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환은 침대 앞에 앉아 콧방귀를 뀌었다. “저는 절대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시집오기도 전에 송석서과 혼수품을 비교하고 있으니 꽤 능력 있는 줄 알았습니다. 헌데 고작 몇만 냥도 내놓지 못하다니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지요. 그래도 이방보다는 낫습니다. 오라버니가 이방을 맞이할 때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습니까? 그런데도 돌아온 혼수는 약소하기 그지없었잖습니까? 그것은 황제가 하사한 혼인이었는데 말입니다.” 두 형수를 비난하던 전소한은 바로 민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큰형님은 병으로 몸져누우시더니 이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네요. 내 혼수도 아직 준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준비할지 모르겠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궁색하니까요.” 세 명의 며느리 중에 내세울 만한 사람이 없었으니, 전노부인은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 “그만 입 좀 다물거라.” 그러자 전소환은 무서워 마침내 입을 다물었다. 등불이 그녀를 비추자, 젖살이 사져서 그런지 얼굴이 더욱 날카로워 보였다. 민 씨는 방 안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왕청여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그 점원도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청여가 그 액수를 채우지 못하면 모두가 나서서 액수를 채워야 할 상황이 올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그녀의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었고, 전에 송석석이 준 장신구들도 이미 절반 이상 전당포에 맡긴 상태였다.오늘 하녀가 왕청여가 미친 듯이 소리치며 난리를 쳤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알아본 결과 시누이가 금경루에서 삼만 육천팔백 냥이나 되는 홍보석 장신구를 골랐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게다가 그것을 사겠다고 한 왕청여에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왕청여가 미친 건가? 장군부의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삼사만 냥이나 하는 장신구를 쉽게 사들이다니?게다가 돈이 부족해 친정에 갔다니, 이건 정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러운 일이
어두운 등불 아래, 한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 “무슨 일이오?” 왕청여는 눈물로 흐릿해진 시선 속에 남편, 전북망의 얼굴이 비춰지자 그의 품에 파고들며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전북망은 그녀가 바닥에 앉아 엉엉 우는 모습은 처음 봤기에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걱정스러운 말투로 급히 물었다.“왜 이러는 거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지요..?” 오월이 눈물을 머금은 채 오늘의 일을 말했다. 그러나 방시원의 이름을 말한 그때 왕청여가 갑자기 소리쳤다. “닥치거라!” 오월은 깜짝 놀라 즉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오월이 이미 방시원의 이름을 언급했기에 전북망이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사정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그녀가 방시원의 전사 위로금으로 전소환의 혼수를 샀고, 그 혼수는 삼만 육천팔백 냥에 달한다는 것이다.“가서 물리시오!” 전북망은 그녀를 놓아주고는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내일 금경루에 가서 그 홍보석 장신구를 물리시오.” 그의 거대한 그림자가 왕청여를 감쌌고 눈물을 닦은 왕청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수치로 가득찼다.왕청여는 오월을 매섭게 노려보았고, 오월은 억울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전북망은 그녀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어머니께 함께 가야겠소.” 그의 손에 이끌린 왕청여는 비틀거리며 힘겹게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하마터면 발을 헛디딜 뻔한 왕청여가 급히 말했다. “조금만 천천히 가시지요.” 전북망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그가 겪어야 할 수치가 아직도 부족하단 말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조롱당해야 한단 말인가? 그는 이미 경위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만약 여기서 왕청여가 방시원의 위로금으로 그의 여동생의 혼수를 마련했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장군부의 얼마 남지 않은 자존심마저 모두 사라져버릴 것이다. 전소환은 아직 전노부인의 방에 있었고, 평양후부에 시집가면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의군주의 예쁨을 받으면서 가
전노부인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기절할 듯 그녀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전북망은 급히 그녀를 부둥켜안았고 화낼 겨를도 없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봐라, 의사를 불러라!” 전소환은 울며 왕청여 앞에 달려가 소리쳤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어머니를 화나게 해서 돌아가시게 할 작정이야? 이 장신구는 네가 화가 나서 산 거잖아. 이제 와서 또 후회하는 거야?”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난 왕청여는 이 광경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무력감이 그녀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너무나 서럽고 괴로웠다. 삼만 육천팔백 냥이라는 거금을 들여 그녀를 위해 장신구를 사주었건만, 돌아오는 것은 비난뿐이었다. 그녀가 죄라도 지은 것인가? 한밤중에 의사를 부르니, 집안은 다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왕청여는 설움을 삼키고 손수건을 들고 노부인을 케어해야 했다. 의사는 급작스러운 분노로 인해 기절한 것이라며, 큰 문제는 없고 약 몇 첩만 쓰면 된다고 했다. 전노부인이 깨어났을 때, 전북망의 분노는 이미 모두 가라앉은 상태였다. 그는 침대 앞에 무릎을 꿇고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었다.“아들이 지나쳤습니다. 어머니를 화나게 하여 기절하게 한 죄가 있으니, 아들이 잘못했습니다.” 전노부인은 약해진 목소리로 왕청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그 홍보석 장신구에 관해,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게 하여라. 특히 방시원의 위로금으로 샀다는 사실을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된다.” 왕청여는 전북망을 바라보자, 전북망은 그녀의 손을 잡아 무릎을 꿇게 했다. 그녀는 온몸이 차가워졌다.오뉴월의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바닥의 차가운 기운이 무릎 속으로 스며들어왔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죄를 빌며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죄송합니다.”재혼한 그녀였기에 시어머니를 화나게 한 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비록 마음속에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 차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아까까지만 해도 그녀를 위해 화를 내던 남편이 이제는 후회만 하고 있었으니, 홍보석 장신구를 물리려는 의지는 전혀
그것은 이방의 비웃음 소리였다.“너도 이제 웃음거리가 되었구나!” “너……” 왕청여는 가슴을 움켜잡았다.“한낱 첩이 감히 나를 비웃는단 말이냐?” “흥, 한낱 첩일지라도 장군부에서 받은 예물이 적지 않다고!” 이방은 웃음을 터뜨리며 덧붙였다.“첩으로 들어온 이후로 나는 넉넉한 생활을 했지. 아무도 나를 홀대하지 못했어. 그러면서도 한 푼도 쓴 적이 없어.” 말을 마친 그녀는 왕청여가 분노 하건 말건 신경쓰지 않은 채 여유롭게 자리를 떠났다. 장군부에서 그녀만이 이런 상황을 비웃으며 관망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전소환의 혼수를 준비해달라고 한다면 바로 뺨을 때려 줄 것이다.왕청여만이 비참할 뿐이었다..! 왕청여를 한바탕 비웃고 난 이방은 방으로 돌아와 방어 기구를 점검한 후, 시녀들에게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명령하고 나서야 옷을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서경 태자가 사람을 교체했다는 소식을 그녀도 들었기에 녹본성에서 붙잡은 그 사람의 진짜 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당시 서경의 접차들이 송국공의 일가를 몰살했기 때문에, 그녀는 서경의 첩자들이 여전히 진성에 숨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하여 더욱 조심해야 했다. 어쨌든 전북망은 그녀의 방에 오지 않을 것이니,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목숨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장군부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승은백부 또한 마찬가지로 시끄러웠다. 노태부인은 자신의 사랑하는 손자가 세자 자리를 박탈당하고 승은백부를 계승할 수 없게 된 것을 알고 며칠 동안 난리를 피우며 태후를 뵙겠다고 하였다. 그녀는 어사들이 상소한 죄목에 대해 항변하려 했다. 그러나 노부인의 이 같은 행동은 집안의 많은 사람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세자 자리가 꼭 양소 한 사람만이 계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른 자손들도 충분한 자격이 있는데 말이다. 노태부인이 이토록 편애하니, 어찌 사람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견디다 못한 승은백도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간청했다. “어
한편, 장공주부.장공주는 눈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중년 남자를 날카로운 목소리로 질책했다."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느냐! 무녀의 정체가 어찌하여 송석석에게 발각되었단 말이냐? 혹시 그 천한 여자가 스스로 송석석의 사람들에게 말을 흘린 것이냐?"그 남자는 키가 크고 잘생겼지만, 세월의 흔적은 감출 수 없었다.그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없사옵니다. 청우가 스스로 송석석에게 말을 했을 리 없사옵니다. 청우는 항상 공주님의 말씀을 잘 따랐사옵니다. 공주님께서 시키시는 일은 절대로 거역한 적이 없사옵니다.""당연히 감히 그럴 리 없어야 할 것이다." 장공주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어미가 아직 공주부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으니, 어미를 살려내고 싶다면, 내 말을 잘 들어야 할 것이다.""예, 반드시 잘 따를 것이옵니다."장공주는 그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그의 모습이 그녀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가서 그녀에게 물어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거라. 내 생각에는 송석석, 그년이 한 사람의 신분만 알아내고는 그것을 퍼뜨려 나를 곤란하게 하고 내 계획을 방해하려는 속셈일 것이다. 절대 그녀의 꾀에 넘어갈 수는 없다!”“알겠습니다. 제가 가서 경고하겠습니다.”장공주는 그가 다른 말 없이 딸들만 걱정하는 모습을 보자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당장 나가거라!"“예!”고부진은 몸을 돌렸다. 그의 크고 당당했던 모습은 세월과 함께 살짝 구부러졌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장공주는 순간 그와 닮은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죽어 있던 감정이 살짝 일렁였지만, 이내 커다란 증오가 치밀어 올랐다.그 시절, 그녀는 공주의 신분으로 청혼했지만, 그는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소봉아를 선택했다. 그렇게 그녀는 그들이 결혼하는 날에 자손이 끊기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길 저주했다.하지만 소봉아는 아들 여섯 명과 딸 한 명을 낳았고, 그녀의 저주와는 달리 행복
고청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항상 냉소가 서려 있었는데, 그것은 아버지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는 승은백부에 첩으로 들어갔는데 어찌 북명왕비와 접촉할 수 있었겠습니까? 공주 어머니께서 제 말을 믿지 않으신다면, 저에게 독약 내리셔도 됩니다.” 그러자 고부진은 미간을 찌푸렸다.“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독약 한 잔으로 너를 죽일 것이었으면, 어찌 그토록 많은 돈을 들여 널 키웠겠느냐? 너의 임무를 잊지 말거라. 네 어미는 아직도 그녀의 손아귀에 있다.” 고청우의 눈에는 더 깊은 조소가 서렸다. “아버지께서 정말 어머니를 그토록 사랑하신다면, 어찌 그녀에게 맞서지 못하고, 딸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곁에 두려 하십니까?” 고부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너는 승은백부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네 어미는 기뻐하긴 했다. 다만 네 신분이 누설되어 기분이 살짝 잡친 것 뿐이다. 네 동생은 이미 떠났다. 아마 길에서 북명왕과 만날 것이다. 네 동생은 절세의 미모를 지녔고, 북명왕이 좋아하는 무예를 익힌 여자이니, 북명왕이 관심을 가질 것이다. 만약 그녀가 북명왕부에 들어가면, 우리의 계획은 절반이나 성공한 셈이다.” “동생이 송석석을 죽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고청우의 눈에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송회안이야말로 그녀의 불행의 근원이며, 그들 모든 자매들의 불행의 근원이기도 했다. 송회안은 죽었으나, 송석석은 아직 살아 있다. 고부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가득했다. 결국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동생은 무공이 송석석보다 못하니, 북명왕부에 들어가서 기회를 봐 독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나 만약 정체가 발각되기라도 하면, 네 동생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그녀가 총애를 받기만 하면 죽지 않을 것입니다.” 고청우는 조소를 지으며 덧부였다.“북명왕과 송석석은 감정이 없는 사이입니다. 공주 어머니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그들은 단지 정략 결혼일 뿐
량소가 승은백부로 불려 갔지만 여전히 고압적인 태도로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며, 황제께서 그를 꾸짖고 세자 자리를 박탈한 것은 황제의 잘못이라고 하였다. 그는 젊고 재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며, 자신만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듯이 행동하였다. 그는 세상 사람들, 심지어는 자신의 부모와 가족들조차도 멸시하였다. 기고만장한 그의 태도에 화가 난 승은백이 그의 뺨을 세게 때려버렸다."당장 돌아가 군주에게 사과하고 죄를 빌 거라! 그리고 또다시 황제에 대한 불만을 입에 담는 일이 있다면 이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승은백부에 발을 들이지 못할 것이고 부용항도 함께 몰수할 것이다."돌아오는 길에 량소는 걱정이 앞섰다. 세자의 자리도 뺏겼으니 몇 마디 불평만 하고 가족들이 그를 받아들여 준다면, 굴복하고 연유를 데려올 계획이었다.그러나 집에 돌아와 보니 누구도 그의 편을 들지 않았고, 항상 그를 아껴주던 할머니조차도 침묵을 유지했다. 이제 뺨까지 맞고 군주에게 사과하라는 압박을 받자 그의 반항심은 더욱 강해졌다. 뺨을 움켜쥔 그는 목에 힘을 주며 크게 분노했다."좋습니다. 다들 몰수해 버리세요! 나보고 그녀에게 사과하라니, 절대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녀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 연유를 괴롭힌 것도 모자라 사촌언니에게 일러 북명왕부에서 우리 승은백부를 괴롭히게 했는데 다들 억울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강압에 굴복한 것입니까? 쉽게 굴복하는 것은 당신들 일이지만, 저도 당신들처럼 비굴해질 것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이 반역자야! 너는 가족도 다 죽일 셈이냐?" 승은백은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함께 있던 숙부들과 형제들도 모두 그를 질책하였다. "량소, 이번 일은 네 잘못이 분명하니 남이 와서 따지는 것은 당연한 거다.""이건 강압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고, 잘못을 깨닫고 고치는 것이다.""그래, 너는 성현서를 읽었으니 이제 옳고 그름은 분별해야 한다. 첩을 아끼고 아내를 천대하는 것은 본래 잘못된 일이다. 이제라도 개과천선하면 모
란이가 조용히 말했다. "나를 일으켜 다오. 무엇을 하려는지 봐야겠으니 그를 들여보내라."소금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정말로 그를 들이시려 하십니까?" 그녀는 량소가 란이를 밀쳐 탁자에 부딪히게 한 일이 떠올라 너무 걱정되었다.란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거라. 선소 사저와 라 사저가 옆에 있으니 나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그녀는 이미 마음을 완전히 접은 상태였다. 하지만 해야 할 말이 있다면 면전에서 분명히 하고 싶었다.소금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일으켜 앉히고는 등 뒤에 부드러운 쿠션을 하나 받쳐주었다."절대 침상에서 내려오시면 안 됩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습니다."란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알겠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어머니가 그녀에게 이혼하지 말라고 한 이후로, 그녀는 매일 침대에 누워 무기력한 상태로 지냈다. 앞날은 커녕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그런데 오늘 그가 화가 잔뜩 나서 찾아왔다고 하니 오히려 갑자기 알게 모르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그녀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뭔가를 말하고 싶어졌다. 적어도 도와주고 있는 사촌언니의 수고를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량소가 들어섰다. 그러나 석소 사저와 라 사저가 그의 뒤를 바짝 따르며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막았다.고개를 든 란이는 그의 사나운 눈빛과 마주했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가 먼저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나보고 사과하라고? 좋아, 사과하지. 그날 내가 당신을 밀쳤으니 내 잘못이야. 미안해."란이는 이불을 꽉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량소가 한 걸음 더 다가가려 했으나 석소 사저가 그를 막아섰다. 하지만 그는 석소를 차갑게 노려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가 당신에게 사과했으니, 당신도 그날 연유를 계단에서 밀쳐 넘어뜨린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해. 얼른 일어나 나와 함께 사과하러 가자고."눈가가 붉어진 란이는 갑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