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망은 가림막을 들고 이방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발걸음이 가벼워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고 바깥에서도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잠시 후 그는 문을 열고 재빨리 문 뒤에 숨었다.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빠르게 고개를 내밀어 힐끗 보았는데, 그저 한 번 보았을 뿐인데 온몸이 굳어 버리는 것 같았다.복도 앞 불빛이 계단을 비추고 있어서 잘 보였는데, 그 곳에는 이방의 시중을 들던 시녀 세 명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모두 검으로 단번에 숨통이 끊어져 소리를 칠 겨를도 없는 듯했다.피가 돌계단을 따라 흘러 계단은 온통 새빨갛게 물들었다.그러자 전북망은 문득 송가의 멸문이 떠올라 울적해졌다."아버지와 어머니..."전북망이 막 뛰어나가려고 하자 이방이 막았다. 이방의 얼굴 또한 창백했고 입술도 조금 떨리고 있었다."아마도, 나를 겨냥한듯 하옵니다."전북망은 단숨에 알아차렸다. 서경 첩자가 그녀에게 복수를 하려는 가능성도 있었다. 이방은 방금까지도 자신의 행동이 바르다고 말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다 변명같이 느껴졌다. 방금까지 당당하게 변명하던 이방도 지금은 두려움에 떨고 있자 전북망은 자기라도 정신을 차려야 겠다며 얼굴을 때렸다. 그때, 어두운 그림자 네 개가 조용히 정원에 드리워졌다. 그들은 모두 검은 옷차림을 하고 얼굴을 가린 채 싸늘한 눈동자만 드러냈다.네 사람은 각자 검을 쥐고 있었는데, 검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고 짙은 피비린내와 살기를 풍겼다. 그 모습을 본 이방의 손이 살짝 떨려왔다.바로 그 순간 그들이 동시에 공격을 했다. 전북망과 이방은 빠르게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한 사람은 문을 잠그고 한 사람은 초를 꺼 순식간에 방 안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두 사람은 서로 등을 맞대고 검을 든 채 경계 태세를 취했다. 검의 빛이 두 사람의 날카로운 눈빛을 밝혔다.전북망은 귀경하자마자 바로 경위에 들어갔었다. 게다가 일반 경위 자리로 폄하되어 순번을 시작했다. 순번으로 단련된 효과는 아
왕청여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검을 든 자객들이 이미 안으로 침입해 버렸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며 쫓아온 듯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쥐고 있었다.왕청여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돌려 문을 세게 두드렸다.몸을 피할곳이 이곳밖에 없었다. "이방, 문을 열거라! 어서 문을 열거라!"오월과 유월은 왕청여를 지키려 자객을 가로막으며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멈추거라...!"하지만 자객은 검을 휘둘렀고 오월과 유월은 목덜미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목에서는 피가 주르륵 훌렀다. 칼에 베인 것이다! 그들이 단번에 숨통을 끊어 두 사람은 소리도 못 내고 바로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그 모습을 본 왕청여는 겁에 질려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울부짖었다."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자객은 이미 왕청여를 향해 검을 뻗었고, 휘두르려는 바로 그때, 전북망이 나타나 자객을 걷어차고 왕청여를 보호했다. "들어가서 숨어있소!"전북망은 상대하기 어려운 적을 만난 듯 왕청여를 살짝 밀었다.그러자 왕청여가 울먹이며 답했다."이방이 문을 잠가 못 들어가옵니다…."전북방은 문을 걷어찼지만 끄덕하지 않아 싸우면서 큰 목소리로 연신 외쳤다. "이방, 문을 여시오!"이방은 굳은 표정으로 검을 쥔 채 손을 떨고 있었다. 그녀는 전북망의 말을 무시한 채 문을 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 사이 전북망의 상황도 그리 좋지 않았다. 이미 칼에 맞아 황급히 몸을 피하기 바빴다. 그의 무예가 경위에서 늘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었다.그는 자객을 사람이 없는 정원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자객은 이방만을 노리고 있어 힘들었다. 세 사람은 문을 부수고 있었고 전북망은 한 사람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왕청여는 그 모습에 놀란 나머지 기절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기어가다시피 구석으로 가서 간신히 숨는것에 성공했다. 마침 장군부의 호위가 도착했지만 장군부는 사정이 좋지 않아 호위가 그리 많지 않았다. 심지어 호위 몇 명
두 사람은 힘겹게 싸웠으나, 자객에게 한바탕 맞고 말았다.자객들은 더는 시간을 끌려 하지 않았다. 한 자객은 둘째 집안의 부자를 상대했고, 세 자객은 날카롭게 이방의 가슴을 향해 칼을 찔렀다. 이방은 당황한 나머지 다급히 검을 버리고 전북망을 끌어당겨 자기 몸을 막았다."안된다!"노부인과 왕청여는 그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전북망은 이방이 이런 끔찍한 짓을 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중상을 입은 터라 이방에게 두 팔을 꽉 잡혀 검을 휘둘러 막아낼 기회조차 없었다. 그는 그저 자객들이 자기 심장을 향해 찔러오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모두 안달이 났지만, 그를 차마 구할 수 없었다. 노부인은 그 상황을 지켜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위급한 상황에 갑자기 ‘챙’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도화창 한 자루가 날아와 자객의 검 세 자루를 향해 정확히 부딪혔다. 자객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손을 다쳐 급히 뒤로 물러섰다.잠시 후 그림자 하나가 허공에서 날아와 발끝으로 빠르게 도화창을 되찾았다. 다들 그 그림자가 누구인지 자세히 알아보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자객들을 물리치기 시작했다. 무공은 아주 깔끔하고 강력했다.자객은 그녀의 공격에 놀라 계속 물러섰다. 방금까지도 대단했던 그들의 무예가 그녀의 도화창 앞에서 조금의 쓸모도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십 수를 겨루자, 자객들의 검이 모두 바닥에 떨어졌다. 스무 수를 겨루자, 자객들은 팔다리의 힘줄이 끊어진 채 전부 쓰러졌다. 단전에는 힘이 없었고 검을 들 힘조차 없어 보였다.그때, 산들산들한 여름밤의 바람이 그녀의 헝클어진 귀밑머리를 향해 불어왔다. 복도의 불빛을 받으며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였다. 그제서야 다들 그 그림자가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송석석?"겁에 질려 온몸을 떨고 있던 왕청여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송석석은 흰옷을 입고 진주가 달린 자수 꽃신을 신고 있었는데, 넓은 소매의 두루마리까지 입으니 몸매가 유난히 길고 연약해
"정말 미친 것이냐?"전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 자식들을 관청으로 끌고 가도 누가 보냈는지 심문하지 않으면 어찌 또 그들을 처리할 수 있겠는가?"이방은 고개를 들어 송석석과 시선을 마주했는데, 그녀의 눈빛은 착잡함과 잔인함이 섞여 있었다. 그러고는 이를 갈며 말했다."장군부에서 버려진 여인이 감히 무슨 자격으로 여기에 돌아온 것입니까?"송석석은 피로 물든 그녀의 얼굴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그들이 정녕 서경의 첩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참으로 어리석습니다."그러자 이방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고 눈빛은 더욱 포악하게 변했다.그녀는 지금까지 자객들을 서경의 첩자라고 여겨 그들이 경조부의 고문을 당하면 분명 녹분성에서의 일들을 털어놓을 것이라 생각했다. 황제가 직접 벌을 내리지 않았기에 사실 그녀는 요행을 바라고 있었는데 관청에서 심문을 통해 이 일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 지 그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송석석이 그런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이방은 송석석에게 간파되어 굴욕감을 느꼈다.잠시 후, 필명이 경위를 데리고 왔다. 그는 송석석을 보자 예를 올렸다."부사령관을 뵙사옵니다.""자객이 죽었으니, 자네가 직접 처리하시오."송석석은 고개를 돌린 후 도화창을 끌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예!"그러자 뒤에서 필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편, 전북망의 시선은 계속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볼뿐 나서지 않았다. 송석석이 나타난 후 돌아가기까지 그저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에 불과해 그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비록 부사령관이지만 장군부에서는 화리한 여인이었고, 현갑군의 사무를 책임지지 않기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필명은 자객의 복면을 벗겼고, 이방은 옆에서 싸늘하게 그 모습을 보았다. 비록 표정은 평온했지만 마음속으로 큰 충격을 입었다.그녀가 생각한 서경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서경 사람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그녀를 죽이려 했던 것일까?
따귀를 세게 맞은 이방의 고개가 순식간에 한쪽으로 기울어졌다.하지만 이방은 이를 악물고 반격하지 않은 채 계속 상처를 처리할 뿐이였다.왕청여는 눈물을 닦으며 필영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필 대인, 이건 모두 이방의 탓입니다. 자객들 또한 모두 이방을 노리고 온 것인데, 스스로 방 안에 숨어 저와 시녀를 밀어내 시녀의 죽음을 초래했습니다. 그리고 송 장군께서 자객들을 모조리 잡아 묶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이 갑자기 미친 듯이 달려들어 자객을 모두 죽였습니다. 필 대인, 반드시 저의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필명은 이방을 노려보았고, 필명이 입을 떼기도 전에 이방이 싸늘한 목소리로 선수를 쳤다."제가 장군부에 침입하여 호위와 시녀를 죽였습니다. 그들의 목숨을 살려뒀으면 위험이 가할 수도 있었습니다."이미 자객의 시체를 본 적 있는 필명은 이방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손과 발의 힘줄을 끊고 내공도 잃은 채 묶였는데 무슨 위험이 있다는 겁니까? 목숨을 남겨 배후를 알아내지 못한 것이야 말로 큰 위험 입니다."하지만 이방은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다."참으로 미안합니다. 장군부의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 분노에 차올라 목숨을 남겨 심문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필명은 이방의 쓸데없는 말에 대답조차 하기 싫었다.왕청여는 그 이후에도 이방의 뺨을 몇 번이나 때렸지만 여전히 화가 가시지 않았다. 위험한 상황에 이방이 문을 닫아 오월과 유월이 살해되었으니 이방을 때려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필명에게 대답한 것을 듣고, 왕청여는 이방이 순간 수상하다고 느껴져 차갑게 말했다."자객은 너를 노리고 왔다. 대체 누구에게 미움을 샀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것이냐? 오월과 유월이 너를 위해 죽었으니, 나에게 솔직히 답하거라."그러자 이방이 콧방귀를 뀌었다."답? 자객에게 묻거라. 내가 죽인 것도 아니지 않느냐?!""네가 문을 잠갔기 때문에 자객들이 너 대신 오월과 유월을 죽인 것이다. 네가 문을 막고 있어서 두 사람이 너를 지키려다 죽임을 당한 것이라
경조부 사람들도 금세 도착하였다. 전강은 경위의 필명과 상의한 뒤, 자객의 시체를 경조부 사람들이 가져가게 하였다. 이미 공문에 넘겼으니, 자백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아까 필명이 물었던 것을 경조부에서도 다시 물었어야 했다. 이방은 질문을 피하기 위해 부상을 가장해 쓰러진 척하여 자신의 방으로 실려 갔다. 모든 이들이 그녀의 뒤처리를 하고 있었다. 전북망은 모든 질문에 응답한 후에야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버렸다. 왕청여는 그를 문희거의 침상으로 옮기라 명하였다. 둘째 노부인은 송석석이 구해준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 대방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곧바로 전 노부인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그녀에게 어떻게 대했습니까? 오늘 그녀가 장군부의 전 가족을 구해줬습니다! 부끄럽지도 않은지요? 이제는 그녀를 비난할 생각은 하지 않으셔야 할 겁니다!”처음으로 시누이 앞에서 전 노부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늘 밤, 그 공포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지금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평소 강했던 그녀는 표정이 몇 번 바뀌더니 끝내 한 마디를 쥐어 짜냈다. “장군부에 자객이 들었다는 것을 그년이 어찌 알았느냐? 혹시 그년이 보낸 것은 아니냐? 관부에서 아직 조사하지 않았는데, 어찌 함부로 말하느냐?”그러나 둘째 노부인은 웃으며 분노하였다. “그럼 그녀가 자객을 보내고 다시 목숨을 구해주면서 은혜를 갚도록 계획했다는 겁니까? 장군부가 갚은 은혜로 그녀가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속셈이라는 말입니까?”말을 마친 노부인은 바로 돌아서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송석석을 대신해 억울하였다. 그리고 대방과 따로 살기로 결심을 내렸다. 민 씨가 버티고 있고, 전북망의 부인은 한 명은 독하고, 다른 한 명은 어리석으니, 집안에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대대손손 물려받은 것을 이들이 망치고 있었다. 따로 나가 산다고 하더라도 지금 장군부에 나눌 것이
송석석은 시몬성 밖에서 삼황자를 만났다. 지금 서경태자인 그는 상국사람들을 매우 증오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면, 녹분성의 일이 매우 골치 아파질 것이다.송석석은 외조부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이미 회갑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릉관을 지키고 있었다. 경성으로 돌아와 편안히 지낼 수도 있는데 말이다.보통 무장들은 이 나이가 되면 물러나는 것이 마땅했다. 송석석은 황제가 젊은 무장들을 기용하려는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하였지만, 근래 몇 년간 중책을 맡을 만한 자들은 별로 없었다. 황제는 또 사여묵의 병권을 회수했다. 서경과 사국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장군였으니 그가 병권을 쥐고 있으면 사방을 진정시킬 수 있을 터였다. 지금은 안정된 시기라 왕표에게 병권을 맡겨도 당장은 큰 문제가 없겠으나,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왕표로는 부족할 것이다. “일찍 쉬어. 이 사건은 경조부로 넘어갈 것이니, 내일 경조부에서 와서 두루 물을 거야. 그러면 황제께서도 궁으로 부르실지도 몰라.”장군부에 다녀온 후 송석석은 마음이 어딘가 찝찝했다. 그래서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전북망이 그녀의 마음속에 자신이 있다고 말했을 때는 정말 우스꽝스럽고 어이가 없었다. 다행히 사여묵이 진성에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가 이 말을 들었더라면 폭발했을 것이다. 다음 날은 날이 좋았다.막 떠오른 해는 하늘을 비단으로 아름답게 물들였다. 준비를 마친 송석석이 서우가 왜 오지 않는지 물으려는 그때, 보주가 아침상을 들고 들어왔다.“심 아가씨께서 서우 도련님을 서원에 보내셨습니다.”“이렇게나 이른 시간에 말이냐?” “네, 심 아가씨께서는 이른 아침부터 훈련하셨고, 서우 도련님은 어제 배운 것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일찍 가서 훈장님께 물어보겠다고 하셨습니다.”“오? 첫날부터 이렇게 어려운 것을 가르쳤단 말인가?”송석석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어제는 훈장님이 무엇을 가르쳤는지 물어보는 것을 깜빡 잊었다. “노
한창 이야기하던 중에 송석석이 물었다. “그 귀걸이, 상태는 어떻습니까?”“어머님께서 이미 사람을 시켜 금경루에 맡긴 상태입니다. 아마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이렇게 소중한 물건은 그냥 두는 게 좋겠습니다. 밖은 위험할 수 있으니깐요.”귀걸이 하나 때문에 그토록 마음 쓰는 그녀의 모습에 그 귀걸이가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그러자 이석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평소에는 착용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다만 어제는 위국이를 서원으로 보내는 날이라 귀걸이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과 함께 위국이를 서원에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혼인할 때 평생 해야 할 일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것이 자기기만이라는 걸 알지만, 가끔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면 정말로 버텨내기 힘들더군요.”송석석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연민 중 반은 그녀를 위한 것이었고, 반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이석은 계속 말을 이었다. “왕비님처럼 강한 분은 저처럼 스스로를 속이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겠지요.” 아마도 이석은 오랫동안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았다. 혹은 그녀의 남편이 송국공의 휘하에 있었고, 송국공의 일곱 용사들이 남강 전장에서 희생되었기에 그녀는 마음속의 고통을 나누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저는 큰 뜻도 없었고, 재능이나 외모가 출중한 것도 아닙니다. 둔하고, 일을 할 때도 결단력이 없지요. 하지만 제 남편은 달랐습니다. 어린 나이에 영웅이 되었고 외모도 출중하였으며, 게다가 후작부의 명문가 출신이었지요. 그런 그가 누군들 얻지 못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같이 평범한 여인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열일곱에 그와 혼인하였고, 지금 스물다섯입니다. 혼인한 지 팔 년이 되었으나, 그동안 거의 함께하지 못해 아이를 낳지 못하였지요. 다행히 지금은 위국이 있으니, 친자식은 아니지만
시부인이 바로 그날의 고청우였다. 산후조리를 마친 그녀는 얼굴에 빛이 났고 몸집은 붓기가 하나도 없었으며 여전히 소녀처럼 아름다웠다. 남강에는 모래바람 때문에 겨울엔 아주 추웠지만 그녀의 피부는 기름을 바른 것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저택의 좋은 물건은 모두 그녀가 사용했다. 매일 낙타젖으로 제비집을 삶고 양젖으로 목욕을 했는데 진성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아도 그녀는 조금도 절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보양을 하니 적어도 왕표의 눈에는 지극히 고귀한 존재로 보였고 그녀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손을 잡으면 그의 마음도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생에 국색천향의 미인, 매력이 있는 미인, 온유한 미인 등 많이 만나보았지만 그중에서도 하필이면 여우 같은 고청우가 그의 마음에 들었다. 방천허마저도 그녀의 신분이 의심스러우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왕표는 그런 말을 듣고 오히려 욕을 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고청우는 진작에 자신의 신분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처음엔 이곳에 와서 살 길을 찾고 싶었을 뿐 그에게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왕표에게 엄격한 부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고청우가 왕표를 유혹한 게 아니라 왕표가 끝까지 쫓아가서 같이 살게 된 것이었다. 왕표는 그녀를 갖기 위해 많은 방법을 썼는데 처음엔 그녀를 수양딸로 삼겠다고까지 했었다. 그래서 나중에 그들이 부부가 된 후에도 고청우는 밤에 가끔씩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왕표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찌릿한 것 같았다.그는 아들이 생긴 데다 아름다운 부인을 보면서 심지어 여생을 남강에서 보내는 것도 행복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결코 최 씨에게 부당하게 대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 몇 년 동안 그녀가 중책을 맡아 집안의 재산을 처리하도록 내버려두었고, 그가 밖에서 군사를 이끌 기에 백작 부인인 그녀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앞으로
사여묵은 원래 누군가가 연왕의 배후에서 조종을 한다고 여겼지만 목종욱이 함부로 추측할까 봐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엔 실증도 없었으니 연왕을 죽였다면 황제는 황숙을 이유 없이 죽인 혼군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 아닌가? 그럼 그들이 반란을 일으킬 구실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지. 반란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 그의 세력이 이 정도까지 확장되었으니 누군가 깃발을 들것이다. 그를 연주로 보낸 이유는 그가 애초에 사온이 접촉했던 인맥과 다시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야.” 그러자 목종욱이 말했다. “그런 것이군요.” “내 추측이 맞다면 그들이 거사를 일으키려 한다면 분명 각지에서 트집을 찾아 봉기를 일으킬 것이니 조심해야 하네. 특히 강남은 우리 상국의 공창과 상회의 땅이니 그곳을 빼앗긴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사여묵이 재차 당부하자 목종욱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목숨을 걸고라도 그들이 강남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모두 인계한 후 사여묵도 진성으로 떠나는 길에 올랐다. 그는 지금 조금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사청엽이 진성으로 압송되었다. 그는 평생 체면에 신경을 썼는데 이젠 호위가 앞뒤 좌우에서 호송하는 건 흔치 않으니 이번 생에 소원을 이룬 셈이었다. 중간에 휴식할 때 송석석은 강철 바늘을 팔찌에 넣었다. 사병을 소탕할 때 팔찌의 강철 바늘을 다 썼는데 정말 사용하기 편리하다고 생각했다.특히 이런 산악전에서는 적이 분산되어 있어서 일단 발견하면 강철 바늘이 멀리까지 쏠 수 있어서 경공을 펼치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그녀가 산에서 몇 번 넘어져서 팔찌가 약간 변형해서 사여묵이 역관에게 공구를 빌려 수리해 주었다. 복구하지 않으면 각도에 문제가 생겨 정확하게 발사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들이 진성으로 돌아갈 때 남강에 있던 전북망도 마침내 성릉관에 도착했다. 왕표가 특별히 그들 몇 명을 성릉관으로 보내 소대장군에게 생신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전북망을 따라갔던 세 사람은 모두 전북망과
이튿날, 연황실의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는데, 그중에는 강남에 사는 훈작 가문도 적지 않았다. 원래는 이 훈작 가문들은 태평성대만이 영화를 누릴 수 있기에 정세가 흔들리는 것을 가장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어야 했다. 그러나 한 가문이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작위가 공작에서 백작으로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더 이상 작위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여 마음속으로 아주 초조했다. 왜냐하면 그들도 전성기를 누렸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가문이 연왕의 진영에 들어온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도 연왕의 계략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의 미움도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처세술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도 사람들이 모두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연왕은 모든 사람이 온 후에 결정을 내리겠다고 일을 다시 뒤로 미루었다. 그러자 더욱 무상의 말이 입증된 셈이었다. 사람들은 연왕이 움직일지, 아니면 투항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노주에서 사여묵은 강남도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포로들을 모두 인계했다. 강남 위영의 총병은 목종욱이었는데 예전에 소 대장군의 휘하였다. 소대장군은 하마터면 그를 의자로 삼을 뻔했다. 전공을 세운 후, 소 대장군의 천거로 강남에 가서 수비를 하고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목적은 도적 때를 소탕해서 소란을 피우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사여묵은 그와 왕래가 많지 않았지만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소대장군의 영향을 받아 충성심이 강하고 담력이 커서 절대로 연왕의 진영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연왕이 이리저리 병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목종욱은 직접 포로를 데리로 왔다.그가 사여묵과 송석석에게 인사를 하자 두 사람도 후배의 신분으로 그에게 인사를 했다. 왜냐하면 소대장군의 관계가 있으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온 후에 다른 것은 묻지 않고 소대장군께서 진성에 계셨던 상황만 물었다. 처음에 그는
연황실의 서재는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연왕은 모든 참모들을 불러놓고 논의를 했다. 그는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는 지금이 적합한 시기가 아니라 죽음만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청엽만 죽이면 그가 역모를 계획한 일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참사들과 연주에서 그와 함께 일을 도모했던 관리들은 모두 사청엽을 죽이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병 오천 명을 섬멸한 부대가 사청엽을 진성으로 호송하는데 어떻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사청엽을 죽이느니 차라리 움직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연주지부 하상지가 말했다. “왕야님, 이미 가장 좋은 시기를 놓쳤으니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은 병력을 기르는데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진성에서 제공하던 은자도 끊겼으니 더 이상 소모하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하상지는 전 호부시랑으로 있다가 작은 잘못을 저질러 선제에게 경주로 파견된 후 연왕을 따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사온이 은전으로 사람을 매수해서 그를 연주지부 자리에 앉게 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년이면 임기가 다가오는데 이부 제상서가 그에게 불만이 많았다. 옛날 진성에 있을 때부터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아 임기가 차면 아마 다른 곳으로 갈 것 같았다. 그가 자리를 옮기면 숙청제가 반드시 사람을 들여보낼 것이고 그때가 되면 왕야님이 연주를 장악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모두들 번갈아 가며 설득했다. 숙청제가 군대를 보내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먼저 곳곳에 불을 지피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고 모두의 분석이 일리가 있었고 현재의 형세에도 부합했다. 그러나 연왕은 여전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모든 사람이 도착한 후에 다시 의논해 보지. 다들 먼저 돌아가거라.” 서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가족의 생명을 그에게 맡겼고, 입이 마르도록 설득을 했는데 여전히 우유부단을 하니 사람들은 실망하기 그지없었다. 무상은 눈앞의 상황을
소식이 연주에 전해지자 연황실이 발칵 뒤집혔다. 연왕은 격노하여 방에 있는 도자기란 도자기들을 모두 깨뜨렸다. “병신들 같으니라고. 오천 명의 사병들이 모두 당하고도 보고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사청엽은 대체 뭐 하는 인간이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노주로 갔는데 경계심이 조금도 없다니, 심지어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하지도 않았다니.” 그의 얼굴은 흉악하고 무서워 회왕조차도 한쪽에서 서서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 일로 인해 당황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온통 옹현에서 옮겨간 사병들에게 있어 노주에 문제가 생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노주 대석촌 같은 숨겨져 있는 곳이 대체 어떻게 들킨 것이지? 노주는 원래 그들의 눈에 들 수 없는 곳이었다. 그곳의 지형은 정말 좋았는데 빽빽한 땅굴 외에도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역모를 실패하더라도 대석촌으로 가면 몇 년 동안은 평안할 수 있어 다시 계획을 짜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발견하기 어려운 지역인데 이렇게 쉽게 공격을 당하다니. 무상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왕야님, 지금 화를 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일찍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이 노주를 노리는 것은 사청엽에게서 실수가 생긴 것입니다. 그가 체포되어 진성으로 이송되기만 한다면 반드시 왕야님이 시켰다고 자백할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연왕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은 비적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의심만 했을 뿐 사병들이 본왕 것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었지. 지금 유일하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사청엽이니 기회를 봐서 그를 제거한다면?”그러자 무상이 말했다. “왕야께서는 그를 제거하실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모두 무림 출신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사가 죽어 나가야 하는지 아십니까? 아마 몰래 들어가서 한 번 보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입니다.” 연왕은 초조해서 일어났는데 동작이 너무 커 아물지 않은 상처가 당겨 아파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그들은 신속히 준비를 해 1군은 대석촌 북로로 진격했는데 그건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물론 1군이 움직이기 전에 이미 다른 분대가 먼저 입산해서 전후좌우로 협공을 했다. 적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포진이 합리적이어서 그야말로 빈틈없는 포위망을 마련해 준 셈이었다. 하지만 결국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워낙 공격할 곳이 많고 적들이 산세 지형에 익숙해 있어서 무소위가 미리 사람을 데려가 대석촌으로 향하는 밀도 입구를 막지 않았다면 싸움을 계속 진행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장대성은 겸사겸사 두 명의 인부도 구해내 그 사람들에게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데리고 대석촌을 떠나라고 했다. 두 사람은 마침내 구출이 되어 춥고 배가 고픈 데다 밖에 싸움이 났다는 것을 알고 황급히 산 부근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철수하라고 했다. 하지만 노동을 하던 사람들도 소수였고 이곳에는 오천 명이라는 사병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싸우기 어려웠다. 몇 시진 후, 2군은 대석촌을 점령하고 그들의 공급을 차단해서 산으로 몰아넣었다. 식량을 지키기만 하면 그들이 산에서 약탈을 할 수밖에 없기에 쉽게 노출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상대는 무림의 고수들이니 조금의 기척이 있어도 쉽게 들킬 수 있었다. 노주 지부 서계경은 북쪽 길목에서 탈출하는 일꾼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이 소식을 퍼뜨리지 못하도록 모두 체포했다.사실 이렇게 큰 움직임이 있는 이상 노주에서 분명 누군가가 소식을 전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계경은 많은 것을 알지 못했지만 이 전투가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절대로 산적과 토비들에게 외부에게 지원을 요청할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왜냐하면 그도 이 사람들은 진정한 산적과 토비가 아니라 역모를 꾸미는 사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사여묵 등 인은 통쾌한 몸싸움을 겪은 뒤 각 팀이 돌아가며 휴식을 취하고 유연한 산악전을 시작했다.송석석과 사여묵은 같은 팀이 아니었다. 무소위가 강력하게 그들이 나누어서 팀을
이번 작전은 비적을 토벌한다는 명분이 붙었다. 작전 전날 밤, 그들은 함께 앉아서 토론을 했는데 이번 행동은 위험하지도 않고 임무가 어렵지도 않았다. 다만 노주 대석촌의 사람이 예전 옹현의 사병은 아니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 연왕이 사람들을 어디로 옮겨갔을까? 전에 사여령은 여러 주와 현에 이런 거점이 있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사여묵은 모두 대석촌 같은 규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 천 명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수자였다. 위소가 없는 곳은 현지 관부만으로 오천 명을 섬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반격에 점령당할 수 있었다.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면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것이고 대군이 쳐들어왔을 때 이미 얼마나 많은 곳을 점령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번에 노주의 사병을 토벌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큰 문제는 뒤에 있었다. 요 몇 년 동안 남강에서의 전쟁으로 인해 연왕이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도 조정에서는 그에 대해 조금도 방비를 하지 않았다. 남강에서 승리한 후 조금의 억제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어느 정도 실력을 쌓았고 지금은 뒤에서 전략을 짜주는 사람까지 있었다. 비록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사여묵은 지금 자신들이 피동적이라고 생각했다. 노주로 온 후 그는 줄곧 그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했다. 원래 염 선생과 분석할 때는 많은 사람을 배제했지만, 단 한 사람이 그들의 시야에서 배제되었다가 다시 주목받게 되었고, 그 인물이 염 선생의 머릿속에서 결코 잊히지 않았다.그 사람이 가장 큰 혐의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전에 사람을 파견해 그 사람을 조사해 보았지만 그는 부유하지 않았지만 아주 평화로웠다. 그의 집에도 부병을 많이 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이상이 없었다.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제외되었을 사람인데 사여묵이 그를 배제한 뒤 다시 이름을 올린 이유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분명히 연왕의 뒤에 서서 모의를 한 사람일 것이었다. 다시 말해
노주에는 영락루라는 곳이 있었는데 기세가 웅장하고 규모가 컸다. 영락루에 소비하러 가는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면 귀족이었다. 하지만 영락루의 왼쪽 모퉁이에는 난잡하고 텅 빈 곳이 있었는데 장사꾼은 매일 그곳에서 장사를 했다. 밥을 파는 사람, 떡을 파는 사람, 완탕을 파는 사람 등이 있었는데 이곳은 품질이 좋고 가격이 저렴하여 음식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민들과 부두의 노동자들이었다. 장사하는 자리 밖에는 몇 개의 낮은 탁자와 걸상이 놓여 있었는데 손님들은 거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곳은 시끌벅적했고, 어떤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다 있었지만 유독 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만 없었다. 왜냐하면 백성들에겐 너무 먼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그중 완탕을 파는 노점 앞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의 옷차림도 수수하고 평범했다. 한 사람은 회색 솜저고리를 입고 흰 모자를 쓰고 있었고 나이는 대략 30살 좌우로 보였다. 다른 한 명은 대략 40살 좌우로 보였는데 청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다만 아무리 봄이라고 해도 아직 날씨가 쌀쌀한데 옷차림이 다소 얇아 보였다. 하지만 완탕 한 그릇을 먹고 나니 그의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맺혔다. 다 먹은 후에 그릇을 내려놓고 회색 저고리를 입은 남자가 말했다. “그럼 그냥 놔준단 말입니까?” 그러자 청색 옷을 입은 남자가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그들이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으니 그만둘 수밖에 없지.” 그러자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거 참 아쉽군요.” 청색 옷을 입은 남자는 그릇에 남은 국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연왕에게도 초조한 맛을 보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움직이지를 않으니 날이 갈수록 남의 자리가 안정되어 승산만 줄어드는 것 아니냐?” “나는 진성에서 왜 연왕을 돌려보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회색 옷을 입은 남자는 진성에서 연왕이 역모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연왕을 풀어준 건 호랑이를 풀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
마을은 이미 그들의 사람들로 가득 차 뜨거운 물이며 옷이며 없는 게 없었다. 다만 옷들이 상대적으로 짧아 무소위는 다른 사람을 시켜 그의 몸에 맞는 옷으로 한 벌 구해오라고 했다. 사여묵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송석석은 그의 몸에 묻은 흙을 닦아준 후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씻어주었다. 사청엽은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 머리를 감는 비누도 좋아서 잠깐 문질렀더니 머리카락이 금세 부드러워졌다. 다만 사여묵의 머리카락이 너무 더러워 물을 세 번이나 갈아서야 깨끗해졌다. 그리고 송석석은 천천히 그의 수염을 깎아주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주었다. 사여묵은 홀쭉해진 송석석의 얼굴을 보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아팠다. 아마 그동안 잠도 못 자고 매일 걱정을 해서 그런 것 같았다. 사여묵은 이럴 줄 알았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편지를 한 통 보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아직 옷을 사 오지 않아 일단 사청엽의 옷을 입어야 했는데 좀 짧긴 했지만 큰 영향은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사여묵은 쉰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당신이 올 줄 몰랐소. 심 사형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한 것 같소.” “당신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아서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송석석은 그의 품에 안겨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꼭 감쌌는데 몸이 밀착되어 전해오는 진실함이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혔던 근심과 초조함을 씻어 주는 것 같았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겠소.” 그의 뜨거운 입술은 송석석의 이마에 닿았고 그녀를 안고 있던 팔엔 힘이 더 들어갔다. “그러니 내 걱정은 하지 마오.” 방금 송석석이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려 그는 슬프면서도 감동적이었다. 그녀는 평시에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사여묵도 그녀가 부담스럽지 않게 항상 자신의 감정을 참아왔던 것이었다.그는 송석석의 마음속에 자신이 있지만 그다지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