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는 명록서원 북쪽 모퉁이에 멈췄고, 선평후부의 마차가 길이 막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 뒤를 따랐다.. 비는 점점 굵어지고 사람들은 점점 많아졌다. 이석이 발이 다친 상태라 지금 마차에서 내릴 수 없었기에, 아이들을 서원에 보내러 온 마차들이 점차 떠나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송석석은 이석이 아들을 입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들의 나이는 잘 몰랐다. “아드님을 서원에 보내러 오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오늘이 그의 첫 수업 날이기에 제가 그를 데려다주러 왔습니다.”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이석의 얼굴에 비로소 옅은 미소가 번지며 훨씬자연스러워졌다. “몇 살입니까? 이름은 무엇인지요?” “이제 막 일곱 살이 되었고, 이름은 장위국이라 합니다.” 그러자 시만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름을 듣자마자 장군의 자손임을 알 수 있군요.” 이석의 얼굴에 잠시 그리움이 스쳤고, 눈에는 쓰라림이 담겼다.그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남편께서 아들이 생긴다면 나라를 지키는 이름을 짓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군요.” 시만자는 그 주제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하고 화제를 돌렸다. “부인 시녀 손이 다쳤군요. 제가 대신 머리카락을 정리해 드릴까요?” “아니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이석 부인은 급히 손사래를 쳤지만, 시만자는 이미 그녀의 머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러자 그녀는 웃음 띠고 말했다. “제가 대충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머리 손질은 꽤 잘한답니다.” 이석 부인은 더 이상 막을 수 없어서 다시 한번 송구스럽다는 말을 반복했다. 송석석은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집안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은 저도 조카를 서원에 보내러 왔습니다. 그 아이도 오늘이 첫 수업 날이에요.” 명록서원은 매년 입학 인원이 제한되어 있었기에 새로 들어온 학생들은 한 반에 배정될 것이다.“송서우 말씀이시군요?” 이석은 서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참 잘됐습니다.” 송석석은
송석석은 시만자를 불러 이석을 등에 업은 후, 빠르게 마차로 돌아갔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반드시 찾아드리겠습니다.” 이석은 온몸을 떨며 눈물인지 비인지 모를 물기로 얼굴을 적신 채 입술을 떨며 더 간절히 부탁했다. “제발, 제발 꼭 찾아주세요.” 그러자 송석석은 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내려오지 마세요! 당신의 몸부터 돌봐야 합니다. 안 그러면 그분의 영혼이 편치 않으실 겁니다.” 이석은 얼굴을 가리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송석석은 마부에게 그녀를 잘 돌보라고 부탁한 후, 다시 귀걸이를 찾으러 갔다.반 시간이 흐르고 마차들이 하나둘씩 떠나갔지만,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고, 하늘은 음산하게 어두워졌다. 선평후부의 마부를 포함한 네 명이 허리가 아플 정도로 찾아봤지만, 귀걸이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포기하려던 그때, 송석석이 서원 문 가까이에 빛나고 있는 물체를 발견했다.바로 이석의 진주 귀걸이였다! 귀걸이는 이미 훼손되어 있었고, 귀걸이를 지탱하던 금선과 금잎은 사라진 채 진주만 남아 있었다.귀걸이를 발견한 곳은 이석이 넘어졌던 장소가 아니었다. 아마 마차에 깔린 후 사람들에 의해 여기로 차여 진 것 같았다. 근처를 조금 더 찾아보던 송석석이 얇은 금잎 하나를 발견했지만 나머지는 끝내 찾지 못했다. 모두가 흠뻑 젖은 채로 마차에 돌아왔고 송석석은 진주와 금잎을 이석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손에 꼭 쥔 이석은 송석석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송석석은 이석을 일으키며 그녀가 자신의 어깨에 기댈 수 있도록 했다. 그녀의 뜨거운 눈물이 송석석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잠시 후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이석은 이미 감정을 억누르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다. 빠르게 평정을 되찾은 그녀는 눈물을 닦은 뒤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고, 눈에는 아직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입술은 애써 미소를 띠려 노력하고 있었다.“저는 그의 흔적마저도 찾지 못할까 두려웠습니다… 이제 찾게
전북망은 금비녀 하나를 사서 상자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인들에게 전소환이 어머니 방에 있다는 것을 알고 곧장 어머니 방으로 향했다.전소환은 여전히 보석 상자를 안고 있었고, 전북망이 들어오자마자 경계심을 드러내며 물었다."오라버니는 오늘 당직이 아닙니까? 왜 돌아오셨습니까?"전북망은 상자를 건네며 차분하게 말했다. "이거 받아라. 사 온 비녀다."전소환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상자를 받아 들고 물었다. "왜 저에게 비녀를 주시는 겁니까? 무슨 의도입니까?"그녀는 최근 며칠간 전북망이 그녀에게 그 머리 장식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던 것이 떠올라 두려워져 보석 상자를 더욱 꽉 쥐었다. 그런데 왜 지금 와서 비녀를 선물한다니?“혼수에 보태거라. 그리고 요즘 어머니를 돌보느라 수고하지 않았더냐?... 그러니 어서 받거라.”전북망은 몸을 돌려 침상에 누워있는 어머니에게 물었다."어머니, 오늘은 좀 어떠십니까?"전노부인은 아들의 행동에 다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네 동생이 나를 잘 돌봐주긴 했다. 오늘은 몸이 조금 나아진 것 같구나. 내일쯤이면 일어나 걸을 수 있을 것 같다."그러자 전북망은 어머니를 부축했다."어머니, 제가 부축해 드릴 테니 일어나서 한번 걸어보시지요."전소환은 그제야 안심한 듯 비녀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 안에는 금비녀가 들어 있었고, 제법 묵직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금경루의 비녀가 아니었고 금루의 물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약간 실망했지만, 금으로 만든 것이라 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받아들였다.그리고 얼굴을 들어 전북망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오라버니.""어울리는지 한 번 보게, 어서 써 보거라."그는 어머니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그런데 전소환이 어머니의 화장대 앞으로 다가간 순간, 전노부인이 놀라며 소리쳤다. “둘째야, 이게 대체 무슨 짓이느냐?"전소환이 돌아보니, 전북망은 어머니를 부축하는 대신, 그녀의 홍보석 머리 장식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가 다급히 말했다
전북망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하인들과 시녀들이 겨우 그녀들을 떼어놓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매우 처참한 상태였다. 머리는 흐트러져 있고, 옷은 찢어졌으며 얼굴에는 손톱자국과 뺨 자국이 가득했다. 그 모습은 마치 시장바닥의 닭싸움을 보는 것과도 같았다.전노부인은 의자에 앉아 헐떡이며 왕청여를 노려보았다. "소환이는 곧 출가할 몸인데, 이렇게 얼굴을 상처를 입혔으니 어떻게 사람들 앞에 서란 말이냐?!"왕청여는 바닥에 앉아 울부짖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전북망은 빠르게 들어가 왕청여를 일으켜 세우고 은표 한 묶음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홍보석 머리 장식은 환불받았으니 이 은표를 받으시오.""둘째야, 너 드디어 미친 것이냐?" 전노부인은 분노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구입한 보석을 다시 환불받으며 우리 장군부의 체면이 뭐가 되겠느냐?""돌려주세요. 저는 물리고 싶지 않단 말입니다." 전소환은 울부짖으며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모습은 보기 흉할 정도였다.전북망은 그녀의 주먹질을 묵묵히 받아낼 뿐 미동도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냉담한 표정이 서려 있었고, 이런 날들이 너무 지긋지긋했다.은표를 들고 멍하니 서 있는 왕청여는 울음마저 잊어버린 뒤였다.전북망을 때리던 전소환은 왕청여에게 달려들어 은표를 빼앗으려 했다.왕청여는 급히 은표를 숨기며 뒤로 물러났다. "대체 뭐 하는 것이냐?!""그건 네가 나에게 사준 거잖아! 네가 원해서 산 건데 대체 왜 그래." 전소환이 울부짖으며 악을 썼다."이제 생각이 바뀌었어." 왕청여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녀가 홍보석 머리 장식을 산 것을 후회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후회하는 건지, 그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다.그러나 그녀가 원했던 것은 이런 삶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장군부는 썩어 문드러진 채소 단지와 같았고, 그녀는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그러나 이 혼인은 그녀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당시 목 씨 부인이 중매를 섰고 그 속에
전북망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는 정말 당신이 녹분성에서 그런 일들을 하지 않았다고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소."그러자 이방이 냉소하며 대꾸했다. "당신이 저를 싫어하는 이유가 녹분성 때문입니까? 아니, 당신은 내가 시몬에 포로로 잡혀 얼굴이 망가져서 저를 거부하는 겁니다. 내가 더럽다고 여기는 거겠지요. 하지만 나는 깨끗합니다."전북망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시몬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아픈 것뿐이오. 그래서 내가 대신 벌을 받았던 거요.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신이 녹분성에서 저지른 행동들이오.""자기 자신을 속이려 하지 마세요.”이방은 여전히 말투가 차갑고 냉정했다. “제가 녹분성에서 한 일들이 정말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까?""당신은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소?" 전북망이 숨을 깊게 들이쉬며 물었다. "어떻게 지금까지도 당산은 잘못을 뉘우치지 않을 수 있소?"얼굴을 가리지 않은 이방은 등잔불 아래 더욱 흉측하게 보였다. 그녀의 눈에는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고 그 속에 섬뜩한 야망이 드러나 있었다."전북망, 당신만 공을 세우고 싶어 하는 게 아닙니다. 저도 미치도록 원하고 있지요. 저는 이 나라 최초의 여장군이고 비록 송석석이 남강에서 공적을 세웠다 해도 제 위치는 대신할 수 없지요. 그것은 제가 녹분성에서 쌓은 공적이고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지위를 확립할 수 있었겠어요?"그녀가 비녀를 뽑아 심지를 높이자, 등불이 그녀의 흉측한 얼굴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당신은 장군들이 잔인한 짓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 없습니다. 송회안이 어린 나이에 진북후가 된 것이 단지 그의 용맹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그 속에는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어두운 면들이 숨어있습니다. 당신 같이 바보들이 목숨을 걸고 전공을 세우려 하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한들 결코 왕표 같은 인물이 될 수 없습니다."전북망은
하지만 전북망은 단호했다. “설령 그들이 서경의 사람일지라도 그들 역시 평민이오. 우리는 평민을 해치지 않기로 약속했소. 그것은 상위자가 백성들이게 한 약속이자, 두 나라의 백성들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었소. 마을을 학살하면서 성릉관 백성들도 똑같이 학살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소?”냉소를 짓고 있는 이방의 눈빛에는 조롱이 가득했다.“당신은 장군이면서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까…? 전북망, 당신은 마음이 약하고, 결단력도 없어 전쟁터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날 제가 없었다면, 당신이 공을 세울 수 있었겠습니까? 심지어 소대장 앞에서 녹분성에 가서 곡물을 태우자고 했던 것도 제가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 공로조차 없었을 겁니다.”“당신이 공을 세울 수 있었던 건 제가 공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제가 조약을 체결했고, 당신이 원군의 주장으로 제 공을 대신 받았으면서 이제 와서 저를 비난하는 겁니까? 자신이 비열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그녀의 경멀 어린 말투는 전북망의 자존심을 완전히 짓밟아버렸다.전북망은 그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라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 할 말 없지요?” 이방은 마치 드디어 억울함이 풀린 듯한 모습으로 온갖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전북망, 제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당신도 잘 알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저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요? 저는 한창 승승장구하고 있었지만 당신과의 결혼을 결심했고 당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도 떠나지 않고 곁에 지켰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혼한 후 왕청여를 다시 맞아들였습니다.”“당신은 송석석을 저버렸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당신이 배신한 사람은 바로 접니다.”가벼운 그녀의 한마디였지만 그 속에는 깊은 한과 억울함이 담겨 있었다. 이윽고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황제가 내린 혼인이었기에 저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철저히 계획했습니다. 송석석은 당신을 위해 무엇을 주었지요? 우리가 결
전북망은 가림막을 들고 이방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발걸음이 가벼워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고 바깥에서도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잠시 후 그는 문을 열고 재빨리 문 뒤에 숨었다.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빠르게 고개를 내밀어 힐끗 보았는데, 그저 한 번 보았을 뿐인데 온몸이 굳어 버리는 것 같았다.복도 앞 불빛이 계단을 비추고 있어서 잘 보였는데, 그 곳에는 이방의 시중을 들던 시녀 세 명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모두 검으로 단번에 숨통이 끊어져 소리를 칠 겨를도 없는 듯했다.피가 돌계단을 따라 흘러 계단은 온통 새빨갛게 물들었다.그러자 전북망은 문득 송가의 멸문이 떠올라 울적해졌다."아버지와 어머니..."전북망이 막 뛰어나가려고 하자 이방이 막았다. 이방의 얼굴 또한 창백했고 입술도 조금 떨리고 있었다."아마도, 나를 겨냥한듯 하옵니다."전북망은 단숨에 알아차렸다. 서경 첩자가 그녀에게 복수를 하려는 가능성도 있었다. 이방은 방금까지도 자신의 행동이 바르다고 말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다 변명같이 느껴졌다. 방금까지 당당하게 변명하던 이방도 지금은 두려움에 떨고 있자 전북망은 자기라도 정신을 차려야 겠다며 얼굴을 때렸다. 그때, 어두운 그림자 네 개가 조용히 정원에 드리워졌다. 그들은 모두 검은 옷차림을 하고 얼굴을 가린 채 싸늘한 눈동자만 드러냈다.네 사람은 각자 검을 쥐고 있었는데, 검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고 짙은 피비린내와 살기를 풍겼다. 그 모습을 본 이방의 손이 살짝 떨려왔다.바로 그 순간 그들이 동시에 공격을 했다. 전북망과 이방은 빠르게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한 사람은 문을 잠그고 한 사람은 초를 꺼 순식간에 방 안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두 사람은 서로 등을 맞대고 검을 든 채 경계 태세를 취했다. 검의 빛이 두 사람의 날카로운 눈빛을 밝혔다.전북망은 귀경하자마자 바로 경위에 들어갔었다. 게다가 일반 경위 자리로 폄하되어 순번을 시작했다. 순번으로 단련된 효과는 아
왕청여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검을 든 자객들이 이미 안으로 침입해 버렸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며 쫓아온 듯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쥐고 있었다.왕청여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돌려 문을 세게 두드렸다.몸을 피할곳이 이곳밖에 없었다. "이방, 문을 열거라! 어서 문을 열거라!"오월과 유월은 왕청여를 지키려 자객을 가로막으며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멈추거라...!"하지만 자객은 검을 휘둘렀고 오월과 유월은 목덜미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목에서는 피가 주르륵 훌렀다. 칼에 베인 것이다! 그들이 단번에 숨통을 끊어 두 사람은 소리도 못 내고 바로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그 모습을 본 왕청여는 겁에 질려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울부짖었다."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자객은 이미 왕청여를 향해 검을 뻗었고, 휘두르려는 바로 그때, 전북망이 나타나 자객을 걷어차고 왕청여를 보호했다. "들어가서 숨어있소!"전북망은 상대하기 어려운 적을 만난 듯 왕청여를 살짝 밀었다.그러자 왕청여가 울먹이며 답했다."이방이 문을 잠가 못 들어가옵니다…."전북방은 문을 걷어찼지만 끄덕하지 않아 싸우면서 큰 목소리로 연신 외쳤다. "이방, 문을 여시오!"이방은 굳은 표정으로 검을 쥔 채 손을 떨고 있었다. 그녀는 전북망의 말을 무시한 채 문을 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 사이 전북망의 상황도 그리 좋지 않았다. 이미 칼에 맞아 황급히 몸을 피하기 바빴다. 그의 무예가 경위에서 늘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었다.그는 자객을 사람이 없는 정원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자객은 이방만을 노리고 있어 힘들었다. 세 사람은 문을 부수고 있었고 전북망은 한 사람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왕청여는 그 모습에 놀란 나머지 기절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기어가다시피 구석으로 가서 간신히 숨는것에 성공했다. 마침 장군부의 호위가 도착했지만 장군부는 사정이 좋지 않아 호위가 그리 많지 않았다. 심지어 호위 몇 명
향병의 행동에 장공주는 결심을 더욱 굳히고 그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고는 겉옷을 걸친 채로 의자에 앉아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내일 오후에 다시 협상을 재개할 것이니, 조건은 협상 가능하도록 하지요. 너무 고집부릴 필요는 없습니다.”수란석은 눈을 크게 뜨며 반발했다. “협상이라? 어떻게 협상한단 말이오? 설마 그들이 국경을 물러서라고 해도 그걸 가만히 받아들이란 말이오?”장공주는 이미 결심이 선 듯 단호하게 말했다. “국경 문제는 일단 보류할 것입니다. 내일이나 모레 협정을 체결하고 즉시 귀국하는 것이 목표지요.”“그건 안 되오…” 수란석이 강하게 반발하자 장공주는 그를 냉랭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의견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 결정이니 불만이 있어도 모두 삼가세요.”수란석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는 소리쳤다. “이건 독단이오! 국경 문제를 보류하면 황제와 조정의 문무백관들, 그리고 백성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이오?”장공주는 위엄 있는 눈빛으로 그를 단숨에 제압했다. “설명은 내가 하면 되지 수 상서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녀는 조정을 오랜 시간 이끌어온 인물로서 항상 권위와 기세가 넘쳤다. “당장 나가서 초안을 다시 작성하고 상국에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는 대신 국경 문제는 제외하십시오. 그리고 2년 후에 이 문제로 다시 협상하는 것으로 하지요. 나는 협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수란석은 이를 악물며 불만을 드러냈다. “나약하오, 정말 나약하오!” 그는 장공주가 서둘러 귀국하려는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 향병을 원망했다. “난 동의할 수 없소. 국경 문제는 분명히 해야 하오.”장공주는 화가 나 향로를 내던지며 강하게 명령했다. “당장 나가서 다시 작성하십시오.”한편, 북명황실의 의논 자리에서는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다. 단신의는 정좌에 앉았고 무소위조차도 그 옆에 앉아 있었다. 만종문의 구성원들은 세력을 등에 업고 몸을 꼿꼿이 세우며 잘난 척했다.그러자 단신의가 설명했다. “이번에 사용된
향병은 뺨을 맞은 얼굴을 가린채 억울함과 분노를 모두 토해냈다. “장공주님. 태자 전하께서 얼마나 비참하게 사망하셨는지 잊으셨습니까? 그건 우리 서경 백성들의 영원한 고통인데 어찌 원수를 갚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태자 전하는 장공주님의 친동생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모진 선택을 할 수가 있습니까?” 장공주가 움켜쥔 손바닥은 젖어 있었고 불빛에 비친 그녀의 창백한 얼굴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너는 내가 그를 위해 복수를 하지 않으려고 전쟁을 반대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장공주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눈빛에 노기로 가득 찼다. 그녀는 아직 허약하지만 손을 뻗어 향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향병, 다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내 모든 계획과 절차를 너에게 말했고, 내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나를 가장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이 복수에 눈이 멀어 정세를 조금도 파악하지 않다니. 넌 경역에게 충성을 다했으니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거라. 그가 지금 상국과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겠느냐?” 그러자 향병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복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도 지금 내우외환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식량 30만 석과 소성을 요구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으니까요. 장공주님, 저희는 지금 승리로 하늘에 계신 태자를 위로해야 합니다.” 장공주는 오열하는 향병을 보며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침통함을 느꼈다.그녀는 안운여와 곽아정을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희도 향병의 말에 동의하느냐? 뒤에서 나를 모해할 생각 하지 말고 이 참에 다 말하거라.” 곽아정과 안운여는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장공주님, 동의할 수 없습니다.” 향병은 고개를 돌려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안운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운여, 너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넌 전하의 보살핌을 잊었느냐? 복수할 생각이 전혀 없다니.”
단신의는 독충을 가져가지 않고 향로 안에 남겨두었는데 독충은 약의 피비린내를 탐내 평생 안에 있을 수 있지만 몸에서 꺼낸 독충은 오래 살 수 없었다. 그래서 단신의가 말했다. “바로 향로 안에 있으니 가져가서 장공주께 보여드리거라.” 독충은 작지만 무서운 존재라 금태의는 손을 뻗었다가 허공에서 멈추고 물었다. “이 독충이 다시 인체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까?” 평무종은 금태의가 감히 들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가가 향로를 들고 뚜껑을 열어 장공주에게 가져가 보여주었다. 독충을 본 장공주는 헛구역질을 하며 토할 뻔했다. 그녀는 한참동안 눈을 감고 있어서야 토하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았다. “반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독충은 죽을 것이오. 독충이 몸에서 나오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소.” 그러자 장공주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의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송석석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 “그러니 결국엔 누군가가 독을 탔다는 것이겠지?” 수란석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물었다. “자백할지 본관이 직접 조사할 때까지 기다릴지 결정하거라.” 장공주는 답답한 가슴을 누르며 힘없이 말했다. “작은 외삼촌, 먼저 나가십시오. 향병, 운여, 곽아정만 남고 모두 나가거라.” 그러자 수란석이 말했다. “냉옥아, 무리하지 말고 독을 탄 사람부터 밝혀내거라. 감히 네 목숨을 해치려 하다니 간덩이가 부었지.”그러자 냉옥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먼저 나가십시오. 채희야, 사람들을 배웅해드리거라.” 채희가 그들에게 나가라고 청하자 수란석는 채희를 보고 다시 향병을 보더니 역시 향병의 혐의가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 물어보고 못 찾으면 내가 직접 심문하러 가겠다.” 수란석은 말을 마치자마자 사람들을 데리고 나갔다. 장공주는 채희에게 등잔을 두 개 더 켜라고 분부했다. 등불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자 방금 이상할 정도로 붉었던 윤기는 물러가고 눈엔 피로밖에 남지 않았다. 장공주는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 앉았다
총 네 마리의 선충이 있었는데 마지막 두 마리의 선은 색깔이 조금 달랐다. 피를 빨아서인지 앞부분은 붉은색을 띠었고, 뒷부분은 옅은 붉은색이었다. 이때 단신의는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네 마리의 선충이 모두 피를 빨아들였다면 장공주는 살 수 없었을 것이오.” 그가 향로를 한쪽에 놓자 사람들은 모두 한 발짝씩 물러섰다. 그들은 본 적이 없는 선충에 겁을 잔뜩 먹었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서로 바라보더니 구역질이 나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향병은 놀라서 거의 서 있지 못하고 한 손으로 탁자를 받치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떨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신의는 담담하게 말했다. “조금 있으면 장공주가 깨어날 것이오. 금태의, 당신은 지금 가서 자공주가 아직 혈맥이 막혔는지 맥을 짚어보오.” 수란석은 멍하니 보고 있다가 금태의를 밀며 말했다. “가서 맥 짚어보거라.” 금태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맥을 짚어보더니 한참 후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심호흡을 했다. “이럴 수가? 맥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독충이 이렇게 많이 나온 걸 보면 변한 게 당연합니다.” 안운여는 침대 옆에 앉아 채희에게 따뜻한 물을 준비하라고 분부하고는 잠시 후 장공주가 깨어나면 따뜻한 물을 먹이라고 했다. 그러자 단신의가 말했다. “장공주에게 설탕 소금물을 준비하오.”그의 약상자에는 약이 아주 많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중 일부는 장공주가 복용하기에 적합했지만, 장공주가 깨어나기 전에는 주지 않을 것이었다. 장공주가 깨어나 그에게 치료를 부탁해야만 약을 처방할 것이었다. 채희는 서둘러 설탕 소금물을 준비했고, 당황한 나머지 발걸음이 흐트러져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는데 송석석이 부축하고 나서야 제대로 설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왕비님.” 채희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처음에 그들이 기회를 틈 타 소란을 일으킬까 봐 화장실에서 장공주의 일을 북명왕비에게 알린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들이 침입하는 모습을 보고 더욱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수란석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이 일은 그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도 향병의 문제를 발견했지만 향병이 무슨 짓을 했든 장공주가 협상에 참여할 수만 없다면 결정권은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에게는 전제가 있었는데 바로 냉옥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왜냐하면 냉옥은 그의 조카딸이기 때문이었다. 경역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냉옥은 그가 전쟁을 벌이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목숨만큼은 보호해야 했다.그가 이상한 건 냉옥의 심복이었던 향병이 왜 그녀를 배신했냐는 것이었다.‘혹시 전쟁을 지지하게 된 건가? 하지만 처음엔 분명 반대했는데. 냉옥을 죽게 하기는 싫고 여기서 포기하는 것도 싫은 것인가? 이건 그녀 혼자 한 일이 아닐 것이야. 그녀에게 냉옥을 배신하라고 지시한 사람이 있을 텐데 누구일까? 설마 황제는 아니겠지?’많은 의혹이 수란석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는 정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그는 회왕과 결탁했기 때문에 향병에게 문제가 있다고 추측한 것이었다. 향병이 줄곧 냉옥의 충실한 심복이었으니 다른 사람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수란석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평무종이 향병에게 말했다.“우리가 여기에 있는 한 독이 있으면 우리도 함께 중독될 것이다.”그러자 향병이 반박했다.“당신들이 독을 탔는데 무슨 해독제가 없습니까?”그러자 평무종이 물었다.“우리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 우리 상국 진성에서 당신들을 독살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이냐는 말이다.”사신들도 상국이 그렇게 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모두 금태의를 바라보았다. 금태의만 동의한다면 그들도 믿고 향을 피울 것이었다.금태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묘독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본 적도 없고 해독법도 몰랐다. 그리고 장공주가 구혼선충의 독에 중독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작은 것이 장공주를 깨울 수 있다는 것은 더욱 확신할 수 없었다.그들이 모두 말하지 않자 단신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장공주가
사신들은 금태의를 보고, 다시 단신의를 보더니 마음이 금태의에게로 기울은 듯했다. 단신의의 의술도 뛰어나 서경에서 명성이 자자했지만, 금태의는 장공주를 오랫동안 치료해 온 태의인 데다가 지극히 충성적이라 자연스럽게 그를 믿는 것 같았다. 평무종이 금태의의 말을 번역하자 단신의는 맥을 짚던 손을 떼고 평무종이게 말했다. “중독된 것이라고 알리거라.” “우리도 다 알아들으니 굳이 번역할 필요 없습니다.” 이때 고공이 급히 물었다. “장공주님께서 무슨 독에 중독된 것입니까?” 그러자 단신의는 송석석을 보았는데 송석석도 비주의 사건이 생각난듯 했다. 구혼선충의 독에 중독되었던 나약했던 부인이 힘이 세지고 발광했던 사건을 말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점은 그 부인은 성공적으로 조종되었고, 장공주는 혼수상태에 빠져서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인 것이었다. 금태의는 여전히 자신의 견해를 주장했다. “장공주는 원래 몸이 허약한 데다 두통 고질병까지 있습니다. 혈기와 혈맥이 막히고 두통이 심한 것으로 보아 머리에 혹이 생긴 것이 틀림없습니다.” 평무종이 금태의의 말을 단신의에게 전하자 단신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머릿속에 혹이 난 건 아니지만 혈맥이 막힌 것은 맞소. 그건 장공주의 머릿속에 독충이 있어서 그런 것이기 때문인데 내가 중독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 건 독충도 독이지만 사람에게 중독되었다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었소. 독충은 중독자의 심신을 방해해서 두통을 악화시킬 뿐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머릿속에 있으면 생명에 위험이 있을 수도 있소.” “그럴 리가 없습니다…!” 향병은 손수건을 집어 들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단신의를 노려보며 상국어로 욕설을 퍼부었다. “독충은 무슨, 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장공주의 생명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니요? 내가 보기엔 당신은 그저 돌팔이 의사인 것 같은데 감히 신의라고 자칭하다니. 황당하기 그지없군요.” 단신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봐 온 덕분에 한눈에 향병이 무언가를 들킬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향병은 침실로 들어가 장공주의 커튼이 걷어진 것을 보고 얼굴을 붉히며 안운여를 꾸짖기 시작했다. “어떻게 외간 남자에게 장공주가 자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 그녀는 앞으로 가서 커튼을 내리고 단신의를 쫓아내려고 했지만 안운여에게 가로막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진단해 봅시다.” “안운여! 너 너무 건방진 것 아니냐?” 향병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노호했다. 안운여는 출신이 좋지 않은 데다 관직도 그녀보다 높지 않아 잠깐 망설이다가 확고하게 말했다. “장공주님의 옥체보다 더 종요한 건 없습니다. 장공주님께서는 이미 두 시간이 넘도록 혼미했으니 당장이라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옥체에 큰 해가 될 것입니다.” 여관인 곽아정도 안운여를 지지했다. “온 김에 진단을 받아보겠다는 것인데 넌 왜 계속 반대를 하는 것이냐? 내가 보기엔 넌 장공주를 걱정하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러자 향병이 다짜고짜 소리쳤다. “헛소리하지 마. 내가 장공주를 걱정하지 않는다니? 상국인들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잊었어? 그들이 마을 백성들을 학살한 일을 잊었냔 말이야!” 평무종은 그들의 대화를 듣더니 즉시 서경어로 반격했다. “백성들을 학살한 것은 바로 이방이다. 그것 때문에 모든 상국인들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너희 서경의 정찰이 송 씨 가문을 도륙했는데, 그럼 모든 서경인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냐?” 대학사 고공은 상황을 보더니 얼른 말했다. “장공주의 옥체가 중요하니 다들 그만합시다. 금 태의도 장공주가 왜 혼미에 빠졌는지 알아내지 못했으니 단신의에게 진단을 받아봅시다.” 그러자 홍려사경도 말했다. “그래, 그래. 이왕 들어왔으니 맥을 짚어 일단 중독의 가능성을 배제해야 한다.” 이때 금태의가 말했다. “장공주님께선 중독되지 않으셨습니다.” 향병은 단신의의 얼글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금 태의의 말을 그냥 믿기로 했다. 한편, 송석석과 시만자는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향병은 비록 중요한 여관은 아니었지만 장공주의 믿음을 얻었고 방금도 그녀가 극구 반대를 해서 원래 지지하던 사람들까지도 따라서 반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홍려사경을 비롯한 두 세 사람은 여전히 상국의 단신의를 청하는 것을 지지했다. 단신의의 명성은 서경에까지 퍼졌다. 애초에 선제의 병이 위독했을 때 조정의 신하도 단신의에게 치료를 청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선제는 스스로 상국인의 손에 목숨을 맡기기 싫다며 결국엔 포기했다. 그들은 또다시 말다툼을 벌였는데 송석석과 평무종은 상황을 보더니 단신의를 모시고 곧장 동원으로 달려갔다. “막아라!!” 향병이 소리쳤다. “저기요, 내 말 좀 들어보십시오……” 시만자는 서둘러 앞으로 다가가 향병의 손을 잡고 애원했다. “우리도 장공주님을 위해서 이러는 것입니다. 장공주님의 시녀가 옆에 있으니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몽동이도 수란석을 가로막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저 맥만 짚어보는 것입니다. 당신들의 태의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얼른 들어가서 지켜보라고 하십시오.” 태의는 진작에 뛰어 들어갔다. 비록 장공주의 곁에는 두 명의 의사가 간호하고 있었지만 상국의 사람이 들어가자 태의는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바로 따라 들어갔다. “놔, 이거 놔주십시오.” 향병은 시만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것입니까? 날 해치려는 것입니까?” 그러자 시만자는 그녀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런 게 아닙니다. 들어가려는 거면 같이 들어가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몽동이도 말을 덧붙였다. “맞습니다. 다 같이 들어갑시다! 모두들 장공주의 건강을 위해서 이러는 것이니 같이 들어갑시다.” 경위들도 송 대인이 손찌검을 하지 말라고 분부해서 밀치락달치락 하며 공격을 어깨로 되받아 칠 수밖에 없었다.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혼란스러웠지만 몽동이가 수란석을 잡고 있기 때문에 시만자는 힘껏 향병의 손을 잡고 동원 쪽으로 움직였다.
잠시 후, 평무종이 회동관 입구에 나타났는데, 혼자 온 게 아닌 것 같았다.방금 송석석이 그녀를 보았을 땐 야행복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평범한 복장을 입고 있었고 야행복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사저, 무슨 상황입니까?”송석석은 얼른 마중 나가서 물었다.그러자 평무종이 답했다.“내가 장공주 방의 옥상에서 잠깐 들었는데 장공주가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더라고.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시녀 몇 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장공주가 미친 듯이 발광하다가 사람까지 물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하더군.”시만자는 의아해서 물었다.“미친 듯이 사람을 물었다고요? 설마 정신이 이상해진 건 아니겠지요?”이때 송석석이 다시 물었다.“혹시 정원에서 들었습니까? 그들이 뭐라고 하던가요?”“그들이 정원에서 다투고 있었는데 태의나 단백부를 모시러 가자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어. 하지만 난 옥상에서만 듣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하고 지지하던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그럼 신의를 모시러 간다는 의견에 반대하던 사람 중 여자의 목소리가 있었습니까?”“있었다.”평무종이 몽동이를 만났을 때 이미 여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향병은 아니었다.”“반대하던 사람이 많았습니까?”“서너 명인 것 같았는데 그들도 침착하게 분석할 뿐이지, 무작정 반대했던 건 아니다. 유독 한 여자의 반대가 심했는데 그녀는 우리 상국의 태의와 의사들은 그들이 수행하는 어의보다 못하며 가해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지.”“그러니까 그녀를 따라 반대하던 사람들은 장공주가 자신들 때문에 문제가 생겨 책임을 질까 봐 걱정하는 것이었군요.”평무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다고 할 수 있지.”그러자 송석석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그럼 쳐들어갑시다!”이때 몽동이가 걱정하며 말했다. “왕야님께 알려서 결정지으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아니, 이건 내 개인적인 결정이지 왕야와는 상관없는 일이야.”송석석은 밤을 지키고 있는 경위를 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