의 조카딸이었다. 그녀는 선평후 차남 장문수에게 시집갔고, 장문수는 방시원과 함께 전장에서 전사했다. 하지만 이석은 장문수가 전사한
경애하고 추모한다는 말만 들어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같이 전장에서 남편을 잃은 이들로서, 이석은 왕청여를 돕고자 선의로 나섰지만, 왕청여가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이석도 매우 난처했을 게 분명했다. 송석석은 상대의 신분을 듣자마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이 자리에서 말을 꺼내지 않았고, 화제를 돌려 한녕에게 어떤 것으로 선택했는지 부터 물었다.그녀는 시어머니께 드릴 선물도 사야 했다. 어머니와 함께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혜태비가 잔뜩 화 나 있을 수도 있었다. 그 이유는 시어머니가 가의 군주와 함께 금루를 운영했었고 디자인은 이곳의 것을 베꼈으니 혹시라도 민망해하실까 동행하지 않은 것이다. 장신구는 이미 정해졌고 그 외 마음에 드는 물건도 골랐으니 한녕은 형수에게 와락 안기며 형수가 세상에서 가장 좋다며 연신 외쳤다. 이 장면을 본 주인장 아들도 미소를 지었다. 방금 밖에서 본 형수와 시누이의 모습과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진정으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 같아 보였다.그는 비록 장사꾼이지만,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무장들을 존경하였다. 송국공 가문은 소장군에서 지금의 북명왕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용맹한 장수들로, 상국을 위해 큰 공을 세웠다.하여 주인장 아들은 그들에게 거의 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물건을 팔 았고, 추가로 예쁜 장식품과 작은 선물 하면서 심지어는 직접 문밖까지 배웅해 주었다.그렇게 마차에 오른 송석석은 그제야 선평후부의 둘째 며느리 이석과 예전 두 사람을 비교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것이어서 그 당시 어느 정도로 떠들썩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 그러나 오늘 그자의 태도를 보니 그 사실을 모르는 눈치였어." 잠시 말을 멈춘 송석석은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사실 이석이든 왕청여든, 그들이 과부로 살든 재혼을 택하든, 그 어느 것도 잘못된 것은 없어. 과부로 살면 과부로서 감당해야 할 것이 있고 재혼을 해도 감당해야 할 것이 있
궁에서 돌아온 혜태비는 화청을 지나갔는데, 그녀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안에서 이야기하는 여자들 쪽은 전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때 혜태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님, 돌아오셨사옵니까?” 하지만 혜태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어머니, 저와 형수가 어머니께 드리려고 선물을 사 왔어요! 어서 오세요!” 또 다른 여인이 급히 달려 나와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아부했지만 혜태비는 한녕을 차갑게 쏘아보았다.“흥! 관심 없거든?” 그러자 한녕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네…? 정말입니까? 형수님이 아주 오랫동안 고심해서 고른 것인 데도요?” “흥, 오랫동안 고심했다고?” 혜태비는 문가에 서 있는 송석석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송석석의 미소를 바라보던 그녀는 턱을 치켜들었다. “보긴 하겠으나, 나는 아주 까다롭단 걸 미리 알고 있거라.” 그러자 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 “어머님, 어서 오세요.” 시만자는 급히 사람을 불러 과일과 차를 준비하게 하고, 혜태비가 장신구를 감상하는 동안 오늘 있었던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했다. 혜태비는 가느다란 붉은 보요를 머리 위에 얹고, 살짝 흔들어 보았다. 유수의 소리에 혜태비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역시 송석석은 자신의 취향을 잘 안다며 뿌듯해했다. 그러나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기만 해서 다행이었다. 현장에 있었더라면 그 장신구를 당장 빼앗고 싶었을 터였다. 그녀는 정말 해도 해도 너무했다.그 집안일에 엮이기만 해도 더럽다고 느껴졌다. 그들 하나하나가 창을 들고 있었고 모두 더러운 것들이 다 묻어있는 것 같았다.하지만 왕청여는 확실히 머리에 문제가 있는 듯 했다. 겨우 머리 장식 하나에 삼사만 냥이나 쓰려하다니, 온 집안이 초라함 그 자체인데 제대로 된 좋은 물건을 본 적이나 있을까?금경루의 물건들은 결코 싸지 않다. 모두 최고급이기에 가의 군주가 디자인을 베꼈던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혜태비는 부끄러워 얼굴이 뜨거워졌다. 오늘 거기에 가지
한편, 장군부. 오늘 밤 행랑 앞에는 등불이 하나만 켜졌고 두 개의 등불이 정원을 밝히고 있었다. 이 등들은 유리 등갓으로 덮여 있었는데, 이 유리등갓은 당시 송석석이 이혼할 때 잊고 두고 간 것이었다.곁채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웠고 모기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금경루의 점원은 아직 떠나지 않았다. 곁채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는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무도 차를 내오지 않았고 불도 켜지 않은 채로 대낮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은전을 받으러 따라온 것이었으나, 장군부에 들어온 후 이곳에 앉혀졌다. 나갈려고는 했지만 이윽고 대청 쪽에서 싸움 소리와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와 그저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싸움은 30분이나 넘게 지속되었고 마침내 잠잠해졌지만, 누군가가 또 들어와서 그에게 기다리라고 말할 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엄청난 무공이 있었기 때문에 이 몇 년 동안 금경루에서 손님이 은표를 충분히 가져오지 못하면, 그가 손님을 따라가거나 은행에 가서 은표를 받아왔다. 가끔은 기다려야 했지만, 가장 길어도 향이 다 타는 정도였다. 그것도 저택이 너무 크고 주인이 매우 친절해서 좋은 차와 간식을 충분히 즐기도록 한 후 은표를 주었기 때문이었다.대부분의 경우엔 기다릴 필요 없이 잠시 앉아만 있으면 은표는 금방 받을 수 있었다. 그가 자리에 앉으면, 노비들은 항상 차를 내어주었고 장군부처럼 어두워질 때까지 차 한 잔 없이 기다리게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는 마치 도둑의 소굴에 잘못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 하인들에게 물어보았지만, 하인들은 그저 기다리라고만 했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장신구는 이미 그들이 가져갔기 때문에 삼만 육천팔백 냥은 반드시 받아야 했다. 저녁 식사 후 목욕을 마친 전소환은 어머니를 찾아갔다. 목욕할 때 사용한 향수 덕분에 그녀의 온몸에 좋은 향기가 감돌았다.
전소환은 침대 앞에 앉아 콧방귀를 뀌었다. “저는 절대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시집오기도 전에 송석서과 혼수품을 비교하고 있으니 꽤 능력 있는 줄 알았습니다. 헌데 고작 몇만 냥도 내놓지 못하다니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지요. 그래도 이방보다는 낫습니다. 오라버니가 이방을 맞이할 때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습니까? 그런데도 돌아온 혼수는 약소하기 그지없었잖습니까? 그것은 황제가 하사한 혼인이었는데 말입니다.” 두 형수를 비난하던 전소한은 바로 민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큰형님은 병으로 몸져누우시더니 이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네요. 내 혼수도 아직 준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준비할지 모르겠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궁색하니까요.” 세 명의 며느리 중에 내세울 만한 사람이 없었으니, 전노부인은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 “그만 입 좀 다물거라.” 그러자 전소환은 무서워 마침내 입을 다물었다. 등불이 그녀를 비추자, 젖살이 사져서 그런지 얼굴이 더욱 날카로워 보였다. 민 씨는 방 안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왕청여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그 점원도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청여가 그 액수를 채우지 못하면 모두가 나서서 액수를 채워야 할 상황이 올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그녀의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었고, 전에 송석석이 준 장신구들도 이미 절반 이상 전당포에 맡긴 상태였다.오늘 하녀가 왕청여가 미친 듯이 소리치며 난리를 쳤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알아본 결과 시누이가 금경루에서 삼만 육천팔백 냥이나 되는 홍보석 장신구를 골랐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게다가 그것을 사겠다고 한 왕청여에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왕청여가 미친 건가? 장군부의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삼사만 냥이나 하는 장신구를 쉽게 사들이다니?게다가 돈이 부족해 친정에 갔다니, 이건 정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러운 일이
어두운 등불 아래, 한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 “무슨 일이오?” 왕청여는 눈물로 흐릿해진 시선 속에 남편, 전북망의 얼굴이 비춰지자 그의 품에 파고들며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전북망은 그녀가 바닥에 앉아 엉엉 우는 모습은 처음 봤기에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걱정스러운 말투로 급히 물었다.“왜 이러는 거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지요..?” 오월이 눈물을 머금은 채 오늘의 일을 말했다. 그러나 방시원의 이름을 말한 그때 왕청여가 갑자기 소리쳤다. “닥치거라!” 오월은 깜짝 놀라 즉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오월이 이미 방시원의 이름을 언급했기에 전북망이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사정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그녀가 방시원의 전사 위로금으로 전소환의 혼수를 샀고, 그 혼수는 삼만 육천팔백 냥에 달한다는 것이다.“가서 물리시오!” 전북망은 그녀를 놓아주고는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내일 금경루에 가서 그 홍보석 장신구를 물리시오.” 그의 거대한 그림자가 왕청여를 감쌌고 눈물을 닦은 왕청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수치로 가득찼다.왕청여는 오월을 매섭게 노려보았고, 오월은 억울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전북망은 그녀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어머니께 함께 가야겠소.” 그의 손에 이끌린 왕청여는 비틀거리며 힘겹게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하마터면 발을 헛디딜 뻔한 왕청여가 급히 말했다. “조금만 천천히 가시지요.” 전북망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그가 겪어야 할 수치가 아직도 부족하단 말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조롱당해야 한단 말인가? 그는 이미 경위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만약 여기서 왕청여가 방시원의 위로금으로 그의 여동생의 혼수를 마련했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장군부의 얼마 남지 않은 자존심마저 모두 사라져버릴 것이다. 전소환은 아직 전노부인의 방에 있었고, 평양후부에 시집가면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의군주의 예쁨을 받으면서 가
전노부인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기절할 듯 그녀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전북망은 급히 그녀를 부둥켜안았고 화낼 겨를도 없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봐라, 의사를 불러라!” 전소환은 울며 왕청여 앞에 달려가 소리쳤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어머니를 화나게 해서 돌아가시게 할 작정이야? 이 장신구는 네가 화가 나서 산 거잖아. 이제 와서 또 후회하는 거야?”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난 왕청여는 이 광경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무력감이 그녀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너무나 서럽고 괴로웠다. 삼만 육천팔백 냥이라는 거금을 들여 그녀를 위해 장신구를 사주었건만, 돌아오는 것은 비난뿐이었다. 그녀가 죄라도 지은 것인가? 한밤중에 의사를 부르니, 집안은 다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왕청여는 설움을 삼키고 손수건을 들고 노부인을 케어해야 했다. 의사는 급작스러운 분노로 인해 기절한 것이라며, 큰 문제는 없고 약 몇 첩만 쓰면 된다고 했다. 전노부인이 깨어났을 때, 전북망의 분노는 이미 모두 가라앉은 상태였다. 그는 침대 앞에 무릎을 꿇고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었다.“아들이 지나쳤습니다. 어머니를 화나게 하여 기절하게 한 죄가 있으니, 아들이 잘못했습니다.” 전노부인은 약해진 목소리로 왕청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그 홍보석 장신구에 관해,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게 하여라. 특히 방시원의 위로금으로 샀다는 사실을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된다.” 왕청여는 전북망을 바라보자, 전북망은 그녀의 손을 잡아 무릎을 꿇게 했다. 그녀는 온몸이 차가워졌다.오뉴월의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바닥의 차가운 기운이 무릎 속으로 스며들어왔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죄를 빌며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죄송합니다.”재혼한 그녀였기에 시어머니를 화나게 한 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비록 마음속에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 차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아까까지만 해도 그녀를 위해 화를 내던 남편이 이제는 후회만 하고 있었으니, 홍보석 장신구를 물리려는 의지는 전혀
그것은 이방의 비웃음 소리였다.“너도 이제 웃음거리가 되었구나!” “너……” 왕청여는 가슴을 움켜잡았다.“한낱 첩이 감히 나를 비웃는단 말이냐?” “흥, 한낱 첩일지라도 장군부에서 받은 예물이 적지 않다고!” 이방은 웃음을 터뜨리며 덧붙였다.“첩으로 들어온 이후로 나는 넉넉한 생활을 했지. 아무도 나를 홀대하지 못했어. 그러면서도 한 푼도 쓴 적이 없어.” 말을 마친 그녀는 왕청여가 분노 하건 말건 신경쓰지 않은 채 여유롭게 자리를 떠났다. 장군부에서 그녀만이 이런 상황을 비웃으며 관망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전소환의 혼수를 준비해달라고 한다면 바로 뺨을 때려 줄 것이다.왕청여만이 비참할 뿐이었다..! 왕청여를 한바탕 비웃고 난 이방은 방으로 돌아와 방어 기구를 점검한 후, 시녀들에게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명령하고 나서야 옷을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서경 태자가 사람을 교체했다는 소식을 그녀도 들었기에 녹본성에서 붙잡은 그 사람의 진짜 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당시 서경의 접차들이 송국공의 일가를 몰살했기 때문에, 그녀는 서경의 첩자들이 여전히 진성에 숨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하여 더욱 조심해야 했다. 어쨌든 전북망은 그녀의 방에 오지 않을 것이니,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목숨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장군부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승은백부 또한 마찬가지로 시끄러웠다. 노태부인은 자신의 사랑하는 손자가 세자 자리를 박탈당하고 승은백부를 계승할 수 없게 된 것을 알고 며칠 동안 난리를 피우며 태후를 뵙겠다고 하였다. 그녀는 어사들이 상소한 죄목에 대해 항변하려 했다. 그러나 노부인의 이 같은 행동은 집안의 많은 사람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세자 자리가 꼭 양소 한 사람만이 계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른 자손들도 충분한 자격이 있는데 말이다. 노태부인이 이토록 편애하니, 어찌 사람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견디다 못한 승은백도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간청했다. “어
시부인이 바로 그날의 고청우였다. 산후조리를 마친 그녀는 얼굴에 빛이 났고 몸집은 붓기가 하나도 없었으며 여전히 소녀처럼 아름다웠다. 남강에는 모래바람 때문에 겨울엔 아주 추웠지만 그녀의 피부는 기름을 바른 것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저택의 좋은 물건은 모두 그녀가 사용했다. 매일 낙타젖으로 제비집을 삶고 양젖으로 목욕을 했는데 진성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아도 그녀는 조금도 절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보양을 하니 적어도 왕표의 눈에는 지극히 고귀한 존재로 보였고 그녀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손을 잡으면 그의 마음도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생에 국색천향의 미인, 매력이 있는 미인, 온유한 미인 등 많이 만나보았지만 그중에서도 하필이면 여우 같은 고청우가 그의 마음에 들었다. 방천허마저도 그녀의 신분이 의심스러우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왕표는 그런 말을 듣고 오히려 욕을 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고청우는 진작에 자신의 신분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처음엔 이곳에 와서 살 길을 찾고 싶었을 뿐 그에게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왕표에게 엄격한 부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고청우가 왕표를 유혹한 게 아니라 왕표가 끝까지 쫓아가서 같이 살게 된 것이었다. 왕표는 그녀를 갖기 위해 많은 방법을 썼는데 처음엔 그녀를 수양딸로 삼겠다고까지 했었다. 그래서 나중에 그들이 부부가 된 후에도 고청우는 밤에 가끔씩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왕표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찌릿한 것 같았다.그는 아들이 생긴 데다 아름다운 부인을 보면서 심지어 여생을 남강에서 보내는 것도 행복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결코 최 씨에게 부당하게 대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 몇 년 동안 그녀가 중책을 맡아 집안의 재산을 처리하도록 내버려두었고, 그가 밖에서 군사를 이끌 기에 백작 부인인 그녀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앞으로
사여묵은 원래 누군가가 연왕의 배후에서 조종을 한다고 여겼지만 목종욱이 함부로 추측할까 봐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엔 실증도 없었으니 연왕을 죽였다면 황제는 황숙을 이유 없이 죽인 혼군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 아닌가? 그럼 그들이 반란을 일으킬 구실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지. 반란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 그의 세력이 이 정도까지 확장되었으니 누군가 깃발을 들것이다. 그를 연주로 보낸 이유는 그가 애초에 사온이 접촉했던 인맥과 다시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야.” 그러자 목종욱이 말했다. “그런 것이군요.” “내 추측이 맞다면 그들이 거사를 일으키려 한다면 분명 각지에서 트집을 찾아 봉기를 일으킬 것이니 조심해야 하네. 특히 강남은 우리 상국의 공창과 상회의 땅이니 그곳을 빼앗긴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사여묵이 재차 당부하자 목종욱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목숨을 걸고라도 그들이 강남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모두 인계한 후 사여묵도 진성으로 떠나는 길에 올랐다. 그는 지금 조금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사청엽이 진성으로 압송되었다. 그는 평생 체면에 신경을 썼는데 이젠 호위가 앞뒤 좌우에서 호송하는 건 흔치 않으니 이번 생에 소원을 이룬 셈이었다. 중간에 휴식할 때 송석석은 강철 바늘을 팔찌에 넣었다. 사병을 소탕할 때 팔찌의 강철 바늘을 다 썼는데 정말 사용하기 편리하다고 생각했다.특히 이런 산악전에서는 적이 분산되어 있어서 일단 발견하면 강철 바늘이 멀리까지 쏠 수 있어서 경공을 펼치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그녀가 산에서 몇 번 넘어져서 팔찌가 약간 변형해서 사여묵이 역관에게 공구를 빌려 수리해 주었다. 복구하지 않으면 각도에 문제가 생겨 정확하게 발사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들이 진성으로 돌아갈 때 남강에 있던 전북망도 마침내 성릉관에 도착했다. 왕표가 특별히 그들 몇 명을 성릉관으로 보내 소대장군에게 생신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전북망을 따라갔던 세 사람은 모두 전북망과
이튿날, 연황실의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는데, 그중에는 강남에 사는 훈작 가문도 적지 않았다. 원래는 이 훈작 가문들은 태평성대만이 영화를 누릴 수 있기에 정세가 흔들리는 것을 가장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어야 했다. 그러나 한 가문이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작위가 공작에서 백작으로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더 이상 작위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여 마음속으로 아주 초조했다. 왜냐하면 그들도 전성기를 누렸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가문이 연왕의 진영에 들어온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도 연왕의 계략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의 미움도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처세술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도 사람들이 모두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연왕은 모든 사람이 온 후에 결정을 내리겠다고 일을 다시 뒤로 미루었다. 그러자 더욱 무상의 말이 입증된 셈이었다. 사람들은 연왕이 움직일지, 아니면 투항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노주에서 사여묵은 강남도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포로들을 모두 인계했다. 강남 위영의 총병은 목종욱이었는데 예전에 소 대장군의 휘하였다. 소대장군은 하마터면 그를 의자로 삼을 뻔했다. 전공을 세운 후, 소 대장군의 천거로 강남에 가서 수비를 하고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목적은 도적 때를 소탕해서 소란을 피우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사여묵은 그와 왕래가 많지 않았지만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소대장군의 영향을 받아 충성심이 강하고 담력이 커서 절대로 연왕의 진영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연왕이 이리저리 병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목종욱은 직접 포로를 데리로 왔다.그가 사여묵과 송석석에게 인사를 하자 두 사람도 후배의 신분으로 그에게 인사를 했다. 왜냐하면 소대장군의 관계가 있으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온 후에 다른 것은 묻지 않고 소대장군께서 진성에 계셨던 상황만 물었다. 처음에 그는
연황실의 서재는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연왕은 모든 참모들을 불러놓고 논의를 했다. 그는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는 지금이 적합한 시기가 아니라 죽음만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청엽만 죽이면 그가 역모를 계획한 일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참사들과 연주에서 그와 함께 일을 도모했던 관리들은 모두 사청엽을 죽이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병 오천 명을 섬멸한 부대가 사청엽을 진성으로 호송하는데 어떻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사청엽을 죽이느니 차라리 움직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연주지부 하상지가 말했다. “왕야님, 이미 가장 좋은 시기를 놓쳤으니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은 병력을 기르는데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진성에서 제공하던 은자도 끊겼으니 더 이상 소모하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하상지는 전 호부시랑으로 있다가 작은 잘못을 저질러 선제에게 경주로 파견된 후 연왕을 따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사온이 은전으로 사람을 매수해서 그를 연주지부 자리에 앉게 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년이면 임기가 다가오는데 이부 제상서가 그에게 불만이 많았다. 옛날 진성에 있을 때부터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아 임기가 차면 아마 다른 곳으로 갈 것 같았다. 그가 자리를 옮기면 숙청제가 반드시 사람을 들여보낼 것이고 그때가 되면 왕야님이 연주를 장악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모두들 번갈아 가며 설득했다. 숙청제가 군대를 보내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먼저 곳곳에 불을 지피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고 모두의 분석이 일리가 있었고 현재의 형세에도 부합했다. 그러나 연왕은 여전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모든 사람이 도착한 후에 다시 의논해 보지. 다들 먼저 돌아가거라.” 서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가족의 생명을 그에게 맡겼고, 입이 마르도록 설득을 했는데 여전히 우유부단을 하니 사람들은 실망하기 그지없었다. 무상은 눈앞의 상황을
소식이 연주에 전해지자 연황실이 발칵 뒤집혔다. 연왕은 격노하여 방에 있는 도자기란 도자기들을 모두 깨뜨렸다. “병신들 같으니라고. 오천 명의 사병들이 모두 당하고도 보고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사청엽은 대체 뭐 하는 인간이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노주로 갔는데 경계심이 조금도 없다니, 심지어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하지도 않았다니.” 그의 얼굴은 흉악하고 무서워 회왕조차도 한쪽에서 서서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 일로 인해 당황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온통 옹현에서 옮겨간 사병들에게 있어 노주에 문제가 생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노주 대석촌 같은 숨겨져 있는 곳이 대체 어떻게 들킨 것이지? 노주는 원래 그들의 눈에 들 수 없는 곳이었다. 그곳의 지형은 정말 좋았는데 빽빽한 땅굴 외에도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역모를 실패하더라도 대석촌으로 가면 몇 년 동안은 평안할 수 있어 다시 계획을 짜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발견하기 어려운 지역인데 이렇게 쉽게 공격을 당하다니. 무상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왕야님, 지금 화를 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일찍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이 노주를 노리는 것은 사청엽에게서 실수가 생긴 것입니다. 그가 체포되어 진성으로 이송되기만 한다면 반드시 왕야님이 시켰다고 자백할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연왕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은 비적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의심만 했을 뿐 사병들이 본왕 것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었지. 지금 유일하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사청엽이니 기회를 봐서 그를 제거한다면?”그러자 무상이 말했다. “왕야께서는 그를 제거하실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모두 무림 출신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사가 죽어 나가야 하는지 아십니까? 아마 몰래 들어가서 한 번 보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입니다.” 연왕은 초조해서 일어났는데 동작이 너무 커 아물지 않은 상처가 당겨 아파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그들은 신속히 준비를 해 1군은 대석촌 북로로 진격했는데 그건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물론 1군이 움직이기 전에 이미 다른 분대가 먼저 입산해서 전후좌우로 협공을 했다. 적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포진이 합리적이어서 그야말로 빈틈없는 포위망을 마련해 준 셈이었다. 하지만 결국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워낙 공격할 곳이 많고 적들이 산세 지형에 익숙해 있어서 무소위가 미리 사람을 데려가 대석촌으로 향하는 밀도 입구를 막지 않았다면 싸움을 계속 진행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장대성은 겸사겸사 두 명의 인부도 구해내 그 사람들에게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데리고 대석촌을 떠나라고 했다. 두 사람은 마침내 구출이 되어 춥고 배가 고픈 데다 밖에 싸움이 났다는 것을 알고 황급히 산 부근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철수하라고 했다. 하지만 노동을 하던 사람들도 소수였고 이곳에는 오천 명이라는 사병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싸우기 어려웠다. 몇 시진 후, 2군은 대석촌을 점령하고 그들의 공급을 차단해서 산으로 몰아넣었다. 식량을 지키기만 하면 그들이 산에서 약탈을 할 수밖에 없기에 쉽게 노출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상대는 무림의 고수들이니 조금의 기척이 있어도 쉽게 들킬 수 있었다. 노주 지부 서계경은 북쪽 길목에서 탈출하는 일꾼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이 소식을 퍼뜨리지 못하도록 모두 체포했다.사실 이렇게 큰 움직임이 있는 이상 노주에서 분명 누군가가 소식을 전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계경은 많은 것을 알지 못했지만 이 전투가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절대로 산적과 토비들에게 외부에게 지원을 요청할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왜냐하면 그도 이 사람들은 진정한 산적과 토비가 아니라 역모를 꾸미는 사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사여묵 등 인은 통쾌한 몸싸움을 겪은 뒤 각 팀이 돌아가며 휴식을 취하고 유연한 산악전을 시작했다.송석석과 사여묵은 같은 팀이 아니었다. 무소위가 강력하게 그들이 나누어서 팀을
이번 작전은 비적을 토벌한다는 명분이 붙었다. 작전 전날 밤, 그들은 함께 앉아서 토론을 했는데 이번 행동은 위험하지도 않고 임무가 어렵지도 않았다. 다만 노주 대석촌의 사람이 예전 옹현의 사병은 아니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 연왕이 사람들을 어디로 옮겨갔을까? 전에 사여령은 여러 주와 현에 이런 거점이 있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사여묵은 모두 대석촌 같은 규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 천 명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수자였다. 위소가 없는 곳은 현지 관부만으로 오천 명을 섬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반격에 점령당할 수 있었다.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면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것이고 대군이 쳐들어왔을 때 이미 얼마나 많은 곳을 점령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번에 노주의 사병을 토벌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큰 문제는 뒤에 있었다. 요 몇 년 동안 남강에서의 전쟁으로 인해 연왕이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도 조정에서는 그에 대해 조금도 방비를 하지 않았다. 남강에서 승리한 후 조금의 억제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어느 정도 실력을 쌓았고 지금은 뒤에서 전략을 짜주는 사람까지 있었다. 비록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사여묵은 지금 자신들이 피동적이라고 생각했다. 노주로 온 후 그는 줄곧 그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했다. 원래 염 선생과 분석할 때는 많은 사람을 배제했지만, 단 한 사람이 그들의 시야에서 배제되었다가 다시 주목받게 되었고, 그 인물이 염 선생의 머릿속에서 결코 잊히지 않았다.그 사람이 가장 큰 혐의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전에 사람을 파견해 그 사람을 조사해 보았지만 그는 부유하지 않았지만 아주 평화로웠다. 그의 집에도 부병을 많이 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이상이 없었다.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제외되었을 사람인데 사여묵이 그를 배제한 뒤 다시 이름을 올린 이유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분명히 연왕의 뒤에 서서 모의를 한 사람일 것이었다. 다시 말해
노주에는 영락루라는 곳이 있었는데 기세가 웅장하고 규모가 컸다. 영락루에 소비하러 가는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면 귀족이었다. 하지만 영락루의 왼쪽 모퉁이에는 난잡하고 텅 빈 곳이 있었는데 장사꾼은 매일 그곳에서 장사를 했다. 밥을 파는 사람, 떡을 파는 사람, 완탕을 파는 사람 등이 있었는데 이곳은 품질이 좋고 가격이 저렴하여 음식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민들과 부두의 노동자들이었다. 장사하는 자리 밖에는 몇 개의 낮은 탁자와 걸상이 놓여 있었는데 손님들은 거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곳은 시끌벅적했고, 어떤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다 있었지만 유독 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만 없었다. 왜냐하면 백성들에겐 너무 먼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그중 완탕을 파는 노점 앞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의 옷차림도 수수하고 평범했다. 한 사람은 회색 솜저고리를 입고 흰 모자를 쓰고 있었고 나이는 대략 30살 좌우로 보였다. 다른 한 명은 대략 40살 좌우로 보였는데 청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다만 아무리 봄이라고 해도 아직 날씨가 쌀쌀한데 옷차림이 다소 얇아 보였다. 하지만 완탕 한 그릇을 먹고 나니 그의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맺혔다. 다 먹은 후에 그릇을 내려놓고 회색 저고리를 입은 남자가 말했다. “그럼 그냥 놔준단 말입니까?” 그러자 청색 옷을 입은 남자가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그들이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으니 그만둘 수밖에 없지.” 그러자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거 참 아쉽군요.” 청색 옷을 입은 남자는 그릇에 남은 국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연왕에게도 초조한 맛을 보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움직이지를 않으니 날이 갈수록 남의 자리가 안정되어 승산만 줄어드는 것 아니냐?” “나는 진성에서 왜 연왕을 돌려보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회색 옷을 입은 남자는 진성에서 연왕이 역모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연왕을 풀어준 건 호랑이를 풀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
마을은 이미 그들의 사람들로 가득 차 뜨거운 물이며 옷이며 없는 게 없었다. 다만 옷들이 상대적으로 짧아 무소위는 다른 사람을 시켜 그의 몸에 맞는 옷으로 한 벌 구해오라고 했다. 사여묵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송석석은 그의 몸에 묻은 흙을 닦아준 후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씻어주었다. 사청엽은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 머리를 감는 비누도 좋아서 잠깐 문질렀더니 머리카락이 금세 부드러워졌다. 다만 사여묵의 머리카락이 너무 더러워 물을 세 번이나 갈아서야 깨끗해졌다. 그리고 송석석은 천천히 그의 수염을 깎아주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주었다. 사여묵은 홀쭉해진 송석석의 얼굴을 보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아팠다. 아마 그동안 잠도 못 자고 매일 걱정을 해서 그런 것 같았다. 사여묵은 이럴 줄 알았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편지를 한 통 보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아직 옷을 사 오지 않아 일단 사청엽의 옷을 입어야 했는데 좀 짧긴 했지만 큰 영향은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사여묵은 쉰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당신이 올 줄 몰랐소. 심 사형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한 것 같소.” “당신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아서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송석석은 그의 품에 안겨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꼭 감쌌는데 몸이 밀착되어 전해오는 진실함이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혔던 근심과 초조함을 씻어 주는 것 같았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겠소.” 그의 뜨거운 입술은 송석석의 이마에 닿았고 그녀를 안고 있던 팔엔 힘이 더 들어갔다. “그러니 내 걱정은 하지 마오.” 방금 송석석이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려 그는 슬프면서도 감동적이었다. 그녀는 평시에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사여묵도 그녀가 부담스럽지 않게 항상 자신의 감정을 참아왔던 것이었다.그는 송석석의 마음속에 자신이 있지만 그다지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