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소가 승은백부로 불려 갔지만 여전히 고압적인 태도로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며, 황제께서 그를 꾸짖고 세자 자리를 박탈한 것은 황제의 잘못이라고 하였다. 그는 젊고 재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며, 자신만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듯이 행동하였다. 그는 세상 사람들, 심지어는 자신의 부모와 가족들조차도 멸시하였다. 기고만장한 그의 태도에 화가 난 승은백이 그의 뺨을 세게 때려버렸다."당장 돌아가 군주에게 사과하고 죄를 빌 거라! 그리고 또다시 황제에 대한 불만을 입에 담는 일이 있다면 이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승은백부에 발을 들이지 못할 것이고 부용항도 함께 몰수할 것이다."돌아오는 길에 량소는 걱정이 앞섰다. 세자의 자리도 뺏겼으니 몇 마디 불평만 하고 가족들이 그를 받아들여 준다면, 굴복하고 연유를 데려올 계획이었다.그러나 집에 돌아와 보니 누구도 그의 편을 들지 않았고, 항상 그를 아껴주던 할머니조차도 침묵을 유지했다. 이제 뺨까지 맞고 군주에게 사과하라는 압박을 받자 그의 반항심은 더욱 강해졌다. 뺨을 움켜쥔 그는 목에 힘을 주며 크게 분노했다."좋습니다. 다들 몰수해 버리세요! 나보고 그녀에게 사과하라니, 절대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녀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 연유를 괴롭힌 것도 모자라 사촌언니에게 일러 북명왕부에서 우리 승은백부를 괴롭히게 했는데 다들 억울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강압에 굴복한 것입니까? 쉽게 굴복하는 것은 당신들 일이지만, 저도 당신들처럼 비굴해질 것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이 반역자야! 너는 가족도 다 죽일 셈이냐?" 승은백은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함께 있던 숙부들과 형제들도 모두 그를 질책하였다. "량소, 이번 일은 네 잘못이 분명하니 남이 와서 따지는 것은 당연한 거다.""이건 강압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고, 잘못을 깨닫고 고치는 것이다.""그래, 너는 성현서를 읽었으니 이제 옳고 그름은 분별해야 한다. 첩을 아끼고 아내를 천대하는 것은 본래 잘못된 일이다. 이제라도 개과천선하면 모
란이가 조용히 말했다. "나를 일으켜 다오. 무엇을 하려는지 봐야겠으니 그를 들여보내라."소금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정말로 그를 들이시려 하십니까?" 그녀는 량소가 란이를 밀쳐 탁자에 부딪히게 한 일이 떠올라 너무 걱정되었다.란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거라. 선소 사저와 라 사저가 옆에 있으니 나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그녀는 이미 마음을 완전히 접은 상태였다. 하지만 해야 할 말이 있다면 면전에서 분명히 하고 싶었다.소금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일으켜 앉히고는 등 뒤에 부드러운 쿠션을 하나 받쳐주었다."절대 침상에서 내려오시면 안 됩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습니다."란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알겠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어머니가 그녀에게 이혼하지 말라고 한 이후로, 그녀는 매일 침대에 누워 무기력한 상태로 지냈다. 앞날은 커녕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그런데 오늘 그가 화가 잔뜩 나서 찾아왔다고 하니 오히려 갑자기 알게 모르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그녀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뭔가를 말하고 싶어졌다. 적어도 도와주고 있는 사촌언니의 수고를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량소가 들어섰다. 그러나 석소 사저와 라 사저가 그의 뒤를 바짝 따르며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막았다.고개를 든 란이는 그의 사나운 눈빛과 마주했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가 먼저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나보고 사과하라고? 좋아, 사과하지. 그날 내가 당신을 밀쳤으니 내 잘못이야. 미안해."란이는 이불을 꽉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량소가 한 걸음 더 다가가려 했으나 석소 사저가 그를 막아섰다. 하지만 그는 석소를 차갑게 노려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가 당신에게 사과했으니, 당신도 그날 연유를 계단에서 밀쳐 넘어뜨린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해. 얼른 일어나 나와 함께 사과하러 가자고."눈가가 붉어진 란이는 갑자기
량소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내가 이토록 한심한 사람인데 왜 그토록 나에게 집착했느냐? 처음 우리의 혼사는 너의 일방적인 소망이었고 나는 왕부의 권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을 뿐이다...""그 입 닥치시지요!” 란이는 눈가가 붉어지고 입술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혼사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는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고 서러운 감정이 가득찼다. "저는 당신을 사모했었지요. 하지만 당신 역시 저를 좋아한다 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불행이 시작된 겁니다. 저희 회왕부가 권력을 쥐고 있었다면 이따위로 저를 대하지는 않았겠지요."그녀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참아보려 했지만 본래 나약했던 그녀였기에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나 마른 그녀가 눈물조차 참아내지 못하는 모습에 량소는 잠시나마 미미한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연유를 생각하니 그 죄책감은 금세 사라져 있었다. 그는 연유에게만 마음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상기하며 다른 여인에게 어떤 감정도 품지 않겠다고 다시금 다짐하고는 차갑게 말했다. "내가 당신을 괴롭혔다고? 연유를 괴롭힌 것을 왜 말하지 않느냐? 너는 지금 승은백부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있지만, 연유는 나와 함께 부용항에 머물고 있다. 아니, 이제 부용항마저도 몰수한다고 하더구나. 세자 자리도 박탕당하고 연유와 이토록 비참하게 살고 있는 것 모두 당신이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촌을 불러들여 일을 크게 맏는 탓에 어사가 나를 탄핵한 것이다."“당신...”화가 치밀어 오른 란이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겨우 되찾은 차분함이 모두 사라져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뒤에 있던 베개를 그에게 던지며 소리쳤다. "이 멍청한 놈!"하지만 베개는 그를 명중하지 못했다."난 이미 사과했으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이제 네 문제다."말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그때 라사저가 그의 뒤옷깃을 잡아당겼다. 량소는 돌아서다가 옷깃에 걸려 거의 넘어질 뻔했다.라 사저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한마디 해도 되겠느냐?"량
부용항에 돌아온 량소는 먼저 입안의 피를 헹구었다. 연유가 걱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부용항에서 그를 시중드는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 한 명은 주방에 있고, 다른 한 명은 아마 지금 연유를 시중들고 있을 것이다. 그는 차방에서 식은 차로 입을 헹구었다. 그러자 머리가 지끈거렸고 입안 왼쪽이 갈라지듯 아파왔다. 그는 새어 나오는 눈물을 겨우 참아냈다.란이는 참으로 독한 년이다. 세 번이나 사람을 시켜 남편을 두들겨 패다니 말이다. 그녀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속아 넘어간 자신이 너무 어리석었다. 그녀도 그녀의 사촌 북명왕비와 다를 바가 없었다.그가 맞았다는 것을 할머니와 아버지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화가 나 집을 떠난 것이기에 좋은 핑계가 될 수 있었다. 만약 다시 돌아오라고 한다면 그때는 쉽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백주야, 당장 손수건을 가져오너라..." 아무 대답이 없자 그는 그제서야 백주가 승은백부에 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의 계약서는 어머니 손에 있었고, 어머니는 그를 보내지 않았다.이제껏 부유한 가문의 자제로 살아왔던 그가 이렇게 처참하고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니!그는 순간 과거에 탐화랑이 되었을 때를 떠올렸다. 군주의 남편이 된 그는 막 벼슬길에 올랐지만, 모든 이들이 그의 앞날이 창창하다고 입을 모았었다. 영광스러웠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나도 처량했다.입을 헹구고 얼굴을 깨끗이 닦은 후, 그는 월식거로 향했다. 방에 들어서자, 책상 위에는 보자기가 놓여 있었고 연유는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옷차림은 단정했고 머리에는 비녀와 장신구들이 꽂혀 있었다. 그녀는 몸값을 치르고 풀려났을 때 입었던 노란색 자수가 새겨진 치마를 입고 있었다."연유!" 량소는 뒤에서 그녀를 켜안으며 볼에 입을 맞췄다. "이 짐은 누구 것이오?"고청우는 천천히 그를 밀어내며 더 이상 온화하고 매혹적인 얼굴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얼음처럼 차가웠다."저는 더 이상 연유가 아닙니다. 제 이름은
하인들에게 구출되어 깨어난 량소는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마당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음은 텅 비어 아무리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부용항을 고부진의 부하들이 계속 감시하고 있었는데, 이 상황을 보고받은 고부진이 미간을 찌푸렸다.“청우가 잘 정리한다고 하지 않았나? 됐다. 어쨌든 쓸모없는 자이고 승은백부의 명성도 이미 바닥에 떨어졌으니 상관하지 말도록 하자.”량소는 그렇게 부용항에서 이틀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지냈다. 고청우가 떠났다는 것이 그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준 것은 그녀가 떠나기 전에 했던 그 말들이었다.그는 하늘보다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젊은 나이에 탐화랑에 오른 인물이었다. 진성의 많은 명문가 여인들이 그를 사랑하고 동경했다. 그는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했고, 세상에 특별한 존재로 태어났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남들과는 다르게 행동하며,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심지어 그는 만민이 존경하는 정신적인 표본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그는 연유를 위해 관직을 잃게 되었지만,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세속과는 다른 존재임을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억압을 뚫고 홍루의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고, 비록 당장은 비난을 받을지라도, 훗날 역사가 그를 기록할 때 후손들은 그와 연유의 세속을 초월한 사랑을 존경할 것이라고 믿었다.하지만 세자 자리를 잃고 나서부터 그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관직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작위를 물려받아 부유하고 존귀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부용항의 일은 홍시가 시만자에게 전했고 시만자는 다시 송석석에게 전해주었다. 석소 사저도 며칠 전에 와서 란이가 량소와 크게 다투었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석소 사저에게 란이를 천천히 이끌어주라고 했다.란이는 군주의 신분이니, 그녀가 스스로 일어설 수만 있다면, 승은백부 전체가 그녀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고 량소는 말할 것도 없다고 했다.부부 사이에 정이 사라지면 결국
홍시가 몇 명의 수상한 인물들이 진성에 들어와 롱주 객잔에 투숙했다고 전해왔다.그들이 수상하다고 여긴 이유는 몸에서 느껴지는 강한 살기 때문이었다. 이는 일반적인 무림의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탐지자들은 피에 굶주린 듯한 기운에 매우 민감해 그들이 진성에 들어오자마자 교대로 추적을 시작했다. 그들은 롱주 객잔에 투숙한 후, 밖으로 나오지 않아 보고를 올리자 시만자는 곧바로 송석석을 찾아갔다.이야기를 들은 송석석은 미간을 찌푸렸다.“진성은 상국의 가장 번화하고 번영하는 곳이라, 많은 상인들이 오가고 무림의 사람들도 자주 들어오곤 하지. 하지만 일반적인 무림의 사람들과 다르다니... 살기가 너무 강한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누구인지 파악해야 해.”시만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홍시는 그들이 황제를 암살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어.”잠시 생각에 잠기던 송석석은 고개를 저었다.“황제를 암살하려거든 반드시 황제가 궁 밖으로 나왔을 때를 노려야 해. 궁으로 들어가 암살을 시도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지. 그리고 몇 명밖에 되지 않는다면, 궁에 내통자가 있지 않은 한 궁에서 암살을 시도할 수 없을 것이야.”시만자는 제안하듯 물었다. “필명에게 금군을 조사하도록 하는 건 어때?”하지만 송석석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그녀는 창밖의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름이 되면 비가 잦아진다. 그러나 진성은 북쪽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이 되면 비가 많이 내린다. 그녀는 서경의 신태자에 관한 일을 떠올렸다. “홍시가 그들이 상국 사람이거나, 서경 사람처럼 보인다고 말한 적은 없어?”“진성에 무사히 들어온 것을 보면, 상국 사람인게 틀림없지.”“꼭 그렇지만은 않아. 그들이 상국에서 오래 활동했다면, 입경 허가서를 얻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야.”“그렇다면 그들이 서경 사람일 수도 있다는 말이느냐?”시만자가 물었다.“그럴 가능성도 있고, 연왕이 보낸 사람일 가능성도 있어. 허나 연왕
시만자는 송석석을 바라보았다.“그... 이방을 노린 것이 아니라면, 혹시 북명왕부를 노리는 걸까?”송석석은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지금으로선 단지 살기가 가득한 사람들 몇 명이 진성에 들어왔다는 정보뿐이다.“몽동이에게 북명왕부의 방어를 강화하도록 해야겠어. 내일은 서우를 서원에 보내면 그들이 진성을 떠날 때까지 몽동이에게 외부를 지키게 해야겠어.”상황이 불확실할 때는 항상 미리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남편인 사여묵과 염 선생도 왕부를 비운 상태라 송석석은 더욱 신중을 할 필요가 있었다.그날 몽동이는 즉시 방어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천자 밑에 있는 부병 500명은 황제를 조금 두렵게 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매우 유용했기에 지금처럼 방어를 준비하는 일도 아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세 시간마다 교대 근무를 설 수 있었고 인원도 충분했다.진성에는 야간 통금이 없었기에 몽둥이가 밤에 직접 방어를 책임졌다.달이 없는 밤은 도적질을 하기 좋은 때였기 때문이고 대낮에 몇 명이서 왕부를 침입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다음 날 아침, 마차가 준비되었고 송석석과 시만자는 서우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서원에 처음으로 가는 서우는 입으로는 긴장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얼굴은 잔뜩 경직되었다.단정하게 머리를 빗고 파란색 옷을 입은 그는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서동은 국공부 진복이 추천 한 인물로, 그의 이름은 진소설이었다. 그해 작은 설에 태어나 소설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는 서우와 동갑이었고 함께 서원을 다니게 되었다.진도균은 붓과 먹이 든 가방을 메고 있었다.서우는 아직 걸음걸이가 어색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거지로 살았던 세월은 그를 매우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시만자는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비가 올 것 같으니 서두르자. 늦으면 서원 앞이 마차로 가득찰 거야.”마차 옆에 서서 주변을 살펴보던 송석석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치마를 들어 올
부인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비에 젖은 머리카락과 옷이 그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듯 소매로 재빨리 얼굴을 가린 채 송석석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러자 송석석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감사 인사는 괜찮습니다. 다친 곳은 어떠십니까, 아프진 않으시지요?”“그다지... 아야!” 발을 약간 움직이던 부인은 날카로운 통증이 전해져 그만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발목을 삐신 것 같군요.” 송석석이 그녀를 부축하자, 시녀가 급히 다가왔다. 시녀의 손에는 피로 가득했다. 아마도 방금 넘어질 때 거친 바닥에 쓸려 상처가 난 것 같았다.송석석은 걱정되어 얼굴을 찌푸렸다. “바로 앞에 저희 마차가 있습니다. 그곳에 약과 연고가 있으니, 괜찮다면 나와 함께 가서 치료를 받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부인은 잠시 머뭇거렸다.“이것은... 너무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아직 부인이 누구신지도...”송석석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이석 부인, 나는 송석석입니다. 전에 만난 적이 있지요.”그 부인은 바로 금경루에서 왕청여를 도우려 했던 이석이었다. 송석석이 매산에서 돌아온 후, 어머니와 함께 선평후부를 방문한 적이 있었고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었다.이석은 그제야 얼굴을 가린 소매를 내리고 송석석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아, 왕비님이셨군요. 제가 실례를 범하였습니다.”“뒤에 마차가 오고 있으니 일단 제 마차로 갑시다.”이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폐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처치를 잘 알고 있었다. 과부로서 가장 두려운 것은 구설수이다. 만약 누군가가 이 초라한 모습을 본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시만자도 함께 와서 이석을 부축하는 것을 도와줬다. 시만자는 이석을 안아 들어 마차에 태웠다. 그러자 이석은 얼굴이 붉어지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정말 죄송합니다. 폐를 끼쳐드려서...”시녀도 송석석의 도움으로 마
향병의 행동에 장공주는 결심을 더욱 굳히고 그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고는 겉옷을 걸친 채로 의자에 앉아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내일 오후에 다시 협상을 재개할 것이니, 조건은 협상 가능하도록 하지요. 너무 고집부릴 필요는 없습니다.”수란석은 눈을 크게 뜨며 반발했다. “협상이라? 어떻게 협상한단 말이오? 설마 그들이 국경을 물러서라고 해도 그걸 가만히 받아들이란 말이오?”장공주는 이미 결심이 선 듯 단호하게 말했다. “국경 문제는 일단 보류할 것입니다. 내일이나 모레 협정을 체결하고 즉시 귀국하는 것이 목표지요.”“그건 안 되오…” 수란석이 강하게 반발하자 장공주는 그를 냉랭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의견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 결정이니 불만이 있어도 모두 삼가세요.”수란석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는 소리쳤다. “이건 독단이오! 국경 문제를 보류하면 황제와 조정의 문무백관들, 그리고 백성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이오?”장공주는 위엄 있는 눈빛으로 그를 단숨에 제압했다. “설명은 내가 하면 되지 수 상서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녀는 조정을 오랜 시간 이끌어온 인물로서 항상 권위와 기세가 넘쳤다. “당장 나가서 초안을 다시 작성하고 상국에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는 대신 국경 문제는 제외하십시오. 그리고 2년 후에 이 문제로 다시 협상하는 것으로 하지요. 나는 협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수란석은 이를 악물며 불만을 드러냈다. “나약하오, 정말 나약하오!” 그는 장공주가 서둘러 귀국하려는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 향병을 원망했다. “난 동의할 수 없소. 국경 문제는 분명히 해야 하오.”장공주는 화가 나 향로를 내던지며 강하게 명령했다. “당장 나가서 다시 작성하십시오.”한편, 북명황실의 의논 자리에서는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다. 단신의는 정좌에 앉았고 무소위조차도 그 옆에 앉아 있었다. 만종문의 구성원들은 세력을 등에 업고 몸을 꼿꼿이 세우며 잘난 척했다.그러자 단신의가 설명했다. “이번에 사용된
향병은 뺨을 맞은 얼굴을 가린채 억울함과 분노를 모두 토해냈다. “장공주님. 태자 전하께서 얼마나 비참하게 사망하셨는지 잊으셨습니까? 그건 우리 서경 백성들의 영원한 고통인데 어찌 원수를 갚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태자 전하는 장공주님의 친동생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모진 선택을 할 수가 있습니까?” 장공주가 움켜쥔 손바닥은 젖어 있었고 불빛에 비친 그녀의 창백한 얼굴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너는 내가 그를 위해 복수를 하지 않으려고 전쟁을 반대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장공주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눈빛에 노기로 가득 찼다. 그녀는 아직 허약하지만 손을 뻗어 향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향병, 다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내 모든 계획과 절차를 너에게 말했고, 내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나를 가장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이 복수에 눈이 멀어 정세를 조금도 파악하지 않다니. 넌 경역에게 충성을 다했으니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거라. 그가 지금 상국과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겠느냐?” 그러자 향병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복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도 지금 내우외환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식량 30만 석과 소성을 요구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으니까요. 장공주님, 저희는 지금 승리로 하늘에 계신 태자를 위로해야 합니다.” 장공주는 오열하는 향병을 보며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침통함을 느꼈다.그녀는 안운여와 곽아정을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희도 향병의 말에 동의하느냐? 뒤에서 나를 모해할 생각 하지 말고 이 참에 다 말하거라.” 곽아정과 안운여는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장공주님, 동의할 수 없습니다.” 향병은 고개를 돌려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안운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운여, 너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넌 전하의 보살핌을 잊었느냐? 복수할 생각이 전혀 없다니.”
단신의는 독충을 가져가지 않고 향로 안에 남겨두었는데 독충은 약의 피비린내를 탐내 평생 안에 있을 수 있지만 몸에서 꺼낸 독충은 오래 살 수 없었다. 그래서 단신의가 말했다. “바로 향로 안에 있으니 가져가서 장공주께 보여드리거라.” 독충은 작지만 무서운 존재라 금태의는 손을 뻗었다가 허공에서 멈추고 물었다. “이 독충이 다시 인체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까?” 평무종은 금태의가 감히 들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가가 향로를 들고 뚜껑을 열어 장공주에게 가져가 보여주었다. 독충을 본 장공주는 헛구역질을 하며 토할 뻔했다. 그녀는 한참동안 눈을 감고 있어서야 토하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았다. “반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독충은 죽을 것이오. 독충이 몸에서 나오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소.” 그러자 장공주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의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송석석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 “그러니 결국엔 누군가가 독을 탔다는 것이겠지?” 수란석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물었다. “자백할지 본관이 직접 조사할 때까지 기다릴지 결정하거라.” 장공주는 답답한 가슴을 누르며 힘없이 말했다. “작은 외삼촌, 먼저 나가십시오. 향병, 운여, 곽아정만 남고 모두 나가거라.” 그러자 수란석이 말했다. “냉옥아, 무리하지 말고 독을 탄 사람부터 밝혀내거라. 감히 네 목숨을 해치려 하다니 간덩이가 부었지.”그러자 냉옥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먼저 나가십시오. 채희야, 사람들을 배웅해드리거라.” 채희가 그들에게 나가라고 청하자 수란석는 채희를 보고 다시 향병을 보더니 역시 향병의 혐의가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 물어보고 못 찾으면 내가 직접 심문하러 가겠다.” 수란석은 말을 마치자마자 사람들을 데리고 나갔다. 장공주는 채희에게 등잔을 두 개 더 켜라고 분부했다. 등불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자 방금 이상할 정도로 붉었던 윤기는 물러가고 눈엔 피로밖에 남지 않았다. 장공주는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 앉았다
총 네 마리의 선충이 있었는데 마지막 두 마리의 선은 색깔이 조금 달랐다. 피를 빨아서인지 앞부분은 붉은색을 띠었고, 뒷부분은 옅은 붉은색이었다. 이때 단신의는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네 마리의 선충이 모두 피를 빨아들였다면 장공주는 살 수 없었을 것이오.” 그가 향로를 한쪽에 놓자 사람들은 모두 한 발짝씩 물러섰다. 그들은 본 적이 없는 선충에 겁을 잔뜩 먹었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서로 바라보더니 구역질이 나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향병은 놀라서 거의 서 있지 못하고 한 손으로 탁자를 받치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떨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신의는 담담하게 말했다. “조금 있으면 장공주가 깨어날 것이오. 금태의, 당신은 지금 가서 자공주가 아직 혈맥이 막혔는지 맥을 짚어보오.” 수란석은 멍하니 보고 있다가 금태의를 밀며 말했다. “가서 맥 짚어보거라.” 금태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맥을 짚어보더니 한참 후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심호흡을 했다. “이럴 수가? 맥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독충이 이렇게 많이 나온 걸 보면 변한 게 당연합니다.” 안운여는 침대 옆에 앉아 채희에게 따뜻한 물을 준비하라고 분부하고는 잠시 후 장공주가 깨어나면 따뜻한 물을 먹이라고 했다. 그러자 단신의가 말했다. “장공주에게 설탕 소금물을 준비하오.”그의 약상자에는 약이 아주 많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중 일부는 장공주가 복용하기에 적합했지만, 장공주가 깨어나기 전에는 주지 않을 것이었다. 장공주가 깨어나 그에게 치료를 부탁해야만 약을 처방할 것이었다. 채희는 서둘러 설탕 소금물을 준비했고, 당황한 나머지 발걸음이 흐트러져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는데 송석석이 부축하고 나서야 제대로 설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왕비님.” 채희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처음에 그들이 기회를 틈 타 소란을 일으킬까 봐 화장실에서 장공주의 일을 북명왕비에게 알린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들이 침입하는 모습을 보고 더욱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수란석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이 일은 그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도 향병의 문제를 발견했지만 향병이 무슨 짓을 했든 장공주가 협상에 참여할 수만 없다면 결정권은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에게는 전제가 있었는데 바로 냉옥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왜냐하면 냉옥은 그의 조카딸이기 때문이었다. 경역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냉옥은 그가 전쟁을 벌이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목숨만큼은 보호해야 했다.그가 이상한 건 냉옥의 심복이었던 향병이 왜 그녀를 배신했냐는 것이었다.‘혹시 전쟁을 지지하게 된 건가? 하지만 처음엔 분명 반대했는데. 냉옥을 죽게 하기는 싫고 여기서 포기하는 것도 싫은 것인가? 이건 그녀 혼자 한 일이 아닐 것이야. 그녀에게 냉옥을 배신하라고 지시한 사람이 있을 텐데 누구일까? 설마 황제는 아니겠지?’많은 의혹이 수란석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는 정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그는 회왕과 결탁했기 때문에 향병에게 문제가 있다고 추측한 것이었다. 향병이 줄곧 냉옥의 충실한 심복이었으니 다른 사람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수란석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평무종이 향병에게 말했다.“우리가 여기에 있는 한 독이 있으면 우리도 함께 중독될 것이다.”그러자 향병이 반박했다.“당신들이 독을 탔는데 무슨 해독제가 없습니까?”그러자 평무종이 물었다.“우리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 우리 상국 진성에서 당신들을 독살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이냐는 말이다.”사신들도 상국이 그렇게 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모두 금태의를 바라보았다. 금태의만 동의한다면 그들도 믿고 향을 피울 것이었다.금태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묘독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본 적도 없고 해독법도 몰랐다. 그리고 장공주가 구혼선충의 독에 중독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작은 것이 장공주를 깨울 수 있다는 것은 더욱 확신할 수 없었다.그들이 모두 말하지 않자 단신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장공주가
사신들은 금태의를 보고, 다시 단신의를 보더니 마음이 금태의에게로 기울은 듯했다. 단신의의 의술도 뛰어나 서경에서 명성이 자자했지만, 금태의는 장공주를 오랫동안 치료해 온 태의인 데다가 지극히 충성적이라 자연스럽게 그를 믿는 것 같았다. 평무종이 금태의의 말을 번역하자 단신의는 맥을 짚던 손을 떼고 평무종이게 말했다. “중독된 것이라고 알리거라.” “우리도 다 알아들으니 굳이 번역할 필요 없습니다.” 이때 고공이 급히 물었다. “장공주님께서 무슨 독에 중독된 것입니까?” 그러자 단신의는 송석석을 보았는데 송석석도 비주의 사건이 생각난듯 했다. 구혼선충의 독에 중독되었던 나약했던 부인이 힘이 세지고 발광했던 사건을 말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점은 그 부인은 성공적으로 조종되었고, 장공주는 혼수상태에 빠져서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인 것이었다. 금태의는 여전히 자신의 견해를 주장했다. “장공주는 원래 몸이 허약한 데다 두통 고질병까지 있습니다. 혈기와 혈맥이 막히고 두통이 심한 것으로 보아 머리에 혹이 생긴 것이 틀림없습니다.” 평무종이 금태의의 말을 단신의에게 전하자 단신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머릿속에 혹이 난 건 아니지만 혈맥이 막힌 것은 맞소. 그건 장공주의 머릿속에 독충이 있어서 그런 것이기 때문인데 내가 중독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 건 독충도 독이지만 사람에게 중독되었다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었소. 독충은 중독자의 심신을 방해해서 두통을 악화시킬 뿐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머릿속에 있으면 생명에 위험이 있을 수도 있소.” “그럴 리가 없습니다…!” 향병은 손수건을 집어 들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단신의를 노려보며 상국어로 욕설을 퍼부었다. “독충은 무슨, 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장공주의 생명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니요? 내가 보기엔 당신은 그저 돌팔이 의사인 것 같은데 감히 신의라고 자칭하다니. 황당하기 그지없군요.” 단신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봐 온 덕분에 한눈에 향병이 무언가를 들킬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향병은 침실로 들어가 장공주의 커튼이 걷어진 것을 보고 얼굴을 붉히며 안운여를 꾸짖기 시작했다. “어떻게 외간 남자에게 장공주가 자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 그녀는 앞으로 가서 커튼을 내리고 단신의를 쫓아내려고 했지만 안운여에게 가로막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진단해 봅시다.” “안운여! 너 너무 건방진 것 아니냐?” 향병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노호했다. 안운여는 출신이 좋지 않은 데다 관직도 그녀보다 높지 않아 잠깐 망설이다가 확고하게 말했다. “장공주님의 옥체보다 더 종요한 건 없습니다. 장공주님께서는 이미 두 시간이 넘도록 혼미했으니 당장이라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옥체에 큰 해가 될 것입니다.” 여관인 곽아정도 안운여를 지지했다. “온 김에 진단을 받아보겠다는 것인데 넌 왜 계속 반대를 하는 것이냐? 내가 보기엔 넌 장공주를 걱정하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러자 향병이 다짜고짜 소리쳤다. “헛소리하지 마. 내가 장공주를 걱정하지 않는다니? 상국인들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잊었어? 그들이 마을 백성들을 학살한 일을 잊었냔 말이야!” 평무종은 그들의 대화를 듣더니 즉시 서경어로 반격했다. “백성들을 학살한 것은 바로 이방이다. 그것 때문에 모든 상국인들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너희 서경의 정찰이 송 씨 가문을 도륙했는데, 그럼 모든 서경인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냐?” 대학사 고공은 상황을 보더니 얼른 말했다. “장공주의 옥체가 중요하니 다들 그만합시다. 금 태의도 장공주가 왜 혼미에 빠졌는지 알아내지 못했으니 단신의에게 진단을 받아봅시다.” 그러자 홍려사경도 말했다. “그래, 그래. 이왕 들어왔으니 맥을 짚어 일단 중독의 가능성을 배제해야 한다.” 이때 금태의가 말했다. “장공주님께선 중독되지 않으셨습니다.” 향병은 단신의의 얼글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금 태의의 말을 그냥 믿기로 했다. 한편, 송석석과 시만자는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향병은 비록 중요한 여관은 아니었지만 장공주의 믿음을 얻었고 방금도 그녀가 극구 반대를 해서 원래 지지하던 사람들까지도 따라서 반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홍려사경을 비롯한 두 세 사람은 여전히 상국의 단신의를 청하는 것을 지지했다. 단신의의 명성은 서경에까지 퍼졌다. 애초에 선제의 병이 위독했을 때 조정의 신하도 단신의에게 치료를 청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선제는 스스로 상국인의 손에 목숨을 맡기기 싫다며 결국엔 포기했다. 그들은 또다시 말다툼을 벌였는데 송석석과 평무종은 상황을 보더니 단신의를 모시고 곧장 동원으로 달려갔다. “막아라!!” 향병이 소리쳤다. “저기요, 내 말 좀 들어보십시오……” 시만자는 서둘러 앞으로 다가가 향병의 손을 잡고 애원했다. “우리도 장공주님을 위해서 이러는 것입니다. 장공주님의 시녀가 옆에 있으니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몽동이도 수란석을 가로막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저 맥만 짚어보는 것입니다. 당신들의 태의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얼른 들어가서 지켜보라고 하십시오.” 태의는 진작에 뛰어 들어갔다. 비록 장공주의 곁에는 두 명의 의사가 간호하고 있었지만 상국의 사람이 들어가자 태의는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바로 따라 들어갔다. “놔, 이거 놔주십시오.” 향병은 시만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것입니까? 날 해치려는 것입니까?” 그러자 시만자는 그녀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런 게 아닙니다. 들어가려는 거면 같이 들어가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몽동이도 말을 덧붙였다. “맞습니다. 다 같이 들어갑시다! 모두들 장공주의 건강을 위해서 이러는 것이니 같이 들어갑시다.” 경위들도 송 대인이 손찌검을 하지 말라고 분부해서 밀치락달치락 하며 공격을 어깨로 되받아 칠 수밖에 없었다.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혼란스러웠지만 몽동이가 수란석을 잡고 있기 때문에 시만자는 힘껏 향병의 손을 잡고 동원 쪽으로 움직였다.
잠시 후, 평무종이 회동관 입구에 나타났는데, 혼자 온 게 아닌 것 같았다.방금 송석석이 그녀를 보았을 땐 야행복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평범한 복장을 입고 있었고 야행복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사저, 무슨 상황입니까?”송석석은 얼른 마중 나가서 물었다.그러자 평무종이 답했다.“내가 장공주 방의 옥상에서 잠깐 들었는데 장공주가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더라고.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시녀 몇 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장공주가 미친 듯이 발광하다가 사람까지 물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하더군.”시만자는 의아해서 물었다.“미친 듯이 사람을 물었다고요? 설마 정신이 이상해진 건 아니겠지요?”이때 송석석이 다시 물었다.“혹시 정원에서 들었습니까? 그들이 뭐라고 하던가요?”“그들이 정원에서 다투고 있었는데 태의나 단백부를 모시러 가자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어. 하지만 난 옥상에서만 듣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하고 지지하던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그럼 신의를 모시러 간다는 의견에 반대하던 사람 중 여자의 목소리가 있었습니까?”“있었다.”평무종이 몽동이를 만났을 때 이미 여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향병은 아니었다.”“반대하던 사람이 많았습니까?”“서너 명인 것 같았는데 그들도 침착하게 분석할 뿐이지, 무작정 반대했던 건 아니다. 유독 한 여자의 반대가 심했는데 그녀는 우리 상국의 태의와 의사들은 그들이 수행하는 어의보다 못하며 가해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지.”“그러니까 그녀를 따라 반대하던 사람들은 장공주가 자신들 때문에 문제가 생겨 책임을 질까 봐 걱정하는 것이었군요.”평무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다고 할 수 있지.”그러자 송석석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그럼 쳐들어갑시다!”이때 몽동이가 걱정하며 말했다. “왕야님께 알려서 결정지으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아니, 이건 내 개인적인 결정이지 왕야와는 상관없는 일이야.”송석석은 밤을 지키고 있는 경위를 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